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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새벽 ◈
◇ 부질없은 우연 ◇
카탈로그   목차 (총 : 11권)     이전 6권 다음
1942.1.10~
채만식
1
아름다운 새벽
2
6. 부질없은 우연
 
 
3
준은 약속한 시간 열한시에 태평과 나미를 만나러 마침내 셈비끼야엘 가지 않고야 말았다. 그러고서 경성역으로 달려나가 고향 내려갈 차표를 사기까지에 성공을 했다.
 
4
실로 성공이라고 함직한 것이었다. 번연히 파탈과 비극이 전제된 떳떳치못한 연애에의 모험을 탐하는 대신(그 유혹을 물리치고) 이십 년 소박하던 옛 안해를 아뭏든 찾아가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
그는 간밤을 잠을 못 이루어가면서 나미와의 연애를 생각하며 지냈다. 가슴은 흡사히 이십 안팎의 어린 사람이기나 한 것처럼 설레었다. 그는 나미와의 연애가 벌써 말 짜듯이 다 짜놓은 기정 사실인 것같이 여겨졌었다.
 
6
그것이 즐거우면서도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태평에게 한 말대로
 
7
'버젓한 안해가 있는 몸이……’ 라는 생각이 엄연히 앞을 막곤 하던 것이었었다. 파탈이 전제된 연애, 그것은 번연히 알면서 죄와 비극을 장만함이었다. 단(甘味[감미]한) 비상을 마시기처럼 두려운 일이었다.
 
8
마시지 말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서 철없이 마셔버릴 수도 없고, 단 비상은 결국 슬펐다.
 
9
아침이 되자 일찌거니 일어나서 소쇄를 마치고, 아파트 식당에서 조반을 먹고, 그러고는 출입할 채비를 말끔히 차리고서, 하옇든 시간을 기다렸다. 진득이 있지를 못하여 방안을 오락가락 거닐기도 하고, 그러다간 소파에 가 잠깐 앉았는가 하면, 또 일어서서 창 앞으로 서성거리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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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시 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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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나가 보나?’
 
12
그러면서도 선뜻 나서진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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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진거진 열한시가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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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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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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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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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엔 태평군 말짝으로 결혼을 아니하고는 죽을 지경까지 이르러! ……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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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이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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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20
'이혼토록은! 이혼토록은! 나만 지금부터 행복되자고 이혼을 하다니? 영영 막가는 길이 아닌가! 오직 한가지의 불쌍한 위안조차 뺏는 짓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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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머리를 커다랗게 흔들었다.
 
22
'남의 청춘을 그대도록 야속히 짓밟아 주고서 인제 내일 모레가 사십인데!…… 사십이면, 여자로 나이 사십이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청춘은, 인생은 영구히……’ 하다가 준은 별안간 "아!" 하고 소스라쳐 놀랐다.
 
23
안해 서씨의 나이 서른여덟에 불원 사십이요, 그리하여 속절없이 그대로 늙고 만다는 것을 지금 새삼스럽게 알았거나 깨달은 바는 아니었다. 바로 어제만 하더라도 태평과 더불어 그런 이야기를 했으되, 이다지는 결리며 아픈 줄을 몰랐었다.
 
24
했던 것이 오늘은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사실이 놀라왔다.
 
25
'결혼 초야에 그 못당할 욕을 보여주어…… 처녀로 이십 년을 늙혀와…… 완전히 무덤 속의 청춘이었다!’
 
26
'무덤 속에서 청춘을 보내고 나이 서른여덟…… 올과 내년이 지나면 마흔…… 마흔으로 그 사람은 인생은 그만이다!…… 무덤 속에서 살아온 청춘이 무덤 속에서 마침내 인생을 지우고 만다!’
 
27
준은 모골이 송연함을 느꼈다. 도저히 그대로 잠자코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제 몸에서 무서운 불멸의 죄악이 쉴새없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방금 집이 황황 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마음 다급함과 공포에 푸르르 몸이 떨렸다.
 
28
나미도 연애도 태평도 죄다 없고
 
29
'어떻게든 무슨 도리를 차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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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속으로 외치면서 방을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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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구 하나 갖추어 들지 않고 경성역으로 달려나왔다.
 
32
열한시의 부산행(釜山行) 준급행을 행여 탈 수 있을까 했으나 많이 미급 이었다.
 
33
그 다음 열한시 이십분의 대전행(大田行)은 완행도 완행이려니와 대전서 호남선과의 연락이 더디었다. 부득불 열두시 오십분의 급행을 기다려서 타는 수밖에 없었다. 역시 연락은 마찹지 못했으나 급행이어서 마음 산란한 이 판에 속이라도 후련할 터이었다. 연락이 정히 불편하면 대전서 유성온천에 들러 하룻밤 유해 갈 셈치고 좌우간 이대로 떠나놓고 보는 것이라 했다.
 
34
시간이 한 시간 반 넘겨 남았는지라, 차표 사가지고 역 앞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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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잊었던 나미와 태평이 비로소 생각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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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시 반이 채 못되었다. 시간 에누리를 하는 줄만 알고서 아직도 까막까막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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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이 기다리고 있거니 하매, 나중 일이야 어떻게 되는 말든, 사뭇 가보고 싶은 생각이 꿀안 같았다. 일껏 차례 돌아온 행복을 못본 체 외면을 하여 무단히 놓쳐버리기가 아까운 것도 같았다.
 
38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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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어서지는 못했다.
 
40
마침 축음기에서 「비창교향악」이 울려나왔다.
 
41
어렴풋이 그 곡조인 것만을 분간을 하나, 음악에 비교적 귀가 무딘 그는 곡의 내용에서라느니보다도 「비창교향악」의 명칭에서 방금 저 마음의 '비장’을 느꼈다.
 
42
전화라도 걸고 태평에게 무어라고든 가지 못하는 발명을 할까 하였으나, 그리고 적이나 그것이 친구를 대접하는 도리일까 하였으나 그러노라면 필경 불 잡히기 가 십상일 터이니 난감스럽다.
 
43
못 받아볼 때 못 받아볼망정이라도 명함에다 간단히
 
44
"고향에서 급히 부르는 전보가 왔기로 총총히 내려가기에 언약을 지키지못하노라." 는 사연을 적어서 메신저에게 들려보내고 말았다.
 
45
찻간은 언제나 일반으로 붐벼 가까스로 한 자리를 얻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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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차가 드디어 떠나고 하니 그제서는 더럭 걱정이 솟는다.
 
47
어떻게든 무슨 도리를 차려야 하느니라고, 시방 허겁지겁 이렇게 내려는 간다지만 내려가기로소니, 가서 무슨 도리를 어떻게 차릴 것인지가 막연했다.
 
48
하기야 새로이 남편으로 돌아가 '이십 년 만에 비로소 그를 안해로써 찾는 것’이 오직 하나의 좋은 도리일 것이었다. 그렇것만 거기엔 도무지 자신이 나지가 않았다. 오히려 예의 공포증(恐怖症)이 어느새 벌써 돌지를 않는가. 보나마나 집에 당도하여 눈앞에 그가 얼찐만 하여도 가슴이 맞 방망이를 치고 사족이 떨려 똑바로 한번 치어다보지도 못하고 말 참이었다. 그러니 정히 그럴 바이면 이 행보가 아무 소용도 없는 노릇이다 싶고 후회스런 생각이 나기도 했다.
 
49
차가 수원역(水源驛)에서 잠깐 머무를새 준과 마주 앉았던 손이 내리고자 리가 비었다. 서서 가는 사람도 많아, 이내 양장으로 차린 여자가 들어 앉았다.
 
50
무심코 그를 보는 준은 깜짝 놀랐다.
 
51
어쩌면 그다지도 같은지.
 
52
후리한 몸매…… 시원하고도 총명이 어리어 있는 이마…… 영롱한 눈초리가 좀 긴 듯하다.
 
53
도고하고 다분히 고집 세어 보이는 코…… 갸름하니 하관이 빠르고 작은 입과 작은 턱…… 어제 석양에 태평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미를 두고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 이었다.
 
54
이상한 일도 있다고 신기스러워하다가 정말로 그는 놀라운 것을 보았다.
 
55
여자가 우선 들어다 놓는 조그마한 여행가방의 명함꽂이에 꽂힌 명함에가 또 렷또렷이도 '吳奈眉’(오나미)'라고 박여 있지를 않는가.
 
 
56
태평은 준이 설마 그런 딴전을 하고 있는 줄을 알 턱이 없고 셈비 끼야에서 까맣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미도 물론 데리고 같이 왔었다.
 
57
나미는 실상 아침에 갑자기 욕지도(欲知島)에 있는 그 부친이 병이 침중 하다는 기별을 받고 열한시차로 떠나 통영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58
그런 것을 태평이 열한시차나 열두시 오십오분차나 저기 가서 당 도하 기는 매일반이니 한 열차 늦게 떠나고,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행구까지 다 차리게 하여 데리고 왔었던 것이다.
 
59
열한시가 그대로 지나가고 십 분 다시 이십 분 다시 삼십 분, 삼십 분이 넘도록 감감소식이 없자 태평은 기다리다 못해 아파트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방문이 잠기고 나갔다는 대답이요 몇시에 나갔느냐고 물으니 아마 열한시 전에 나간 듯하다는 것이다.
 
60
"그렇다면 벌써 두 번도 오고 남았을 겐데!"
 
61
태평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도로 자리에 와 앉는다.
 
62
새로 가져다 논 아이스크림을 뜨다 말고 나미가 건너다보면서 묻는다.
 
63
"누군데 그러우, 오빠?"
 
64
"내 친 군데…… "
 
65
"꼭 만나야 할 사람이우?"
 
66
"응…… 냄이두 성명은 혹시 알걸? 임준이라 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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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
 
68
"소설 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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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70
"아나?"
 
71
"작품 꼭 하나 읽었는데…… 토옹해서 셋인가밖에 없대 드만 서두…… "
 
72
"어떻든 고?"
 
73
"하나만 읽구서 다안 말할 수 없지만, 예술이 그럴래선 고통이지 어디 낙(樂) 이우?"
 
74
"흐음…… 사람은 착하고 참 좋니라!"
 
75
"………"
 
76
나미는 그저 귀넘겨 듣고 만다.
 
77
열한시 사십분이 되었다.
 
78
태평은 꺼내 보던 시계를 도로 넣으면서
 
79
"이 문딩이가 어디로 새버린 게로다…… 전차에 치어 죽었든지…… "하고 악담을 한다. 조금 짜증이 난 것이다.
 
80
그러나 곧
 
81
"그 놈의 아아를 사촌매부를 좀 삼을까 했더니…… "하면서 싱그레 웃고 나미를 넘겨다본다.
 
82
"뭐유?"
 
83
"아니다! 내 혼자 하는 말이다!"
 
84
"………"
 
85
나미는 그제서야 비로소 태평이 이러는 속을 알았다.
 
86
"가자!……"
 
87
태평은 벌떡 일어선다.
 
88
"가서 즘심이나 묵고…… 즘심 시켜 묵고 떠나자면 시간이 바쁘겠다!"
 
89
나미도 따라 일어섰다. 무엇인지 모를 조금 섭섭한 것 같았다.
 
90
둘이는 명치정의 뎀뿌라 집으로 향했다.
 
91
얼마 동안 말없이 걷다가 태평이 신칙하듯 일러들린다.
 
92
"가서 아버지 병관이나 잘해 드리고 있거라?…… 배편이 마침 없거들랑 가시 끼리라도 해달라고 해서 내일 바로 건너가게 하고?"
 
93
"내애."
 
94
"아버지 병환 좀 우선하시다고 곧 도로 올라오지 말고오?"
 
95
"왜?"
 
96
"내 한 달 예정이니 다녀올 때까지 기대리고 있어!"
 
97
"아이 갑갑해!"
 
98
"그러고오…… 장두식군은 나는 절대 반대로다!"
 
99
"………"
 
100
"그 군이 한편 생각하면 믿음직스런 위인은 위인이지만 대체로 정치쟁이(政治家), 실업가(實業家) 들이라껀 아낙을 밥은 배불리 먹여도 맘을 질겁게 해줄 줄은 모르느니라!"
 
101
"호호호! 오빤 그 정치쟁이 실업쟁이 아니우?"
 
102
"나야 사람 됨됨이가 근복적으로 우수하지 않나! 허허허허!"
 
 
103
나미는 시간 빠듯이 경성역에 당도해 나오느라고 자리를 잡지 못 하고서 수원까지 선 채로 왔었다. 그러다 마침 가까이서 자리가 나는 것을 보고 와서 겨우 앉는다는 것이 하필 달아나다시피하는 사람과 무주 앉게 되었던 것이다.
 
104
준은 이건 필시 무엇이 시키는 노릇이로다 했다.
 
105
혹시 메신저에게 적어보낸 명함을 받아본 것이나 아닌지, 그러고서 넌지시 이렇게 따라보낸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106
그러나 가사 그 명함을 받아보았다 치더라도 태평으로 앉아서 구차히 이런 아쉰 짓은 단정코 할 까닭이 없을 터이었었다. 태평 그 자신이 쫓아왔다면 그건 또 몰라도……
 
107
그러니 역시 우연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는데, 우연하고는 너무도 공교로운 우연이어서 '제삼의 의사’(第三意思)라는 걸 느끼지 않지 못하겠었다.
 
108
한편으로는 성명이 같은 딴 사람이나 아닌가 하는 의혹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진실로 위험한!) 가정은 일부러 돌아보지 않고 짐짓 외면을 했다.
 
109
여자는 조심하며 들어오더니 외투를 우선 벗어 걸고 가방으로부터 집지를 꺼낸 후 커다란 과실 바구니서껀 선반 위에다 얹어놓고 하고는 비로소 자리에 앉는다. 앉으면서, 그러고 앉아서도 젊은 남자의 앞이라서 높이 드러나는 앞정강이를 조심하여 마지않는다.
 
110
그러는 사이 준의 시선은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한번도 빗기지 않는다. 저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고 하는 노릇이라 심히 체모가 아닌 줄도 또한 의식 하지 못하던 것이다.
 
111
"시악시 보소, 어디까지 가는기요?"
 
112
나란히 앉은 노파가 묻는다. 그와 나란히는 이 노파가 앉았고 준의 옆에는 시골 영감이 앉았고 했었다.
 
113
여자는 마악 잡지를 펴려다가 고개를 돌린다. 그의 대답이 준에게는 매 우기대 스럽다.
 
114
"저어 통영꺼정 가요."
 
115
통영이면 태평이 있는 곳이다. 인제는 갈데없는 '그 나미’요 성명 같은 '딴 나미’는 적실히 아니었다. 준은 아주 안심이 되었다.
 
116
"그럼 데구(大邱) 지나가제에?"
 
117
노파가 다시 묻는다.
 
118
"내애."
 
119
"아이고 십상 잘데었다! 데구 가거든 날로 부디 좀 일러 주소 잉?"
 
120
"내애, 알으켜 드리께요?"
 
121
고개를 까댁까댁하면서 상냥히 대답을 하는 양이 소녀같이 앳되고 어떻게도 귀엽성스런지 몰랐다.
 
122
차는 가난한 정거장을 무시하고 호기롭게 달린다.
 
123
차창 바깥으로 연방 다가오는 전야(田野)와 산이며 언덕은 아직도 이월이라 한결같이 여위고 어설프다.
 
124
스팀이 포근한 관계도 있겠지만 차창으로 쬐어드는 햇살은 그러나 어디라 없이 맑고 보드라와 조금은 봄을 느끼게 한다.
 
125
여자는 맑은 그 햇빛을 손등에 받으면서 비스듬히 창을 향해 앉아서 잡지를 읽기에 여념이 없다.
 
126
그러다 어찌하여 고개를 돌리다가 준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준은 여전히 그를 '감상’을 하고 있었다.
 
127
여자는 이내 잡지 위로 눈을 내렸으나 하도 위심턴 남자의 시선이 뒤미처 마음에 좀 걸리든지 곧 되짚어 눈을 든다.
 
128
여전히 보고 있었다. 그러하되 항용 남의 여자를 보고 탐내어하는 그런 불쾌함이 없고 마치 애기가 무엇에 정신이 팔렸을 때와 같은 무사심한 눈이요 얼굴이요 했다.
 
129
이상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한참만에 또 보니 또 그러고 있고…… 여자는 이번엔 시선을 피하려고 않고 마주 언제까지고 눈겨룸을 한다.
 
130
그제서야 준은 저를 깨달았다. 그러나 갑자기 외면을 하여 시침을 딸 수는 없었다.
 
131
여자가 발씬 웃을 듯하더니 입이 열린다.
 
132
"아마 심심하신가 본데…… 이거 잡지 빌려 드릴까요?"
 
133
"………"
 
134
준은 말없이 미소하면서 고개만 한번 끄덕인다. 재치 ── 위트가 있고, 상당히 신랄(辛辣)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135
확실히 신랄했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너그럽고 일종 장난스러웠을지언정 악의는 없었다.
 
136
웬만한 여자 같으면 이런 경우를 당장 살얼음 같은 새침한 내색을 드러내면서 '별 사내도 다 보겠네!’ 하는 듯이 포달스럽게 홱 돌아앉아버렸을 것 이었었다.
 
137
또, 제법 당돌하다는 여자라야 고작 정면으로 대놓고 모질게
 
138
"왜 남의 여자를 체통없이 그렇게 보아쌓는 거예요!" 하고 질책을 했을 것이었었다.
 
139
나미는 그러나 처음부터 이 낯모를 남자의 퍽, 그러면서도 아무런 불순 한 티가 없어 보이는 데에 별로 불쾌한 생각이나 반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140
그럴 뿐만 아니라 나미는 스스로가 남을 면대하여 함부로 그렇게 볼성 없이 노골한 거조를 삼가기를 잊으려고 하지 않았다. 매양 좋은 교양에서 우러나는 침착이요 여유이었을 것이다.
 
141
나미는 웃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말끄러미 한참이나 치어다보고 있더니
 
142
' 자요?’ 하는 듯이 잡지를 내어민다.
 
143
준은 건성으로 잡지를 받으면서 목례한다.
 
144
"남을, 더구나 여자를 너무 자꾸만 보시믄 점잖으신 이가 체모가 깎인다구 허잖어요?"
 
145
"………"
 
146
준은 잡지 표제로 잠깐 내렸던 얼굴을 도로 든다. 그새보다도 피식이 더 웃는다. 그러다가 한단 소리가 "갑 재기, 통영은 어째 내려가시요?"
 
147
"내애?……"
 
148
나미는 더럭 이상해한다.
 
149
통영을 가는 줄은 방금 옆엣 노인과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라 하겠지만
 
150
'갑재기……’ 그리고, 통영은
 
151
'어째……’ 내려가느냐고 하니, 예사엣말이 아니었다.
 
152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었다.
 
153
또 언제 그렇게 친했다고, 보아야 배젊은 사람이, 초면에 남더러
 
154
'…… 내려가시요?’ 라니?
 
155
나미는 문득 전에 알던 사람인데 깜박 그만 몰라보았나 보다 하고, 고개를 연해 갸웃거려쌓는다.
 
156
그러나, 생김새하며 음성이며 암만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157
준은 그 눈치를 알아채고는, 하는 양이 재미스러서, 가만히 보고만 있다.
 
158
"누구시든가요?"
 
159
나미는 하다하다 못해 고즈너기 바로 대고 묻는다. 아는 사람을 몰라 본 소홀을 사(謝)하는 눈으로…… 준은 그 실수를 곧 사할 줄 아는 솔직함이 또한 기뻤다.
 
160
바른 대로 대답을 해 줄 것이러되 준은 조금 더 짓궂게 굴고 싶었다.
 
161
"초면입니다!"
 
162
"초면요?"
 
163
"절 아시나 본데요?"
 
164
"아마……"
 
165
"지가 누군데요?"
 
166
"………"
 
167
준은 대답을 하는 대신 턱으로 시렁을 가리킨다. 가방에 매달린 명함 꽂이가 글자는 잘아서 물론 보이지 않아도 대롱대롱 잘 눈에 뜨인다.
 
168
준의 시선을 따르던 나미는 얼른 그것을 깨닫고
 
169
"오오!……" 하다가 도로 고개를 꺄웃
 
170
"그래 두우?……" 하면서 준을 본다. 미리서 사람을 알고 있었어야 이름을 보고 그 사람인 줄을 알아챘을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171
나미는 어서 그것을 설명을 하라고 눈으로 재촉을 한며 기다린다.
 
172
준은 지금 이 상태인 채 끝없이 이대로 차가 달려가기만 하는 것이란 다 면 좋겠었다.
 
173
준은 일부러 유유히 담배를 피워 문다.
 
174
나미는 기다리기가 갑갑하여 이마가 저절로 찡그려진다.
 
175
그럴수록 준은 짐짓 더 딴청을 하느라고 아까 받아놓았던 잡지를 집어 돌려주면서
 
176
"인전 심심치 않군!"
 
177
"………"
 
178
좀 밉살머리스런 모양, 잡지를 홱 채듯 받더니 되는 대로 중간을 펼쳐 눈을 까라뜨고 앉아서 읽는 시늉을 한다.
 
179
그 뾰로통한 것도 준은 보기에 또한 즐거웠다.
 
180
차는 쉴새없이 줄기차게 달린다. 잘 달리니 시원하기는 해도 시간이 그만큼 빨리 졸아드는 일을 생각하면 속력이라는 것이 고맙지도 않았다.
 
181
"통영이면…… 어디서 갈아타지요?"
 
182
"전 몰라요?"
 
183
"몰르구 통영을 어떻게 가시요?"
 
184
"걱정 마세요!"
 
185
그러면서야, 속눈썹 새까만 눈을 치뜨고 배깃이 웃는다.
 
186
"즘심 어떡허섰오."
 
187
"………"
 
188
나미는, 점심이란 소리에 퍼뜩, 태평과 점심을 먹던 것으로부터 셈비 끼야에서 들은 말이 생각이 났다.
 
189
'혹시 이이가, 그…… 임씨라던 그인가?’
 
190
그러나 그저 막연한 생각이었지, 비슷하게나마 그럴 듯싶은 무엇이 있 어서가 아니었다.
 
191
"식당차루 갑시다? 즘심 먹으면서 궁금증두 풀어 드리구 허께시니…… "
 
192
"전 먹었어요."
 
193
"차래두?……"
 
194
"혼자 다녀오세요."
 
195
누군지 아직 알지도 못하면서, 또 가서 안 결과 별로 임의롭지도 신 신 치도 못한 면분일는지 모르는 터에, 속 차리는 여자라면 선뜻 응할 이치가 워너니 없을 것이라 하여 준은 다시 더 권하지 않았다.
 
196
시장기는 들고 그렇다고 혼자만 가자니 그동안의 시간이 아깝다.
 
197
차는 그새 벌써 평택을 지난다. 좀 있으면 천안은 정거를 하게 되니 벤또를 삼직하나 저 사람을 앞에다 앉혀놓고 그걸 쩍쩍 먹을 일이 자못 마음에 시장하다.
 
198
참기로 했다.
 
199
그러나 생각하니 재미있는 것이 있다. 시렁에 얹어둔 과실이다.
 
200
준은 한참이나 시렁을 올려다보고 나서 근 천으로
 
201
"나, 저, 과실 한 개만 주시요? 배가 고파 죽겠소!"
 
202
나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입을 잔뜩 오므려뜨리고 말도 못 한다.
 
203
준은 평소엔 야속히 말주변 없고 심심하기로 호가 났으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수작이 능청스럽고 이야기도 잘 하고 하는 것인지 제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204
나미는 과실 바구니를 내려가지고 맨 걸 풀어서 우선 옆엣 노파와 또 시골 영감한테 각각 권한 후에 저도 배를 한 덩이 집고는 그대로 준에게다 내 맡긴다. 향기가 물큰 떠돈다.
 
205
싸개지를 보니 본정의 어떤 상점이다. 그렇다면 태평이 사 들려주었기 가십 상일 것이었다.
 
206
준은 사과 한 알을 꺼내 들면서 묻는다.
 
207
"선사 소용인가요? 찻간에서 자실 소용인가요?"
 
208
"맘놓고 잡수세요…… 가면서 먹으라구 선사받었어요."
 
209
"아아 그렇다면 나두 단단히 한몫 권리가 있군!"
 
210
"의무(義務)루다 드리는 건 아녜요!"
 
211
"의무가 있지요!"
 
212
"어째서요?"
 
213
"우리 태평군이 사서…… "
 
214
말이 미처 맟기 전에 나미는 급히
 
215
"그럼 저, 임준씨…… "
 
216
"……… "
 
217
준은 벌씸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준다.
 
218
순간 나미는 질색해하는 소리로 그러나 낮게
 
219
"아이 어째애!" 하면서 얼굴은 그 전에 벌써 홍조가 화끈 치달았다.
 
220
가슴이 사뭇 두근거렸다. 얼굴은 건사하지 못해 잔뜩 턱을 어깨에다 오므려 뜨 리고 바로 하지 못한다.
 
221
중매장이는 어디로 빠져버리고 신랑감과(그런 줄도 모르고서) 단둘이 만나 일껏 다 맞선을 뵈고 한 모양쯤 된 것을 비로소 알고 난 누구네 집 규수(閨秀)와 정히 같은 꼴이었었다.
 
222
잠깐 침묵이 흐른다.
 
223
준은 사과를 아직도 그대로 손에 쥐고 있었다.
 
224
옆엣 시골 영감이 칼을 꺼내더니
 
225
"자아…… "하고 준에게 먼저 권한다. 수염이 허옇고 점잖스럽게 생긴 영감이었다.
 
226
"노인 먼점 벳기십시오!"
 
227
"준이 사양을 하고, 영감은 한번 더
 
228
"먼점 벳기시지?"
 
229
"아닙니다! 노인 먼점…… "
 
230
"그럼!"
 
231
영감은 배를 벗기기 시작하면서
 
232
"서울두 많이 변했는데요?" 하고 이야기를 청한다. 영감이 괜히 눈치도 모르고……
 
233
준이 영감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나미는 잠시 생각을 할 여유가 있었다.
 
234
'이대지도 요란스럽게 부끄럼을 탈 일이 무엇일까?"
 
235
아까 본정을 걸으면서 태평 오빠가
 
236
"…… 사촌 매부를 좀 삼을까 했더니!……" 라든 그가 바로 이이다.
 
237
모르면 몰라도 진작 미리서 둘이서 거기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한 것을 일껏 몰랐다가 알고 보았더니 그가 바로이이다.
 
238
미온 처녀답게 그 순간 부끄럼을 타 얼굴도 붉히고 함직한 노릇은 노릇 이었다. 그러나 한갓 그러는 정도에 그쳐야 할 것이었다.
 
239
그러하건만 가슴은 사뭇 두근거리고 무엇인지 모를 이상한 흥분이 전신을 휘둘러놓고 있는 것이었었다.
 
240
이 상태는, 준에게 대하여 태연하며 담담한 마음이 들지 못하고, 감정은 급류처럼 벌써 어떤 방향으로 쏠려내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고서는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241
나미는 그것을 스스로 깨우치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치가 않았다.
 
242
그는 동시에, 그 사실이 싫거나 걱정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누가 알까 무섭게 가만히 재미가 나는 것 같았다.
 
243
준은 웬만큼 영감과의 이야기를 파하고 얼굴을 돌린다. 나미는 소곳이 고개를 숙여 비낀다. 그러나, 곧 속눈썹 새까만 눈을 치뜨고 바륵 웃으면서
 
244
"진작 알으켜 주시진 않구!…… 몰라요!"
 
245
"………"
 
246
준은 흡족하여 빙그레 웃고 있다가 "이 사과가 퍽 아름답지 않소?"
 
247
"………"
 
248
"이 새빨간 빛깔…… 광채…… 그리구 물크러진 향기…… 모두 좋지 않소? 먹기 전엔 우선 시각과 취각을 질겁게 해주는!……"
 
249
"몰라요!…… 실컨 놀려주시군!……"
 
250
"자아 먼점 쓰시요?"
 
251
준은 영감에게서 받아가지고 있던 칼을 건네어 준다.
 
252
"먼점 쓰세요!"
 
253
"참 태평군은 언제 떠난다구 헙디까?"
 
254
"낼 오후…… "
 
255
"날 욕 아니헙디까?"
 
256
"욕은 아니래 두…… "
 
257
"그럼?"
 
258
"이 문 딩이가…… "태평의 흉내를 내서 하다 제야 그만 까르르 웃는다.
 
259
준도 허허 웃는다.
 
260
"그래서?"
 
261
"이 문딩이가 전차에 치어죽은 게로다 구…… "
 
262
둘이는 소리를 내어 유쾌하게 웃는다.
 
263
그러고 나서 나미는 준에게 눈을 정면을 하고 무엇을 기다린다.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눈이다.
 
264
준은 거짓말로 둘러대기가 마음이 께림했으나 그렇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할 수는 더욱 없었다.
 
265
"별안간 그만 급한 일이 생겨서!……"
 
266
"어쩌믄!……"
 
267
나미는 희한해하면서 속으로 재미가 쏟아진다.
 
268
'오늘은 들 급한 일만 생기기루 마련이든가 봐, 둘이 이렇게 한 차에 타구 같이 가구 하라 구……’ 하다가 깜박
 
269
"참?……" 하고 긴하고도 재미스런 그 다음 생각이 났다.
 
270
나미는 얼굴이 빛나면서 그러나 어렵게 "저어 지끔…… 어디…… "하고 운만 뗀다.
 
271
운만 뗐어도 (그러기 전부터 눈치로 벌써) 준은 지금 어디까지 가는 길이냐 고 묻는 뜻을 알아들었다.
 
272
"부산."
 
273
준은 저도 모르게 부산이란 소리가 나와졌다. 통영을 부산으로 해서 가거니 하는 생각이 어는 구석엔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274
"부산?……"
 
275
나미는 넘치는 즐거움을 가리지 못 하면서
 
276
"그럼…… 으음 그러엄…… "
 
277
"그럼?"
 
278
"………"
 
279
나미는 딴속 있이 혼자 웃기만 한다.
 
280
"무얼요?"
 
281
"아녜요!…… 저어…… "
 
282
"아니구 저어라?…… 북경 사람이 광동을 간 것만치나 알아듣기가 어려우니…… "
 
283
"하하하!"
 
284
준은 문득 하나의 경이(驚異)를 발견했다. 처음과 중간을 건성 건너 뛰어 이른바 연애의 어울릴 대로 훨씬 어울린 그 대문부터 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 이었다.
 
285
'일종의 불로소득(不勞所得)이렷다!’
 
286
'태평군의 덕이요!’
 
287
그러면서 준은 거듭 고개를 끄덕인다.
 
288
'다아 익어가지고서 기다리고 있던 연애……’
 
289
'쯧! 할 수 없지!……’
 
290
억지로가 아니라 도리어 느긋해하는 마음으로였다.
 
291
처음과 중간을 생략하고 춘분히 익은 대목엘 펄쩍 뛰어들었다는 것을 느끼 기는 나미도 역시 일반이었다.
 
292
나미는 이번에는 다른 말 없이 식당차로 같이 갔다.
 
293
여기에도 넉넉한 것 ── 불필요한 여유는 있질 않아, 둘이는 한참이나 기다린 후에야 식탁이 나서 비로소 앉을 수가 있었다.
 
294
준은 나미가 파이를 청하는 것을 보고 ××여자전문을 나왔나보다 했다.
 
295
"학굔? 작년에?……"
 
296
"내애."
 
297
"음악과?"
 
298
"아뇨!"
 
299
"가사과?"
 
300
"………"
 
301
나미는 고개를 흔든다.
 
302
"보육?"
 
303
"문과!"
 
304
"하필!"
 
305
"하필?……"
 
306
나미는 빠안히 준을 건너다본다. 그중 보통인 문과를 하필이라고 하는 뜻을 알 수가 없었다.
 
307
"하필 문과든고?"
 
308
"예사죠!"
 
309
"어째서?"
 
310
"음악엔 소질이 없구…… "
 
311
"또?"
 
312
"가사관…… 식모공부(食母工夫)하기 같구…… "
 
313
"옳아!…… 보육은 그럼 '애보이’연습 같구?"
 
314
"남은 건 문과 말구 또 있어예죠?"
 
315
"의전(醫學專門[의학전문]) 같은 데 청강이래두?……"
 
316
"청강생으루 여자가 끼믄 죄라나요?"
 
317
"?……"
 
318
"그런 동무가 하나 있는데 남학생들이 한눈을 파느라구 공불 잘 아 년 다 구…… "
 
319
"그 동무란 색시두 입이 엔간치 험하군!"
 
320
"공부 아녀게 해서 미안한 게 아니구, 섣부른 공부루다 어물어물 졸업 허구 나가서 생사람 잡을 테니깐 그래 죄라나요?"
 
321
"그 말 곧이듣구서 의전 청강생 갈 거 고만두었소?"
 
322
"바루 접때 만나서 얘기 들은걸요!"
 
323
음식이 왔다.
 
324
나미는 빠알간 그 연한 우무를 떠올려, 빨간 입술로 먹고 먹고 한다.
 
325
마침 전무 차장이 옆을 지나갔다. 나미는 전무 차장을 보고는 다시 또 그 생각이 나서
 
326
"참 저어." 하고 망설이다가 말을 고쳐
 
327
"부산 가시죠? 꼬옥?"
 
328
"………"
 
329
준은 고개를 끄덕인다.
 
330
"그럼, 제 차표두…… "
 
331
"차표?"
 
332
"부산 거루…… "
 
333
"부산 거루?"
 
334
"저두 부산으로 해 가게요!"
 
335
"?……"
 
336
준은 그래도 못 깨우친다.
 
337
"못써요? 부산꺼정 저두 가믄…… 못…… "
 
338
철 죄끔 든 아이가 어른한테 눈치 보면서 조르듯 한다.
 
339
"삼랑진으루 해 가두 오늘 저녁은 마산서 자야 하니깐…… 부산으로 가서 이 모 아주 먼네 서 자구…… 낼 아침 배루…… "
 
340
준은 껄꺼얼 유쾌히 웃는다.
 
341
달리 웃을 일이 있어서 그러는 줄은 모르고 나미는 다시금 부끄럼을 타 얼굴이 붉는다. 그러면서 변명이
 
342
"낯 모르는 데서 여관서 자는 거보담 아주먼네 집이 좋니깐 그리죠 머!"
 
343
"그뿐더러 강남은 반드시 동무만 따라서 가는 건 아니니깐?"
 
344
"몰라요! 전 그럼 삼랑진서 내릴걸!"
 
345
"난 어떡허라구?"
 
346
"안 데리구 가실 령으로 자꾸만 숭만 보시구, 머!"
 
347
"아뭏든 거…… 멋이냐…… "준은 더듬다가 '…… 연애라는 걸 하자면……’ 어릿 소리는 뽑아 버리고
 
348
"천하의 상식이 죄다 필요한 거로군!"
 
349
"왜요?"
 
350
"통영을 부산으루 해만 가거니 했으니!"
 
351
"여태 것두 모르섰에요?"
 
352
"연전에 태평군허구 동행해 나오는데 부산서 곧장 갑디다그려?"
 
353
"부산서야 그렇죠!"
 
354
"서울선 삼랑진서 마산으루 해 가는 법이구?"
 
355
"법꺼정은 아니래 두…… "
 
356
"옳아!…… 시간은?"
 
357
"아침찬 좀 빨라두 마산서 뻐슬 놓치게 되믄 마찬가지예요…… 뱃길이 그리구 경치 또 얼마나 존데!"
 
358
"어떻게 그렇게 자상히 아시우?"
 
359
"낳길 통영서 낳구, 늘 왔다갔다허구…… 부산은 이모아주먼네 집 통영은 태평오빠네 집…… "
 
360
"우리 집은?"
 
361
"우리 집은…… 없구…… "
 
362
"서울 이구?"
 
363
"서울은 오빠네 집…… "
 
364
"어머니 아버지네 집은?"
 
365
"아버지네 집만 저어 욕지도(欲知島) 섬에 있구…… "
 
366
"섬에? 아버지네 집만?"
 
367
"아버지네 집만…… "
 
368
"어머니네 집은?"
 
369
나미는 고개를 흔든다. 아까부터 조금씩 흐려 들던 얼굴이 와락 더 흐려진다.
 
370
일찍 어머니를 여웼거나 또는 아픈 곡절이 있는 가정인 게로다고, 그러다 보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입술을 다물었다.
 
371
준은 잘못하다 울려주나 보다고 얼른 말머리를 돌린다.
 
372
"사람이, 자주자주 바달 보구 바달 그 위루 다니구 한다는 건, 바다 없이 사는 사람에다 대면 크게 하나님의 은총 받은 백성야!"
 
373
"바다 좋아요?"
 
374
"무척!"
 
375
"저두!……"
 
376
나미는 섭쓸려서 이내 도로 얼굴의 흐림을 지우고 밝게 웃는다.
 
377
"고마운 바다가 보구퍼서, 우리 바다가 보구퍼서, 학교 다 빼먹으믄서 쭈 루루 달려내려오군 한걸요! 한 학기에두 몇 번씩…… "
 
378
"……… "
 
379
"장난감 같은 조고만씩 조고만씩한 섬들이 얼마든지 자꾸만 자꾸만 있구!……"
 
380
"………"
 
381
"밸 타구 나가믄 수평선이 커다랗게 뵈구!…… 글러루 해서 뾰족뾰족 배가 넘어오구, 넘어가구!……"
 
382
"………"
 
383
"성이 난다 치믄, 웅웅 고함을 치믄서, 집채 같은 물너울을 몰아다 때리구, 아무것두 용설 안할 것처럼…… "
 
384
"……… "
 
385
"그러다가 두 풍랑만 자구 나믄, 너그럽디 너그런 미솔하믄서 무어든지 죄에 다아 포용을 하구!"
 
386
"………"
 
387
"어머니가 가만가만 흔들어 주시는 요람처럼 소르르 잠이 오게 편안 허구!……"
 
388
"………"
 
389
"………"
 
390
나미는 문득 말이 없다. 준을 똑바로 본다. 담대하게 본다. 고요한 격정(激情)을 간직한 위태런 눈이다. 동자 가론 이슬까지 알꽃이 어리었다. 하마 입에서
 
391
'가! 우리 바다, 나허구 시방 함께 가요!’
 
392
이 말이 숨가쁘게 쏟쳐 나올 것 같다. 가슴 뛰는 양이 눈에 선히 보이는듯 하다.
【원문】부질없은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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