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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새벽 ◈
◇ 사실인 것과 진실인 것과 ◇
카탈로그   목차 (총 : 11권)     이전 4권 다음
1942.1.10~
채만식
1
아름다운 새벽
2
4. 사실인 것과 진실인 것과
 
 
3
나미는 오도카니 혼자 앉아서 팔목의 시계만 거듭 보고 보고 한다.
 
4
그새 겨우 오분이 가고 다섯 시 십 오분이다. 아직도 사촌오래비 태평이오 마고 한 다섯시 반까지에는 십 오 분이나 남았다. 그 십 오 분 동안이 아무래도 어려울 모양 같았다.
 
5
아까 조금 전이었다. 오래비 윤평(允平)이 은행으로부터 돌아오는 기척이 더니, 마당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 아낙더러
 
6
"나미 집에 있지?" 하고 묻는 것이었었다.
 
7
나미는 건넌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도 뜨악하여 모른 체 잠자코 있었다.
 
8
여느때야 밖에서 돌아오면서 신발도 벗지 않고 그대도록 긴히 누이를 찾는 오래비가 아니었다. (비단 누이만이 아니라, 물론 누구한테고 아기자기하게 굴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9
그런데다 지난번에 남매 사이에 충돌이 있은 후로는 윤평은 마지못해 조 석 상대 하기는 하면서도, 완구히 서먹거려 하는 기미가(방금 오늘 아침까지도) 가시지를 않았었다.
 
10
그러던 오래비가 저녁 때 들어오면서 불시로 그다지 하게 찾는 것이니 묻지 않아도 번연히 알조였다.
 
11
나미는 계제에 마침 태평이 올라오고 했으니 그와 조용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의견도 참작하여, 장차 앞으로의 태도며 거취를 작정할 생각 이었다. 그리고 작정이 그렇게 서기까지의 이 하루이틀은 그 문제를 가지 고윤 평과 더불어 이러니저러니 좌우간 말을 하기를 피하고 싶었다.
 
12
그러기 위하여는 우선 당장 이 시간을 무사히 넘겨야 하겠고, 그러자면 어서 바삐 태평이 당도를 해서 종행간에 만나 저녁도 먹으며, 다른 이 야기도하고 하느라고 두루 겨를이 없어야만 할 것이었다.
 
13
옷을 갈아 입고 어쩌고 나느라면, 마악 요 때려니 생각하면서도 또다시 시계를 들여다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14
"누님 그 방 춘데 일러루 건너오우?" 하고 올케가 부른다. 보나 안보나 오래비가
 
15
'나미 좀 불르우.’ 하는 것을 조심성 있고 능란한 올케는 말을 그렇게 바꾸어서 전갈을 하는것이 분명했다.
 
16
"춥긴 무어가 추우?"
 
17
부질없은 줄 알면서도 나미는 한번 뭉개어 보자고 들던 것이나, 뒤미처 오래비가 직접
 
18
"좀 건너오느라!" 하는 데는 하릴없었다.
 
19
윤평은 마고자 받쳐 솜바지저고리에 대님까지 단정히 매고 아랫목으로 앉아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기름 발라 얌전히 빗어넘긴 머리는 머리카락 한 올인들 헝클어진 법 없다.
 
20
이 사람에게서 차림새나 행동상으로 무릇 단정치 못한 것을 찾아내기는 심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21
말쑥한 수염 자죽이며, 이상히 그 신경적으로 정갈하고도 해사스런 인상이 의사가 아닌 다음엔 갈데없이 계(係)의 주임쯤 가는 은행원이다.
 
22
나미는 이 오래비에게서 풍기는 차가움을 오늘이야 말고 유난히 더 느끼면서, 뒷벽 앞으로 가 쪼그리고 앉는다.
 
23
"태평이 올라왔드구나?"
 
24
"내애!"
 
25
괜한 문답이었다.
 
26
"건너방이 외풍이 그리 심하드냐?"
 
27
"아뇨!"
 
28
역시 무의미한 (차라리 무성의한) 문답이었다.
 
29
그러고는 또 덤덤하고 한참은 있더니 그제서야
 
30
"그래 그동안 좀 생각해 보았드냐?"
 
31
"………"
 
32
나미는 지금까지 바로 하고 있던 고개를 약간 수그릴 뿐 아무 소리도 없다. 그러나 뺨을 붉히거나 하던 것은 아니다.
 
33
"응? 좀 생각해 보았어?"
 
34
"생각해 보나마나…… "
 
35
"그래?……"
 
36
"접때 하던 대루 그 말이지 다른 것 없어요."
 
37
고개를 다시 들고 또렷또렷한 발음이다.
 
38
윤평은 발끈 벌써 귀밑때기가 달아올라 새빨갛다. 무론 누가 되었든지 간에 무슨 말이거나 그의 뜻을 거슬려 주는 일이 있으면 금새 곧 발끈하여 귀 밑을 붉히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들은 그래서 '발끈거사’(居士)라고 그를 별명 지어 부른다.
 
39
"장군 편에서는…… "
 
40
발끈 거사는 그 발끈 난 성미를 애써 누르느라고 이윽고 담배를 피우고 있더니 강잉하여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는 말이다.
 
41
"여러 가지루 그럴 사정이 있구 허니 불가불 이번 삼월 안으루, 늦어 두 사월 안으룬 예식을 거행해야만 하겠다는 희망야!"
 
42
"………"
 
43
나미는 들운 숭 만 숭 앉아서 앞문 문살을 속으로 센다.
 
44
"그러니 혼인을 아니할 테라면 모르겠지만 이왕 하는 바이면 가령 저 편에서 그런 희망 조건이 없다구 하드래두 수이 어서 식을 치루두룩 하는 게 옳지 않어? 응?"
 
45
"그야 그렇죠!"
 
46
나미는 여전히 무관심한 태도이면서도 선뜻 이렇게 대꾸를 한다. 의외의 대답(긍정) 인지라 윤평은 미심스러이 나미의 옆볼을 짯짯 건너다본다.
 
47
"그런데?"
 
48
"지금 오빠 말씀 짝으루 기왕 결혼을 하는 바이면 그게 옳아요!"
 
49
"………"
 
50
속고서는 그새 조금 갈앉았던 성미가 다시 또 발끈하여 귀밑이 도로 새빨개 오른다.
 
51
"이애?"
 
52
팽팽한 눈살로 누이를 쏘아보면서 버럭 거칠게 부른다.
 
53
"말씀허시우?"
 
54
"대관절 어떡헐 심으루, 네가 지금 이러는 거냐?"
 
55
"무얼 어떡허우?"
 
56
"장군허구 결혼 일사를 어떡헐 작정이냐?"
 
57
"안직 작정 없어요!"
 
58
"작정이 없다니?…… 그런 신의(信義)가 어디 있드냐?"
 
59
"신의라뇨?"
 
60
"그럼, 신의가 없잖구 무어란 말이냐?"
 
61
"내가 누구헌테 무슨 신의가 없우?"
 
62
"결혼하기루 약속 다 해놓구서, 지금 와서 아니하려구 드니, 그게 신의 없는 짓 아니구 무어냐?"
 
63
"결혼, 하기루?…… 약속요?"
 
64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미는 천천히 그 말을 되받아 뇌면서, 윤평의 얼굴을 빤히 바라다본다.
 
65
"누가 누구허구 결혼을 하기루 약속을 허우?"
 
66
"장두식군허구 약속이지 누구허구 약속야?"
 
67
"착각하신 거 아니우?"
 
68
"사람이란 건 남녀노소를 물론하구 죽는 마당에 들어서두 신의를 지켜야 사람 값에 가는 법야!"
 
69
"아직꺼정 장두식씨한테 결혼하기루 약속은 고사허구, 그런 내색두 뵌 일이 없어요! 목이 잘러져두요!"
 
70
"일방의 당자 네가 의사표시나 공공연한 약속은 했든 아니 했든 지끔 당해 선 그런건 문제가 아니야!"
 
71
"그럼?"
 
72
"네가 그동안 장군허구 가차이 추축을 해온 것이 사실이지?"
 
73
"가차이란 말은 빼시우!"
 
74
"그 사실이 장군과 너와 두 사람의 결혼 약속을 무언중에 말한 것이어든!
 
75
또 그랬기 때문에 일방의 당자 장두식군을 비롯해서 양편 가정이랄지 친구들 이 랄지 다아들 너이 둘이는 약혼을 한 것으로 인정을 하구 있는 또 한가지 사실이 엄연히 존재해 있거든! 그러니깐 과거에 네가 의식적으루 결혼 약속이나 의사를 표시하지 아니했드래두 너이 둘이는 약혼이 됐다는 게 움직일 수 없는 기정사실이 아니냐 그 말야?"
 
76
"듣다가 첨 듣는 논법(論法)이우마는…… 그럼 눈으루 보기엔 해가 동쪽에서 떠가지구 서쪽으루 가서 지근 하니깐 지구는 가만히 있구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天動說)이 옳겠구료?"
 
77
"?……"
 
78
누이의 그 재치 있는 반박에 오래비는 섬뻑 대답할 바를 모른다.
 
79
"허긴 사실이 진실일 경우두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말 이우…… "
 
80
나미는 재차 이렇게 추궁을 (추궁이라기보다도 알아들으라고 설명을)한다.
 
81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이 어떻게 죄다 진실이우?"
 
82
윤평은 끝끝내 몰리고 말진 않는다.
 
83
"네가 말하는 사실과 진실의 구별은 단순한 이론이지 사람이 실제 생활을 해가는 데 들어선 진실이야 어디루 갔든, 사실이 으뜸인 걸 어떡허니? 사실이 가찹구 사실이 고맙구 또오 사실이 무섭구, 그래서 온갖 것을 사실이 좌우 하는데야 어떡허니?"
 
84
"생활정신이 그렇게 순수하들 못하니깐 오빤 만날 은행원이죠!"
 
85
버르장머리없는 말버릇은 말버릇이었으나 무슨 적의를 머금은 독설인 것은 아니었다. 배시기 웃는다.
 
86
윤평도 고소를 다 한다.
 
87
비교적 정이 도탑진 못한 그들 남매였었고 겸해서 방금 그와 같이 서로들 성 정을 내어 말다툼을 하던 끝이요 했건만, 그러다가도 어느새 또 저절로 풀어져가지곤 흉허물없이 굴고 두루 그럴 수가 있는 것이 매양 남 아닌 동기간의 동기간다운 즐거움이리라.
 
88
험하고 서먹서먹하던 기운이 훨씬 가시고, 윤평은
 
89
"별수 없느니라!" 하면서 막상 그다지 알뜰살뜰한 구석은 없어도 안색이랄지 음성이 한결 안온하며 소탈스럽다.
 
90
"느인 아직 철이 들질 않구 세태가 무엇인지 생활이 무엇인지 모르니깐 바루 그렇게 순수한 걸 찾구 진실을 떼메구 나서구 하지만, 너두 장차 인제네 모가치의 실제 생활을 해야 할 날이 좌우간 불원했으니 그땔 당해 보렴? 사실과 거리가 먼 진실, 사실과 타협할 수 없는 진실, 그런 진실은 다아 주체스런 꿈이란다!"
 
91
"그래두 말이우 오빠? 아직꺼정은 팔팔한 기개(氣槪)가 어디 그렇수? 순수 허구 싶은, 진실을 따르구 싶은 그런 욕심 그런 용기가 벌써버텀 없어지구 말아서야 무엇에 쓰우?"
 
92
"기집아이가…… 시집가서 살림살이허구 자식 낳구 에미 노릇허구 해야 할 사람이 기개니 용기니 다아 주저넘은 소리야!"
 
93
"온 참! 결혼생활, 어머니 생활엔 진실허구 용기 있구 허믄 못쓰란 법두 있우?"
 
94
"암만 그러구 싶어두 그래지질 않는걸! 진실 용기 기개 순수 죄다 천리 밖으로 달아나구 마는걸!"
 
95
"안될 때 안될망정이래두 지금버텀 미리서 자겁할 건 무어 있우?"
 
96
"네가 어느 정도루 총명한 것만은 나두 모르는 배야 아니다! 해두 사람이 남녀간에 총명하다는 것허구 영리하다는 것허군 판히 다른 거다! 총명하기 때문에 되려 영리하들 못해서 큰 실패나 불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얼마나 있길래!……"
 
97
윤평은 잠깐 말을 끊고 유심히 누이를 건너다보다 가
 
98
"넌 더구나 승미가 유난하지 않으냐? 여자의 승미루 너무 지나치게 불같이 맹렬하단 말야! 그런 승미를 대사를 당해서 파탈이 생기지 않두룩 잘 누르구 조종허구 하자면 아무래두 너한텐 영리한 게 필요하니라! 단순한 총 명보 담두."
 
99
무심히 하는 말이요 듣는 편에서도 예사로이 귀넘겨 들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니 일후 어느 고패엔 가서 나미는 이 말이 문득 생각힐 날이 있을 것이다.
 
100
마침 밖에서 손이 찾는 소리가 들렸다.
 
101
식모가 나갔다 들어오는 기척이더니 윤평의 아낙이 윗문을 열고 고개만 들이면서
 
102
"장 두 식씨 오섰어요!" 하는 내통이다.
 
103
"응, 일러루…… "
 
104
윤평은 천연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고는 나미더러 이른다.
 
105
"좌우간 너두 좀 만나보아라!…… 아침에 당도해서 곧장 송파(松坡) 현장으루 갔었는데 아마 너허구두 만나기두 할 겸, 게서 유하지 않구 일단 회정 해 왔나보다."
 
106
송파의 현장이란 윤평이 경영하는 사금광을 이름이다. 경영 이짜는 그러나말 뿐이요 재력이 달리어 흐지부지하고 있는 형편인데 장두식을 출자자(出資者) 로 끌어들이는 운동이 방금 진행되고 있었다.
 
 
107
시간은 바쁘다고 엄살해싸면서도 태평은 좀처럼 그 무거운 밑을 들지 않는다.
 
108
"이혼이 노상 불가능한 건 아니렷다!"
 
109
"글쎄……"
 
110
준의 덤덤한 대답이다.
 
111
"꾸준히 서둘러 오기는 서둘러 왔지!"
 
112
"………"
 
113
준은 말없이 고개만 가로 흔들고.
 
114
"그럼?"
 
115
"동경서 돌아오든 그 무렵부턴 일체…… "
 
116
"서둘지두 안했다?"
 
117
"응."
 
118
"건 어째?"
 
119
"………"
 
120
"단념인가? 영 가망이 없든가?"
 
121
"가망이 있구 없는 건 제이 문 제구…… "
 
122
그러면서 준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뒷짐 지고 고개는 숙이고 오락가락 거닐기 시작한다.
 
123
태평은 끌끌 혀를 차면서 지 천하 듯
 
124
"제이 문제고, 근대 와?"
 
125
"그러잘 며리가 없어!"
 
126
"며리?"
 
127
"명색이 장갈 든답시구 남의 집 귀한 규수를 데려오지 않었나? 내 의사든 아니든 간에 나라는 인위루 해서 내 집엘 내 안해루써 그 사람은 온 것이니깐 결국 데려오기는 내가 데려온 거…… "
 
128
"……… "
 
129
"데려다 놓구서 손목 한번 잡은 일 없이 이십 년!…… 이십 년이요 그 사람은 낼 모리가 마흔! 곱다시 처녀루 마흔 살! 세상에 그 이상 원통할 노릇이 있을 리가 있나!"
 
130
"………"
 
131
"남을 청춘에 죽게 했다면 오히려 선량한 편이지! 산 채루 앉혀두구서 이십 년을 처녀루 늙혀 낼모리가 마흔이라니 잔인하다거나 야숙하단 말쯤 가지군 설명이 되질 않구!"
 
132
"………"
 
133
"그런 죄가 있나! 다시 없을 큰 죄지!"
 
134
준은 태평이 앉아 있는 앞에 가 바싹 발길을 멈춘다.
 
135
"내 죄가 크지?"
 
136
"크지!"
 
137
태평이 고개를 끄덕하면서 대답하던 것이나 준은 미처 기다리지도 들은 체도 않고 어느새 도로 돌아서서 뚜벅뚜벅 다시 걷고 있다.
 
138
"크구말구!…… 항차 그 죄만 해두 한량없이 크거든, 그 위에다 이혼을 하다니!……"
 
139
다시 걸으면서 혼잣말로 거기까지 말하는 것을 태평이 급하게 가로막으며 강경히
 
140
"그러니까 이혼을 해야지!"
 
141
"이십 년 소박을 하구서 처녀루 늙히구서 사십이 다 된 사람을 이혼을? 쫓기까지 해? 이중으로 죄를 져?"
 
142
"이혼을 않는 거야말로 이중의 죄가 되지, 단연!"
 
143
"단연?"
 
144
"단연!"
 
145
"………"
 
146
준은 주춤 멈춰 서서 태평의 얼굴을 똑바로 본다. 설명을 하란 뜻이다.
 
147
"자네 말 짝으로 남의 집 귀한 규수를 장가든다고 데려오지 안했나?"
 
148
"그래서?"
 
149
"손목 한번 잡지 않고 처녀로 늙히지 안했나?"
 
150
"그래서?"
 
151
"앞으로 영 그 공방이 풀릴 여망은 없지 않은가?"
 
152
"아마도!……"
 
153
"없지?"
 
154
"없겠지!"
 
155
"그렇다면 차라리 해방을 시켜주는 게 옳지 않은가?"
 
156
"해방을?"
 
157
"시켜 주어야지!…… 그 부인도 인간 세상에 참례했다가 늦게나마 한 세상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자네가 그 부인한테 깊은 동정을 기울이고 있는 이상 그 부인이 인제부터라도 새 방면으로 행복을 개척한다는데 이의가 있을 까닭이야 없겠지?"
 
158
"그야 물론!"
 
159
"그러니 해방을 시켜 주어야 할 게 아닌가?"
 
160
"이혼을 해라 그 말이었다?"
 
161
"다른 사람, 좋은 사람 만나가지고 살 게코 롬…… "준은 쓸쓸히 미소하면서 고개를 흔든다.
 
162
"자네 같은 사실주의(事實主義)라면…… 순수보다두 통속을 위주 한다면…… "
 
163
"와? 어째서?"
 
164
태평이 성급하게 묻는다.
 
165
준은 담배를 새로 붙여 물고 천천히
 
166
"첫째, 그런 고풍(古風)의 여자루, 이혼을 당하든지 혹은 과부가 돼가지구 쉽사리 팔잘 곤치는 예를 보았나?"
 
167
"드문 건 사실이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 "
 
168
"또오, 막상 팔잘 곤쳐서 새사람을 만난다 치드래두 좀처럼 행복 되기 란 어려운 것…… 첩경 남의 첩더기나 가지기루 들어가서 신세 거들내기가 마침 이구…… "
 
169
"하따 그 사람 칠월에 들온 머슴이 쥔네 아씨 베속곳 걱정하기 라드니 그 소심 머리스런 건 여전하고만? 저 천장 무너질까 버서 밤에 어찌 눈은 감고 잠 자노?"
 
170
타박을 듣고도 준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면서 빙긋이 웃을 뿐.
 
171
"그러구저러구 간에 그런 사람은 우선 이혼을 당한다는 그 사실이 죽음보다 두 무엇보다두 더 두렵구 싫구 슬푸구 한 일어어든!…… 백번 팔잘 고칠수가 있구 만번 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서 호랑이 발꿈치까지 치렁치렁 늘어지는 생활을 하게 된달값이라두 역시 그런 사람은 이혼당하지 않는 편이 나은 줄 여기거든! 이십 년 소박을 맞어왔을망정 평생을 장차 그대루 마칠지언정 제발 이혼만은 당하지 말기가, 쫓겨가지 말구서 소위 그 집 귀신 노릇을 하기가 소원이어든! 그것이 차라리 행복이요 절망스런 자랑이어든!"
 
172
"우리 준이 서방님의 그 선량 하나만은 내 언제나 가상히 여기지 않는 배 아닐세! 그러나 부디 그런 공상적 독단(空想的獨斷) 켸켸묵은 인도주의 말끔 청장 내구서 어서 바삐 장가가게 해!"
 
173
"우리 집 호랑마나님 말씀따나 자네두 날더러 첩을 얻으란 말인가?"
 
174
"독신으로는 기껏 철이 나가지고 무얼 좀 해보겠다고 농부가 되네 어쩌네하는 것도 다 무의미해! 독신은 반쪽 사람인데 하기는 무얼 하노? 자네가 푸 죽은 반쪽 사람으로 언제까지고 있는 걸 보고 말 수가 없어! 단연코 용서 안 할 테야!"
 
175
"이거 큰 떼거지 만났군!"
 
176
"가장 좋은 도리는 그 부인을 모셔오는 게 가장 좋은 도리지만…… 어때? 역시 절대 불가능인가?"
 
177
"내가 발광이 돼두 상관없다면…… "
 
178
"그럼 여러 잔말 말고 다시 결혼을 해!…… 결혼을 하되 이혼을 않고 하면 이중결혼이요 첩질이니깐 우선 이혼을 하는 거야!"
 
179
"………"
 
180
"이혼이 수이 안될 눈치거들랑 연애버텀 불이 번쩍 나게시니 한바탕 하는거야!"
 
181
"………"
 
182
"연애를 해서 열이 펄펄 올라서, 둘이 못살면 죽을 지경까지 이르러봐? 당장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혼을 해치우지 않나!"
 
183
"허! 좋은 훈수 한다!"
 
184
"농담으로 알지 마라! 더구나 나이 사십이 넘은 자네더러 장난삼아 연애 유희를 하라고 권고할 법이 있는가!"
 
185
"참고루 들언 둠세!"
 
186
"좌우간……"
 
187
태평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선다.
 
188
"낼…… 으음 어디가 좋을꼬?…… 으음, 본정 셈비끼야서 열한점에 만나자!"
 
189
"아무리나!"
 
190
"우리 냄이도 데리고 같이 오께시니…… "하다가 태평은 깜박 "오 참! 여지껏 혀가 닳도록 앉아서 이혼해라 결혼해라 했다고 우리 냄 이 소개 한다는 거 혹시 어찌 생각하면 안돼."
 
191
"천하 박색을 내게다 떠안길 영으로 그런 복선공작을 했는지두 모르지!"
 
192
"허허허!…… 낼 만나보게마는 자네한테야 실상 좀 과분하느니!"
 
193
"그렇다면 삼가 나아가지 마는 거구!"
 
194
"또오 단순한 후보자로 소개하는 거지, 하필 그애를 ── 이란 뜻은 천만에 아니니, 그 점두 잘 알아두어야 하고!"
【원문】사실인 것과 진실인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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