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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대(帝星臺) ◈
◇ 송악 왕기(松嶽 王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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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1939.4
김동인
1
제성대(帝星臺)
2
松嶽 王氣[송악 왕기]
 
 
3
달은 없으나 날 맑은 밤이었다. 새카만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박혀서 명멸 하며 여름날(유월)에 쉽지 않은 이 맑은 날씨를 찬송하고 있었다.
 
4
후백제 완산주의 새 대궐 ― 새 대궐이라 하나 벌써 세운 지 이십 년으로서 기둥의 송진 내음새도 인제는 갔고 주춧돌도 그 새 적지 않은 승강에 얼마만치 닳은 대궐 ― 이 대궐 침전 대청에 의자를 놓게 하고 좌정하여 있는 장대한 인물 즉 이전에는 견훤이라 불리우던 이 나라의 임금이었다.
 
5
궁녀 두 명이 좌우편에서 기다란 자루가 달린 부채로써 임금을 붗고 있다.
 
6
상쾌한 듯 또는 무심한 듯, 묵묵히 의자 위에 걸터앉아서 하늘의 한편 쪽만 얼빠진 듯이 바라보고 있던 임금은, 한참 뒤에 귀찮은 듯이 몸을 일으켰다.
 
7
"이 의자를 저리로 좀 옮겨라."
 
8
대청 앞턱으로 바짝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궁녀는 임금의 지시하는 자리로 의자를 옮겨 놓았다.
 
9
임금은 옮겨 놓은 자리로 가서 다시 걸터앉았다. 그리고 다시 지금껏 쳐다보던 방향의 하늘을 우러렀다. 그러나 옮겨 놓은 자리가 역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으로 의자를 음찔음찔하여 약간 더 오른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우러렀다.
 
10
임금이 자리를 잡기를 기다려 다시 말없이 부채질을 시작하려는 궁녀에게,
 
11
"저 등불을 꺼라."
 
12
다시 영이 내렸다.
 
13
대청을 휘황히 밝게 하던 뭇 촛불을 다 끈 뒤에 임금은 여전히 묵묵히 앉아서 하늘만 우러르고 궁녀들은 여전히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14
잠시의 시간이 또 침묵 중에 흘렀다. 그 뒤 임금은 무엇에 깜짝 놀라며 몸까지 한번 흠칫한 뒤에 이번은 몸을 잔뜩 앞으로 머리는 더욱 앞으로 내어 밀고 그냥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15
그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에는 지랑성(地狼星)이 커다랗게 번득이고 있었다.
 
16
그 광채 휘황해서 근처의 별들이 빛도 못 내던 지랑성이,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 하였다. 임금이 놀란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17
― 눈에 먼지가 들거나 눈물이 끼었나. 임금은 품에서 수건을 꺼내어 눈을 닦고 다시 보았다. 그러나 흐려지기뿐 아니라 가속도로 더욱더욱 어두워 가서, 지금은 보통 별이나 다름이 없이 되었다. 하늘의 괴변은 이것뿐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랑성의 곁에 아직껏 보이지도 않던 한 개의 별이 불끈 솟아올라서 가속도로 광휘를 내기 시작하였다. 얼른 보자면 지랑성에서 없어져가는 광휘가 이 새 별로 옮아가는 듯 하였다. 그것을 여전한 무표정한 얼굴로 우러르던 임금은 잠시 뒤에,
 
18
"아!"
 
19
작은 부르짖음까지 내며 의자에서 몸까지 약간 일으켰다. 그때는 지금껏 희미하게나마 제자리에 걸려 있던 지랑성은 커다랗게 호형을 그리면서 멀리 중천 밖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새 별은 인제는 달과 같이 혁혁한 빛을 내 기 시작 하였다.
 
20
임금은 탄식하였다. 그리고 다시 의자 위에 몸을 던졌다.
 
21
"아아아, 지랑성이 떨어졌다. 궁예(弓裔) 몰락이로구나."
 
22
― 같은 시대의 불길을 타고 일어난 두 괴걸 ― 그 가운데 자기는 원하던 바와 같이 백제의 재건에 성공하고 또 바야흐로 부국강병책도 열매가 좋아 제 이단의 길로 발을 내어짚으려 하는데 자기보다 후에 일어섰던 궁예가 칭왕 십팔 년 마진국 임금으로 또 다시 태봉국 임금으로 그나마 튼튼한 영토도 아직 가져 보지 못하고 불안한 왕 생애를 보내다가 벌써 몰락이냐.
 
23
그러나 마음에 켕기는 것은, 새로, 나타나서 혁혁한 광휘를 발하는 새 별은 누구냐. 고구려 왕실 후예의 고국 회복 운동이냐. 태봉국 신하 중의 반역 행동이냐. 혹은 무명 적괴의 신흥이냐.
 
24
그 어느 것이든 간에, 궁예의 몰락이라 하는 점은 이 임금에게 적지 않게 섭섭한 일이었다.
 
25
어린 시절에 동수간 기슭에서 단 이틀을 같이 지낸 애꾸눈이 소년이니 긴 인연도 아니다. 또한 그의 인물에 대하여서든 성격에 대하여서든 행동에 대하 여서든 임금은 한 번도 옳게 여기거나 찬성하는 마음이 생겨본 적이 없었다. 사업상으로도 늘 그를 방해해 왔고 밉게 보아 왔고 불측하다 보아 왔다.
 
26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서도 옛날 어린 시절의 동수산 단 이틀 밤의 악연 이 어떻 게 맺혔는지 방해를 하면서도 성공을 축수하였고 밉게 보면서도 동 정도하고 하였다.
 
27
그러한 상대자의 급작스런 몰락이라, 놀랄 줄 모르는 임금도 적잖게 놀랐고 마음이 뒤숭숭하였다.
 
28
인제는 하늘을 우러를 만한 흥미를 느끼지 않은 임금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고요히 감은 채 궁녀를 불렀다.
 
29
"야."
 
30
"예이."
 
31
"원 장군 임직했는지 알아보아라."
 
32
"예이."
 
33
사뿐사뿐히 물러가는 궁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피어오르는 향내와 체취도이 임금에게는 아무 감동도 주지를 못하였다. 눈을 감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한쪽에서만 붗는 부채에 수염을 너울거리며 묵묵히 회보를 기다렸다.
 
34
이윽고 궁녀의 회보가 이르렀다. 오늘이 입직일이매 당연한 일이지만 원장군(원노)은 입직하여 있다 하는 것이었다.
 
35
"음. 이리로 부른다고…. 그리구."
 
36
이번은 부채질에 여념이 없는 궁녀 쪽을 향하였다.
 
37
"너는 불을 켜고 내 자리를 해라."
 
38
궁녀 하나는 밖으로 나가고 하나는 일변 불을 켜느라 일변 옥좌를 정 하느라 가벼운 발소리로 돌아갈 동안 임금은 비단 치마가 마루에 쓸리는 상쾌한 소리를 들으면서 고요히 앉아 있었다.
 
 
39
임금이 윽좌에 좌정하고 앉았던 의자도 치운 때쯤 원노는 뜰 아래 등대 하였다.
 
40
임금은 궁녀들을 물러나가라 한 뒤에, 뜰 아래 원 노에게,
 
41
"좀 올라오시오."
 
42
하였다.
 
43
원노는 황공하다는 뜻으로 절을 한 번 더 할 뿐이었다. 원노에게 있어서는 이 임금은 삼십 년간(처음 수년간은 상관으로서, 그 뒤 이십팔 년간은 임금으로서)을 가까이 모신 분이지만 만나면 만나는 때마다 한결같이 위포를 느끼고 존경의 염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지금 임금은 침전에서 그를 부르고 더우기 대청에 오르기까지 허락 ― 아니 도리어 명 ― 을 하지만 원 노로 서는 단지 황공무지하여 머리를 조을 뿐이었다.
 
44
"내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청했는데 좀 올라오시오."
 
45
이런 말이 임금에게서 세 번이나 나온 뒤에야 비로서 원노는 층계를 올랐다. 그러나 대청 문안에 딱 비껴서서 읍하여 버렸다.
 
46
"좀 가까이…."
 
47
원노는 한 걸음 나아갔다.
 
48
"좀더 가까이."
 
49
또 단 한 걸음.
 
50
"삼군을 호령해서 백만 대적을 무찔러야 할 대장군의 간이 왜 그다지도 작담…. 열 걸음만 더 가까이."
 
51
여기서 열 걸음만 더 나아가면 임금의 위에 덧엎이거나 적어도 임금의 무릎 위에 앉게 된다. 원노는 발을 좀 작게 내어짚어 열 걸음을 나아갔다. 꼭 임금의 두 걸음 앞에 가서 읍하고 섰다.
 
52
"자 앉으시오."
 
53
원노는 고요히 꿇어앉았다.
 
54
원노가 자리를 잡은 뒤에 임금은 잠시 다시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 이었다. 원노는 단지 황공한 듯이 임금과 마주 꿇어앉아 있었다.
 
55
이윽고 임금이 먼저 입을 열었다.
 
56
"원 장군. 태봉국이 망했구료."
 
57
깜짝 놀란다. 뜻하지 않고 임금을 우러렀다. 그 얼굴에 향하여 임군은 또다시 퍼부었다.
 
58
"궁예가 망했구료."
 
59
"나랏님. 그게 무슨…."
 
60
"내 알 길이 있어서 알았는데…."
 
 
61
"그러면 과연 궁예의 태봉이 망한 것이 사실이오니까?"
 
62
"사실인 모양이외다."
 
63
"누구에게 망했읍니까. 언제 망했읍니까. 언제 망했읍니까?"
 
64
궁예에게 대한 임금의 심경 ― 미워하면서도 채 미워할 수 없는 마음을 잘아는 원노는 지금껏의 적수 궁예가 몰락했다는데도 기꺼운 표정도 없이, 그렇다고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단지 놀라운 얼굴로 물었다.
 
65
"망하기는 오늘 망한 것 같은데, 자 누구에게 망했는지…."
 
66
오늘 망했다 한다. 천리 상거인 이곳에서 궁예가 오늘 망한 것을 어떻게 벌써 알았을까. 그것을 알았으면 누구에게 망한 것까지도 암직한데….
 
67
그 의문에 임금이 먼저 대답하였다.
 
68
"아까 천문을 보니까…."
 
69
이전 도선사(道詵師)에게서 천문에 대해서도 꽤 깊이까지 배운 임금 임을 원 노도 잘 안다.
 
70
"만약 궁예가 망하고 궁예를 망케 한 사람이 궁예의 신하라 하면 왕건(王建)이 아닐까 하옵니다."
 
71
임금은 눈을 번쩍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눈을 번쩍 들고 굽어 볼때에 원노는 등골로 흐르는 소름을 느꼈다.
 
72
임금은 잠시 원노를 굽어보다가.
 
73
"어째서?"
 
74
하고 물었다.
 
75
"왕건은 비록 태봉의 무장이라 하나, 머리 뒤통에 툭 두드러진 반골(反骨)은 감추지 못합니다."
 
76
"장할시구. 우리 원 장군."
 
77
임금도 그것이 미심치 않은 바가 아니었다.
 
78
몇 번 싸우는 마당에서 상적자(相敵者)로서 잠깐잠깐 본 바에 지나지 못 하지만 이 임금의 본 왕건은 여러가지의 점으로 비범한 사람이었다.
 
79
첫째로 삼군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 비범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었다. 처음 궁  의 비장으로 이 임군과 전장에 상대하였을 때 임금은 이 소년 비장을 우습게 보았다가 좀하더면 그에게 사로잡히는 욕까지 볼 뻔하고 겨우 작은 배를 얻어타고 간신히 도망하였다. 그 뒤부터는 깔보지 않고 상당한 경 계심으로 대하고 하였지만 조금만 마음놓았다가는 낭패할 뻔한 경험을 여러 번 쌓았다.
 
80
이 장수는 또한 장재(將才)만 가진 것이 아니라 인심을 무마하는 데 놀라운 수완을 보이고 하였다. 한 번 그의 손아귀에 든 성이나 주는, 그만 그에게 심복하여 버려서 좀체 다시 다른 데 추파를 하지 않는다.
 
81
그러한 몇 가지의 점을 보고, 임금은 그를 자기의 품안에 넣어 볼까도 하였으나, 원노의 말마따나 뒤통수의 반골(反骨)과 그 위에 상재 혹은 왕재(相, 王才)를 보고 견훤은 욕심을 내어 던졌던 것이었다.
 
82
"양호위환이 아닐까?"
 
83
궁예를 위하여 은근히 근심도 하였다.
 
84
오늘 궁예의 몰락과 새 사람의 출현에 있어서 첫째로 의심하여야 할 사람은 과연 왕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단지 너무도 궁예의 몰락 이 급작스런 일이라, 놀라기에 과하여 그런 점을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원노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럴듯하였다.
 
85
"원 장군. 짐작은 바로 왕건에게로 가나 그래도 확실한 일은 아니니, 염탐꾼을 철원에 보내서 상세히 알아 오도록 내일 동트자 떠나도록, 오늘 밤 안으로 전부 지휘해 두시오."
 
86
"그리하오리다."
 
87
"임금의 자격은 부족하지만 그래두 적적할세그려."
 
88
"……."
 
89
임금은 원노를 퇴출케 하였다.
 
90
원노가 물러나간 뒤에 임금은 천천히 문으로 나와서 문지방을 잡고, 지금(약간 동쪽 하늘에서) 찬연히 빛나는 새 별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91
임금이 비밀히 보낸 염탐꾼이 아직 돌아오기 전에 그곳서 온 상고(商賈)에게서 비교적 상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거기 의지하건대 대략 이러하였다.
 
92
궁는 나라 이름을 태봉이라 고치고 스스로 자기를 미륵불(彌勒佛)이라 일컬으면서부터는 광태가 더욱 심해 가다가 금년에 들어서는 더욱 중 하여졌다. 그러는 중 장군 왕건이 무슨 일로인지 몰래 자주 왕후(궁의 안해)에게 드나드는 것이 발각이 난 때는, 궁예는 이를 필시 왕건이 왕후와 사 통함이라 하고 왕후는 악형을 가하여 참살하였다. 그 왕비의 몸에서 난 왕자까지도 수상하다 하여 죽여 버렸다. 임금의 공연한 노염 때문에 목숨을 잃은 신하들도 수두룩하였다.
 
93
신하들도 사실 전전긍긍하였다.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임금인지라, 언제 어떠한 명이 튀어져 나올는지 예측도 할 수 없는 바였다. 이렇게 전전긍긍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왕건을 수령삼아 그 아래 홍유, 배현경, 복지겸, 신숭겸(洪儒, 裵玄慶, 卜智謙, 申崇謙) 등의 장병 새에는 차차 딴 길로 벋어가는 운동이 비밀리에 진전되었다. 그러다가 금년(일전) 드디어 궁예를 위해서 내어몰고 왕건이 즉위하여 나라 이름을 고려(高麗)라 하고 천수(天授)라 건원하였다.
 
94
이리하여 궁예는 처음 군사를 일으킨 지 이십팔 년, 왕위에 있은 지 십 팔 년으로 후손도 남기지 못하고 망하였다.
 
95
임금(후백제 왕, 견훤)은 상고를 불러서 몸소 그 전말을 다 들었다.
 
96
"이신벌군(以臣伐君)이라."
 
97
상고와 시신들은 물리고 홀로히 안석에 기대어 앉으며 임금은 뜻하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98
"고려(高麗)라. 고려라."
 
99
때려라. 임금은 군사를 좀더 정련하여 왕건의 이룩한 고려를 정벌 하기로 결심 하였다. 이신벌군이라는 도덕적 문제보다도 궁예의 몰락에 일종의 동정을 일으킨 임금은, 이신벌군을 죄목삼아 고려국을 정벌하기로 하였다.
 
100
그러면서도 이 임금으로 하여금 왕건의 지혜를 탄복케 한 것은 하고많은 좋은 국호(國號) 가운데서 고려라는 칭호를 끌어 낸 왕건의 기지였다.
 
101
궁예가 옛날 칭왕을 할 때, 고구려 유민의 인심을 사고자,
 
102
"고구려를 재건하여 신라에 원수를 갚겠노라."
 
103
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왕자인 궁가 세운 나라이요, 게다가 나라이름까지도 고구려와는 아무 연락이 안 되는'마진’혹은'태봉’이라 하였으니 고구려의 유민이 이 궁예의 나라를 고구려 재건으로 볼 까닭이 없었다.
 
104
왕건은 나라를 세우며 즉시 국호를 고려라 하였다. 누가 보아도 고구려의 후 신이었다. 게다가 왕건의 집안이 고구려의 유민이었다. 고구려의 유민 이 군사를 일으켜 새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고려라 하였으니 이것은 틀림이 없는 고구려의 후신이었다.
 
105
압록강 이남의 주인이 없어서 쩔쩔매던 고구려 유민들은 모두 다 이 왕건의 날개 아래로 모여들 것이었다. 압록강 건너서도 이 고려를 사모하여 돌라붙을 고을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106
과거 전장에서 왕건의 용병(用兵)을 보았고 인심무마술을 본 일이 있는 견훤 임금은 여기서 또한 놀랄 만한 그의 용기와 기지를 보았다.
 
107
아니나다를까, 고려국이 선 그 해로 평양은 내부(內附)가 되었다. 고려 조정에서는 즉시로 이 내부된 평양에 대도호부(大都護府)를 두고, 그 새의 황폐를 보충하기 위하여 황주, 봉주(지금 봉산), 해주 등지에서 사람을 추려서 평양에 이민을 하였다. 그리고 평양을 서경(西京)이라 일컫고 임금의 당제(堂弟) 되는 식렴(式廉)을 대도호사로 삼아서 서경을 지키고 평양 이북의 고구려 옛터를 관리하게 하였다. 압록강 이남의 땅은 어느덧 대도호부의 관할 아래 고려국에 귀순을 하였다.
 
108
후백제 임금 견훤은, 이 새로 일어난 고려국의 놀라운 팽창력에 일종의 외포까지 느꼈다.
 
109
서북으로는 압록강까지가 어느덧 그 영토가 되고 동북으로는 백두산을 주봉(主峯)으로 한 산악 지대까지, 남쪽으로는 옛날 고구려의 국경선과 대차(大差)가 없도록 그의 판국으로 되었다. 이 반도 위에 정립한 세 나라의 도합 면적의 삼분의 이가 어느덧 고려의 손 아래 들어갔다. 나머지 삼분의 일을 신라와 후백제가 동서로 나누어 가졌다.
 
110
그 위에 만약 장차 발해국과 합동이 성립되는 날에는 옛날에 지지 않는 동방 대제국을 건설하여 다시 중원과 축록(逐鹿)을 할 날이 없으리라고 어찌 단정할 것인가.
 
111
이런 점을 보고 이런 점을 생각할 때에 문득 회상되는 것은, 옛날 은사 도선(恩師 道詵)이 이 임금의 소년 시절에 누누이 들려준 훈계였다. 그 훈계 ―.
 
112
"이백 년 전 조상(백제)이나 일천 년 전 조상(고구려)이나 조상이기는 일반 이니라. 일천 년 전 조상이 압록강 넘어서 천하를 엿볼 동안 한 갈래는 겨우 요구석에서 요모양으로 지내다가 쓰러진단 말이냐. 하기는 저도 쓰러 는 졌지만!"
 
113
또 가로되,
 
114
"하다못해 송악(松嶽)으로나마 가라 해도 그도 못할 콩알 만한 간을 가지고서 왕자(王者)의 길은 배워 무얼 하느냐? 송악에 자리잡고 남으로 이 천리 북으로 이천 리 ― 천하는 못 되나마 동방은 전부. ― 그맛 배짱도 못 가지고서…. 송악에 왕기(王氣)가 보이더라. 송악 오백 년 ― 오백 년이면 짧지 않지. 중원의 주인 된 자 누구 오백 년 누린 자가 있더냐?"
 
115
또 가로되,
 
116
"신라 일천 년, 백제 칠백 년, 고구려 칠백 년 ― 백제와 신라는 북쪽에서 고구려가 막아 주었기에 그만치 누렸지 한, 수, 당(漢隋唐)의 힘을 스스로 막았을 듯싶으냐. 고구려 칠백 년은 놀라운 왕기(王氣)니라. 천하의 주인 된 자로도 삼백 년 사백 년이 으뜸이요, 단 백 년 미만이 수두룩하지 않으냐."
 
117
이 마디마디 뼈에 울리는 절절한 말씀 ― 근조(近祖) 백제를 버리고 북쪽 으로 올라가서 원조(遠祖) 고구려를 재건하라. 압록강을 넘어서서 옛날 고구려의 터를 회복하고 서남쪽으로 중원을 엿보든가, 송악에 도읍하고 삼한을 통일하여서 큰 기업을 세우든가 하라던 말씀을 저버린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원조보다는 근조가 그리워, 우선 이곳에, 도읍하고 큰일을 서서히 엿보려 하였는데, 왕건이라는 뚱딴지 인물이 곁길에서 뛰쳐 나온 것은, 분하고도 역한 일이었다.
 
118
궁 따위는 이 임금에게는 우스웠다.
 
119
'대적(大賊)이나 되리라.’
 
120
이렇게 예언한 도선사의 말도 있지만, 이 임금의 본 궁예도, 큰 뜻을 이루고 그것을 끝까지 볼 만한 인품은 못 되었다. 그러니만치 궁예가 북방에 그냥 웅거해 있는 동안은 마음놓고 이곳서 실력만 기를 수가 있었다.
 
121
군사와 농사와 산업으로 후백제가 착착 부국강병책에 성공하여, 인제는 군사를 움직여도 넉넉할 만치 된 후백제 건국 이십팔 년, 신라 경명왕 이 년, 고려 태조 이년, 기묘년에 놀라운 소식이 이 후백제 임금의 귀에 들어왔다.
 
122
"고려가 도읍을 송악으로 옮기고 개주(開州)라 부르게 되었다."
 
123
하는 것이었다.
 
124
은사 도선이 사십여 년 전에 예언한 바,
 
125
"송악에 왕기가 보이더니라."
 
126
하던 그 송악까지도 벌써 왕건의 손으로 들어갔다.
 
127
"완산주의 왕기는 희박하니라."
 
128
백제의 옛터이니 임시로나마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서서히 힘을 길러 동벌(東伐)과 북벌(北伐)에 성공을 한 뒤에 송악으로 옮기리라 하던 희망조차 인제는 끊어졌다.
 
129
천인(天人)인가. 고려 왕의 하는 일이 너무도 귀신 같고 민첩하므로 견훤왕은 망연히 바라볼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임금이 아직껏 오십여 년 생애에 느껴 보지 못한 압박감과 공포감을 이 소년왕에게 차차 무겁게 느끼어 갔다.
 
130
동시에 임금은 급속히 국가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짓기로 결심하였다.
 
131
첫째로 전국의 정를 몰아 번갯불같이 신라 서울을 무찔러서 이백여 년전 부여의 원수를 눈앞에 갚고, 그 전승의 세력으로써 일로 송악에 직 입하여 새 나라를 온전히 힘기르기 전에 멸하고, 자기가 송악으로 도읍을 옮긴다.
 
132
이렇게 하면 스승의 훈계 ― 남으로 이천 리 북으로 이천 리의 주인이요 겸하여 동방의 맹주는 되는 것이다.
 
 
133
오백여 년간 신라의 사직의 주인이던 김씨를 버리고 칠백 년 전의 왕족의 후예인 박씨를 추대한 문죄(問罪)가 신라 정벌의 표면 기치였다.
 
134
이신벌군이라는 것이 신흥 고려 정벌의 표면 기치였다.
 
135
이리하여 이 정벌의 준비에 분망한 동안에 그 해도 어느덧 넘어가고 이듬해가 이르렀다.
【원문】송악 왕기(松嶽 王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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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대(帝星臺)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