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제성대(帝星臺) ◈
◇ 재차 정립(再次 鼎立) ◇
카탈로그   목차 (총 : 18권)     이전 10권 다음
1938.5-1939.4
김동인
1
제성대(帝星臺)
2
再次 鼎立[재차 정립]
 
 
3
끊임없이 흐르는 세월의 물결에 따라서 이 반도 위에 다시 세워진 세 개의 나라도 끊임없이 움직였다.
 
4
신라는 그 내부적(內部的)으로는 왕족끼리의 알력이라든지 왕실과 귀족 새의 알력이라든지 귀족과 평민 새의 알력이라든지, 적지 않은 내분을 품고있지만 그러나 일천 년이라는 긴 사직의 전통이 있고 전통이 끼친 바의 문화가 있어서 이 반도의 동남방을 점거할 한 큰나라에는 틀림이 없었다.
 
5
그러나 너무도 층층의 알력이 심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어찌하여야 할지 차 부를 차리기 힘든 위에 이 늙은 나라에 대하여 간단없이 침략의 손을 뻗치는 신흥 후백제며 마진의 성화에 견디어 배길 수가 없었다.
 
6
최신흥 마진국은 아직 자리잡히지 않은 나라로서 일직선으로 몇 번 정벌을 거듭한 열매로서 선적 영토(線的領土)는 있었으나 면적적(面積的)으로는 어디까지가 마진국의 영토라고 말할 수가 도저히 없었다. 그런 위에 임금 궁예의 성질이 병신(애꾸눈)답게 괴벽하고 광폭스러우니만치 표면이 임금의 위력에 눌리어 있는 문무 관리들 새에도 딴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이 꽤 많았다. 게다가 이 임금이 정벌하여 마진국의 영역인 듯이 생각하고 있는 평양 안주 등지도 내심 도리어 고구려의 정통을 밟은 발해국(渤海國)을 사모하고 발해국 사신이 늘 압록강을 넘어 왕래를 하고 하매 궁예의 영토라기는 약간 힘들었다.
 
7
가장 자리잡힌 것이 견훤의 후백제였다. 후백제는 대승적으로는 동하지 않고 부국강병책에만 힘썼다. 그리고 소승적으로는 고구려의 옛 땅과 신라를 조금씩 침략하여 영토 넓히기에 위주하였다. 그 영토는 궁예와 같이 선적(線的)으로 정벌하여 얻은 땅이 아니고 과거 칠백여 년간을 누려 온 백 제의 구역(舊域)의 위에 국경선 근처에 새로 얻은 땅까지 합치어 이전의 백제보다도 더 클이만치 되었다. 임금이 옛날 백제 왕실의 직계요 백성 또한 옛 백 제의 후손으로 더우기 신라의 난정 때문에 허덕이던 백성들이니만치 단결이 굳었다.
 
8
고구려의 옛터는 지금 강원도 전부와 경기도 전부 충청도의 북부까지를 남쪽 국경선으로 삼고, 북으로는 지금의 만주국의 전부이며, 원정의 발길은 때때로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하였다. 그러다가 나당 연합군의 남북으로의 협공에 망한 바 된 뒤에는 고구려인들로 즉시 발해국이라는 새 나라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시대에 비기어 성세가 여지없이 줄어서 북쪽과 서쪽으로는 그냥 옛날의 국경선을 유지하였지만 동쪽은 바다까지를 가지못하고 중도에 흐지부지하여 버리고 남쪽 역시 압록강으로 한계를 삼고 그 이남은 거진(巨鎭)에 때때로 사신들의 왕래가 있을 뿐이었다.
 
9
그러다가 발해 건국 삼백 년 뒤에 거란(契丹)에게 망한 배 되고 그때는 이 반도에는 마진(뒤의 태봉)의 뒤를 받아 왕건(王建 ― 송악 사람이니 옛날 고구려인의 후예다)이 고려(고구려의 후신)국을 일으키고 삼한 통일의 기운이 바야흐로 농후할 때에 (이미 망국인이 된) 발해국 왕족이며 귀족이며 선비 백성들이 육속하여 고려에 귀화하고, 압록강 이남의 고구려 옛터는 한 군사를 삭이지 않고 저절로 고려의 판도 안에 들어오고, 고구려의 옛터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압록강 이북의 땅은, 고구려의 토착민(土着民)과 거란 족속과 여진(女眞)족속들 밖에 몽고도 한몫 끼고 뒤에는 한족(漢族)도 한몫 끼고 하여 오늘날의 만주족(滿洲族)이라는 것을 이룩하였다.
 
10
이렇듯 고구려의 몸뚱이는 잃어 버리고 발 가운데서도 몇 선(線)만 겨우 차지한 궁예의 이룩한 나라가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다시 고치고, 후백제는 여전히 부국강병책을 쓰는 일방, 호시탐탐히 동쪽과 북쪽을 엿보는 동안, 일천 년 사직의 신라에서는 또 임금이 승하하였다.
 
11
견훤이 철든 이래, 신라에서 임금 승하하기가 벌써, 경문, 헌강, 정강, 진성, 효공(景文,憲康,定康,眞聖,孝恭)의 다섯 임군째다. 수가 모다 단명 하여 청년 혹은 소년 시기에 승하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단명한 임금만 계속 되므로 임금 승하할 때마다 조야에서는 모다 의혹의 눈으로 보고, 수 근거리고 하였다.
 
12
이 승하한 임금의 뒤를 받아 왕위에 오른 이가 신덕(神德)왕이었다. 진성왕은 이 나라를 이룩한 박혁거세의 후예였다. 그러나 박씨는 벌써 칠 백여 년 전 아달라(阿達羅) 임금 때부터 왕위 계승권에서 미끄러지고 그 뒤 한 동안은 김(金)씨와 석(昔)씨가 교체로 왕위에 오르다가 오백오십 년전 나밀(奈密) 왕 때부터 왕위 계승권은 김씨에게 독점되어 효공왕 때까지 반천 년간을 누려온 것이 지금 홀연히 또 다시 박씨의 후손의 손으로 들어간 것 이었다.
 
13
백성들도 욱적하였다. 이런 기괴한 기밀에 참례치 못한 대신들도 청천의 벽력인 괴변에 욱적하였다. 김씨 왕족이 조야에 수두룩하거늘 무슨 까닭으로 오백오십 년 전에 왕권에서 물러난 박씨의 후예를 새삼스럽게 끌어내었는지 적지 않은 말썽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새 너무도 오랜 기간을 난정과 학정 아래서 지냈으매 임금의 계통이나 바꾸이면 좀 나을까 하는 희망도 없지 않을 지라, 이 변혁에 대하여서도 서로 수근거리기는 하였지만 폭동이라든가 반항이라든가 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
 
14
온 조야가 불안 가운데서도 약간의 희망을 품고 있던 이 임금도 무위한 왕 생애를 만 오 년간 보낸 뒤에는 또 승하하였다. 그리고 승하한 임금의 태자가 새 임금으로 오르게 되었다. 즉 경명왕(景明王)이었다.
【원문】재차 정립(再次 鼎立)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81
- 전체 순위 : 431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61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85) 삼대(三代)
• (23) 적도(赤道)
• (20) 어머니
• (20) 탁류(濁流)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제성대 [제목]
 
  김동인(金東仁)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38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8권)     이전 10권 다음 한글 
◈ 제성대(帝星臺)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