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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
◇ 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4월) ◇
카탈로그   목차 (총 : 12권)     이전 4권 다음
문석환 의사
1
馬 島 日 記
 
 
2
1907년 4월
 
 
3
4월 초1일 신유.
 
 
4
2일 임술.
 
 
5
일본 鷄知 사령관 河村益直148)이 와서 우리들의 안부와 음식 절차를 묻고 갔다.
 
 
6
3일 계해.
 
 
7
오후에 川上과 밖에서 바람을 쐬었는데 병정 2명이 따랐다. 경비영 북편을 나서자 산이 높으며 골짜기가 깊어 소나무·삼나무가 우거지며 여러 숲이 푸르렀다. 한 곳에 이르자 돌 구명이 동글동글하였는데 그 위에 황금 글자로 ‘源泉混混’149)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시냇물은 본래 경비영 뒤에서 동남을 향하여 바다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곳에 따로 돌을 쌓고 지형에 따라서 경비영 우편에 모이게 하고 앞을 안아서 嚴原을 통과하여 정남향의 바다 어구로 들어가게 하였다. 길에서 엿장수 한 명을 만났는데 의관이 바로 조선 사람이었다. 그 거주를 물으니 경상도 善山에 살다가 우연히 이 섬에 들어와서 배 값에 막혀 빠져나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중학교 문 앞을 지나자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나이가 14~15살에 가까웠고 이하로는 11~12살에 이르는 자가 60~70명이었는데, 학교 안에서 나와 5, 6명씩 마치 군대 대오를 편성하듯이 하였다. 큰 사람이 앞에 있고 작은 사람이 뒤에 있으면서 살촉처럼 나란히 행진하고 낮게 몇 걸음을 뛰어 신발 소리가 착착하였고 날으는 먼지가 펄썩펄썩하였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군대 형상을 익히는 것이다. 중학교 문 안에는 나이가 17~18살에 가까운 자 2~3명이 남북으로 나누어 서서 탄환 놀이를 하여 서로 던지며 서로 받았다. 집 안에는 4~5명이 木劍으로 춤을 추어 서로 치며 서로 막았는데 모두 절도에 맞았다. 이것은 모두 군대 업무를 학습하는 일이었다. 군인이 날마다 연습하였고 그렇지 않은 자는 진실로 논의할 것이 없으나 학도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무예를 숭상하였다.
 
8
二更 때에 申輔均의 재종제 亮均과 그의 친구 田慶周에게 편지를 나누어 썼다. 長官이 열린 봉투를 와서 전하고 살펴보고 갔다. 상등병이 지나쳐 본 정경으로 나에게 시 한 수를 요청하였으므로, 지어 주었다. 그 절구는 다음과 같다.
 
 
9
一川自北來  내 하나 북쪽에서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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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峀向南開  많은 바위가 남쪽을 향하여 열어주었네
11
兩岸松杉碧  양쪽 언덕에 소나무 삼나무 푸른데
12
客尋別逕廻  나그네는 다른 길을 찾아 돌았다네
 
 
13
4일 갑자.
 
 
14
병정 한 떼가 도시락을 싸고 음료수 병을 차고 기계를 갖추고 밖에 나갔다가 석양에 모두 돌아왔다.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니, 산에 올라갔다가 온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망을 보아 뜻밖을 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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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을축.
 
 
16
병정이 역시 어제처럼 밖에 나가서 조련장은 병정이 한 사람도 없었고 석양에 모두 돌아왔다. 저녁에 술을 마신 뒤에 본부▣▣ 와서 말하기를 한국 외부대신, 군부대신, 탁지부 회계과장이 살해당했다고 하였다.
 
17
“일본 사람의 소행일 것입니다.”
 
18
“한국 鄕人의 소행인가. ▣▣▣▣손을 휘두르고 갑니다. 만약 그렇다면 한국에 다행이고 마음에 매우 흔쾌합니다.”
 
 
19
6일 병인.
 
 
20
7일 정묘.
 
 
21
병정들이 함성을 지르고 찌르기를 연습하였는데, 이와 같이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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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무진.
 
 
23
이 날은 佛家에서 이르는 바 浴佛節이다. 상등병과 國分寺에 가서 그 ▣▣을 보니 불상이 없고 위패 같은 것 수십 개와 좌우에 촛불을 태울 뿐이었다. 문의 뜰 4~5곳▨에는 남녀 장사꾼이 가게에 늘어서서 물건을 팔아 말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바다를 순회하며 산을 따라 돌아왔다.
 
 
24
9일 기사.
 
 
25
오후에 병정이 川上을 불러서 갔다. 조금 뒤에 돌아왔는데 무슨 일이냐고 하니 말하였다.
 
26
“7일 뒤면 러시아와 접전한 날입니다. 이 날은 대소 관원이 모여 서로 경축을 하면서 즐깁니다. 그러므로 鷄知사령부에서 전화를 통하여 나에게 말하기를 이날 鷄知 參會에 오라고 하였습니다.”
 
27
“이 섬의 망을 보는 군사가 밤을 지내 경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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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경오.
 
 
29
소대장이 와서 봉투 하나를 전하였는데 바로 崔萬奉이 보낸 烟波釣叟歌150)였다. 眉湖의 아들 台鉉이 그 아버지에게 편지를 올렸는데 편지 안에 閔대감이 오래지 않아 풀려날 것이라고 하였다. 遯翁이 定山에 있으면서 편지를 川上에게 부쳤는데 부채를 다소 부쳐 보낸다고 하였다. 太極扇·芭蕉扇·梧葉扇 세 자루는 川上에게 준 것이고, 객지에 있는 8명에게는 각각 한 자루씩 성의를 표하고, 副島 少佐에게는 세 자루를 주었다. 타인의 서찰은 아직 이르지 않았고 부채 역시 이르지 않았다.
 
 
30
11일 신미.
 
 
31
12사단 감리부장이 동경에서 왔다고 한다. 川上에게 물었다.
 
32
“무슨 일로 왔소?”
 
33
“경비대에 관여할 일이 있고, 겸하여 공 등에게도 관련이 있습니다.”
 
 
34
12일 임신.
 
 
35
午時 말경에 경상남도 宜寧 上井에 사는 曺在學이 7명에게 편지를 보내왔고 겸하여 文魚 2帖을 선물하였고 李侙에게 위로 편지를 보냈고 겸하여 葉匙151) 한 개를 보내왔는데 편지 발송은 금월 2일이었다. 그리고 定山 長龜洞에 가서 勉菴 先師의 장례에 가서 위로 곡을 하고 여종 편에 편지를 부친 것이었다. 酉時 경에 처제 李乙僊의 편지가 도착하였는데, 안에는 10圓 紙貨가 있었다. 崔萬奉·朴分吉·金寶物의 답서가 동봉되어 도착하였는데, 群山港에서 부친 것으로 道潭里 仲氏와 친구 曺秉直이 함께 丈席 장사날[襄日]에 위문하였다고 하였고, 발송은 금월 5일이었다.
 
 
36
13일 계유.
 
 
37
川上이 말하였다.
 
38
“금일 鷄知 사령관이 와서 군대 병사를 검열한다고 합니다. 공 등이 혹은 곁에서 보실 뜻이 있으면 볼 수 있습니다.”
 
39
이어서 조련장으로 나가서 구경하고 한참 뒤에 들어왔다. 점심 밥 이후에도 이와 같이 하였다.
 
 
40
14일 갑술.
 
 
41
12사단 감리부장이 와서 우리들을 살펴보고 이어 안부를 물었다. 지난번에는 동경에서 왔다고 하더니 이번에 듣건대 小倉에서 왔다고 하였다. 川上과 잠시 대화를 하고 즉시 경비영으로 나갔다. 조금 뒤에 川上을 불러서 (이하 9행 판독 불가)
 
 
42
15일 을해.
 
 
43
姻弟 李乙僊에게 답서를 연폭으로 하고, 崔萬奉·朴分吉·金寶物에게 답서하고, 겸하여 절구 몇 수를 秀才 3명이 있는 곳에 부쳤다. 崔萬奉에게 절구 세 수를 보냈는데 다음과 같다.
 
44
百鍊金成一劒心  백년 단련한 쇠는 칼 한 자루 중심을 이루고
45
工夫只在正吾心  공부는 내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을 뿐이라
46
聊將此劒心頭在  이 칼 중심 끝에 있는 것을 가지고
47
斬蘖隨時懲此心  반역자 목베어 때에 따라 이 마음을 삼가하리
48
海外靑山山外海  바다 밖의 푸른 산 산 밖에 바다
49
山光海色碧依微  산 광채 바다 색깔 푸르게 희미하구나
50
夜夢不知山海遠  꿈에 산과 바다가 먼 줄 모르고
51
怳然去踏故園歸  어렴풋이 걸어 고향으로 갔다네
 
 
52
이 글귀는 의당 처음에 있어야 한다.
 
53
絶島書頻至  뚝 떨어진 섬에 편지가 자주 오니
54
崔生不負情  崔生은 옛 정을 저버리지 않았구나
55
憑軒三復罷  난간에 기대어 세번 반복 읽고나니
56
雲外數峯晴  구름 밖에 몇 봉우리 맑아오네
 
 
57
朴分吉에게 절구 두 수를 보냈는데 다음과 같다.
 
58
在鄕每惜光陰促  고향에 있을 적에 늘 세월이 재촉함을 애석해 했는데
59
爲客還知歲月多  객지에는 도리어 세월이 많음을 느낀다네
60
芳草連天春已去  향기로운 풀은 하늘에 잇대어 봄이 이미 가고
61
家山千里隔烟波  고향 산천 천리에 안개가 막혔네
 
 
62
金寶物에게 오언절구 세 수를 보냈는데 다음과 같다.
 
63
異域海中天  외국 바닷가 하늘
64
憶君夢似烟  그대를 생각하면 꿈에 안개 낀 듯하네
65
黃鶯何所語  꾀꼬리는 어디서 우는가
66
客館日如年  객관에는 하루가 일년 같구나
67
十年林下讀  십 년 산골에서 글 읽어
68
期踏大途還  출세 길을 밟고 돌아오기를 기대하였네
69
簣土時無已  흙 한 삼태기를 더함은152) 시기가 그침이 없으니
70
平原可做山  평원에 산을 만들 수 있을까
71
姓金名寶物  성명 金寶物
72
方知眞寶物  진짜 보물인 줄 알겠네
73
良金雖寶物  좋은 황금 비록 보물이나
74
成人是寶物  사람을 이룸은 이 보배로운 물건일세
 
75
做工篤處志如神  공부를 돈독히 하는 곳에 뜻은 귀신과 같으니
76
咬得菜根也味新  채소 뿌리만 씹어도153) 맛이 새롭다네
77
莫道賢愚元有定  현인과 우인이 원래 정해졌다고 말하지 말라
78
令名皆自讀書人  아름다운 명예는 모두 글을 읽는 사람으로 되나니
 
 
79
이 절구는 分吉의 글귀 아래에 있어야 한다.
 
 
80
16일 병자.
 
 
81
曺친구의 편지가 도착하였는데, 편지에 말하였다.
 
82
“지난달 18일에 발송하신 편지를 반도 못읽어 감사하며 황송함이 지극하여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생각컨대 그 뒤로 날이 오래어 봄이 다하고 여름이 이르렀는데 병환은 흔쾌히 회복되었으며 객지 풍토병 기운 속에서 손상은 없으십니까? 이것은 온갖 劫灰를 겪으며 水土에 적응하지 못한 빌미가 아니겠습니까? 바라건대 심기를 조섭하여 번뇌하지 마시고 빨리 편안히 상쾌하게 되시어 먼 곳에서 비는 것에 부응하십시오. 저[少弟]는 늙으신 어머님이 늘 頭風을 앓아 오랫동안 편치 못하여, 속타며 두려운 중에 구질구질한 일생이라 급히 흐르는 세파 속에 용감히 물러나지 못하니 타고난 운명이 비틀거림을 스스로 가련해 할 뿐입니다. 3월 28일에 편지를 받자옵고 즉시 귀댁의 백·숙부 어른께 가서 의논하였습니다. 이 달 초하루에 令仲氏와 함께 鴻山 杏村으로 달려가서 勉菴 대감의 장례가 어떠한 형편인지 탐문하였는데 표지와 기물을 도로 거두어 갔다는 말을 듣고 定山 長龜洞으로 나아가니 장례는 이미 公州 敬川地에 지냈습니다. 초하루 丑時에 반혼하기 이르렀으므로 함께 나아가 위로하였으나 결례를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林樂安 어른께서 산소 일을 주간하시어 바로 돌아오지 못하였겠기에 나아가 인사를 드리려 하였으나 산소에서 곧바로 귀가하셨다는 말을 듣고 또 미치지 못한 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낙막하게 되어 허탕치고 돌아오니 진실로 한탄만 절실할 뿐입니다. 弟(저)는 본래 변변치 못한 하나의 버릴 물건으로 실로 도덕이 있는 군자께서 직접 방문하시는 것을 감당하기에 부족한데 잘못 어른께서 찾아오심을 당하였으나 뵙지를 못하였고 지금 또 기회를 그르쳐서 마침내 仁兄의 거듭한 부탁을 저버렸으니 크게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직 빌건대 빨리 풀려나 환국하십시오. 갖추지 못하고 글을 올립니다. 정미 4월 8일 少弟 曺秉直 再拜”
 
83
“말이 앞뒤가 바뀌었습니다.154) 형의 댁에 근래 제절은 별탈은 없으나 다만 봄의 굶주림에 구제하여 살려냄이 매우 어려워 우려가 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입에 거미줄을 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집안 일로 지나치게 우려하지 마십시오. 弟는 늘 賢閤(귀하의 아내)에 대해 탐문하면 항상 온화한 안색으로 기쁘게 태연자약하시어 그 속마음의 근심을 밖에 드러내지 않으시니 더욱 감복합니다. 우리 兄께서 修身하며 齊家하는 것이 보통을 넘으시어 사람들의 말에 ‘이 남편이 있어 이 아내가 있다.’ 하니, 감축함이 어떠합니까? 이곳의 근년 형편은 봄비가 잦아서 농사 일이 시작되려 할 때에 농부를 위로할 만합니다만 3월 28일에 바람과 우박이 번갈아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재변 중에 포구에 연한 어살이 마침 魚物의 새로운 생산을 당하여 모두 파손되었습니다. 어부와 농부가 크게 실망하여 다시 바쁘게 꾸려 나가는 중입니다. 금번 勉菴 大監의 장사 발인이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장례에 모인 여러 선비들이 모두 바람과 우박에 빗질하며 머리감듯 하였습니다. 여론에 모두 말하기를 ‘대감께서 체포되신 날에 재변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또 이 재이를 장사지낼 때에 보게 되니 또한 명령한 바가 참담하다.’고 하였습니다. 살펴보건대 최면암 댁에 많은 선비들이 운집하여 加麻를 하고 전을 드리며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날도 또한 이와 같았는데 혹은 7~8백 리, 혹은 4~5백 리를 발을 싸매고 잇달아 왔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문집 간행을 의논하였는데 또 의연금이 많았고 본전을 늘려 위토 감 본전에 보충하였습니다. 弟는 겨우 4냥 돈을 주머니를 털어 기부하고 돌아오니 더욱 부끄럽고 얼굴이 뜨거울 뿐입니다. 尊座의 外從 金成玉이 우연히 병으로 몇 달 동안 위중하더니 3월 20일 이후에 갑자기 요절하였다고 합니다. 浦城 朴在根은 이미 지난 섣달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모두 참담한 바로서 대략 말씀드립니다.”
 
84
이 날은 지난해에 일본과 러시아가 대마도 바다에서 접전하여 일본이 승리한 날이다. 川上이 들어와 말하기를
 
85
“▣▣▣▣▣▣▣▣▣지금 일본의 대경축일이 되었습니다. 서울과 지방을 가릴 것 없이 남녀노소가 모두 즐겁게 노닐며 마시고 잔치합니다. 나는 공들과 嚴原 시가에 나가서 구경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고, 또 말하였다.
 
86
“일전에 鷄知에서 편지가 왔는데 공을 모임에 참여케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어찌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87
사양하고 가지 않겠다고 하였더니, 川上이,
 
88
“공 등과 풍물이나 한번 구경합니다.”
 
89
라고 하였다. 마침내 병정 두 명과 兵門 밖 협로로 나갔다. 인가에는 모두 太極紅旗를 꽂았다. 八幡神社 앞 마당에 이르자 마당 안에는 큰 기 하나를 세웠는데 세 갈래로 굵은 새끼줄로 묶었고 비늘처럼 차례로 기를 달아 오색이 서로 희롱하였다. 그 아래는 장막을 쳤고 그 안에는 풍악잡힌 기생이 늘어앉아서 혹은 풍금을 타며 혹은 북을 치며 혹은 피리를 불며 혹은 통소를 불었다. 앞에는 춤추는 기생 네 명이 나란히 서서 노래하며 춤추어 서로 부르고 화답하면서 연속으로 교대해 들어갔다. 손에 집은 도구와 몸에 걸친 의복이 홀연히 서로 바뀌었다 사방을 에워싸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하였다. 혹은 太極紅紙旗를 잡고 혹은 彩花를 잡고 혹은 박쥐 우산을 들었는데 또한 한번 볼 만한 것이었다. 조금 뒤에 太山文吉郞이 와서 인사를 하게 되고 각각 권연 한 봉씩 주었다. 또 下田順一郞과 高島英一 두 사람이 와서 川上에게 말하였다.
 
90
“약간의 술과 안주로 한국 사람을 대접하려 하는데 뜻에 어떠하오?”
 
91
川上은 장관의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여 장관에게 가서 말하고 돌아와 말하였다.
 
92
“저들을 정과 예로 대접하는 것이 좋겠소.”
 
93
川上이 돌아가고 2사람이 술 5병과 안주 한 접시를 가지고 와서 마시기를 권하였다. 각각 한 잔씩 받았는데 사양하여도 되지 않았고 혹은 2~3잔도 마셨다. 막 끝났는데 장관이 와서 말하였다.
 
94
“오늘은 뜻을 느긋이 하여 잘 노시어 객지 회포를 위로하시오.”
 
95
우리들은 턱으로 끄덕하고 다시 포구를 향하였는데 길 가에 인가는 좌우로 처마 모서리가 서로 닿았고 새끼 줄에는 채색이 달렸고 花紅旗는 바람에 나부껴 해를 희롱하였다. 시가를 두루 구경하고 太山文吉郞과 동행하여 따라갔다. 이 사람은 바로 지난 가을에 우리들이 살던 蠶桑室의 養蠶 교사였다. 그 집을 가보자고 요청하자 그대로 허락하여 당에 올라갔다. 그 주인 島雄莊介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그 그림자도 보지 못하였다. 돌아오면서 지난 가을 일을 생각하니 슬픈 감정이 절로 이르렀다. 차를 내와서 마시기를 마치자 작별하고 객지 처소로 돌아왔다. 川上이 웃으면서 한바탕 지나갔으니 특이한 예우였다.
 
 
96
17일 정축.
 
 
97
舍伯에게 올리는 편지를 썼는데 말하였다.
 
98
“봄이 다하고 여름이 이르러 매우 그립습니다. 이 때에 曺친구의 편지를 받고 대강 몸이 편안하시며 온 식솔이 별로 탈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道灣의 舍仲이 曺친구와 定山에 가서 선생 장례에 위문하였다고 하니 흠모되고 감격스럽습니다. 林어른은 뵙지 못한 채 귀가하여 끝내 계획한 바를 그르쳤습니다. 그러나 어찌 마음으로 한 것이겠습니까? 듣건대 포구에 연이은 어살이 바람으로 재앙이 되었다 하니 이 또한 포구 사람들의 불행입니다. 봄의 굶주림은 없을 수 없으나 보리 농사가 새 벼가 나올 때까지 댈 수 있겠습니까? 나머지는 갖추지 못하고 올립니다. 정미 4월 17일 舍弟 奭煥 再拜”
 
 
99
別錄
 
100
“朗洞 外從氏는 무슨 병마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요절하였으며 이와 같이 통탄스럽습니까? 생각컨대 內姑主께서 60세 노경에 이러한 참담함을 당하였으니 정리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무엇으로 형용하겠습니까? 그 집안이 쇠미하고 망했습니다. 亡兄으로 말하면 순수하고 지극히 온후한데 그 장수를 누리지 못하였으니 귀신은 또한 무슨 마음이며, 하늘은 어찌된 이치입니까? 절로 눈물만 날 뿐입니다. 같은 이웃에 朴在根도 세상을 버렸다고 하니 그 정세를 생각컨대 또한 매우 놀랍습니다. 의당 위문 편지를 해야 하는데 그 세태에 혹은 꺼리며 의아한 사단이 있을까 우려되므로 정지하여 감히 하지 못합니다.”
 
 
101
外從兄 弔章을 그 아우에게 부쳤는데 말하였다.
 
102
“예를 생략하고 말합니다.155) 德門(귀하의 집)이 불행하여 尊伯氏 兄主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니 이것이 무슨 일이며 이것이 무슨 변고입니까? 집안이 평소 청빈하며 텅 비었는데 장례 初終의 모든 일은 어떻게 치루셨으며 送葬의 절차는 어떻게 마련하셨습니까? 산소는 어느 곳에 정하였으며 五患156)은 면하셨습니까? 어진 이는 장수하며 현명한 이는 녹을 받는 것이 진실로 天理인데 지금 이와 같으니 하늘은 또한 믿기가 어려운가요? 우애가 더욱 높은 터에 割半157)하는 날에 생각컨대 응당 애통하고 시큼하여 손상을 받음이 많으실 것입니다. 어찌 견뎌 내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세월이 빠른데 부모를 모시면서 복을 입으신 몸이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숙모님의 노년에 참혹함이 정에 참지 못하시리니 기력은 어떠합니까? 그리고 賢弟가 곁에 있으면서 느긋이 비유하여 여생을 위로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內從]은 한번 섬에 들어온 이후로 구구하게 살아가면서 賢弟에게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아 다만 스스로 서운하던 중에 형님의 부음도 받지 못하고 지금 겨우 편지에 전해 듣고 먼 곳에서 애통함이 친형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마음은 비록 가고자 하나 몸이 어찌 할 수 없으니 통한이 어떠하겠습니까? 나머지는 바라건대 마음을 넓게 먹고 슬픔을 억제하여 목숨을 보전하십시오. 편지 예를 갖추지 못합니다. 정미 4월 17일 內從兄 文奭煥 謹狀”
 
103
이달 12일에 崔萬奉의 편지가 왔는데, 대강 형과 舍仲이 定山에 가서 위문한 것이었습니다. 16일에 또 편지를 받았는데 읽은 나머지 기뻐 뛰기를 3백 번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삼가 훈풍 속에 부모님을 모시는 몸이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았으나, 堂候158)가 중풍 기운으로 오래 편치 않다고 하시니 우려되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弟는 근래 상태가 예전보다는 좋으나 집안 일은 치지도외하고 싶으나 또한 관심되는 점입니다. 勉菴 先師 장례는 (이하 산실됨)
 
104
玉露凋傷楓樹林  玉露에 단풍나무 숲 시드니
105
巫山巫峽氣蕭森  무산 무협에 기운이 쓸쓸하구나
106
江間波浪兼天湧  강 속 파도는 하늘에 솟구치고
107
塞上風雲接地陰  변방 풍운은 땅에 닿아 흐릿하다
108
叢菊兩開他日淚  국화 떨기 두개 피어 뒷날 눈물 흘리고
109
孤舟一繫故園心  외로운 배 하나 매여 고향 그리는 마음이라
110
寒衣處處催刀尺  겨울 옷 장만 곳곳에 가위와 자를 자주 놀리고
111
白帝城高急暮砧159)  백제성 높은데 서둘러 다듬질하는 소리
112
花近高樓傷客心  꽃이 가까운 높은 누각에 나그네 마음 상하고
113
萬方多亂此登臨  만방에 난리가 많아 여기에 올랐다네
114
錦江春色來天地  금강의 봄빛은 천지에서 오고
115
玉壘浮雲變古今  옥루에 뜬 구름은 고금에 변하네
116
北極朝廷終不改  북극 같은 조정은 끝내 고치지 않고
117
西山寇盜莫相侵  서산에 도둑들은 서로 침해하지 말지라
118
可憐後主還祠廟  가련한 後主160)는 祠廟를 되돌리니
119
日暮聊爲梁父吟161)  해 저물녘에 梁父吟162)을 읊노라
120
風急天高猿嘯哀  바람 급하고 하늘 높은데 원숭이 울음 애달프고
121
渚晴沙白鳥飛迴  물가는 맑고 모래는 흰데 새가 날아 돈다네
122
無邊落木蕭蕭下  가이 없는 낙엽지는 나무는 우수수 떨어지고
123
不盡長江滾滾來  다하지 않는 장강은 콸콸 온다네
124
萬里悲秋常作客  만 리에 서글픈 가을 늘 나그네 되고
125
百年多病獨登臺  일생 병이 많은 채 이 대에 올랐네
126
艱難苦恨繁霜髭  가난에다 고생 흰 수염만 늘고
127
淹到新亭濁酒盃163)  문득 新亭164)에 이르러 탁주잔 기울이네
 
 
128
(이상 3수의 시는 일기 본문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임)
 
 
129
20일 경진.
 
 
130
申台鉉·李範健의 편지가 동봉되어 도착하였다. 範健의 아들은 鴻役의 일로 衛所에서 죽어, 그 편지 뜻이 매우 측은하였다. 台鉉의 편지는 “時事가 분분하다.”라고 하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회포를 읊는 절구 한 수를 지었다.
 
 
131
回頭故國獨傷心  고국으로 머리 돌리니 마음만 상하고
132
屈指興亡古與今  흥망을 손꼽아 보니 예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네
133
安得良材如管葛  어찌 관중과 제갈량과 같은 훌륭한 재목을 얻어
134
能令天下掃氛祲  천하로 하여금 나쁜 기운 쓸어내게 할까
 
 
135
21일 신사.
 
 
136
신병 2백 명이 군영에 들어오고 舊兵 2백 명이 군영에서 나간다고 한다. 그리하여 전에 얼굴을 알던 사람들이 대부분 떠나는 뜻을 고하고 갔다. 신병은 각각 肩章을 표시하였는데, 상등병은 별 셋을 더하였고, 中等은 별이 둘이고, 下等은 별이 하나였다. 대대장이 늘 신병에게 졸업장을 주었다.
 
137
柳濬根 伯氏 台根의 편지, 南奎振의 집안 편지가 일시에 도착하였다. 台根은 본래 홀아비로 살다가 근래에 첩을 얻었다고 한다. 이는 서울에서 생장하여 産物 수십 짐과 남자 종과 여자 종을 겸하고 있는 자여서 빈한을 견딜 수 없을 듯하여 애초 마음을 먹지 못하였다. 저쪽에서 스스로 사람을 보내어 요구하였으므로 우선 한 달 가까이 지냈는데, 과연 나쁜 옷과 나쁜 음식에 어려워하는 뜻이 있어서 이달 초에 내보냈다고 한다.
 
138
頭註: 奎振은 옷 보따리를 우편에 부쳤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139
22일 임오.
 
140
아침밥에 죽순나물이 올라왔는데, 그 맛이 담박하였다. 절구 한 수를 읊었다.
 
 
141
片片霜心雪意存  조각조각 서리와 눈에서도 나올 뜻을 가졌고
142
嘗來可謝此君恩  맛봄에 이 대나무165) 은혜를 감사할 만하네
143
莫謂當年調鼎味  당년에 솥에 조미한 맛을 말하지 말라
144
江潭春雨寄龍孫  강담 봄비에 龍孫166)을 기탁하노라
 
 
145
23일 계미.
 
 
146
소대장이 와서 방의 청결과 옷의 때를 살피고 갔다. 川上이 들어와서 말하기를,
 
147
“그 사이에 입은 솜옷은 본대에서 세탁하여 주었습니다. 그 接衣와 單衣는 각자 세탁합니다.”
 
148
라고 하였다.
 
149
앞 시내에 가서 세탁하고 돌아오니, 고단함을 견디지 못하겠다. 회포를 읊는 절구 한 수를 지었다.
 
 
150
臨水意如何  물에 임하니 뜻이 어떠한가
151
蒼苔白石多  푸른 이끼에 흰 돌도 많구나
152
滄湌非我曲  샘물을 먹음은 나의 마음이 아니니
153
淸濁屬誰歌  淸濁은 누구에게 부쳐 노래할까
 
 
154
4월 24일|| 갑신.
 
 
155
신입병이 맨손으로 교련하였다. 지난 겨울부터 우리들이 있는 곳에 지급한 솜 이불은 각각 네 건인데 본대에서 세탁해 준다고 하면서 싣고 가고, 다른 이불을 두 건씩 주어 그 사이에 추위를 막는 침구로 하게 한다고 한다.
 
156
서울에 머무는 申昇熙가 편지를 그의 사종질 輔均에게 부쳐왔는데 소대장이 와서 전하고 갔다.
 
 
157
25일 을유.
 
 
158
南奎振의 옷 보따리가 도착하여 그 집의 편지를 답장하여 보냈다.
 
 
159
26일 병술.
 
 
160
소대장이 편지 한 통을 전하였는데 바로 서울 서호의 姜暹·崔貞植·崔榮麟·榮鳳·榮鶴이 李侙에게 위로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소대장이 펼쳐보고 갔다. 신병 1백여 명이 또 군영에 들어와 조련하였다. 오후에 산에 올라가서 志岐島를 바라보았다. 섬은 정남쪽 해상에 있는데 이 섬에도 경비영이 있다고 한다. 대마도에서 맑으면 볼 수 있지만 흐리면 볼 수 없었다. 동남에서 서남까지 다만 이 섬뿐이고 그 이외는 물결이 하늘에 닿아 출렁거릴 뿐이었다. 한참만에야 돌아왔다. 李侙이 西湖 여러 사람에게 답서를 하였다.
 
 
161
27일 정해.
 
 
162
頭註; 金命九는 公州 見山에 살고, 鄭元謨·明濟庸은 靑陽 佳坡에 살고, 鞠忠植은 靑陽 德橋에 살았다.
 
163
鄭元謨·鞠忠植·明濟庸이 모두 위로 편지를 李侙에게 하였다. 金命九도 두번째 편지가 있었는데 明濟庸과 鞠忠植은 도합 10냥 돈을 貨標167)로 보내왔다. 申輔均이 서울 中署洞 申副領 집에 머무는 그의 사종숙 昇熙의 처소에 답서를 썼다. 일전에 어느 병사가 있었는데 한국어를 대략 알아서 물어 와서 함께 대화하다가 내가 묻기를,
 
164
“일본에도 七書가 있습니까?”
 
165
“있습니다.”
 
166
“그러면 나를 위하여 중용·대학·논어·맹자 사서를 사올 길이 있습니까? 값은 마땅히 지급하겠습니다.”
 
167
“어렵지 않습니다.”
 
168
“만약 사 온다면 가는 글씨에 작은 책이겠지요.”
 
169
“그렇게 해야지요.”
 
170
오늘에 와서 사서를 사 왔는데 2책으로 된 것이었다. 대략 수 편을 살펴보니 혹은 글자가 빠지고 혹은 글자가 틀렸고 혹은 大全168)의 2장과 3~4장이 1장으로 연속되었고, 章句는 글귀가 모두 일본어로 풀이되어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부탁하여 사 온 것이니,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물릴 수는 없는 것이다. 우선 상자 안에 받아 두고 그 값을 물으니 말하였다.
 
171
“이 책은 大阪 친구에게 부탁하여 오게 된 것입니다. 책이 먼저 오고 편지가 아직 이르지 않았으므로, 그 값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값은 반드시 헐할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값이 얼마인지 통보가 있을 것이니 이렇게 아십시오.”
 
 
172
28일 무자.
 
 
173
川上이 말하였다.
 
174
“조선에는 듣건대 과거법이 있다는데 이것은 무슨 술법인가요?”
 
175
“이 술법을 시험보여 문학과 재주가 있는 선비를 뽑습니다. 일본은 무슨 방도를 써서 훌륭한 재목을 선발합니까?”
 
176
“일본은 3년 걸러 황제가 국내를 巡狩하시어 원로와 효자·열부를 친히 묻고 찬양하여 상을 줍니다. 혹은 돈과 곡식을 주어 노인을 봉양케 하며, 혹은 효자를 조정에 등용하기도 하며, 혹은 지조있는 부녀자를 포상하여 그 이름을 썩지169) 않게 합니다. 만일 황제가 유고이면 황태자가 대행합니다. 만약 대마도처럼 뚝 떨어진 섬이면 친하며 믿을 만한 侍從官을 파견하여 묻기를 전례대로 합니다. 금년 2월에 황태자가 순회하면서 물으셨는데 혹은 길이 험한 산곡에서는 태자가 도보로 10여 리나 갔고 백성들이 대부분 노인을 업고 어린이를 데리고 가서 들었습니다.”
 
177
“우리나라도 이와 같습니다마는 황제는 경기 이내를 넘어가지 않으므로, 정직한 신하를 보내어 민간의 효자·열녀와 간활한 자와 병든 자를 탐문하여 위로 조정에 보고합니다. 그리고 작은 일은 스스로 판단하여 시행하고, 만약 포상과 징계할 일로서 大體에 관련되는 것이면 조정에서 처분을 어떻게 합니다.”
 
 
178
29일 기축.
 
 
179
병정을 대동하여 뒷산에서 바람을 쐬었다. 작은 기선 두 척이 있었는데 서로 순회하였다. 병정에게 물으니 巡船이라고 하였다.
 
 
180
30일 경인.
 
 
181
小倉의 陸軍經理部長이 軍器와 군복[戎服]을 검열하기 위하여 이 부대에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감금실에 들어와서 우리들에게 묻고서 갔다.
 
 

 
182
각주)
 
183
148)  대마경비대사령관 ‘川村益直’의 오기이다.
184
149)  「孟子」(離婁 下)의 ‘原泉混混 不舍晝夜’에서 유래한 것이다.
185
150)  노래 이름. 안개가 낀 물결에서 낚시하는 늙은이의 노래라는 뜻이다. 당나라 張志和는 아버지가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강호에 은둔하여 烟波釣徒라고 자칭하면서 낚시를 하였다.
186
151)  머리가 넓고 얇은 숟가락.
187
152)  원문 ‘簣土’는 「論語」(子罕)의 “비유컨대 산을 만드는 데에 한 삼태기만큼 이루지 못하여 중지함도 내가 중지함이고 비유컨대 평지를 만드는 데에 비록 한 삼태기만큼 쏟아 부어 나아감도 내가 나아감이다.(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에서 줄여 쓴 것이다.
188
153)  시원치 않은 음식을 먹어도 모든 일을 할 수 있음을 말한다. 「小學」(善行)에 “사람이 나물 뿌리만 씹어도 모든 일을 할 수 있다.(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라고 하였다.
189
154)  원문에 이 편지의 작자를 밝히지 않았다.
190
155)  원문 ‘省禮言’은 상제에게 편지를 쓸 때 편지 앞부분의 날씨 등 인사말을 생략하고 쓰는 투식어이다.
191
156)  묏자리를 잡을 때 피해야 할 다섯 곳. 길이 날 자리, 성곽이 생길 자리, 개울이 될 자리, 세력가가 탐낼 자리, 농지가 될 자리를 말한다. 일설에 마을이 될 자리, 도자기를 구울 자리도 포함된다고 한다.
192
157)  반이 잘린다는 뜻으로 형제의 죽음을 말한다.
193
158)  어버이의 안부를 높여 이르는 말.
194
159)  이 시는 杜甫의 「秋興」을 전재한 것이다.
195
160)  유비의 아들, 곧 蜀의 마지막 황제 劉禪을 말한다.
196
161)  이 시는 杜甫의 「登樓」를 전재한 것이다.
197
162)  노래 이름. 사람이 죽어서 梁父山에 묻히는 것을 말하였다. 輓歌. 蜀의 諸葛亮이 지었다고 한다. ‘梁甫吟’으로도 쓴다.
198
163)  이 시는 杜甫의 「登高」을 전재한 것이다.
199
164)  국가 재건을 다짐했던 정자 이름. 晉나라의 명사들이 新亭에 모였을 때, 周顗가 모인 자리 속에서 국운이 쇠퇴하는 것을 탄식하여 “풍경은 다르지 않으나 눈을 들면 산하에 다름이 있다.(風景不殊 擧目有山河之異)”라고 하자, 모두 서로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때 王導는 정색을 하며 힘을 다해 재건을 해야 한다고 나무랐다.(「晉書」 王導傳)
200
165)  원문의 ‘此君’은 대나무를 말한다. 王徽之는 빈 집에 살면서 대를 심었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으니 휘지는 시를 읊으면서 대를 가리키면서 하루라도 此君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에 대를 차군이라고 불렀다.(「晉書」 王徽之傳)
201
166)  竹筍의 다른 이름.
202
167)  관아에서 상인에게 일정한 물건을 팔 수 있도록 허가하여 내어 준 증표.
203
168)  四書集注大全. 永樂大全이라고도 한다.
204
169)  원문의 ‘杇’는 ‘朽’의 오자로 보인다.
【원문】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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