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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새벽 ◈
◇ 우리 집 창의 불빛 ◇
카탈로그   목차 (총 : 11권)     이전 5권 다음
1942.1.10~
채만식
1
아름다운 새벽
2
5. 우리 집 창의 불빛
 
 
3
태평을 작별하고 나서……
 
4
심사가 두루 산란하여, 저녁식사도 하러 나갈 것을 잊어버리고, 고옴곰 소파에 가 지여 앉아 생각이 한만없는데, 용복어머니가 마침 왔다. 특별한 손님인 것은 아니요, 대놓고 빨래를 해다 주는 여인이었다.
 
5
소매를 스치고 지남도 전세의 인연이라고 불도에서는 이르거니와, 금년 바로 정월이었다. 아파트의 소제부로 있던 노인이, 전에 한 동네 이웃에서 살던 여인인데, 지내기가 어려워서 생활에 조금의 보탬이나마 삼을까 하여 그런 거라도 맡아다 하고자 한단다면서, 속옷가지의 빨래를 주어 달라는 청 이었었다. 그러면서, 솜씨가 퍽 깔끔스런 이라 일은 얌전 하게 할 것이고, 또삯은 여느 세탁집보다 덜 주어도 하고, 한다는 말도 했었다.
 
6
삯 같은 것이야 어떠했던 가난한 사람이 그것으로써 생활에 보탬을 삼고자 한다는 데에 준은 두말없이 응답을 했다.
 
7
그런지 삼사일 후에 소제부 노인이 용복어머니라는 그 당자를 데리고 왔었고, 그 길에 와이샤쓰 벗은 것을 두 벌 맡아가지고 갔었다.
 
8
마흔댓이나 되었을까 말까, 의복이 초라하고 기상은 가난과 고생에 찌들고 지쳤음 일시 분명하여, 몹시 초췌한 초로의 여인이었다.
 
9
그러나 그 너붓하니 모나지 않고 부드러움을 간직한 얼굴은 겸하여 어딘지 모르게 품도 있어 보였다.
 
10
언어와 거동도 점잖스럽다. 나이 그만큼이나 되었으면서도 외간 남자의 앞이 조심스러 한편 옆으로 넌지시 비켜 서서 소제부 노인과 준과의 수작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고는 준이 빨래할 것을 챙겨 내놓아서야 비로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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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하고 치하를 하면서 받아가지고 돌아갔다.
 
12
한갓 그저 빨래나 해다 주는 여인이요 아무 상관도 결연도 없는 존재 이거니 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러나 준은 한 사람의 끔찍 온화하고 어질어 보이는 인물 하나를 발견한 것이, 그러고 세탁이라는 하찮은 관계를 통하여 그와 조그마한 생활의 교섭을 가지게 된 것이 실없이 마음에 즐거 웠다.
 
13
그처럼 호감을 가진 때문이라기보다도 어떠한 거래에서든 셈을 또박또박 가린다거나 또는 인색히 굴지를 않는 성미 일 뿐더러
 
14
'어려운 사람이 생활의 보탬을 삼으려고……’라 던 말이 앞을 서, 두 벌의 와이샤쓰 빨래에 이 원을 집어주었다.
 
15
처음 한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내 줄곧 그렇게 세탁집의 세탁값에 비 하여 갑절이 넘는 정도로 후히 치르곤 했다.
 
16
빨래는 그런데 아무래도 전문하는 세탁집의 세탁을 따르지 못했다. 땟 물이 곱질 못하고 다림질이 서투르고 하여, 동대문 밖 광나루에서 산다고 들었는데 다른 것은 그다지 모르겠어도 와이샤쓰 다림질 하나만은 촌태가 나는 것 같았다.
 
17
결국 그래서 일은 세탁집보다도 낫고 값은 헐하고 하다던 소제부 노인의 말과는 반대로 된 모양이었으나 그것을 탓하잔 생각은 없었다. 도시에 의복 이 랄지 신변의 범절에 대하여 세밀한 관심을 가지며 구애할 줄을 그는 몰랐다.
 
18
이런 일도 있었다.
 
19
빨래한 것을 가지고 와 보자기를 풀어놓으면서
 
20
"저어 깃이 겉으루 해졌길래 뜯어서 뒤집어 댔는데…… "하고 잘못이나 저지른 듯이 어렵사리 말을 하는 것이었었다.
 
21
"네에, 수고하섰읍니다!"
 
22
준은 짜장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건성으로 치하를 했다.
 
23
"실두 굵은실루 수웅숭 화서 맘에 안 드시믄 어떡허나 허구…… "
 
24
용복 어머니는 거듭 이런 걱정을 하면서 돌아갔다.
 
25
가타, 와이샤쓰의 깃이 해지면 뒤집어 대는 묘법이 있음을 비로소 안 준은 혼자 미소를 했다.
 
26
준은 깃을 뜯어 뒤집어 댄 그 바느질 자죽 ——— 미싱이 아니고, 또 실이 굵어서 뽄새는 없으나 ———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문득 가족적인 알뜰스럼이 그 바느질의 코코에 면면히 얽히어 있는 것 같아 부질없이 마음이 언짢았다.
 
27
어머니란, 무섭지 않은 어머니, 부드럽고 상냥하기만한 어머니이고 싶은 생각을 우연히 한 것도 이때였다.
 
 
28
노크라고 하는 풍속과는 아예 친해지질 않는 용복어머니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방문 밖에서
 
29
"기세요?" 하고 찾아
 
30
"네에!" 하는 대답 소리를 들은 후 살며시 문을 벙기고 들어선다.
 
31
"수고하십니다!"
 
32
준은 일어서면서 늘 두고 하는 말로 인사를 한다.
 
33
"너무 늦어서…… "
 
34
용복 어머니는 그러면서 보자기에 싸가지고 온 빨래를 풀어 탁자 위에다 놓는다.
 
35
"기대리섰지요?"
 
36
"아뇨!"
 
37
그새 며칠 별루 허는 일두 없이 바빠서 고만
 
38
"……… "
 
39
준은 일원짜리 지폐로 얼마의 돈을 꺼내서 탁자 위에다 놓아준다.
 
40
"약소합니다!"
 
41
"번번이 이렇게 후허게 주세서 하두…… "
 
42
"별 말씀을 다아!…… 빨래는 그리구, 아직 없나 봅니다. 이댐 길에나…… "
 
43
"내 애."
 
44
돈도 내놓았고, 빨래는 아직 없다고 했고, 했건만서도 용복어머니는 전처럼 곧 물러가려 하지 않고, 추움춤 그대로 망설이고 섰다. 무엇인지 하고싶은 말이 있는 듯, 그러나 섬뻑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 입술만 달막 거리다 말고 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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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이내 그런 눈치를 채고
 
46
'왜? 무슨 말이냐고……’
 
47
묻는 듯이 정면해 바라다보면서 말 나오기를 기다린다.
 
48
그러는 시선을 만나서는, 더는 머뭇거리고 있을 수가 없었던지, 용복 어머니는 가까스로 기운을 짜
 
49
"저어, 다른 말씀이 아니구…… "하고, 겨우 운을 따놓는다.
 
50
준은 십상 아마 돈 선하를 해달라는 교섭인가 보다고 생각 하면서
 
51
"말씀 하시지요?"
 
52
"저어 좀 염치 없는 청이 있어서…… "
 
53
"……… "
 
54
"두구 그 모가치 빨래두 해다 드리께시니, 저어…… "
 
55
"네, 알았 읍니다…… "
 
56
준은 돈지갑을 다시 꺼내 들면서
 
57
"조금이 라면 지금이라두 돌려 드리죠……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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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칠 원만…… "
 
59
"칠 원요?"
 
60
막상 얼마라는 것은 짐작할 바이 없었어도 설마 돈 겨우 칠 원일 줄이야 듣고 나니 생각 밖이었다.
 
61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칠 원인 이 의외로울 아무런 큰거도 없는 일 이었다. 빨래삯으로 몇십 원이고 백 원이고 선하를 청한다면 그야말로 의외로 울 노릇 이었다. 응은 하고 아니하고는 딴 문제라 치더라도……
 
62
돈이 모두 십원짜리뿐이었다. 준은 십원 한 장을 꺼내서 먼저와 같이 탁 자위에다 놓아준다.
 
63
용복어머니는 오늘치 빨래삯으로 처음에 내논 돈은 손을 대지 않고, 마침 그게 삼 원이었다. 나중의 십 원만 집는다.
 
64
"그럼 이걸랑 도루…… "
 
65
"그 대루 다아 가지구 가십시요!"
 
66
"칠 원 말씀을 했는데 더 주시니깐 미안해서…… "
 
67
"십 원이나 칠 원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68
"고맙기야 허시지만 갚을 일을 생각 해서…… "
 
69
"칠 원만 꼬옥 소용이 되십니까?"
 
70
"내애, 칠 원만 더 있으믄 오늘은…… "
 
71
"……… "
 
72
준은 이 여인의 차라리 그처럼 화폐의 열 단위(十單位) 미만의 단위를 가지고 그 범위 안에서 그 척도로써 빠득빠득이 생활을 자질하는 생활이야말로 오붓하니 군것의 침노할 빈틈과 딴 걸 돌아볼 여념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그 긴박(緊迫)하고 핍절스런 품이 '가장 내용이 알찐 생활’ '가장 생활적인 생활’이 아닐는지 싶었다. 더우기 화폐라는 것이 물자 소비(物資消費) 의 매개물일진댄 물자를 헤피 할 수 없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한층 더 그러하리라 싶었다.
 
73
"그걸라컨 그럼 갚을라 마시구 댁의 애기들 무어 맛난 거래두…… "그러다가 준은 생각이 나서 묻는다.
 
74
"참 애기들은? 여럿 있으십니까?"
 
75
지날말 삼아서가 아니라 아주 긴하게 묻는다. 모친 강부인을(그 점 하나만은) 탁했든지 준도 역시 어린아이들을 매우 좋아하였다.
 
76
"지끔 둘 있답니다!"
 
77
"네에!……그럼 남맨가요오? 둘이 다아 아들애긴가요?"
 
78
"오뉘랍니다…… 토옹 셋을 두었다가 맨 큰아인 명색 출가라구 시키구…… 저 업때…… "
 
79
"혼인을 하섰어요? 그동안에?"
 
80
"내애 숭내만 냈죠!"
 
81
"온 소문두 없이!……"
 
82
준은 속으로 그런 줄 알았으면 무얼 부조라도 좀 했더라면 피차에 즐거웠을 걸 생각 하면서
 
83
"국수나 먹으러 오라구 청하시는 게 아니라!" 하고 웃는다.
 
84
웃음엣말이었지만 일변 진정이기도 했다.
 
85
지극히 가난하게 시집을 가는 그 새악시, 그는 아마 어머니를 닮아서 퍽도 유순하고 얌전스럴 것이었었다. 이쁘게 생기진 않았어도 오래비가 누이동생이 이쁜 것처럼 그렇게 마음에 이쁠 것이었었다.
 
86
그러한 그를 위하여 경사로운 혼인날에 패물이 되었던 옷감이 되었던 가난하게 살다 가난하게 시집가는 그로서는 여지껏 가져보지도 못하고 가져 볼 마음도 내지 못했을 무어나 화려하고 값진 선사를 가만히 손에 들고 가서 그를 즐겁게 해주며 행복하라고 축복을 해주고 간략하나 진심껏 권하는 두어 잔의 술과 국수를 대접받으면서 그들의 기뻐함을 함께 기뻐하고.
 
87
준은 이렇게 생각하면 당연히 할 노릇을 못하기나 한 것처럼 민망한 것도 같고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였다.
 
88
'……소문도 없이 그동안에 혼인을 했느냐고. 국수나 먹으러 오라고 청 할것이지 그랬느냐고……’
 
89
이 두 마디 말의 효과는 매우 컸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이나 그 말로써 그동안의 서로간 '노방엣사람’인데서 오는 등한감(等閑感)과 수스럼이 일시에 풀리면서 훨씬 의(誼) 좋아지고 무관함을 느끼겠었다.
 
90
용복어머니는 저절로 미소를 드리우면서, 그러나 쓸쓸히
 
91
"아이, 혼인이나마나 하두 참 무엇 헌…… "하다가 말끝을 흐리고 만다.
 
92
"혼인은 다 일반인데 번화하게 차리지 못했다구서 경사스럽지 말란 법이야 있읍니까?"
 
93
"쯧, 그야 그럴 테죠만!"
 
94
"신랑은? 무얼 하시는 분이죠?"
 
95
"내애…… 거저…… "
 
96
"시굴인가요?"
 
97
"아뇨, 저어…… "
 
98
용복 어머니는 차차로 더 거기에 대한 여러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 였다.
 
99
준은 막상 어떤 꺼리는 곡절이 특별히 있음인 줄은 알 바이 없고, 한갓 나의 궁졸함을 남에게 들추어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항용 가난한 사람네 들의 일반 편심이거니 할 뿐이었다.
 
100
그렇든 저렇든 구태여 남을 괴롭힐 며리가 없는 것이라 준은 이내 화제를 돌리어
 
101
"그러 구서 그 아래루 둘이 있으시군요?"
 
102
"내애."
 
103
"학교는 보내시구요?"
 
104
"안직…… 명년에 둘째년을 들여보내구 내내명년에 또 막내녀석을 들여 보내구 둘을 한꺼번에 보내야겠어서 큰 시방 걱정이랍니다! 큰아이 하나만 뚝섬 학굘 보내서 보통과 겨우 졸입시키게두 여섯 해 동안 뼈가 빠졌는데…… "
 
105
"고생 스러두 학굔 보내서야지 어떻게 합니까!"
 
106
"쯧, 그럴생각은 생각이지만 서두…… "
 
107
"지금 그러니깐 여섯 살 네 살 그런가요?"
 
108
"일곱 살 다섯 살 그렇답니다."
 
109
"한창 시방들 장난 많이 할 때루군요!"
 
110
오랜 이웃집 아주머니와 터놓고 이야기하듯 한다.
 
111
"애기들이 어머니 이른 말 잘 듣습니까?"
 
112
우스운 질문이나 저 자신의 어렸을 적을 여겨서 하던 말이었다.
 
113
준은 너무도 어머니의 이른 말을 잘 듣는 아이였었다.
 
114
어머니가 한번
 
115
'이래라!’ 하면 곧 그대로 좇았다.
 
116
어머니가 한번
 
117
거기 꿇어앉았거라!’ 한다든지 혹은
 
118
'거기 앉아서 글 읽어라!’ 한다든지 하면 밤새도록이라도 진종일이라도 꿇어앉았고 글을 읽고 했다.
 
119
어머니가 한번
 
120
'그럼 못쓰느니라!’ 하면 꿈쩍 못하고 말았고, 무슨 일이 있든지 그에 거역을 하지 못했다.
 
121
비교적 내면적이요 명랑 쾌활하질 못하고 침울한 성질은 성질이었지만 그렇더라도 한참 자랄 무렵의 어린아이임엔 다름이 없었다. 거침없이 바깥으로 싸다니고 구들장이 꺼지도록 쾅당거리며 뛰놀고 소리지르고 모든 것을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해보고 싶어하고 이런 선머슴이긴 일반이었다.
 
122
강부인은 그런 것이 다 쌍스럽고 호로스럽다 하여 어린 준을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어른처럼 의젓하게 버릇 가르치며 닦달하기로만 들었다.
 
123
이런 준은 사지를 결박지운 것같이 꼼짝할 수가 없고 답답했다. 늘 마음은 무겁고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어머니의 시키는 노릇이니 하릴없었다. 싫어서 싫어서 못견디면서도 억지로 억지로 그 영을 받들었다. 만일 일호 거역을 하고 보면 벼락 같은 꾸중과 사정없는 달초가 내리기 때문이었다.
 
124
'무서운 어머니!’
 
125
준의 어렸을 적 모친 강부인에 대한 감정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좋은 어머니, 임의롭고 정다운 어머니, 자애스런 어머니, 이러한 어머니에의 즐겁 고행 복된 기억은 별반 없었다.
 
126
장성한 후에야 준은 비로소 모친이 그와 같이 무서운 어머니로만 시종 한 연유를 이해는 할 수가 있었다.
 
127
버릇이 없다든지 불량하다든지 학업을 게을리한다든지 그 밖에 좌우간 남의 눈에 거슬리고 벗는 행동을 하여
 
128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라 할 수 없다!’
 
129
'홀에미 자식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
 
130
이런 평을 혹시라도 듣게 될까 저어해서, 그래 엄하고 준열히만 가르치며 단속을 했던 것이었다.
 
131
희미하나마 준은 부친이 작고하던 열한 살 이전과 이후의 기억을 더듬어 모친의 태도를 판단할 때에 역력히 그것을 깨우칠 수가 없었다. 부친의 생존 시절에도 부친보다는 모친이 준의 훈육과 교도를 주장하다시피 했었고 그때에도 부친에 비하여 모친이 훨씬 엄격하게 굴기는 굴었었다. 부친한테 종아리를 맞는 일은 없어도 모친한테는 가끔 있었다.
 
132
그러나 고만한 엄격쯤 부친의 별세 후로부터 시작된 엄격함에다 대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지 않은 걸로 얼마나 꾸지람을 들었으며 매를 맞고 했던고!
 
133
고옴곰 어떤 때 생각을 하노라면 한편으로는 남달리 깊은 애정이 없던 것이 아니면서도 그것을 억제하면서 한갓 엄격하게만 자식을 다루어오던 당시의 모친의 태도하며 심정이 일변 동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암만 이해와 동 정은 할 수가 있어도 지금에 이르러 와락 그 모친에게 향하여 정이 솟는줄은 모르겠었다. 철도 날 대로 났고 또 남의 자식 된 윤기상(倫氣上) 마음 가운데 모친을 범연히 여긴다거나 괄대를 하던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종시 탐 탁하고 알뜰한 자식 노릇은 하여지질 않는 것이었었다.
 
134
'무서운 어머니’를 '섬기거나’ 했지 어리광도 응석도 부리지 못하고 자란 준은 자연 그래서 순한 여인네를 보면 '무섭지 않은 어머니렷다!’
 
135
"저런 어머니한테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지 몰라?" 하는 부러움과 호기심이 나곤 하던 것이었었다.
 
136
용복어머니는 준의 그런 돌연한 질문을 별로이 이상스러워하지 않고 천연히 대답한다.
 
137
"이른 말 잘 듯는 게 다아 무업니까! 당최…… "
 
138
"더러 때려주구 하시나요?"
 
139
"어따 손 댈 데나 있어야 때려주구 말구 허죠?"
 
140
"………"
 
141
준은 이 여인다운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142
"기집아인 둘을 다 성가시잖으게 길렀는데 끝엣것 사나이놈은 어디서 그런 별종이 생겼는지!…… 장난 심허구 고집 세구…… "
 
143
"그래두 거져 내버려두시는군요?"
 
144
"쯧, 그렇죠!"
 
145
"………"
 
146
"그러나마 즈이 아버지 되시는 이가 천하 용하디용한 양반이 돼서요…… 암만 어린놈이 말썽을 부리구 이른 말은 안 듣구 해두 죄외 받아주시지 좀초롬 이노옴 소리 한번 없답니다!"
 
147
"………"
 
148
"그러시군, 노오 말씀이, 가난을 타서 남의 앞에 나간다치면 가뜩이나 추레해 뵈구 허는데, 무슨 탁에 집안에서꺼정 자식 길 꺾어줄까 보냐구…… 아주 질끔을 하시기 때문에, 더러 따끔하게 좀 때려주구 싶어두 못 한답니다!"
 
149
"참, 바깥으런은 무얼 하시나요?"
 
150
"………"
 
151
용복어머니는 곧 대답을 않고, 방긋이 웃더니
 
152
"금점 판으 가 기신답니다!"
 
153
"금점, 요?"
 
154
"내애!"
 
155
"금광 말씀이죠?"
 
156
"내애!"
 
157
"금광을…… 걸 하시나요?"
 
158
"금광을 하기나 했으면 그래도 괜찮으라구요?"
 
159
"그럼?"
 
160
"덕대합니다!"
 
161
"덕대?"
 
162
"내애!"
 
163
금광의 덕대라면 준의 개념껏은 천하 우락부락하고, 소위 금일 충청도, 명일 전라도의 막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방금 이야기를 듣고 얻은 상상으로 하든지, 또 그 아낙인 용복어머니의 품 있고 쌍스럽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보든지, 노상 그런 사람일 것같이는 생각되지 않았다.
 
164
"애초부터 그 길에 종살 하섰나요?"
 
165
"아뇨. 한 칠 년 되는지 마는지…… "
 
166
"그 전엔?"
 
167
"이럭저럭 거저…… 장사두 허구, 더 들이껴선 월급생화루 지내기두 허구…… "
 
168
그 말에 준은
 
169
'…… 하다가, 돈이나 좀 잡아볼까 하구서?……’ 하고 묻는 대신
 
170
"금광이면 세월이 좋다지 않습니까?"
 
171
"만날 좋니 무슨 소용이 있나요?"
 
172
"?……"
 
173
"것두 내 손으루 금점을 헌다거나, 하다못해 분광이래두 헌다믄 술 바랄수두 있구 허지만…… "
 
174
"……… "
 
175
"우리 집 그이가 허시는 건'판띄기’ 덕대라구 일꾼들 데리구 남의 금 캐주 구서 일꾼 품삯 나오는 데서 한 깃 차례 얻어먹는 거래요!"
 
176
"………"
 
177
"세상 못해 먹을 건 금점판 판띄기 덕대라는데!……"
 
178
"………"
 
179
"행여 그러다가 누가 밑천이래두 대주면 분광이래두 한 구더기…… 존자리 눈익혀 두었다 한 구더기 파볼까 허구서…… 쯧!"
 
180
"………"
 
181
준은 속으로 역시 꿈이 있는 것이로다 하였다. 그러고 좌우간 흥미 있는 인물인 듯하니 종차 기회를 타서 한번 만나보리라 유념을 했다.
 
182
"아이, 날 좀 봐! 얌체없이 서서 얘길 늘어놓구!"
 
183
용복어머니는 그러면서 보자기와 돈을 챙겨 들고 한걸음 물러선다.
 
184
"주서서 자알 쓰겠읍니다만 이걸 갚아 드리자면…… "
 
185
"용복 아버지가 인제 금광으로 큰수 잡으시거들랑 갚으십시요그려?"
 
186
"하늘서 별 떨어지길 바라지, 어느 세월에…… "
 
 
187
광화문 네거리를 향하고 걸어오면서 내내 용복어머니는 그 손님, 준을 두고 생각이다.
 
188
볼수록 얌전했다.
 
189
인정 있고……
 
190
점잖 스럽 기도 했다. 뉘 집 젊은인지 집안이 행신하는 집안인 성불렀다.
 
191
사세도 군색하지 않은 모양이고……
 
192
점순 할아버지(천거해 준 소제부노인) 말이, 대학교 출신이고 하댔으니 훌륭한 자격자일 것이다. 서른은 좀더 되어 보이는데 어째 객지에서 혼자 그렇게만 늘 지낼까.
 
193
아직 장가 전인지, 그렇잖고서야 거기 와서 있은 지가 ( ) 년이나 된다는데, 혹시 상처라도 했거나……
 
194
여기까지 저절로 생각이 미친 용복어머니는 필경
 
195
'우리 용순이도!……’ 란 소리를, 거진 입밖에 내어 중얼거린다. 용순이란 요 전에 혼인을 했다는 맏딸이다.
 
196
이미 혼인을 하여 벌써 다 지나간 일이요, 또 그렇지 않더라도 처지가 서로 월등히 다르며 도시에 생각이나마 하는 것부터가 부질없은 노릇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꿈을 이치와 사리(事理)대로만 꾸는 것은 아니었다.
 
197
용복어머니는 비각(碑閣) 앞에 가 충그리고 서서 무한 망설여쌓다가 이윽고 일단 지나친 정류장으로 도로 가서는 황금정행의 전차를 탄다.
 
198
용순이 청진동서 살고 있었다. 잠깐 들러서 보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199
그러나 그동안 번번이 그래오듯이 오늘도 역시 '조금 더 참았다 떳떳이 시집으로 들어가거들랑……’ 이렇게 단념을 하고 안 떨어지는 발길을 돌려놓던 것이었다.
 
200
왕십리 종점에서 전차를 내려 성동(城東) 정거장을 바라보고 종종걸음을 친다.
 
201
전차로 곧장 동대문으로 가서, 게서 바로 광나루(廣壯里) 궤도 차(軌道車)를 타면 쉽고 편키는 하지만 차삯이 이십 전이 드는 대신, 왕십리와 성 동사이를 도보로 연락하면 오 전이 덜한, 십오 전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202
길바닥만 내려다보면서 부지런히 걷다가, 앞에서 밀고 오는 엿수레와 부딪칠 뻔했다.
 
203
몸을 비키면서 보니, 여러 가지 그득히 벌여놓은 엿들이 하도 소담 스럽고 좋았다. 목침 덩이만씩한 검은 엿, 흐벅진 땅콩범벅, 팔서리 같은 깨엿, 모두 먹음직스럽다.
 
204
노상 그 앙징한 제 팔뚝을 쥐어잡아 보이면서, 용복이가
 
205
"엄마, 나, 이마한 엿!……" 하고 조르던 생각이 문득 났다. 그러면서 조금 아까 그 손님이 ——— 준이
 
206
'…… 댁의 애기들, 무어 맛난 거나……’ 하던 말이 아울러 생각났다.
 
207
한 가락은 용복이 몫으로, 용옥이 몫도 한가락 해서 두 가락을 샀다. 이 십전을 남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차삯 오전보다 훨씬 아까운 줄을 몰랐다.
 
208
일곱시가 지나고 깜깜 어두워서야 겨우 광나루에 당도하여 집으로 향했다. 반달음질을 쳤다. 두 어린것이 어찌나 하고 있나 싶어 허둥거리며 정신없이 달려갔다.
 
209
이윽고 집 뒤창이 빤히 불에 비쳐 보였다. 어떻게도 반갑고, 우선 마음 이 뇌는 지……
 
210
"용복아? 용옥아?"
 
211
거푸 부르면서, 싸리문도 없는 마당으로 들어선다.
 
212
"어머니이!"
 
213
용옥이가 앞문을 박차고 뛰어내려와서 아랫도리를 안고 늘어진다.
 
214
"무섰지?"
 
215
"응!"
 
216
"용복인?"
 
217
"어태 울다가 자!"
 
218
"절 으쩌니!"
 
219
용복이는 차디찬 방바닥에 가 새우처럼 꼬부라트리고 잠이 들었다. 눈물자 죽이 말라붙었다.
 
220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주먹으로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더니, 저 누웠던 자리를 휘휘 둘러보면서
 
221
"내 엿!" 하고 칭얼댄다. 꿈을 꾼 것이었다.
 
222
"이마한 내 엿! 흐응!"
 
223
"오냐 엿 여깄다!"
 
224
용복어머니는 얼른 사가지고 온 엿을 손에다 들려준다. 그러면서 무엇 이 아마 씌워대서 엿을 사게 됐던가 보다 싶고,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 이 가슴 뿌듯이 차올랐다.
【원문】우리 집 창의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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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4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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