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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마(艶魔) ◈
◇ 6. 김서방 ◇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이전 6권 다음
1934.5.16~11
채만식
1
艶 魔[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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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 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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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
헙수룩한 사나이 ——— 인제는 우리도 그를 그의 이름대로 김서방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 김서방은 멍하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5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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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다.
 
7
"몰라? 붙잡혀 갔든 데를 붙잡혀 갔든 당자가 몰라?"
 
8
영호에게는 모른다는 김서방의 대답이 곧이들리지가 아니하였다.
 
9
"네 …… 갈 때는 정신이 없이 갔었고 도망할 때는 내 발로 걸어는 나왔지만 원체 서울에 발이 선데다가 밤이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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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혹 그럼직도 한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11
"광화문 앞 전차 네거리로 나온 것은 알겠어요."
 
12
영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도 자기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재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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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데다 지은 큰 벽돌집인데……서울 장안이 환희 내려다 뵈구…… "
 
14
영호는 듣고 있다가 일어나서 우선 김서방의 다리의 상처를 손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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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이 스치고 지나갔을 뿐 그다지 큰 상처는 아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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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벌써 세시가 지났으나 영호는 유여치 아니하고 김서방을 데리고 다 시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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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면서 영호는 변장할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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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모습을 조금 고치고 감장 쓰메에리 양복을 입고 모자까지 운전수 모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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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은 시골 사람처럼 조선옷을 부스스하게 입히고 그러고 병자처럼 보이게 하느라고 단장을 손에 들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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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기도 하려니와 미상불 단장을 의지하여 절름거리며 층계로 내려가는 꼴은 그럴 듯하다.
 
21
몸에 제가끔 독와사 펌프와 회중전등을 숨기고, 또 저편이 피스톨을 함부로 쏘는 줄 아는지라 영호가 전에 고심하여 구해둔 방탄(防彈)조끼를 하나씩 속에 입기를 잊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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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준비는 완전무결이다. 저편에도 용이히 간파를 아니 당할 뿐 아니라 파출소 같은 데서 취체를 당하더라도 운전수 면허증까지 빌려온 터이니 트집잡힐 일이 없는 운전수요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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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우선 광화문 네거리에 당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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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을 앞세워 놓고 방향을 찾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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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은 한동안 서서 둘러보다가 절름절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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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신국 뒤로 해서 개천을 메워가지고 새로 낸 큰길이다. 그것을 본 영호는 김 서방을 불러 태우고 큰길을 그대로 달리었다.
 
27
더 생각하거나 찾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28
오복이가 문제의 감찰 없는 인력거를 발견한 것이 누상동 큰거리라고 했으니까. 그러면 이제는 언덕 위에 지은 큰집만 찾아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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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 끝까지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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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에는 인왕산 밑 언덕배기에 많은 문화주택들이 새로 들어서 있다.
 
31
그러니 그 어느 것이 김서방의 말한 서울 장안이 환히 내려다보이게 높은데 지은 큰 벽돌집인지 분간해내기가 어렵다.
 
32
영호는 잠깐 망설이다가 갑자기 김서방을 손을 잡아 끝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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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리 구부러져 다시 넓은 언덕길을 올라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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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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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은 비로소 알아내고 영호에게 가만히 속삭인다.
 
36
세상 사람이 다 아는 ×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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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오복이가 누상동 거리에서 인력거를 발견했다고 할 때부터 이 × 별장을 마음속에 생각하였다.
 
38
그러나 그때까지는 한 가정에 지나지 못하였다.
 
39
그런데 김서방이 이 길로 인도를 하겠다, 또 서울 장안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큰 벽돌집이라고 했으니. 그러면 이 집밖에는 다른 집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 만일 김서방이 자기가 감금당하여 있던 방의 모양을 어쩐지 짓다가 만 것 같더라고까지만 미리 말했어도 찾아내기에는 더욱 용이하였을것이다. 좌우간 빈 집이겠다 지하실이 있겠다 해서 악당들에게는 안성 마춤이다.
 
40
두 사람은 구두를 벗어 길 옆에 놓고 조심조심 언덕길을 다 올라갔다.
 
41
널따란 정원이 나서고 그 뒤로는 그야말로 큰 벽돌집이다. 왼편으로 돌아가면 지하실로 내려가는 층계다.
 
42
두 사람이 막 집 모퉁이를 돌아설 때에 지하실 층계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쑥 나와 가지고는 이편으로 돌아서다가 주춤하고 발을 멈춘다.
 
43
그의 손에는 큼직한 꾸러미가 들리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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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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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그림자는 멈칫 서서 이편의 동정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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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김서방에게 지하실 층계를 경계하라고 귓속말로 빨리 이르고 척척 앞으로 걸어나섰다. 검은 그림자는 뒤로 물씬물씬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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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가 와락 덤벼들려고 하는데 어느결에 저편에서 푸식 하고 시뻘건 불이 뛰어나온다.
 
48
쏘았으니 넘어졌으리라고 안심하고 저편은 또 하나 남은 사람을 쏠 요량인데 그러나 그는 총맞은 사람 ——— 영호에게 덮여 눌리고 말았다. 모두 번개 같은 일순간의 일이다.
 
49
영호는 어렵잖게 팔을 홱 비틀어 가지고 피스톨을 뺏어들었다.
 
50
영호는 지하실로부터 여당이 몰려나올 것이 염려되므로 우선 붙든 하나를 김 서방에게 맡기었다.
 
51
김서방은 포로의 두 팔을 등 뒤로 비틀어 쥐고 앉아 있고 영호는 빼앗은 피스톨을 한손에, 또 한손에는 회중전등을 들고 지하실의 철문을 바스스 열었다.
 
52
물큰한 습기 냄새가 코를 찌를 뿐 그냥 캄캄하다.
 
53
영호는 피스톨 쥔 손에 힘을 주어가지고 대담스럽게 회중전등을 눌렀다.
 
54
푸른 불빛이 둥글게 뻗치어나가 마주치는 곳에 유리창이 보인다.
 
55
그러나 안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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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잠깐 멈춰서서 동정을 살피다가 그대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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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이 보이던 곳에까지 와서 회중전등 빛으로 속을 굽어다보니 텅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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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거처한 자국은 남았으나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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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옆에 있는 도어를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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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바닥에 가마니 조각이 깔리고 한편 구석에는 시멘트 묻은 괭이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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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먼저에 김서방이 발견한 대로 짓다가 중지한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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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켜던 자국이 있고 담배 꼬투리며 귤껍질 같은 것이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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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밖에는 아무것도 특이하게 단서거리가 될 만한 것이 없다.
 
64
영호는 그 방에서 다시 나와 왼편으로 꺾인 복도를 걸어갔다.
 
65
벽에 세 개의 철문이 있다.
 
66
처음치를 자물쇠를 비틀어 열고 보니 공사에 쓰던 도구가 어지러이 흩어져있을 뿐 찬바람만 휙 얼굴을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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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치에는 역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기는 하나 한편 구석에 가마니가 펼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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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사람이 감금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69
그 다음치 ——— 여기는 김서방이 감금되었던 것이다.
 
70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보았으나 촛불 켰던 자리가 있을 뿐 먼저 방과 다를것이 없다.
 
71
영호는 그 방을 나와 회중전등을 한바퀴 휙 내두르노라니까 복도의 막 다른 곳에 철문이 또 한 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밀치고 들어서니까 두 가지의 색다른 향기가 코에 맡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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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값비싼 담배 냄새요, 하나는 고급 화장품이 여러 가지가 혼잡 되어가지고 나는 사치하는 여자에게서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향내다.
 
73
영호는 뛰는 가슴을 누르면서 전등불을 비추어 보았다. 그러나 불 켰던 초가 한 토막 나무통에 꽂히어 있을 뿐 네 닢이나 펴놓은 가마니 조각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한다.
 
74
영호는 촛도막을 손끝으로 집어 회중전등불에 비치어 보다가 손수건에 싸서 포켓 속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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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니를 편 근처에는 담배 금강이며 트리캐슬 같은 것을 비벼버린 꽁초가 많이 굴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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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는 전등불을 비추어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다가 드디어 기다란 머리털을 두 개 얻어내었다.
 
77
머리털과 향내…… 이 두 가지는 확실히 이 일당 가운데 여자가 끼여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78
이 밖에는 다른 방도 없고 더 조사할 것이 없다.
 
79
일당이 어디로 일을 하러 나갔던지 그렇잖으면 자리를 뜬 것이다.
 
80
그러나 한 놈 포로가 있으니 그를 잡아가지고 가서 족치리라고 밖으로 나왔다.
 
81
그러나 이건 또 웬일! 지키던 김서방도, 붙잡힌 포로도 보이지 아니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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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3
영호는 회중전등으로 땅바닥을 비춰보았다.
 
84
발자국이 요란스럽게 흐트러지고 방울방울 피흘린 흔적이 있다.
 
85
한편을 보니 아까 그 괴한이 들고 섰던 꾸러미가 굴러져 있다.
 
86
그러자 등 뒤에서 발짝 소리가 들리었다.
 
87
김서방이 손으로 코를 잔뜩 우디고 설설 기듯이 절름거리며 이편으로 오는것이다. 충분치 못한 회중전등불이건만 그의 얼굴에서는 땀이 흐르는 것 이완 연히 보인다.
 
88
"웬일이야!"
 
89
"달어났세요."
 
90
"네끼! 밥버러지."
 
91
영호는 홧김에 욕을 해주었다. 김서방은 대답도 못한다.
 
92
"어떻게 하다가 놓쳤어?"
 
93
영호는 그대로 애처로와서 휴지를 내어주며 조금 어성을 부드럽게 물었다.
 
94
그것은 실상 김서방으로는 부주의도 못생긴 탓도 아니었었다.
 
95
김서방은 뒤로 비틀어 쥔 포로의 두 손목을 꽉 붙잡고 있는데, 처음에는 잘 잡고 있더니 차차 몸을 비틀며 용을 쓰기 시작하였다.
 
96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뒤로 콱 젖히는 바람에 김서방은 코가 깨지고 매운 눈물과 코피가 쏟아져 나왔다.
 
97
그 서슬에 한편 손목은 놓쳤지만 그래도 한편 손목은 놓지 아니하고 이편에서 역습을 하려 하는데 이번에도 어느 겨를에 몸을 돌렸는지 포로의 곧은 발길이 김서방의 동감을 내리질렀다.
 
98
할 수 없이 한편 손을 마저 놓치고 일어서서 뒤를 좇았으나 종적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99
영호는 입맛을 다시었다.
 
100
악당의 일파는 벌써 위험을 짐작하고 자리를 뜬 것이다.
 
101
영호는 저희가 자동차를 전복시켜 죽인 줄 알았지만 김서방은 살아서 달아났고 그런데다가 노인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김서방의 활동으로 경찰의 손이 미쳐 올 것을 짐작한 것이다.
 
102
그리하여 일파들은 미리서 떠나고 하나가 뒷수습을 하느라고 남아 있다 가영호에게 붙잡힌 것인데, 그마저 놓쳐버렸으니 인제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103
서울이 좁다 해도 인구가 사십만이요 집이 십만 호가 넘는다.
 
104
그런데 이 속에다 신출귀몰하는 악당의 무리를 또다시 내놓았으니 실내 끼만한 단서도 없이 어떻게 그들을 찾아내며, 따라서 어떻게 '그 여자’ 를그들의 수중에서 구해내랴!
 
105
영호는 발을 구르고 싶게 안타까왔다.
 
106
그러나 그렇다고 지난일을 후회만 하고 있었자 소용이 없는 것이다.
 
107
영호는 괴한이 버리고 간 꾸러미를 집어들었다. 큼직한 책보에 쌌는데 그다지 무겁지는 아니하다.
 
108
김서방은 쪼글트리고 앉은 채 일어나려고도 아니한다.
 
109
"일어나요, 가게."
 
110
"저는 안 가요."
 
111
"왜 ?"
 
112
"여기서 지키다가 그놈들을 잡을 테여요."
 
113
영호는 서글퍼서 웃었다.
 
114
그러나 그 순직한 품이 영호의 마음에 들었다.
 
115
"그놈들은 여기는 절대로 오잖아요…… 다 떠짊어지고 이사를 갔는데 웬걸 오나!"
 
116
"어데로 갔어요?"
 
117
영호는 다시 웃었다. 노인과 그 여자가 이 인간을 데리고 일을 하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으랴 싶었다.
 
118
"그걸 알면 좋게!"
 
119
영호는 그가 그래도 아니 움직이려는 것을 반은 강제로 반은 달래어 겨우 데리고 내려왔다.
 
120
인제는 최후로 남은 것이 김서방의 입으로부터 그들 부녀에 관한 이야기와 사건의 내용을 알아낼 것…… 그래서 간접적으로 지금 싸우고 있는 상대자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얻어낼 것밖에는 남겨진 수단이 없는 것이다.
 
121
집으로 돌아오니 네시가 지났다. 영호는 대학병원에 또다시 전화를 걸어 오복이의 병세를 알아보았다.
 
122
그런 다음 그는 우선 김서방에게 위스키를 두어 잔 먹이어 정신을 가다듬게 하였다.
 
 
123
4
 
 
124
김서방을 잠깐 정신을 가다듬게 하느라고 위스키를 먹여놓고 그동안에 영호는 ×별장에서 얻어가지고 은 촛도막의 지문을 검사하여 보았다.
 
125
바른편 엄지손가락과 무명지의 지문이 전연히 박혔는데 줄의 섬세한 것과 손가락이 가는 것으로 보아 여자의 것일시 분명하였다.
 
126
그리고 두 개의 머리털을 현미경으로 검사해본 결과 그것은 삼십으로부터 사십 세까지의 아직 정력이 왕성한 여자의 것인 것을 알게 되었다.
 
127
그렇다면 그 일당의 수령이 여자가 아니면 적어도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수령인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다.
 
128
실험을 마치고 응접실로 돌아오니 김서방이 얼굴이 벌개가지고 오 꼼하니 앉아 있었다. 그도 웬만하면 여러 날의 많은 피로와 정신이 타격으로 해서 잠이 왔겠지만 원체 흥분이 된 터라 눈이 또렷또렷하다.
 
129
영호는 우선 노인의 성명을 물었다.
 
130
그러나 김서방은 그 두터운 입술을 벌리려고도 아니하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131
시골이 어디냐고 물어도 역시 그러하다.
 
132
아무것을 물어도 그 모양이다.
 
133
"왜? 왜 대관절 대답을 아니하느냔 말이야?"
 
134
영호는 역정이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135
그러나 표정이 둔한 그의 얼굴은 변하지도 아니하고 겨우 대답한다는 것이
 
136
"영감님서 껀 아가씨서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되구 그랬지오니까."
 
137
"고향이 강활세그려?"
 
138
영호의 이 말에 김서방은 놀란 듯이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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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사람이 '서껀’이라든가 '오니까’라든가 하는 사투리를 잘 쓰는것을 영호가 알므로 넘겨짚어 본 것이다.
 
140
"거 봐? 말 아니해도 내가 알어내잖어?"
 
141
김서방은 아무 말도 아니하고 고개를 숙인다.
 
142
"인제는 영감님도 돌아가셨고 하니까…… "
 
143
이 말에 김서방은 엥! 소리를 치고 펄쩍 뛴다.
 
144
"돌아가섰세요?"
 
145
"그럼."
 
146
"나는 영감님 달어나시라구 그랬는데, 나는 되려 달어나고 영감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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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그는 앞 탁자에 푹 엎드려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것이다.
 
148
뚝배기보다는 장맛이 낫더라고 그중에도 전등을 폭발시키고 그들과 어우러져 싸우면 영감이 달아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제법이다.
 
149
그러나 그 꾀는 도리어 실패하고 비극을 빚어낸 것이다.
 
150
김서방이 울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우는 모양이 우습기는 하나 한편 역시 비감한 마음이 들어 우두커니 앉아 바라보았다.
 
151
김서방은 한참 울다가 미친 듯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152
"그놈들을, 그놈들을 붙잡기만 하면 그저 간을 씹어먹을 테야!"
 
153
"그래 그래."
 
154
하고 영호는 그의 말을 받았다.
 
155
"붙잡어야 하고말고…… 또 아가씨도 어서 구해내야 하고…… 그러니까 영감님이랑 아가씨랑 아무한테도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그건 해치려는 사람한테 말이지 나같이 도와주려는 사람은 묻기 전에 되려 이야기를 해주어야지…… 응 그렇잖어?…… 글쎄 영감님이 돌아가신 것도 큰일인데, 더구나 아가씨가 저렇게 잽혀갔으니 어쩔 테야?"
 
156
김서방은 울음을 그치고 주먹으로 부은 눈을 씻고 나서 한동안 까막까막 생각 하였다. 영호는 유도신문(誘導訊問)의 방식을 따라 우선 오늘 저녁 이야기부터 물었다.
 
157
김서방은 그가 도망해 나오던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자동차를 타고 달아나는데 또 한 대 자동차가 따라오다가 없어지고 화물차가 쫓아왔다는것, 그리고 그것이 필경 악당의 꾀에 넘어간 것이란 것, 그들의 습격을 받아 인제는 옴도 뛰도 못하게 생겼으니 자기 하나 죽을 셈 치고라도 한바탕 부스댄 것이 영감님이 그와 같이 해를 입었다고 하며,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158
그러다가 그는 드디어 노인과 그 여자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 나중에 아가씨더러 자기에게서 들었다고 하지 말라는 부탁을 단단히 한 뒤에.
 
 
159
5
 
 
160
"영감님 성명은?"
 
161
영호는 위스키 한잔을 더 부어주고 자기는 식모가 가져다 주는 홍차를 집어 들었다.
 
162
김서방은 위스키를 들이켜고 나서 대답을 한다.
 
163
"성은 이씨고 함자는 재자(在字) 석자(錫字)여요."
 
164
"이재석씨? 응…… 그러고 아가씨는?"
 
165
"학희, 배울학자 계집희자."
 
166
"응 학희 학희…… 어찌 학학자를 쓰잖았을까?!"
 
167
영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168
"그래 고향은?"
 
169
"강화(江華)예요…… 바로 부내지요."
 
170
"그런데 지금까지 강화서 살았나?"
 
171
"아니요…… 그때가 그러니까 제 나이 ——— 제 성은 김가요 이름은 대성이라고 영감님이 지어 주섰지요 ——— 제 나이 열여덟 살 때니까 발써 십 오 년이나 됩니다…… 그때 떠나섰지요."
 
172
"어데로?"
 
173
"모르지요…… 떠나신 뒤에 누구는 청국(中國)으로 가섰다기도 하고 누구는 양국(洋國)으로 가섰다고 그랬으니까…… 그때 참!…… 도무지 웬 일로 그리 섰는지 모르겠어요!"
 
174
김서방은 한숨을 푸 내쉬고 자못 감개로운 듯이 옛일을 추억하는 눈으로 한눈 질을 하며 말을 계속한다.
 
175
"저는 그때 영감님 ——— 그때는 나리님이지만 ——— 그 어른 덕에 서울 와 서한 일 년이나 학교에 다녔더랍니다. 아마 배재학교지요…… 그 어른은 일 즉 개화를 하시고 또 예수를 믿으섰지요. 참 착하고 어즈신 어른이지요…… 제가 글 쎄 세 살 때 어미아비를 잃고 의지가지 없이 된 것을 데려다가 꼭 당신님 아들같이 길러주섰답니다…… 글방에 보내주시고 학교에 보내주시고 그러고 서울까지 공부를 보내주시고…… 실상 그 어른이 아드님이 없으 섰어요. 초취 아씨한테서 지금 학희 아기를 보시고는 상처를 덜컥 하섰지요. 아기가 제 돌 잡히든 해지요 아마…… 그러고 나서 서울로 재취장가를 드섰지요. 재취아씨는 그때 학교 졸업을 하신 신식 아씨였어요. 그러고 그이가 시집 온 게 열아홉인지? 어쨌든 저보담 두 살인지 한 살인지밖에 더 자시진 안 했어요…… 신랑이 나이 많고 신부가 나이 적으면 무척 귀애하시는 게 아마어 데나 일반인지 나리님이 새아씨를 귀애하시는 품이란 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안허시게 귀애하섰지요…… 그런데 하로는 곧 내려오라는 편지를 하 섰길래 부랴부랴 내려가 보니까 짐을 꾸려노시고는 인제 당신은 멀리 가시니 학비를 대줄 수가 없다고 그렇게 말씀하시겠지요. 하도 섭섭해서 울으니까, 돈 백 원을 주시면서 당신도 인제는 가난해서 좀더 주고 싶으나 할 수 없다고 그러시겠지요. 그러고 이 돈으로 밑천이나 삼어 인천 같은 데 가서 장사나 해먹고 살라고…… 그러시고는 그 이튿날 종적도 없이 그냥 떠나 바리섰지요."
 
176
김서방은 이야기를 끊고 또다시 한숨을 푸 내쉰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말을 계속한다.
 
177
"그때 그런 일만 없었어도 내가 지금쯤은 공부를 해서 내 신세도 괜찮았을 텐데…… 그래 저는 그 뒤에 바로 인천으로 와서 그 돈 백 원으로 장사를 했지요. 그렇지만 인제 열여닯 살 먹은 놈이 전에 해보지 못한 노릇을 어떻게 하겠읍니까? 얼마만에 밑천을 털어먹고 그때부터 일본집 심 부림꾼으로 음식점 더부살이로 선창 도까다로 별별 짓을 다하면서 인천바닥에서 이 날 이때까지 살어왔지요…… 그러다가 작년 이맘때쯤해서 강화 다니는 똑딱선(發動機船[발동기선]) 선창에를 볼일이 있어서 나갔더니, 아 그 어른 이배에서 내리시겠지요! 첨에는 몰라뵈었어요. 인제 그 어른이 마흔 아홉 이 신 데 그러고 떠나실 때는 펄펄한 젊은 어른이섰는데…… 그러고 등 뒤에는 겨우 알어보게 생긴 학희 아가씨가 아주 다 자란 처녀가 되어 가지고 따라 나리 시고…… 두 분도 저를 겨우 알어보시고는 무척 반가워하시겠지요!"
 
178
"그러면?……"
 
179
하고 영호는 중간에서 말허리를 끊고 물었다.
 
180
"그러면 그 재취한 부인은?"
 
181
"네, 그이요…… 그이는 그때 같이 가시잖앴어요…… 내가 그때 서울서 내려갔을 때 보니까 집에 아니 계섰어요."
 
182
"어데 가고 없어?"
 
183
"모르지요."
 
184
영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185
"그 재취부인 성이 무어야?"
 
186
하고 물어보았다.
 
187
"서(徐)씨지요 아마…… "
 
188
영호는 무릎을 딱 치고 고개를 여러 번 끄덕거렸다.
 
 
189
6
 
 
190
이재석이라는 그의 집은 생각컨대 재산도 있고 명망도 있어 비교적 안정 된 가정 이었던 모양이다.
 
191
그런데 그와 같이 그가 안해 ——— 지극히 사랑하는 젊은 안해와 고향을 버리고 멀리 외국으로 갔다는 것과 이번 악당의 일행 중에 중요한 인물이 여자라는 것과 또 손가락을 싼 소포 껍질에 그 안해이었던 서가의 성이 씌어 있다는 것 등의 세 가지 사실로 미루어 우선 이번 사건의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여자에 관한 것이라는 추측을 내릴 수가 있다.
 
192
즉 좀더 자세히 말하면, 이재석이라는 사람이 사랑하는 안해에게 배반을 당하고 그처럼 외국으로 떠났다가 지금 돌아와서 복수의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193
그러나 아직은 그렇다고도, 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도 단안을 내 리기에는 모든 재료가 너무도 빈약하다.
 
194
일이 그와 같이 단순하다고 보기에는 지금의 사건이 너무나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띠고 있으니까.———
 
195
영호는 김서방의 그 다음 말을 재촉하였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196
김서방은 그곳에서 옛주인 부녀를 조용한 여관으로 안내하였다는 것으로부터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197
그는 그때부터 옛날 주인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198
김서방은 옛주인에게서 많은 변화를 발견하였다.
 
199
첫째 그가 나이보다 훨씬 더 늙은 것은 물론이요, 옛날에 그다지도 평화롭고 마음 착하던 그가 몹시 음험하며 매정스러운 성질을 가끔 보이게 된 것과 왼편 엄지손가락이 없어진 것이다.
 
200
그밖에 십오 년 전에 떠날 때에는 그가 말한 대로 갑자기 가난해서 그랬는지 행색이 매우 초라하였는데 이번 돌아와서는 돈을 물쓰듯 하는 것이다.
 
201
그 뒤 그들 일행은 서울로 올라와서 며칠 묵은 뒤에 김서방에게는 도저히 이해 하기 어려운 여행을 시작하였다.
 
202
평양으로 신의주로 진남포 원산 함흥…… 금강산 춘천.
 
203
그리고 남쪽으로는 대구 부산 목포 군산…… 조선 십삼도의 중요한 도회지라고는 아니 가본 곳이 없이 다 돌아다니었다.
 
204
전라도 군산과 김제라는 곳과 또 삼방과 석왕사 여주는 모두 두세 번씩이나 갔었다.
 
205
그러다가 필경 서울로 다시 돌아온 것이 지금으로부터 한 보름 전이다.
 
206
서울로 올라와서도 별로 하는 일은 없었다.
 
207
그저 기껏해야 아침에 두 부녀가 계동 중앙학교 뒷산으로 산보하러 가는것 쯤 이었었다.
 
208
그러더니 하루 아침은 산보하러 나갔던 그들의 얼굴이 둘이 다 새 파랗게 질려가지고 돌아왔다.
 
209
그들은 방에서 편지 ——— 온 사이가 없는데 웬 편지인지 내어놓고 재삼 읽으면서 그렇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무서워하는 한편, 또 한편으로는 성난 눈이 불붙듯 황황 타고 이를 북북 가는 것이다. 학희는 그렇지 아니하지만 노인이. ——— 그 뒤부터 그들은 갑자기 신변을 몹시 경계하고 또 김서방더러도 무슨 일이 있든지 또는 누구에게든지 자기네 일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시켰다.
 
210
"가만 있자."
 
211
하고 영호가 말하는 중간을 잘라서 물었다.
 
212
"그 편지는 그대로 어데다 두었나? 없애바렸나?"
 
213
"영감님이 바루 찢어바렸어요. 적반하장이야! 적반하장이야! 하시면서 이를 북북 갈고 편지를 박박 찢으시는데, 아이구 나는 그 어른이 그렇게 무섭게 구시는 건 생전 처음 봤어요."
 
214
"그런데 익선동서 붙잡어간 사람 ——— 손가락 자른 사람은?"
 
215
"네 그이요…… 그이 붙잡어가든 일을 생각하면 참 신통하지요…… 아가씨가 저더러 인력거를 가지고 교동 어귀에서 기다리다가 어떻게 해서든지 태워가지고 '그 집’으로 오라고 그리세요…… 그래 시키는 대로 교동 어귀에서 기다리니까 비가 축축히 오시는데 그이가 비를 맞으면서 전차에서 내리시더니 타라고 하기 전에 인력거 이리 와 ——— 하고 부르겠지요…… 그래 가니깐 응!! 자넨가? 하고 머밋머밋하시드군요."
 
216
"머? 그러면 전부터 알든 사람인가? 누구야?"
 
217
지금 그 '이상한 손님’의 근지를 안다는 것은 여간한 큰 발견이 아니다.
 
218
영호는 급한 마음에 김서방에게로 바싹 다가앉았다.
 
 
219
7
 
 
220
"알구말구요!"
 
221
김서방은 자랑스럽게 설명을 하는 것이다.
 
222
"그이가 바로 영감의 이종 되시는 이랍니다. 영감님 재취아씨 중매도 그이가 스신걸요."
 
223
영호는 부지중에 무릎을 탁 치면서 혼잣말로
 
224
"그러면 그렇지!"
 
225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226
"성명은 무어야?"
 
227
"유씨지요. 유대 설씨라고…… "
 
228
영호는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서광옥…… 유대설…… 이라고 소포에 쓰인 두 이름을 중얼거렸다.
 
229
김서방은 그뿐 아니라 그 이상한 손님인 유대설이를 맨처음 서 울 거리에서 발견 하였다.
 
230
잠깐 심부름이 있어서 옷도 갈아 입을 사이가 없이 교동 어귀까지 나갔었는데 그곳에서 그와 무뜩 만났다.
 
231
수염이 많이 나기는 하였으나 갈데없는 그인지라 김서방은 반가이 인사를 하였다.
 
232
그랬더니 그는 처음은 모르는 체 하다가
 
233
"응 대성이 …… 참 오래간만이군. 지금 무얼 하나?"
 
234
하고 물었다.
 
235
김서방은 사실대로 댈 수는 없고 마침 땟국이 묻은 바지저고리를 입은 터라
 
236
"병원에서 인력거를 끝어 먹읍니다."
 
237
고 둘러대었다.
 
238
그와 갈린 뒤에 여관에 돌아가 그 말을 하니까 부녀가 기뻐하는 품이란 여간 아니었었다.
 
239
그 뒤에 학희는 며칠 동안 밤으로 늦게 나다니더니 김서방을 시켜 익선동 그 집을 세로 얻게 하고 또 인력거 헌 것을 사다가 정말 인력거꾼을 만들었다.
 
240
그를 붙잡아 오던 날 밤 유씨는 김서방의 인력거를 타고 올라가면서
 
241
"이 거 남의 자가용 인력거를 이렇게 타서 안됐군!"
 
242
하기도 하고 또
 
243
"이 사람 혹시 누구 만나더래도 내가 여기 있더란 말은 말게."
 
244
하고 당부를 하였다.
 
245
그 다음 사실은 영호도 잘 아는 터이다. 그러나 더 알고 싶은 것은 그 유씨와 노인 간에 오고가고 한 이야기다.
 
246
그러나 김서방이 보기에도 바로 몽혼마취를 시켜 묶어놓고 손가락을 잘랐고 그러고는 깨어난 담에 부녀가 무어라고 그와 이야기를 하였으나 밖에서는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247
김서방은 이야기를 다 마치고 자못 피곤한 듯이 눈을 감았다.
 
248
"그런데 …… "
 
249
하고 영호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250
"그 재취아씨가 친정이 서울 어데며 학교는 무슨 학교에 다닌지 몰라?"
 
251
"학교는 몰라도 친정댁은 양사골이 어덴지 양사골이라고 들었어요."
 
252
영호는 그만해 두고 김서방을 아래층 상준이의 방으로 데려다 주고 편히 쉬게 하였다.
 
253
영호는 다시 이층으로 올라와 두 곳에서 집어온 짐을 뒤지었다.
 
254
여러가지 자세히 뒤져보고 싶은 것이 많으나 우선 급한 것은 사진이다.
 
255
필경 찾는 사진이 나왔다. 학희 편의 트렁크 속에서 꺼낸 앨범에 노인의 젊었을 때인 듯이 모습이 같은 젊은이가 그때로 하면 모던걸로 차린 여자와 박은 사진이 한 장 붙어 있다.
 
256
상상한 바와 같이 요염하고도 독부형으로 되었다.
 
257
영호는 실컷 바라본 뒤에 두 편의 집이며 영감님의 외투 그 밖에 이번 사건에 수집된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전부 침실로 가지고 들어가더니 감쪽같이 어디다 숨겨버렸다.
 
258
그는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준이더러 인제 밝는 아침 일찍 종로 사정 목 ××양화점에 가서 '부르독꾸’를 찾아가지고 동무를 데리고 계동으로가라는 전갈을 하라고 이른 뒤에 비로소 침대 속의 사람이 되었다.
 
259
잠깐 눈을 붙이노라니까 새벽같이 달려온 게 주먹코의 일행이다.
 
260
——— 지금으로부터 십오륙 년 전에 강화로 시집간 서 무엇이라고 하는 여자가 서울서 어느 학교에 다녔으며, 그 집안의 그 뒤의 종적을 양사골 일대에가 서 알아오라.
 
261
이것이 영호가 돈 오 원씩과 한가지로 내어준 분부다.
 
262
영호는 다시 침실로 들어가 늘어지게 한잠을 자고 일어났다.
 
263
오후 한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김서방이 자고 있는 것을 굽어다 보고 나오느라니까 마침 찾아온 이가 ×××경찰서의 형사 두 사람이다. 이번은 진짜 형사다.
【원문】6. 김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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