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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대(帝星臺) ◈
◇ 노호(老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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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1939.4
김동인
1
제성대(帝星臺)
2
老虎[노호]
 
 
3
신왕은 아버님을 금산사 이궁에 감금하고도 아드님으로서의 도리는 다 하였다.
 
4
환후 평유의 기도를 금산사에서 올리도록 하는 한편, 고명한 의원을 보내어서 모시게 하고 일용물품이며 기거에 부자유가 없도록 하게 하였다. 다만 감시를 엄중히 하여 자유로이 벗어나지만 못하게 하였다.
 
5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 처음의 격노(激怒)와 흥분이 삭으면서부터는 견훤왕은 무엇보다도 이런 부자유한 환경 가운데서도 나라에 유리한 방략을 강구하고 있었다.
 
6
첫째로 신왕과 당신과의 새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애써 남에게 나타내려하였다. 신왕께 왕위를 전한 것은 절반은 당신의 뜻이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 였다.
 
7
신왕이 매일 보내는 문안사에게도 각별히 신왕의 안부를 묻고 하였다. 정치 상의 의견도 늘 신왕과 교환하고 하였다.
 
8
말하자면, 당신이 위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서 다른 나라의 엿보는 눈을 얼마만치라도 피하기 위해서다.
 
9
이런 용의의 덕인지는 모르지만 정변이 있은 두석 달 뒤까지도 아무 별고 없이 지나게 되었다.
 
10
그 해 여름 무더운 어떤 날이었다. 그 날 견훤왕은 인제는 그다지 적의(敵意)도 보이지 않는 시위 장사며 시종 비복들에게도 후히 음식을 내리고 당신도 입이 당기어 저녁을 많이 자시고 그냥 음식에 취하였는지 흔흔히 잠이 들어 버렸다.
 
11
그때 들었던 그 잠에서 견훤왕이 깬 것은 이튿날 해도 꽤 높이 오른 때 였다.
 
12
먼저 사위(四圍)가 이전과 다름을 직각하였다. 그 다음은 모시는 사람들 이 궁인들이 아니요 낯선 무사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들은 견훤왕이 잠 깨는 기수에 일제히 허리를 굽혀서 경의를 표하였다.
 
13
"여기가 어디냐?"
 
14
견훤왕은 이렇게 물었다.
 
15
"함상(艦上)이올시다."
 
 
16
무얼? 견훤왕은 반사적으로 몸을 절반만치 일으켰다.
 
17
"너희는 누구냐?"
 
18
"고려 지존(至尊)의 어명으로 대왕을 모셔가옵는 시종들이올시다."
 
19
이 견훤왕이 몇 달 전 신검 왕자의 반역을 당하였을 때와 동정도로 생전에 보기 쉽지 않은 경악이었다.
 
20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일으켜서 벌거벗은 맨몸으로 한참을 말없이 앉아 서사지만 떨고 있었다.
 
21
그런 동안에 침착함이 생겼다. 생기면서 다시 몸을 눕혔다.
 
22
일찌기 본 바, 고려 임금의 눈― 그것은 예사 보통의 눈이 아니었다. ' 덕(德)’으로는 모르지만 '재(才)’로는 천하에 당할 자 없을 것이다. 견훤왕 당신이 그 새 마음을 억지로 눌러 가면서 맏아드님인 신왕과 의좋게 지내는 듯이 꾸미던 그 내심도 고려 임금으로서는 뻔히 꿰어보았을 것이다.
 
23
그리고 오늘날 이 거조가 있었을 것이다.
 
24
고려 임금의 정략을 보아 지금 당신을 고려로 데려간다 할지라도 푸대접을 한다 든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있는 재간 없는 재간 다하여 당신을 환대 할것이다. 왜? 아직 백제의 온 민심이 견훤왕 당신에게 모여 있으니까…. 그리하여 장차 천천히 백제를 이반시키고 부자간을 이반시키고 하여 가장 치기 쉽게 된 시기에야 비로소 동병을 할 것이다.
 
25
지금 신라라는 나라는 손가락 하나만 대어도 넉넉히 쓰러질 만치 미약 한 존재이다.
 
26
백제는 지금 비록 온 나라이 신왕께 복종한다 하나 열복이 아니요 심복이 아닌 이상 언제 어디서 누구가 무슨 일을 내기만 하면 벌의 둥지 쑤시어 놓은 것같이 될 나라이다.
 
27
오직 가장 후에 일어난 고려 혼자가 반도 위의 가장 강한 나라이다.
 
28
"송악에 도읍하여 남으로 이천 리 북으로 삼천 리."
 
29
아아, 스승의 이 선견을 저버리고 더욱이 '자식복이 적으리라’던 그 예언까지도 저버리고 자기는 왜 그다지도 안심을 느끼고 불안을 모르고 있었던가?
 
30
자리에 다시 누운 견훤왕은 표면으로는 태평한 듯이 가식하였지만 속으로 통곡하고 또 통곡하였다. 당신 일대의 대사업이 곱다랗게 무너져 나가는 것을 분명히 확실히 눈앞에 보기 때문이었다.
 
31
고려 왕은 견훤왕을 마치 친숙부나 맞는 듯이 표면 기뻐서 맞았다.
 
32
나이가 아저씨뻘이라 하며 상부(尙父)로 삼고, 부름에 있어서도,
 
33
"아저씨."
 
34
하던가 그렇지 않으면,
 
35
"대왕님."
 
36
이라 하였다.
 
37
벼슬을 백관(百官)의 위에 두고 거처할 궁궐까지 주고 식읍(食邑)으로 양주(楊州)를 주었다.
 
38
말하자면 견훤왕은 고려에 있어서도(정치상 권력과 세력을 제하고는) 고려왕에 버금가는 가장 존귀한 사람이었다. 금산사에 유금되어 있을 때부터 견훤왕께 시종들던 남녀비복이 고려 서울까지 와서 시종들고 일찌기 백제 장수로 고려에 잡혀왔던 신강(信康)이 호위사로 있게 되었고― 뿐더러 견훤왕의 사위 되는 영규(英規)장군이 자기의 안해와 의논하고 현왕(現王)을 배반하고 옛 왕을 외국에 찾아와서 늙고 외로운 옛 임금을 위로하고 있었다.
 
39
이것이 견훤왕께는 적지 않게 위로되었다. 마음에 생각하는 것은 오직 국사뿐이라 하되 그래도 사람인 이상 인정의 움직임이 없을 수 없었다. 게다가 춘추 칠십― 사람 그리울 때가 넉넉히 되었다. 그 아들에게까지 모두 모함을 받고 평생 사업의 붕괴를 본 견훤왕에게는 딸과 딸의 남편과의 인적(人的) 위로라는 것이 적지 않게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40
이리하여 견훤왕은 칠십의 노구를 외국 서울에서 보내고 있었다.
 
41
그해 시월에 또 한가지 중대한 시국상의 변화가 생겼다. 일천 년 사직의 신라가 드디어 거꾸러졌다. 한 개의 군사도 쓰지 않았다. 몇 명의 외교사(外交使)가 신라로 가서 세 치 혀를 놀려서 달래고 위협했는데 드디어 일 천년 신라 종사의 주인은 사직을 고려에게 내어맡긴 것이었다.
 
42
견훤왕은 이 말을 듣고도 단지 입맛을 다시고 아무 비평도 가하지 않았다.
 
43
이번 고려에 일천 년 신라 사직을 들어 바친 임금인 김부(金傅)는 일 찌 기 견훤왕 당신의 네째 왕자(지금은 저 세상에 가 있는 사람이다)가 골라 낸 사람 이었다. 그리고 견훤왕 당신의 입회 아래서 즉위를 한 사람이었다.
 
44
장차 백제가 힘이 자라서 신라를 삼킬 수가 있다면 그때야 말로 이 임금(김부) 이면 손쉽게 신라 왕관을 들어 바치리라는 기대 아래서 골라 내었던 그 김부왕이 왕관을 벗어서, 바친 곳은 백제가 아니요 고려였다.
 
45
웃자 하니 너무도 비극적이요 울자 하니 너무나 희극적이다. 지금 돌아보아 너무도 눈이 밝았던 금강 왕자의 안목을 탄복하기보다 먼저 운명의 기괴함에 탄식할 따름이었다.
 
46
그때 김부왕 즉위식에 참례한 일이 있던 영규 장군도 이 소식을 듣고 침통한 얼굴로 옛 임금이요 겸하여 장인 되는 견훤왕을 찾아 들어왔다.
 
 
47
"대왕님, 웃지도 못할 노릇이올시다."
 
48
"세상사 다 그렇지 할 수 있는가?"
 
49
"장차 무론 이리로(서울로) 오겠읍지오."
 
50
"그렇겠지."
 
51
"그때의 그 꼴을…."
 
52
그러나 견훤왕은 웃지도 않고 쓴 얼굴을 하고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53
며칠 뒤 신라 왕 김부는 나라는 고려에 바치고 비빈 궁녀며 보화들을 가지고 고려 서울로 왔다. 고려 왕은 이를 맞아서 맏딸 낙랑 공주로 짝지어 주고, 유화궁(柳花宮)에 거처하게 하고 계림을 경주(慶州)라 이름 고치고, 경주읍을 김부의 식읍(食邑)으로 하고 낙랑 정승으로 삼아 위를 태자의 위에 두었다.
 
54
인제는 이 반도땅에는, 오분의 사를 차지한 신흥 고려국과 오분의 일을 차지한(견훤의 맏아들이 이은) 후백제의 두 나라만이 남았다.
 
55
직접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는지라 그 내막은 똑똑히 알 수 없으나 견훤왕에게는 고려 조정에서 늘 백제 문제로 머리를 앓는 것은 알 수가 있었다.
 
56
비록 늙은 호랑이는 이곳에 감금해 두었다 하나 그 호랑이가 기른 바 혈기의 백제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라같이 녹록히 손 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57
어차피 집어삼키어야 하겠는데, 곱다랗게 삼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력(武力)을 사용하자니 이것도 아직 미지수였다. 이곳에 와 있는 견훤왕이 백제에 그냥 있다면 감히 염도 내지를 못할 것이다. 그러니만치, 견훤왕을 이곳에 잡아왔다고 얼마나 만만하게 되었는지 이것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58
다만, 견훤왕이 선두에 서서 역자(逆子)를 친다는 명목으로 백제를 쳐 들어가면 문제가 없이 백제는 잔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새도 여러번 등 떠본 바이지만 견훤왕은 이제라도 고려를 치는 군사에는 선군장이 되겠지만 비록 역자(逆子)라 할지라도 백제는 고목 한 떨기를 일없이 꺾지 않을 것이다.
 
59
백제를 치는 선봉장으로 견훤왕을 내세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60
이 의미로, 백제 공략에 견훤왕은 도저히 이용하지 못할 인물이었다.
 
61
견훤왕은 이런 가운데서 고려 조야의 융숭한 대접만 받으면서 한가하고 무위한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원문】노호(老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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