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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순(朴始淳) 일기(日記) - 운불일기(雲紱日記) ◈
◇ 을미년(1895)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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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순(朴始淳)
- 임실문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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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을미년(乙未年, 1895) 12월
 
 
 

12월 1일

 
3
丁卯. 동틀무렵에 시찰장(視察丈)과 함께 운수관(雲水館)에 가서 망배례(望拜禮)를 행하고 이어서 망곡위(望哭位)에 나아가니 곡진애(哭盡哀)를 행하니 망애(罔涯)의 아픔이 갈수록 더하고 나아지지 않았다. 이어 교궁(校宮)에 가서 분향례(焚香禮)를 행하고 재실(齋室)에 들어는데, 장의(掌儀) 이영우(李璟宇)가 입견(入見)했다. 마침내 관아에 돌아왔다. 일도면(一道面) 훈장(訓長) 오재■(吳在■), 향원 노병석(魯炳錫), 유학 강신영(姜信永)·민형(敏馨)·이병근(李秉根)·종학(鍾學), 종인(宗人) 종헌(宗憲)이 내견(來見)했다. 감역(監役) 하임용(河任容)이 내견(來見)하고 꿩 2마리를 선물로 주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시찰장(視察丈)과 주사(主事)가 입견(入見)했다.
 
 
 

12월 2일.

 
5
이른 아침에 흐렸다가 늦게 갰다. 시찰장(視察丈)께서 이른 아침에 입견(入見)하고, 장차 떠날 것을 말했다. 아침을 먹은 후에 장청(將廳)에 나가서 시찰장(視察丈), 주사(主事)와 작별하였다. 마침 앓고 있었던 고산(孤疝)이 갑자기 발병하여 서둘러 관아에 돌아왔다. 狂叫亂嚷(마구 부르짖고 떠들어 댄)傍親亦揖神 매우 가련하다. 친구 장세만(張世萬)이 또 고귀(告歸)했다. 병 때문에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고 완사장(完使丈)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를 부탁했다. 하신덕면(下新德面)에 사는 종인(宗人) 정국(鼎國), 윤도정(尹都正), 유학 이재옥(李載玉)·서준수(徐俊洙)가 내견(來見)했다. 탄운(灘雲)의 후손 이병학(李炳鶴)가 고귀(告歸)했다. 천동(泉洞)의 감역(監役) 정기호(鄭祺浩)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겸하여 송촌(松村)의 김령(金令)의 함(圅)이 11월 21일에 나왔다고 전해주었다. 병 때문에 아직 답장을 쓰지 못했다. 신시(申時, 오후 3시~5시) 이후에 하늘이 흐려졌다가 눈이 내렸다.
 
 
 

12월 3일.

 
7
흐렸다. 면천(沔川)의 등길(等吉)이 고귀(告歸)하니 그 인편으로 박령장(朴令丈)과 어도사(魚都事)에게 보내는 답장을 보냈고 또 친구 심국경(沈國慶)·노인(老人) 이사문(李思文)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 아전 유규항(兪圭恒)·치헌(致憲)·박준상(朴準相)·영진(榮鎭), 통인(通引) 유인선(兪仁善)·김종각(金鍾覺), 장의(掌儀) 이영우(李璟宇), 유학 한학교(韓學敎)·형리(炯履)·홍종성(洪鍾晟), 종인 종원(鍾遠) 등이 내견(來見)했다. 옥전면(玉田面) 청계동(淸溪洞)에 사는 유학 유재수(劉載秀, 字 경지(敬之))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는데, 이 선비는 함양(咸陽)에서 와서 본읍에 우거(寓居)하였으니 몸가짐이 단정하고 학식이 있는 선비라고 한다. 완부(完府)의 감찰(監察) 김동현(金東炫)이 와서 문안했다.
 
 
 

12월 4일.

 
9
흐렸다가 갰다. 읍의 노복(奴僕)이 돌아왔는데 시찰장(視察丈)이 진안(鎭安)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친구 정원걸(鄭遠杰)이 내견(來見)하고 그대로 묵었다.
 
 
 

12월 5일.

 
11
납일(臘日)이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흐렸다. 유학 한병리(韓秉履)·철교(喆敎)가 내견(來見)했다. 이날 밤에 눈이 내려 몇 촌이나 쌓였다. 이번 겨울은 상서로운 구름이 흡사 삼백(三白)428)과 같았고 되었고 점을 쳐보니 내년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이다.
 
 
 

12월 6일.

 
13
대한(大寒). 이른 아침에 갰다. 점심때부터 다시 흐려지고 눈이 내렸다. 감찰(監察) 김동현(金東炫), 아전 김화형(金和炯)이 고귀(告歸)했다. 그 편에 완사장(完使丈)과 송촌(松村)의 김령(金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인면(里仁面)에 사는 유학 김성희(金聲熙)·양석구(楊錫九), 주천(舟川)에 사는 유학 이구현(李龜鉉)이 내견(來見)했다. 윤도정(尹都正)과 이장의(李掌儀)가 입견(入見)했다. 영촌(嶺村)에 사는 참봉(參奉) 이현의(李賢儀)가 교렴(轎簾)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보내와서 답장을 보냈다. 한밤중이 되어서도 눈이 그치지 않았고. 깊이 몇 촌이나 되었다.
 
 
 

12월 7일.

 
15
이른 아침에 갰다가 늦게 다시 흐려지고 눈이 내렸는데 잠시 내린 눈이 몇 촌 가량 되었다. 하동(下東)에 사는 유학 이윤의(李潤儀)·홍종성(洪鍾晟)·유재수(劉載秀)가 내견(來見)했다.
 
 
 

12월 8일.

 
17
날이 갰다. 남원(南原) 오산(五山)에 사는 친구 권양수(權陽壽)의 편지가 몇 사람을 거쳐서 도착했다. 유학 한형리(韓炯履)과 이재옥(李載玉)이 내견(來見)했다. 삼봉(三峰)에 사는 진사(進士) 최홍석(崔弘錫)이 편지를 보내왔고, 주효(酒肴) 4가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매우 고마웠다. 답례하였다.
 
 
 

12월 9일.

 
19
인시(寅時, 오전 3~5시) 초에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천둥같은 큰 소리가 있었다. 아직까지 없었던 일이니 재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유학 이재옥(李載玉)·재욱(載旭)이 내견(來見)했다. 유학 윤태윤(尹泰允)이 내견(來見)하고 주효(酒肴) 3가지를 선물로 주었다. 매우 고마웠다. 도정(都正) 홍병일(洪秉一)이 유학 송희옥(宋曦玉)과 함께 내견(來見)하였다. 유학 송희옥(宋曦玉)은 곶감과 살아 있는 꿩을 선물로 주었는데, 도리어 편안하지 못했다. 남부(南府) 참서관(參書官) 김철선(金喆善)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지난 2일에 보낸 것이었다. 태인(泰仁) 산내면(山內面) 생(生) 김진풍(金鎭豊)이 내견(來見)했다. 송촌(松村)에 사는 김령(金令)이 편지를 보내왔고 천폭(千幅)의 화전지(花箋紙)를 선물로 보내왔다. 매우 고마웠다.
 
 
 

12월 10일.

 
21
맑았다. 진사(進士) 한흥교(韓興敎)가 내견(來見)했다. 윤도정(尹都正)이 입견(入見)했다. 강진면(江津面)에 사는 유학 정진수(鄭振綏)·유관환(柳琯煥)이 내견(來見)했다. 경무교(京武橋)의 판관(判官) 서은상(徐恩想)의 편지가 상동편(上東便)으로 보냈왔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매우 기뻤다. 참의(參議) 엄석관(嚴錫瓘)이 서울에서 내려와서 내견(來見)했다.
 
 
 

12월 11일.

 
23
흐렸다. 유학 홍종성(洪鍾國)·변규호(邊奎浩)·오중영(吳重英)가 내견(來見)했다. 영촌(嶺村)에 사는 참봉(參奉) 이현의(李賢儀)가 편지를 보내왔고 주효(酒肴) 4가지를 선물로 보내왔으니 또 한번 感愧를 보탰다(又添一番感愧). 생(生) 김진풍(金鎭豊)이 편지를 보내와서 답장을 썼다. 장의(掌儀) 이영우(李璟宇)가 입견(入見)했다.
 
 
 

12월 12일.

 
25
흐렸다. 하루 종일 동남풍이 불었다. 윤도정(尹都正)과 이장의(李掌儀)가 입견(入見)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 비가 여름처럼 내렸는데, 흡사 일리우(一犁雨)429)같았으니 또한 괴이한 날씨이다.
 
 
 

12월 13일.

 
27
이른 아침에 큰 비가 물 흐르듯이 내렸다. 점심때부터는 가는 눈이 흩날렸다. 유학 최봉기(崔鳳紀)가 편지를 보내왔고, 꿩과 닭 각각 1마리씩을 선물로 보내왔다. 성저(城底)에 사는 종인 영수(永洙)가 반찬 3가지를 가지고 내견(來見)했다. 밤에 눈이 내렸는데 깊이가 1척 정도 쌓였다.
 
 
 

12월 14일.

 
29
날이 갰다. 윤도정(尹都正)과 이장의(李掌儀)가 입견(入見)했다. 밤에 또 가는 눈이 땅을 덮었다(鋪地).
 
 
 

12월 15일.

 
31
날이 갰다. 이른 아침에 운수관(雲水館)에 가서 망배례(望拜禮)를 하고 이어서 망곡위(望哭位)에 나아가서 곡진애(哭盡哀)를 행하였다. 운수관(雲水館)에서 나와 교궁(校宮)에 가서 분향례(焚香禮)를 행하고 돌아왔다. 점심 무렵부터 하늘이 또 흐려지고 눈이 날렸다. 윤도정(尹都正)과 이장의(李掌儀)가 입견(入見)했다.
 
 
 

12월 16일.

 
33
날이 갰다. 삼봉(三峰)에 사는 진사(進士) 최홍석(崔洪錫), 유학 최증(崔增)이 내견(來見)했다. 유학 최증(崔增)이 살아있는 꿩 2마리와 감 1접을 선물로 주었다. 유학 전경규(全景奎)가 편지를 보내왔고 반찬 3가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답례하였다. 남면(南面)에 사는 유학 김문수(金雯秀)가 내견(來見)하고 살아있는 꿩 1마리와 감 1접을 선물로 주었다. 종인 영수(永洙)가 내견(來見)했다. 진사(進士) 이현의(李賢儀)가 편지를 보내왔고 빌려간 轎簾을 돌려주었다. 답장을 보냈다. 한산(韓山) 막동(幕洞)에 사는 유학 나용호(羅龍鎬)가 방문하였는데 그 대인(大人)의 편지와 연산(連山)에 사는 친구 장세만(張世萬)의 편지를 전해주었다. 나용호(羅龍鎬)의 대인(大人) 기환(基煥)은 예전 서울에 있을 때 서로 알던 사람이다. 나용호(羅龍鎬)를 전해 들으니 친구 심재숙(沈在淑)이 한산군수(韓山郡守)에 제수되어 이미 부임했다고 한다. 栢悅之忱이 스스로 그칠 수 없었다. 유학 심진하(沈鎭厦)가 내견(來見)했다.
 
 
 

12월 17일.

 
35
맑았다. 좌수(座首) 이종원(李鍾元), 종인 종원(鍾遠), 신평명(新平面) 훈장(訓長) 한봉리(韓鳳履), 유학 전경규(全景奎)가 내견(來見)했다. 이 날 밤에 그동안 막혔던 것을 털어놓고 또 풀었다. 실고 고생이 많았다.
 
 
 

12월 18일.

 
37
맑았다. 병증이 아직 좋아지지 않았다. 良憐良憐. 유학 나용호(羅龍鎬)가 고귀(告歸)하니 인하여 병세 때문에 글씨를 쓰기 힘들었다. 나용호(羅龍鎬)의 대인(大人)에게 보내는 답장을 쓰고, 또 한산졸(韓山倅)에게 편지를 보냈다. 친구 심재숙(沈在淑), 참의(參議) 엄석관(嚴錫瓘)이 편지를 보냈는데 병이 아직 낫지 않아서 답장하지 못했다. 남원(南原)에 사는 유학 황운룡(黃雲龍)이 입견(入見)하여 고귀(告歸)했다.
 
 
 

12월 19일.

 
39
맑았다. 병세가 조금 나아졌지만 몸이 쇠약하여 일을 맡아보지 못했다. 하운면(下雲面) 냉천(冷泉) 유학 황호원(黃浩源)이 편지를 보내왔고 감 2접을 선물로 보내왔다. 병세가 난강(難强)하여 아직 답례하지 못했다. 감찰(監察) 조재홍(趙載洪)이 편지를 보내왔고 꿩 2마리와 감 3접을 선물로 보내왔다. 유학 한학교(韓學敎)가 편지를 보내고 진미(眞米)와 초석(草席)을 선물로 보내왔다. 모두 병 때문에 답장을 쓰지 못했다. 상운면(上雲面)에 사는 유학 최봉우(崔鳳宇)가 편지를 보내왔고 꿩과 감을 선물로 보내왔다. 답장을 써서 보냈다. 도훈장(都訓長) 이동의(李東儀)와 윤도정(尹都正)이 입견(入見)했다. 유학 노병석(魯炳錫)이 내견(來見)하고 꿩과 감을 선물로 주었다.
 
 
 

12월 20일.

 
41
맑았다. 남원(南原) 오산(五山)에 사는 친구 권양수(權陽壽)가 내견(來見)하여 그대로 묵었다. 계유(繼有) 참봉(參奉) 이현의(李賢儀), 유학 최봉기(崔鳳紀)가 해질 무렵에 내견(來見)했다. 그들과 더불어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밤중에 이르러 파하였다.
 
 
 

12월 21일.

 
43
입춘(立春). 이른 아침부터 흐렸다가 오후부터 갰다. 참의(參議) 엄석권(嚴錫瓘)에게 편지를 보내서 지난날 답장을 보내지 못한 뜻을 사죄했다. 하북면(下北面) 방현(芳峴)에 사는 진사(進士) 백영수(白瑛洙)가 편지를 보내왔고, 반찬 4가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답례하였다. 종인 중엽(重曄)이 내견(來見)해서 종인 홍근(泓根)의 편지를 전해주었고, 겸하여 초석(草席)을 전해주었다. 답례하였다. 유학 한홍석(韓泓錫)이 내견(來見)하고 감과 꿩을 선물로 주었다. 유학 이영우(李英宇)가 그 친족 홍윤의(泓潤儀)를 시켜서 편지를 전하고 감과 꿩을 선물로 보내왔다. 답례하였다. 유학 강시형(姜時馨)·홍종성(洪鍾晟)·오채규(吳彩圭) 등이 내견(來見)했다. 유학 이재욱(李載旭)이 꿩 2마리를 선물로 주었고 내견(來見)하였다. 유학 최봉우(崔鳳宇)·김경택(金慶宅)·한형리(韓炯履)·윤태윤(尹泰允) 등이 내견(來見)했다. 완사(完使)의 편지가 여러 사람을 거쳐 도착했는데 지난 7일에 보낸 것이었다. 하운면(下雲面) 훈장(訓長) 최순영(崔淳英)이 내견(來見)하여, 도정(都正) 홍병일(洪秉一)의 편지를 전해주었는데, 어지러워 아직 답장하지 못했다. 종인 영수(永洙)가 내견(來見)했다.
 
 
 

12월 22일.

 
45
맑았다. 노인(老人) 심필원(沈弼遠), 유학 이영우(李英宇)·서준수(徐俊洙)·이기현(李璣鉉)·노병석(魯炳錫)·오아무개(吳某)·신학균(申鶴均)·이종휘(李鍾徽)·한학교(韓學敎)·나한두(羅漢斗) 등이 내견(來見)했다. 유학 조병용(趙柄鏞)이 내견(來見)하고 감과 종이를 선물로 주었다. 유학 신백균(申伯均)이 편지를 보내왔고 반찬 2가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유학 신현대(申鉉大)가 편지를 보내고 반찬 2가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모두 답례하였다.
 
 
 

12월 23일.

 
47
이른 아침에 안개가 끼었다가 늦게 갰다. 유학 이재옥(李載玉)·정학수(鄭學綏)·김사국(金思國)·김문수(金雯秀), 南面에 사는 ■규명(■奎明), 종인 종헌(宗憲), 유학 이한영(李漢榮)·한규섭(韓圭燮), 별감(別監) 이종철(李鍾哲) 등이 내견(來見)했다. 유학 정인구(鄭寅龜)가 편지를 보내왔고 감과 꿩 2가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어지러워 아직 답례하지 못했다. 상인(喪人) 심진표(沈鎭杓)가 편지를 보내왔고 반찬 3가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답례하였다. 상인(喪人) 김봉기(金俸基)가 편지를 보내왔고 어찬(魚饌) 2가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어지러워 아직 답례하지 못했다. 유학 유관한(柳琯煥)이 감과 꿩 2가지를 선물로 보내왔다. 한산(韓山)에 사는 유학 나용호(羅龍鎬)가 또 내견(來見)하고, 그 대인(大人)의 편지와 한산졸(韓山倅)의 답통(答通)을 전해주었다. 인하여 읍의 인편에 완부관찰사(完府觀察使)와 송촌(松村) 김령(金令)에게 편지를 보냈다.
 
 
 

12월 24일.

 
49
맑았다. 도정(都正) 윤태일(尹泰一), 노인(老人) 심필원(沈弼遠)이 입견(入見)하였다. 태인(泰仁) 산내면(山內面)에 사는 생(生) 김진풍(金鎭豊)이 내견(來見)했다.
 
 
 

12월 25일.

 
51
하루 종일 흐렸다. 남원(南原) 주사(主事) 서동수(徐東壽)가 이방가(吏房家)의 혼사때문에 이곳에 왔다가 입견(入見)했다. 가 돌아가는 편에 남부관찰사(南府觀察使), 시찰관(視察官), 남원졸(南原倅), 주사(主事) 강규흠(姜奎欽)에게 편지를 보냈다. 장의(掌儀) 이영우(李璟宇)가 고귀(告歸)했다. 부여(扶餘) 염호(濂浩)에 사는 족숙(族叔) 수재(秀才)가 이곳에 머물다가 고귀(告歸)하니, 그 편에 족숙(族叔) 원석(元錫)에 편지를 보냈고, 또 친구 정휘진(鄭徽鎭)에게 답장을 보냈다. 초경(初更, 저녁 7시~9시)부터 가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다가 한밤중에는 화설(和雪)이 내렸다. 녹으면서 쌓여서 몇 촌(寸)가랑 되었다.
 
 
 

12월 26일.

 
53
이른 아침에 갰다가 늦게 다시 흐려졌다. 눈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바람이 매우 매서웠다. 종인 종원(鍾遠)이 내견(來見)했다.
 
 
 

12월 27일.

 
55
맑았다. 송촌(松村) 김령(金令)이 답함(答圅)이 여러 사람을 거쳐서 도착했다. 이 곳에 온 이후에 온 고을의 유생들을 알아서 정으로 보내는 선물이 자주 이르렀으나 관주(官廚)가 冷薄하여 왕럐하는 예가 없으니 매우 부끄럽고 한탄스럽다. 이내 조그마한 고기로서 정(情)을 표하고 편지를 보냈으니, 일도면(一道面) 유학 노병석(魯炳錫), 대곡면(大谷面) 유학 서준수(徐俊洙)·이기현(李璣鉉), 이인면(里仁面) 유학 김성희(金聲熙), 상북면(上北面) 유학 이재옥(李載玉)·참의(參議) 엄석관(嚴錫瓘), 하북면(下北面) 유학 이재욱(李載旭)·도사(都事) 김양근(金瀁根)·진사(進士) 백영수(白瑛洙)·진사(進士) 박낙현(白樂顯), 신평면(新平面) 종인(宗人) 형근(亨根)·종원(鍾遠)·유학 신현대(申鉉大)·도감(都監) 신현표(申鉉杓), 상신덕면(上新德面) 유학 김양환(金陽煥), 하신덕면(下新德面) 종인 정국(鼎國)·유학 나동환(羅東煥)·유학 신백균(申伯均)·감역(監役) 하임용(河任容), 상운면(上雲面) 참봉(參奉) 이현의(李賢儀)·진사(進士) 이병의(李炳儀)·유학 이동의(李東儀)·유학 최봉기(崔鳳紀)·봉우(鳳宇)·진사(進士) 오재승(吳在昇), 하운면(下雲面) 진사(進士) 홍종성(洪鍾喆)·유학 황호원(黃浩源), 강진면(江津面) 도정(都正) 홍병일(洪秉一)·선달(先達) 송종린(宋鍾麟)·유학 송희옥(宋曦玉)·유학 정원걸(鄭源杰)·노인(老人) 이봉기(李鳳基)·유학 이종호(李鍾湖)·유학 유관한(柳琯煥), 구고면(九臯面) 종인 민헌(民憲)·종헌(宗憲)·진사(進士) 한규성(韓圭成)·장의(掌儀) 이영우(李璟宇)·유학 임남수(林南洙)·유학 전경규(全景奎), 옥전면(玉田面) 진사(進士) 홍한섭(洪漢燮)·유학 홍종성(洪鍾晟)·유학 정인구(鄭寅龜)·유학 유재수(劉載秀)·유학 한홍석(韓泓錫), 신안면(新安面) 종인 홍근(泓根)·진사(進士) 한흥교(韓興敎)·유학 한병리(韓秉履)·형리(炯履)·학교(學敎), 남면(南面) 유학 김사준(金思準)·김문수(金雯秀)·상인(喪人) 金俸基·상인(喪人) 김제연(金濟連)·좌수(座首) 이병록(李炳錄), 하동면(下東面) 종인 영수(永洙)·감역(監役) 정기호(鄭祺浩)·유학 이영우(李英宇)·유학 강신영(姜信永)·민형(敏馨), 상동면(上東面) 도정(都正) 윤태일(尹泰一)·유학 윤태윤(尹泰允)·노인(老人) 심필원(沈弼遠)·상인(喪人) 심진표(沈鎭杓)·도사(都事) 정혁조(鄭赫朝)·진사(進士) 최홍석(崔弘錫)·유학 최증(崔增)·좌수(座首) 이종원(李鍾元), 덕치면(德峙面) 감찰(監察) 조재홍(趙載洪)·유학 조병용(趙柄鏞)·유학 홍종국(洪鍾國)·유학 변규호(邊奎浩)·유학 이종휘(李鍾徽)·병원(秉榞) 其回並見答書. 또 읍저(邑底)에 있는 양로소(養老所)에 각 6근씩 하사했다.
 
 

 
56
* 각주
 
57
428) 음력(陰曆) 정월(正月)에 사흘 동안 내린 눈을 일컫는 말
58
429) 밭 가는 데 적당(適當)하게 한바탕 오는 비
【원문】을미년(1895)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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