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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마(艶魔) ◈
◇ 8. 새로운 사건 ◇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이전 8권 다음
1934.5.16~11
채만식
1
艶 魔[염마]
2
8. 새로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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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
신문기자는 경성역에서 트렁크 속에 넣은 시체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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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역의 일이등 대합실에는 언제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대형(大型)의 트렁크 두 개가 놓여 있었다.
 
6
그런데 그 트렁크로부터 이상한 물이 흘러내리고 약간의 불쾌한 냄새까지 났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발견한 것이 어제 오후 네시. ── 그리하여 어제 오후 일곱시가 되어서는 경성역에서 그 트렁크를 ×× 경찰서로 보내었고 동서에서는 그것을 열어본 결과 한 개에서는 동체로부터 위 편의 시체가 나오고 다른 한 개에서는 동체 아래편의 것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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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이상 된 남자를 두 토막에 잘라 나누어 넣은 것이 분명하고 얼굴은 초산을 끼얹어 물크러져서 알아볼 수가 없이 되었다.
 
8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바른편 엄지손가락 한 개가 최근에 잘라낸 자국이 남아 있어 즉시 ××경찰서에 보관한 문제의 손가락을 가져다가 대조해본 결과 그것이 이 시체에서 잘라낸 것으로 감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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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확실한 것은 해부를 해본 결과가 아니면 확정하기 어려우나 그 손가락은 피해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 자른 것이요, 죽은 원인은 살해가 아니라 자연사(自然死)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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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시체를 담은 트렁크는 중국 등지에서라야 구할 수 있는 것이요, 트렁크에 붙어 있는 호텔 라벨은 고의로 전부 뜯어버린 자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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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기사를 다 읽고 혼자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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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 피해자 즉 이상한 손님인 유대설이에게서 학희네와 한 자리로 빼앗을 물건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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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학희네가 포로로 잡아놓은 것을 약탈하여 간 것인데 빼앗을 것을 빼앗았는지 못 빼앗았는지 그것은 모르겠으나 너무 쇠약하여 죽어 버리니까 그와 같이 트렁크 속에 넣어 경성역에다 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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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저희들의 신출귀몰한 활동만 믿고 담대한 짓을 저질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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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경찰의 신경만 더욱 혼란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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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아침 소쇄를 마치고 조반을 먹은 뒤에 실험실로 들어가 서광 옥이의 사진을 석 장 가량 복제(複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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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복제한 사진을 가지고 사진 뒤에는 원 나이와 또 보이는 나이며 특징 같은 것을 대강 더 적었다. 그는 집 주위며 형사의 '미하리’가 없음을 다진 뒤에 복제한 사진을 가지고 주먹코를 찾아가 그들 세 사람에게 돈 십 원씩과 한가지로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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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양장을 하고 다니니까 그것을 참작해서 어디서든지 발견하 거든 곧 뒤를 따라가 집만 알아두고, 그러나 특별히 긴한 일이 없는 외에는 계동으로 자주 찾아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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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그들과 갈리어 경성자동차부로 와서 지금 자기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를 오복이가 완쾌하여 새차를 사기까지 세를 내기로 하고 아주 빌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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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가 대학병원으로 차를 몰고 갔을 때에 오복이는 새벽부터 퇴원할 준비를 하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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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붕대를 동이고 타박상이 아직 아물지 아니한 바른편 다리를 절름거리며 오복이는 그래도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기쁨에 연해 벙실벙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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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속에서 비로소 두 사람은 그새의 경과를 서로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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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이는 이를 갈았다. 놈들을 붙잡으면 대갈통을 부서버린다고.
 
24
그 꼴이 어쩌면 김서방과 비슷하여 영호는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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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집을 나갈 때에는 보이지 아니하였는데 돌아오면서 보니까 저편 골목에 양복장이가 어름어름하고 섰는 것이 미하리씨(氏)인 것이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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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속으로 찝찝하게 생각하면서 못본 체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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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식모와 오복이에게 몇가지 부탁을 하고 실험실로 들어가 어젯밤 노인의 옷고름에 찍힌 지문을 떠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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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침실문을 안으로 닫아걸고 비로소 밀린 일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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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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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침실 도어에 안으로 쇠를 잠근 뒤에 동편 벽을 가리어 선 책장, 그 책장 모서리에 숨겨져 있는 초인종 단추 같은 것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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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무거워 보이는 책장이(무거워는 보이지만 속은 텅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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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가 열리듯이 슬그머니 벽으로부터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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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물러난 자리에는 바닥에 널따란 판자가 깔리고 그 판자의 저편을 누르니까 이편 끝이 발딱 일어서 사람이 삼사인은 한번에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입을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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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가 그 구멍으로 들어가자 다시 판자가 덮이며 이미 책장이 슬그미 움직여 전대로 놓인다. 침실은 전과 같이 감쪽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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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가 들어간 구멍은 지하실로 내려가는 경사 급한 층계다. 속은 캄캄 어두우나 영호는 더듬지 아니하고 층계를 내려갔다. 다 내려가서 층계는 한번 접 질리었다. 지금까지 내려온 이 건물의 아래층이요 이제부터가 지하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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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계가 다한 곳에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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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을 열고 나서면서 벽에 붙은 단추를 누르니 천장의 전등이 희미하게 켜진다. 넓이가 한칸 가량 되는 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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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는 바른편으로 뻗치었고 왼편에는 부엌에서 들어오는 층계의 끝을 가린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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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호가 나온 문이나 그 문이나 모두 철문인데 페인트를 이상하게 칠하고 또 벽과 사이에 틈도 벌어지지 아니하였으며 게다가 손잡이도 없어 언뜻 문으로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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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는 여섯 칸쯤 가서 바른편으로 다시 구부러진다. 역시 천장에 십촉 전등이 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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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를 구부러지며 바른편에 철문이 있다.
 
42
철문에는 위로 조그마한 철창이 있고 그 위에는 다시 흰 페인트로 ' 1’ 자가 씌어 있다. 그 다음에도 그러한 문이 있는데 그 문에는 '2’자가 씌어 있다. 마치 감옥 같다. 더우기 이 '1’과 '2’의 두 방의 철문에는 밖으로 쇠빗장이 걸리고 자물쇠가 잠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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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이 지하실을 한번 들어와 보면 먼저 영호를 수상한 인물로 점 찍지 아니할 수가 없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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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가 막다른 곳에 다시 철문이 있고 그 철문에는 역시 흰 페인트로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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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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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며 안벽에 있는 단추를 누르니 눈이 부신 백촉 전등이 확 켜지며 방안이 환히 둘러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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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크기는 위층 응접실만큼 하고 네귀 번듯한데 사면의 벽은 값비싼 종이로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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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면서 왼편 한구석으로 사치스러운 덮개 덮은 침대가 있고 그 발치로는 두터운 커튼이 토일렛 룸(화장실 겸 변소)을 조그맣게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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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에는 값비싼 천이 깔리어 있고 한가운데에 굉장하게 큰 탁자가 놓여있다. 탁자와 침대 사이에는 조그마한 전기난로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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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앞에와 그 주위며 또 이곳저곳에 안락의자와 소파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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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실내며 복도며 할 것 없이 통풍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 공기가 결코 무겁지 아니하고 바깥과 마찬가지로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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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바깥에서 나는 소음이라고는 하나도 들리지 아니하고 마치 지축 속인 듯싶게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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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는 전선과 연락된 두 개의 확성기(擴聲器)와 한 개의 마이크로폰이 놓여 있다. 확성기 가운데 '현(玄)’자를 쓴 것은 현관, '응’자를 쓴것은 응접실에 비밀히 장치된 마이크로폰과 각각 연락된 것이요, 마이크로폰은 침실의 확성기와 연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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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는 그 밖에 책이 몇권에 철필이며 잉크가 놓여 있고 한편으로는 이번 사건에 수집된 모든 재료가 그득히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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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들어오던 철문의 쇠빗장을 걸고는 탁자 앞 암체어에 푸근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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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침대 속에 묻어두었던 학희의 모자가 그의 품속에서 나와 탁 자위에 놓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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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자와 노인의 외투를 번갈아 보며 푸 하고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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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앉아 모자를 어루만지고 외투를 바라보고 하다가 그는 일어서서 학 희의 트렁크를 열고 내용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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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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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두 개의 트렁크 중에 우선 하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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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개의 트렁크는 영호가 익선동 '그 집’을 엄습하였을 때에 학 희네 부녀가 이상한 손님 ── 유대설 ── 을 살해하여 그 속에다 집어넣지나아니하였나 생각하고 '두 개의 꽤 무거운 트렁크’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던 그 트렁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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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그때 일을 생각하고 싱긋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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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학회의 전용인 듯하였다. 대부분이 의복이요 그 밖에 화장하는 도구 같은 것이 들어 있는데, 만일 그 소유자인 학희 자신이 옆에 있다면 잘 겁하며 숨길 여자의 '비밀한 것’들도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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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물품은 모두 조선에서 쓰는 일본 제품이 아니었었다. 전부가 아메리카 것이요, 그중 몇가지만이 중국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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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는 다른 것 ── 가령 편지나 서류 같은 것은 나오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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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에 비밀한 장치가 있나 하고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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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트렁크 속에서 나온 의복을 가지고 포켓들을 일일이 뒤져본 뒤에다 시 겹으로 된 놈만 추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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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겹으로 된 놈을 가지고 속을 뒤집어 이상하게 꿰맨 자국이 없나 조사 하여 보았으나 역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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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희의 트렁크의 조사는 다 끝났다. 그러나 영호는 그것을 걷어 넣으려고도 또 다른 트렁크를 조사하려고도 아니하고 그대로 앉아 학희의 옷을 만 지고 주무르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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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 그는 보드라운 스커트를 집어다 볼에 대어보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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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그는 보는 사람도 없건만 무렴해서 얼른 스커트를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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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마침내 의복과 물품을 도로 차곡차곡 트렁크에 집어넣은 뒤에 나머지 트렁크에 손을 대려다가 마침 옆에 있는 보자기에 싼 꾸러미를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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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밤에 ×별장에서 괴한이 버리고 달아난 것이다.
 
74
보자기 속에서는 기성복집에서 사 입은 지 오래잖은 듯한 잡색 스코치 양복 위아랫벌이 나왔다. 군데군데 피가 묻고 한 것이 동소문 밖 집에서 흉행 할 때에 입었던 것인 듯하다.
 
75
이놈을 가지고 기성복집으로 돌아다니면 적어도 그의 인상(人相)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련만, 그러나 부하 한 사람의 인상쯤 그다지 큰 단서거리가 아닌지라 단념하고 포켓을 뒤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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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가 한 갑이 나오고 피스톨 탄환이 열두 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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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에서 뺏은 피스톨에 전충하여 쓸 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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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역시 탁자 위에 놓은 피스톨을 집어보고 또 그날 밤 영호의 생명 을지 켜준 방탄조끼를 어루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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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입고 갔던 운전수 복장 앞가슴에 큼직한 불탄 자국이 난 것 도영호는 비로소 발견하였다. 다음은 학희네 짐 가운데 또 하나 남은 트렁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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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은 먼저보다 더 크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81
속을 열고 보니 역시 노인의 것인 듯한 사철양복과 몇벌의 조선옷이 나왔을 뿐 서류나 편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82
영호는 그 옷의 하나하나를 집어들고 먼저 학희의 옷을 조사하듯이 조사 하여 보았다.
 
83
동소문 박 현장에서 집어가지고 온 외투도 그렇게 해보았다. 조그만 수상한 곳이 있으면 바느질밥을 뜯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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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던 것인 듯한 구두도 한 켤레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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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붙은 상표를 보니 미국 시카고의 어느 상점의 것이다. 영호는 문득 학 희의 트렁크를 다시 열고 화장품이며 거울이며 도구 같은 것을 다시 조사 하여 보았다. 그런 결과 여러 가지 것에 시카고의 상점 상표가 박힌 것을 발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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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학희 부녀가 시카고에서 중국을 거치어 돌아왔다는 것을 증명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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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노인의 구두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놓았다 다시 집어들었다 하다가 급히 밖으로 나가더니 한참만에 방울집게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실험실에 가서 가지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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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짜고짜로 구두꿈치의 가죽을 잡아떼었다. 그 짝에서 아무 소득이 없 음을 보고 나머지 한 켤레의 뒤꿈치를 마저 뜯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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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힘이 아니 들고 뒷굽이 중간에서 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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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는 갓난애기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어져 있다.
 
 
91
4
 
 
92
그러나 구멍은 텅 빈 채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아니하다.
 
93
영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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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 속에 이번 사건과 큰 관계를 가진 무슨 비밀서류가 들어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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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것을 최근에 꺼내어 몸에 지니고 다녔던지 학희를 주었던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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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인이 손수 지니고 다녔던지 학희를 주었던지 좌우간 악당의 손에 들어갔기가 십상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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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어서는 악당들이 팔구분이나 승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하니 영호는 속이 초조하였다.
 
98
그는 구두꿈치를 전대로 해놓고 트렁크를 검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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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창을 자세히 검사해보니 과연 비밀한 장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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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요리조리 만지니까 바닥 한 겹이 떠들리며 그 속에서 서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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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류라는 것은 시카고 어느 은행에 이만 불을 예금한 통장과 또 경성의 ××은행에 당좌예금으로 일만오천 원 가량 남은 통장이 있을 뿐 십원 짜 리로 현금이 돈 천 원이나 들어 있는 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서류나 편지 같은 것은 나오지 아니하였다.
 
102
영호는 모든 것을 전대로 해서 치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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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희네 짐으로 이 두 개의 트렁크 외에는 더 조사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하기야 김서방의 짐꾸러미와 담요며 이불을 있으나 그런 것은 조사 해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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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익선동 마나님네 집에서 가져온 이상한 손님인 유태설이의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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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같이 이손 저손에 붙잡혀 명색 없이 만만히 죽었느니라 생각하니 가엾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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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짐은 한번 조사해본 나머지니까 달리 조사할 것은 없고 수상한 바느질 밥에만 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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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동복 등어리에서 상해 ××은행 지점에서 경성 본점을 통하여 유창순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부친 영수증과 역시 유창순의 이름으로 경성 ×× 은행에 만 원을 예금한 당좌예금통장이 도장(유창순)과 한가지로 굴러 나왔다.
 
108
그러나 그것보다는 영호가 헙수룩한 낡은 양복을 뒤져보다가 그 뒷깃에 바느질 밥이 이상한 것을 보고 좍 뜰어본 결과 그 속에서 의외로운 것이 발견 되었다.
 
109
조선 문창호지인데 위아래가 반지 한 장 폭만하고 한편 끝에 가서 쭉 찢어져 없어진 채 나머지가 한 뼘 가량도 못되는 것인데 모필로 굵직굵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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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2 8161 이러한 건으로 듬뿍 씌어 있다.
 
111
요전 제일여관의 아궁이에서 얻은 암호표에 의하면 당장 풀 수가 있는 것이다.
 
112
영호는 우선 딴 것들을 모두 제자리에 집어넣고 이 암호서류와 또 학희의 트렁크에서 지문이 남아 있음직한 분곽과 거울과 크림병을 꺼내놓았다.
 
113
그런데 마침 현관으로 통한 확성기에서 오복이의 말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있다가 응접실 확성기에서
 
114
"선생님."
 
115
부르는 오복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116
"왜 그래?"
 
117
영호의 이 말소리는 마이크를 통하여 침실의 확성기에서 응접실로 들리게 된다.
 
118
"허철이라고 하는 이가 왔는데 선생님 꼭 좀 뵙겠다구요."
 
119
허철이라면 영호의 중학 때의 동기동창이요 대학에도 한 일 년 같이 다니던 친구다. 매우 가까왔고 서울서도 종종 상종하는 터이다. 그는 문학 지망을 하고 대학도 일 년 반에 내던진 채 조선에 돌아와 문단의 한구석에 참례는 하였으나 쇼펜하우엘의 영향을 잘못 받아 늘 사람이 우울하다. 명랑한 때라고는 어느 정도까지 낭비할 수 있는 돈의 힘으로 유흥을 할 때다.
 
120
"누가 오든지 바쁘다고 돌려보내라니까 그래!"
 
121
영호의 나무라듯 하는 말에 오복이는 변명을 한다.
 
122
"그래도 아주 중대한 상의가 있으니까 기다려서라도 꼭 뵙고 간다고 그래요."
 
123
"그러면 미안하지만 한 시간만 기다려 주시라고 아래층 식당방에서 차나 대접하고 자네가 모시고 있게."
 
124
친한 친구인데다가 중대한 상의라고 하니 아니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125
영호는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하여 암호풀기에 착수하였다.
 
 
126
5
 
 
127
영호는 딴 종이에 언문의 자음 모음을 쓰고 그 옆에 1 2 3의 번호를 단 뒤에 그와 대조하여 암호를 풀어갔다.
 
128
"신 약 성 서 ── 대영 성서공회 발행 제일판 한 궈 "
 
129
여기까지 오고는 그 끝은 찢기어 없어진 채다.
 
130
이거야 암호를 푸느냐 마나다. 신약전서 ── 대영성서공회 발행 제 일판 한 권(이 궈는 권이란 말인데 그 끝은 ㄴ이 없어진 듯하다)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131
가령 대영 성서공회 발행의 신약전서 한 권을 구한댔자 그 다음은 암호가 이렇게 끝이 없으니 안될 말이다.
 
132
정말 비밀을 해결할 것은 노인이 구두꿈치에 숨겼다가 최근 꺼낸 …… 그리고 이미 악당의 수중에 들어갔을 그 쪽에 있는 것이다.
 
133
그러나 한편 그 한쪽을 가진 악당은 지금 영호에게 있는 이놈 한쪽을 마저 구해 야만 할 터일 것이다.── 가령 이 암호의 푸는 법을 안다고 하면.
 
134
영호는 그 암호를 접어 노인의 트렁크를 열고 그 구두 뒤축 속에 집어넣었다.
 
135
대강 탁자 위를 갈무리한 뒤에 지문 검사하려고 꺼내논 것을 집어가지고 침실로 올라왔다.
 
136
다시 실험실로 들어가 분곽에서 비교적 선명한 학희의 지문을 검출하였다.
 
137
왼편 엄지손가락과 무명지의 것 두 개다.
 
138
×별장 지하실의 촛도막에서 얻은 지문, 유대설의 지문을 넣어둔 곳에 학 희의 것도 잘 간수한 뒤에 검사에 쓰던 재료들은 또다시 지하실 S호 방으로가 지고 내려가 학희의 트렁크 속에 넣어두었다.
 
139
영호는 손수 아래층으로 내려가 허철과 악수를 하며 긴한 일이 있어 기다리게 한 것을 사과하였다.
 
140
두 사람은 응접실에서 마주 대하고 앉았다.
 
141
허철이는 머리를 1920년식으로 길게 기른 것이 우선 눈에 띈다.
 
142
얼굴은 볼이 홀쭉한 게 창백하고 표정이 우울하다. 그중 눈만을 재기가 있어 보인다.
 
143
입은 양복은 천은 좋으나 함부로 굴어 꼬기작거리고 술 흘린 자국이 지저분하게 묻었다.
 
144
그 나약한 품 우울한 품이 기운차고 명랑한 영호와 좋은 대조가 된다.
 
145
"그래? 요새 재미는 어떤가? 금년에는 걸작을 하나 내놓아야지?"
 
146
영호는 쾌활하게 묻는다.
 
147
"걸작이고 무엇이고 문단이 하도 아니꺼워서 원!"
 
148
허철은 힘없이 대답을 한다.
 
149
"여보게 자네, 그 독자도 없고 한 소위 예술소설 다 집어치우고 내가 재료는 제공할 테니 탐정소설이나 쓰게 응? 나는 샬록 홈즈 …… 자네는 와트슨? 어때? 허허허허."
 
150
"그까짓 탐정소설을 쓰느니 자살을 하고 말겠네."
 
151
"왜?"
 
152
"그따우 탐정소설이니 대중문예니 또 소위 계급문제니 하는 것들은 문 예 축에도 못 끼우는 것이야 …… 다 날탕패나 문단에서 낙오된 찌 스레 기들이 할 수 없으니까 그거나마 가지리쓰꾸하지."
 
153
허철은 이야기하면서 흥분이 되었는지 창백한 얼굴에 조금 혈기가 돈다.
 
154
"글쎄 …… 나는 예술이라는 그런 델리케트한 손잽신에는 문외한이니까 몰르겠네만 어쨌으나 나는 탐정소설이 제일 재미가 있데."
 
155
허철은 영호의 말하는 얼굴은 보지 아니하고 힘없이 싱그레 웃는다.
 
156
그러다가 얼굴을 돌이켜 묻는다.
 
157
"그래 지금도 역시 탐정 도락은 하겠다?"
 
158
"그렇지."
 
159
"실상 그래서 내가 찾어온 건데 …… 자네 혼자만 알고 좀 비밀히 활동 해줄 일이 있네 …… "
 
160
"해보지 …… 요짐 좀 바뿌기는 하지만 …… 무언가? 자네 애인의 실종 사건이나 아닌가?"
 
161
영호는 농삼아 이렇게 물어보았다 (애인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162
"애인?!…… 애인도 없네만 그런 분홍빛 사건도 아니라네 …… "
 
163
여기서 허철은 어떻게 말을 꺼낼까 하고 잠깐 주저를 하다가 포켓 속에서 편지 한 장을 말없이 꺼내어 보라는 뜻으로 영호에게 준다.
 
164
편지를 받아들고 봉투 글씨를 유심히 보던 영호의 얼굴에는 놀라운 빛 이 알 연히 떠오른다.
 
 
165
6
 
 
166
편지는 허철의 아버지 허준이에게로 온 것이요, 차출인은 없는데 그 글씨는 영호가 악당에게서 받은 협박장과 조금도 틀리지 아니하였다.
 
167
영호는 허철을 잠깐 기다리게 하고 침실로 해서 다시 지하실 S호실에 들어가 간수해 두었던 협박장을 찾아내었다.
 
168
역시 틀림이 없다.
 
169
내용의 글씨도 그러하였다. 영호는 응접실로 도로 나와 봉투를 다시 검사 하여 보았다.
 
170
종로 이정목 우편소의 일부인인데 약 이 주일 전 것이다.
 
171
영호에게 한 것과 같이 속달이고. ── 영호는 속편지를 꺼내어 읽어보았다.
 
172
"우리가 이야기하던 것은 종차 해결할 셈 치고 위선 옹색하니 오천 원만 오늘 밤 자정에 장춘단으로 가지고 와 연못가의 등나무 밑에서 사방모자 쓰고 검정안경 쓰고 짧은 외투 입고 휘파람으로 수심가 부르는 학생에게 전하시오.
 
173
거절하지 아니할 줄 믿읍니다.
 
174
그러고 내게서 가는 서신 일체는 전에도 말씀했거니와 본 뒤에는 반드시 불에 태워야 합니다."
 
175
사연은 이것뿐이다. 끝에 "옥"이라고 쓴 한 자는 서광옥이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영호는 고개를 들었다.
 
176
"그런데 이것을 왜 인제야 가지고 왔나?"
 
177
허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178
"오늘사 발견한걸!"
 
179
"어데서?"
 
180
"아버지 문갑 속에서."
 
181
"또 없더냐?"
 
182
"거기 쓰인 대로 다 불에 살러버리신 모양이야 …… 무슨 편지를 불에 사르시는 것을 나도 한번 본걸 …… 그놈만 아마 총망중에 사르지 못 하신 게지…… "
 
183
"그러면 그 돈 오천 원은 가져다 주셨나?"
 
184
"아마 그런 모양이야 …… 그런 것이 요전에 내가 예금통장을 가지고 은행에 간 일이 있었는데, 보니까 이월 스무날인지 오천 원을 찾은 것이 쓰여있길래 그때는 그저 심상하게 여겼더니 지금 생각하니까 거기 쓰느라고 찾으신 모양이야 …… "
 
185
영호로는 생각지도 못한 방면에 악당 일파의 손이 미친 것이다. 그들의 수령이 서광옥이인 것은 팔구분이나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다.
 
186
그들은 실상 그 돈 오천 원을 군자금으로 오늘날까지 그와 같은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 대관절 허철의 아버지 허준이가 어찌 해서 그들에게 요구하는 대로 순순히 오천 원이란 적지 아니한 돈을 내어주었을까?
 
187
편지의 문구로 보아 그것은 확실히 청이 아니요 협박에 가까운 강청이다.
 
188
이러한 강청에 응종한다는 것은 그만한 약점이 이편에 있는 때문이다.
 
189
무슨 약점일까?
 
190
영호는 편지를 다시 집어들었다. 맨 꼭대기에 쓰인 "우리가 이야기하던 것."
 
191
여기에 조건이 붙은 것이다. 무엇을 사고 팔고 하나?
 
192
"요새 토지나 무엇 사잖았나?"
 
193
영호는 갑자기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허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194
"없어."
 
195
그럴 것이다. 사고 팔고 하는 교섭이라고 하기에는 편지의 투가 너무 오만하다.
 
196
어쨌거나 허준이에게 무슨 약점이 있는 것을 악당의 일파가 알아가지고 이와 같이 돈을 강청하여 가는 것인데, 그건 그렇다고 하고 그 돈 오천 원만 아니었었더라도 그들은 그다지 눈부신 활동을 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 하니 영호는 이 사건을 인제야 알게 된 것이 안타까왔다.
 
197
"요 최근에는 예금통장에서 또 돈을 많이 끄내지 아니하셨든가?"
 
198
영호는 물어보았다. 그들 악당에게 돈은 즉 힘이니까.
 
199
"삼사 일 전에 내가 삼천 원을 또 한번 찾어다 드린걸 …… "
 
200
"허!"
 
201
하고 영호는 부지중에 혼자 탄식을 하였다.
 
202
"그런데 말이야."
 
203
하고 허철은 비로소 자진하여 이야기를 꺼낸다.
 
204
"삼사 일 전에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앉히시더니 아주 이상한 말씀을 하신단 말이야! 나는 입때까지 아버지께 그런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어!"
 
 
205
7
 
 
206
허철은 잠깐 말을 멈추고 영호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말을 계속한다.
 
207
"무슨 일이 있든지 ── 생각잖은 의외의 일이 생기더래도 절대로 남에게 알리거나 경찰서 같은 데 알려서는 안된다고 그러시면서 …… 응 참 …… 그러고 무슨 사고가 생기든지 고집을 세지 말고 타협을 하라고 그리신단 말이야."
 
208
"그것뿐이야?"
 
209
"응."
 
210
영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211
허준이의 그 아들에게 하였다는 말이 아무 속도 모르는 아들에게는 이상할지 모르나 영호에게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212
어떠한 사건이 생기든지 남에게나 경찰에 알리지 말고 타협을 하라 한 것은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과거이 약점 ── 비밀을 세상에 알리지 아니하려는 것이다.
 
213
"그래 내가 …… "
 
214
하고 허철은 더 계속을 한다.
 
215
"그건 무슨 말씀이에요? 하고 물으니까, 인제 차차 알지야 그리실 뿐이겠지!"
 
216
영호는 한참 생각하다가 결의를 하고 허철에게 물었다.
 
217
"대강은 아는 터이지만 어데 자네 어르신네의 과거 이야기랄지 그런 것을 좀 이야기해 보게 …… 아는 대로 숨기지 말고."
 
218
허철은 별로 주저하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아는껏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219
허철의 아버지 허준은 어려서 매우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다.
 
220
그러나 그는 가난 속에서도 그것을 싸워 이기고 성공하겠다는 불굴한 정신의 소유자였었다.
 
221
그는 일찍부터 상업 방면에 눈을 떠 재빠르게 활동을 하다가 ×× 은행의 지배인 자리에까지 올라앉았다.
 
222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 그의 나이 겨우 서른세 살 때였었다.
 
223
그는 은행의 대주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었던 것이다.
 
224
그의 수완으로 해서 은행은 매우 번창하였다.
 
225
그러나 그때까지 그는 그다지 재산을 장만하지 못하였다. ── 느니보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226
사실 그의 가진 주(株)라고는 일백 주밖에 아니 되고 월급도 그것을 모아가지고 큰 재산이 되기에는 빈약한 것이었으니까.
 
227
더구나 부모의 유산 없이 적수공권으로 실업계에 뛰어들어 애초에 목적 한 돈은 모으지 못하고 신망만 얻었을 뿐이니까.──
 
228
××은행의 지배인으로 있은지 육 년 만에 즉 지금으로부터 십사 년인 지오 년인지 이 이전에 그는 은행의 지배인 자리를 내어놓고 시골로 내려갔다.
 
229
허준이가 이와 같이 ××은행의 지배인 자리를 내어놓고 표연히 낙향을 한데 대하여서는 여러가지 풍설이 많았다. 그중에 제일 유력한 것은 그가 은행의 돈을 횡령하였다는 것이다.
 
230
그 증거로는 그가 시골로 내려가 땅도 사고 집을 짓고 호화스럽게 지내기 시작한 것이 입증을 하는 것이다.
 
231
그러고 몇해 후에는 다시 솔가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큰 집을 짓고 역시 배부르게 생활하고 있게 되었다.
 
232
그러나 만일 그때 허준이가 은행돈을 횡령하였다면 그는 무사히 그 돈을 삼키지 못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버젓하게 내놓고 자기의 명의로 토지를 사고 집을 짓고 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233
하물며 그를 신임하고 지배인까지 시켜준 ××은행의 대주주인 아무는 종전보다 그와 더 두터운 교제를 하게 된 것이다.
 
234
그리하여 일방에서는 허준이가 근검자자하여 남몰래 돈을 모아 두었다 기도하고, 또 누구는 주식(株式)을 대어 일확 수만금하였다고도 한다.
 
235
좌우간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는 십오 년이 지나갔다.
 
236
그에게는 상처한 아내가 남기고 간 아들 허철이 있다.
 
237
재취장가를 갔었으나 이삼 년 전에 그마저 죽고 지금은 독신으로 오십 넘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238
그가 외아들 허철을 귀애하는 품은 각별하다.
 
239
웬만한 무리와 고집은 그대로 들어준다. 그의 나이 지금 스물 여섯 이로되 결혼을 아니하는 것도 역시 강제시키지 못하고 혼자만 애달파한다.
 
240
귀한 아들 허철이 늘 침울하여 근심이 될 뿐 그 밖에는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던 허준이가 최근 일 개월 동안 갑자기 침울해지고 사람이 딴 사람이 된 듯이 신경질로 변하였다.
 
 
241
8
 
 
242
지금부터 약 삼 주일이 채 못되는 즉 은행 예금을 오천 원이나 찾았다는 그 이삼 일 전이다.
 
243
허철은 그에게 고유한 불매증으로 이부자리 속에서 뒹구는데 사랑에서 갑자기 그 부친 허준의 높은 소리가 들리었다.
 
244
허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발짝 소리를 죽여가면서 사랑으로 나가 엿을 들어 보았다. 말소리는 다시 조용해졌다.
 
245
"반?…… 십만 원?…… 십만 원을 주고 나면 나는 파산을 하네."
 
246
이것은 약간 떨리는 허준의 목소리다. 그 말을 받아 젊고 또렷또렷한 목소리가 조롱하듯이 반박을 한다.
 
247
"십만 원을 주었다고 파산을 하세?…… 엄살을 하지 마십시요. 그놈 이십만 원으로 지금 영감은 사십만 원 재산은 만드섰지요? 그런데 십만 원쯤 내 시기를 그렇게 인색하게 구세요?"
 
248
"사십만 원? 허! 알기도 잘하네 …… 내 재산이라는 게 지금 톡톡 털어야십만 원 내외밖에는 아니 되네."
 
249
여기까지 듣고 있던 허철은 생각하였다.
 
250
남들이 허준의 재산에 불순한 조건이 붙었다더니 그러면 그것이 확실하다.
 
251
혹시 저 젊은 사람의 것을 횡령한 듯하다.
 
252
재산이란 본시 더러운 것인데, 더구나 그런 불순한 것이면 깨끗이 내어주었으면 시원할 터인데 왜 저렇게 고집을 쓰노?
 
253
이런 생각을 하며 당장 쫓아들어가 다 내어줍시다, 옜다 가져가거라 하고 부르짖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치밀어 오르는데, 방에서는 그대로 이야기가 계속된다. 허준의 소리다.
 
254
"좌우간 그때 그 돈 사십만 원을 가지고 두 편에서 나누잖았나? 그랬으니까 공평하게 문제는 낙착되었는데 지금 와서 또 내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255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러면 그 재산이라는 것이 찾아온 젊은이의 것을 횡령한 것도 아닌 듯하다. 차라리 둘이서 협력하여 제삼자의 것을 집어 삼킨것이다.
 
256
"그거야 그렇지요."
 
257
하고 젊은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258
"그렇지요만 우리는 우리가 잘못해서 그랬든지 운이 나뻐서 그랬든지 그것을 다 써바렸고 영감은 그놈을 밑천삼어 그 갑절이나 되게 만 드 섰으니까 옛 일을 생각해서 좀더 나누어 주시란 말씀이지요."
 
259
"내가 그놈을 가지고 갑절을 늘리지도 못했지만 어쨌거나 십만 원을 내 놀수는 없네."
 
260
"그러면 재미 없지요."
 
261
이 말에는 아무 대답이 없다. 젊은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262
"거 보십시오 …… 그렇게 고집을 세지 마시고 잘 생각해 보세요. 저는 돌아가서 다시 상의할 테니까 잘 생각하세요."
 
263
"좌우간 다시 한번 만나세마는 십만 원은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가서 그렇게 전하게."
 
264
허철은 몸을 비껴서서 방으로부터 나오는 젊은이를 엿보았다.
 
265
방에서 흘러나오는 전등불에 비쳐 보니 사방모자를 쓰고 교복을 입은 학생이다. 허철은 가벼운 놀람과 야릇한 호기심을 느끼었다.
 
266
그 뒤 집안은 아주 장마진 여름날같이 우울하여졌다.
 
267
허철이가 그와 같이 노상 침울한데다가 노인마저 우울해져 가지고 괜히 하인들을 나무라기, 밤 늦게 출입을 하였다가는 술이 취하여 돌아오기, 또 전에 없이 허철을 조그마한 트집을 잡아가지고 나무라기 …… 허 철은 몇번이나 저편에서 요구하는 대로 재산을 갈라주라고 그 부친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그랬다 듣지도 아니할 것이요 되레 엿을 들었다고 나무람이나 듣겠으므로 그대로 지내왔던 것이다.
 
268
그러던 차에 어제는 또 한가지 이상한 일 하나를 허철에게 들키었다.
 
269
부자가 저녁상을 받고 앉았는데 마침 배달되는 석간신문을 하인이 들여오자 사회면을 죽 훑어보던 허준은 한참만에 괴로운 신음소리와 한가지로 얼굴이 해쓱해지고 사시나무 떨듯이 와들와들 떨었다.
 
270
그 신문은 동소문 박 살인사건 보도한 것이었었다.
 
271
전에는 잔인스러운 살인사건 같은 것이 보도되더라도 무서워하기는 고사하고 흥미 있게 그 사건의 수사를 보아왔는데, 이번에 한하여 그와 같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272
그리하여 허철은 부친더러 그 피해자 이재석이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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