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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대(帝星臺) ◈
◇ 함한(含恨) 반 오백년(半五百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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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1939.4
김동인
1
제성대(帝星臺)
2
含恨[함한] 半五百年[반 오백년]
 
 
3
"아유. 아이구우."
 
4
이불 밖으로 손이 나왔다. 그 손을 답답한 듯이 입까지 가리웠던 이불을 가슴 위에까지 젖혔다. 그런 뒤에는 손을 더듬어서 자리곁에 놓인 명주 수건을 끌어다가 얼굴의 땀을 씻었다.
 
5
"답답하시오니까?"
 
6
"음. 밀수를."
 
7
궁녀가 갖다 바치는 밀수를 임금(백제)은 두어 모금 달갑게 마셨다.
 
8
"내가 누운 지 엿새째지?"
 
9
"네…."
 
10
임금은 눈을 감았다. 무릎에서 넓적다리로 걸치어 후루루, 후루루, 한 순간씩 교체되어 쏘았다 멎었다 한다. 놀랍게 야윈 것을 스스로도 알 수가 있었다.
 
11
엿새 전이었다. 제십대 비룡(飛龍 - 말이름)을 타고 대궐 후원을 새벽 산책을 하고 있었다. 후원 연못가였다.
 
12
그때 - 임금은 자기가 어떻게 낙마하였는지 모른다. 낙마하여 연못에 구을러 빠졌다. 낙마할 때 오른편 무릎뼈를 삐었다. 이월 그믐 찬 못물에 빠져 고뿔이 들렸다.
 
13
그 이래 엿새 동안 임금은 혼수 상태에서 잠깐 깨었다가는 다시 혼수 상태로 빠지고 또 다시 빠지고 이렇게 지났다.
 
14
달아가는 말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말이 무엇에 놀라서 올라뛴 것도 아니었다. 오륙 세부터 근 육십 년간을 말 잔등에서 자란 이 임금은 설사 닫는 말이 아니라 한 번 꺼꾸로 뛰는 말에서라도 떨어질 사람이 아니었다.
 
15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주 온화히 걷는 말께서 떨어진 것이었다.
 
16
설사 떨어진다 할지라도 내 몸을 다치게 떨어지도록 서툴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릎뼈를 이렇듯 다친 것이었다.
 
17
설사 떨어져서 무릎을 다치고 못에 빠졌기로서니 빠진 다음 순간 곧 건지어 나왔으니, 이 무쇠와 같이 완강한 체격의 주인이 이렇듯 된 고뿔에 걸린다는 것도 예사롭지 못한 일이었다.
 
18
이것이 모두 나이의 탓이라 보았다. 금년(경애왕 삼년, 고려 건국 십년)에 예순 하나 - 환갑이었다.
 
19
"내가 늙었느냐."
 
20
마음만은 아직 삼십 청년이었다. 몸도 변한 듯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그 원기 그대로 있으나 그래도 환갑 늙은이로서의 부주의, 방심이 있었기에 이런 실수를 한 것이었다. 누운 지 엿새, 다리를 다쳤는지라 일어나지 못하고 된 고뿔에 들렸는지라 열기로 정신을 잃고, 하는 가운데서도 이 임금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몸의 아픔보다도 마음의 아픔이었다. 늙어 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부터 그의 마음은 차차 초조하였다.
 
21
아득한 옛날 아홉 살의 소년의 몸으로서 아버지께 두 가지의 커다란 맹서를 하고 집을 떠났다.
 
22
하나는 쓰러진 백제국의 재건이었다. 또 하나는 조상 의자왕과 백제 삼천 후궁의 원한을 '눈은 눈으로 귀는 귀로’ 갚으려는 복수의 염이었다.
 
23
그중에 하나는 이미 성공하여 후백제 창업도 벌써 삼십육 년이다.
 
24
그러나 피묻은 비수를 다시 새로운 피로 물들이려는 복수는 아직 그 단서도 트지 못하였다.
 
25
늙어 가는 몸 - 아직 하지 못한 사업 - 이번 낙마에서 통절히 자기의 늙음을 자각한 임금은 이 심통 때문에 병도 좀체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26
이번에 굳게 결심하였다. 이번 병이 완쾌되기만 하면 무엇보다도 그 계획 성취를 위하여 전력을 다하려고….
 
27
움직일 수 없는 하반신 때문에 자리에서 일지도 못하고 누운 채 임금은 때때로 품칼을 꺼내어 뽑아 보았다. 약간한 광선이라도 받기만 하면 찬연히 도로 빛을 반사하는 명도 - 그 광휘의 이면에는 삭일 수 없는 가문의 원한의 피가 발려 있는 것이었다.
 
28
이월 그믐에서 삼월 그믐 사월 그믐 - 이렇게 임금은 만 두 달을 다리를 자유로이 쓰지 못하였다. 젊은 시절 같으면 그맛 낙마쯤은(애당초 낙마부터 않겠지만) 불과 며칠이면 전쾌가 될 것이었다. 그런 것이 두 달이나 걸리고도 지금도 걸음걸이에 새큰거리는 감각을 느끼면서 임금은 근심을 넘어서서 도리어 공포감까지 받았다. 늙음이란 것이 무서운 것임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29
이번 일어나서는 임금은 인제는 더 꿈질거리고 있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30
나이 벌써 환갑 - 여생이 얼마 없으니 그냥 꿈질거리다가는 기회를 영 놓칠 근심도 없지 않았다.
 
31
제일세 비룡(飛龍)을 조상으로 삼고 좋은 암말에 짝하여 낳고 개량하고 한 명마가 오십여 년간에 지금 전국 각 영에 나누어 기르는 것이 사오천 마리가 된다. 그 가운데서 금년 다섯 살 된 것으로 가슴 퍼지고 엉덩이 드높고다리 날쌘 것 오백 마리를 추려서 서울로 가져오게 하였다.
 
32
전국 각 영문에 영을 나려서 기 사 창 검(騎, 射, 槍, 劒)에 아울러 능 한자 오백 명을 경영(京營)으로 뽑아올렸다.
 
33
금산사(金山寺) 경내에 훈련청(訓鍊廳)을 두고 무사 오백 명과 말 오백 마리가 식숙할 사옥을 급히 지었다.
 
 
34
그 해 오월 중순부터 맹훈련을 시작하였다. 이름은 직예대(直隸隊)라 하였다. 임금이 몸소 훈련을 시켰다.
 
35
본시부터 무술에 능한 자들에다가 명마까지 제공되고 보니 그것은 무예 연습이라기 보다 곡예(曲藝) 연습인 듯한 감이 없지 않았다. 무연한 넓은 연 무장에 한일 자로 금그은 듯이 줄지어 선 기마 무사.
 
36
그것은 사람의 기술과 말의 기술이 합일된 신기(神技)였다. 오백의 인 마가 한일 자로 횡대를 지어 달릴지라도 한 자의 드남이 없이 그냥 한일 자대로 횡렬로 나아간다. 한 번 임금의 호령이 내리면 오백 마리의 말 위에 있던 오백 무사는 말등에서 사라진 듯이 없어지고 어느덧 말배에 내려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37
비호같이 닫는 이 말의 등에서 저 말의 등으로 마치 평지인 듯이 걸어 다니는 그들 -.
 
38
닫는 말에서 창을 한 번 두르며 땅 위에 기던 조그만 벌레라도 꿰어 올리는 그들 -.
 
39
닫는 말에서 하늘 나는 새라도 맞혀 떨구는 그들 -.
 
40
명마에 명지휘자에 명기수. 이 세 가지의 겸비는 이 단 오백 명을 가지고라도 오만의 적군과도 넉넉히 대항할 만하였다.
 
41
금산사 경내 연무장에서는 임금의 지휘 아래서 직예대가 맹연습을 하는 동안 서울 동교에서는 이만 명의 군졸들이 원노(元奴) 장군의 지휘 아래서 습진, 습사, 습창(習陣, 習射, 習槍)을 닦기에 게을리지 않았다.
 
42
그야말로 악에 받친 듯한 연습이었다.
 
43
오월에서 유월, 칠월, 팔월 - 찌는 듯한 더위도 모르는 듯이, 삼만의 보병과 오백의 직예 기병대는 새벽 동틀녘부터 연습을 하여 저녁 해가 기울어 서야 영으로 돌아오고 하였다.
 
44
이해 팔월 그믐날은 이 임금의 환갑날이었다.
 
45
후백제 시조의 환갑 - 후백제의 백성 된 자 누구 이 날을 축하하지 않을 자가 없었다. 신라의 중압 아래서 신음하던 백성들을 구원해 낸 민족적 영웅 견훤대왕의 일생의 한 번인 환갑 잔치날이었다.
 
46
임금은 당연히 전 국민에게 이 날을 축하하여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었고 백성된 자 또한 당연한 의무로서 이 날을 축하하여야 할 것이다.
 
47
이 경사스러운 날을 기약하여 동부와 북부로 향하여 대진군을 시작할 계획 이었다. 지금 맹연습을 하는 이만의 보병대에서 정예한 분자 일만 명만 추려 가지고, 지리산을 휘돌아 동북으로 고려의 영토를 진공하고, 고려로 하여금 이곳에 주의를 가하여 다른 곳에 방해의 손을 펼 여유를 주지 않고, 임금은 직예 기병대를 친솔하고 원대에서 갈라져서 일로 계림을 직 충해서, 신라 건 고려건 손쓸 틈이 없이 신라 서울을 함락시키고 이백육십 년 전에 낙화암에서 백제 왕실이 받은 수치를 도로 그대로 신라 왕실에 품 갚음 하려는 것이었다.
 
48
신라에서 고려에 청병을 하고 고려는 원병을 보내고 그럴 여가가 없게 하기 위해서는 쾌속력을 가진 군대로 한숨에 계림을 무찔러야 할 것이다. 그럴 필요상 지금 맹연습을 하고 있는 직예 기병대는 없지 못할 존재다.
 
49
여름 석양에 오백 자루의 창검이 연무장에서 번쩍이는 광경은, 장쾌를 넘어서서 장엄하였다. 나의 손발같이 뜻대로 움직이는 직예대를 지휘 하면서 임금은 때때로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금하지 못하였다.
 
50
눈은 눈으로 견훤왕의 친솔한 오백 마병(馬兵)은 도중에서 한 번도 저항을 받아 보지 않고 일로 계림성을 향하였다. 군졸 일만 명은 원노 장군 인솔 아래 근 품성(近品城)에서 고려군의 방해를 막고 있기로 되었다.
 
51
가는 도중에서 견훤왕은 신라 정부서 고려에 구원병을 청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청한 고려 군사가 올 때쯤은 백제측에서는 할 일을 다 끝내고 제이단의 길로 나아갈 때일 것이다.
 
52
무고한 백성을 해하지 말 것.
 
53
부녀자를 농락치 말 것.
 
54
재물을 약탈하지 말 것.
 
55
군규를 엄히 지킬 것.
 
56
신라 서울이 눈앞에 보일 때에 견훤 임금은 이와같이 군대에 엄히 분부 한 뒤에 한 군사의 저항도 받지 않고 서울로 들어갔다.
 
57
대궐까지 점령하였다. 그러나 불행히 신라 임금은 대궐에 있지 않았다. 이 국난의 때임에도 불구하고 신라 임금은 비빈들을 거느리고 포석정(鮑石亭)에 나아가서 놀이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58
인솔하고 온 오백 명 직예 중에서 삼백 명은 서울을 비하기 위해서 거리마다 배치하고, 이백 명만 끄을고 대궐까지 달려들었다가 신라 왕을 만나지못한 견훤왕은, 말께서 내리지도 않은 채로 네째 왕자 금강을 불렀다.
 
59
"서울은 네가 맡아라. 김씨(金氏) 종중에서 새 임금 가음을 하나 골라놓아라. 상세한 일은 네가 알아 할 터이니 더 말하지 않는다."
 
 
60
"아버님은?"
 
61
"포석정으로 한시가 바쁘다."
 
62
과연 한시가 바쁘다. 신라 임금은 대궐에 있을 것으로 알고 다른 준비는 없이 달려왔는데, 지금 포석정에 나갔다 하니 한시바삐 포석정으로 달려가서 이번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번 포석정에서 놓쳐 버려서 그 행방을 찾느라고 방황할 동안 고려의 구원병이 이르면 또 일은 틀려 나간다. 차차 늙어 오면서 마음도 차차 조급하여 오는 견훤왕은 자기의 생전에 자기의 손으로 감행하여야 할 대복수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 다시 기회가 올 듯 싶지 않아서 이 기회는 결코 놓고 싶지 않았다.
 
63
"알았읍니다."
 
64
"음. 그럼-."
 
65
견훤왕은 아직도 씨근거리는 병마 비룡의 머리를 돌려서, 대궐 안에 정렬 하여 있는 수병 이백 명에게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백 명을 떼어 가지고, 뒤의 일은 금강 왕자에게 부탁한 뒤에 포석정으로 향하였다.
 
66
그러나 견훤 왕이 수하 백 명을 데리고 포석정으로 달려온 때에 신라 왕은 포석정에도 있지 않았다. 백제 군사가 이리로 달려온다는 비보에 신라 왕의 잔치는 난장판이 되고, 임금은 망지소조하여 비빈들을 거느리고 성남이궁(城南離宮)으로 몸을 숨긴 때였다.
 
67
견훤왕은 포석정에서 다시 이궁으로 신라 왕을 추격하였다.
 
68
울고 부르짖는 비빈 궁녀들. 그 가운데를 동남서북으로 돌아가는 백제 마 병들. 이궁으로 피하였던 신라 왕 이하 비빈이며 신라 시종들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백제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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