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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새벽 ◈
◇ 慶州[경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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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1.10~
채만식
1
아름다운 새벽
2
9. 慶州[경주]
 
 
3
해운대(海雲臺) 어떤 여관의 객실에서…… 밤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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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맨 다다미 바닥에 가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내던진 채 멀뚱히 천장을 올려다보고 누워 언제까지고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잊어버린다.
 
5
이러한 육체상의 정신상태와는 따로이 그의 머릿속은 한껏 동요되고 혼란 했다. 여러 가지 헝클어진 상념(想念)이 가득차 겉잡을 수 없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훈련 없는 군중을 몰아다놓아 제마다 저를 주장 하며 제각기 함부로 지껄이며 떠들고 하는 것처럼 무질서한 혼란이요 동요였다.
 
6
그러한 혼란 동요의 와중에서 준은 초초히 '어떻게 할 것인가? ……’ 라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수습 정리하려 앨 쓰던 것이나 이내 그것은 뭇 어지러운 상념의 소음으로 하여 번번이 지워져버리고 말곤 하는 것 이었었다.
 
7
멀리서 밤 바다를 건너 구슬픈 기적소리가 우웅! 길게 울려온다.
 
8
준은 기적소리에 무심코 바른손을 가만히 쥐어본다. 나미의 손길을 잡던 손이다. 아직도 따스하던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칼슘주사처럼 심장으로 화끈히 배어드는 것 같다.
 
9
아까 아침 일찍 나미는 부산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떠났다. 준은 여관에서 묵었다가 선창으로 나가서 그를 배웅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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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어와도 나미는 배에 오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11
"부산선 언제 떠나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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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끔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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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루?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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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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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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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해운 대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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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 아이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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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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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구? 해운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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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경주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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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참! …… "못 견디어 그러면서
 
22
"어쩌믄 이런 때 병환이 나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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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그제야 그만 턱을 오므리고 아랫입술을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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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나 준이나 다같이 둘이서 함께 통영으로 통영서 다시 섬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야 간절했었다. 그러나 서울이라면 혹시 몰라도 말많은 시골인데 아직 그토록 돌연히는 친척이랄지 아는이들 앞에 공공연하기가 자저로운 무엇이 없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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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이 탈 만큼 거진 다 탔는지 북적하던 선창이 엔간히 헤성헤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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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인전 타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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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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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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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그럼 찰 타구서 서울루 도루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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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진 어떡허구?"
 
32
"그럼 통영으루 가구!"
 
33
"………"
 
34
"자아 늦기 전에 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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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서 서울룬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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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승지와 고적 찾아서 나선 사람이 돌아갈 기약이니 조만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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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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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히 가긴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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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쟁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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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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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는 눈으로 가기를 고하고 한 걸음 물러서려다 잠깐 망설이는 듯 하더니 선뜻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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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에 담쏙 다 쥐어지는 안김성 보드라운 살결의 촉감과 배어드는 따스한 온기 …… 그 순간 준은 전신이 푸르르 떨림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미와 만나 이때야 비로소 심장이 높이 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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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는 주었던 손을 빼앗듯 도로 뽑으면서 그대로 배를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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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 걸음이나 그렇게 달려가다가 주춤하고 돌아보면서 고개를 까딱 그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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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병환 조금 나시면 곧 서울루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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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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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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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준은 해운대를 떠나 경주로 가서 내처 보름 동안이나 두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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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적이 있고 그 고적이 모두가 멸치 않는 예술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고, 풀숲을 걸으면 함부로 굴러 있는 주춧돌이나 깨어진 기왓장에도 역사 의한 토막 한 조각씩이 어리어 있고…… 이런 그윽한 옛 도읍에 머무르면서 두루 배회하는 사이 준은 헝클어졌던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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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경주가 초행인 것은 물론 아니었다. 누차 왔었다. 그러나 이번 길에 받은 심리상의 영향은(심리상태가 심리상태이었던만큼) 스스로 특이한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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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雁鴨池)로 계림(鷄林)으로 혹은 포석정(鮑石亭)으로 무열왕릉(武烈王陵)으로 수없이 거닐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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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으로 가서 찬란한 금관(金冠)과 정교한 비취의 패물들과 봉덕종(奉德鐘)과 그 밖에 갖추갖추의 유물들을 보며 거듭 해를 지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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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佛國寺)로 나가서는 사흘 나흘씩 묵으면서 청운교(靑雲橋) ․ 백운교(白雲橋)를 무시로 오르락내리락 혹은 석가탑(釋迦塔) ․ 다보탑(多寶塔)을 감돌며 혹은 함영루(涵影樓)에 지여 서서 세월 가는 줄을 잊어버리기가 몇번인지 몰랐다.
 
54
토함산(吐含山)에도 자주 올랐다. 석굴암(石窟菴)의 그 살아 있는 듯 자비로운 석가여래상(釋迦如來像) 앞에서는 가는 적마다 오래도록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 석굴암에서는(바로 경주서 떠나던 그 전날인데) 문득 이런 생각도 했었다. ── 아주 예서 살았으면 하는……
 
55
조석으로 석여가래상을 우러러보며, 만일 할 수 있으면 염불도 외우면서 속세와 멀리하고 호올로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이미 속세 ── 현실 사회에서 그다지 생각 있는 한 사람이 아닐진대, 물러와서 차라리 부처님께 제도중생의 염불이나마 외우는 몸이 됨직도 할 것 같았다.
 
56
별로이 종교적 신앙을 가진 바도 아니요, 불교의 깊은 교리를 터득한 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직 정성이면 신앙심 이상일 수가 있을 것이요, 정성이면 교리는 아직 몰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57
유구한 역사와 생명 영원한 예술의 분위기에 흔연히 잠기어, 현실에 대 한 관심이 대범하여진 소치라고 할는지, 아뭏든 준은, 어떤 크고 부드런운 손길이 조용히 머리 쓸어주는 듯, 훨씬 안정된 상태에서 반성 결론할 여유가 생겼다. 그것은 마치 밤낮으로 천문대에 들이박혀 천체(天體)의 관측과 연구에 몰두한 학자가 가정이랄지 일신의 신변사에 범연하고 등한키 쉬움과 흡사한 것이었었다.
 
58
마음이 일종 맑아진 것이라고 볼 것인데 한갓 일시적 현상일는지 또는 근본적인 변화일는지 그것은 아직 판단하기 어려운 노릇이나, 그러나 하옇든그와 같이 마음이 맑고 대범하여진 당장의 결과로 나미에게 대한 그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은 수월히 대답을 얻을 수가 있었다.
 
59
그는 나미와의 사귐이 현재 이상 더 나아가서는 심히 불가함을 아프게 깨 달았다. 따라서 이것으로써 마지막 한계를 삼고 이상 더는 나아가지 말리라 했다. 그리고 지금의 소위 '연애하는……’ 감정을 방향을 고치어 누이동생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미를 사랑하리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를 당하여 모든 것을 토파하고……
 
60
하기야 시방 아주 피리어드(終止符[종지부])를 침이 가장 현명하고 군자 다운 처사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미를 일체 만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 일지요, 또는 만나서 "버젓한 안해가……"이 말을 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 일 것이었다.
 
61
준은 그러나 은연한 미련이 있었음인지 미처 거기까지에는 생각이 이르지못 했다.
【원문】慶州[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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