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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순(朴始淳) 일기(日記) - 운불일기(雲紱日記) ◈
◇ 정유년(1897)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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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순(朴始淳)
- 임실문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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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유년(丁酉年, 1897) 2월
 
 
 

2월 1일

 
3
庚申 맑았다. 당분간 세수할 수 없었으니 답답하였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며 또 옥사로 인해 객사에서 망배례와 권정례를 행하였다. 갈계 종인이 작별하고 돌아가려고 해서 원익 숙질에게의 감사 편지를 부탁하였다. 승지 조민희(趙民熙)의 편지가 왔으니 지난 10일에 완부에게 보낸 것이다. 진사 김교성, 남면 훈장 김사명(金思明), 좌수 이병록(李炳錄), 이인 선비 김성희(金聲熙) 등이 와서 만났다. 선비 감민형, 신평 훈장 한봉리가 천어(川魚)392) 한 관을 가지고 와서 만났다. 동복 종인 경환(敬煥)과 같은 군의 선비 정진성(丁鎭成)이 장차 서울에 올라가 역방해서 여기에 머물렀다.
 
 
 

2월 2일

 
5
맑았다. 당분간 세수할 수 없었으니 답답하였다. 동복 종인이 작별해서 서울에 올라갔으니 체내대장(遞內大丈) 박정양(朴定陽) 및 간동 수령 박세환에게의 안부 편지를 부탁하였다. 신평 대리 종인 형근(亨根) · 기인(璣仁), 구고 종인 종헌 등이 와서 만났다. 오늘의 옥사에 대해서 초검(初檢)393)하고 완부에게 서장을 보고하였다. 옥전 선비 오채규(吳彩圭)가 와서 만났다.
 
 
 

2월 3일

 
7
맑았다. 당분간 세수할 수 없었으니 답답하였다. 아들 익이 옥전에서 돌아왔다. 학산 진산 오영석이 와서 만났다. 선거리(仙居里) 종인 동근, 상인(喪人) 오석도(吳錫濤)가 와서 만났다. 금동 종인 중엽(重燁)이 와서 만났으니 종인 홍근의 편지를 수전하였다. 답장해서 보냈다. 상동 선비 심진하(沈鎭廈)가 와서 만났으니 송현 시직 김씨의 편지를 전하였다. 이는 지난 섣달 보름에 보낸 것이다.
 
 
 

2월 4일

 
9
흐렸다. 당분간 세수할 수 없었으니 답답하였다. 읍저 문사일(文士一)이 읍의 일로 서울에 올라가려고 해서 봉조하(奉朝賀) 어른 김병국(金炳國)과 사동 참판 김승규(金昇圭)에게 안부 편지를 부탁하였다. 장동(壯洞) 국자장(國子長) 서상봉(徐相鳳), 승지 정인섭(鄭寅燮), 친척 심의경(沈義慶), 진사 헌경(軒慶), 친척 주사 이용필(李容弼), 차동 비서(祕書) 홍정희(洪正憙), 강진 선비 유관환(柳琯煥), 덕치 선비 이병원(李秉榞) 등이 와서 만났다. 신시 이후부터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상동 어른 선비 김기표(金箕標)가 와서 만났다.
 
 
 

2월 5일

 
11
당분간 세수할 수 없었으니 답답하였다. 흐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렸으나 하루 종일 개지 못하였다. 오늘은 춘상갑(春上甲)394)이었고 날씨가 이와 같이 되었다. 이언이 말하는 것을 실히 근심하고 번민하였다. 남원 법촌(法村) 친구 강한흠(姜漢欽)이 찾아왔고 그 백씨(伯氏) 주사 강규흠(姜奎欽)의 편지를 수전하였다. 부여 족제 화순(華淳)이 찾아왔고 편으로 인해 오진산에게의 편지를 부탁하였다. 견답하지 못하고 오진산의 편지도 역시 왔다. 완부 목사 및 송촌 수령 김씨의 편지가 같이 왔다. 선비 한홍석의 편지가 있고 2종을 보냈다. 이를 답사(答謝)하였다. 전주 사평에 머무른 친구 신석영(申錫永)의 편지가 와고 답장해서 보냈다.
 
 
 

2월 6일

 
13
아침에 맑고 저녁에 흐렸다. 선비 유제근(柳濟根), 한학렴(韓學廉), 노석우(盧錫愚), 하동 종인 홍진(泓鎭) · 홍신(泓信), 선비 최봉기(崔鳳紀) · 봉길(鳳吉)、이재옥、정인귀(鄭寅龜)、이헌영(李憲榮), 상동에 우거한 감찰 조운식(趙雲植), 선비 전성학(全性學)、심석원(沈錫遠)、송희옥(宋曦玉)、오병곤(吳秉坤)、한형리 등이 와서 만났다. 탄운의 아들과 형제가 고귀하기 때문에 충주 참봉 홍대식(洪大植)에게의 편지를 부탁하였다. 읍편으로 인해 완주 목사에게 안부 편지를 보냈다. 또 송촌 수령 김씨 및 생원 윤광오(尹光五)에게 편지를 보냈다. 오진산의 답장이 왔다. 고부에 우거한 족제 내순(萊淳)과 김제 종인 병호가 찾아왔다. 도정 홍병일(洪秉一)의 편지가 있고 아직 답장하지 못하였다.
 
 
 

2월 7일

 
15
아침에 맑고 저녁에 흐렸다. 부여 족제가 안의 선산 추행(楸行)395)한다고 하기 때문에 서상동(西上洞) 종인 재화에게의 편지를 부탁하였다. 도훈장 이동의(李東儀), 종인 종원, 선비 유재수、심진하、변규호, 종인 홍근, 선비 이귀현 등이 와서 만났다. 신시 이후로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날 저녁에 석전대제가 있었다. 병이 아직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식당에 갈 수 없었다. 저녁밥을 먹어난 뒤 비를 무릅쓰고 교궁에 가였다. 행사를 끝나고 돌아갔을 때는 이미 밤 사경이었다. 비가 개고 별이 나왔다. 과천 척제 이수규(李守珪)가 찾아왔다.
 
 
 

2월 8일

 
17
맑았다. 도곡 참봉 김성철(金星澈), 구고 선비 한규현(韓圭炫) · 규혁(圭赫), 선비 김사명、이경우(李卿宇)、이규필 등이 와서 만났다. 선비 유재수가 와서 만났으니 머물렀다. 이날 저녁에 사직대제가 있었다. 병으로 인해 친히 일을 할 수 없었다. 송촌 수령 김씨의 편지, 진안 수령의 편지가 인편으로 왔다. 오진산의 편지가 있으니 답장해서 보냈다. 윤도정의 편지가 있고 답장해서 보냈다.
 
 
 

2월 9일

 
19
맑았다. 완주 목사의 답서, 송촌 수령 김씨 · 생원 윤광오의 답장이 같이 왔다. 선비 박원풍(朴元豊)、전경규、전신택(全愼宅), 신학균(申鶴均), 향원 신현대(申鉉大), 선비 이병익(李炳益) 등이 와서 만났다. 고부 족제, 김제 종인 고귀하였다. 도정 오석우가 와서 만났다.
 
 
 

2월 10일

 
21
아침에 맑고 저녁에 흐렸다. 아들 익이 고귀하기 때문에 여산 수령 및 우산 친구 이씨에게의 편지를 부탁하였다. 과천 친척 이씨가 고귀하기 때문에 승지 강경희에게의 편지를 부탁하였다. 상동 선비 노삼수(盧三壽)가 와서 만났다. 상인 오석도가 고귀하였기 때문에 오진산에게의 편지를 부탁하였다. 완부 감찰 정씨의 편지가 있었다.
 
 
 

2월 11일

 
23
아침에 흐리고 저녁에 맑았다. 진안 수령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고 인편 송촌 수령 김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 감찰 정군일(鄭君一)에게 답장을 보냈다. 화호에 머무르고 있는 유생 고여홍과 강학수(姜鶴秀)의 편지가 있고 답장해서 보냈다. 상동 선비 심지원(沈志遠)、 송인희(宋仁熙), 종인 영수 등이 와서 만났다. 함양(咸陽) 백전(柏田) 종인 효수(孝綉) · 진현(震鉉) · 주현(周鉉) 등이 찾아왔으니 개평(介坪) 교리 노씨의 편지를 전함으로 그래서 머물렀다. 진사 백영수의 편지가 있고 답장해서 보냈다.
 
 
 

2월 12일

 
25
날씨가 자주 흐렸다. 선비 정원휴(鄭源烋), 빙채(氷寨) 선비 나동환(羅東煥)이 와서 만났으니 인편 오진산에게 편지를 보냈다.
 
 
 

2월 13일

 
27
맑았다. 함양 종인 세 명이 고귀하였음으로 교리 노씨에게 감사의 편지와 운봉 갈계 종인 용근에게의 편지를 인편 부탁하였다. 심원사 스님 상정(尙正)이 산자(散子)를 기지고 와서 물렀다. 상동 선비 심진하, 진사 최홍석, 중원(中院)에 머무른 종인 홍구(泓耉), 종인 종원, 선비 이영규 등이 와서 만났다. 홍주 안면도 친구 김복규(金復圭)가 찾아왔고 그 원장 승지 병년(炳秊)의 편지를 전하였다. 그래서 머물렀다. 호남 직지(直持) 이승욱(李承旭)이 와서 숙박하였다. 죽림암(竹林庵)에 왕래한 사람은 몇 명이 있었다. 선비 전경규가 전주에서 돌아와서 만났다. 도정 윤태일이 사차교 장의의 일로 와서 만났다. 오진산의 답장이 왔다. 홍태산(洪太山)이 와서 임 동생이 별일이 없다고 알았으니 가히 다행이었다. 우산 친구 이씨의 편지가 있다. 부여 족제 화순이 안의에서 추행해 와서 머물렀다.
 
 
 

2월 14일

 
29
새벽에 가랑비가 갑자기 내렸는데 바로 갰고 저녁에 맑아졌다. 부여 족제 작별하고 돌아갔다. 생원 박원풍(朴元豊)이 와서 만났다. 옥전 선비 홍종혁(洪鍾赫) · 종태(鍾泰)가 와서 만났다. 송촌 수령 김씨의 답장 편지가 왔다.
 
 
 

2월 15일

 
31
아침에 호리고 저녁에 맑아졌다. 아침에 운수관에 가서 망배례를 행하였고 원래대로 가서 곡위를 보고 절을 하고 나서 향교에 가서 봉심례를 행하였고 재실을 들어갔다. 도정 윤씨와 선비 이경우를 만났고 돌아갔다. 각 방을 점고하고 권정을 행하였다. 참봉 이현의(李賢儀)가 와서 만났다. 종인 종헌, 선비 한영석이 와서 만났다.
 
 
 

2월 16일

 
33
하루 종일 흐렸다. 성저 종인 찬수, 선비 송진수(宋鎭秀)、이봉숙(李鳳淑), 친구 권양수(權陽壽) 등이 와서 만났다. 진사 이병의가 상이암에서 그 강조(康祖)、강훈(康勛)과 종손 진사 강수(康洙)를 데리고 와서 만났다. 구례 냉천 종인 형원(瀅元)이 찾아와서 머물렀다. 홍주 친구 김씨가 박별하고 돌아싸으니 인편 수령 김병년(金炳年)에게의 감사 편지를 부탁하였다. 또 보령 안현(鞍峴) 승지 김복한(金福漢)에게 편지를 보냈다. 읍편으로 인해 완주 목사 및 김 수령에게 안부의 편지를 보냈다. 전동 김씨의 편지가 왔으니 2월에 완부 오위장 김제완의 집에 통해서 보낸 것이었다.
 
 
 

2월 17일

 
35
맑았다. 이른 아침에 전의 족제 용순(容淳)이 완부에서 찾아왔고 직지(直指)396)에 따라 온 것이다. 여러 해에 격조 끝나서 태산(太山)이 돌아온 것은 아주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아들 익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산 친구 이씨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고 또 면천(沔川) 어른신 이사문(李思文) 및 관리 유치헌(兪致憲)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 부여에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다. 수원대(水源垈) 족질 동근, 상동 도사 정혁조(鄭赫朝), 낙촌 참봉 한경리, 선비 홍종연、전경택(全慶宅), 종인 영수, 선비 노학규, 하북 훈장 나한두(羅漢斗) 등이 와서 만났다.
 
 
 

2월 18일

 
37
맑았다. 우체의 편으로 인해 송현 시직 김씨 및 수교에 머무른 남원 선비 이만기의 편지가 왔다. 완주목사 및 송촌 수령 김씨의 편지가 왔다. 오산 친구 권씨 및 선비 이상호(李相鎬)와 같이 묏자리를 보러 갔다. 돌아와서 동복 선비 정진성이 서울에서 돌아와 만났고 종인 경환의 편지를 전했다. 유생 마기섭、박준옥(朴準鈺) 이 와서 만났다. 편으로 인해 완부에 머무른 유생 윤광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2월 19일

 
39
맑았다. 남원에 머무른 족제 용순의 편지 2개 차례로 왔으니 답장하고 보냈다. 종인 영수가 큰 올챙이 한 마리를 가져 와서 만났다. 하동 선비 이영우(李英宇)에게 편지를 보냈다.
 
 
 

2월 20일

 
41
맑았다. 종인 종헌이 나로 하여금 조병(調病)하기 위해 이종(二種)을 보냈으니 감사하였다. 선비 한형리, 종인 홍근, 참봉 이제성, 선비 전경규 등이 왔다. 족제 용순의 편지가 왔으니 각 읍 수령이 와서 수의(繡衣)397)를 뵈는 체례를 고하였다. 윤광오의 편지가 왔다. 종인 종원 · 정두(鼎斗)가 와서 만났다. 친구 홍종국이 와서 만났으니 여산 수령의 편지를 전하였다. 그는 이번 달 초열흘날에 보낸 것이었다. 도정 윤씨의 편지가 있으나 아직 답장하지 못하였다.
 
 
 

2월 21일

 
43
새벽에 완주목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평명에 남원으로 떠나 가였으니 병이 남긴 채 바람을 무릅써서 실히 답답하고 불쌍하였다. 오수(獒樹)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어 말에 먹이를 먹이고 참봉 이씨도 그렇게 하였다. 이어 남원읍에 도착하였다. 여관에서 족제 용순에게 통인을 보냈으니 얼마 안돼서 나와 만났다. 치진장(馳進狀)과 공보(公報)를 올려 어가서 어사를 뵈고 읍의 사무를 간략하게 진술하였고 고귀하였다. 참봉 구중식(具重植)을 만났으니 이는 종사 수행인이었다. 족제도 역시 머무르게 하여 인사말을 나눈 되 참봉 구씨가 술과 술잔을 가져 들어오라고 명하였다. 술은 세 순배를 돈 후에 작별해서 나갔다. 관아에서 남원 수령 심상황(沈相璜)을 만나고 다소를 간략하게 얘기하였다. 공주에 우건한 신○○(석영의 이다) 찾아와서 수령이랑 해어지고 여관에 들어갔다. 前府 우리(郵吏)398) 강진태(姜鎭泰) 부자가 찾아와서 아침저녁의 밥을 강진태 집에서 온다고 해서 참으로 불안하였다. 운봉 주서 박봉양이 수감(繡甘)에게 잡혀 와서 머무른다고 들었으니 술을 보내라고 명하였고 통인으로 하여금 가서 물었다. 남원 선비 이종세가 서울에서 아는 사람이었다. 先書追問 찾아와서 간략하게 그 동안 그리움을 얘기하였으니 조금 위로하였다. 이어 묵게 히였다.
 
 
 

2월 22일

 
45
아침에 흐리고 바람이 셌다. 족제 용순이 잠시 나와서 만나고 작별하였다. 식사한 후 바로 떠났다. 오수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 먹이를 먹였다. 읍 문안사가 왔다. 탄운의 편지를 봐서 군에 아무 일도 없는 것을 알고 가히 다행이었다. 이어 관아에 돌아가고 홍원(洪原) 선비 홍배유(洪配裕)가 광주에 가는 길에 역방하였다. 여러 해에 격조 끝나서 아주 기쁘고 안심이 되었다. 운봉 갈계 종인 용근 · 형근이 와서 만났으니 종인 원익의 편지를 수전하였다. 끝에 머물렀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비가 떨어졌다.
 
 
 

2월 23일

 
47
비가 개는 뜻이 없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에 이르러 일찍 서우(鋤雨)로 되었다. 함양 사금동(賜琴洞) 산송 일로 종인 용근 · 종원을 보내 상경시키고자 하였다. 판부사 심순택(沈舜澤)、정범조(鄭範朝), 찬정(贊政) 박정양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 전동 김씨의 아들 시직, 김학수(金學洙), 조민희(趙民熙), 박세환(朴世煥), 참서 윤경규(尹庚圭)、김중환(金重煥)、한진창(韓鎭昌) 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 함경도 관찰사 서정순(徐正淳)에게 편지를 보냈다. 홍원 종인 도정 인화(寅和), 도정 박○수 집에 가는 편지는 같은 봉투에 있으니까 한 편지로 보였다. 한림(翰林) 서상훈(徐相勳)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는 咸府 심진표(沈鎭杓)에게 納傳하게 하였다. 선비 전경규가 와서 만났다. 함양 이방 박문광(朴文廣)의 고목이 와서 갈계의 편에 따라 온 것이다. 오진산의 편지를 답장해서 보냈다. 선비 이영우의 답서가 왔다. 선비 남원 김영술(金英述) · 김호술(金浩述)이 와서 만났다.
 
 
 

2월 24일

 
49
아침에 비가 있었다. 처음에 二吹 후에 완주에 가려고 하였는데 비로 인해 가지 못하였다. 상사(上舍) 심헌경, 참서 정준시, 승지 정인섭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 공주 송곡 종인 오위장 윤수에게 편지를 보내어 상경할 종인에게 부탁할 예정이었다.
 
 
 

2월 25일

 
51
비가 하루 종일 개지 않았으니 내와 도랑의 물이 엄청 불었다. 삼경우로 삼을 수 있다.
 
 
 

2월 26일

 
53
비가 조금 개었는데 하루 종일 흐리고 해가 보이지 않았다. 선비 이재옥、이봉숙、이윤의 등이 와서 만났다. 홍원 선비 홍씨가 광주부에 갈 것이라서 작별하였다. 순창 수령 친구 김건한(金建漢)에게 편지를 보냈다. 광주 수령 경규, 고창 수령 성규, 종인 형근 등이 고귀하였다. 유사 도원익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종인 용근이 상경으로 인하여 종인 종원의 집에 나왔다. 여산 수령 완주에 머물러 쓴 편지가 왔다.(이번 달 23일 나간 것이다.) 완동(完東) 선비 최상규(崔庠奎)의 편지가 왔다.
 
 
 

2월 27일

 
55
아침에 흐렸다. 완부로 길을 떠나 관촌에 이르러 박준옥의 아버지가 길의 왼쪽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집에 가게 하여 술을 올린 되 이어 아침도 올렸다. 매번에 폐를 끼쳐서 또한 심히 불편하였다. 준옥 형제가 완부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못 하였다. 신평 훈장 한봉리와 같이 서울에 간 종인 종원 · 용근이 와서 만났다. 이어 길을 떠나고 가는 길에 감역 정기호를 만나 완부에서 돌아온다고 하였고 또 완서 참봉 이용섭이 부탁한 편지를 보았다. 송촌에 이르러 승지 김씨의 집에 가는데 김씨가 나와 마중하였으니 안부를 얘기하였다. 대대장 김한정도 때마침 있으니 그와 인사하고 나서 그는 작별해서 떠났다. 생원 윤광오와 정〇〇(詩號 鶴山)이 와서 만났다. 주인이 어린 종으로 하여금 〇기상을 올리게 하고 주인과 수작하였고 간략하게 옛일을 얘기하고 작별하였다. 감찰 정씨의 집에 들어가서 날이 이미 저물었다. 이날 병이 남아 있고 행역(行役)399)도 있고 더불어 주곤(酒困)400)이 있어 밤에 잠을 자기 편안하지 않았다. 참으로 답답하였다. 신시(申時) 말에부터 작은 비가 내리고 밤도록 주룩주룩 내렸다.
 
 
 

2월 28일

 
57
맑았다. 종인 종원이 작별하고 서울로 떠났다. 선무당(宣巫堂)에 관색 통자(通刺)를 불어와서 만났다. 간략하게 읍의 일을 진술하였고 바로 고귀하였다. 주인의 집에 돌아가고 통인으로 하여금 대대장 윤광오에게 致喝하게 하였다. 참봉 이용섭이 와서 만났다. 안동(安洞) 주서 민영만(閔泳晩)이 외간(外艱)을 당하여 결제(闋制)가 오래지 아니라고 들으니 위문하는 편지와 여간 부의금을 주인으로 하여금 편에 따라 전송하게 하였다. 수령 김씨가 밤의 기거를 푠지로 물어봤는데 답장해서 보냈다. 돌아갈 때에 습운(濕雲)이 비가 오는 뜻이 아직 있다. 학산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 먹이를 먹이었다. 본군에 문안사가 와서 밤에 별일이 없는 것을 알고 가히 행하였다. 이어 오원(烏院)에 이르러 거의 황혼이 가깝게 돼서 횃불을 들고 관아에 돌아갔으니 밤이 이미 을야에 되었다. 색장 이종학, 선비 윤태근、이영우 등이 찾아왔다.
 
 
 

2월 29일

 
59
맑았다. 도훈장 이동의, 선비 한규태, 진안 선비 김태식 등이 와서 만났다. 참봉 이제성이 신평에 지나고 편지가 있고 답장해서 보냈다. 소년 윤병제가 와서 만났다.
 
 
 

2월 30일

 
61
아침에 흐리고 저녁에 비가 왔다. 선비 전경규가 와서 만나고 행정에 간다고 하였고 이어 작별하였다. 강진 신촌 사과(司果) 이규채(李圭采)에게 편지를 보냈디. 옥전 색장 한홍석의 편지가 있고 청약(淸藥) 2되를 보내었다. 답장하고 감사하였다. 진안 수령이 편으로 인해 편지가 왔다. 참봉 이현의의 전서가 오고 술 2병 · 꿩 1마리를 보냈다. 참으로 감동하였다. 비가 하루 종일 개지 않았다.
 
 

 
62
* 각주
 
63
392) 천어: 냇물에서 사는 물고기.
64
393) 초검: 살인사건이 있을 때에 첫 면으로 행하는 검시(檢屍).
65
394) 춘상갑: 입춘이 지난 뒤 첫 번째 돌아오는 갑자일. 이 날에 비가 오면 큰 흉년이 든다고 함.
66
395) 추행: 조상의 산소에 성묘하러 감. 후손들이 조상의 무덤가에 가래나무를 심은 데서 유래.
67
396) 암행어사를 달리 이르던 말.
68
397) 암행어사의 별칭.
69
398) 역참의 아전.
70
399) 여행의 피로와 괴로움.
71
400) 술을 마셔서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
【원문】정유년(1897)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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