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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대(帝星臺) ◈
◇ 장왕(將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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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1939.4
김동인
1
제성대(帝星臺)
2
將王[장왕]
 
 
3
짙어 가는 가을날.
 
4
천하가 추색에 잠겼다. 세상이 어지러우니만치 추색은 더욱 추색다웠다.
 
5
봄을 보고(報告)하고 여름을 장식한 뒤에는 가을이 되면 모두 자취를 감추는 나비가 어디 남아 있었는지 한 쌍 뜰에서 팔팔 희롱을 하면서 날아다닌다.
 
6
딴 데로는 갈 줄을 모르는 나비인 모양이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조반 직후에 내다보니 그때부터 희롱하면서 날아다니던 것이 해가 중천에 오르고 낮이 되고 하여도 그냥 딴 데로 갈 줄을 모르고 높이 올랐다 낮추 날았다하면서 뜰에서만 논다.
 
7
비절(非節)에 나비가 온다는 것은 당시에 긴한 손님이 올 징조로 해석 되고있었다.
 
8
서남방의 변방장으로 와 있는 견훤은 조반 후에 대청의 의자에 나와 앉아서 침울한 얼굴로 나비의 노는 것을 보고 있었다.
 
9
때는 진성여왕(眞聖女王)이 선 지도 이미 오 년, 당나라 소종(昭宗) 경복 (景福) 원년이었다. 견훤의 나이 스물다섯― 보통 예삿사람으로 따지자면 가장 기분이 침울할 때에도 얼굴에는 어디인지 청춘다운 활기가 보이고 행동 동작에 민첩함이 보일 연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훤의 얼굴은 언제든 침울할 뿐 무표정하였다. 그에게 가까이 시종드는 장졸들은 오늘 철로 몇 번을 벌써 뜰에서 노니는 나비를 보고 오늘 기꺼운 손님이 오리라고 상관인 견훤에게 여쭈었다. 그러나 견훤은 머리 한번 끄덕이어 보지 않고 그냥 침울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10
근래 그의 머리에 걸리어서 그를 성가시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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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弓裔)가 동(動)하기 시작했다.’
 
12
이 문제가 그를 시끄럽게 한 것이었다.
 
13
근년 연하여 변방의 토호(土豪) 혹은 무장들이 반기(叛旗)를 든 가운데 북원(北原)에는 또한 양길(梁吉)이라는 토호가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 양길의 부하 장수 가운데 궁가 있었다. 궁예를 시켜서 주천(酒泉― 지금의 寧越[영월]) 등지를 습격케 하였다. 궁예는 양길의 손 아래서 떠나서 양길의 군사를 잘 무마하여 자기에게 심복케 하고 양길의 지휘로써 습격하여 얻은 주천 등지를 자기의 세력권 내로 하고 양길의 세력하에서도 독립하였다.
 
14
양길에게 투신하기 전에 궁예는 기훤(箕萱)에게 투신하였다. 기훤은 죽주(竹州)에서 또한 반기를 들고 신라 조정에서 독립한 한 지대(地帶)의 수령 노릇을 하고 있던 토호였다. 그러나 반복무쌍한 궁예는 오래 기훤에게 심복 해 있지 않고 곧 양길에게로 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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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론 아직 미미한 세력이라 스스로 일컫는 칭호도 없거니와 군졸로 말 할지라도 양길에게서 받은 약간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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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지금 거기서 군졸들과 고초를 같이 겪으며 인심을 모으며 일변으로 연방 군졸을 뽑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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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견훤으로 하여금 더 침울케 한 것이었다. 동수산 산록에서 장차 누가 먼저 되는가 농삼아 내기하고 작별한 지 십여 년, 자기는 훌륭한 스승을 구하여 일방의 도를 닦고, 잡술이나 연습하고자 돌아다닐 때에 아직도 하 잘것 없는 한 개 중으로 박혀 있던 그가 지금은 벌써 차차 세력을 확장 하고있는데 자기는 그냥 신라의 한 변방장으로 이곳에 묻혀 있나 ?
 
18
변방장이라 하나 인물 없는 신라에는 지금 장수를 추리라 하면 조정에서도 견훤으로서 으뜸을 삼을이만치 그 새의 무공은 컸다. 신라의 동남북 사면 어느 곳이든 서울서 좀 거리가 먼 데는 반적이 웅거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견훤이 지키는 서남방뿐은 오직 평온하고 누구 감히 머리를 들려는 자가 없다. 이것은 전혀 견훤의 세력의 덕으로서 조정에서도 그것을 몰라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견훤의 바라는 바는 그맛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19
궁예에게까지 뒤떨어진 자기의 현재를 생각하니 가뜩이나 침울한 그의 얼굴이 더욱 침울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
나비가 예언한 바 진객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21
왕사(王使)였다. 국방에 관해서 의논할 일이 있으니 서울로 좀 올라오라는 것 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라 조정에서 부르는 것이 아니고 임금이 직접 부른다는 것이었다.
 
22
그 날 저녁 왕사(王使)를 위하여 연회가 있고 연회 뒤에 각각 술에 취하 여제 곳으로 돌아가서 잘 때에 견훤은 침소에서 원노(元奴)를 불렀다. 원 노는 백 제의 후예로서 본시는 이 서남 변방부의 한 종졸이었다.
 
23
그러나 그 무용(武勇)에도 남에게 앞서거니와 입이 무겁고 사람됨이 충직하고 순후한 위에 더우기 지혜가 비상한 것이 어느덧 견훤의 눈에 띄어, 뽑아 올려서 참모로 삼고 견훤 자기가 일이라도 바쁜 때는 견훤의 대리 로까지 일보는 심복이었다.
 
24
입이 무거운 견훤과 역시 입이 무거운 원노가 마주 앉았다. 좀체 이야기가 나올 듯싶지 않았다. 차차 깊어 가는 가을밤에 두 사람은 말없이 마주 앉아있을 뿐이었다.
 
25
드디어 견훤이 먼저 입을 열었다.
 
26
"차행(此行)이 약하(若何)오 ?"
 
27
이즈음 경박한 신라 조사(朝士)며 유식계습들이 즐겨 쓰는 투였다. 원 노가 대답 하였다.
 
28
"무론 아시겠지만 변방에 일어나는 반도(叛徒)들을 조정에서는 어찌할 수가 없어서 그 분부를 하려 함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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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30
"그러면 소인 생각으로는 이렇게 하셨으면 좋을 줄 믿습니다. 즉 빈손으로가 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곳 군졸을 전부 인솔하고 가시다가는 도리어 세상을 경동시킬 염려가 있겠읍니다. 그러니까 이곳 장졸 중에서 가장 용맹 있고 믿음직한 자 백여 명만 뽑아 인솔하시고 상경하시면 아마 나라에서도 군졸 얼마를 내려주시겠지요. 이곳 군졸로써 나라 군졸을 견제케 하시면서 진군 하시면 오합지중인 반장 반졸들은 얼마이고 염려가 없을 것이고 그 중에서 또한 추려내면 심복 군졸 수천 명은 쉽게 손에 들 줄 압니다. 오천 명의 심복 군졸만 가지면 천하에 두려울 자 어디 있소리까 ?"
 
31
"자네 의견이 내 뜻과 꼭 같으니."
 
32
견훤은 간단히 결론하였다.
 
 
33
남이 보자면 서남방 변방장을 전근시켜 반적 토벌장으로 돌린다는 것이 그다지 큰 일도 아니요 별다른 일도 아니다. 그러나 견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적지 않은 일이다. 지금 남들은 이곳저곳서 일어서서 대성(大成)은 못 했으나마 한 성(城)이나 주(州)는 점거하고 호령을 하고 있는데 자기는 조 정의 명령으로 이곳에 정배오다시피 하여 생애상 중대한 타개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이때에 조정에서 이런 좋은 기회를 내려주는 것이었다.
 
34
그날 밤 꽤 깊도록 견훤은 원노와 협의를 하여 용맹 있고도 심복되는 장졸을 수십 명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용맹과 충성을 아우른 군졸 백여명 선출은 갑자기 하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며칠을 눈두어 보아야 할 것이다.
 
35
왕사는 사흘 뒤에 돌려보내되 그 왕사에게 견훤은 자기가 입경할 날짜를 미리 알려두기로 하였다. 닷새 동안 습진(習陣)을 하여 군졸을 선출하여 왕사의 뒤를 쫓기로 하고 왕사에게 도중 각 역(驛)에 향군을 명하여 두기를 부탁 하기 위해서였다.
 
36
원노와 의논을 끝내고 원노를 그의 처소로 돌려보내며 견훤은 뒤따라 대청에까지 나섰다.
 
37
가을 맑은 하늘에는 임자년 살별이 꼬리를 길게 벋치고 있다. 길한 징조냐
 
38
? 흉한 징조냐 ? 무위의 수개 년을 보낸 뒤에 지금 바야흐로 타개(打開)의 첫걸음을 내어밟으려 할 때에 하늘에서 응하여 주는 저 징조는 내 장래에 지 시 함인가 혹은 어느 다른 일이 이 세상 한 모퉁이에서 생겨 남인가 ? 내길을 지시함이라 할 진대, 길(吉)에 응하는 징조인가 ? 혹은 흉에 응 하는 징조인가 ?
 
39
댓돌 위에서 뒷짐을 지고 견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늘을 한없이 한없이우러 러 보고 있었다.
 
40
"오늘 견훤이가 입경한다지요."
 
41
"오늘 저녁에 온답니다."
 
42
대궐 서쪽 널따란 빈터에는 양지(陽地)를 찾아 여기 한 무리 저기 한 무리 젊은이 떼 늙은이 떼들이 혹은 한담을 하며 혹은 바둑들을 두며 이 소란한 세월을 한가로이 보내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늙은이 패에서 이런 화제(話題)가 나왔다.
 
43
"구름을 피우고 물을 얼게 하고 날아다니고 하는 재주가 있다지요."
 
44
"그렇답니다."
 
45
그 말에 좀 딴편으로 돌아앉았던 노인이 참견을 한다.
 
46
"몸집도 얼마나 큰지 예삿말은 타지를 못해서 용종(龍種)을 따루 기른답디다. 그러나 조화를 부릴 때는 콩알만하게두 돼서 부장(副將)의 주 머닛속에 들어다니 기도 한다나요."
 
47
"그런 장수를 왜 변방장으로 보내 두었었을까 ?"
 
48
"글쎄. 나라에서 하는 일이 어디 일 같은 게 하나나 있읍디까. 위에서는 당 신 네들 자미나게 지내시느라구 그런 장수가 있는지 나라이 어지러운지 온통 모르고 지내셨지요."
 
49
"정말 그런 훌륭한 장순지 누구 안답디까. 소문만한 것이 있는 걸 보질 못 했소이다. 넓적다리 보면 뭘 봤다는 세상에서 힘께나 쓰고 활깨나 쏘면 어쩌니 어쩌니 하지."
 
50
"아니 이번 견훤이는 정말 그렇대."
 
51
"정, 뭐이 좀 나와서 세상을 휘둘러서 바로 펴 주어야지 이게야 밤낮 두 선거 려서 안심이 되지 않아 어디 살겠소이까. 하기는 살 만치 살기는 했지만."
 
52
이 구석뿐이 아니라 서울 집집이 모퉁이 모퉁이마다 사람 두세 명씩만 모인 곳이면 견훤이의 이야기에 꽃이 피었다. 그리고 견훤이가 들어올 길에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자리를 다투어 지키고, 조정에서는 마치 상국 높은 사신이라도 맞이하듯이 길을 모두 정갈히 하고 왕의 대신으로 조카가 조정 고관들을 인솔하고 남교(南郊)에까지 마중을 나갔다.
 
53
이보다 앞서 견훤이 임지(任地)를 떠나기 전날 제이 왕(王使)가 이르러 견훤에게 비장(飛將)의 직을 주었다.
 
54
제사대 비룡(飛龍)의 위에 높이 앉아 백여 명 장졸을 인솔하고 서울로 향 하여 행군을 할 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침울 일색밖에는 없었으나 마음으로는 약간의 환희와 자유를 느꼈다. 장차 이 장졸로 근위대를 삼고 한 나라에 군림한 날의 전초(前哨)와 같아서 그의 좀체 동하지 않는 감정도 약 간동하였다.
 
55
서울 가까이까지 이르매 마중나온 귀인들이 마중의 잔치까지 베풀고 기다리고 있었다.
 
56
견훤은 잔치가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군졸들을 위하여 잠시 교외에 기다려 가지고 저녁 때에야 성내에 들어왔다.
 
57
성내에는 한 영(營)을 비워 가지고 견훤의 장졸들을 유숙케 하고 견훤 은한 행궁을 쓰게 하도록 마련하여 두었다. 그러나 견훤은 장졸들과 기거 를같이 하겠다고 이 전례가 없는 융숭한 대우를 초라히 거절하였다.
 
58
견훤이 장졸들과 함께 영에 들어 자리잡을 겨를도 없이 대궐에서는 또 사자가 와서 저녁에 왕의 사연(賜宴)에 오라는 분부였다.
 
 
59
"피곤해서 일찌기 자겠다고 여쭈어 주시오."
 
60
이것이 견훤의 대답이었다.
 
61
임금의 영광스러운 잔치에 안 가는 법도 없거니와, 왕의 사연을 거절 한다는 무례도 또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을 그대로 임금께 회보 할수도 없고 다른 적절한 구실을 발견할 수도 없어서 입장이 곤란하게 된 사자는 다시 견훤에게 꼭 사연에 참석하기를 간청하여 보았다.
 
62
거기 대하여 견훤은 잠시를 사자의 얼굴을 보다가,
 
63
"나는 한번 한 말을 번복할 줄 모르오."
 
64
할 뿐 외면하여 버렸다.
 
65
피곤하다고 왕의 연석에도 참례치 못한 견훤의 영에서는 견훤이 자기의 장졸들에게 그 새의 길걸이에 대한 위로의 잔치가 열려서 밤이 꽤 깊도록 그 동리를 소란케 하였다.
 
66
이튿날 아침, 조반을 먹은 곧 뒤에 견훤은 사람을 대궐로 보내서 인제 참내 하겠 읍니다 고 예통케 하였다.
 
67
시각이 견훤에게는 조반 후이나 대궐에서는 밤중으로 여길 시각이었다. 밤늦게 잔치가 있고 동틀녘이 되어 겨우 자리에 드는 대궐의 습속으로 보자면지 금은 꼭 한밤중이었다.
 
68
어제는 임금의 분부로 오라 하되 오지 않고 오늘은 한밤중에 참내하 겠노라는 이 야인(野人)― 그러나 이번에 견훤을 부른 것은 조정이 아니고 임금의 천명 이었더니만 치 대신들의 의견뿐으로 물리칠 수가 없어서 궁중에 통 하였다.
 
69
궁중에서도 난처하였다. 어제'참내 못하겠읍니다’고 할 때는 임금의 노염이 지극하여 평생 다시 견훤을 부르지 않을 듯하였다. 그러나 임금의 성격이 괴벽하여 정심이 없느니만치 지금 임금의 뜻을 묻지 않고 견훤을 물리 쳤다가는 또한 어떤 꾸중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70
임금의 잠을 깨우기도 어려운 일이요 견훤을 물리치기도 어렵게 되어, 늙은 여관 두 사람이 의논을 한 결과 침전문을 방긋이 열고 엿보아 요행으로 임금이 깨어 계시면 이 일을 여쭙고, 그렇지 않거든 견훤에게 조금 기다려서 참내하라고 하였다.
 
71
침전을 지키는 여관에게 작은 소리로 사세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침전 문을한 치쯤만 열어 주기를 빌었다.
 
72
그때였다.
 
73
"견훤이 참내했느냐 ?"
 
74
침전 안에서의 여왕의 음성이었다. 벌써부터 깨어서 여관들의 의논을 대강 들은 모양이었다. 여관들은 뜻하지 않고 그 자리에 부복하였다.
 
75
"네이."
 
76
한결같이 대답이 나왔다.
 
77
"소셋물 가져오너라. 만나리라. 충위각(忠衛閣)으로 모시어라."
 
78
"아직 참내한 바가 아니오라, 지금 참내하겠노라 하옵니다."
 
79
"소세 준비 하여라."
 
80
"네이."
 
81
임금은 황황히 일어났다.
 
82
그것은 마치 시정의 아녀배가 정랑을 맞으려는 태도와도 흡사히 임금은 화장을 아리따이 하고 여왕으로서의 정장(正裝)을 피하고 여인으로서의 가장 화려한 옷을 택하여 입었다.
 
83
그런 뒤에 견훤의 입궐을 기다렸다.
 
84
임금은 충위각에서 견훤을 보았다.
 
85
다른 대신은 부르지 않고 두 아리따운 소년이 칼을 받들고 임금의 좌우에 모시고 저편 뒤에는 사관(史官)이 초일기(初日記)와 붓을 가지고 기다리고있는 가운데서 견훤은 난생 처음으로 부복례(俯伏禮)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순간의 틈을 얻어 임금을 우러러보았다.
 
86
외신(外臣)을 만남에 대관이나 근신이나 밖에는 바을을 늘이고야 보는 격식 임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이 초대면의 젊은 무장을 대함에, 정전(正殿)에서 부르지 않고 편전(便殿)에서 더우기 바을까지도 걷고 삼중 방석 위에 당시의 여인의 보통 앉는 습속을 따라 한 무릎을 세우고 그 무릎에 한 팔을 얹고 양손을 맞잡고 앉아서 보았다. 왕관 정장 모두 걷어 치우고 한 개 젊은 여인으로서 견훤을 본 것이었다.
 
87
그 앞에 부복하면서 순간의 틈으로 임금을 우러러보매, 스물 대여섯쯤 되었을 춘추로서 남향하여 앉아서 남창에서 비추이는 빛을 가득히 받은 얼굴은 만월과 같이 실하였다. 그러나 그 눈가에 흐르는 미소에는 다분히 음란한 빛이 있었다. 연지를 많이 찍은 그 입도 적지 않게 음기가 보이었다.
 
88
"먼 길에 피곤하시겠소."
 
89
간단한 말이나마 음성이 매우 낭랑하였고 발음이 여간 부드럽지 않았다.
 
90
"소신은 본시 피곤한 줄을 모르는 위인이올시다."
 
91
엊저녁 이 임금의 사연에'피곤해서 못 가겠노라’고 한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이것이었다.
 
92
"들으니 웅략이 아주 비범하시다구. 보아하니 아직 연치도 많지 못한 듯한데 어느 겨를에 그렇듯 수업을 하셨수 ?"
 
93
한두 마디의 대화뿐으로 벌써 대인 응대에 능한 이 임금의 본질을 알아볼수가 있었다.
 
94
"무능무재한 소신이로소이다. 남아 십오 세 대장부라 하옵는데 대장부 된지 십 년에 겨우 성주께 헛소문이 들려 비장(裨將―副將軍[복장군]) 이라는 감당 키 힘든 소임을 맡게가 되었읍니다."
 
95
"그럼 올에 스물다섯이오 ?"
 
96
"쓸데없는 나이만 적지 않게 먹었읍니다."
 
97
"나보다 한 살 아래로군."
 
98
임금은 스물여섯이었다. 그러나 그 대인 교제의 능한 점으로 보아서는 사십 이상의 중년녀라고도 볼 수 있는 반면에 고생을 모르고 지낸 위에 화장에 능한지라 이십 미만의 처녀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99
"참 고향이 어디시라구 ?"
 
100
"상주 가은현(尙州 加恩縣)이올시다. 대대로 농사를 지어먹던 천한 백 성의 자손이로다."
 
101
견훤은 순간의 기지(機智)로 거짓말을 하였다. 지금 생애의 국면을 타개 하려는 첫걸음에서 백제인이라는 점이 탄로가 되면 지금껏의 노력이 헛노력이다.
 
102
"거짓말이겠지. 농군집 자손이 아닌데. 게다가 백제 사투리가 많고."
 
103
임금은 벌써 십 년의 친구인 듯이 농담조로 응하였다. 견훤은 가슴이 선뜻 하여 임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임금이 그다지 개의치 않는 데 안심 하였다.
 
104
"영암(靈岩) 도선사(道詵師)의 문하에 오래 있기 때문에 백제 사투리가 있 읍니다."
 
105
견훤도 이만치 치워 버렸다.
 
106
그다지 긴하지 않은 이야기가 잠시를 더 계속된 뒤에야 임금은 비로소 견훤에게 이번 부른 까닭을 말하였다.
 
107
견훤이 예측하였던 바와 같은 일이었다. 지금 도적 무리가 사방에 일어서 국가 기강을 어지럽게 하면 그중에도 양길이며 궁예 같은 거대한 자까지 있어서 이를 진압하고자 하나, 조정에 그럴 만한 실력을 가진 장수가 없어서 견훤을 불렀다는 것이며 그 새 견훤이 서남방을 지키고 있었으므로 그 곳은 안온하였다는 치하며, 서남방도 중요하지만 지금 국가로서 두통거리 되는것은 북방에 웅거하고 단지 웅거해 있을 뿐 아니라 나날이 국도(國都) 가까이 침범해 들어오는 비도들이니 잠시 서남방을 비워 두고라도 북방을 먼저 진압 하여야겠다는 것이며 지금 나라의 군사가 부족하여 일천 명 군사밖에는 내어주지 못하겠으나 견훤이면 이 적은 군사로도 넉넉히 도적들을 토평 할줄로 굳게 믿는다는 말을 임금은 그 흐르는 듯한 말솜씨로 일변 견훤을 올려 추켜 가면서 설명하였다.
 
108
국가에 큰 걱정인 이 문제를 근심스러운 듯지도 않은 명랑한 솜씨로 설명 하는 자초지종을 견훤은 묵묵히 들었다.
 
109
궁예 토벌 ?
 
110
양길 토벌 ?
 
111
그 따위는 견훤은 생각지도 않았다. 지금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천여 명의 장졸을 인솔하고 공공히 가고 싶은 곳에 가며 치고 싶은 곳을 치며 공공히군 졸을 모집할 수 있는 권한이 자기의 손 안에 들어오려 한다.
 
112
신라 왕의 이름을 가탁하여 신라서 군졸을 모집하고 신라의 성을 치고 가는 곳마다 그곳 성주(城主) 도독(都督)에게 향군(鄕軍)을 명하고 무기(武器)를 징발하고― 이리하여 왕명을 배경으로 백제 복벽을 도모한다.
 
113
생각컨대 이런 희극이 어디 있으며 이런 비극이 어디 있을까 ?
 
114
평생을 침울한 얼굴밖에는 하여보지 못한 견훤의 얼굴에 이때에 비로소 잠간이나마 침울한 그림자가 사라지고 그 대신 보통 얼굴이 되었다가 그 뒤를 따라 어렴풋한 미소가 나타났다.
 
115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울리지 않는다. 미소가 나타나매 그야말로 싱거운 얼굴이 된다. 한순간 고자〔宦者[환자]〕와 같은 얼굴이 되었다가 다시 보통 얼굴로 되었다가 또 다시 침울한 얼굴로 그런 뒤에 입을 열었다.
 
116
"양장(良將)이 위에 있으면 용졸(勇卒)이 되기는 사양치 않겠읍니다마는 장(將)이 되기는 소신이 감당치 못할 배로소이다."
 
117
"양장의 아래서 용졸이 될 수 있으면 양군(良君)의 아래서는 용장(勇將)이 되겠지. 내 양군이 될 테니 내 아래서 용장이 되시오."
 
118
말로는 도저히 이 임금을 당할 수가 없었다.
 
119
"용장까지는 되겠읍니다마는 지(智)없는 용(勇)이 무엇에 쓰리까 ?"
 
120
"용(勇)없는 지(智)는 또한 무엇에 쓰리오. 내 굳게 믿고 맡기는 배니 사 양치 마시오."
 
121
"성은을 보답할 길이 없음을 한탄하옵니다."
 
122
이리하여 이것으로서 이 문제는 일단락을 맺었다.
 
123
견훤이 퇴궐을 하려 하매 임금은 오늘 저녁 다시 견훤을 위하여 잔치를 열겠으니 오늘은 사양치 못하리라는 말과 그다지 바쁘지 않으면 저녁 잔치까지 정청에 나가 대신들과 시국에 관한 상황이나 의논하며 기다리란 분부를 내렸다.
 
124
"오늘 또 사양하려면 저녁까지 결박지어 이 방에 가두어 두겠소."
 
125
임금은 견훤에게 대하여 이런 농담까지 하였다.
 
126
거기 대하여 견훤은 자기는 지금 백여 명 장졸의 두령이니 야연(夜宴) 때까지 그냥 대궐에 머물러 있기가 민망스런 뜻을 아뢰고 일단 나아갔다가 다시 저녁에 참내하기로 하고 대궐을 물러 나왔다.
 
127
밤에 견훤은'임금의 연회에 참례하였다. 전혀 견훤을 위한 연회지, 다른 대신은 한 사람도 없었다.
 
128
더우기 기괴한 것은 여악(女樂), 여령(女伶), 여무(女舞) 등이 일체 없고 계집의 대신으로 모두 열두세 살로 열 예닐곱씩 난 미소년들을 쓰는 점 이었다.
 
129
"오늘 이 잔치는 특별히 경을 위해서 베푼 것이니 마음껏 자시고 마음껏 노시고 마음껏 취하시오. 군신지간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좋은 친구하구 대작 하는 마음으로 어려이 아는 생각이 없도록 놉시다."
 
130
이런 분부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없는 잔치니 전혀 견훤을 위한 잔치라는 것은 재삼 말할 필요도 없다.
 
131
먼저 임금이 옥배(꽤 큼직한)를 들었다. 모시던 소년이 금주전자에 들은 술을 가득히 부었다.
 
132
임금은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소년들의 부르는 노래와 음악 가운데서 임금은 단숨에 절반만치 들여마셨다. 그런 뒤에 잔을 입에서 떼고, 저으기 눈을 들어 견훤을 건너다 보았다.
 
133
"자, 내 절반을 마신 잔을 비장께 드리노리 사양치 말고 자시오."
 
134
잔을 내밀었다.
 
135
모시던 소년 가운데 하나이 빨리 그 잔을 받아가지고 견훤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양손으로 받쳐 견훤에게 잔을 권하였다.
 
136
이것은 무론 임금이 신하를 중하게 여겨서 그 뜻을 술잔으로 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37
그러나 젊은 여왕으로서 젊은 장수에게는 마땅히 삼가서 이런 일까지는 피하 여야 할 것이었다. 견훤은 눈을 들어서 여왕을 쳐다보았다. 여왕의 표정 ― 그것은 임금이 신하를 사랑하는 표정이라기보다 오히려 단지 한낱 젊은 여인의 표정일 따름이었다.
 
138
"황공무지로소이다."
 
139
견훤은 여왕의 남긴 반 잔 술을 받아서 마셨다. 그리고 빈 잔을 소년을 주 어 여왕께 올리려 하였다.
 
140
그때에 임금이 말하였다.
 
141
"군주가 신하를 중히 여겨 한 잔 술을 나누어 마셨거든 신하는 군주께 그만한 충성을 못 가졌소 ?"
 
142
견훤은 또 한 번 힐끗 여왕을 쳐다보았다. 휘황히 켜놓은 촛불 아래 농후한 색채의 옷으로 장식한 여왕의 자태는 오히려 요염한 편에 가까웠다. 이미 처녀시절부터 재상 위홍(魏弘)을 가까이 하였고 등극한 뒤― 더우기 위홍이 죽은 뒤에는 수없는 미소년이며 젊은 재상을 가까이한 이 여왕은 임금으로서의 위의보다도 여인으로서의 애교를 더 풍부히 가지고 있는 사람 이었다.
 
143
견훤은 내밀었던 잔을 도로 움쳤다. 그것을 기다린 듯이 소년이 잔에 술을 부었다. 견훤은 그 잔을 들어 절반쯤만 마셨다. 그런 뒤에 "더러운 잔이옵니다마는 성군을 사모하는 정으로."
 
144
하면서 기다리는 소년에게 내어맡겼다.
 
145
이리하여 한 잔의 술은 교환되었다.
 
146
그 뒤에도 혹은 절반씩, 혹은 제각기 이렇게 연방 술잔은 오르내렸다.
 
147
임금은 술이 억배였다. 얼마를 먹어도 취기가 얼굴에나 눈에나 혀끝에 나나 보이는 일이 없었다. 받을지라도 받을지라도 그냥 한없는 주량이었다.
 
148
"어디 검무를 한번 추어 보시오."
 
149
이윽고 임금은 견훤에게 분부하였다. 그러나 그런 방면에는 소양이 없는 견훤은 검무를 출 줄 몰랐다. 그래서 그 뜻으로 아뢰었다. 그랬더니 그럼 아무 것이나 아는 것으로 추라 한다.
 
150
"우아(優雅)한 놀이를 모르는 무변(武邊)이오라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 읍니다."
 
151
사실대로 아뢰었다. 그랬더니 임금이 "그럼 내가 처용(處容)의 춤을 추어 볼 터이니 서툴다고 너무 웃지 마시오."
 
152
하고 몸을 일으켰다.
 
153
처용의 춤이라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십여 년 전 이 여왕의 오라버님 되는 헌강왕(憲康王) 때에 헌강왕이 학성(鶴城)에 거둥을 하였다가 거기서 만난 처용(處容)이라는 사람이 꾸며낸 춤이었다. 헌강왕은 그때 처용을 대궐로 데리고 돌아와서 대궐에 묵여 두고 궁인들에게 가무를 연습케 하였으므로 당시 열너덧 살의 공주― 지금의 여왕은 가무에 꽤 능하였다.
 
154
소년들의 울리는 요량한 음악에 어울리어 나비와 같이 넘나노는 여왕의 자태는 선녀(仙女)라기보다 기녀(妓女)에 가까웠다.
 
155
펄럭이는 소매, 휘감도는 치마, 그 속에서 움직이는 풍만한 육체 등을 견훤은 취안을 들어 우러러보고 있었다.
 
156
한바탕 춤을 추고 난 여왕은 피곤한 듯이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157
"자 또 따라라. 좀더 먹어야겠다."
 
158
또 술을 불렀다.
 
159
"비장 어디 나하고 내깃술을 하여 볼까 ?"
 
160
"신하가 무슨 일이든 어찌 임금을 이기리까."
 
161
"여자의 주량(酒量)이 어찌 남자 더욱― 장수를 대적하겠소마는 좌우간 해봅시다."
 
162
드디어 군신간에 술내기까지 시작이 되었다.
 
163
어느때쯤인지는 모르나 견훤은 깊은 잠에서 깨었다.
 
164
먼저 코를 찌르는 향내를 느꼈다. 동시에 갈증을 느끼면서 눈을 떴다.
 
165
휘황한 촛불이 보였다. 그와 함께 눈에 뜨인 것은 ?
 
166
그의 얼굴에서 다섯 치도 되지 못하는 가까운 거리에 웬 여인의 얼굴이 있었다.
 
167
한순간에 견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셀 수 없이 무수한 생각 이었다.
 
168
첫째로는 자기는 완산주 자기 집에 있고 지금 보이는 여인은 자기의 안해라는 생각이었다.
 
169
그 다음으로는 지금 자기는 어떤 창기의 집에 누워 있거니 하는 생각 이었다.
 
170
웬 여인인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171
자기는 임소(任所)를 떠나서 서울에 와 있거니 하는 생각도 났다.
 
172
대궐의 잔치도 생각났다.
 
173
그 밖에도 여러가지의 생각이 한순간 새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74
술 기운 때문에 아직도 눈의 촛점(焦點)이 맞지 않으므로 한쪽 눈을 잔뜩 찡그리며 머리를 뒤로 더 물리고 다시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175
웬만한 일에 놀랄 줄을 모르는 견훤이로되 여기서는 너무도 놀라서 가슴까지 서늘하였다.
 
176
여왕이었다. 여왕이 견훤과 한자리에 누워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견훤의 놀라는 양을 보는 것이었다.
 
177
견훤은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여왕의 팔이 그를 못 일어나게 하였다.
 
178
대궐에서 보통 일어나는 시각 오정에야 견훤은 일어나서 아침 상도 여왕과 함께 하고 자기의 영으로 돌아온 것은 미시(未時)도 지나서였다.
 
179
돌아와 보매 영에서는 원노(元奴) 이하 말졸(末卒)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무장을 하고 살기가 등등하여 마치 당장 어디 습격이라도 가려는 군대인 듯 하다.
 
180
그들은 견훤을 경희하며 맞았다. 사연을 알아보내, 그들은 견훤이 대궐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므로 조금 더 기다려 보고서 대궐로 습격을 가려던 중이라 한다.
 
181
밤 새에도 여러번 대궐로 갔었다 한다. 대궐에서는 매번 아직 연회중이라 하므로 하릴없이 그냥 돌아오고 하였는데 다섯번째인가 여섯번째인가 갔을 때는 ' 취해서 그냥 대궐에서 주무신다’는 것이었다. 매우 의심쩍었다. 아무리 취하였다 할지라도 대궐에서 재운다 하는 것도 이상하였거니와 견훤도 대궐서 그냥 잘 사람이 아니었다. 매우 의심스럽기는 하나 좌우간 날이나 밝기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고 밝은 뒤에 곧 대궐로 사령을 보냈더니, 아직기 침치 않았다 하며 대궐에서는 오시(午時)나 되어야 기침을 하니까, 기침 하여 조반까지 자시고 퇴궐하자면 미시(未時)가 지나야 되리라 하므로 지금 모두들 무장을 하고 신시(申時)까지나 기다려 보고 그때까지도 안 돌아오면 견훤의 신상에 무슨 불길한 일이 있음으로 인정하고 대궐로 달려가서 살아있으면 구출(救出)하고 벌써 해를 입었으면 복수를 하리라고 벼르던 중이라 한다.
 
182
견훤은 자기의 지난 밤에 지낸 일과 자기 부하들의 근심을 대조하여 생각 해 보고 속으로 고소(苦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83
견훤은 자기의 방으로 들어갔다. 체력(體力)이 과인한 그로도 피로함을 느꼈다. 곤한 몸을 무겁게 자리에 주저앉히며 안석에 몸을 기대었다.
 
184
가지가지의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오락가락하였다. 이백 수십 년 전, 나라이 깨어지고 종사가 무너지는 날 견훤 자기의 직계 조상(直系祖上)인 의자왕(義慈王)이 멀리 당나라로 잡혀가고 그의 비빈이며 궁녀들은 신라와 당나라 장졸들에게 가진 욕을 다보고 용용히 흐르는 사자수를 향하여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목숨까지 끊었다.
 
185
그 원수를 그때의 비극에 지지 않게 참혹히 갚으려고 나선 자기다.
 
186
그때의 그 비극의 피해자의 직계 후손인 자기와 그때의 승리자의 직계 후손인 여왕과의 기괴한 인연은 이를 욕보였다고 볼 것인가. 혹은 욕 보았다고 볼 것인가.
 
187
이번의 일은 이백여 년 전의 그 날의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것으로서 여왕의 측으로 볼지라도 일상 다반사의 하나에 지나지 못하는 일이요 자기의 측으로 볼지라도 지나가는 오입에 지나지 못한다. 자기의 본래의 계획 본래의 목적은 아직 뚜껑도 열리지 않은 채로 곱다랗게 그냥 남아 있다.
 
188
먼저 국가와 종사의 회복을 보아야 할 것이다.
 
189
다음에는 분명히 저쪽에서 치가 떨리게 인식될 만한 커다란 욕을 저쪽에게 내려 부어 주어야 할 것이다. 천만대까지도 잊지 못할 큰 수치를 내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받은 이 치욕은 분명히 이백여 년 전에 자기네의 조상이 백제에게 내려준 그 품갚음이라는 점도 똑똑히 인식을 시켜 주어 야할 것이다.
 
190
오늘의 이 일은 내게 있어서도 욕을 준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저쪽에 있어서도 욕을 본 일이 아니로다. 서로서로의 임시적 쾌락, 임시적 흥취에 지나지 못한다.
 
191
피곤한 몸을 안석에 기대로 이런 생각에 잠겨 있던 견훤은 그냥 피곤한 다리를 길게 뻗고 드러누워 버렸다.
 
192
다음 순간에는 집이 떠나갈 듯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193
견훤이 한참을 푹 자고 나서 저녁을 먹고 원노 등을 방에 불러 가지고 한참 한담들을 할 때에 대궐에서 또 야연이 있으니 들어오라는 전령이 왔다.
 
194
견훤은 서슴지 않고 일어났다.
 
195
"내 염려는 아주 말게. 혼자인들 백 명은 당해 낼 내니, 무슨 일을 만나면 한바탕 소란도 없이야 변을 겪겠나 ? 오늘도 입궐하면 혹은 밝는 날에야 돌아올는지도 모르겠으니 아주 마음놓고들 자게."
 
196
막하 장령들에게 이런 부탁을 남기고서, 대궐에서 인도하는 불에 길을 살피며 비룡을 타고 시위졸 두 명만 데리고 또 대궐로 향하였다.
 
197
임금은 이상히도 이 음침하고 애교없고 말이 적고(임금이 묻는 말에 대답은 잘 하지만 자진하여 말을 꺼내는 일이 적었다) 어떻게 자진해 말을 한다하면 그것은 도로혀 감정 날 말이나 툭 하고― 상가집(喪家) 조객(吊客) 이라기나 적당할 이 뭉퉁한 사나이에게 몹시 마음이 끌린 모양이었다.
 
198
이 임금이 공주 적부터 가까이한 위홍(魏弘)을 제한 밖에는 이 임금은 한 사나이를 두 번 본 일이 없었다. 미소년과 젊은 재상을 적지 않게 가까이 하였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단 하루였다. 단 하루를 본 뒤에는 벼슬을 주거나 혹은 벼슬을 돋구어 주거나 하는 뿐 그 뒤에는 다시 부르는 일이 없었다.
 
199
그렇던 임금이 이 교제상으로나 미적(美的)으로나 아첨하는 점으로나 흥취 로나 아무 점으로도 보잘것 없는 견훤을 위하여 매일 야연을 열었다. 그러고는 이튿날이라야 내보냈다.
 
200
본시 견훤을 임소(任所)에서 부르기는 중대하고 시급한 임무를 맡기기 위 해서였다. 하루바삐 도로 길을 떠나보내야 할 사람이었다. 그 위에 변방의 흉보는 나날이 급하였다. 하루가 바쁘고 한시가 바쁜 형세였다. 웬만한 사정이 있더라도 그 사정을 끊고라도 떠나보내야 할 사람이었다.
 
201
게다가 대신들의 재촉도 나날이 심하여 갔다. 대신들도 하루이틀은 가만있었지만 닷새가 되고 열흘이 되고 하여도 임금은 야연에만 생각을 두고 변방 어지러운 것을 잊은 듯이 있으매 재촉이 차차 노골화해 가고 심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무론 질투심까지도 섞인 감정이었겠지만 이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사고 자기의 책임이며 할 일은 잊은 듯이 있는 뭉퉁한 사나이를 조정에서는 한결같이 증오의 눈으로 보았다.
 
202
임금이 견훤을 장군으로 승직을 시키자는 의론을 꺼내였을 때에 온 조 정이들고 일어나서,
 
203
"서 남방을 잘 지킨 공으로 비장(裨將)으로 승직시킨 지 날짜도 얼마 안 되거니와 그 뒤 세운 공도 없사오니 또 이 위에 승직시킬 연유가 없읍니다."
 
204
고 반대를 한 것은 순전히 견훤에게 대한 증오심에서 나온 바였다.
 
205
견훤으로 보자면 임금의 총애도 별로이 신통하게 기쁜 일이 아니었다.
 
206
온 조정의 증오도 별로이 두렵거나 싫거나 한 바도 아니었다. 모두가 단지 일시적 희롱이요 유희일 따름이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 새 한동안 독신생활을 하기 때문에 좀 과히 적축되었던 정력을 처치하는 놀이 일 따름 이었다.
 
207
이렇듯 보는 사람에 따라서 견해를 달리하는 이 일이 거진 한 달이나 계속 되었다. 인제는 견훤도 염증이 나서 중지하여 버릴까 생각하는 그 어느 날 이었다.
 
208
드디어 임금은 재상들한테 지었다. 하릴없이 견훤에게 군사 일천 명을 주어서 떠나보내기로 하였다.
 
209
그 새, 경군(京軍) 전부를 서교(西郊)에 불러 견훤이 직접 지휘를 하여 사흘 동안은 습진(習陣)을 하였다. 그리고 노 가운데서 견훤이 직접 일천 명을 골라 뽑아서 따로 영에 두고 매일 맹연습을 하여왔다. 낮 전에는 원 노가 지휘하고 낮 뒤에는 견훤이 퇴궐하여 지휘하고 이리하여, 본시 이만 명 경 군 중에서 뽑은 일천 명인데다가 반 삭너머를 맹연습을 하니만치 꽤 정예한 군사가 되었다.
 
210
이 정군 천여 명을 거느리고 길 떠나기로 된 전날 밤 꽤 늦도록 견훤은 자리에 들지 않았다.
 
211
새벽 동틀녘에 길 떠난다고 임금께도 하직하고 그 새 사괸 재상들과도 작별을 하였는지라 인제는 길 떠나기 전에 한잠 잘 일 밖에는 남은 일이 없었다.
 
212
길 떠난 뒤에는 ?…
 
213
길 떠난 뒤에는 성공의 탑을 향하여 일로 맹진할 뿐이로다. 웬만한 큰 고장만 생기지 않으면 자기의 전도를 막을 자 없다.
 
214
일이 이렇듯 순순히― 저절로 펴 나아갈 줄은 꿈에도 바라지 않았던 바이다.
 
215
신라 임금의 명령을 받아 공공히 하는 행군이라, 어느 곳을 갈지라도 약탈이라는 행동을 하지 않고도 군기를 징발할 수 있고, 미리 전령 한 사람만 보내 두면 어느 곳을 갈지라도 벌써 장졸의 먹을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고 장졸이 잘 곳이 작정되어 있을 것이다.
 
216
이러한 향응을 받으며 백제의 구역(舊域)까지만 간 뒤에는 자기의 행동은 천하에 자유이다. 그 뒤부터는 가식(假飾)할 필요도 없고 신라 왕명을 가탁 할 필요도 없다. 정정당당히 천하에 내놓고 백제 군사를 모집하고 백 제군 의향 응을 명할 뿐이다.
 
217
먼저 아버님의 계신 무진주(武珍州―광주)로 달려가자. 아버님, 어머님은 건재하 신가. 어머님은 혹은 모르시는지도 모르지만 아버님으로서 아직 생존 해 계시다면 얼마나 오늘이 올 것을 기다리셨을까.
 
218
아홉 살에 집을 떠나서 지금껏 뵌 일이 없는 부모의 생각이 일이 급기 이만치 되고 보니 그립기 한량 없다. 아직껏은 일이 되기 전에는 다시 못 뵈 올 부모라 단념을 하였으매 오직 성사의 일로로 학문을 닦고 문예를 닦고하는 데만 애를 썼지, 그다지 그리운 줄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219
이것이야말로 천우요 신조였다. 막연히 바라보던 꿈이 갑자기― 너무도 갑자기 그의 앞에 탁 나타났다. 천우가 있고 신조가 있어서 오늘날 이만치 된 일인 지라 이 일이 장차 역전(逆轉) 된다든가 불성공한다든가 하는 변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비관적 방면은 견훤은 생각하여 보려고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안 느꼈다.
 
220
그가 그의 몸을 커다랗게 자리 위에 내어던질 때는 그의 입에서는 마치 맹수의 부르짖음과도 비슷한 홍소(哄笑)가 터져나왔다.
 
221
"하하하하 하하하하 아아하하하하."
 
 
222
철이 든 이래로 아직 소리내어 웃어 본 일이 없는 견훤의 이 처음 낸 홍 소성은 그 새 안 웃은 것을 한꺼번에 봉창을 하려는 듯이 온 방― 뿐 아니라 온 영(營)을 더릉더릉. 울렸다.
 
223
견훤이 이전에 임소에서 데리고 온 군졸까지 합하여 일천 일백여 명의 군졸을 아직 날이 밝기 전에 서교에 모아 가지고 이를 십일대에 나누어서 십 일 대장(隊長)에게 맡겨 가지고 아침 해가 불긋이 동녘 성 위로 보이기 비롯 할 때에 행군은 시작되었다.
 
224
원노가 분주히 돌아가며 대를 나누며 대장에게 맡기며 할 동안 견훤은 비룡에 몸을 싣고 차차 밝아오는 성두(城頭)를 감개무량히 바라보고 있었다.
 
225
한 가지의 큰 일은 인제는 성사된 것이나 일반이다.
 
226
그러나 그 뒤에도 중대한 일이 하나 남아 있다. 사삿원수를 갚는다는 일도 견훤 개인으로서는 중대한 일이 아닌가.
 
227
지금 보고 있는 저 성두. 지금은 성두를 신라의 한 비장의 자격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 신라의 한 비장으로서 저 성두와 작별한 뒤에는 언제 다시 바라볼 기회가 생길까. 지금 이곳을 떠나서는 자기는 백제 국왕의 자격으로서야 저 성두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날이야말로 자기 집안의 사삿원수를 자기의 눈앞에서 갚게 되는 날이다.
 
228
그 날이 언제나 이르려는가.
 
229
백제 왕국의 재건은 지금은 성사된 것이나 일반이다. 그러나 그 후백제국(後百濟)이 국력이 충실되고 군대가 완비되고 사직이 튼튼하여져서 장차 이 곳까지 넉넉히 정벌하여 들어올이만치 자리잡히려면 적지 않은 세월이 걸리고 적지 않은 공력이 들어야 한다. 그것이 모두 마음대로 되어 두번째 저 성 두를 우러러볼 날― 그 날은 얼른 예측하기 힘들다.
 
230
집을 떠난 지 십육 년간, 지금껏 그냥 몸에 지니고 내놓아 보지를 않은 품칼을 높이 들고 신라 임금에게 그 칼로 자결하기를 명할 날, 그 날은 과연 예측 하기 힘들다.
 
231
견훤은 품안으로 손을 넣어 몸에 지닌 품칼을 만져 보았다. 자기의 체온에 따 뜻이 녹은 품칼의 자루가 손에 잡히운다.
 
232
"너도 네 원한을 풀 날이 반드시 있겠지. 천우와 신조가 있는데 안 될 일이 무엇이랴 ?"
 
233
그 날이 이르러서 이곳으로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여 올 때에 그냥 지금의 여왕이 신라 임금으로 군림하여 있다면 ? 견훤은 내심 고소하였다.
 
234
그런 싱거운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235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에 원노가 와서 분대가 끝났음을 보고하였다.
 
236
견훤은 원노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가지고 분대한 양을 순시하였다.
 
237
제법 나무랄 데가 없었다. 원노도 이만하면 한 가지의 중임은 넉넉히 맡길만 하였다.
 
238
"잘 되었네."
 
239
견훤이 드디어 칭찬하였다.
 
240
"그럼 인젠 행군합지요 ?"
 
241
"그러지."
 
242
두 명의 소라군과 두 명의 기수가 앞서고 그 뒤를 참장 두 사람이 말타고 따르고 또 그 뒤에 견훤이 원노와 나란히하여 따르고 그 다음에 참장 몇 사람이 말타고 따르고, 그 뒤부터가 제일대는 기병대(騎兵隊)요 나머지는 열대는 보병대(步兵隊)로서 모두 승마한 대장의 지휘 아래 정연히 행군을 시작 하였다.
 
243
차차 높이 오르는 해를 등지고 규율이 정연하게 행군하는 이 열한 대의 장졸은 행인들이며 길가의 사람들의 눈을 둥그렇게 되게 하였다. 비록 수효로는 그다지 대군(大軍)은 못 되나마 그 새 늘 퇴패하고 규율없는 신라의 장졸들만 보아 오던 그들의 눈에는 이 규율 정연한 군대가 유달리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244
발걸음 소리까지도 듣기 상쾌하게 보조 맞추어 행군하는 장졸들을 견훤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기꺼운 듯이 간간 돌아보고 하였다.
 
245
서로 서로 이틀 간을 행군하였다.
 
246
견훤은 사졸이 피곤하여 행렬에 낙오라도 생길 것을 근심하여 하루에 육십 리를 한하여 행군하였다. 이렇게 이틀을 행군을 하면서 가을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여마시며 웅대한 대자연에 접촉할 동안 견훤은 자기의 계획에 착오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247
지금 자기가 거느린 군졸은 비록 정예한 군졸이라 하나 그 거지반이 신 라인으로 조직된 자이다. 이것을 이끌고 백제 영역에 들어가서 백제 재건을 선언하 다가는 잘못하면 군졸 모집이 완성되기 전에 인솔군의 동요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만사가 수포로 돌아간다.
 
248
장차 모집할 백제 군졸이 지금 인솔한 신라 군졸보다 수효로나 세력으로나 실력으로나 훨씬 더 강하게 된 뒤에 비로소 백제 재건을 선언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착오의 첫째였다.
 
249
둘째로는 자기에게는 장차 얼마간을 양병할 재정이 없다. 백제 영역에 들어서서 백제 재건을 선언하면 사면에서 의연하는 재정이 몰려들려니 이만치 생각하여 두었다.
 
250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건대 백제 재건의 선언을 신중히 해야할 처지에 있으매 당분간의 양병의 재정이 지극히 곤란하다. 게다가 백제의 옛터는 그 새 오랫 동안 탐관오리의 학정 아래 빨리운 바 되어 가난하였다. 일천 년 사직을 누려 온 신라의 고을들은 가면 곳이 많았다. 왕의 명으로 공공히 행군 하는 이상은 가면 신라 땅에서 힘자라는껏 걷어 가지고 백제로 향하는 것 이 순로다.
 
251
서울을 떠난 지 이틀 만에 견훤은 임금께 글을 올렸다.
 
252
지금 양길 궁예의 무리는 약탈을 마음대로 하여 재정의 궁핍을 느끼지 않거니와 소신은 오직 충성된 군졸 일천 명밖에는 없사오니 상께서 부읍에 하명 하셔서 얼마의 금은을 나누어주게 하시면 감사하나이다.
 
253
간곡한 인사와 함께 이런 뜻의 글을 임금께 올렸다. 그 날부터 견훤의 거 느린 열한 대의 장졸은 지금껏 향하던 길을 버리고 남방으로 대우회(大迂廻)를 개시하였다.
 
254
길을 고쳐서 멀리 서남방으로 우회 행군을 하는 견훤은 이르는 곳마다 향도 군을 불러 앞세우고 날카로운 병졸을 뽑아 들이고 정예한 무기를 거두어들이어서 차차 무적 정병을 이룩하면서 멀리 지리산(智異山)을 남으로 휘 돌아 백제 구역(舊域)에 발을 돌이킨 때는 견훤과 원노 등의 뜻으로 개편(改編) 되고 재편된 병졸의 총수효는 오천여 명 그 병기(兵器)의 수효는 이 오천여 명의 병사가 쓰고 쓰고 또 써서 얼마를 남용할지라도 충분할 만치 되었다.
 
255
이 정비된 대군을 인솔하고 차차 백제의 옛터를 깊이 들어갈 동안 서로 모르는 새에나마 마음으로 깊이 통함이 있었던지 순전한 백제 계통의 정예 한 군 졸이 나날이 늘어갔다.
 
256
지난 한동안은 신라 서울에 묵으면서 신라 여왕과 지내던 음락의 생활이 한동안 견훤의 마음을 간지럽게 하였다.
 
257
그 뒤 한동안은 나날이 늘어 가는 군졸과 병기를 보면서 일종의 긍지를 느끼었다.
 
258
지금은 그런 감정은 다 없어지고 아직 채 성사되지 않은 일을 다 성사 되었다고 느끼는 무거운 감정에 잠겨서 웬만한 일에는 사람으로서의 감동을 모르는 그로서도 스스로 일어나는 감동을 억눌러 보려고 코를 킁킁 울려 보는 때가 적지 않았다.
 
 
259
궁예(弓裔)라는 이름은 견훤에게 있어서는 결코 잊히지 않는 자였다.
 
260
처음 동화사(桐華寺) 상노로서 외딴 꿈을 꾸고 있던 애꾸눈이 소년으로서의 궁  는 그 이튿날 낮 뒤 한 결과 또 그 이튿날 아침 한 결을 함께 지낸 데 불과하였다. 그 뒤에 자기는 도선사(道詵師)를 만나서 왕자의 길― 말 하자면 가장 경건한 사람의 길을 수년간 수업을 한 후 이번에는 무장으로서의 수업을 닦으려 사방을 편답할 새 태백산의 어떤 절에서는 또 단 한 저녁을 그와 함께 지낼 기회를 얻었다.
 
261
말하자면 만 이틀이 될까말까 하는 교제였다. 그러나 견훤은 지금이라도 눈만 감으면 넉넉히 숱한 풍산을 겪고 났을 그의 면용을 넉넉히 짐작 하였다.
 
262
그때 견훤은 궁와 더불어 장차 누구가 먼저 성공을 할까에 대하여 내기를 둔 일이 있었다.
 
263
돌아보건대 그때로부터 지금까지가 십 년 미만― 자기는 자기의 해석대로 일을 진행시켜 지금은 벌써 오천여 명의 수령이요 자기를 호령할 자 이 천하에 없고 한번 자기가 결심만 하면 그다지 작지 않은 한 나라의 임금이 될것이요 이것을 막을 자 세상에 없다.
 
264
그러나 궁예는 아직 멀었다. 장자는커녕 궁의 수령 되는 양길조차 한 개 난적에 지나지 못하지 아무 명색도 붙일 수가 없다. 게다가 주인 없는 땅인 고구려의 옛터에나 자리잡으려면 쉬운 일이려니와 무슨 까닭으로인지 당당한 주인이 있는 땅인 신라를 누르려 누르려 하고 있다. 힘든 일을 시작 하려는 양길의 부하 되는 궁예는 장차 양길의 손에서 벗어 나서 자기의 자리를 잡기 전에는 내내 남의 아랫사람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다.
 
265
자기는 지위가 태산 같다고 믿는 견훤은 이 옛날의 친구가 가긍하였다.
 
266
자기의 정예한 대군은 지금도 끊임없이 진군을 하며 진군과 동시에 수효며 정예가 늘어 갈 뿐이로다. 내일이면 능히 무진주(武珍州―光州[광주]의 一部[일부])를 멀리 바라볼 것이며 모레면 그의 대군은 능히 무진주에 입성 할것이다. 무진주에 입성을 한 뒤에는 ?
 
267
그 날 진중에 자리잡은 원로(元老)며 그 밖 몇몇 신임하는 장사들을 불러 앞에 놓고, 인제 . 모레 될 일에 대하여 구체안을 의논하였다.
 
268
의논을 개시하기 전에 견훤은 지필(紙筆)을 들었다. 그리고 두어 자 끄적 거리 었 다.
 
269
옛날 친구 궁예여. 그립지 아니한가 ?
 
270
그대는 머리를 베라. 머리가 무슨 쓸 데가 있는가. 양길 없이 자립(自立)하지 못할 그대 아니어니 왜 머리 위에 딴 관을 쓰고 있는가 ?
 
271
남으로 벋어서 그대 단 한 사람의 원수를 갚으려는 작은 마음을 버리라. 서북으로는 아비 없이 방황하는 넓은 땅과 많은 백성이 있느니 왜 하필 주인 있는 좁은 땅으로 작은 원수를 갚으러 가는가 ?
 
272
머리를 버이라.
 
273
서북으로 벋으라.
 
274
옛날 친구여. 그립지 아니한가 ?
 
275
우리 한번 자웅을 결쿠어 보자꾸나.
 
276
왜 그런지 옛날 친구를 결코 잊을 수 없는 견훤은 편지 한 장을 써서 책상서랍에 밀어넣어 밝는 날 발빠른 군졸로 궁의 진에 보내게 하고 그 편지가 궁예의 손에 든 때쯤은 자기는 무진주에 들어서 공공히 호왕(呼王)을 하리라 하는 것이었다.
 
277
백제 국왕의 즉위 의식(即位儀式)에 관한 서류 등은 견훤이 어려서 익히 보고 읽은 바요 이것은 이미 원노 등에게 가르쳐 둔 배라 그다지 많은 의논이 있을 것이 없었다.
 
278
다만 유사 이래로 한 나라에 없지 못할 몇 가지의 조건이 견훤에게서 내렸다.
 
279
첫째는 나라이 서고 임금까지 생긴 뒤에도 국호(國號)를 아직 좀 그냥 버려 두자는 것이었다.
 
280
둘째는 당분간(즉 국호를 세우기 전까지)은 모든 관작을 베풀지 말자하 는것이었다. 지금 이곳에 이를 때까지 견훤의 놀라운 눈으로 적지 않은 인물들을 혹은 군졸 중에서 혹은 길가는 길가에서 추려서 따로이 데리고 왔다.
 
281
그 사람 중에서 때와 경우에 의지하여 국왕인 견훤이 임시임시로 몇 사람씩을 뽑아 사무를 맡기지 결코 당분간은 관작과 직책 등을 전임시키지 말자하는 것이었다.
 
282
즉 이 새 나라에는 임금과 장수와 졸병과― 그 밖에는 백성이 있을 뿐 국호도 없고 관작도 없는 기괴한 나라이었다. 그러나 견훤의 명에는 절대로 복종하는 그들이라, 조금인들 마음 굽히거나 돌릴 사람들이 아니었다.
 
283
의식의 마당은 제성대(帝星臺) 앞으로 하기로 하였다.
 
284
이튿날 예에 의지하여 일찌기 몸을 일으킨 견훤은 종졸의 떠다 바치는 소 셋물에 시원히 얼굴과 입을 닦고 진옥 밖에 나섰다.
 
285
맑은 공기는 그의 건장한 폐와 피를 더욱 깨끗이 하는 듯하였다. 동 남녘 쪽으로는 아직 채 떠오르지 못한 해가 노을만 불그스러이 비추고 있었다.
 
286
"아아. 장할시고. 쾌할시고."
 
 
287
폐로 기껏 들여마시었다가 토하는 이 포함성은 마치 맹수의 부르짖 음과도 비슷하였다. 얼굴에는 여전히 무표정이 있으나 이 포함성의 의의는 그의 마음을 넉넉히 나타내었다.
 
288
눈을 둘러보면 그가 아직 어렸을 때 제일세 비룡(飛龍―말의 이름)을 달려서 때때로 나와 본 일도 있는 곳이었다. 근 이십 년 전 그의 아버지의 슬하를 떠나서 밟은 길이 이 길이 아니었던가.
 
289
오늘 밤 가 보리라. 아직 생존해 계신가. 그때 떠날 때는 아버지를 신하로 굽어 보기 전에는 다시 뵙지 않겠다 맹서를 하였으나 일이 이미 다 성취 되었으매 만약 아직 생존해 계시기만 한다면 인자(人子)로써 다시 한번 더 뵈 온들 그것이 사체에 무엇이 그다지 어그러지랴.
 
290
그 날 온 군졸 육천여 명을 속보대(速步隊) 삼천과 완보대 삼천으로 나누어서 각각 한 책임자로 인솔케 하여 떠나보냈다. 속보대는 먼저 가서 무진주를 점령하고 제성대를 닦고 씻고 완보대는 뒤를 따라가서 속보대의 뒤를 이어 명일의 즉위를 거침이 없이 전부 준비하여 두려 함이었다.
 
291
이렇게 갈라 보내고 견훤은 길을 따로 빗섰다.
 
292
속보대에서는 견훤이 완보대를 인솔한 줄 알고 완보대에서는 속보대를 인솔한 줄 알았다.
 
293
직통로를 군대에게 내준 견훤은 천천히 말을 돌려서 딴 길로 들었다.
 
294
부모댁을 어슬막에 다시 한번 찾아보려는 마음으로서였다.
 
295
멀리 큰 길은 적잖은 군졸의 통행 때문으로 돌개바람의 자취 모양으로 새 뽀얀 먼지가 길게 벋으면서 전진을 한다.
 
296
그와 병행한 협로로 들어서 그 먼지의 행렬을 바라보는 것도 적지 않게 유쾌하였다.
 
297
이리하여 멀리 완보대와 병행을 하여 황혼에 제성대를 멀리 바라보니 예기 하였던 바와 같이 그 대는 벌써 견훤의 군졸의 점령한 배 되고 제성대는 속보대와 완보대가 방금 그 소제 등을 교체하는 중이었다.
 
298
그것을 먼눈으로 보면서 견훤이 광주부내까지 이른 때는 벌써 날은 새까맣게 어두운 뒤였다.
 
299
견훤은 일직선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달려갔다. 달려갈 때의 마음은 단 한가지 생존해 계십사 하는 마음뿐이었다.
 
300
말에 능한 그가 마치 말에서 떨어지듯이 하면서 뛰어내려 아버지의 집 대문을 박차매 대문은 잠겼는지 딱 발을 마주치었다.
 
301
"야. 문 열어라."
 
302
고함을 지르며 박찰 때는 대문짝은 쪼개지며 널리 열렸다.
 
 
303
그러나 그때는 벌써 첫번 벼락에 무기를 준비한 하인들이 문 안에 쭉 벌려 선 때였다.
 
304
"두 분 어른 다 생존해 계시냐 ?"
 
305
아홉 살에 집을 떠나서 십 칠팔 년이라 이 말을 갑자기 알아들을 하인이 없었다.
 
306
"누구―."
 
307
"요―"라 할지"냐―"라 할지 알 수 없어서 하인들이 망설일 동안, 이대 문간의 소란을 먼저 알아챈 사람은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였다.
 
308
"오오. 견훤이냐 ? 어서 들어오너라."
 
309
이 말에 하인들은 비로소 이 젊은이의 정체를 알아내고 황급히 인사를 드렸다.
 
310
"오. 잘들 있었느냐 ?"
 
311
하인들의 인사에 간단한 대답을 하면서 중대문 앞에 썩 들어서서 아버지의 계실 사랑 댓돌에 올라섰다.
 
312
"아버님. 여기시오니까 ?"
 
313
"오냐. 어서 들어오너라."
 
314
견훤은 물을 열고 문 안에 들어섰다. 아자개(阿慈介) 노인은 몸을 장침에 의지한 채 일으키지 못하고 노인의 등 뒤에서 시동(侍童)이 가만가만 노인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노쇠함이 분명히 노인의 온 몸에 나타나 있었다.
 
315
"아버님. 하명을 어기었읍니다. 한 번 더 소자로서 아버님을 불러 모시고자 떠날 때의 하명을 어기었읍니다."
 
316
"나도 그때 그렇게 명하기는 하였지마는 다시 한번 아비로서 너를 보고 그 이튿날 임금으로 다시 우러르고 싶었다. 잘했다. 잘했다."
 
317
"아버님. 떠난 지 이십 년, 아직 보잘만한 일을 하나도 한 것이 없 읍니다."
 
318
"아니로다. 내 이미 아는 배로다. 오늘 낮의 소란도 너의 병졸의 한 일이지.누운 몸이라 일어나 나가 보지는 못하였으나 귀로 들리는 바로서 내 아들이 하는 배 아니면 반드시 포악이 섞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성만 비워 놓고 다른 성을 약탈하려 갈 것이로다. 더우기 제성대를 닦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너의 모와 함께 한참을 너무 기뻐서 울었구나."
 
319
"참 어머니께서도 건재하시지요 ?"
 
320
"덜난 아비보다 성해서 매일 제성대에 축원을 드리고 너 잘 되게만 해달라고 빈다. 벌써 세상을 모르고 자리라."
 
 
321
"아버님. 떠날 때도 하직하지 못하고 떠난 불효자라 지금 잠깐만 들어가서 뵙고 나오겠읍니다."
 
322
"음. 얼른 다시 나오너라."
 
323
오래 못 본 자식을 어머님께 인사 여쭙는 시간이나마 아끼는 늙은 아버지 였다.
 
324
견훤은 안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님 계시던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325
"어머님. 견훤이 돌아왔읍니다."
 
326
돌려놓았던 촛대를 바로 놓으며 웅장한 음성으로 이렇게 찾을 때에 곁에 시침 하던 계집종들이 먼저 깨어서 이불 속에서 흩어진 옷을 어쩔 줄을 모르고 야단일 적에 견훤은 두번째,
 
327
"어머님. 불효자 견훤이 돌아왔읍니다."
 
328
고 고하였다.
 
329
이 웅장한 소리는 어머니의 깊이 든 잠도 종내 깨쳤다.
 
330
"이게 무슨 소란이냐 ?"
 
331
"어머님. 견훤이가 돌아왔읍니다."
 
332
"견훤이가 ? 어데 왔어 ?"
 
333
"네. 왔읍니다."
 
334
"아이구 왔으면 어서 들어오려무나. 죽기 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내가 살아서 보다니 어서 들어오래라."
 
335
눈을 부비면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시침 하던 계집하인들은 몸을 단속하고 일어나 자기네 이부자리를 걷어 치우고 젊은 상전께 인사를 드리었다.
 
336
"어머님. 얼른 정신을 차리시고 저를 보세요. 어른이 됐읍니다."
 
337
"무얼 ? 들어왔느냐 ?"
 
338
어머니는 머리맡 명주수건을 집어 눈을 씻으면서 이불을 제치며 일어났다.
 
339
일어나 보매 눈앞에는 금빛이 휘황스런 장군복을 입은 거대한 인물이 앉아있는 것이었다.
 
340
한순간 노부인은 눈이 퀭했다. 제아무리 장발하였다 할지라도 스무 살 안팎의 소년쯤으로 상상하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눈을 다시 부비매 어디 의심 할 바 있으랴. 어렸을 때의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또는 이 청년의 아버지요 노부인의 남편 되는 이의 스물 예닐곱 살 때의 모습과 한판에 박아 놓은 것을.
 
341
아들을 분명히 아들이라 알아본 뒤에는 노부인은 일장의 희극을 연출 하였다.
 
342
"아이구, 네가 과연 견훤이로구나 !"
 
343
와락 달려들어 통곡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은 노부인은 다시 덜컥 아들을 놓으면서,
 
344
"너라고 해도 괜찮을는지…."
 
345
일찌기 남편에게서'이 뒤 다시 만날 때는 나랏님이라고 불러모시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말을 들었던 것이었다.
 
346
"너라고 불러 주십쇼. 요녀석이라고도 불러 주십쇼. 오늘까지올시다.
 
347
내일부터는 못 됩니다."
 
348
이 천생이 무표정한 줄 알았던 장한의 입에서는 마치 춘풍에 녹는 눈과 같이 화기애애한 미소가 끊임없이 흘렀다.
 
349
이때 사랑에서는 하인이 들어와서 왜 어서 나오지 않느냐는 재촉이었다.
 
350
그러나 어머니 또한 아들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351
"못 나가리라. 오늘 밤은 내 곁을 못 떠나리라."
 
352
"어머님. 전들 왜 십 칠팔 년 만에 뵈옵는 어머님을 끝끝내 모시고 싶지 않 사오리까마는 수족을 못 쓰시는 아버님께서 부르십니다. 어머님. 사랑으로 나가십시다. 아버님 처소로 나가십시다. 어렸을 때 천만 번 저를 업어주신 그 은공의 천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자 제가 어머님을 업고 사랑으로 아버님께로 나가십시다."
 
353
요 한두 마디의 문답이 있을 동안 사랑에서는 또한 아들을 부르는 전령이 들어왔다.
 
354
"어머님, 자 업으십시다."
 
355
"나는 아직 튼튼하다마는 어디 그 넓은 등판에 업혀 보자."
 
356
견훤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사랑으로 나아갔다.
 
357
아들에게 업히어 나온 자기의 늙은 안해를 보고 아자개 노인도 슬며시 부러워진 모양이었다. 부인이 내려서 미처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아들을 쳐다보면서 "야. 나도 한번 업어 주련 ?"
 
358
하고 청을 대었다. 아들은 선선히 승낙하였다.
 
359
"아, 소원이시라면 얼마이고 사양하리까마는 혹 기동하시기 때문에 더 탈에 영향이 없으실는지요 ?"
 
360
"네게 업혀 보면 탈이 나으면 나았지 더 나쁘게 되단 웬 말이냐."
 
361
"그럼 얼마고 업어 올리리다."
 
362
견훤은 아버지의 아픈 데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히 업었다.
 
 
363
"자, 어디로 가리까 ?"
 
364
"웃칸 아랫칸으로 왔다갔다 하자꾸나. 정처가 있느냐."
 
365
가정 단란의 아름답고도 우스꽝스러운 놀이는 한참을 계속하였다. 그동안 아들의 등에 업히운 노인과 그것을 쳐다보고 앉았는 늙은 안해는 이 아들 이나간 뒤에 얼마나 근심하고 걱정하며 축수하던 이야기를 순서를 캐어 내려오면서 주고받았다.
 
366
이렇게 업고 왔다갔다 하기를 얼마에 아버지도 얼마 아들의 생각을 하였음 인지 드디어,
 
367
"자. 인제는 팔 아플라 내려놓아라."
 
368
하였다.
 
369
"아니올시다. 얼마이고 업어 드리오리다. 제 이 팔이 아버님쯤이야 한 달두 달을 업을지언정 움찍이나 하오리까. 눕고 싶으면여니와 그렇지 않으시면 얼마이고 업어 드리지요. 더우기 내일부터는 이런 흉허물 없는 놀이도 좀 하기 어려운 터에―."
 
370
"내가 눕고 싶기도 하다."
 
371
견훤은 아버지를 아랫목에 곱게 내려놓았다. 내려놓으면서 아버지는 아직도 팔에는 적지 않게 남아 있는 완력을 다하여 아들의 등판을 쾅 두드렸다.
 
372
"네 등판 튼튼키도 하다. 삼국을 다 올려놓을지라도 움찍도 않을 것 같구나."
 
373
"글쎄올시다."
 
374
이 가족 단란의 마당에까지 저편 북쪽의 제성대의 역사 소리는 간간 바람결에 들려 왔다. 이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희 열의 표정이 스치고 지나가고 하였다. 더우기 견훤의 양친이 그러하였다.
 
375
오늘 제성대에 새 임금이 등극한다는 소문은 어떻게 퍼졌는지 광주 무진주 일원은 무론이요 꽤 먼 곳 사람까지 새벽부터 구름과 같이 모여들었다. 모여들어서는 놀랐다. 그들은 아직껏 이와같이 많은 군대가 이와같이 정비 되어 이와같은 광채섬섬한 창검을 들고 마치 깎아세운 사람인 듯이 새벽부터 움 찍도 안하고 정렬하여 있는 장관을 본 일이 없었다. 더우기 광주 부내의 사람들은 오늘 즉위하는 사람이 즉 백제 임금의 몇 대째인지의 직계 장손이라는 것을 짐작하므로 더욱 마음이 흡족하여 이 존귀한 의식을 구경 하고자 모여든 것이었다.
 
376
이윽고 소라수의 한 마디 소라성과 함께 제성대 좌우편에서는 옛날 백 제의 요량한 음악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지금껏 꽂아 세운 듯하던 병졸들의 창검도 한순간 움직이며 더욱 정제된다.
 
377
제성대의 요량한 음악 소리 때문에 못 들은 사람도 있었지만 음악은 여기서 뿐이 아니었다. 굵은 백사(白砂)로 한 벌 쪽 깔은 행길 저편에서도 요량한 악수들의 음악과 함께 쌍줄로 한 줄에 기수(旗手) 다섯 명씩이 서고 그 뒤에는 여러 장군 부장군 무관들이 장군은 말을 타고 문관은 남여를 타고 따르고 그 다음이 새 임금 견훤으로서 백제 고제의 즉위식용의 옷으로 장식하고(목과 소매끝과 목 변두리에 금실 은실로 수놓은) 젊고도 건장한 위세로 역시 애용의 비룡(飛龍)에 높이 비끼고 마졸 열여섯 명이 앞뒤에서 권마성을 치며 그 뒤는 역시 장군과 무관의 일행이 있고 나중에는 친위병 이백명이 은수놓은 융복에 긴 창 비끼고 말을 타고 따른다.
 
378
한 사람 두 사람이 눈을 그리로 돌리자 온 군중의 눈은 모두 그리고 돌아갔다. 그러나 제성대를 좌우로 호위하여 벌려선 군졸들은 고래는커녕 눈 하나 돌리는 자가 없었다.
 
379
새 임금의 노부는 좌우편의 군졸들의 높이 창을 쳐드는 인사로 마중 되어 악사 기수 친위졸 마부 등은 군졸의 행렬로 들어가고 임금과 여러 장군들은 제 성대 뒤에 임시로 지은 휴게소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잠시는 요량한 음악만 들리었다.
 
380
이윽고 음악도 끊어졌다. 이것을 기회로 한 늠름한 장수가 막 뒤에서 나타나서 즉위의 축문을 읽었다.
 
381
그 축문이 끝나자 동편 쪽 군졸들에게서는 일제 히 ―"우리나라 만만세 하옵소서."
 
382
하는 고창이 들렸다. 그러매 거기 화하는 듯이 서편 쪽 군졸들에게서 일제 히 ―"우리 임금 만만세 하옵소서 !"
 
383
하는 고창이 들렸다.
 
384
그런 뒤에는 양쪽 군졸이 일제 히,
 
385
"우리나라 만만세 하옵소서. 우리 임금 만만세 하옵소서 !"
 
386
하는 고창이 들렸다. 이 고창에는 구경하러 왔던 백성들도 뜻하지 않고 같은 소리로 아울러 주었다.
 
387
그러자 다시 요량히 울리는 음악성 가운데 백성들이 그렇게도 보고자 하던 임금이 한편에는 문관 한편에는 장군의 부액을 받고 엄숙히 그의 자태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천천히 이미 설치된 옥좌로 올라가서 그의 면적 넓은 얼굴을 들어 한 번 죽 백성을 훑어본 뒤에 사례의 뜻으로인지 양손을 마주 잡은 채 소매를 한 번 높이 쳐들었다가 내리었다.
 
 
388
이 새 임금을 환호하는 소리는 구경왔던 무리들 새에 벽력같이 일어났다.
 
389
"만세 !"
 
390
"천추 !"
 
391
"무강 !"
 
392
어지러이 일어나는 이런 환호성은 단지 구경왔으니 불러 주어라 하는 뜻의 것이 아니었다. 이 젊고 면적 넓은 새 임금에게서 그들은 장차 베풀어질 각색 좋은 시정이며 시설이며를 넉넉히 꿰어다본 때문이었다.
 
393
이리하여 견훤의 건설한 새 나라는 성립이 되었다. 무명국이요 무명왕 이었으나 그 근린의 온 환영 아래서 생겨 난 것이었다.
 
394
때는 신라 진성여왕 오년이요, 당나라로 보자면 소종(昭宗) 경복(景福) 원년 이었다.
 
395
새 나라는 드디어 성립이 되었다. 무명의 나라이요 무명의 임금이었다. 그러나 이 이름없는 나라를 누구든 이름없다 보지 않았다. 그 나라의 주인이 백 제의 옛 주인의 후예요, 그 땅이 백제의 옛 땅이며 그 백성이 또한 백 제 옛 땅의 백성이니 아무리 나라의 이름이 없다 할지라도 무명국이라고는 결코 못할 것이었다.
 
396
더우기 그 뒤 행정정책을 보면 견훤은 단지 제성대 앞에 새로 세운 대궐에서 양병과 순민에만 힘쓰는 듯하였다. 그러나 나날이 백제 옛 땅의 성주들은 인부를 갖다 바치고 신라의 녹작을 사양하고 만약 그렇지 못한 곳이 있으면 사람을 보내어 그렇게 하기를 종용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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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하기를 구 년간 드디어 여기는 이백 수십 년 전에 소멸되었던 덩어리와 같은 덩어리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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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안 견훤은 양친을 다 잃었고 비빈(妃嬪)을 몇 명 두어서 여러 명의 자식을 더 두었으며 인생으로서의 가장 성년기를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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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었을 때에 그는 천천히 대군을 인솔하고 북진(北進)을 개시 하였다. 목적하는 곳은 완산주(完山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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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주에 이르러서 비로소 국호를 발표하고 관직을 분설하고 하여 당당한한 개 국가로서 당나라와 신라에 대하고자 함이었다.
【원문】장왕(將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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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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