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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회패(맨끝 셋째)로 패를 뽑아드니 일자(一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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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손편으로 앉은 애기패가 둘이 다 제 패를 보이면서 덕쇠패를 굽어본다. 패 선(先)패가 장자(十字[십자])요 둘째가 새자(四字[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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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일자를 좋아하는데다가 다른 애기패와 맞는 자가 없으니까 더할 나위가 없다. 그는 십 원 한 장을 내어놓고 방바닥 얼러 딱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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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원은 처음이다. 뒷전에서는 무어라고 수군수군하고 등 뒤에 바짝 붙어 앉은 순갑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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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잔뜩 긴장이 되었으나 패잡아 윤가는 제 패를 쓱 뽑아보고 나서 투전 뒤꽁무니에 물려놓고 십원짜리 한 장을 아무렇게나 덕쇠한테 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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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패는 삼십 전, 둘째패는 오 전을 각기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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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잡이는 돈을 다 쳐주고 나서 선패한테 투전목을 내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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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패는 육자를 뽑아서 대고 둘째는 일자가 나오니까 뽑아 든 두 장을 만지작만지작하면서 댈까 들어갈까 망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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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야 오 전 아니면 십 전을 태면서 번번이 댈 데 들어가고 들어갈 데 대고 해서 덕쇠를 낭패를 보이는 친구다. 덕쇠는 돈을 잃고 심정이 난판이라 눈을 흘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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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 그까짓 오전, 내가 물어주기라두 헐 티닝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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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심정이 상했던지 둘째패는 덕쇠를 마주 흘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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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상관이여? 내 돈 갖구 내 맘대루 노름허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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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자기 패 이상으로 가슴을 죄면서 들여다보니까 아니나다를까 몽창한 대가리가 무드름하게 비어지는데 갈데없는 팔자(八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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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그만 그를 쳐죽이고 싶게 화증이 났다. 그놈을 그대로 대기만 했으면 덕쇠가 그 팔자를 뽑아가지고 알팔(一八[일팔]) 뚝 떨어진 가보를 잡을 판이었었다. 덕쇠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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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자식 돈만 영영 잃어보아라. 너를 뜯어 죽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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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벼르면서 당장 치미는 화를 꾹 참고 물주가 대주는 패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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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패를 위에 덮어가지고 투전장이 찢어지라고 뽀도독 잡아 훑으니까 뾰족한 대가리가 비어져 나오는데 칠자도 같고 장자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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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자라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덕쇠는 가슴을 지금 죄는 투전 죄듯 죄면서 쭉 훑어내렸다. 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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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응당 여덟끗이니까 댈 것이로되 물주를 견제하느라고 입맛을 다시면서 망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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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제가 한 장 더 뽑을 듯이 손을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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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주는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고 덕쇠의 낯꽃만 뚫어지게 치어다보고 있다가 제 패 첫장을 쭉 뽑아들고 버쩍 쳐들어 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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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주패는 넌지시 삼자였고 첫장은 일자다. 네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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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주는 벌써 덕쇠가 끗수를 높이 잡은 줄을 안다. 그래 그는 서슴지 아니하고 들어가 뽑아다가 두 장 사이에 딱 끼워 쥐고는 애기패를 휙 둘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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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패가 장륙에 여섯끗, 말성꾼이 둘째가 진주(다섯끗)에서 두끗 줄어 세끗이다. 덕쇠는 패를 젖혀 방바닥을 탁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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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야말로 먹었느니라고 느긋해서 한번 그래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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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주는 애기패들의 끗수를 휙 둘러보고 또 말성꾼이 둘째패와 덕쇠패를 한참 치어다보더니 자기 패를 죄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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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드득 죄는 앞뒤 두 장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것은 외수없이 오이자(五字[오자])다. 그는 벼락같이 방바닥을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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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삼외(一三五[일삼오]) 관솔공이…… 꿈쩍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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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원짜리 두 장을 곁들여놓은 덕쇠해부터 갈퀴로 긁듯이 긁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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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패들이나 뒷전에서는 하도 희한해서 잠잠하고 있고 덕쇠는 기가 막혀서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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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있다가 순갑이가 앞으로 몸뚱이를 비집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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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그렇게 물주 끗수가 잘 나온단 말인가! 가만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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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주패와 덕쇠패와 말성꾼이 둘째패를 뒤적뒤적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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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렇자! 자, 보소 응. 이 사람이 그냥 댔으면 그놈으루 덕쇠가 갑오를 잡지…… 그러구 물주는 삼자패닝개루 칠자가 밀려내려가면 꼭 매잖 겄는가? 그러구 나서 그 담이 이놈 일자닝개루 영락없이 따라지를 잡구 나자뻐지구 애기패는 다 먹네 다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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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미상불 그렇다고 수군거리며 말성꾼이 둘째에게로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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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어디가 부러지게 한번 윽박질러 주고도 싶으나 그럴 수도 없고, 그러면 노름을 그만하고 일어서자니 돈을 육십 원이나 넘겨 잃었으니 안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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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지금 나흘째 투전을 죄고 있고 돈은 육십 원이 더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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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등 너머 동리 쇠물방에 가 누웠느라니까 순갑이 입에서 소문이 퍼져가지고 노름꾼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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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날은 일전 이전 아니면 다직해야 오전 십전을 치고 했고, 또 얼마 아니해서 덕쇠어머니가 쫓아와서 별 득실이 없이 노름방은 깨어졌다. 덕쇠는 몇 사람과 같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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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나서 다시 노름을 시작한 것이 지금 이틀 밤과 사흘 낮을 붙박혀있는 정거장 근처의 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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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에는 노름을 아니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두 번이나 싸우고 난 판에 화도 났고, 또 심심풀이로 일전 이전 내긴데야 어떠냐고 우축좌축하는데, 본시 투전이라면 좋아하는 성미겄다 슬그머니 들이덤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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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원을 잃으면 일 원쯤 따고 다시 십 원을 잃고 그러다가는 몇원 본전을 추어놓으면 그놈이 한 십 원씩 물고 나가고, 이렇게 해서 쫄끔쫄끔 나간 것이 삼십 원이 넘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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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니 그때부터는 재미로 하는 노름이 아니라 잃은 본전을 찾을 생각으로 다뿍 등이 달아가지고 노름을 하게 되었고, 그런 때문에 하면할수록 자꾸만 실수를 하고, 그래 본전을 건지기는커녕 다시 삼십 원을 더 잃어 도합 육십여 원이 달아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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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돌아와 애를 잡느라고 투전목을 불끈 쥐고 내어미는 덕쇠는 얼뜻 보기만 해도 눈이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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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의 흥분한 것을 보고 말성꾼이는 슬며시 물러나고 다른 사람이 들어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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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가 좀더 까닐까닐 말썽을 부렸으면 돈은 잃었겠다, 그래 거진 환장이 된 덕쇠한테 단단히 두들겨맞기라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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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전목을 내어 대니까 마침 노름방을 붙인 그 집 주인이 술과 국밥을 들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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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쇠는 시장한 줄도 모르고 그래 먹을 생각도 나지 아니했다. 그는 정신이 오리사리해서 지금 며칠째 그러고 있는지 그것도 모르고 때가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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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앞에 놓인 십원짜리 두 장에 잔돈 몇 원과 투전목과 또 돈을 많이 따가지고 있는 아까 그 애잡이의 앞에 놓인 돈만이 보일 따름이다. 그는 저게 모두 내 돈인데 저렇게 가서 있거니 생각하면 더욱 심정이 상하고 그래 어서 이놈으로 저놈을 도로 다 찾아와야 할 텐데, 하니까 마음이 초조한 가운데 허욕까지 더럭더럭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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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갑이는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사발을 들고 와서 덕쇠한테 권한다. 그도 덕쇠가 돈을 잃어 개평을 못 얻게 되니까 속이 침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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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루 요기나 좀 허소…… 그러구 맘을 그렇게 조급허게 먹지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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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말구 좀 먹어 이 사람아!…… 그러구 이번 내가 대신 좀 잡어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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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어도 돈을 잃고 나서 남한테 대신 내맡기지는 아니하려 드는 것이 노름꾼의 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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