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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순(朴始淳) 일기(日記) - 운불일기(雲紱日記) ◈
◇ 정유년(1897)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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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순(朴始淳)
- 임실문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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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유년(丁酉年, 1897) 5월
 
 
 

5월 1일

 
3
기축(己丑). 맑음. 아침에 운수관(雲水館)에 나가서 망배례를 행하고 이어 원래대로 가서 곡위를 보고 예를 다하고 갔다. 다시 문묘에 가서 차례로 예를 받들고 나가 재실을 두루 찾아 보았다. 색장(色掌) 이종학(李鍾學)을 입견하고 관아로 돌아갔다. 식사 후에 각방에 전례를 들어 점고하였다. 오진산에게 다시 보자고 하는 편지를 썼다. 남원 오산 양한표(梁漢杓)가 친구 권계조(權繼照)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보았다. 남원 오산(午山) 양아한표(梁雅漢杓)가 와서 만나고 그 편에 친구 권계조(權繼照)의 편지를 전해주었다. 친척 권을규(權乙奎)가 진안수령의 편지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 편에 족제사과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에 생각해보니 세 곳에 보냈다. 완사의 편지가 당도하였다. 감찰 김동현(金東炫)의 편지가 있어 단오절 부채를 주어 답했다. 소년(少年) 윤병제(尹秉濟)가 와서 만났다. 운봉 종인 용근(容根), 경근(景根)이 돌아가고 진사 이병의(李炳儀)가 와서 만났다. 남원 선비 이병렬(李秉烈)이 전동(磚洞) 김태부자(金台父子)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보았는데 4월 11일에 보낸것이다. 장차 양주(楊州) 족숙(族叔)이 호남 각 군(郡) 종중(宗中)에 윤통(輪通) 하나를 써서 보낼 것이다. 또 창평[休德]·능주[東鉉]·보성[昌炫]·영암[魯相]에 편지를 보냈다. 또한 거처(住處)에 전치(傳致)하도록 족제 사과에게 편지를 보냈다.
 
 
 

5월 2일

 
5
맑음. 함양 이방이 한규찬(韓圭贊)의 무덤을 두 개로 판다를 소식을 알리는 편지를 전하니 기쁘고 행복하다. 오늘 어부 몇 명이 관아 앞 시내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그래서 탄운(灘雲) 진사 이병의(李炳儀) 선비 홍종성(洪鍾晟) 색장 이종학(李鍾學)과 함께 연공(聯笻)하고 나갔다. 수구(水口)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부엌에 회치거나 삶아서 술상을 내오라고 시켰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게 하여 만족하였다. 이윽고 석양이 산에 있었다. 손님들과 함께 교열루에 가서 몇 차례 돌고 술 힘에 져서 돌아와 누었다. 밤이 이미 어두워진 것을 몰랐다. 화호(禾湖)에 머물렀는데, 아직 답을 하지 못한 고아여홍(高雅汝弘)의 전서가 있었다. 선비 윤태근(尹泰根)이 와서 보고 선비 신학균(申鶴均)이 와서 보았다.
 
 
 

5월 3일

 
7
아침에 맑고 오후에 흐렸다. 완사의 편지가 있어 답장을 올렸다. 여산수령이 서울소식을 알리는 전서를 가지고 왔으니 나도 모르게 시원하게 풀렸다. 不覺豁然 不說播 잠시 말을 퍼뜨리지 않아서 그 회답을 보내고, 台 김윤식(金允植)의 답장이 여산관아 편에 왔다. 오후부터 동남풍이 크게 불고 신말(申末: 오후 5시 바로 전)에 소나기가 사납게 내렸다. 밤이 깊어지자 그쳤다. 전경규(全景奎), 변대규(邊大奎)에게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5월 4일

 
9
아침에 흐리고 비가 오고서 오후에 맑았다. 아들 익에게 편지를 전편으로 보내고 또 요동치는 포(浦)에 머무르는 박덕유(朴德有)에게 전서하였다. 광주 수춘촌(水春村) 종인 기준(基俊)이 세렴(細簾)415) 1건을 주려고 왔다. 도사 김양근(金瀁根)의 전서와 단오절 부채, 약간(樂干)416)을 보내 감사하다고 답했다. 선비 전경규의 답서가 왔다. 광주 수령 김경규(金敬圭)의 답장이 왔다. 창평 절산 종인 휴덕의 편지도 역시 왔다. 능주 한천 종인 정현이 찾아와서 그 종손 동현(東鉉)의 편지를 수전하니 기뻤다. 선비 강운영(姜運永), 종인 필근(弼根)이 와서 보았다.
 
 
 

5월 5일

 
11
아침에 맑고 오후에 흐렸다. 직지(直指)와 양주(楊州) 족숙 사과, 족제 구참봉에게 편지를 써서 하나로 봉하여 같이 읍편에 보냈다. 무주 조성희(趙性憙)에게 오랫동안 답장을 지체한 것에 사과한다는 뜻으로 위로하는 편지(慰狀)을 보냈다. 영암 조호(棗湖) 족숙 민석(敏錫), 기석(機錫)이 찾아와 한순(漢淳) 족제의 편지와 담뱃대 4개를 주어 인편에 보냈다. 오후부터 비가 주륵주륵 내리거나 흩뿌리다가 밤이 깊어지자 그쳤다. 그리하여 완사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인편으로 보냈다. 오진산에게 편지를 보냈다.
 
 
 

5월 6일

 
13
아침에 비가 오고 오후에 맑았다. 북한(北漢) 상인(上人: 승려) 현수(玄洙)가 친척 심의경(沈義慶), 심헌경(沈軒慶), 참서(參書) 정준시(鄭駿時) 편지를 인편으로 가지고 왔다. 문사(文士) 한 명이 서울에서 돌아왔다. 전동(磚洞) 김태부자(金台父子)와 정인섭(鄭寅燮), 조민희(趙民熙), 친척 심헌경, 참서 정준시의 답장이 왔다. 남원 법촌(法村) 친구 강한흠(姜漢欽)의 편지도 역시 왔다. 완사가 사직을 하는[解紱] 데 있어 위로하는 서신을 보냈다. 이 일로 송촌 김령이 세 번 편지가 있었는데 일시에 일제히 도착하였다. 능주 종인이 돌아갔는데 그 편에 종인 동현(東鉉)에게 편지를 보냈다. 광주 종인과 작별하고 그 편에 광주 수령 및 절산 종인 휴덕에게 편지를 부쳤다. 친구 홍종국(洪鍾國), 선비 변규호(邊奎浩), 선비 홍종성(洪鍾晟), 선비 정인구(鄭寅龜) 상인 한형리(韓炯履), 선비 강민형(姜敏馨), 종인 영수(永洙)가 와서 보았다. 무주 조성희(趙性憙)에게 위로의 편지를 썼다. 구고(九臯) 좌수 김기진(金基鎭)편에 편지를 전하게 하여 서통(書通)하였다. 구고 종인에게 편지를 부쳤다. 선비 이만기(李萬器)가 완산에서 돌아와 보았다.
 
 
 

5월 7일

 
15
맑음. 진주 관찰사 이항의(李恒儀), 산청수령 서상빈(徐相斌), 함양수령 오성묵(吳成默)에게 편지를 보냈다. 使萬直委 往傳納之 또 갈계 도유사 종인 원익(源益), 오산 친구 권양수(權陽壽), 노단(魯壇) 장아안택(張雅安澤)에게 편지를 부쳤다. 또 함양 수서기(首書記) 문진, 산청 수형리(首刑吏) 이은석(李殷奭)에게 편지를 부쳤다. 오진산(吳珍山)에게 편지를 보냈다. 선비 홍종성(洪鍾晟), 정인구(鄭寅龜)가 와서 보았다.
 
 
 

5월 8일

 
17
맑음. 완사의 편지가 있었다. 진사 이병의(李炳儀), 색장 이종학(李鍾學), 도훈 이동의(李東儀) 종인 종헌(宗憲), 도사 정혁조(鄭赫朝), 선비 이봉숙(李鳳淑), 선비 홍종연(洪鍾淵), 선비 이재옥(李載玉), 선비 전경택(全慶宅), 선비 한학교(韓學敎), 참봉 한영리(韓瑛履), 상인 오석도(吳錫濤), 선비 오병일(吳秉一)·병곤(秉坤)·철섭(喆燮)·석룡(錫龍), 선비 이종휘(李鍾徽), 종인 종원(宗遠), 선비 한봉리(韓鳳履)·규섭(圭燮), 선비 이영규(李永奎), 제장(齊長) 윤태근(尹泰根), 선비 윤태윤(尹泰允), 선비 홍종률(洪鍾律), 선비 심지원(沈志遠)·진용(鎭龍)·진하(鎭廈)·진하(鎭夏)·진표(鎭杓) 선비 이영우(李英宇), 선비 김교병(金敎秉), 선비 강민형(姜敏馨)이 와서 보았다. 오늘 밤은 구토와 설사로 고통스럽다. 참으로 불쌍하다.
 
 
 

5월 9일

 
19
맑음. 본군에 색리(色吏)가 상경한다고 문안하였다. 전동(磚洞) 김태부자(金台父子)에게 편지를 부쳤다. 참판 박기양(朴箕陽), 오산 친구 권양수(權陽壽), 친척 권을규(權乙奎), 친구 권승규(權昇奎), 선비 송진수(宋鎭秀), 참봉 이현의(李賢儀)가 와서 보았다. 진사 이병의(李炳儀)의 편지가 있었다. 선비 최헌익(崔憲翼)·봉기(鳳紀)·봉우(鳳宇), 종인 동근(東根), 선비 이기현(李璣鉉), 선비 서준수(徐俊洙), 선비 노병석(魯炳錫)·학규(鶴奎), 선비 이존경(李存慶), 선비 양재우(楊在禹), 진사 백영수(白瑛洙), 진사 양재연(梁在淵), 진사 최홍석(崔弘錫), 선비 최○승(崔○增), 좌수 이병록(李炳錄), 선비 한병리(韓秉履), 선비 이종호(李鍾湖), 선비 조병용(趙柄鏞), 선비 한규현(韓圭炫), 선비 전경규(全景奎), 선비 이홍의(李鴻儀), 생원 윤용덕(尹龍德), 종인 정국(鼎國), 선비 형기필(邢基弼), 선비 신학균(申鶴均), 선비 나동환(羅東煥), 선비 노정열(魯楨烈)이 와서 보았다. 직지(直指) 어른의 답장과 족제의 답장이 왔다. 태장(台丈) 이유승(李承) 답장과 사과 이규채(李圭采)를 낙촌(洛村)편에 보냈다. 한진사의 편지가 왔다. 임제에 보낸 하인이 돌아와 아들 익과 여산수령 편지를 보았다. 역시 이○○도 왔다. 남원 선비 김응술(金應述)이 와서 만났다.
 
 
 

5월 10일

 
21
아침에 안개가 끼고 오후에 개었다. 진산(珍山) 오영석(吳榮錫), 월은(月隱) 별제(別提) 이필화(李必華), 선비 곽상표(郭尙杓) 찬영(瓚永)·○규(○奎), 선비 김석희(金錫熙) 선비 양○○(陽○○), 대판리(大板里)에 우거한 박○○이 와서 만났다. 완사에게 읍편으로 문안을 드렸다. 송촌 김령, 감찰 정군일(鄭君一), 화호(禾湖) 고아희상(高雅熙相)에게 편지를 부쳤다.
 
 
 

5월 11일

 
23
흐렸다. 밥을 먹고 천렵(川獵)하자는 약속에 따라 하운(下雲)에 갔다. 구고 종인 종헌(宗憲)집을 역방하는데, 종헌이 이미 서창점(西倉店)에 나가서 기다린다고 한다. 장차 진사 한규성(韓圭成)의 아들에게 위문하려 했는데, 임금께서 애도하여 순창 묘하(墓下)에 갔기 때문에 행하지 못하였다. 서창점사에 이르렀는데, 점사(店舍)에서 선비 한규혁(韓圭赫)·규태(圭泰)·규엽(圭燁)·규현(圭炫) 종인 종헌(宗憲),·필근(弼根) 선비 이한영(李漢榮), 선비 홍종성(洪鍾晟)·종연(鍾淵) 선비 정인구(鄭寅龜), 선비 전경택(全慶宅)·신택(愼宅), 이헌영(李憲榮), 좌수 김기진(金基鎭), 선비 유재수(劉載秀), 선비 최○증(崔○增), 선비 한학교(韓學敎), 선비 황화영(黃華榮)이 모두 와서 기다렸고 감찰 조재홍(趙載洪)도 역시 와서 만났다. 얼마지 나지 않아 주안상이 나왔다. 이곳 구고(九皐)는 평지(平地)에 세워진 곳이다. 그리고 출발하여 대강진(大江津) 앞길에 이르니 노장(老丈) 이봉기(李鳳基)가 와서 기다리니 길옆에 가마를 멈추고 잠시 회포를 풀고서 헤어졌다. 갈담장(葛潭場) 우사(郵舍)에 다다르니, 본면(강진) 훈장 선비 이병열(李炳㤠), 향원 정진수(鄭震綏)가 와서 만났다. 점심은 본장(本場)에서 내어주어 먹었는데 폐를 끼쳐 매우 부끄럽다. 그리고 출발하여 ○○고개를 넘었다. 진사 홍종길(洪鍾喆)이 그 당(堂)에서 성순용(成淳龍)을 보내어 길 옆에서 기다리니 텃골(基洞)에 도착하였다. 그 집에 들어가니 홍진사가 마중나왔다 자리에 앉아 안부를 물었다. 선비 홍재기(洪在祺)·재선(在璇)·재○(在○)·종욱(鍾旭)을 나가서 보았다. 참봉 이현의(李賢儀), 진사 이병의(李炳儀), 도훈장 이동의(李東儀), 선비 최헌익(崔憲翼)·봉기(鳳紀) 선비 한학교(韓學敎), 홍종성(洪鍾晟)·종연(鍾淵), 선비 최○증(崔○增)도 역시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 진사가 매우 풍성한 술상을 올렸는데 매우 미안하다. 미각(未刻)부터 찌는 듯이 더운 남풍이 불고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24
<중략>
 
 
25
홍태산(洪太山)이 사람을 보내서 시찰하고 돌아왔음을 알려왔다. 아들 익의 편지와 친구 이○익(李○翼)의 편지가 왔다. 가족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아울러 평산 주동(珠洞) 종질 동기(東騏), 재종제 ○순(○순), 삼종제 면순(冕淳)·정순(挺淳), 사종형 형순(衡淳)·홍순(鴻淳), 재종질 동섭(東燮)·동형(東衡), 족인 수일부자(壽一父子), 친척 이종표(李鍾杓), 친척 성봉일(成鳳一)의 편지를 전하였다. 죽을 날을 받아 놓으니 다소 위안이 되었다.[稍慰行死之懷也] 참봉 한경리(韓璟履)에게 보낸 답장이 왔다.
 
 
 

5월 22일

 
27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가 오후에 맑아졌다. 교리 진탁엽(晉鐸曄)이 와서 나타나다. 아전 진준엽(晉俊曄)의 고목을 보았다. 신관(新官)은 첫 번째로 목사에게 문안하고 돌아갔다. 전동 김태부자, 박태기양(朴台箕陽)의 답장이 왔다. 신관이 서울에서 길을 떠난 지가 지금 21일이라고 한다. 완사의 답장이 왔다. 월은 별제 이우선(李禹善), 진사 백락현(白樂顯)의 편지가 와서 나란히 답하였다. 선비 한학교(韓學敎)가 돌아오고 또 한참봉에게 편지를 보냈다. 들으니 선비 변규호(邊奎浩) 내일 서울로 출발한다고 하여 그 편에 석동 김태부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교리 태기준(太奇俊)이 와서 나타났다. 통인(通引) 박동준(朴東俊)·황병욱(黃秉旭)·진재연(晉在沿), 엄태옥(嚴太玉)이 와서 나타났다. 참봉 황호원(黃浩源)이 와서 만났다. 고부 족제와 아침에 헤어지고 저녁이 되어서 고부 달천(達川)의 족형 두순(斗淳)과 함께 또 같이 와서 유숙하였다. 고창(高敞) 김성규(金星圭)의 편지가 왔는데 이는 4월 25일에 서울에 있을 때 부탁한 것이다. 천둥소리가 동남쪽에서 은은(隱隱)하게 들렸다.
 
 
 
 

5월 23일

 
29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가 오후에 맑아졌다. 고부 족형(族兄), 족제(族弟)와 헤어지고 밥을 먹은 후 이도훈, 이참봉이 와서 보았다. 그래서 그와 더불어 그 집에 이르러 탄운 부여 족숙(族叔)을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진사·최훈장 역시 모였다. 참봉이 술상을 올려 4~5잔 정도 술을 흠뻑 마셨다. 그래서 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서 강변 큰 회화나무 아래에 앉았다. 이진사집에서 또 술상을 올려 겨우 1잔을 마시고 그쳤다. 이 밤은 술에 빠져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선거리(仙居里) 종인 동근(東根), 상인 오석도(吳錫濤)가 와서 보고 더불어 통인 엄성홍(嚴城洪)이 신정(新延)417)에 간다고 알리러 떠나면서 와서 보았다. 통인 진기환(晉基煥)과 헤어지고 진재연(晉在沿)이 머물렀다.
 
 
 

5월 24일

 
31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가 오후에 맑아졌다. 공형(公兄)418)문의현(文宜鉉)·진준엽(晉俊曄)과 수리색(修理色) 문병태(文炳泰)·진상일(晉祥一)을 교체하였다. 이방 김준수(金俊洙)가 와서 나타났다. 상인 한형리(韓炯履)가 닭 네 마리· 찹쌀 두 말을 가지고서 와서 보았다. 향장(鄕長) 김기진(金基鎭), 참봉 황호원(黃浩源)이 와서 보았다. 좌수(座首) 송신연(宋信淵)이 와서 보고 유숙하였다. 읍편으로 완사에게 안부를 여쭸다.
 
 
 

5월 25일

 
33
아침에 흐리고 저녁에 맑았다. 식사 후에 인신(印信)을 송좌수에게 보내주었다. (관직이) 오월로(五月爐)419) 인줄 알면서도 괜히 원망스러우니, 역시 사람의 마음은 두지 않는 곳이 없다. [五月爐之悵之悵 亦人情之不無處也] 탄운 부여 족숙이 있어서 강정(江亭)으로 나갔다. 이도훈·이진사·최훈장이 와서 모였다. 오진산이 역시 이내 촌점(村店) 주파(酒婆)를 불러서 서너잔 따라 마셨다. 부인이 약간의 술과 안주를 골동(汨董)420)하여 내왔다. 또 그물을 들어보니 물고기 몇 마리가 있어 회치거나 삶아서 술을 제 주량대로 마셨다. 이 참봉이 잠시 나왔다가 건강이 나빠져서 곧장 돌아갔다. 색장 한홍석(韓泓錫)이 와서 보았다. 오늘 밤은 술잔을 이기지 못하여 불편하게 잤다. 상인 오석도(吳錫濤)가 와서 보고 유숙하였다.
 
 
 

5월 26일

 
35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가 저녁에 개었다. 통인 진재연(晉在沿)과 헤어지고 본군 승발(承發)이 보낸 고목을 보니, 신관이 도임(到任) 한지 28일이라고 하였다. 직지어른과 족제 도리(刀里)의 답서가 전편으로 왔다. 홍태산이 비혈증(鼻血症)으로 거의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 마을의 점사(村店舍)로 내보내고 조리하게 하였다. 역시 처량하여 참을 수 없었다. 오각(五刻)에 우레가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으며 가랑비가 겨우 먼지를 적시고 그쳤다. 생원 윤용덕(尹用德)이 두곡(斗谷)에서 와서 보았다.
 
 

 
36
* 각주
 
37
415) 細簾 : 가느다란 대로 촘촘하게 엮은 발
38
416) 藥干 : 간(干)은 천역(賤役)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접미사이므로 약간은 약재를 조달하고 간수하는 일에 종사하는 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39
417) 新延 : 예전에, 지방 관아의 장교와 이속들이 새로 부임하는 감사나 사령을 그 집에 가서 맞아 오는 일을 이르던 말.
40
418) 公兄 : 각 고을의 호장(戶長)ㆍ이방(吏房)ㆍ수형리(首刑吏)의 세 관속을 말한다. 삼공형(三公兄).
41
419) 五月爐 : 오월의 화로라는 뜻으로, 당장은 필요가 없어도 없어지면 아쉬운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42
420) 汨董 :《성리대전보주(性理大全補註)》에 의하면, 남방 사람들이 물고기와 살코기를 뒤섞어 밥 속에 두는 것을 골동갱(汨董羹)이라 하니, 어지럽게 뒤섞여 분리되지 않은 일을 말한다.
【원문】정유년(1897)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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