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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
◇ 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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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환 의사
1
馬 島 日 記
 
 
2
1907년 11월
 
 
3
11월 1일 무자.
 
 
4
병사 柳原이 洋草 2봉을 부쳐 보냈는데 한 봉은 思雲에게 주고 한 봉은 나에게 주어 전일의 서폭에 감사를 표하였다. 어젯밤에 기선을 타고 長岐島로 향하여 그 모친에게 문안을 하고 가서 말로 기별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 바로 편지를 써서 부쳤다고 하였다. 川上과 학교의 말에 언급하였는데 川上이 말하였다.
 
5
“일본에는 대학교가 세 곳 있습니다. 첫째는 東京이고 둘째는 京都전일의 도읍지이고 셋째는 福岡입니다. 대학교 안에는 文科ㆍ法科ㆍ工科ㆍ農科ㆍ醫科ㆍ商業科ㆍ林科가 있습니다. 입학하는 방법은 인생이 또한 7살이면 小學校에 들어가서 國文諺文과 漢文을 배웁니다. 10살에 졸업한 뒤에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3년만에 졸업하고 高等學校에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원하는 학문을 전공합니다. 文學士가 되려 하면 文科를 배우는데 문자가 있은 이후의 일은 외어 익혀 연구하지 않는 것이 없어 일가를 이루기를 기약합니다. 지금의 文學博士와 같은데 고금의 치국의 정치와 흥망의 실마리를 갖추지 않음이 없어 임금의 고문에 응합니다. 法學士가 되려 하면 刑法書를 통틀어 빠짐없이 하니 지금의 判事ㆍ檢事ㆍ理事 등의 관직이 모두 여기에서 나옵니다. 工科는 온갖 기술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農科도 이와 같고 醫科도 이와 같습니다. 林科는 나무를 기르는 일입니다. 그 졸업 연한은 文學이 3년, 農業이 3년, 法學이 4년, 醫學이 5년, 工學이 4년, 林學이 3년입니다. 매년 1차씩 임금이 그 재주를 시험보아 가장 우수한 자를 뽑아 官職에 임명하므로, 고등학교 豫課에서 원하는 학문으로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은 뒤에 들어갑니다. 또 通信技術學校가 있는데 지금의 電報ㆍ電車ㆍ電燈ㆍ電話와 같은 것이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또 造船學校가 있는데 汽船과 兵艦의 제도와 같은 것이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또 陸軍學校ㆍ海軍學校가 있는데 바다ㆍ육지의 훈련에 그 재주와 힘을 다하여 발탁하여 쓰는 데에 수요로 합니다. 만약 외국 학교에 유학하여 그 재주를 통한 자가 일본에 들어오는 경우는 그 통한 재주를 임금에게 기록하여 올리고 임금이 시험하며 본바가 부류에서 뛰어나면 특별 발탁으로 등용합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외국에 유학하려 하면 가난한 자는 못하고 돈이 있는 자라야 됩니다. 마을 수천 리 밖에 있는 자는 그 식비와 비용을 모두 자기가 담당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절약하면 40圓4백 냥이고 넉넉하면 50원인데 하물며 외국에 유학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이 대마도는 변방 고을이어서 말할 것이 못되고 사단사령부 소재지와 같은 경우는 군대가 모두 갖추어져서 예컨대 工兵의 쓰는 것이 병기의 제공을 갖추지 않는 것이 없으니 예컨대 電信 등의 일이 모두 갖추어집니다. 또 私立學校가 있는데 대마도에 작년과 금년에 설립한 중학교ㆍ소학교는 이 백성들이 서로 거출하여 설립한 것이지 국가가 세운 것이 아닙니다. 사립학교 교사는 그 월급을 헤아려서 선생을 맞이해 학교에 들이고 그 자제들을 교육시킵니다. 국가에서는 부조금 몇 백 圓을 떼어주어 그 과업을 권장합니다.”
 
6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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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기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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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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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항구 중에 오직 長崎島ㆍ神戶ㆍ橫濱ㆍ函館ㆍ靑森島의 5항구는 각국 兵艦과 商船이 無關하게 출입하는 뜻으로 이미 조약을 맺었습니다. 5항구 이외에는 출입함이 없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도 모두 이러한 약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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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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川上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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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에서 말을 하였는데 지금 기후가 점차 추어져서 다시 먼저 겨울처럼 4명이 한 방을 함께 쓰면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모여 살고 뜻이 없으면 그 좋을 바를 따르십시오.”
 
13
“그러하겠소.”
 
14
나는 滄湖ㆍ眉湖ㆍ思雲과 함께 거처하였는데 지난 겨울에 살던 방이었다. 靜觀은 관절통으로 밤낮 이불을 쓰고 있어서 함께 거처하기에는 오히려 온당 화합하지 못하는 뜻이 있으므로, 그의 편한대로 따라 愼懼堂과 내가 거처했던 방에 옮겨 거처하였다. 南湖는 友鹿과 그전대로 거처하였다. 또 여름과 가을 이래로 입었던 옷이 때가 낀 것은 대대에서 빨아서 준다고 하였으므로, 그 빨 만한 것을 가려서 부대에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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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신묘.
 
 
16
10여 일 전에 寺尾가 책 하나를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그 책 끝 章에 기재한 것을 보니, 일본 책자이고 각 면의 그 속에는 鳴鶴號과 一六號 두 사람의 蘭亭帖이라고 하였고, 값과 우체 이송이 아울러 기재되었는데 5냥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돈 5냥을 寺尾에게 주어 책을 일본 東京 博愛館에서 부치게 하였는데 오늘에 와서 2책이 아울러 도착하였다. 그 글자 획을 완상하니 王右軍의 필법이 아니었고, 비록 그의 자신의 필체에서 나왔으나 그 획은 그가 스스로 이루어서 교묘히 모사하려 하지 않는 데에 말미암아서 또한 완상하여 좋아할만하였다. 그 두 첩을 비교하면 鳴鶴이 一六보다 나으니, 진실로 일본의 화려한 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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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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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雲의 庶堂叔 永均이 편지를 보내 왔다. 대략 뜻은 “思雲의 本宅은 그 매부가 빚을 얻을 때에 그의 증인을 한 것에 말미암아 빚을 찾아가는 괴로움에 견디지 못하여 집안을 기울이며 파산하여 그 빚을 보상하고, 그의 장인 李郭山을 따라 舒川 松洞으로 함께 옮겨 거처한다.”는 등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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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계사.
 
 
20
勉菴 先師 小祥이 이달 16일이다. 이름을 列書하여 편지를 써서 定山 長久洞으로 내어 부쳐 선생이 돌아가신223) 통한을 약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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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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眉湖의 집 편지가 왔다. 대략 뜻은 “일전에 올린 편지가 아직도 회답이 없어 무슨 연고인지 알지 못하니, 오직 속히 답장을 바랍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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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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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정이 와서 편지 두 통을 통역에게 전하였는데 통역이 받아서 나에게 주었다. 봉투를 열어 보니 舍伯 편지가 1통, 아내 편지가 1통, 崔晩鳳ㆍ朴分吉ㆍ金寶物 여러 아이들 편지가 3통 있었다. 또 地理大全, 吳景鸞의 敎子卷, 人子須知, 廖金精의 泄天機卷 2책과 토시 하나, 솜버선 하나를 소포로 부쳐 보냈다고 하였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편지 하나는 友鹿 舍伯의 편지인데 대략 뜻은 “友鹿의 仲女가 韓山으로 시집갔는데 半産으로 요절하니 나이는 겨우 22살이고 한 점 혈육도 없다고 하여 정상이 측은하였다. 또 그 막내딸은 나이가 겨우 15살인데 세상이 소요스러움으로 말미암아 藍浦 廣巖의 黃氏 집안과 정혼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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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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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註: 마땅히 10일 行에 있어야 한다.
 
27
舍伯 편지와 아내 편지 諺文과 崔晩鳳ㆍ朴分吉ㆍ金寶物에게 답장을 써서 우체국에 내어 부쳤다. 舍伯 답서에 말하였다.
 
28
“주신 편지를 받고 기쁨과 감사함이 지극하여 감정을 안정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알건대 북풍이 또한 차가운데 기체후 안녕하시고 형수씨께서도 기체 보중하시고 조카들도 잘 자라서 대소 일가가 또한 손상이 없다고 하니, 제가 멀리서 기원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舍弟는 몸에 탈이 없고 지난 겨울보다 건강하나 다만 찬 구들장에 거처하여 조금 견뎌내기가 어렵습니다. 낮에는 화로를 끼고 밤에는 이불을 두르고 세끼 먹는 것과 새로 제공하는 옷은 사철에 남음이 있으니, 저의 굶주리며 추움이 집에 있을 때만 못하다는 것으로 우려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돌아보건대 喘息이 비록 구차하다고 해도 이미 남에게 포로가 되어 天命이 어떠한지를 기다릴 뿐입니다. 주신 편지 중에 사람들의 말이 환국이 쉽지 않다고 하지만 비록 국난이 더욱 오랜 것에 말미암아 더욱 성하게 되겠지만 귀국이 늦을지 빠를지는 또한 하늘이 시키는 것이니, 어찌 사람의 힘으로 미칠 것이겠습니까? 나라에 많은 난리가 있고 세로가 험난하고 사람 일의 진퇴유곡은 형세가 진실로 그러하여 세상을 바로잡으며 어려움을 구제하는 인재가 있지 않으면 구렁텅이에 빠진 것을 구원할 수 없으니 이는 또한 운수에 관련된 것입니다. 어찌 조만간에 기필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흉년을 당하여 많은 식구가 어떻게 지내가겠습니까? 떨쳐 오름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이만 줄이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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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鳳의 답서에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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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이여, 鳳이여! 어찌 편지를 전함이 늦었는가? 내가 바란 지 오래였다. 혹은 분실되었나 하고 다시 편지를 쓰려던 참에 편지가 와서 어찌나 위로가 되는지! 더욱이 나를 아끼는 정이 평일보다 더욱 돈독함을 보고 서로 거리가 만 리이나 두 달에 한번 편지가 어찌 늦는다고 하겠는가? 먼저 말은 농담이네. 추운 날씨 눈보라에 피곤함을 받고 강에 외로운 돛배로 거슬러 올라가 건너는 것은 저 누구로 말미암았는가? 눈 속에 부모를 모시는 그대가 옥처럼 珍勝224)하며 課業이 날로 진보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남은 알지 못하고 홀로 자신만 아는 맛이 있는가? 멀리 생각이 그리워 밤낮으로 그치지 않네. 硯下는 얽매인 모습이 전후로 동일한 법이어서 듣게 할 만한 것이 없네. 오직 바라건대 그대는 공부 과업을 옛사람이 구차할 때에도 반드시 이것으로 했으며 위급할 때에도 반드시 이것으로 했던 것225)을 본뜬다면 나의 희망이 거의 가까이 달성될 것이고 그대의 집안에 또한 쓰일 것이니, 어찌 세상의 어지러움이 앞에 압박하고 집의 가난함이 뒤에 피곤한 것을 마음에 두고 조금이라도 해이한 뜻을 가질 수 있는가? 이른바 서린 뿌리와 얽힌 마디를 겪어보지 않으면 날카로운 기구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이 때에 기약할 수 있네. 마음에 유약하게 하지 않아 성실하면 능히 금석을 꿰뚫고 신명을 통하며, 마음에 단단하게 하지 않아 풀어놓으면 잠깐 만에 변하여 방탕하여 돌아옴을 잊으니 크게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聖經을 많이 읽어 몸속에 채우면 응당 천년에 한 때의 계기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고 이것에 두어 바람이 귀를 지나가는 것처럼 하지 말라. 편지지에 당하여 그리워서 의연할 수 없다. 洪州에서 舒川 松洞으로 옮겨간 李郭山 宅은 바로 이는 같이 고생하는 申摠巡 思雲의 처가이다. 너는 마땅히 가서 뵈어야 하는데 만일 軍山에 편지를 부칠 때에 가게 되면 李宅에 가서 이 섬에 부치는 편지를 찾아서 함께 부쳐라. 翳桑은 지명인데 左傳 第三卷 중의 晋나라 趙盾의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소포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마땅히 도착할 것이니 보기 전에 편지를 먼저 했다고 해서 염려하지 말라.”
 
31
朴分吉의 답서에 말하였다.
 
32
“바다의 달과 산의 구름이 사람의 생각을 끌어내어 아침이나 저녁에 다할 수 없다. 이 때에 보내준 편지를 받고 펼쳐 읽어봄에 뛸 듯이 기뻐서 말로 형용하지 못하겠다. 부모를 모시는 그대 형제의 건강이 복되어 손상이 없고, 戚叔母主의 건강이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공부하는 재미에 寸陰을 아껴 밥을 대하는 것도 잊어 日就月將의 기약이 있는가? 그리운 먼 곳의 정을 내 개인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겠다. 나[戚從]은 외람되게 못난 몸으로 망령되이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덤벼드는 짓을 했다가226) 이러한 외국행을 하게 되었으니 이는 누구의 허물인가? 돌아보건대 지금 세상 상황은 넓디넓은 천지를 좁디좁은 강산으로 변모시켜서 응당 사람마다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될 것이니, 塞翁이 말한 바 ‘득실과 화복을 저것과 이것에 견주는 것이 모두 일반적이다.’라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단언하여 말한다면 운수이니 어찌하겠는가? 오직 바라건대 맹렬한 마음으로 공부를 돈독히 하여 江革이 눈을 밟고서 경서를 외우듯이227) 朱買臣이 땔나무를 지고서도 글을 외우듯이228) 하면 어찌 구슬이 값을 기다려 팔릴 때가 있지 않겠는가? 붓을 대하여 정신이 달려가서 글로 말을 다하지 못한다.”
 
33
金寶物의 답서에 말하였다.
 
34
“늘 부쳐준 글을 읽고 그대를 좋아하는 마음에 한번 만나 대화한 것을 당할 만하였네. 그러나 편지를 본 뒤에 그리운 회포가 끝내 하늘 끝 땅 모서리인 것이었네. 부모를 모시는 귀하 형제분의 건강이 예전대로 복되다는 것을 알고 먼 밖에서 그리움은 편지로 다할 수 없네. 독서하는 것은 헐렁히 지나가는 것을 면하고 뱃전을 그어놓고 칼을 찾는 것229)에 이르지는 않는가? 간절히 바라건대 많이 읽고 많이 읽고 또 읽고 읽어 세상 정황으로 물들지 말아야 한다. 오직 부모가 계시거니 빈한하며 환난이 있더라도 그대에게 무슨 상관이며, 의복ㆍ음식이 그대에게 무슨 상관인가?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와 같은 세계에 독서가 무슨 소용인가?’라고 하지만, 이는 지금 세상의 쇠미함이 斯文의 저상에서 말미암음을 알지 못하고서 입에 따라 말을 한 것이니 이를 들은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사람은 聖人과 같은 이가 없는데 독서한 뒤에야 성인이 되고, 영웅은 호걸만한 이가 없는데 독서한 뒤에야 호걸이 된다. 하물며 그 낮음이 천만층이나 되는 사람이랴? 반드시 마음과 뜻에 새겨 부지런히 창 앞에서 독서하여 靑雲의 앞 길을 기약하여야 한다. 硯下는 예전과 같은 모습일 뿐이다. 나머지는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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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註: 아래 조목은 여기에 있어야 한다.
 
 
36
10일 정유.
 
 
37
11일 무술.
 
 
38
川上이 말하였다.
 
39
“일전에 나의 모친이 부산에 있으면서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지금 한국의 일의 기회는 대부분 시급한 업무이다. 그러므로 관직을 구하는 요로에는 이와 같은 때가 없다. 네가 감금소에서 얽매여 틈이 없을 텐데 마땅히 편지를 한국 서울에 머물고 있는 우리 숙부川上의 숙부는 統監府 通譯官임에게 보내어 이 通辯의 직책에서 풀려나와라. 다만 한국으로 나가 길이 요로의 직업을 삼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운운’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작년 이 달에 여기에 올 때에 먼저 鷄知 사령관을 만나서 여기에 온 뜻을 말하였더니, 司令이 말하기를 ‘그러면 좋다. 그러나 네가 여기에 온 것은 저 감금된 사람들이 귀국할 사면을 쉽게 받으면 그만이지만 만일 쉽게 사면을 받지 못하면 네가 여기에 머무는 것이 또한 오랠 것이다. 오래되면 마땅히 답답한 생각이 들어 반드시 감금소 통변을 벗어나서 좋아하는 바를 따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으면 일이 혹은 모호하게 되어 오늘 나와 약속하는 것만 못하다. 저 한국 사람들이 감금에서 풀려나기 전에는 나와 이 섬에서 함께 거처하면서 일하는 바를 종결함이 지극히 좋고 좋겠다.’ 하였습니다. 나는 말하기를 ‘삼가 명령을 받들겠습니다.’하였더니, 司令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내 마음에 믿는 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미 상관과 이와 같은 약속이 있었으니, 비록 모친의 편지가 있더라도 약속을 어길 수 없고, 설혹 사령에게 돌아가기를 요구하더라도, 사령이 어찌 나를 꾸짖는 실마리가 없겠습니까? 또 내 뜻에는 공 등의 감금이 풀리는 것은 오래지 않아 있을 듯합니다. 이달이나 다음달 무렵에 사면이 있을지 알지 못하겠는데 다음해 정월 어느 날 무렵에 돌아가게 되면 나 또한 바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만일 공 등이 여기에 오래 있을 것을 알게 되면 내가 마땅히 변통할 것이나, 공 등의 돌아감이 과연 오래지 않은데 나의 돌아감이 공 등보다 먼저 있게 되면 내가 그 사이에 공 등을 도운 것이 어디에 정의가 있겠습니까? 내가 그러므로 차마하지 못합니다.”
 
40
“공의 말이 진실로 폐부에 감응되오.”
 
 
41
12일 기해.
 
 
42
滄湖의 小家 편지가 왔는데 대략 말하기를 “黃谷 李判參이 당했던 일은 과연 소문과 같았습니다. 곡식 값은 한 말에 5냥입니다.”라고 하였다.
 
 
43
13일 경자.
 
 
44
소포가 왔다. 아내의 형 正順, 아내의 아우 乙僊의 편지가 소포 속에 들었는데 대략 안부를 한 것이었다. 통역이 地理大全을 보고 말하였다.
 
45
“이것은 장사지낼 때 길한 땅을 점치는 법이 아닌가요?”
 
46
“그렇습니다. 일본에도 이러한 법이 있습니까?”
 
47
“여염의 일반 백성은 이러한 법이 없으나 卿ㆍ大夫의 집에 있어서는 대부분 이러한 법을 따라 행합니다.”
 
48
“듣건대 일본의 장사지내는 법은 무릇 사람이 죽으면 앉혀 염하며 앉혀 묻는 것이 보통 풍속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지리의 파묻는 법을 쓴다면 어떻게 앉혀 묻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길한 땅을 얻더라도 어떻게 吉兆를 본받겠습니까?”
 
49
“지리를 점쳐서 매장하는 사람은 모두 눕혀 매장을 하여 지리의 법대로 합니다.”
 
50
“일본에도 길함을 점치는 地師 노릇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51
“있습니다.”
 
 
52
14일 신축.
 
 
53
통역이 말하였다.
 
54
“일전에 한국 태자가 일본에 들어왔다는 것은 또한 잘못 전해진 것입니다. 음력 이달 12일에 이르러 비로소 東京에 이르러 정박하고 13일에 日皇과 상견례를 하였습니다. 이번 행차에는 趙東潤이 모시어 왔고, 태자가 일본에 머물고 있으면서 조동윤 등이 일을 마치고 귀국하였다고 합니다. 태자의 이번 행차에는 한국 궁중에서 매우 소동이 있어 의아해함이 많았습니다. 嚴尙宮230)이 몰래 심부름꾼을 보내서 일본이 태자를 대하는 것이 어떠한지를 살폈는데 일본이 한국 태자를 대하는 것이 일본 태자와 같이하여 조금도 감소함이 없었으므로, 한국 궁중에서 서로 말하기를 ‘일본이 이와 같이 할 줄은 뜻밖이다.’고 하였답니다.”
 
 
55
15일 임인.
 
 
56
아내의 형 正順, 아내의 아우 乙僊에게 답장을 쓰고 아울러 藍浦 平章 李生員 秉斗에게 편지를 써서 우체국에 내어 부쳤는데 그 편지에 말하였다.
 
57
“지난 정월에 돌아가는 인편에 편지를 올렸는데 그 때 보셨습니까? 회답을 기다렸으나 끝내 돌보는 바가 없어서 바라보기를 마치 태산북두와 같이 하면서 홀로 때마다 날마다 그치지 않는 정을 품었을 뿐입니다. 다시 편지를 써서 만분의 일의 정성을 이루려 하였으나 마침내 감히 하지 않은 것은 누설될 혐의가 없지 않았으니, 어찌 저의 본래 뜻이겠습니까? 눈이 삼엄한데 부모를 모시는 좌하의 건강이 모두 편안하시며 대소 집안의 절도가 고루 편안한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의 그리움에 멀리 전을 드리는 정성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저[恤下]는 박처럼 매여 있어 몸이 자유롭지 못하고 動靜과 禍福은 믿는 것이 하늘이고 과거를 허물함이 없고 후일에 구할 것이 없습니다.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아직도 천식 속에 보전하니 그 이외에 무엇을 아뢰겠습니까? 나머지는 고향에 돌아가 배알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만 줄이옵고 아룁니다. 듣건대 주신 벼 10말 값을 이번 봄 무렵에 갚아 납부하였는데 받지 않고 도로 물리쳤다고 하니 이 얼마나 바라던 것 이외의 진휼입니까? 다만 含珠231)\;의 정만 간절할 뿐입니다.
 
 
58
16일 계묘.
 
 
59
아침이 되어 창을 열고 밖을 보니 눈이 한 점도 땅에 남은 흔적이 없었다. 오늘은 勉菴 先師 小祥의 入祭하는 날이다. 서글프게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옷깃을 적실뿐이다.
 
 
60
17일 갑진.
 
 
61
흐리고 바람이 불고 또 춥고 눈이 왔는데 혹은 하늘에 날으기도 하며 땅에 떨어지기도 하였으나 흔적이 없었다. 寺尾가 책 하나를 가져와서 보았는데 편 속에 일본의 남녀가 蘸婚하는 사진이 있었다. 그 진설하는 음식과 술을 따라 주며 받는 모습은 대략 우리나라의 하는 것과 같았다. 통역에게 말하였다.
 
62
“일본의 혼인은 어떻게 시작하여 마칩니까?”
 
63
“일본의 법은 남녀의 나이가 勺水232)할 만한 때에 이르면 아들을 둔 집에서는 중매를 써서 딸을 둔 집에 청혼을 하여 서로 맞는지를 구합니다. 그 혼인 허락을 받으면 婚書를 주며 받는 예를 하고 길일을 택하여 신랑을 신부의 집에서 맞이하여 음식을 진설하고 술잔을 주며 받는 예를 한 뒤에 그 합궁의 일을 이룹니다.”
 
64
그 말이 우리나라의 법과 흡사하였다.
 
 
65
18일 을사.
 
 
66
石田이 과자 한 봉지를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통역은 공일이어서 들어오지 않았고 주번사관이 오전과 오후로 두 차례 와서 점검하고 갔다.
 
 
67
19일 병오.
 
 
68
통역이 말하였다.
 
69
“전화로 말을 하면 서로 전하여 천리에 서로 통합니다. 이미 機局을 설치하여 해가 지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또 오묘한 이치가 있는데 거울 하나를 부산전화국에 걸게 하고 거울 하나를 한국 경성전화국에 걸게 하고서, 부산에서 한국 서울로 통화할 때 부산 사람의 용모를 한국 서울의 걸린 거울에 보내 비추며 한국 서울 사람의 용모를 부산의 걸린 거울에 와서 비추어 피차가 서로 보면 지척 사이처럼 되어, 말하면 서로 믿고 간사함이 혹간도 끼어들지 못합니다. 심지어 천만 사람일지라도 모두 용모를 따라서 털끝만치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지금 부산에서 한국 서울로 처음 이 기계를 설치하고 확실히 비추어 틀림없어서 각처 전화국도 이와 같이 할 것입니다. 또 無線電報가 있어 세계에 통행되는데 한국 역시 있게 될 것입니다. 일본이 러시아와 旅順口에서 전쟁할 때 일본 전함이 일본 전함과 피차 거리가 멀리 1백 리의 사이가 있어도 무선전신을 사용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미국서 처음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또 미국에서 노년을 바꾸어 소년으로 변하는 방법이 있게 되었는데 그 衰老한 血氣를 배설해 내고 소ㆍ말의 혈기를 써서 그 쇠로한 혈기를 바꾸어 보충하면 늙은 피부가 다시 고운 피부가 되므로 노년이 변하여 소년으로 되고 약함이 변하여 강함으로 됩니다. 이로써 오래 살아 죽지 않는 이치가 있습니다. …”
 
70
듣고 미혹되어 말하였다.
 
71
“옛날에 換骨奪胎하여 精氣를 수련하여 오래 살아 죽지 않는 법이 있는데 부르기를 神仙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이런 종류인데 만약 과연 이것이 있다면 세상에 오래 갈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태어나서 죽고 죽고서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이치인데 만약 태어나며 태어나기만 하고 죽는 이치가 있지 않다면 하늘도 또한 이치가 없습니다. 어찌 이와 같은 이치가 있습니까? 이치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오는 실마리를 거의 여기에서 보겠습니다.”
 
 
72
20일 정미.
 
 
73
寺尾는 나이가 거의 60세에 가까웠는데 치아가 촘촘하고 결백하여 광채가 났다. 나는 그 치아가 좋은 것을 매우 훌륭히 여기면서 보아온 이래로 이미 한 달 남짓이 넘었는데 다만 본래 치아인 줄만 알고 義齒인 줄은 알지 못하였다. 思雲이 묻기를,
 
74
“치아는 그대의 本齒입니까?”
 
75
라고 하니,
 
76
“아닙니다. 의치입니다.”
 
77
라고 하고, 그 의치 테두리를 자리 위에 놓았다. 그 의치를 자세히 보니 붉은 구리로 테두리를 만들고 흰 뼈로 이를 만들어 다시 그 자리에 씌웠으니 완전히 生齒와 같아서 의치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지난 가을에 내가 蠶桑室에 있을 때 한 사람이 현판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써주기를 요청하였는데 바로 ‘義齒製術所’ 5자였다. 이것은 의치를 만드는 집에 걸어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오게 한 것이었다. 통역이 말하였다.
 
78
“지금 또 손을 만들며 다리를 만드는 법이 있는데 손이 없고 발이 없는 사람이 비록 세상에 많지 않으나 혹은 악성 종기를 앓은 사람이 손과 다리를 자르면 악성 종기에 죽지는 않아도 목숨을 이어가는 방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손과 다리를 자르면 거동하지 못하는데 이를 위한 까닭으로 손을 만들어 물건을 들고 다리를 만들어 땅을 가는 기술을 두어 손과 다리가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을 보게 되면 그 만든 흔적을 보지 못하게 되는데 마치 치아를 만든 것이 흔적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자기의 거동이 비록 본체의 거동만 못하지만 타인으로 하여금 그 거동을 보게 하면 만든 손과 다리의 거동인 줄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79
21일 무신.
 
 
80
이번 19일에 우리 서울 西湖의 姜火+暹ㆍ崔永喜 두 사람이 愼懼堂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永喜는 3圓 紙貨를 보내어 그 의복 감에 보태 쓰라고 하였다. 姜火+暹의 편지에는 대략 말하기를,
 
81
“賊徒가 크게 일어나서 이르는 곳마다 집을 태우고 들어가는 마을에는 처음에 부자의 재물을 찾고 마을 백성의 돈을 분배하여 거두었습니다. 가난뱅이나 부자는 논할 것이 없이 그 침탈을 견디기 어려워서 모두 흩어지고 머물러 정착하지 못하고 동서남북이 한결같이 소요스럽습니다. 公州ㆍ定山의 사이도 이와 같습니다.…”
 
82
하였다.
 
 
83
22일 기유.
 
 
84
23일 경술.
 
 
85
통역이 말하였다.
 
86
“오늘은 양력 12월[臘月] 28일인데 이 달이 크므로 31일이 그믐입니다. 5일을 지내면 戊申년 정월 1일입니다. 우리가 감금실에 근무한 뜻으로 해서 鷄知 사령부에서 賞錢을 내려 주어 신년의 정을 표시한다고 합니다.”
 
87
“얼마나 되는 상전이오?”
 
88
“4백 냥입니다.”
 
89
“홀로 川上에게만 있습니까?”
 
90
“아닙니다. 본부의 사관은 모두 다소의 상전이 있습니다. 명일 주번장교로부터 이외의 사람은 밖에서 휴식하여 임의로 즐겁게 놀다가 정월 초5일에 모두 병영에 들어와 공무를 보게 합니다.”
 
91
“병졸도 이와 같습니까?”
 
92
“병졸은 비록 밖에서 휴가를 하더라도 임의로 할 수 없고 그 상관의 명령을 듣고서 행합니다. 그리고 한두 장교와 몇 명의 병정이 병영에 남아 파수하면서 하루 만에 교대합니다.”
 
 
93
24일 신해.
 
 
94
友鹿의 아우 洪根이 서울 사람의 覩租233) 일을 주간하기 위하여 강원도 通川에 있으면서 그 형에게 편지를 썼는데 대략 말하기를,
 
95
“서울로 출발하려 하는데 길이 험난하여 이것이 우려됩니다. 1圓 紙貨票를 동일한 편지함 안에 부치고 또 솜바지ㆍ버선ㆍ토시 각 1벌, 문어포 1개, 김[海衣] 20장을 소포로 우체국에서 부쳐 보냈습니다.”
 
96
라고 하였다. 또 靜觀의 아들 火邕이 그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는데 별로 제기한 것이 없고 그 季父 相天이 礪山 군민의 송사로 현재 충청도 공주에서 재판을 하는데 일이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97
25일 임자.
 
 
98
26일 계축.
 
 
99
통역이 아침에 들어와,
 
100
“오늘은 오지 않아도 되는데 어제가 공일이어서 오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보러 왔습니다.”
 
101
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또 말하였다.
 
102
“부산에 화재가 나서 50-60호가 불에 탔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일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103
“언제 불이 났으며 어느 곳에서 들었습니까?”
 
104
“부산으로부터 대마도 우체국에 전보가 왔고 이 말이 유전돼서 내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은 어제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리 모친께서는 크게 놀라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전보를 보내 어떻게 지내시는지를 알아봐야겠습니다.”
 
105
“염려스러운 일이라면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106
통역이 한 시간 동안을 머물고 나서 寓居하고 있는 집을 나서서 갔다.
 
 
107
27일 갑인.
 
 
108
寺尾가 떡 한 봉지를 들고 와서 말하였다.
 
109
“내일은 일본의 새해 명절입니다. 별도로 대접할 것이 없어 마음이 편치 않아 이것을 가지고 왔으니 나누어 드시죠.”
 
110
“정으로 준 것인데 많고 적은 것을 어찌 논할 것이 있겠소. 실로 감사하오.”
 
 
111
28일 을묘.
 
 
112
川上에게 편지를 보내 신년의 예를 표하였다. 잠시 밖으로 바람을 쏘이러 나와 萬松院 후원의 맑은 시내에 이르러 잉어들이 노는 것을 보고 돌아왔다. 집집마다 太陽旗만 꽂혀 있을 뿐 특별히 볼 만한 것은 없었다.
 
 
113
29일 병진.
 
 
114
川上이 말하였다.
 
115
“한국의 혼란이 지금은 조금 안정되어 별도로 크게 놀랄 만한 일이 없습니다.”
 
116
寺尾도 말하였다.
 
117
“얼마 전 저의 아들이 한국 평안도 安州에서 편지를 부쳐왔는데, 한국이 지금은 무사하다고 합니다.”
 
 
118
30일 정사.
 
 
119
통역이 아침에 들어와 말하였다.
 
120
“3일 동안 모두 평안하셨습니까?”
 
121
“별고 없습니다.”
 
122
우리가 새해 인사를 전하였다. 또 다시 떡 한 봉지를 들여보내며 말하였다.
 
123
“나눠 드시지요.”
 
124
“객지에 있으면서 떡 한 봉지를 어떻게 마련한 것이오.”
 
125
통역이 말하였다.
 
126
“요사이 고국의 소식은 없습니까?”
 
127
“없습니다.”
 
128
병정 한 사람이 洋紙를 가지고 와서 큰 글씨로 세 글자를 써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상점에 걸려는 것이었다. ‘貨泉湧’이라는 3자를 써 주었다. 그리고 또 두 줄의 주련 한 폭을 써줬는데 ‘銅山234)竝聳黃金府 銀海環流白玉庄’이라는 구절이었다.
 
 

 
129
각주)
 
130
223)  원문 ‘頹岳’은 ‘頹山’과 같다. 泰山이 무너진다는 뜻으로 선생의 죽음을 말한다.(「禮記」 檀弓 上)
131
224)  원문 ‘滕’은 ‘勝’의 잘못으로 보인다.
132
225)  원문은 「論語」(里仁)의 ‘君子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에서 취한 것이다.
133
226)  義兵에 투신한 일을 겸손하게 한 표현.
134
227)  江革은 後漢 사람. 효성이 지극하여 江巨孝라고 불렀다. 관직은 諫議大夫에 이르렀다.(「後漢書」 39권)
135
228)  朱買臣은 前漢 사람으로, 젊어서 땔나무를 팔아 생활하면서도 글을 읽었다. 벼슬이 會稽太守, 丞相長史에 이르렀다.(「漢書」 64권)
136
229)  ‘刻舟求劍’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리석음을 말한다.
137
230)  원문 ‘嚴相宮’은 ‘嚴尙宮’의 잘못이다. 嚴妃.
138
231)  죽은 사람의 입에 물리는 옥,
139
232)  혼인을 말한다. 酌水成禮의 준말. 물만 떠놓고 혼례를 이룬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의 혼인을 말하였으나 여기서는 일반 혼인을 나타낸다.
140
233)  ‘賭租’의 잘못으로 보인다.
141
234)  돈을 주조하는 곳. 한나라 文帝가 鄧通에게 銅山을 하사하여 돈을 주조하게 함으로써 매우 부유하게 해 준 일이 있다.(「史記」 125권)
【원문】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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