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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비장(裵裨將) ◈
◇ 배비장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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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채만식
1
裵裨將[배비장]
2
12
 
 
3
이윽고 한 곳에 당도하였다.
 
4
사람 웅얼 지껄이는 소리, 철소댕 여닫는 소리, 기명 부딪치는 소리, 거기다 간간이 젊은 여자의 드높은 아양청…… 아마도 저자의 어떤 술청일시 분명하였다.
 
5
과연, 궤짝 틈사구니로 해서 구수한 술국 냄새가 홍건히 스며들었다. 그 냄새에 궤짝 속의 발가벗은 배비장은 꿀꺽 군침이 삼켜지고 사뭇 회가 뒤집혔다.
 
6
상사병이 나, 오랫동안 식음을 폐하다시피 하던 사람이었다. 하던 사람이, 하여커니 병은 이미 나은 셈이었다. 병은 이미 나앗으니 어시호시장한 줄을 아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라 하면 그만이겠지만 명재경각, 한식경 후에 어찌 될지 모르는 터이면서 시장한 줄을 알다니, 과연 인간의 식욕도 색욕과 더불어 큰 것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7
“목두 컬컬허구 허니, 예서 우리 한잔 합세다나?”
 
8
사내가 그러면서 진 지게를 길 옆 으슥한 구석에다 받쳐 세운다.
 
9
그 말에 앞서 가던 놈이 기다렷던 듯이 선뜻
 
10
“거, 좋은 말일세. 임잔 경오를 잘 알아. 그래, 내가 잊자잊자 해두 못 잊거든!”
 
11
“이거, 이대루 둬두구 가서 상관없겠소?”
 
12
“없지 않구?……”
 
13
“혹시 누가 와서 가져가면?”
 
14
“어째피 일 잘된 일 아닌가!”
 
15
“오오 참!”
 
16
놈과 사내는 주거니받거니 그러고는 술청으로 가버린다.
 
17
남은 먹느니라 생각하니, 배비장은 더욱 견딜 수가 없고, 곧 눈에 헛것이 다 보이려고 하였다.
 
18
놈과 사내가 술청으로 가고 나서, 얼마 있다가 늙은이와 젊은이 두 백성이 나타났다.
 
19
“그 궤 쓸모 있이 만들었다!”
 
20
젊은 백성이 하는 말이었다. 늙은 백성이 그에 맞장구를 치기를
 
21
“아마 누구네 집 업궤인가 보이!”
 
22
“거, 져다가 우리 집 쌀두주 했으면 마침 좋겠소!”
 
23
“남의 집 업궤 훔쳐다 쌀두주라니 될 말인가?”
 
24
“업두 생기구, 두주도 생기구, 두루 좋지 않소?”
 
25
“업두 생기면 다행이지만, 업귀신 잘못 모셔갔다 동티 만나면 어찌하겠는가?”
 
26
이때에 궤짝 속의 발가벗은 배비장은 애를 졸이다 못해
 
27
“걱정 말구 가져가거라! 져가!”
 
28
하고 가만히 소리를 쳤다. 백성이 만일 지고 가기만 하면 기집의 본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 손아귀에서만 벗어나게 되면 살아날 수가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29
“이크 거 웬 소리?”
 
30
“어디서 나는 소린고?”
 
31
노소 두 백성은 서로 한마디씩 지르면서 눈이 휘둥그래 사방을 둘러본다.
 
32
둘러보아야 근처에는 가까이 인가도 없고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33
“거, 이상하다!”
 
34
“혹시 저 궤짝 속에서 나는 소리 아니오?”
 
35
“그럴 이치가 있나?”
 
36
궤짝 속의 발가벗은 배비장은 또 한번
 
37
“지구 가서라! 지구 가! 지구 가면 수가 생긴다!”
 
38
하고 귀신이 정말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중얼거렸다.
 
39
그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노소 두 백성은 이번에는 머리끝이 쭈뼛했다.
 
40
“정말!”
 
41
“저게 업궤라드니, 귀신 아니오?”
 
42
“아마 그런 걸세!…… 이 사람 빨리 가세나!”
 
43
하면서 쿵쿵쿵 뒤도 안 돌어보고 똥이 빠지게 달아나버린다.
 
44
배비장은 기가 막혀 한숨이 저로 나왔다. 국으로 가만히 있었더라면 지고 갔을는지도 몰랐던걸! 하면, 공연히 귀신 행세를 한 것이 후회막심이었다.
 
45
한식경은 잇다가, 요기를 하러 갔던 사내와 놈이 도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46
“술맛 참 조오트라!…… 제주 일경서 아마 제일 갈까보에?”
 
47
“술맛뿐이오? 안주는 서울 장안에다 갖다 놔두 안 빠지겠소!”
 
48
“웨 아니…… 그 갈비찜이 어쩌면 맛이 그리두 존가?”
 
49
“나는 그 개장이 더 좋습데다!”
 
50
“도미회는 입에서 설설 녹드라!”
 
51
“술국은 솜씨가 어떻구요?”
 
52
궤짝 속에서 듣고 있는 발가숭이 배비장은 이건 막 죽을 지경이었다.
 
53
어떻게도 배가 고프고 먹고가 싶은지 아까는 눈에 헛것이 보이려고 햇었지만, 인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려고 하였다. 당장 사람이 미칠 것 같았다.
 
54
악이 바짝 났다.
 
55
“네끼 천하에 무도한 놈들!”
 
56
사내와 놈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한소리 크게 꾸짖었다.
 
57
사내는 마악 지게를 짊어지려다 말고 뻐언이 바라다보면서
 
58
“하, 이놈의 업귀신이 또 지랄이 나느만?”
 
59
“그래 이놈, 네가 세상에 이럴 법이 있으란 말이냐?”
 
60
“귀신이 법을 다아 찾구! 흐으흐흐흐! 아마 동헌물깨나 먹은 귀신인가보다?”
 
61
“이놈아, 이래 보여두 내가 잘하나 못하나 네 집 대대 돌봐주던 업신이 아니냐?”
 
62
“그래서?”
 
63
“게, 무슨 길이 되었던, 너허구 나허구 같이 가는 길에, 너만 배불리 처먹구 나는 이렇게 탈탈 배를 곯려놔야 옳단 말이냐?”
 
64
“흐으흐흐흐! …… 아 그놈의 업귀신이 날 복은 파리 죽통만치두 안 점지해주구 되려 사만 부리고서, 귀신 대접은 제밀 골고루 받자구 든다! 흐으흐흐흐! ……”
 
65
한잔 얼큰한 김이라, 사내는 이렇게 놀려대면서 너털웃음을 치더니, 놈더러 묻는 말이
 
66
“이걸 어찌하면 좋소?”
 
67
“아따 하룻밤을 자두 만리성을 쌓는다 이르지 않는가? ……임자 가서 막걸리 한 사발 가지구 오소나?”
 
68
“죽일놈두 멕여 죽이드라구, 그 말두 옳은 말이오!”
 
69
사내가 도로 주막으로 가더니 막걸리 한 사발을 가지고 온다. 그걸 놈이 받아 가지고, 업궤에다 좌악 끼얹으면서
 
70
“고시네! 고시네!”
 
71
그러니, 냄새만 스며들어 더욱 애를 태울 뿐이지, 궤짝 겉에다 끼얹은 술이 궤짝 속의 배고픈 발가숭이에게 무슨 상관이리요.
 
72
조금 벌어진 틈사구니로 해서 술이 몇 방울 궤짝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73
그거나마 입을 대고 받아 먹고 싶으나, 업드려 있으니, 몸을 돌리는 수도 없어 무가내하였다.
 
74
술방울이 뚝뚝 등으로 떨어질 때 궤짝 속의 배비장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면서 명심하였다. 천행으로 한목숨이 살아나거들랑 장차 와석종신하는 자리에서 자식들더러 부디 남의 유부녀에게 뜻 두기를 삼가라는 유언을 하고 죽으리라고 ……
 
75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깐 방심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76
놈이 별안간 무릎을 탁 치면서 혼자 말하듯
 
77
“인제야 알았다!”
 
78
“무얼 알았다 하오!”
 
79
사내가 그렇게 묻는 말에 놈이 대답하기를
 
80
“업귀신은 여니 귀신허구 본판 달른 걸 여직 몰르구서, 괜헌 고생을 허구 다녔지!”
 
81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82
“이 사람아, 여니 구신 같으면야 먹구 싶은 것 있으면 맘대루 다니믄서 먹구 하겠지, 궤짝 속에 갇혔다구 꼼짝 못하겠나? 그러구는 혼자만 먹느니, 대접을 안해 노여우니 하겠나? …… 귀신허구는 아주 천하 대 귀신일세.”
 
83
“거 참 그렇소!”
 
84
“죄끔두 무서할 것 없네!”
 
85
궤짝 속의 가짜 업신 배비장은 얻어먹지도 못하는 노릇을 귀신 흉내 낸 것을 또다시 휘회하였다.
 
86
“그럼 불에 태워두 탈 없겠소?”
 
87
“탈 없겠지만 장작이 없지 않은가?”
 
88
“그럼, 톱으루 중둥을 켜자오?”
 
89
“힘들여 켜서는 무얼 하겠나? 컬 톱은 당장 있으며?”
 
90
“그럼, 땅을 파구 묻자오?”
 
91
“나도 애초에 그럴 생각으루 예까지 왔더니, 더 좋은 수가 있네! 땅파느라구 힘들일 것두 없구 ……”
 
92
“무슨 수요?”
 
93
“물에 띄우세나?”
 
94
“거 참, 좋은 수요!”
 
95
배비장은 궤짝 속에서 가슴이 다시 더럭 내려앉았으나 하릴없었다. 인제는 호통깨나 한댔자 놈들이 무서워도 안할 것, 꼼짝 못하고 산 채로 수장(水葬)을 당하고 마는 판이었다.
 
96
화장을 겨우 면하고는, 동강 잘리는 죽음을 할 뻔했다가 그 다음 생으로 땅에 묻힐 뻔했다가 급기야 수장이라니, 아뭏든 기구한 목숨이로다 싶었다.
 
97
아울러 이것이 마지막이냐, 또 무슨 딴 죽음이 있을 터이냐도 싶었다.
【원문】배비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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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