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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마(艶魔) ◈
◇ 9. 우롱(愚弄) ◇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이전 9권 다음
1934.5.16~11
채만식
1
艶 魔[염마]
2
9. 愚弄[우롱]
 
 
3
1
 
 
4
아들이 그와 같이 묻는 것을 보고 허준은 낭패하여 그저 모르는 사람이라고 얼버무려 넘겼다.
 
5
그러나 허철이가 보기에도 결코 모르는 사람인 것 같지는 아니하고, 알되 과거에 어떠한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인 듯하였다.
 
6
허철은 긴 이야기를 마치고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아니하여 담배를 연해 뻑뻑 빤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영호더러 묻는다.
 
7
"그러니…… 그러니 말일세…… 대관절 그게 모다 어떻게 된 수수꺼 끼며 나는 또 어떤 입장을 취하면 좋겠나?"
 
8
"그거야."
 
9
하고 영호가 대답하였다.
 
10
"그거야 자네가 자량해 할 일이지. 가령 자네 어르신네께 말씀해서 저편의 요구대로 십만 원을 떼어주든지, 그렇잖으면 그저 구경만 하고 있든지…… 그러나 저편에 대해서 지금 돈을 준다는 것은 큰 동력을 제공 하는 셈이니까 나로 보아서는 반댈세 …… "
 
11
"그러나 주지 않고 버티다가 무슨 봉변이나 하게 되면?"
 
12
"아직 자네 어르신네께서 저편을 다독거리고 있는 판이니까 불칙한 일이 갑 재기 생기지는 않겠지 …… 그러는 동안에 내가 뒤로 나서서 사건을 해결 지어 바리면 일은 무사할 게 아닌가?"
 
13
"해결?…… 무사히 해결지을 도리가 있다?"
 
14
허철은 눈을 반짝거리며 반겨 묻는다.
 
15
"있지 …… 내가 지금 손대고 있는 그 사건의 부산물(副産物)로 자네 댁 사건은 볼 수가 있으니까 ── 원줄기만 해결하면 그 나머지 것은 자연히 해결 되겠지 …… 그러나 멫 가지 약속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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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야 얼마든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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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손톱만한 일이나 말을 절대로 비밀 지키고, 내가 이 사건에 손대었다는 것을 아무한테도 말을 내지 말 것…… "
 
18
"그거야 자네가 말 아니해도 내가 자진해서 비밀을 지킬 것이니까 …… 그러고?"
 
19
"그러고 …… 될 수 있으면 집에 들어 있어 드나드는 수상한 사람을 감시 하는 한편 무슨 새 사실이 생기면 일초도 유여 말고 곧 내게로 달려올것."
 
20
"그것 역시 어렵잖지."
 
21
약속을 단단히 하고 나서 허철은 우선 한짐을 벗은 듯이 푸 하고 한숨을 내어 쉰다.
 
22
그는 그리하여 올 때보다는 조금 명랑한 기분으로 영호를 작별하고 돌아간다.
 
23
그날 저녁 석간은 여전히 번화했다.
 
24
별로 새 사실은 없으나 피해자의 신원이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즉 그가 제 일 여관의 숙박부에 기록한 것은 모두 거짓말이고 실상은 강화에 살던 이재석이가 피해자요, 양장한 여자는 그의 딸 이학희라는 것, 또 젊은 사나이는 옛날 그의 집에 있던 김대성이라는 사람인 듯하다는 것.
 
25
그리고 이재석이는 지금부터 십오 년 전에 우연히 고향인 강화를 떠나 외국으로 돌아다니다가 일 년 전에 장성한 외딸 그 학희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얼마 묵지 아니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는 것 …… 들이 강화경찰서의 조사라고 해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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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경성역에서 발견된 트렁크 속의 두 토막 시체는 아직도 신원이 판명 되지 아니하였으나 해부한 결과 살해가 아니라 자연사(自然死)로 추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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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에게는 경찰에서 이미 피해자의 신원이 판명되었으니 그의 우연히 외국으로 표랑한 원인이며, 또 당시의 가족관계에 대하여 착안을 하는지 아니하는지가 흥미의 중심이다.
 
28
그러나 수사 관계로 발표를 시키지 아니하는지 신문에는 그에 관하여 한 줄도 쓰지 아니하였다.
 
29
사실 경찰의 손이 그 방면으로 뻗치어간다면 악당의 일파는 활동을 잠시중 지하든지, 또는 멀리 해외로 달아나든지 할 터이니, 그렇다면 그것은 영호에게 여간한 타격이 아니다.
 
30
그러한 일이 있기 전에 어서 바삐 활동을 해야 할 것인데, 그러나 무슨 줄거리가 있어야 말이지!
 
31
영호는 신문을 보고 나서 막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 주먹코’에게서 급한 소리로 전화가 왔다.
 
32
"저 부루도꿉니다. 저 저 종로 ××상회로 빠 빨리 오십시요."
 
33
영호는 더 묻지 아니하고 뛰어나가 자동차를 종로로 몰아세웠다.
 
 
34
2
 
 
35
영호가 자동차를 내던지고 내려서자 ××상회의 서관(西館)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먹코가 벌씸벌씸 웃으면서 나선다.
 
36
"어데 있나?"
 
37
영호는 이렇게 물을밖에 ……
 
38
"저편 동관(東館) 삼층에서 사기그릇을 흥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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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지? 양장했지?"
 
40
"아니요. 조선쪽을 짓고 조선옷을 입었어요.…… 기생같이 차렸든 걸요 "
 
41
"어데서 만났나?"
 
42
"여기서 만났어요 …… 오늘 왼종일 이 근처로 빙빙 도는데 조곰 전에 저기 있는 저 자동차가 오더니 그 속에서 나왔어요."
 
43
영호가 보니 길 옆에 자동차 한 채가 놓여 있다.
 
44
"자동차 번호는?"
 
45
"경제(京第) ×××호."
 
46
"내리면서 운전수더러 무슨 말을 했지?"
 
47
"네, 아마 기다리라고 그랬나봐요."
 
48
"자네는 저편 동관으로 가서 승강기 옆에 서서 승강기와 층계를 감시 하게…… 그러나 자조 바깥도 내어다보아야해."
 
49
"네."
 
50
말로 이르고 영호는 서관으로 들어섰다.
 
51
휙 둘러보았으나 눈에 띄지 아니하므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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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없다. 동관으로 건너가는 구름다리에 서서 저편을 살펴본 뒤에 다시 서관으로 돌아서 삼층으로 올라갔다.
 
53
역시 한번 둘러본 뒤에 동관으로 건너갔다.
 
54
그러나 사기를 파는 곳에는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 보이지 아니한다.
 
55
영호는 한번 둘러본 뒤에 다시 사층으로 올라가 좌우의 식당을 둘러보았으나 또한 보이지는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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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초조하여 승강기로 아래층까지 내려왔다.
 
57
주먹코가 멍하니 승강기 속을 굽어다보고 있다.
 
58
"아니 내려왔나?"
 
59
하고 영호는 밖을 내다보니 방금까지 있던 그 자동차가 없어지고 말았다.
 
60
영호는 거리로 뛰어나서 보았다. 그러나 자동차의 간 종적은 찾을 길이 없다.
 
61
대관절 어느 겨를에 어디로 나와가지고 자동차를 타고 가버렸을까?
 
62
도무지 눈에 띄지 아니하고 나갈 기회는 없을 터인데 …… 그러면 자동차는 기다리다 못하여 저대로 가버리고 그 인물은 아직 이 안에 있나?
 
63
영호는 주먹코와 손을 나누어 다시 한번 샅샅이 샅샅이 뒤지어 보았다.
 
64
그러나 드디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65
할 수 없이 거리로 나왔다.
 
66
"내릴 때 차삯을 주는 것 같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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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가 물어보았다. 주먹코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68
"아니요."
 
69
영호는 우두커니 서서 궁리를 하다가 주먹코를 데리고 또 한번 동관 삼 층으로 올라갔다.
 
70
"여기 있는 사기그릇을 어느 놈을 만지든가?"
 
71
영호는 귓속말로 가만히 물어보았다.
 
72
그 인물을 찾아내는 것도 찾아내는 것이려니와 확실히 그 당자인 여부도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73
"여기 이놈을 여러 번 만졌어요."
 
74
주먹코는 여러 개 채곡채곡 쌓아놓은 양접시의 맨 밑에 치를 가리킨다.
 
75
"장갑을 끼고 만지더냐?"
 
76
"아니요 …… 미끄러질까 봐서 그러는지 일부러 장갑을 벗고는 만져 보든데요."
 
77
일은 묘하게 잘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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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두말 아니하고 그 양접시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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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이 종이에 싸주겠다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고는 조심하여 손에 들고 나섰다.
 
80
좌우간 그림자는 놓쳤으나 그가 그인지 확실히 알아가지고 그 다음에 자동차 번호는 알아두었으니까 그것을 단서잡아 그의 간 곳을 찾아보리라고 주먹코를 태워가지고 집으로 올라갔다.
 
81
영호는 사가지고 온 양접시를 가지고 실험실로 들어갔다.
 
82
그가 타고 간 자동차 번호까지 알았으니 인제는 그 당자이기만 하면 갈데없이 붙잡았느니라고 은근히 기뻐하며 지문을 검출해 보았다.
 
 
83
3
 
 
84
지문은 점원의 것이 듯한 것, 또 딴 사람의 것, 영호의 것이 모두 있기는하나 그중에서 서광옥이 ── 라느니보다 ×별장 지하실의 촛도막에서 검 출한 지문과 꼭같은 지문이 선연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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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편 엄지손가락의 지문이 안으로 있고 역시 바른편 무명지의 지문은 밖으로 있고, 그리고 하나뿐 아니라 여러 개가 모두 선명히 나타난다.
 
86
촛도막의 것과 몇번 대조해 보아도 한 금도 틀리지 아니한다.
 
87
영호는 날뛰듯이 좋아하였다.
 
88
이제는 제아무리 무어라도 독 안에 든 쥐다.
 
89
그렇게 좋아하다가 영호는 갑자기 입맛을 다시며 응접실로 나와 주먹 코를 불러 올렸다.
 
90
"자네가 뒤를 밟으니까 연신 돌아보든가?"
 
91
"네 …… 처음에 아래칭 칭칭대에서 홱 돌아보고 또 이칭 칭대에서 또 한번 돌아보더니 그때는 해쪽 웃겠지요."
 
92
주먹코는 코를 벌름하고 한번 웃는다.
 
93
"그래서?…… 아마 자네한테 반했든 게지."
 
94
영호는 그 인물이 왜 웃었는지 그 속을 알기는 하나 주먹코를 놀리느라고 한마디 한 것이다.
 
95
"참 이쁘기는 이쁩디다."
 
96
"잘 되었군 …… 그 여자는 자네한테 반하고 자네는 그 여자한테 반하고…… 가만있게. 인제 중매 서주면서 …… 헌데 대관절 그 뒤에는 어쨌어?"
 
97
"아무렇지도 아니했어요. 옆으로 슬슬 대서야 본체도 아니하든데요."
 
98
"본체만체해서 섭섭했겠네만. 한 대 뽄 좋게 먹었는데."
 
99
그 여자는 주먹코가 미행하는 줄을 알았다.
 
100
그러나 그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자기 볼일을 다 보았다.
 
101
그러자 미행꾼이 없어진 것을 보고 이건 아래층에서 승강기와 층층대를 지키지 않으면 문 밖에서 기다리나보다고 생각하였다.
 
102
그래서 그는 승강기도 층계도 다 버리고 상점에서 그 뒤의 사무실로 난 구름다리를 건너 뒤꼍에 가서 아래로 내려왔다.
 
103
그리하여 살그머니 앞으로 빠져서는 주먹코가 승강기와 층계를 주목 하고있는 틈에 자동차를 몰고 달아난 것이다.
 
104
영호는 이렇게 추측하매 미상불 여자라도 결코 홀가분한 상대자가 아님을 절절 히 느끼었다.
 
105
그러나 아직도 강점(强點)은 이편에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어디서 타고 왔으며 어디서 내렸는지 그것을 이편은 조사해낼 수가 있으니까. ── 영호는 경성자동차부에 전화를 걸어 주인을 불러가지고 제×××호차가 어디 것인지 물어보았다.
 
106
지금은 모르나 곧 알 수 있으니 전화로 기별하겠다는 것이 저편의 대답이다.
 
107
영호는 전화를 끊고 기다렸다.
 
108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민첩한 여자다.
 
109
더구나 요즈음 경찰에서 양장한 젊은 여자를 찾는 터이니까 비록 자기가 학 희는 아니라도 혹 주목을 받을까 봐 조선쪽에 조선옷을 입고 나온 것을 보더라도. ── 이렇게 주의가 주도한 여자인지라 ××상회에서도 미행이 붙은 줄을 아는지라 혹시 자동차를 중간에서 내버렸을지도 모른다.
 
110
그러나 그 차를 타고 왔다가 역시 그 차를 타고 갔으니까 운전수를 꾀면 가령 커미션을 먹였다 하더라도 타고 온 곳은 알아낼 수가 있겠지.
 
111
이렇게 생각하고 영호는 아직도 낙관을 하였다.
 
112
삼십 분쯤 해서 경성자동차부의 주인이 전화를 걸었다. 제 ××× 호 차는 ×× 자동차 부의 소유라고. ── 영호는 즉시 ××자동차부로 전화를 걸고 제×××호차와 그 차를 운전 해가지고 나간 운전수가 돌아왔는가 물어보았다.
 
113
저편에서는 그가 방금 돌아왔다가 또 나갔다고 대답한다.
 
114
그러면 특별 요금이라도 낼 터이니 그 차 운전수가 돌아오거든 계동 이러 저러한 곳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115
그래놓고 초조히 기다리는데 다시 삼십 분쯤 하여 경적 소리가 나고 기다리던 운전수가 드디어 찾아왔다.
 
116
"당신이 약 한 시간 반 전에 어느 젊은 여인을 태워가지고 ××상회에 갔다가 다시 태워가지고 갔읍니까?"
 
117
영호는 운전수를 은근히 응접실에 안내해 앉히고 여송연을 권하면서 물었다.
 
 
118
4
 
 
119
운전수는 현관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분에 넘치는 공순한 대접에 이게 웬일이냐?는 듯싶어 어리뚱하였다. 그러다 필경 영호의 묻는 말에
 
120
"네네. 그러면 이것을 …… "
 
121
하고 포켓 속에서 편지 한 장을 탁자 위에 내어놓는다.
 
122
편지? 영호는 속으로 외치며 그것을 집어드는데 운전수는 말을 더 계속 한다.
 
123
"차에서 내리시면서 혹시 누가 ××상회에 태우고 갔던 그 젊은 여자 를어 데서 태웠으며 어데서 내렸느냐고 묻거든 이걸 드리라고 편지를 주 시드군요 …… 그리고 무슨 말씀을 묻거든 다 바른 대로 대 드리라고요 …… "
 
124
영호는 편지를 뜯으려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125
"바른 대로 대주라고? …… 대관절 어데서 맨처음에 태우고 어데서 맨 나중 내렸소?"
 
126
"경성역에 손님 모시고 나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모시고 왔어요. 그래 ×× 상회까지 갔는데 잠깐 기다리라고 그리시길래 생김새가 점잖고 그래서 삯도 받잖고 기다렸지요. 그랬더니 한 삼십 분 뒤에 도로 나와서 진고개로 갔지요. 진고개 어귀에서 차를 멈추고는 바로 그 앞에 있는 상점으로 들어가서 봉투하고 종이하고 연필하고 사가지고 나와서 거리에 선 채 그 편지를 써주시드군요."
 
127
"그리고는?"
 
128
"그리고는 그 말을 부탁하면서 차삯을 주시고는 진고개로 들어가셨어요."
 
129
운전수는 아무 거리낌없이 술술 대답을 한다. 영호는 편지를 뜯었다. 봉투는 흰 양봉툰데 겉에는 '백선생님’이라고 또렷이 씌어 있다. 속에서는 보통 상점에서 파는 사백자 원고지에 연필로 휘날려 쓴 편지가 나왔다.
 
130
"백선생님! 수고 많이 하십니다. 그러고 호위병(護衛兵)을 그렇게 보내주시고 그래도 미흡해서 손수 ××상회까지 와주셨으니 글쎄 그런 고마울 데가 어데 있읍니까! 호호…… "
 
131
여기까지 읽어온 영호의 얼굴은 상기가 되기 시작한다. 그는 꾹 참고 다음을 읽었다.
 
132
"그렇지만 내가 무어라고 그렇게 황공한 대접만 받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살그머니 뒤채 사무실로 빠져서 자동차를 타고 왔지요. 호의를 그렇게 물리쳐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네?…… 그러고 참 내가 참고 거리를 드리느라고 양접시에다 지문을 남겨놓았는데 갖다 검출해 보셨지요? 일부러 장갑을 벗고 여러 개를 찍어 두었답니다. 아마 그 바보 같은 선생님의 부하가 그 양접시를 충실하게 가리켜 드렸을걸요?"
 
133
영호는 이 계획적 우롱에 분이 복받쳐 편지를 들고 읽는 손이 와들와들 떨리었다. 그는 편지를 박박 뜯어버리고 싶었으나 그 다음을 다시 읽었다.
 
134
"어때요? 저기 ×별장 지하실에서 얻은 촛도막의 지문과 꼭 같지요?
 
135
나는 ×별장을 떠난 뒤에 그래도 미심해서 한번 둘러보았더니, 과연 선생님이 그날 밤에 촛도막을 가져가셨드군요. 수하놈들을 그렇게 동촉 했건만 글쎄 촛도막을 남겨놓았었답니다그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한 장난 거리의 재료가 되었으니 되려 기쁩니다.
 
136
그리고 참, 저 유대설이의 짐 속에서 무엇 발견하신 것이 있거든 잘 좀 보관 했다 주십시요. ── 없으면 할 수 없고 ── 그러면 아 안녕히 계십시요. 날새 한번 만나뵙지요. 그리고 한가지 부탁은 젊은 혈기에 너무 불장난에 골몰하지 마십시요. 잘못하다가 손을 데우면 가엾어 어떻게 합니까!
 
137
그러고 참! 정말 잊어버렸네. 그 계집애요. 그애는 내가 잘 데리고 있으니 염려 마십시요. 그애가 내 움딸이요, 또 우리 백선생님의 애인인데 소홀히 할 리가 있읍니까! …… 자 그러면 안녕히 …… 옥."
 
138
영호는 '응!’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의자에 펄씬 주저앉았다. 그는 머리를 우디고 한동안이나 있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무료히 앉아 있는 운전수를 바라보았다.
 
139
"여보! 속이지 말고 바른 대로 말해요. 바른 대로만 대어주면 내 전 재산이라도 다 내어주리다 …… 어데서 태워가지고 ××상회로 갔었소? …… 정말 바른 대로 대면 십만 원 줄 테야 십만 원…… "
 
 
140
5
 
 
141
자동차 운전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치어다보기만 한다.
 
142
그는 이 젊은이 ── 영호가 그 여자 손님과는 애정 관계가 있어가지고 그의 행방을 이와같이 기쓰고 찾으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143
그러나 그는 사실 알지 못한다. 알기만 알아서 알으켜만 준다면 십만원이니 전재산이니 하는 소리는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용돈냥이나 톡톡이 얻어 쓸 수가 있을 텐데 …… 생각하니 되레 안타까왔다.
 
144
"응 바로 대주어요. 정거장 말고 어데서 태워가지고 왔소?"
 
145
영호는 재촉하듯이 묻는다.
 
146
"속이잖습니다 …… 이렇게 물으시는데 알면 왜 대드리잖겠읍니까? ……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었드면 진고개에서 그 뒤나 좀 밟어두었을걸 그랬지요."
 
147
영호는 끄윽 운전수를 바라보고 있다가 침실로 뛰어들어가 손금고 속에서 돈을 있는 대로 털어내었다.
 
148
은행에 예금을 해놓고 쓰는 터이나 요즘은 그야말로 비상시라 좀 찾아다 둔 것이 있어 한 오륙백 원은 된다.
 
149
그는 그 돈뭉치를 운전수 앞에다 내놓았다. 만일 운전수가 서광옥이의 행방이며 나온 집을 알고도 아니 대어준다면 그것은 저편에서 돈을 먹었거나 그 의 부탁이기 쉬우니 그렇다면 돈으로써 우선 매수하자는 것이다.
 
150
그러나 운전수는 입맛이 당기는 듯이 돈을 치어다볼 뿐 그 이상 더는 대어주지를 못하였다.
 
151
영호는 할 수 없이 운전수를 돌려보내 놓고는 혼자 민민하였다.
 
152
결코 용이치 아니한 적수다.
 
153
이편은 한사코 활약을 하는데 저편은 유유하게 상대자를 우롱할 여유까지가 지고 있다.
 
154
사리가 치밀하고 활동이 기민하고 한 품이 이편에서 앞으로 조금만 방심을 하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155
조그마한 계집이! 담대하게 그리고 오만하게!
 
156
영호는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신음소리가 저절로 흘러져 나왔다.
 
157
마침 허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속이 울적하여 술을 한잔 먹으러 왔으니 ×× 동에 있는 뻐커스라는 빠로 와달라는 것이다.
 
158
영호는 술을 먹고 유흥을 하고 하는 방면에 결코 문외한이 아니다. 정다운 친구를 만나 주석이 어울리면 잘 마시고 잘 놀고 하는 축이다.
 
159
그러나 그는 일부러 그런 방면에 탐닉하지는 아니하였다.
 
160
될 수 있으면 웬만한 기회는 피하였던 것이다.
 
161
그러나 오늘 밤 허철의 청에는 두말 아니하고 응락하였다.
 
162
서광옥이에게 한바탕 우롱을 당하고는 속이 울분하기도 하고 한 판이니 허 철을 만나 혹 무슨 이야기라도 있으면 들을 겸 집을 나서 뻐커스로 갔다.
 
163
허철은 빠 뻐커스의 바닥손님이다.
 
164
그는 친구를 만나든지 술을 한잔 마시려든지 차 한잔을 마시려든지 대개는 이 뻐커스로 온다. 그런데 최근 이 주일 동안에는 더 빈번히 ── 아니 거의 매일 뻐커스를 오게 되었다.
 
165
그것은 새로 데려온 마담 하나가 그의 눈에 든 때문이다. 조선의 빠 ──라는 것이 정말 빠 ── 인지 티룸인지 카페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 곳에 와서 있는 마담이라는 것도 마담인지 웨이트레스인지 분간이 서지아니한다. 다른 데보다 이 뻐커스는 그러한 기분이 한창 농후하다.
 
166
향초라는 게 그 새로 왔다는 마담의 이름인데 데려오던 처음 며칠 동안은 관청에 잡아다 놓은 촌닭처럼 어리둥절하고 몹시 수줍어하였다.
 
167
그러던 것이 한 일 주일 지나서는 카페에서 수완이 능숙한 웨이트레스 이상으로 서비스를 잘했다.
 
168
그러한 중에도 허철에게는 더욱 유난히 은근하게 굴었다.
 
169
허철이가 와서 앉았는 동안이면 카페에서 당번 맡은 웨이트레스 이상으로 그 옆에 달라붙어 앉아가지고는 언제 그렇게 숙친해졌으며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그저 소곤소곤 이야기도 하고 웃고 하는 것이다.
 
170
다른 손님이 아무리 무어라고 해야 들은 체도 아니하고 저 할 일을 하다가 허 철이 돌아가면 그때는 다른 손님에게 가서 어리광을 부리고 노염을 풀고하는 것이다.
 
171
허철은 굳이 패시브로 나온 것은 아니나 저편이 그렇게 곰살궂게 구니 차차 마음이 끌리다가 필경은 일 주일이 못하여서 찰떡 같은 사이가 되었다.
【원문】9. 우롱(愚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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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기본
  # 염마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4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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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이전 9권 다음 한글 
◈ 염마(艶魔)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8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