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배비장(裵裨將) ◈
◇ 배비장 (1) ◇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처음◀ 1권 다음
1943
채만식
1
裵裨將[배비장]
2
1
 
 
3
제주도(濟州道)는 멀리 남해상에 외따로 있는 섬으로, 육로 천리 수로 천리 아득한 변방이다.
 
4
자고 이래 정배객(定配客)의 한 많은 땅으로 제주도요, 말과 해녀의 고장으로 제주도요, 풍다(風多)·석다(石多)·여다(女多)의 삼다(三多) 또한 괄시 못할 제주도의 풍물이다. 더우기 그 물화의 은성함과 아울러 남방답게 특이한 풍토 풍습은 오로지 타방에서 보기 어려운 진기한 바가 허다하다. 그러나 제주도는 매양 한라산(漢拏山)이 조종이다. 태초에 고(高)·부(夫)·양(良) 삼성이 나서, 그 자손이 퍼져 옛 탐라국(耽羅國)을 이루었다고 전하는 삼성혈(三姓穴)의 영산으로 한라산이요,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산(瀛州山)의 선경 영주산으로 한라산이다.
 
5
이 천하 명산 한라산과 탐라고국의 면면한 설화를 간직한 제주도는 또한 물색이 지극히 아름다와 있으니, 진실로 금상첨화의 격이라 이를까. 천하의 시인 묵객과 호협한 풍류 남아가 한번 제주도에 놀기를 원하여 마지아니함도 무릇 그 산수 그 물색에 끌림이었다.
 
6
때는 이태조(李太祖) 등극 초……
 
7
과연 제주도에 한 경국의 미색이 났으니, 제주 관기(官妓)로 이음을 애랑이라 하였다.
 
8
애랑은 몸이 비록 창가 소생일망정 제주도의 수려한 산수 경기를 일신에 타고 나, 그 아리따운 인물과 능숙한 가무와 총명한 재질이 고금에 능히 그를 따를 자 없었다.
 
9
이렇듯이 인물과 가무 재질이 절세한 애랑은 아울러 꽃을 탐하여 날아드는 유아량의 혼백을 빼앗는 솜씨가 또한 능란하였다. 애랑을 한번 보자 첫눈에 혹하지 아니하는 남자 없고, 그 농락에 넘어가지 아니하는 철석 장부 없으며, 이윽고 갈림에 임하여 앞니를 뽑히지 아니하는 장사 없으니, 족히 미루어 짐작하리라. 생각컨댄 애랑이 기위 경국의 미색으로써 절개와 정숙의 가인을 겸하지 아니하고, 그대도록 능청스런 요물로 태어난 연유는 아마도 제주도의 수려한 산수 정기 외에 소위 풍다(風多)·석다(石多)라 하여 일맥 각박스럼이 없지 못한 정기를 더불어 점지받은 탓인가 싶다.
 
10
애랑이 방기 이십을 맞이하여 자색은 한층 더 요려히 피어나던 해 봄이었다.
 
11
이때에 마침 조정(朝廷)에서는 새로이 제주목사(濟州牧使)가 났으니, 문무 겸전하고 상하의 신망이 도타운 김경이라는 양반이었다. 바야흐로 한양조(漢陽朝)의 초창 시절이라 왕업이 일단 안정되자 비로소 조정은 오래도록 등한히 버려두었던 변방을 유의 단속하되, 그런 중에도 제주도는 멀리 왕화(王化)가 잘 미치지 아니하던 지방인 고로, 특히 김경과 같은 유위한 인재를 골라서 보내어 다스리게 하였던 것이다.
 
12
이 새로 난 제주 목사 김경은 문무 겸전한 당대의 인물일 뿐만 아니라 천성이 심히 뇌락 활달하여, 나이 오십의 중로로되 항상 젊은 기상이 가시지 아니하고, 일상에 젊은 사람들과 사귀어 놀기를 즐겨하였다. 늘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천하사를 논하며, 그러면서 때로는 실없은 농과 장난을 퉁퉁 하여 크게 웃기도 하고. ——— 김경의 농과 장난이라면, 재치 있고 기절하기로 당세에 유명한 터이었다. ———그러나 김경은, 일변 학문과 무예를 저로 논하여 젊은 사람들을 훈도하기를 또한 소홀히하지 아나하였다. 자연 붙임성이 살갑고 인망이 좋아 그 문객으로 모이는 젊은 사람이 많이 있었다. 저마다 학문이며 포재와 경륜이 남다른 청준들이었다.
 
13
제주 목사로 도임을 하게 된 김경은 그 여러 젊은 문객들 중에서 적당히 골라 육방 소임(六房所任)을 정하였다. 그 가운데 예방비장(禮房裨將)을 맡은 사람이 서강 사는 배선달————배인명(裵仁明)이었다.
 
14
배인명이라는 사람은 속에 든 학문이라든지 와락 뛰어나지는 못하여도 별로 빠지는 구석 또한 없으되, 다만 한 가지 사람 됨이 너무 순박한 탓으로 일에 임하여 몹시 덤벙대는 게 큰 흠이었다. 그러나 흠은 흠이라도 막상 밉지 아니한 흠이요, 그 밉지 아니한 흠으로 하여 김경의 총애가 차라리 자별한 바 있었다.
 
 
15
김경———김목사가 그날 배선달———배인명을 불러 앉히고, 자기는 이번에 외적을 하여 제주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그대에게 예방 소임을 부탁하고자 하니 의향이 어떠하냐고 묻는 자리였다.
 
16
“제주요니까? 제가 뫼시고 가요니까?”
 
17
대답 여부 없이 배선달을 좋아하면서 성급히 되묻던 것이다. 빙긋이 웃으면서 그 거동을 보고 있던 김경이 실끔 한마디 구슬리기를
 
18
“계, 나는 수륙 천리 귀양살이를 가도, 자네 그 평생 소원 제주도 구경을 하게 되니 기쁘단 말이렷다?”
 
19
“네?”
 
20
하다가 배선달은 비로소
 
21
“아!”
 
22
하면서 얼른 고개를 숙이고 뒤통수를 만진다. 덤벙대노라고 그만 웃사람의 영직승차(榮職陞差)에 치하의 인사를 베풀기를 잊었으니 과연 소홀이었다.
 
23
김경은 껄껄 호걸스러이 웃더니
 
24
“그래, 아뭏든 가기는 가겠다?”
 
25
하고 다짐하여 묻는다.
 
26
“네에!”
 
27
“두말 없겠다?”
 
28
“네에!”
 
29
“정녕?……”
 
30
“네에!”
 
31
배선달의 대답은 한결같이 분명하다.
 
32
“자네는 사람이 저래서 파여든!”
 
33
“?……”
 
34
배선달은 의아하여 고개를 들고 잠깐 김경의 얼굴울 마주 본다.
 
35
“자네 대부인께서, 향차 홀로 기신 터에, 누대 독자 자네를 제주까지 보내려 드실까?”
 
36
“………”
 
37
듣고 생각하니 또한 지당한 말이었다. 깜빡 잊었었다.
 
38
“그렇게 경솔히 작정을 할 것이 아니라 지금 곧 나가서 대부인께 여쭙고 허락을 받도록 하게.”
 
39
“네에.”
 
40
“제주도가 아무리 좋다 하기로서니, 종시 예방비장 낱이나 하고 말 바에야 유람에 팔려 늙으신 편모와 처자의 만류 뿌리치고 굳이에 가려 들며리가 있겠나. 자네 그런 일신의 형편을 짐작을 하면서도 내 긴히 요량이 있어서 권을 한 것이, 그런 뜻으로 대부인께 사뢰고……”
 
41
장차 발천을 시켜 줄 터이니 되도록 가는 것이 좋겠다는 그 뜻일시 갈데 없었다.
 
42
배선달이 그 길로 집으로 나가 모친 앞에서 사연을 말하였을 때, 처음에는 펄쩍 뛰고 응하지 아니하였다가 누누이 삼 년 안에 어느 골 원(守令)이든 현감(縣監)이든 반드시 한 자리 따가지고 오겠노라면서 조르는 데는 저으기 들을 만하였다.
 
43
겨우겨우 반허락을 받고 별실로 건너온즉, 부인 윤씨가 벌써 다 알아 채고서, 한곁으로 돌아앉아 홀짝홀짝 울음이다.
 
44
모친의 경우와 달리 더럭 역정이 날밖에…… 그러나 심정을 누르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45
“가장 되는 사람이 먼길을 떠난다는데 울음이 당한 말이오?”
 
46
“그럼, 웃고 춤출까!”
 
47
윤씨라는 여인의 솔성이 무릇 이러하였다.
 
48
“허!”
 
49
배선달은 이렇게 기가 막힌다.
 
50
“나는 어쩌란 말인고? 젊으나젊은 년이……”
 
51
성정대로 하라면
 
52
‘어쩌다니? 뀌여 차고 갈까?’
 
53
하고 맞대껄을 하겠지만, 배선달은 종시 참는다.
 
54
“멀어야 삼 년 아니오? 그렇게 해서라도 발신(發身)을 해야 하지, 평생 이 모양으로 늙는대서야 가문과 조상께 무슨 면목이 있겠소?”
 
55
“남은 제주도 안 가고도 수령 방백 잘들만 합데!”
 
56
“그런 사람이야 뒷줄이 좋아서 그렇다지만 나야 처지가 어디 그렇소?”
 
57
“외직으로 쫓겨나면 자기나 갔지 왜 남의 집 삼대 독자는 끌고 가? 물귀신 심청이든감!”
 
58
“에잉, 그 입잣!”
 
59
“서천 서역국은 가도 제주도는 못 가요! 정 갈 테거든 날 죽이고 가지 못 가요!”
 
60
“제주도는 못 가다니 어찌 그런고?”
 
61
“흥! 물색 존 제주도! 계집애를 푼에 일곱씩 준다는 제주도! 맘껏 펑청거리고 싶어서?”
 
62
“허허허!”
 
63
“못 가요! 날 죽이고 가지 살려 두고는 못 가요!”
 
64
“여보? 그게 그렇게도 걱정이 되오?”
 
65
“자나깨나, 가고지고 노래부르던 제주도! 소원성취했으니 웃음도 날테지!”
 
66
“부디 글랑은 염려 마오.”
 
67
“무얼 믿고 마음을 놓아요?”
 
68
“내, 다짐 두리다.”
 
69
“그럼, 다짐 두어요!”
 
70
비로소 돌아 앉으면서 치맛자락으로 싸고 울던 낯을 쳐든다.
 
71
투기(妬忌)하는 요량 하여서는 자못 화용월태(花容月態)에 먼 얼굴이다.
 
72
좁은 이마, 성긴 눈썹, 깊은 눈, 까라진 코, 두드러진 입술, 고루고루 그러하다.
 
73
“맹세코 다짐 두리다.”
 
74
“계집이라는 명색도 가차이 앉지요?”
 
75
“눈도 거듭떠보지 아니하리다.”
 
76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나는 생목숨 끊는 날인 줄 아시지요?”
 
77
바싹 바싹 다가앉으면서 조지고, 배선달은 시원시원히 대답이다.
 
78
“염려 마시요.”
 
79
“꼭 삼 년이지요?”
 
80
“삼 년 안에 돌아오리다.”
 
81
“삼 년이 넘으면 나는 생목숨 끊은 날인 줄 아시지요?”
 
82
“그것도 염려 마시요.”
 
83
“다짐 두셨지요?”
 
84
“다짐 두었소.”
 
85
배선달은 노상 임시의 말막음으로만 혼연한 대답을 하던 것은 아니었다.
 
86
잘 명심하여 다짐한 바를 저버리지 아니하려니 하였다. 장부가 한 번 뜻을 정하였을진댄 호락히 여색에 빠질 법이 있을까보냐 하여 스스로 단단 믿었다.
 
 
87
제주 목사가 드디어 도임길을 떠나 십여 일 마나에 무사히 해남관두(海南關頭)에 당도하니 벌써 신연하인이 와서 등대하고 있다.
 
88
목사가 신연하인의 현신을 받는다. 선척의 배비를 단속한다 하는 동안 일행 중의 배선달————배비장은 장차 건너야 할 망망대해를 바라다보면서 적지 않이 겁을 낸다. 물이라면 한강을 나룻배로 오고 가고 두 번 건너본 적밖에 없고 바다란 평생 처음이었다.
 
89
마침 신연하인으로 온 방저놈 하나가 옆을 지나고 잇어 궁금풀이로 물어보던 것이다.
 
90
“예서 배를 타면 제주까지 며칠이나 가느냐?”
 
91
“어디 대중이 있사워요?”
 
92
신연하인으로 뽑혀 왔으니 조옴 날이 났을 리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눈치 빠르고 능청맞고 엉뚱스럽고, 신둥머리지기로 떨떨 울리는 차돌이라는 방자놈이었다.
 
93
척 보아하니 세상 물정 통히 모르는 백면서생인데, 사람 또한 좋고도 어리숙한 품이 잡아 휘두르기 만만한 비장붙이래서, 놈이 첫수작부터 건들거리던 것이다.
 
94
그런속도 모르고, 배비장은 꼬치꼬치 더 묻자고만 든다.
 
95
“대중이 없다니, 아무리 물길이로서니……”
 
96
“물길이니 대중이 없읍지요. 날세가 청명하고 순풍이 부오렴야 눈 깜짝할 새 당도합지요만……”
 
97
“그러고?”
 
98
“가다가 해상에서 초풍이 이는 날이면 열흘도 가야요 한달도 가야요…… 한 달은 말고 두 달 석 달이라도 제주도 되었던 서천 서역국이 되었던 무사히 뭍에 오르면 다행입구요.”
 
99
“다행이고……”
 
100
“못 오르면 조빡없이 물을 먹어얍지요.”
 
101
“조빡없이 물을 먹다니?”
 
102
“물에 뜬 송장이 조빡으로 물먹사워요?”
 
103
“허, 그놈이!”
 
104
더욱 걱정스럽고 이런 줄 알았더라면 부질없이 따라왔거니 하여 후회가 절로 난다. 마음 같아서는 슬며시 뒤로 빠져 한양으로 회정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나, 첫째 왈 목사께 도리와 남아의 체모가 아니요, 본집에서는 그새 벌써 발신을 하여 어는 골살이라도 하여 가지고 돌아오는 줄로 반길 터이니, 또한 면목 없는 노릇이었다.
 
105
‘에라 죽으면 주고 살면 살고……’
 
106
배비장은 넘실거리는 바다를 한가스러이 바라다보면서 단념이 이렇듯 자못 비장(悲壯)하다.
【원문】배비장 (1)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77
- 전체 순위 : 429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66 위 / 88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2) 논 이야기
• (2) 동백꽃
• (1) 고향
• (1) 날개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배비장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1943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처음◀ 1권 다음 한글 
◈ 배비장(裵裨將)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