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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
◇ 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5월) ◇
카탈로그   목차 (총 : 12권)     이전 5권 다음
문석환 의사
1
馬 島 日 記
 
 
2
1907년 5월
 
 
3
5월 1일 신묘.
 
 
4
듣건대 지금 1개월 이내에 장마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응당 이는 이 나라 觀象所에서 말한 것이겠다.
 
 
5
2일 임진.
 
 
6
川上170)이 말하기를,
 
7
“일본이 개화 이전에는 문학하는 선비가 많았으나, 개화 이후에는 이익만 힘씁니다. 연소자 중에 여망이 있는 자를 보지 못하고 오직 연로한 사람에게 古風이 많습니다만 해마다 연로자가 죽으면 노성한 사람을 보기가 드뭅니다. 대마도에도 또한 한문학자가 있으니 종일 단정히 앉아 있고 잘 때는 옷을 벗으며 낮에는 눕지 않습니다. 오직 책만 보는 데에 힘써서 그 이외의 물욕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혹은 하루 이틀 밥을 짓지 못하는 근심이 있으나 얼굴에 나타내지 않아 남이 알도록 하지 않으며 다만 이치와 천명만 믿을 뿐 요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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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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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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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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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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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나열하여 편지를 定山 長久洞에 부쳤는데 장사 이전에 이미 편지를 부쳤었다. 지금껏 소식 한 글자가 없으므로 이전 편지가 없어졌는지 알지 못하여 다시 편지를 부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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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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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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巳時 무렵에 林川郡 仙湄 朴寅和의 편지, 朴甲俊ㆍ崔舜九 萬奉ㆍ朴分吉ㆍ金寶物ㆍ吳逸根字廣吾ㆍ李乙僊의 편지가 왔다. 寅和의 아들 昌祚가 나를 위하여 稧에 참여하고, 昌祚의 族弟 甲俊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 지난달 29일은 바로 봄 講信171)을 하는 날이었다. 이 날 우리 집에서 온 7통 편지는 모두 萬奉이 군산에 가서 부친 것이었고, 紙貨 20냥이 아울러 이르렀는데, 이 稧 돈에서 갈라서 보낸 것이었다. 眉湖의 아들 台鈆이 그의 아버지에게 부치는 편지가 동시에 왔다. 오후에 川上이 밖에 나가서 바람을 쏘이자고 하였다. 그가 가는대로 따라 嚴原 서편 泰山 아래에 이르자 오래된 성곽이 있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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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에 쌓은 것이오?”
 
17
“明治 이전에 對馬郡主가 다스리던 관부인데, 지금은 묵은 폐허로써 모두 농부가 경작하는 농지가 되었습니다.”
 
18
그 오른편에는 수십 칸이나 되는 집이 있는데 官舍 모양과 같았다. 三門이 있으나 모두 닫혔다. 오른편 작은 문으로 들어가자 뜰에는 金鐵床 4개가 있어서 물었다.
 
19
“무슨 물건이오?”
 
20
川上이 말하였다.
 
21
“朝鮮國王이 對馬郡主의 죽은 뒤에 하사한 것입니다.”
 
22
생각컨대 우리나라 世宗 이후의 일이겠는데 우리나라 국사에 실린 것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金蛇床이라고 할 것이지만 무슨 연유로 이러한 이름이 되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 상의 모양은 4개의 다리에 높이는 거의 4자쯤 되겠고 길이는 거의 한 길 남짓 하였고 넓이는 거의 3자쯤이었으며, 위와 아래에는 가장자리 뿔이 있었고 좌우에는 뿔이 없었다. 이것은 이전에 도금을 하였겠으나 지금은 세월이 오래되어 비바람에 닳아서 다만 쇠 빛일 뿐이다. 일본의 법에는 분묘 앞에 이 상을 놓고 제물을 차리는데 평민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후정에 들어가자 스님 두 명이 마주하여 바둑을 두고 있었다. 마루 위에는 괴상한 소나무 3~4화분이 있었다. 연못 한 곳에는 잉어 3마리가 있었는데 그 크기가 한 자 남짓이었고 의기양양하게 서로 즐겼다. 연못 위에는 꽃이 피었고 작은 돌다리가 있어 겨우 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었다. 위에는 빽빽한 나무숲이고 산악이 사방을 에워싸서 진실로 바다 속의 기이한 절경이었다. 북편의 작은 문으로 나와서는 산허리의 층계길[棧道]을 올려다보니 돌이 층층으로 계단을 이루었고 좌우로 작은 석탑이 서로 마주하여 서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갔는데 그 계단 수는 1백 30개 남짓이라고 한다. 그 위에도 4~5층 돌 계단이 있는데 모두 對馬島主와 그 막료들의 분묘였다. 분묘는 平墳이었고 분묘 위에 石塔이 놓였고 석탑 위에는 ‘大居士’라는 세 글자가 새겨졌고 또 성명도 새겨졌다. 분묘 밖에는 돌로 문을 만들었는데 문은 여닫을 수 있었다. 돌로 난간을 만들었는데 이와 같은 것이 10여 곳이었다. 또 한 편에는 큰 비석이 분묘 위에 섰는데 연월과 干支와 누구의 무덤이라고 하였다. 좌우에 杉나무가 굵은 것은 3~4아름이었고, 작은 것은 기둥만 하거나 서까래만 하여, 초목이 매우 번성하였다. 동남의 바다 색깔이 문에 통하여 열렸는데 오가는 돛단배를 내려다보았다. 비록 가이 없는 큰 바다이지만 감싸 안은 속에 있어 진실로 일색의 왕성한 기운이 이 곳에 모여 뭉쳐있는 것을 깨닫겠다. 그 뒷산은 대마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현금 경비영과 비교하면 백배나 넘는데 사람의 말을 기다릴 것이 없었다. 현금 경비영은 기운이 새어나갈까 우려되었다. 그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얻었으니 매우 애석하였다. 병정이 시간 한도가 지났음으로 해서 돌아가자고 하였다. 왕래하는 데에는 모두 嚴原 시가를 따랐는데 집 모양이 조금 큰 것은 모두 잉어 기를 꽂았으나 기폭에 잉어를 그린 것이 아니라 기의 형상이 잉어의 모양과 같았다. 풍속에서 무엇을 숭상하여 이것을 꽂는가? 혹은 쑥잎을 문 모서리와 처마 끝에 매달았으니, 이것은 옛날에 쑥 인형을 문에 매달은 예172)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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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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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註: 이 글은 7일에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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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伯에게 올리는 답장을 썼고, 여러 사람이 보내는 편지를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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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伯에게 쓴 편지에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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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에 보내주신 편지는 지금 단오날에 받아 감격과 기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 때에 건강이 편안하시고 대소 절도가 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안심이 되어 멀리서 제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저[舍弟]는 객지 상황이 그대로이고 오직 책을 보거나 글씨를 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낼 뿐입니다. 同硯173)끼리 稧를 맺는다는 것은 이미 말씀하신 것인데 이번에 講信에서 잘라 보낸 돈 20緡은 감사함이 크면서 부끄러움이 또한 이어서 일어납니다. 어찌 동연의 여러분들을 위하여 한번 축하하지 않을 것입니까? 농사 형편이 한창 번성한데 봄비가 자주 내려 하늘이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이 세상에 모두 함몰시키려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풍년을 크게 비는 것은 오직 이뿐입니다. 나머지는 갖추지 못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정미 5월[午月] 7일 舍弟 奭煥 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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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萬奉ㆍ朴分吉에게 쓴 답장에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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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리 杭州를 옛날에는 天上의 만 리인가 의아히 여겼네. 대마도를 나는 지척인가 하였는데 3년에 편지 한 통도 옛사람이 어려워하였는데, 한 달에 두번 편지를 하니, 지금 얼마나 쉬운 것인가? 옛사람으로 하여금 지금 세상의 우편국을 보게 한다면 반드시 천상만리 3년에 어렵다는 의심을 두지 않을 것이네. 편지에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정분 一書를 받으니 멀리서의 감사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부모님을 모시는 건강이 편안하고 과업이 날로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찬양을 말로 다하지 못하겠네. 그러나 보내준 편지를 읽어보니, 말을 구성할 즈음에 억양이 너무 지나치네. 성공 이후에는 어찌 불가하랴마는 절대로 초학자의 도가 아니네. 이는 멀리서 꾸짖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공부 진취에 감동하고 그대들의 미치지 못함을 보충함이니 이해하게. 공부는 언어와 문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용감히 성품의 편벽됨을 극복하며 자기의 마음을 돈독히 바로잡아 글자마다 연구하며 문장마다 이해하여, 알면 실천하고 실천하여 잊지 않아 축적하여 덕성을 완성하는 것이니 이를 군자라고 하네. 군자가 어찌 별다른 사람이겠는가? 이는 내가 근일에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므로 역시 언급하였을 뿐이네. 나머지는 이만 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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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甲俊에게 쓴 편지에 말하였다.
 
31
“비록 편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정분은 응당 변함이 없을 것인데, 하물며 편지를 받고는 헤아릴 수 없이 기뻐 뛸 듯함이겠습니까? 편지를 몇차례 읽고는 감사함이 크고 부끄러움이 깊습니다. 이어서 具慶174)하시는 생활이 즐겁고 또 복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멀리 제 마음에 부합되니 위로됨이 또한 어떠합니까? 硯損175)은 옛날 내가〈진전이 없이〉지금 나이어서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나처럼 변변치 못한 사람 때문에 계를 결성하여 멀리 우리 친구들을 수고롭게 하니 마음에 기쁘면서 얼굴이 붉어집니다. 이미 후한 뜻을 받았으니 어찌 보답함이 없겠습니까? 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히 옛 도리를 본받는 것이니 기꺼이 들어주시겠습니까? 계는 그 마음을 맺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학문을 하여 옛 것을 익히고 능히 새롭게 하면 비록 천년 뒤라도 그 사람과 맺어지거늘 하물며 같은 세상의 저와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만약 진실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계는 이름만 있고 헛것으로 귀결됩니다. 오직 친구님은 실천을 하여 능히 임금의 뜻을 따라, 멀리 있는 자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어찌 참으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32
金寶物에게 쓴 답장에 말하였다.
 
33
“편지가 없을 때는 내가 생각함이 바로 간절하다가 편지를 보는 날에 내 마음이 바로 쏠려 갔다네. 편지 뒤에 서운함은 도무지 마나보는 것만 못하네. 아득한 내 생각 어느 때나 그칠 수 있겠는가? 근래 상황이 편안하시고 重省(조부모 모시는 귀하)이 더없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아 매우 위로됨을 어찌 다 일컫겠는가? 硏末(硯末)은 닭장 같은 곳에서 守株待兎176)하니 다른 것을 어찌 말하겠는가? 일전에 직접 쓴 편지를 보내라고 부탁하였는데 지금 온 편지를 보니 아마 직접 쓴 것이 아닌 듯하네. 형세가 혹은 촉박하더라도 마땅히 직접 쓴 편지로 멀리 있는 사람 얼굴을 대신해야 하네. 또 그대 공부를 그르치지 말기를 바라고 바라네. 뿌리가 굳으면 잎이 무성한 것은 이치라네. 마땅히 옛사람이 벽을 뚫어 등불 빛을 받아 공부하고177) 절구공이 돌을 갈아 바늘을 만드는 공부178)를 본받아 그 기초를 세우면 德業의 아름다움이 어찌 지금에 명성이 나지 않겠습니까? 소홀히 하지 마시오. 나머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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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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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사발 8개를 우리들에게 새로 지급하여 아침과 저녁 식사에 이바지하게 하였다. 이것은 小倉 경리부장이 와서 보고 간 뒤에 본대로 하여금 지급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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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무술.
 
 
37
川上이 次章 수십 개를 가지고 왔는데 살펴보니, 이것은 조선에 있을 때에 여러 곳에서 받은 직임을 받고 부임하며 사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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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기해.
 
 
39
萬國輿地圖를 사와서 펼쳐보니, 국명과 지명은 모두 일본 언문으로 써서 한문은 10분의 1에 불과하였다. 또 작은 폭에 심하게 풀을 붙여 형세를 살피기가 어려워서 물리고 다른 본으로 바꾸라고 하였다.
 
 
40
10일 경자.
 
 
41
軍醫와 大隊長이 와서 南奎振의 눈병과 柳濬根의 체증을 살피고 갔다. 조금 뒤에 약을 보내 와서 각각 그 병을 시험하였다. 오후에 고용 여인 2명이 와서 監禁室에 들어와 마당 풀을 뽑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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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신축.
 
 
43
통역이 우리들의 이불과 위아래 홑이불을 빨자고 청하였는데 비누는 부대에서 지급하였다. 동쪽 시내에 이르렀는데 비가 온 뒤에 물이 불어서 철철 흐르는 소리는 들을 만하였다 ‘淸流’로 절구 한 수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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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處無聲急處聲  평평한 곳에는 소리가 없고 급경사에 소리 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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險夷隨處見心情  험하고 편편한 곳에 따라 심정을 보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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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流日夜知何事  긴 흐름 밤낮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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應入黃河待一淸  응당 황하로 들어 한번 맑아짐179)을 기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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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임인.
 
 
49
본대에서 솜이불 두 건씩 우리들에게 지급하였는데 바로 전날 세탁한 것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날 지급한 2건과 홑이불 2건을 아우르면 합하여 6건이 되어서 이불로 할 수 있고 요로 할 수 있다. 지금은 일기가 매우 온화하여 솜이불 셋과 홑이불 하나로 아래의 요로 하고, 솜이불 하나와 홑이불 하나로 위의 요로 하였다. 여기 풍속은 온돌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이 몇 물건을 사용하면 겨울에는 오히려 부족하지만 지금은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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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을미.
 
 
51
雲樵는 내가 스스로 붙인 호이다. 愼懼堂 李侙이 나를 위하여 序를 써 주었는데 말하였다.
 
52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하늘의 조화이다. 처음에는 매우 은미하다가 나중에는 크게 드러난다. 크고 작은 것에 통하고 앞과 뒤를 포괄하여 하나도 틀림이 없다. 진실로 본디 덕이 굳어 천지와 합치되는 자가 아니면 그 누가 그 오묘함을 헤아릴 수 있는가? 이는 진실로 범용한 초학자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곤궁 노력하여 알거나 배워서 알거나 한 자도 성공하게 되면 결과는 매일반이니, 또한 퇴보적으로 스스로 한계를 그어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능히 가까운 데에서 비유를 취하는 것이 학문의 방법이다. 물건에 비유하면 오직 구름일 것이다. 구름이란 물건은 마음도 없고 모양도 없으나 처음 한 점이 생겨서는 희미하게 없는 듯하지만 마침내는 이어지며 성대하여 푸른 하늘을 가득 막아 그치지 않는다. 그것이 거두어지게 되어서는 확 트여 한 점 흔적도 없으니, 이른바 처음에는 하나이고 중간에는 만 가지이고 끝에는 하나라는 것이다.180) 여기에서 조화의 오묘함을 헤아릴 수 있다. 사람이 능히 體認하여 이 오묘함을 마음의 갖춘 것에 터득하면 그 신비한 덕이 응결된다. 발동하지 않아서는 고요히 작동하지 않다가 사물이 오면 호응한다. 천하의 이치를 感通하고 일이 끝나면 고요히 자취가 없으니, 宮室의 미려, 公侯의 존귀, 고기음식[蒭豢]의 봉양, 훌륭한 옷[輕煖]의 착복, 侍女 수백 명이라도 동요시키기에 부족하고,〈사형 도구인〉칼ㆍ톱ㆍ가마솥이라도 역시 겁주기에 부족하다.181) 평탄하고 넓어서 평소 행의를 어기지 않는다. 세상에 혹은 여기에 뜻을 둔 이가 있을까? 雲樵라는 사람은 흰 구름 낀 산에서 나무하다가 스스로 雲樵라고 호를 하면서 저 구름의 헤아리지 못할 것을 추구하고 저 조화로운 하늘을 궁극으로 하려 하니, 이가 그 사람인가? 雲樵는 누구를 말하는가? 庇仁의 文奭煥 씨이다. 序를 쓰는 자는 愼惧堂 李侙이다.”
 
53
藍浦 花汀에 사는 崔象圭는 참봉 崔相集 씨의 族孫이다. 편지를 참봉 어른께 부쳤는데 그 일족 崔燉赫과 돈을 합쳐 10緡燉赫ㆍ象圭 각 5냥 紙票를 편지 봉투에 넣어서 보냈다. 상등위병이 청하였다.
 
54
“萬松院 근처에서 바람을 쐬는 것이 어떻습니까? 주번사관에게 허가를 받았습니다.”
 
55
점심밥을 먹은 뒤에 따라 나섰다. 嚴原 시가에서 바닷가를 따라 남쪽으로 올라갔는데 층층 돌층계 위에 하나의 큰 소나무가 있어서 뜰 담을 두루 덮었다. 안에는 寺院이 있었는데 額楣에는 ‘寂照院’이라고 하였다. 바다에 임한 맨 꼭대기에서 바다 어구를 굽어보니, 바로 嚴原 우편 산이 물 어귀를 돌아 안았다. 그리고 동서북은 모두 높은 산이 안아 호위하였고 남쪽만 바다 어구로 통하여 끝없는 데에 닿았다. 기선이 날마다 다니며 머무는 것이 마치 문 뜰에서 살펴보는 것과 같았다. 堂室 안에 들어가자 또 門楣에 ‘天蓮社’라는 편액을 달았다. 좌우 몇 곳에는 현판에 시구가 있었고, 방의 한 가운데에는 불상이 있었으며, 좌우에는 綵花가 많이 꽂혀 있었다. 앞에는 香燭卓子가 나열되어 있었고 양편 탁자 위에는 金綵蓮花가 꽂혀 있었다. 배회하는 사이에 노승이 어깨 벗은 袈裟 차림으로 부처 앞에 무릎 꿇고 향촉에 불을 붙이고 종을 치고 불경을 읽으니, 閑中의 世界라고 말할 만하였다. 병정이 다른 곳을 구경하자고 청하여 八幡宮으로 돌아 이르니, 熟石182)으로 계단을 만들고 층 사이는 반걸음쯤이었다. 좌우로 빽빽하게 사방에 돌기둥이 섰는데 기둥은 작고 큰 것이 있었다. 가로로 돌 들보를 꿰고 나무 기둥으로 꿰었고 작은 기둥으로 눌렀다. 칸칸이 서로 균일하였고 층층이 서로 연이었는데 마치 계단 모양처럼 높고 낮았다. 기둥 면에는 모두 사람 성명과 재화의 납입한 것을 새겼는데 큰 기둥은 30원이고 작은 기둥은 15원이었다. 생각컨대 이는 크고 작은 섬의 백성들이 각각 公廨에 이바지 한 것을 받들어 표한 것이었다. 문 안에 들어가자 石碑 10여개가 서 있는데 비석 표면에는 혹 3백 원이라 새기고 혹 2백 원이라 새기고 혹 1백 원이라 새기고 사람의 성명을 새겼다. 이것은 八幡宮을 지을 때에 또한 재물을 납입하며 비용을 보조한 사람이다. 八幡宮의 마당에는 鐵馬가 서 있는데 한 마리는 마치 활동하는 듯하였다. 궁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는 그림판이 많이 걸려 있었다. 正宮은 문을 잠가서 들어가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저번에 말한 바 日神武天皇이 三韓을 침략할 때 이 섬에 머물렀으므로, 이 八幡을 지어서 지금까지 기념하는 것이다.
 
 
56
頭註:183)
57
登臨絶頂俯千尋  절정에 올라 천 길을 굽어보며
58
爲遣閑愁聊一吟  시름을 보내느라 시 한 수 읊는다네
59
古寺坐時如佛夢  오래된 절에 앉았을 때는 부처 꿈을 꾸는 듯
60
孤舟歸處憶鄕心  배 한 척 돌아가는 곳에 고향 생각 나누나
61
壁生畵菊經秋冷  벽에는 그림 국화 피어나 가을을 지내 차갑고
62
庭久靑松滿地陰  뜰에는 푸른 소나무 늙어 땅에 가득 그늘지네
63
一聲鐘磬催歸客  종 경쇠 한 소리는 돌아갈 나그네 재촉하는데
64
惟見纖雲繞翠岑  오직 실구름만 푸른 봉우리를 맴도는 것 보네
 
 
65
14일 갑진.
 
 
66
일본지도 한 부를 사 왔는데 값이 25전이었다. 지도는 매우 자세하였으나 세밀함이 너무 지나쳐서 다 고찰할 수가 없었다.
 
 
67
15일 을사.
 
 
68
일본 육군대신이 여러 곳을 유람하여 만주에 갔다가 돌아서 한국 서울에 이르고, 방향을 바꾸어 함경도 원산 및 경상도 부산을 돌아보고, 이 달 18일 대마도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는 바로 일본으로 들어가는 길이어서 이 섬을 지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69
16일 을미.
 
 
70
회포를 읊는 절구 한 수를 지었다.
 
71
黃梅時節兩收初  황매 익는 시절에 비가 처음 걷혔는데
72
兩載寥寥馬島廬  두 해나 쓸쓸히 대마도 집에 있었네
73
遊鯤若化神鵬志  노니는 고니가 만약 붕새의 뜻으로 변화한다면
74
海北溟南咫尺虛  바다 북쪽 바다 남쪽 바다가 지척되어 텅 비우리
 
 
75
17일 을미.
 
 
76
일전에 부대 병정이 와서 감금실에 거처했던 자들이 모두 본대 안으로 옮겨간다고 하고 군장을 꾸려 나갔다. 아마 육군대신이 이 섬에 온다고 한 것 때문이겠고, 혹은 꾸짖음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리라. 감금실을 지은 것은 우리들 때문이었는데 간간이 병정을 여기에 나누어 놓는 것은 본부의 방에 다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잠시 편리한대로 해서 그러한 것이다.
 
 
77
18일 무신.
 
 
78
일본 육군대신은 오지 않았다. 石田이 沙糠菓子 한 봉지를 보내어 나누어 먹게 하였다. 그 맛이 깨끗하며 달았다. 본대에서 때묻은 옷을 세탁하고서 와서 주었다.
 
 
79
19일 기유.
 
 
80
川上이 말하였다.
 
81
“명일은 내가 다시 蠶桑室 앞 憲兵廳 곁으로 이동하는데, 모레는 공들과 함께 우리 처소에서 외출하여 잠시 소요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82
“그리하겠소.”
 
 
83
20일 경술.
 
 
84
내가 靜觀亭과 바둑을 둘 때에 소대장이 주번으로 왔다가 보고 서서 구경하기를 조금 하다가 씽긋 웃고 갔다.
 
 
85
21일 신해.
 
 
86
川上이 밖에서 운동을 하자고 청하였는데, 세 사람은 전날 실컷 구경을 했기 때문에 나가지 않았고 다섯 사람이 川上과 병정 두 사람을 대동하여 나가서 동편 바다 어구에 앉았다가 한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절구 한 수를 읊었다.
 
87
林雨初晴穿樹回  숲에 비 막 개여 나무 사이를 뚫고 돌아와서
88
危臨斷岸踏靑苔  깎아지른 언덕에 높이 임하여 푸른 이끼를 밟네
89
松遮日色留人坐  소나무가 햇빛을 막아 사람이 머물러 앉았는데
90
風送漁舟次第來  바람이 고기잡이 배를 보내어 차례로 오는구나
 
 
91
輔均의 아들 台鉉이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올렸다. 부산 寶水町의 中島高전날 이 부대 병사로서 우리에게 통역하였다가 부산에 있으면서그의 부모가 한국 부산에 있었으므로 임기를 마치고 군대에서 은퇴하고 이 곳에 있었다 편지를 우리들에게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그의 말 뜻 속에는 이별한 뒤에 한 달 지난 것이 千秋와 같은 감이 든다고 하였다. 한 구절이 사람을 상상할 수 있게 하였고, 그 외 말의 뜻도 모두 돌아보아 생각하는 것이었다.
 
 
92
22일 임자.
 
 
93
輔均이 그의 아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본대 軍曹가 매일 석양에 우리들이 사용할 숯을 창고에서 꺼내어 지급하였다.
 
94
만국지도ㆍ청국지도ㆍ조선지도 세 부를 사서 우리에게 주라는 뜻으로 川上에게 말하였다. 川上이 아침에 들어와 말하였다.
 
95
“이 섬에는 가게가 없으므로 가게 사람에게 부탁하여 엽서로 大阪에 기별하였는데 각국 지도는 이미 가격을 정하여 신문 중에 많이 실었습니다. 값은 60錢이고 세금이 3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값은 ▣▣를 이미 부쳐 주었습니다. 7일을 기한하면 와서 이를 것입니다. 엽서에 말하기를 ‘즉시 대마도 한인감금소로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오면 즉시 본부에서 여기로 들여옵니다.”
 
 
96
23일 184) 계유.
 
 
97
병정이 와서 편지 하나를 전하였는데, 공주 半灘面 見山에 사는 참봉 金大淵이 위로 편지를 李侙에게 보냈고 金命九도 편지가 있는 것을 동봉하였다. 지난달 그믐께에 川上이 말하기를,
 
98
“근래 밤에 모기가 없습니까? 만약 있으면 모기장을 요청하겠습니다. 내가 본부에 이야기하여 주겠습니다.”
 
99
하였는데, 말하기를,
 
100
“아직 모기가 없습니다.”
 
101
하였었다. 지금에 와서는 모기가 점점 많아졌으므로 川上에게 말하였다. 川上이 본부에 말을 하니 부관이 말하기를,
 
102
“열기가 점점 혹독한데 사람들이 많고 방이 좁으면185) 불편한 바가 있다. 지금부터 방 하나에 두 사람씩 나누어 거처하여 안온하고 상쾌하게 하라. 모기장을 방 하나에 1건씩 지급한다.”
 
103
라고 하였다. 나는 眉湖와 서편 제3칸방전의 거처는 제4칸방에 함께 거처하였다. 전에는 8명이 두 개 방에 나누어 거처하였는데 지금은 8명이 네 개 방에 나누어 거처하였다. 본대에서 새로 거처하는 두 개 방에 각각 화로 하나, 등불 하나, 부젓가락 하나, 숯통 하나, 먼지통 하나, 쇠쟁반火爐臺임 하나, 침 뱉는 병 하나, 침 뱉는 병 받침대 하나, 차 쟁반 하나, 차 종지 하나, 먼지털이 하나를 지급하였다.
 
 
104
24일 갑인.
 
 
105
군의 藤戶가 종이를 가지고 와서 글씨를 한번 써달라고 하므로 사양해도 안 되어 마침내 ‘人與天道 混合無間’이라는 4자 1구와, ‘淡泊以明志 寧靜以致遠 功深於必世 化期於百年’이라는 5자 2구를 써서 주었다. 또 川上이 남의 말을 대신하여 나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왔으므로, ‘審義理見是非 務德容隨窮達’이라는 6자 1구, ‘余所樂者江湖也 客亦知夫水與月乎’라는 7자 1구, ‘西塞山前白鷺飛 桃花流水鱖魚肥 靑篛笠綠簑衣 斜風細雨不須歸’라는 절구 1수, ‘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已復禮 久而誠矣’라는 心箴 1편을 써서 주었다.
 
106
각 방의 문 위에는 칠판을 걸어 채색 먹으로 성명을 써서 누구누구의 거처라는 것을 보였다. 본대에서 푸른 무명베 모기장 4건을 보내와서 한 방에 한 건씩 지급하였다.
 
107
석양에 소대장이 편지 하나를 가져왔는데 바로 崔萬奉ㆍ朴分吉ㆍ金寶物 등이 부친 것이었고, 여름 옷 한 벌과 버선 세 켤레를 군산항에 와서 부쳤다고 한다. 그런데 버선은 曺禮賢이 한 켤레, 分吉이 한 켤레, 萬奉이 한 켤레를 만들어 보낸 것이다. 그 계에 참여한 사람은 曺秉敦ㆍ朴昌祚ㆍ崔八基字儀敬ㆍ李道植ㆍ朴昌凞ㆍ李哲鎬兒名奇同ㆍ李相鎬兒名奇男ㆍ金台鉉兒名永明ㆍ方漢俊ㆍ朴性昌ㆍ金采奉ㆍ崔萬奉ㆍ朴分吉ㆍ文壽萬ㆍ金箕福ㆍ金萬奇ㆍ朴泰順ㆍ文允敬ㆍ金寶物ㆍ鄭學順 등이라고 한다. 藍浦 花汀의 尹生員이 白米 1말, 曺秉直이 백미 4말을 본가에 보내주었다고 한다. 조카 同獜이 다시 독서를 하게 되었다고 하니, 기쁘기 그지없다.
 
108
頭註: 日記를 빼앗겼다.
 
109
頭註: 여름옷을 소포로 부쳤으나 아직 오지 않았다.
 
 
110
25일 을묘.
 
 
111
전 병사 酒井玉一이 柱聯에 쓰는 붓 한 개를 보내와서 전일 글자를 써 준 것에 감사를 표하였다.
 
112
○ 여러 사람에게 들으니 통역 川上이 감금실에 들어와서 通辯한 이후에 일을 많이 주선하고 피차에 어긋남이 없어서 부대 안에서 모두 일컫기를,
 
113
“전일에 병사로 통변을 시킬 때에는 어긋나 통하지 않는 것이 많아서 형세상 의당 창피스러운 것이 있었다. 川上이 여기에 들어온 이후에 별로 강변하는 일이 없이 좌우에 적절함을 얻었으므로, 대대장이 사령관에게 말하고, 사령관이 이 뜻을 역시 駐韓軍司令部에 보고하였다.”
 
114
하였다. 나는 듣고 그를 인정하여 말하기를,
 
115
“이것은 빈 말이 아니라 과연 그 실정을 얻은 것이다. 이 사람의 심성은 혼후하여 가상함직하다. 이전의 행위가 모순된 것은 사사로운 감정에서 나왔기 때문이고, 지금의 행위가 마땅한 것은 공정한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공정함과 사사로움의 차별은 그 큰 것이 이와 같다.”
 
116
하였다.
 
117
○ 상등병사 矢川求馬廣島 거주가 시를 지어 주기를 청하으므로 허락하였다. 또 그 사람됨이 안온하며 공손하며 민첩하기에 그 器品을 아껴 절구 한 수를 읊어 써 주었는데 말하였다.
 
118
廣島之間別有川  광도에 따로 내가 있어
119
長流學海日涓涓  길이 학문의 바다로 흘러가 날마다 졸졸한다네
120
誰識箇中奇絶處  누가 그 속 절경에서
121
一船載月亦神仙  달빛을 실은 배 하나에 역시 신선인 줄을 알리
 
 
122
26일 을미.
 
 
123
中島高에게 답장을 써서 우체국에 나가 부쳤다. 川上이 芳山을 제목으로 하여 절구를 지어 보였는데 말하였다.
 
124
暮鐘遙度亂雲層  저녁 종소리 멀리 얽힌 구름 속을 지나가는데
125
花落春愁滿古陵  꽃 지는 봄 수심 옛 능에 가득하구나
126
欲說南朝人不見  남조를 말하려 해도 사람은 보지 못하고
127
孤僧空護半龕燈  스님 홀로 감실 등불을 지키네
 
 
128
그 의미의 서글픔이 어떠한가?
 
 
129
27일 정사.
 
 
130
川上이 聽泉齋韻 절구 한 수를 지었는데 말하였다.
 
131
邨莊春盡水流東  시골 별장에 봄이 지나고 물이 동으로 흐르는데
132
白芨花開細雨中  白芨草 가랑비 속에 꽃이 피었네
133
一種詩情淸似洗  한 줄기 시 쓸 감정 씻은 듯이 맑아
134
可敎閑却箇簾櫳  이 주렴 달린 창가에서 한가히 보낼 만하구나
 
 
135
28일 무오.
 
 
136
鷄知사령부 참모관 및 대대장ㆍ중대장 4~5명이 감금실에 들어와서 우리들을 살피고 갔다.
 
137
군인 小田多作이 기념시 한 수를 써서 주기를 청하므로 지었다.
 
138
海上靑山有小田  바닷가 청산에 농지가 있는데
139
小田多作得豊年  농지를 많이 경작하여 풍년이 되었네
140
百穀秋成餘有積  온 곡식 가을에 익어 노적가리 풍족하니
141
滿天霜雪屋生烟  하늘 가득 서리와 눈 내려도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 나리
 
 
142
29일 기미.
 
 
143
崔萬奉ㆍ朴分吉ㆍ金寶物 등의 편지에 답장하여 보냈는데, 崔萬奉ㆍ朴分吉 두 수재에게 편지하여 말하였다.
 
144
“사람이 먹는 것은 벼와 기장보다 귀한 것이 없으나 매우 굶주린 뒤에는 더욱 귀하고, 사람이 마시는 것은 우물물보다 절실한 것이 없고 급히 목마른 때에는 더욱 절실하다. 그러므로 배불렀을 때에는 벼와 기장이 귀한 줄 알지 못함은 아니지만 매우 굶주린 경우만 같지 못하고, 목마르기 전에 우물물의 절실함을 알지 못함이 아니지만 급히 목마른 뒤만 같지 못함은 이치의 정상이다. 더구나 사람이 서로 아낌은 평일에 아끼지 않음이 없으나, 환난에 더욱 아끼는 것은 평일의 서로 아낌이 과연 환난에 보이는 것임에랴! 매우 굶주린 자는 벼와 기장을 얻지 못하면 먹는 것이 결핍되고, 급히 목마른 자는 우물 물을 얻지 못하면 마시는 것이 단절되는데, 어찌 굶주리며 목마른 자로 하여금 끝내 기장과 벼를 먹지 못하게 하며 우물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할 리가 있겠는가! 내가 평일에 그대를 아끼지 않음은 아니나 내가 여기에 이르러 과연 그대가 나를 아낌을 보겠다. 이것으로 그대를 벼와 기장, 우물 물로 의지하여 나의 매우 굶주리며 급히 목마른 것을 풀어본다.”
 
145
金寶物에게 편지하여 말하였다.
 
146
“비를 오게 하는 것은 용보다 훌륭한 것이 없는데 연못에 잠길 뿐이면 하루도 비를 내릴 수 없고, 땅을 가는 것은 말보다 좋은 것이 없으나 마구간에 엎드렸을 뿐이면 천리 땅을 갈 수 없다. 사람이 학문에 있어서도 게으름에 시간 끌고 용감히 나아가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용이 비록 연못에 잠겨 있다. 비를 오게 하는 변화를 배우고, 말이 비록 마구간에 엎드려 있지만 땅을 가게 하는 힘을 배울지니, 사람이 작은 문간에 처하여 어찌 덕을 이룰 학문을 배우지 않겠는가! 용으로서 비를 오게 하지 못하면 버려진 용이고 말로서 땅을 가지 못하면 버려진 말이고 사람으로서 게을러 학문을 이루지 못하면 버려진 사람이니,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사람으로서 학문을 이루지 못하면 어찌 용이 연못에 잠길 뿐이며 말이 엎드렸을 뿐임과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이 하늘을 나는 용과 천리를 가는 말을 빌어 그대에게 덕을 이룬 사람이 되도록 기원한다.”
 
147
○ 愼懼堂 李侙이 崔萬奉ㆍ金寶物ㆍ朴分吉 세 사람에게 시를 보냈는데, 그 시에 이렇게 말하였다.
 
148
愛君一意事先生  그대 한결같은 뜻으로 선생을 섬김을 아끼노니
149
萬里書頻可見誠  만 리에 편지를 자주함에 정성을 볼 수 있노라
150
縱然未有班荊日  비록 만날186) 날이 없어도
151
已許吾心表遠情  내 마음에 이미 허여하여 멀리 정을 나타냈네
 
152
工夫元不在高虛  공부는 원래 높으며 공허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153
須是躬行自得餘  반드시 몸소 시행하여 스스로 터득한 나머지라
154
若我藐言如莫信  만일 나의 보잘 것 없는 말 믿지 못하겠거든
155
往看千古聖賢書  예부터의 성현 책을 보라
156
人一己千積累深  남은 한번에 잘해도 나는 천 번하여187) 깊이 쌓을지니
157
至誠極處貫天心  지극한 정성 있는 곳에 천심을 꿰뚫으리
158
好將簣土成山勇  삼태기로 흙을 날라 산을 만들 용기로
159
百鍊此身做精金  이 몸을 백번 단련하여 정교한 금을 만들라
160
天機循環不常親  천기는 순환하여 항상 친하지는 않으니
161
隱顯元來盡在人  잘되고 못됨은 원래 사람에게 다 있네
162
請君莫恨方時困  그대여 곤궁한 시기를 만났다고 한탄하지 말라
163
尺蠖從看屈後伸  자벌레에게 굽혔다가 펴임을188) 본다네
164
南州寶物浦城金  남쪽 고을의 보물 포성의 금
165
寶氣暗生長夜陰  보배 기운이 긴 밤 어둠에 가만히 나오네
166
莫將寶物傍人識  보물을 곁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167
買得遺經學聖心  경서를 사서 성인의 마음 배워야지
 
 
168
頭註: 이 조항은 ‘人之所食’의 위에 있어야 하겠다.
 
169
“막힌 회포 한창 허기진 듯할 적에 청고한 글씨가 갈증을 풀어주니 그 위로가 어떠한가! 여러분이 부모를 모시면서 유쾌히 지낸다는 것을 알았는데 공부에 맛을 들여 혹은 그 요령을 얻었는가? 이미 경하하고 또 칭송하네. 硏下(나)는 다행히 통역 川上씨의 보호와 주선해 줌을 힘입어 기거와 음식이 전보다 배나 나아진 것이 이미 몇 개월이니 많이 우려하지 말게. 보내준 버선은 이 섬에서 고맙기가 이보다 더 긴요한 것이 없네. 모두 매우 긴요한 것이다. 그 자세한 것은 다른 쪽지에 갖추었으니 각각 돌려가면서 보게. 써 보내는 오언절구 시는 함께 고생하는 愼懼堂 李先生이 그대들이 나에게 자주 편지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스스로 아껴서 이렇게 읊은 것이 있으므로 기록하여 보인다. 나머지는 이만 줄이네.”
 
170
○ 군인 中島牛松이라고 성명을 써서 나에게 보이고 시 한 편을 청한다고 썼다. 즉시 썼는데 말하였다.
 
171
江南聳出兩三峯  강남에 우뚝 솟은 두 세 봉우리
172
萬樹深深雨後容  많은 나무 울창함은 비 온 뒤에 모양나네
173
秋風孤節君知否  가을 바람에 독자적인 절개 그대는 아는가
174
中島靑靑倚舊松  中島에 푸르른 舊松에 의지한다네
 
 

 
175
각주)
 
176
170)  원문의 ‘川上’은 ‘川上曰’로 해야 할 것이다.
177
171)  조직의 성원들이 모여 우의와 신의를 다짐하는 일. 대개 봄과 가을에 많이 하였다.
178
172)  단오에 쑥으로 만든 인형을 문 위에 걸어 毒氣를 없앴던 풍속을 말한다.(荊楚歲時記).
179
173)  같은 글방에서 공부하거나 또는 그러한 사람을 말한다. 동창생.
180
174)  부모가 모두 살아 있는 것을 말한다.
181
175)  ‘同硯으로서 해가 되는 벗’이라는 뜻으로, 동창생끼리 일인칭의 겸양어로 쓰는 말이다.
182
176)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토끼가 부딪쳐 죽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하나만 고집하거나 융통성이 없어서 일의 진보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183
177)  원문 ‘穿壁’은 ‘匡衡鑿壁’의 고사를 말한다. 전한 匡衡은 가난하여 촛불이 없자 벽을 뚫어 이웃집의 등불 빛을 받아 독서하여 大儒가 되었다.(蒙求 上 匡衡鑿壁)
184
178)  원문 ‘磨杵’는 ‘磨杵作針’의 고사를 말한다. 당나라 李白이 글을 읽다가 중지하고 떠나갈 때 길에서 노파가 절구공이를 갈았는데, 이백이 그 까닭을 묻자 바늘을 만든다는 대답을 듣고 학업을 계속하여 마쳤다.(潛確類書)
185
179)  원문의 ‘黃河待一淸’에서 ‘河淸’은 황하의 물이 맑아진다는 뜻으로, 황하는 늘 흐리나 천 년에 한번 맑아진다고 하는데, 이는 세상이 태평스러이 다스려지는 상서로움으로 여겼다.
186
180)  中庸을 말한 것으로, 中庸章句 序의 “其書始言一理, 中散爲萬事, 末復合爲一理”에서 유래한 것이다.
187
181)  大人 또는 그보다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孟子」 盡心 下)
188
182)  인공으로 다듬은 돌.
189
183)  七言律詩.
190
184)  원문에는 ‘三十三日’로 오기되어 있다.
191
185)  원문 ‘㣣’은 ‘狹’의 오자로 보인다.
192
186)  원문 ‘班荊’은 ‘싸리나무를 땅에 깔고 앉는다’는 뜻으로 친구와 길에서 만남을 말한다.
193
187)  원문 ‘人一己千’은 「中庸」(20장)의 “人一能之己百之 人十能之己千之(남이 한번에 잘하면 나는 백번을 하며, 남이 열번에 잘하면 나는 천번을 한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194
188)  뒷날의 성공을 위하여 잠시 움츠린 것을 말한다. 「周易」(繫辭 下)에 “尺蠖之屈 以求伸也(자벌레가 굽힘은 펴기를 구함이다.)” 하였다.
【원문】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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