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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비장(裵裨將) ◈
◇ 배비장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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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채만식
1
裵裨將[배비장]
2
14
 
3
발가벗은 배비장은 혹시 꿈인가 하여 눈을 끔쩍,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가지고 고쳐 살펴보나 역시 동헌이다.
 
4
대청 높이 목사가 앉고, 뒤로 좌우로 삼형수와 기생이 시립하고, 그 아래로 육방관속이며 군로배가 차례로 벌려 섰다. 목사가 웃음 머금고 삼형수, 기생, 육방관속과 군로배가 모두 손으로 입을 막는다.
 
5
그래도 배비장은 미심스러 뒤를 돌아보았다. 과연 자기가 방금 뛰어 나온 그 꿰짝이 뚜껑 열린 채 동헌 연못 가로 놓이고 그 옆으로 방자 차돌이놈에 이삼 군노와 그리고 이방이 서서 있다. 역시 손으로 입을 막고 웃는다.
 
6
배비장은 세번째 정신이 들어 발가벗고서 그 모양으로 하고 섰는 자기를 새 채비로 깨닫고는, 그대로 푹 업드러진다.
 
7
“ 자네가 저것이 무슨 모양인가?”
 
8
목사가 일변 웃으면서, 일변 기생 애랑과 및 이방을 번갈아 보고 약간 기색이 좋지 않으면서 하는 말이었다.
 
9
배비장은 죽은 듯 업드려 감히 대답조차 없다.
 
10
“나리! 옷 입으셔요!”
 
11
바투서 나는 여자의 귀 익은 말소리에 배비장은 겨우 눈을 든다. 간밤의 그 여자였다. 아니, 제주 관기 애랑이었다.
 
12
장난 좋아하는 목사라 배비장이 하도 사람이 파겁을 못하고 용졸히 구는 것을 답답히 생각하고, 관기 애랑은 조용히 불러
 
13
“네 어디, 배비장을 한번 훼절시켜 보겠느냐?”
 
14
하고 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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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랑은 선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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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습니다마는, 방자 차돌이와 이방이 협력을 하도록 분부가 계시면 일이 더욱 순편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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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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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곧 이방과 방자 차돌이놈을 불러 애랑과 협력하도록 일렀다.
 
19
그날 밤 애랑은 방자 차돌이놈에, 이방과 민단의 구누를 짠 후에, 이튿날 즉시 한라산 물놀이를 꾸몄었다. 과연 배비장은 차돌이놈의 꼬임에 빠져 한라산에 올랐다가, 그처럼 애라의 추파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가장 유부녀나 보러 가는 양 개가죽 두루마기를 떨쳐입고, 야밤중에 애랑의 집엘 개구멍으로 기어들어가 서린 정회를 풀기가 무섭게 마침내 피나무 궤짝 신세를 진 터이었다. 소의 본부 노릇은 자초지종 방자 차돌이놈이 했던 것이고……
 
20
그러나 애당초에 구누가 되기는, 그렇게 하여 배비장을 발가벗겨, 궤짝 속에다 우그려 넣어가지고, 그 길로 곧장 동헌으로 들어가 조용히 목사 앞에 바치기로…… 이렇게 구누가 되었었다. 한 것을 이방이 다시 방자 차돌이놈을 추겨가며 자의로 그처럼 중로에서 지지리 고생을 시켰을 뿐만 아니라, 더우기 여러 관속과 기녀들이며 군로배들이 모여선 자리에서 이와 같은 천하 못 당할 망신까지 시킨 것이었다.
 
21
자고로 하양 아전들이란, 소위 서울 양반에게 대하여 악심을 품고 계제만 있으면 심술을 부려 봉변을 주려고 하는 것이 통례였다. 이것은 하향의 아전들이 흔히 오기가 많은 소치도 있지만, 한편으로 서울 양반이라는 종류의 사람들이 하향을 내려가면 온갖 행패가 자심하였고, 그 때문에 그 둘 사이에는 늘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는 것이 또한 통례였다. 이러한 서울 양반과 하향 아전 사이에 얼크러져 내려오는 숙감(宿憾)에 배비장이, 말하자면 애매히 걸려든 터이었었다.
 
22
목사는 이방을 불러세우고, 이는 반드시 네가 나를 빙자하고 장난을 핑계삼아 너의 양화풀이를 한 것이 번연하니, 그런 괘씸할 데가 있더란 말이냐고 꾸짖은 후에, 방자 차돌이놈이랑 곤장 열 대씩을 각각 때렸다. 그러고 나서 배비장을 애랑과 함께 조용히 불러, 술을 권하면서 도시에 내가 사람이 장난을 좋아하는 탓이었은즉, 부디 이 일로 혐의쩍은 생각 두지 말고 애랑 데리고 재미 보아가며 잘 지내라고 간곡히 위로를 하였다.
 
23
또, 밤에는 애랑이 거적을 싸 짊어지고 사처로 배비장을 찾아와서, 뜰아래 업드려, 제발 죽여 주든지 노염을 푸시든지 하시라고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애랑은 저도 진작부터 배비장에게 은근한 뜻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목사의 분부도 있고 하여 그래 더욱 흥이 나서 그 계책을 한버탕 부렸던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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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랑이 제아무리 빌어도 배비장은 일단 마음에 정한 바 있어 귀를 기울이려고도 아니하였다. 비록 목사의 일시 실없은 장난이었다고 하더라도, 또 그 당장 이방과 차돌이놈을 곤장을 때리는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한백년 초학방어를 하고도 남을 그 망신, 그 봉변, 그 무렴이 간대로 푸릴 바 만무한 일이었다. 좀처럼 얼굴을 들고 상하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일시인들 제주땅에 머물러 있는다는 것이 사람의 염치로는 차마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오직 하루바삐 서울로 돌아가는 도리가 가장 옳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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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배비장은 목사 앞에 나아가 절하고 창연히
 
26
“한양으로 돌아가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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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간단한 말로써 하직을 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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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돌아갈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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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미안적고 섭섭하여 묻는 말에 배비장은 고개를 숙인 채
 
30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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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그러면 한 월여만이라도 지체를 하는 게 어떠한가? 따로 내가 생각하는 소간이 있어 그러니……”
 
32
“일각이 천추 같습니다!”
 
33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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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한동안 침음하더니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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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히 그렇다면 무가내하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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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허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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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로 배비장은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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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났다고 하나, 엊그제, 대단전복에 마상에 높이 앉아 목사 도임을 따라오던, 그 좋던 기구는 간 곳 없고, 홋홋한 평복에다 과시 죽장망혜로 심히 초라한 행색이었다.
 
39
의표도 초라하거니와 그 모양을 하고 길에 오른 배비장의 마음은 더욱 비길 데 없이 적막하였다. 이미 한양서 공명을 이루지 못하고 남의 막비 멀리 제주 지경까지 왔거든, 하다못해 어디 조그마한 고을의 현감이라도 한 자리 도득하여 가지고 이 길을 의젓이 갔어야 할 것이어늘, 그는 고사요 세상 그 망신 그 봉변을 하고서 이다지 무류히 돌아가다니,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절로 흘렸다.
 
40
한 오리 지경을 가니, 길 옆에 낡은 정자가 있고 애랑이 조촐한 술상을 차려가지고 거기 나와 기다리고 있다. 나를 그다지 야속히 망신 준 기집이거니 하면 원망스런 생각이 없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변 정은 정이었다. 목숨을 내걸고 한번 보고자 하다가 이런 파탈까지 생긴 그 기집이 아니었드뇨.
 
41
배비장은 섬뻑 반가왔다. 마음이 외로울 때라 한결 그러했다. 저버리지 않고 멀리 이렇게 작별을 나와 준 뜻이 가상하기까지 하였다.
 
42
마주 앉아, 애랑이 권하는 대로 사양치 않고 몇잔 술을 받아 마시었다.
 
43
그러는 동안 취기도 약간 돌았다.
 
44
“천하에 이 몹쓸 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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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배비장은 한마디 노여운 말로써, 속엣말을 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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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두 사람을 곯려낼 법이 있드란 말이냐?”
 
47
“나리?”
 
48
애랑이 목을 가다듬어 이렇게 부른다.
 
49
“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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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안전의 영두 영이시지만, 말씀이지요……”
 
51
“아무리 사또의 영이시기로소니……”
 
52
“글쎄 말씀이오! 사또안전의 영두 영이시지만, 그렇게나 않구서야 저같은 천한 기집이 어느 세월에 점잖으신 나리 귀염을 받아볼 날이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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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이냐?”
 
54
“진정입니다! 당장 손가락을 잘러 붉은 피라두 보여 드리지요. 진정입니다!”
 
55
“허어! 그렇다니 내가 도리어 할 말이 없구나! 나를 무엇이 취할 것이 있는 사람이라고 내게 뜻이 있어 그랬다니, 탓할 생각도 없구나! …… 그러나 애야 애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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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57
“일훌랑은 부디 그런 장난에 참섭을 마라, 한때 장난으로 장부의 신세를 그르쳐 놓았으니, 자아 보려무나! 내가 이 행색을 하고서, 이 땅을 떠나는 거동 네가 보게도 마음이 쾌하냐?”
 
58
“죽어 마땅합니다!”
 
59
“쯧 왕사는 물론이라니, 지금 와서 수원수구가 있겠느냐? 그저 그렇단 말이지!”
 
60
배비장은 그러면서 자리로부터 선뜻 일어선다.
 
61
애랑이 배비장의 도포자락을 부여잡고 놓지 않으면서 애원하듯
 
62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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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잡질랑 마라!”
 
64
“정녕 가시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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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가고 어찌하느냐?”
 
66
“못 가십니다!……”
 
67
애랑은 눈물을 뿌리면서 목이 메어 울음 섞인 음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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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두고는 못가십니다!”
 
69
“허어!”
 
70
“마음을 한번 곤쳐 잡수시고, 이 행보를 파의하시던지……”
 
71
“………”
 
72
“그렇잖으시면 저를 한양으로 데리구 가시던지!”
 
73
“허어, 딱한 말을 다아 듣겠구나!”
 
74
“천하 없어두 그냥은 못 가십니다!”
 
75
“애랑아!”
 
76
“네?”
 
77
“낸들 목석이 아닌 바에 너의 이렇듯 곡진한 정을 차마 떼치고야 싶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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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그렇지만 좁은 소견에도 생각을 해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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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내가 아까 호올로 오면서도, 고옴곰 그런 생각을 했드니라마는……”
 
82
“………”
 
83
“내가 일찌기 한양서 공명을 이루지 못하고, 팔자 기구하여 남의 막비로 이 제주까지 오지를 아니했느냐?”
 
84
“………”
 
85
“왔을 양이면 몇해를 지났다든지 해서 골살이(郡守)라도 한 자리 얻어 해가지고 돌아가는 길이라면, 그야 네가 내게 뜻이 있고 내가 또한 네게 뜻이 있으니, 너 하나 못 데리고 갈 내력이 없겠지!……”
 
86
“………”
 
87
“그렇지만 번연히 네가 보다시피, 망신 끝에 이 행색을 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이어든, 홑몸도 염치가 없을 터인데, 외방 작첩을 해 데리고 가다니, 그 어디 될 말이냐?”
 
88
“그럼, 저는 어떻게 하란 말씀이십니까?”
 
89
“허어!”
 
90
“머물러 기실 수두 없으시다! 데리구 가실 수두 없으시다!…… 그러니 저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네 나리?”
 
91
“허어! 이런 딱한 일이!……”
 
92
정은 노상 없지 아니한데, 기집이 부여잡고 늘어지기는 하고…… 배비장은 차마 못하는 용한 맘씨에, 오직 난감할 뿐이었다.
 
93
“차라리 그러시면 저를 죽여주시구 가세요!”
 
94
“건 무슨 소리를!”
 
95
“아닙니다! 그렇잖구는 못 가십니다! 못 가십니다!”
 
96
“후일 다시 만자자꾸나?”
 
97
“빈 말씀을 하셔두 분수가 있으시지, 제가 이 다음날 한양으루 쫓아 갑니까? 나리께서 다시 제주 지경에 발길을 들여노십니까?”
 
98
“허어!……”
 
99
“페일언허시구 저를 죽여주시구 떠나서요!”
 
100
마악 이럴 때에, 영문의 하인 하나가 풍우같이 말을 달려오더니, 애랑에게 한정의 쪽지를 전한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채찍질하여 조천을 바라고 달려간다.
 
101
사연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애랑은 쪽지를 읽고 나서는 이윽히 생각하다가, 태도가 변하여 슬며시 배비장을 놓아준다.
 
102
못 가느니라면서 울며 부여잡고 매달릴 때는 딱하고 걱정스러 못하겠더니, 막상 가라고 놓아주는 데는 도리어 마음이 섭섭하였다. 그러나 그역 하릴없는 노릇이다. 배비장은 마침내 애랑과 손을 나누고 천천히 조천을 향하여 전진하였다.
 
103
한 십여 리는 갔을까, 등 뒤로부터 어떠한 내행이 팔패 교군을 몰아왔다. 배비장은 애랑이 혹시 자기의 뒤를 따르는가 하여 은근히 반가왔으나, 가마에 발을 깊이 드리운 내행은 배비장은 본체만체 그대로 조천길을 급히 갈 따름이었다.
【원문】배비장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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