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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비장(裵裨將) ◈
◇ 배비장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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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채만식
1
裵裨將[배비장]
2
7
 
 
3
바로 이튿날 문병삼아 새벽같이 문안을 온 방자 차돌이놈을 방으로 불러들여 머리맡에 가까이 앉히고 소회를 말하였다.
 
4
“내가 네게 꼬옥 한가지 청이 있고나?”
 
5
이렇게 허두를 내었다.
 
6
차돌이놈은 굽신하면서
 
7
“청이라니 과만하십니다! 영이 계시면 소인 힘 자라는껏 거행하는게 소인의 도리 아니와요?”
 
8
“오냐, 그 말 고맙다…… 헌데 너두 보다시피 내가 이렇게 벼이 들지 않었느냐?”
 
9
“소인두 허느니 그 말씀이와요! 의원을 데려오게 못하게 막으시구, 증세를 여쭈어 보아두 통히 말씀을 않으시니, 약 한 첩 지어오는 수두 없구, 진정 말씀이지, 소인, 그새 며칠 여간 민망허구 속이 탄 게 아니와요!”
 
10
“그러지 않어두 인제는 약을 좀 써볼까 허구서, 상의가 그 상의인데 말이로구나……”
 
11
“네? 인젠 약을 잡사요? 그럼 지금 가서 의원을 데리구 오깝쇼?”
 
12
그러면서 차돌이놈은 방금 일어설 듯이 엉덩이를 들먹거린다.
 
13
배비장은 황망히 그것을 제지한 후
 
14
“아닐다! 약은 약이라두, 예사 그런 약이 아닐다! 구하기가 끔찍 힘이 드는 약일다!”
 
15
“그럼, 상약(常藥)이와요?”
 
16
“상약? 그렇지, 상약은 상약이지!”
 
17
“대체 무언뎁쇼?”
 
18
“구하기 힘이 드는 약인데……”
 
19
“설마 삼신산 불로초나, 서해 용왕(西海龍王)이 자시려든 토끼간은 아닐테굽쇼?”
 
20
“힘은 들어두, 네가 서둘면 혹 구할 수가 없지두 않으리라마는……”
 
21
“그러시다면야 소인이 힘 아냐 더한 개 들기로서니, 그 약을 아니 구해다 드릴 이치가 있사와요?”
 
22
“응, 고맙구나…… 고마운데……”
 
23
“약명이 대체 무언갑쇼?”
 
24
“다른 게 아니라……”
 
25
“네에……”
 
26
“사람이 하나 꼬옥……”
 
27
“네? 사람입쇼.”
 
28
“오냐!”
 
29
“아니 설마 사람을 …… 설마……”
 
30
“………”
 
31
“저 대국(支那)서는 상감님이 백인(白人)을 더러 삶어 자신다구……”
 
32
“네라끼놈!”
 
33
“헤헤!”
 
34
“차돌아?”
 
35
“네!”
 
36
“요전에 한라산으로 너하구 같이 놀러 가지 않었드냐?”
 
37
“흐흐흐흐!……”
 
38
차돌이놈은 이렇게 한바탕 너털웃음을 치고 나더니, 지성으로
 
39
“나리?”
 
40
하고 부른다.
 
41
배비장은 무색하여 얼굴만 붉히고 멀뚱히 앉아 있다.
 
42
“이, 차돌이놈이 열두살버틈 빙자 구실로 이십이 되 놈이올습니다! 진작버틈 나리 그 눈치 몰라뵈웠겠사와요?”
 
43
“………”
 
44
“바루 그 이튿날 소인은 그 눈치 벌써 알아챘습죠!”
 
45
“………”
 
46
“소인 뵙게도 하두 딱허구 해설랑, 참 뒤루 수탐을 두루 해봤습죠?”
 
47
“수탐을?…… 그래서?”
 
48
“단념하시니만 못하십니다!”
 
49
“무어?”
 
50
“그 여인으루 말씀하면 근지야 벼랑 보잘것없는 건달의 아낙이라두, 행실 점잖구 절개 굳기루 이름난 여인일뿐더러 말씀이와요!”
 
51
“그래두 이애야! 그날 한라산서 내게 보내든 추파는……”
 
52
“괜헌 말씀이십니다!…… 또 설혹 그 여인이 나리께 무슨 뜻이 있달 값이라두 글쎄 남의 집 규중 여인을 어떡허잔 말씀이십니까?”
 
53
“그렇거들랑 다른 건 다아 그만두구, 편지 한 장만 네 손으루 전해 주려무나?”
 
54
“하늘이 두쪽에 나두, 소인 그 심부름은 해드릴 수 없읍니다!”
 
55
“편지 한 장 잔하기가 그다지두 힘이 들구 어려운 일이란 말이냐?”
 
56
“나리?”
 
57
“그래서?”
 
58
“그 여인네 남정이 누군 줄이나 아십니까?”
 
59
“내가 알 탁이 있느냐?”
 
60
“워너이, 아신다먄 그런 생심(生心)을 하섰을 이치가 없으시죠!”
 
61
“답답하구나! 누군지 이야기나 시언시언히 좀 해보려무나?”
 
62
“여러 목숨 초상납죠!”
 
63
“?……”
 
64
“그 사람이 성질루 말씀하면 제주 일관서는 제일 사납습죠! 제주 일판은 고사허구, 죄선 팔도 다아 다녀야 그런 사난 사람 없읍죠!”
 
65
“………”
 
66
“미련하기는 곰 이상입구요!”
 
67
“………”
 
68
“그런데다, 기운은 항우요, 우악하기는 장비구요……”
 
69
“………”
 
70
“술 잘 먹구, 주정 잘 허구…… 쌈 잘 허구, 사람 잘 치구……”
 
71
“………”
 
72
“새암이, 새끼 데린 암펌 같어서, 손톱만치라두 제게 해로면 백주에 칼 빼기를……”
 
73
“오냐, 오냐, 그만해두 알았다!……”
 
74
듣다 못해 배비장이 차돌이놈의 수다를 가로막으면서
 
75
“알았으니, 염려 말구서 편지나 전해다구?”
 
76
“글쎄 들키기가 십상이구, 들키는 날이면 첫째 그당장에서 나리가 목숨이 성치 못하실 터……”
 
77
“이애야, 차돌아?”
 
78
“네?”
 
79
“내가 그 여인을 못보아 이렇게 병이 들지 않었느냐?”
 
80
“………”
 
81
“너 보매두 이대루 가다가는 며칠 못가 내가 죽을 줄은 너두 알겠구나?”
 
82
“상사병이 달리는 약이 없기야 협죠마는.”
 
83
“그러니 말이로구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일 바이면 한번 서둘러 보고나 죽어야, 그래두 더얼 원통할 게 아니겠느냐?”
 
84
“허어! 그두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마는 또 그렇지 못할 일이 있으니 어떡헙니까?”
 
85
“무엇이 또 그렇지 못한 일이 있드란 말이냐?”
 
86
“아녈말루 나리께서야 이왕 돌아가시세 되신 목숨이니, 목숨 내거시구 한바탕 들이대 보신다구…… 소인이야 무슨 죕니까?”
 
87
“네가? 어째?”
 
88
“아니, 그 사람이 제 기집 보려구 허는 배아무으런 하나만 쫓어내구서, 중간 심부림 해준 소인은 이뿌다구, 등 어루만져 줄 줄 아십니까? 첫칼이 나리 목에 떨어지면 둘째칼은 영락없이 소인 목으루 내릴 테니 소인이야 진정 억울한 죽엄 아니와요?”
 
89
“허! 그두 참, 그렇기는 하구나!”
 
90
배비장은 마디지게 한숨을 내쉬고 말이 없다. 자기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왕 죽는 사람이니 상과니 없다지만, 애매한 차돌이까지 죽어달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관가에 맨 방자요, 천한 목숨이기로소니……
 
91
“나리?”
 
92
“………”
 
93
“얼마 되지야 아니했습죠만, 그동안 소인이 나리께 진 은애를 생각하거나 또 아랫놈의 도리로 하거나, 응당 나리 영을 거행해 드려야 마땅하기는 마땅한 노릇이와요!…… 허지만……”
 
94
“………”
 
95
“소인이 세 살에 애비를 여이고, 늙은 에미 손에 길려났사와요!”
 
96
“………”
 
97
“설리 자랐습죠!…… 그러다 열두 살에, 그제는 에미두 환갑이 넘구해서, 소인이 벌어다 봉양을 해야 할 사정인데 무슨 도리가 있어얍죠? 헐수 없이 방자 구실을 들어갔습죠!……”
 
98
“………”
 
99
“아시다시피 방자 구실이라야 다달이 관가해서 돈 두 냥밖에 더 타와요? 그걸루다 모자 목구멍에 풀칠을 하기가 바뻐, 이십이 되두록 명색이 성취두 못했습죠!”
 
100
“………”
 
101
“그러니 시방이래두 소인 하나 없구 보면 늙구 의지없는 에미를 누가 벌어다 멕이며……”
 
102
“차돌아?”
 
103
“네?”
 
104
“다만 그 사정이라면, 별 도리가 없지두 않구나!……”
 
105
그러면서 배비장은 궤 문을 덜커덕 열더니 은(銀) 백 냥을 척 내놓는다.
 
106
“이게 비록 약소하다마는 우선 받어두어라! 아녈말루 네게 불행한 일이 있드랬두 이걸 가졌으면 네 모(母) 하나 일평생 의식 걱정은 아마 없을 테니…”
 
107
“나리! 이건 너무 참 과분하십니다!”
 
108
“만약 일이 여의하게 성사해서 내가 살아나는 날이면 상급으루다 얼마간 또 생각하마.”
 
109
“네에! 그야 뭐, 종차 보아서 처분대루 하실 일이시구……”
 
110
차돌이놈은 입이 귀밑까지 째져 가지고 거드럭거리면서, 돈을 우선 제 집으로 져날랐다.
 
111
그러는 사이에 배비장은 필연을 갖추어놓고 그 여인에게 부칠 간찰을 초하였다.
【원문】배비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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