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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마(艶魔) ◈
◇ 14. 자객(刺客) ◇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이전 14권 다음
1934.5.16~11
채만식
1
艶 魔[염마]
2
14. 刺 客[자객]
 
 
3
1
 
 
4
영호는 눈치 빠르게 김서방에게 눈짓을 하고는
 
5
"좌우간 이층으로 올라가십시다."
 
6
하고 앞서서 올라갔다.
 
7
학희는 손에 들고 온 것을 김서방에게 내맡기고 이층으로 따라 올라갔다.
 
8
뒤따라 김서방이며 향초며 상준이며 모두 올라갔다.
 
9
다만 식모만이 저이가 어쩔 양으로 고운 색시를 저렇게 자꾸만 데려오나!
 
10
하는 듯이 혼자서 웃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간 뒤미처 오복이도 달려와서 이 층으로. 그리하여 응접실이 뻑뻑하게 그득히 모였다.
 
11
학희는 이 방에서나 아버지가 기다리시나 하고 둘러보았으나 역시 보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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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 계셔?"
 
13
김서방은 학희가 묻는데 대답을 못하고 어물어물하자 영호가 얼핏 대답을 가로맡았다.
 
14
"잠깐 시골 가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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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 노인이 죽었다고 바로 대답하여 그렇잖아도 심신에 타격을 받아가지고 극도로 쇠약한 학희에게 겸쳐 충동을 주지 아니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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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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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희는 또다시 김서방을 돌아보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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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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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 저는 알 수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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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가신단 말씀은 없고요."
 
21
하고 영호가 붙였던 수염을 떼고 얼굴에 그렸던 자국을 손수건으로 씻으면서 김서방을 대신하여 대답한다.
 
22
"아까 막차로 떠나시면서 뒷일을 모다 부탁하시고 가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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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더라도 조금만 기다렸으면 만날 텐데, 그렇게 고생하고 돌아오는 딸을 기다리잖고 시골을 가시다니 이상은 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영호를 자세히 보았다.
 
24
보노라니까 비로소 그가 산에서 산보를 할 때에 자주 만났고, 만날 때마다 유심 히 서로 치어다보다가는 외면을 하던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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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날 때마다 퍽 인상이 깊었던 만큼 학희는 곧 잘 알아낼 수가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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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오복이도 알아내었다. 손가락 소포의 연극에 쓰던 그 운전 수다. 그리하여 그는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하였다.
 
27
학희는 향초가 상냥하게 권하는 대로 소파에 가 앉아 김서방의 지낸 이야기도 듣고 자기의 이야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서방은 동소문 밖 일건을 어물어물 하느라고 딴에는 매우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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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학희의 거처할 곳이 마땅찮아 이리저리 궁리를 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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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식당방에서 향초와 같이 있게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위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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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침실을 내어주자니 좀 체모가 없는 듯하다.
 
31
할 수 없이 그는 지하실로 내려가 S호실의 탁자 위의 것을 대강 치운 뒤에 학 희의 짐만 남겨놓고 다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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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이나 상준이는 지하실이 있고 그 속에 설비가 되어 있는 줄 어렴풋이 짐작하니까 관계치 아니하지만 김서방이나 향초에게는 같은 침실로 들어가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 좀 멋하였다. 그러나 그런 것을 돌아볼 때가 아니라 영호는 학희에게 출입하는 방식을 가르쳐 가면서 지하실로 데리고 내려갔다.
 
33
학희는 좀 서먹서먹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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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호실에 자기의 짐과 또 아버지의 외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저으기 안심하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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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면 대포 외에는 아마 아무도 범접하기 어려울 테니 안심하고 편안히 쉬십시요. 이야기는 내일 차차 해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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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학희가 어려워는 하면서 꼬치꼬치 무슨 말을 물으려는 것을 이렇게 막아 버리고 침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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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학희를 구해냈으니 인제 안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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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떻게 해야 학희가 놀라지 아니하게 그 아버지의 참변을 이야기 해주며, 또 학희를 빼앗긴지라 더욱 맹렬히 덤벼들 광옥이 일파를 소탕 시킬까 가 역시 큰 두통거리다.
 
39
이튿날 아홉시쯤 잠이 깨어 막 응접실로 나오는데 생각지 아니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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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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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생이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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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전화 소리가 벌써 서광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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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 참 마담! 요전날은 너무 폐를 끼쳐서…… 올 때 인사나 하고 올렸더니 계시잖드군요. 그래 벽에다 멫 자 적어놓고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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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아주 의젓하게 대답을 하였다. ── 또 반갑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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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요 깍정아! 거 무슨 짓이야?…… 그러고 대학병원에다가 둔 줄은 어떻게 알고 고년을 훔쳐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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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뭐 별것 없지요…… 광식이가 대학병원에서 나오는 것을 내 염탐꾼이 보았고. ── 그 덕에 그 친구가 한대 얻어맞기는 했지만 ── 그리고 그날 밤에 당신네 남매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그래서 옳거니 생각 했지.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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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어떻게 해 글쎄…… 응…… 여보 인제는 그애도 데려가고 했으니 그럼 그 암호문서나 우리 주고 그만 손을 끊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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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안될 말."
 
49
"왜?"
 
50
"동소문 밖 살인사건만 없었더래도 당신네 전부를 용서해서 그만하고 상해 로든지 물러가게 하겠지만 지금은 그 사건 때문에 애매한 학희한테 경찰의 주목이 집중되지 아니했소?"
 
51
"그렇지."
 
52
"그러니까 당신 하나는 용서해서 상해로 피신하게는 해주겠지만 당신 오 랍 동생 광식이하고 또 부하들은 모다 불가불 붙잡어야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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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은 용서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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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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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호…… 그래 내 눈에 녹아나지 않는 사내가 있을 리 없지…… 그러나저러나 간에 여보 도령님, 인제는 용서 없으니 그리 알고 잘 생각 해요…… 이번에는 정말 용서 아니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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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붙잡어다가 결박을 지어놓고도 손을 못 대었으면서 또 그런 흰 소리를 하오?"
 
57
"응, 두고 바요."
 
58
전화는 그만하고 그치었다.
 
59
영호는 지하실에서 올라온 학희를 아래층에 내려보내지 아니하고 응접실에서 밥을 올려다가 먹게 하였다. 혹시 신문을 볼까봐 그리하는 것이다.
 
60
학희는 생각하던 것보다는 몸이 그다지 쇠약하지는 아니하였다. 안심이 그에게 원기를 준 것이다.
 
61
학희는 식사를 하면서 영호에게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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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동소문 밖에서 영감님도 김서방과 한가지로 살아나온 양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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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희는 영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더우기 안심을 하였다. 그는 자주 감사와 신뢰하는 시선을 영호에게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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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뿐이다. 감사하고 신뢰하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더는 보여주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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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나 아버지에게 대하여 신뢰하고 감사하여 하는 그러한 단순한 학 희의 태도에 영호는 적지 아니하게 마음 한구석이 섭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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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그러한 내색을 보일 수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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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메리카에서 자란 만큼 남녀의 교제에 익어 담담한 때문이니 인제 장차에…… 하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68
학희가 밥을 먹는 동안에 아래층에서 올라온 향초와 김서방은 둘이 다 이상한 생각을 품었으나 자기네의 깊이 생각할 바가 아닌지라 김서방은 다만 기쁘고 다만 슬픈 마음에 어릿어릿하기만 하고 향초는 이것저것 찬도 권하고 밥도 더 권하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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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초는 주인 영호가 이와같이 애인을 구해내어 반가이 그리고 정답게(그는 정답게 지내느니라고 생각하였다.) 지내는 것을 보니 허철의 생각이 불현듯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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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요전에 상준이가 다녀와서 시골로 가고 없더라고 한 말을 듣고는 더욱 마음이 조민하고 쓸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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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 소식이라도 물어볼까 하는데, 영호는 학희와 이야기에 세 마리가 팔리어 자기에게는 주의도 아니한다.
 
72
"그런데 대체 시카고에 가서 자라신 모양인데, 어떻게 그렇게 조선말을 아니 잊으셨습니까?"
 
73
영호에게는 그것이 궁금도 하지만 그것으로써 상해 이후의 그들 부녀의 지나 온 사정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 어찌하여 그 하늘에 사무치는 복수를 지금까지 미루어 왔는가?
 
 
74
3
 
 
75
그러나 그것은 영호가 생각하던 것보다는 이유가 단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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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희는 자기의 기억에 남는 것과 그 뒤 그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을 종합 하여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77
상해의 어느 날 밤.
 
78
학희의 아버지가 온몸에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게다가 왼편 엄지손가락까지 잃어버리고 돌아온 그때의 광경은 그때 학희의 나이 비록 네 살밖에 아니 되었었지만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잊히지 아니하고 그 장면이 선연히 보이는 것 같았다.
 
79
그 뒤에 이재석은 몸에 피스톨을 품고 원수를 찾아 상해에서 일 년이나 헤매었다.
 
80
그러나 원수는 만나지 못하고 준비하여 가지고 간 돈이 다 없어졌다.
 
81
돈이 없으면 백사장 같은 상해 바닥에서 어찌하는 도리가 없다.
 
82
다시 한번 한을 머금고 원수 갚기를 후일로 미룬 뒤에 그들은 하와이로 건너갔다.
 
83
하와이에서 십 년을 지내는 동안에 학희는 그곳 조선 사람의 학교에 다니며 자랐다. 그 아버지는 근근자기하여 돈을 모았다.
 
84
속에는 무서운 원수 갚을 칼을 품었지만, 그러나 일상생활은 온순한 신사요, 더구나 크리스찬인지라 오래잖아 그에게 대한 지방의 신임이 두터워졌다. 그것을 발디딤삼아 약간의 재산을 만들었던 것이다.
 
85
조선으로 나오기 전 이태 동안은 본토인 시카고로 건너가서 거기서 돈 이 부쩍 늘었다.
 
86
이만하면 하는 생각으로 그들 부녀는 상해로 돌아왔다.
 
87
몇 달 동안 두류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러면 이미 조선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선으로 나온 것이 일 년 전의 일이다.
 
88
그러나 조선으로 돌아와 서울을 중심으로 일 년 동안이나 각처로 돌아다니며 찾았으나 원수는 만나지 못하였다.
 
89
할 수 없이 다시 서울로 돌아온 것이 거진 한 달 전의 일이다.
 
90
"그러면……"
 
91
하고 학희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영호가 물었다.
 
92
"제일여관에서 아버지께서 무슨 편지를 받어가지고 박박 찢으면서 적반하장이라고 하신 그 편지는 뉘게서 온 것입니까?"
 
93
"그게 유대설이가 협박을 한 거래요…… 웬 아이를 시켜서 어떤 사람이 주더라고 보냈더라나요."
 
94
"무어라고 협박을 해요?"
 
95
"암호문서 한 토막을 보내라고."
 
96
"어데로 보내라고?"
 
97
"광화문우편국 구지(?) 국지가 무엇인지 국지(局止)로 보내라고…… "
 
98
"그래 어쨌어요?"
 
99
"그건 안 보내고 메칠 후에 그냥 편지에다, 너 인제 내 손에 걸리면 죽인다고 써보내섰지요…… 그러고 저는 우편국에 가서 지키라고 그러시길래 가서 지키니까 와서 편지를 찾어가지고 가드구만요. 그때 뒤를 따라가서 집을 알었지요."
 
100
영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101
"그러고는 그가 있는 방 모양으로 꾸미느라고 커텐 귀를 몰래 잘러가지고 × 상회에 가 끊고 하섰군요?…… 실상 소용도 되잖은 것을…… "
 
102
학희도 웃고 영호도 웃었다.
 
103
영호는 학희를 다시 지하실로 내려보내고 향초와 김서방도 아래층으로 내려 보낸 뒤에 인천 월미도호텔로 시외전화를 걸었다.
 
104
허철은 영호의 목소리를 듣고 무척 반가와하였다.
 
105
허준의 병은 그날 밤 그렇게 무리를 하였으나 별로 도지지도 아니하고 되레 차츰 나아가는 편이라고 하고 그러고 어서 바삐 서울로 돌아가서 향초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다.
 
106
영호는 그동안 보지 못한 신문을 걷어 모아다가 순서대로 사회면을 훑어 보았다.
 
107
그러나 사건이 미해결인 채 있으므로 경찰을 공격하는 필치로 썼을 뿐 아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아니하였다. 역시 경찰은 한사코 ' 양장한 젊은 여자’ 와 그 의 동행인 '젊은 사나이’를 찾는 눈치인 것이 분명하였다.
 
108
이날 밤.
 
109
다른 때보다도 각별히 더 주의를 했어야 할 것이거늘 무슨 실수인지 영호의 집 현관문은 빗장도 걸리지 아니한 채 열리어 있었다.
 
110
자정때부터 검은 그림자가 그 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하였다.
 
 
111
4
 
 
112
저녁 후에 영호는 지하실 S호 방에서 학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113
별로 이렇다 할 이야기거리가 준비되었던 것은 아니나 기회와 눈치를 보아 될 수 있으면 학희가 놀라지 아니하도록 그 부친의 불행을 이야기해 주려하는 것이다.
 
114
"그날 밤에 참."
 
115
하고 학희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묻는다.
 
116
"그 집에 제 모자가 떨어졌지요?"
 
117
"네."
 
118
영호는 지금도 자기의 품 속에 있는 그 조그마한 모자를 생각하면 조금 얼굴이 닳았다.
 
119
"거 그대로 버려두섰어요?"
 
120
"제가 거두어 왔읍니다."
 
121
"네…… 그거 머 하찮은 것이지만…… 제 짐 참긴 데는 없는데요?"
 
122
"네 미처 갖다 두지 못 해서…… "
 
123
설마하니 체모 없이 품속에서 꺼내 놀 수는 없고 그냥 어물어물하였다.
 
124
"그런데 아버지는 웬일이실까?…… 메칠이나 되면 오신다고 그리셨어요?"
 
125
학희는 새로이 궁금한 듯이 묻는 것이다.
 
126
"글쎄 아마 한 일 주일 되겠다고 그리 섰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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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일주일…… 어떻게 기다려! 내일이라도 오섰으면 좋겠구만…… 퍽 반가워하실 텐데…… 그새 아버지 퍽 걱정으로 지내섰지요?"
 
128
"네…… 그런데 저렇게 다 자라신 이가 아버지를 꼭 젖먹는 애기가 어머니를 찾듯 하십니까?"
 
129
"그럼요!…… 저는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가 어머니 노릇까지 하시면서 길러주섰는데…… "
 
130
"아버지가 영 아니 오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131
영호는 속이 있어 묻는 말이건만 학희는 다만 웃는 말로 알아듣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그는 눈을 크기 뜨고 엄살을 하듯이.──
 
132
"아이고! 아니 오시면 어쩌라고요?…… 큰일나게?"
 
133
"어째 큰일이 나요?"
 
134
"보고 싶어서."
 
135
이래서는 정말 큰일이 나겠다고 영호는 속으로 근심을 하였다.
 
136
그리하여 아직 말해 주기를 단념하고 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열한시가 지나서 자기 침실로 올라왔다.
 
137
품에 품었던 학희의 모자를 꺼내어 머리맡의 테이블 위에 놓고 그는 침실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138
자정때부터 이 집 문앞을 감돌던 검은 그림자는 한 시간 동안이나 동정을 살피며 앞뒤로 감돌았다.
 
139
새로 한시쯤 되어서 검은 그림자는 가만히 현관문을 밀쳐보았다.
 
140
딱 맞히는 반응 대신 문이 슬며시 열리는 것이다. 의외의 결과에 검은 그림자는 잠깐 주저하다가 그대로 안으로 들어섰다.
 
141
바로 들여다보이는 방 ── 상준이의 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드르렁 드르렁 들려온다.
 
142
검은 그림자는 사풋 올라서서 발짝 소리도 없이 이 방 저 방 문을 열고 휘휘 둘러본다.
 
143
식당 방문을 열고는 한참이나 향초의 얼굴을 보다가 픽 웃고는 도로 문을 닫았다.
 
144
더 방이 없나 하고 회중전등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층계를 올라가기 시작한다.
 
145
이층으로 올라서서 아래층의 코고는 소리도 막히고 교교하니 바스락 소리조차 없다.
 
146
그는 실험실 문의 도어 손잡이를 틀어보다가 이편 응접실 문을 살며시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147
아무도 없음을 보고 방으로 들어서서 다시 한번 휘 둘러보았다.
 
148
그는 영호의 침실 도어의 손잡이를 틀었다.
 
149
문이 소리없이 열린다. 영호는 이 문조차 잠그기를 잊어버렸던지!
 
150
검은 그림자는 문이 잠기지 아니한 것이 의외로운 듯이 아까 현관에서처럼 잠깐 주저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침실 도어를 환히 열고 문턱에 섰다.
 
151
그런데 이건 또 웬일! 그새까지는 영호의 침대는 이편 응접실편 벽앞에 있어가지고 도어를 열면 도어에 가리어 보이지 아니하였는데 언제 옮겼는지 저편 벽 앞에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위에서 영호는 평화로이 잠을 자고 있는것이 아닌가?
 
152
영호의 침대를 향하고 한 걸음 내디디는 검은 그림자의 손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쥐어져 있다.
 
153
한 걸음 두 걸음 사풋사풋 검은 그림자는 고요히 육박하여 마지막의 한 걸음을 내어디디며 전신의 힘을 다 주어 칼을 쥔 바른편 팔을 내리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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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55
퍽 하고 칼끝이 살을 뚫는 소리 대신 쨍그랑하는 쇳소리와 아울러 검은 그림자는 그 앞에 푹 거꾸러졌다.
 
156
그러자 이편에서 허허허허 하고 웃는 너털웃음 소리가 들린다.
 
157
"이 사람 거울 속의 그림자를 찔르러 드는 자객도 세상에 있단 말인가?"
 
158
그렇다. 자객은 거울 속에 비친 영호의 침대로 향하여 겨냥을 대었던 것이다.
 
159
영호의 침대는 역시 위치를 변치 아니하고 이편 응접실 쪽으로 있었던 것이다. 저편 벽에 붙여둔 큰 체경에 가리어 둔 커튼을 반만 걷어놓으면 도어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그곳에 침대와 사람이 있는 줄 알게 되었다.
 
160
자객 자신이 거울에 비치지 아니하느냐고?
 
161
그거야 커텐을 반만 걷어놓았으니까 이편에서 들어가는 사람은 비치지 아니 한다. 자객은 부러진 칼자루를 쥐고 벌떡 일어섰다.
 
162
그는 거울 속과 이편 진짬의 영호를 한번 별러보고는 속아서 실패한 안타까 움에 이를 부드득하였다. 그의 눈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들어간 야수와 같이 무섭게 번쩍거렸다.
 
163
와락 영호에게로 덤벼들려던 자객은 또다시 멈춰섰다. 영호의 손에는 일전 × 별장에서 빼앗은 소음 피스톨이 쥐어져 있는 것이다.
 
164
"허허허허…… 여보게 광식군."
 
165
하고 영호는 저편의 심장을 똑바로 겨냥한 채 이렇게 재미있게 웃으며 불렀다.
 
166
그는 과연 서광식이다. 학생복도 그대로요 사방모자는 체경 앞에 떨어져있다.
 
167
"내 자네를 기다린지 오랠세…… 어찌 자네의 왕림이 이다지 더딘가? 허허허허. 언젠가 전화로 내가 약속했지?…… 내가 자네 앞에 이렇게 웃어줄테라고…… "
 
168
광식은 말이 없이 식식거릴 따름이다.
 
169
영호는 벨을 눌렀다.
 
170
상준의 방에서 자던 사람들이 놀라 우당퉁거리며 뛰어올라왔다. 맨먼저 올라온 것이 상준이다.
 
171
"상준이 너는 내려가서 현관문을 잠거라. 그리고 김서방을 올려보내라."
 
172
그러나 김서방은 벌써 올라왔다. 오복이도 올라오고 향초도 뛰어올라왔다.
 
173
향초는 광식을 보고 더구나 놀랐다. 영호를 죽이라고 독약을 주며 꾀던 그 인물인 줄 대번 알아본 것이다.
 
174
영호의 명령으로 김서방이 동바를 가지고 와서 든든히 결박을 지웠다. 결박을 지우는 김서방은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았다. 원수를 눈앞에 잡아 놓은 쾌감이다.
 
175
그러나 다음 순간 김서방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176
"아가씨? 아가씨 어디 가셨어요?"
 
177
김서방은 휘휘 눈을 내두르다가 영호에게 시선을 멈추고 묻는 것이다. 영호는 웃으면서 일어섰다.
 
178
향초도 한가지로 의심이 나는 모양이다.
 
179
영호는 두툼한 수건으로 광식의 눈을 가리어 위아래층으로 끌고 다니다가 도로 침실로 돌아왔다.
 
180
그는 비로소 여러 사람 앞에서 지하실의 비밀을 공개하였다.
 
181
그들은 숨소리도 없이 보고만 있다가 광식을 끌고 내려가는 영호의 뒤를 따라 섰다.
 
182
지하실로 내려간 영호는 '1’호방을 열고 전등을 켠 뒤에 광식의 눈 가린것을 풀어 놓았다.
 
183
내부는 감방과 다름이 없다. 감방과 다른 것은 침대가 있는 것과 또 벽에 굵다란 쇠사슬의 한끝이 박혀 있는 것이다.
 
184
영호는 그 쇠사슬의 이편 한끝을 광식의 허리에 채우고는 결박을 풀어주었다. 쇠사슬의 길이가 닿는 곳까지에는 자유로 몸에 가질 수가 있게 되었다.
 
185
광식은 저항하여도 소용없음을 각오하였는지 침대 끝으로 걸어가서 팔짱을 끼고 입을 꽉 다물고 그리고 눈을 감았다.
 
186
"광식군, 오늘은 편히 쉬게. 나는 찾어온 손님을 자네네처럼 결박을 지워서 재우든 아니하네."
 
187
이렇게 이르고 여러 사람을 데리고 그 방을 나왔다. 겉으로 빗장을 걸고 다시 자물쇠를 잠갔다. 이만하면 장발장이라도 탈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88
그러나 그래도 안심이 아니 되는지 영호는 김서방에게 피스톨을 주어 그 옆방인 '2'호실에서 거처하게 하였다.
 
189
"저 방에…… "
 
190
하고 영호는 'S'호실을 가리키며 김서방더러 일렀다.
 
191
"자네 아씨가 계시니까 만약이라도 무슨 일이 있거든 그냥 대고 쏘아 응."
 
192
김서방은 겨우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문】14. 자객(刺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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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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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마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4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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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8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