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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전기(女人戰紀) ◈
◇ 낙상(落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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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10.5~
채만식
1
女 人 戰 紀[여인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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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落 傷[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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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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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를 지나 계해년(癸亥年) ── 대정 십이년(大正 12年) 정월에는 진주 는 아들 철(哲)을 낳아 비로소 한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고서 다시 그 이듬해 갑자년(甲子年) ── 대정 십삼년(大正 13年) 늦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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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는 사년 전 진주가 준호를 고쳐 만나던 봄 그때런 듯 노란빛을 지니고한 포기의 꽃이 피어는 있었다. 그러나 꽃은 매양 꽃이요 빛은 한 빛이라도 그 꽃은 봄을 화려히 치장하던 개나리가 아니요, 조락을 말하는 가을꽃 황국( 黃菊)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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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 드리운 햇볕도 여전히 밝기는 하였으나 역시 살져가는 봄볕이 아니요 야웨빠진 가을볕이었다. 바람도 훈훈하던 대신 스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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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등에 업은 철은 잠이 들었고 풍로에 약탕관을 놓고 마룻전에 앉아 약을 달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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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년이라는 그리 길지 아니한 세월 동안 진주는 적지 아니한 변천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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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명실 더불어 남의 안해 노릇을 하였다. 포태(胞胎)를 하여 열 달을 채워 해산을 하여 마침내 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 아기 철이 지난 정월로 첫돌이 잡히어 시방 두 살이다. 그러고 이어서 다시 또 포태를 하여 여섯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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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난해 정월에는 친정 조모 송심당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진주에게는 어머니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한 할머니였다. 피차간 이 세상에서 유일한 혈육이요, 따라서 피차간 지극히 애정이 도탑던 조손(祖孫)이었다. 그러한한 분 할머니를 여읜 진주의 슬픔은 퍽도 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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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심당노인이 별세를 하자 친정집의 경제적 몰락이 와락 표면에 드러났다. 친정 양오라비 창수가 시집을 쫓겨오던 갑인년 그 무렵부터 매갈이를 시작 하였었다. 한참 당시 잠만 깨고 세태에는 어둔 시골 소지주며 조무래기 부자 가운데 양심 있는 젊은 축들이 사업욕과 재산욕에 마음이 떠가지고 다투어 그 짓들을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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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갈이는 매갈이 그것 자체가 다분히 투기성(投機性)을 가진 노름인데, 매갈이의 앞에는 진짜 투기업인 미두라는 것이 환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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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갈이하는 사람으로 열에 여덜아홉까지는 기어이 미두를 하지 아니하고는 배기지를 못하였다. 창수는 그 여덜아홉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미두를 하여 끝까지 수를 본 사람은 만 명에 하나도 드물었다. 천품이 괄괄하고 마음이 크기나 할 뿐 꿈과 옥관(玉觀 : 期米時勢豫言術者[ 기미 시 세 예 언 술자]) 의 점을 믿고 미두를 하는 재주밖에 없는 창수였다. 밑지고 나가 떨어지는 구천구백 아흔 아홉 명 속에 들 것이야 당연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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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고패가 넘도록 지고 전장과 심지어 집터까지 저당에 걸렸었다. 송심 당 노인은 그런 줄을 모르고 있다가 돌아갔으니 그것 한가지만은 팔자가 좋았다고 할 것인지. 삼년상 치르기도 전에 창수는 집도 터도 없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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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친 뒤에도 다달이 보내주던 진주의 학비도 자연 그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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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그리하여 작년부터는 준호 한 사람 몫의 학비 오는 것을 가지고 새로 생겨난 철까지 세 식구의 살림을 하여야만 하였다. 옹색이 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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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지나간 사월에는 또다시 준호의 학비가 끊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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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말이 아닐 지경이었다. 그런데다 준호의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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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지나간 봄방학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진주와 다시 만난 뒤로 방학이 도합 일곱 번이었는데 그해 겨울방학과 작년 봄방학에만 가서 이삼 일씩 있다 오곤 하였을 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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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벼르고 있던 박씨부인은 지나간 봄방학을 기다리다가 두 주먹을 불끈쥐고 쫓아 올라왔다. 와서 보니 과연 소문에도 듣고 짐작하던 바와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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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로 우선 진주를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태질을 치고 하면서 이 년 여우 같은 년, 천하 요괴 같은 년, 네가 어떤 년이길래 내 자식을 후려다놓고 이런단 말이냐고 동네가 벌컥 끓도록 한바탕 들레었다. 그러고 나서 준호의 덜미를 짚으면서 썩 내려가자고 호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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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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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고 물어떼고 떠다박지르고 하여도 입 꽉 다물고 당하면서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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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부인은 분에 못이겨 세간 나부랑이를 두들겨 부순 후, 이놈 너는 오늘부터 내 자식이 아니라고, 두고 보라고 얼러메면서 하릴없이 혼자 내려가고말았다. 그러더니 사월달부터 학비를 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러고는 얼마 있다 준호의 외숙을 사이에 넣고 기별이, 지금이라도 자식이나 찾고 ' 그 년’과는 갈려버린다면 전사는 다 용서하리라고 하였다. 준호는 이 '가혹한 항복 조건’을 한마디로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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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가에서 생활비 오던 것이 끊기면서부터 종종 드나들던 전당국을 진주는 더 자주 드나들어야 하였다. 옥단이는 두고 부릴 필요도 반드시 없어졌었거니와 인간 하나 거처하는 비용이나마 줄이기 위하여 진작에 시골로 내려 보내고, 그 대신 건넌방에 윤석이 와 있었다. 행상을 하여서 버는 학자 라지만 영 악히 납뛰어 제가 먹는 것 이상을 물어들임으로써 지난 날에 진 의리를 갚았다. 많지는 못하나마 진주의 옹색한 살림에 퍽 요긴한 부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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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 외숙에게 기별을 하여 삼십 원씩 두 차례 빚 요량으로 돌려다 쓴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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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바느질이 적지않이 보탬이 될 듯싶은데 한번 준호더러 그 말을 내었다 펄쩍 뛰는 서슬에 다시는 생의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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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을 궐하고 나간 윤석이 석양에 봉지쌀을 사들고 들어오기가 예사요, 석 달 널 달 밀린 집세와 전기불세로 매일같이 졸려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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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각다분하고 막막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준호의 병만 아니면 진소위 삼순구식을 하여가면설망정 준호가 명년에 전문엘 들 어그를 마칠 동안까지 앞으로 한 사 년 죽을 셈 잡고 견디며 뒷수발을 하여 댈 신념이 없는 바가 아니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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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의 병이 표면에 드러나기는 작년 늦은봄부터였다. 오후면 오싹오싹 추워하고 구미가 떨어지고 밭은기침을 하고, 자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몸이 나른하면서 기운이 없고…… 이 증세가 나날이 더하는 줄은 몰랐어도 다달이 더하여 가는 것이 눈에 뜨이더니, 금년 가을로 접어들면서는 성한 날보다도 누웠는 날이 더 많고 그 가뜩이나 푸짐하지 못한 살이 하마 뼈와 가죽만 남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마침내 각혈까지 하고 말았다. 그것 이바로 열흘 전이었고, 그날부터 아주 자리에 누운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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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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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소리로 준호가 방에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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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알아듣고도 우두커니 있다야 대답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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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는 들이고도 눈두겁 푹 꺼진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보면서 말이 없다. 무슨 할 말이 있나. 시킬 일이 있어서가 아니요, 혼자서 무료하다치면 공연히 그저 그러곤 하던 것이었었다. 그랬다가 그 임시로 할 말이나 시킬 일이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입이 떨어지고 그것도 저것도 없으면 그대로 덤덤하고 말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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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약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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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야 그렇게 물으면서 이맛살을 찌푸린다. 별로 많이 먹은 바도 아니건만 신경이 예민하여진 탓에 약이라면 냄새도 맡기를 싫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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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끔 대리는 것 말구 꼭 한 첩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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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제발, 약 좀 고만 먹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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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부지런히 잡숫구 어서 기운을 차리세야지 아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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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의 말이 육미(六味)가 좋다고 하며, 그 약 한 제를 짓기에 진주는 단 한가지밖에 없는 어머니의 유품 금 국화잠을 팔았다. 혼인하던 날 할머니가 옜 다 에미가 너 시집갈 때 주어달라고 내게 맡기고 갔단다면서 손수 머리 쪽에 꽂아주신 순금 국화잠이었다. 돈으로는 값이 따져질, 따라서 아무리 큰 돈을 받고라도 팔 물건이 아니었다. 이틀 사흘씩 중난한 남편과 굶고 앉아서도 차마 전당국에나마도 가지고 가기를 꺼려하던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런 것을 팔아서 지은 한 제의 육미였다. 해서 이 한 제의 육미는 돈으로 산것이라 느니보다 진주의 희생정신, 극진한 정성으로 얻어낸 약이라고 하여야 옳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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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자초로 그런 곡절을 알 턱이 물론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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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쓰디쓴 약보담두 거저 먹구픈 것이나 맘대루 먹구 하면 차라리 병이 얼른 나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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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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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대답할 말이 없고 가슴이 아팠다. 앓는 사람이 늘 무엇이 먹고 싶네 무엇이 먹고 싶네 하건만, 열 가지에 한 가지나 두 가지도 구해다 먹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밥에는 할 수 없이 좁쌀이 섞이고 반찬이라야 된장찌개에 콩나물이 고작이요, 고기나 생선은커녕 그 흔한 김치 깍두기도 여 일히 밥상에 올리지를 못하였다. 각혈하기 전에 진찰을 하여 준 병원 의사도 진주더러 만 조용히 이른 말이 있지 아니한가. 폐결핵이라는 병은 약이라야 신통한 것이 없느니라고. 무엇보다도 가정생활 ── 부부생활을 떠나 기후와 공기 좋은 곳으로 전지요양을 가 편안히 누워서 영양 있는 음식이나 소화가 허락하는껏 먹고 마음은 물론 안정시켜야 하고, 하기를 삼 년이고 오 년, 십 년이고 하노라면 상당히 병이 진행된 사람도 회복이 될 수가 있느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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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전지요양이야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루 세 때의 식사나 살로 갈 것을 먹게 하고, 먹고 싶어하는 것이나 그립지 않게 사서 대고 하여야 할 것인데, 그것조차를 못하고 있으니 딱하고 답답할 노릇이라고는 없었다. 밤저녁으로 곰곰 누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잠이 아니 왔다. 저러다 아뿔싸 하지나 아니하나 싶은 청승맞은 생각이 들면서 앞이 깜깜 할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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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번연한 형편에 어린아이 응석 같은 소리를, 무심결에 말은 하여놓고도 그만 민망한 생각이 나 진주를 돌려다보면서 기색을 살핀다. 진주는 고개를 숙이고 들지 아니하나 꺼칠하니 윤기 없는 살결이며 홀쭉 야윈 볼이며 가 못먹으면서 심로와 과로만 하여 지친 빛인 것이 완구하였다. 더우기나 몸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생명이 깃든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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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십이 넘은 장부요, 그만 철은 난 준호였다. 진주보다 종시 여러 살 연 하임엔 갈데없으나 그렇다고 종시 열두살박이 소꿉새서방은 아니었다. 시늉이나마 가정을 이룬 일가의 주인이요, 처자를 거느린 가장이었다. 가난과 나의 신병으로 인하여 야위고 시드는 처자를 바라보면서 책임 무긋이 어깨를 누름을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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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하마 핫것이라두 입을 양으루 헐진대 저 당목적삼이 좀 서늑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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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보고 있다 준호가 걱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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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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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긴 벌써 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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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그렇게두 없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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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요. 있어두 안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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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에 우리 저 철이가 애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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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함부루 길러야 헌다구 아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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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루 길른다는 것허구 그것허구가 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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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루 제 걱정이나 철이 걱정일랑 허실라 마세요. 성한 사람이야 좀 아무러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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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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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거저 당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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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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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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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보매 내가 곧 인제 죽는 것 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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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 돌아가시긴 왜 돌아가시우?"
 
67
"안 죽어요. 안 죽으께시니 걱정 말아요. 천하 없어두 안 죽으께시니…… 안 죽지. 내가 왜 죽어? 죽어서 어떡허자구 죽어?"
 
68
준호는 흥분을 한다. 붉은 볼이 더욱 붉고 마침내 기침이 나왔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69
진주는 그를 위로하며 진정시키기에 늘 그렇듯이 한참이나 애를 써야 하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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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저러나 내가 아무래두 시굴을 좀 다녀와야 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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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가 마루로 나가 약을 보고 들어오기를 기다려, 전부터 혼자 유념 하던 바를 계제에 이야기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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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라면 물론 본집이요 박씨부인한테란 말이겠는데, 진주는 선뜻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벌써 기동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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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들 무슨 도리가 있을꼬마는, 더구나 저 몸을 허세가지구 먼길 가 셌다 도지기나 허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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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삭이 언제쯤 당허우?"
 
75
"명년 한 삼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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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년 삼월이라야 얼마 남았수? 그것두 그것이려니와 괘니 우두커니 이러구만 있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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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기동두 어려우시구, 또 가세야 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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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내가 무어 어머니헌테루 가 빌붙을까? 난 죽어두 건 아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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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야 어머님이 당신이 미워 그러시나요? 다아 제 죄루 당신알라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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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 외삼춘 댁으로 가 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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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으런인들 무슨 그리…… 그동안 두 번이나 돈을 타다 쓴 것두 있구 헌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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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의 외조부가 생전시에 논 일곱 마지기를 준호에게 직분시켜 준 것이 있었다. 명의까지 아주 준호의 이름으로 돌려놓았었고, 딸 박씨부인과 아들인 준호의 외숙을 불러다 앉히고 문서를 보이면서, 이 논에다는 꼭 찰벼만 심었다 우리 준호 일 년 내내 두고 떡 해주어라. 그 논을 그 해부터 지금까지 박씨부인이 관리를 하고 있는데, 소유자는 하여커나 남준호가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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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이런 내력 설명을 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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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걸 가 팔면 될 거 아뇨? 한 말지기 오십 원씩만 받어두 삼백오십 원…… 시방 우리한테 삼백오십 원이면 어데요?"
 
86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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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찻삯 마련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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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삯이야 어떻게든 변통을 해보죠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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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대루 윤석이더러 좀 데려다 달라구 허구……그러구 외삼춘게루전볼 쳐 교군이나 내보내게 하면 차 타구 가기야 무어 그리 힘이 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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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두 몸 성한 사람이라야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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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없어. 괜찮아요. 당신은 조심이 너무 과해, 그래 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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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그러면서 짜증을 내고 돌아누웠다.
 
93
그런지 사흘째 되던 날 첫새벽 여섯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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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준호가 탄 인력거 뒤를 따라 철이는 등에다 업고 윤석과 함께 전차도 아직 다니지 아니하는 어둔 거리를 걸어 남대문 정거장으로 배웅을 나갔다.
 
95
여섯시 반의 부산행을 타고 가다 낮때쯤 대전서 내려 시간 반이나 기다려 호남선을 갈아타고 다시 반일을 가 주물역에 내려서 밤길 삼십리를 들어가야 하는 이 노정을 어제까지도 호정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하던 병인 준호로 하여금 막상 떠나게 한다는 것은 결코 졸연한 일이 아니었다. 진주로는 두루 두루 생각 끝에 일종 비장한 결심으로써 하는 강단이요 큰 모험이었다.
 
96
준호는 말이 외숙의 집으로 가서 외조부가 따로이 물려주었다는 논을 팔아가지고 온다는 것이지만, 진주가 보기에는 전혀 호산(誤算)이요 도저히 가능성이 없었다.
 
97
남달리 극성스런 박씨부인이었다. 준호가 일껏 고향엘 내려와 가지고 바로 동네지 간에 본집으로 오지를 않고서 외숙의 집으로 가 있는 것을 문문히 그대로 버려두고 볼 박씨부인이 아니었다.
 
98
논이 이름이 제아무리 준호의 이름으로 있기로서니, 준호는 법률상으로는 아직도 미성년이었다. 친권자 박씨부인이 버젓이 있었다. 간대로 그것이 팔아질 이치가 만무하였다.
 
99
가사 또 준호가 계획하는 대로 일이 잘 되어서 논을 팔아 몇백 원의 돈이 생긴다 손 치더라도 그 몇백 원의 돈을 도득하여 오게 하기 위하여 천하에 바꿀 수 없는 준호로 하여금 중병 중에 이 어려운 행보를 떠나게 하도록 사려와 분별이 부족한 여자 진주가 아니었다.
 
100
진주로는 요량하는 바가 달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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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한번 내려간 이상 박씨부인의 손에 붙잡혀 앉히고 말 것이 첩경이요, 자연 돌아오기가 졸연치 못할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진주는 차라리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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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박씨부인의 손에 붙잡혀 앉히운다면 처음에는 마음은 적지 않이 상 할 것이었다. 그러나 기후 좋은 남방이요 공기 맑은 농촌이었다. 살기가 군색 치 아니한 집안이었다. 박씨부인인들 며느리가 밉고 미운 며느리에게 가있는 아들이 미웠지, 하여커나 어머니에게로 돌아온 다음에야, 항차 죽을 병이 들어가지고 돌아왔는데야 그 아들이 어떤 끔찍한 아들이라고 병구원에 등 한하거나 인색할 까닭이 없던 것이었었다. 값진 보약과 영양 있는 음식, 먹고 싶어하는 음식, 땅을 팔아서라도 여일히 먹일 것이었다. 병에 해로운줄 알면 성정을 눅여서라도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에 노력할 것이었다. 장차에 식언(食言)이 될값에 병만 나으면 네 가속(진주) 데려오도록 하마고까지라도 할는지도 몰랐다.
 
104
그렇게 해서 아뭏든 혼자 떨어져 있으면서 잘 먹고 좋은 보약 먹고 요양을 하는 일방 마음도 차차로 안정이 되고 하면, 의사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병은 낫는 것이요, 진주의 요량하는 바란 곧 이것이었다.
 
105
준호의 충분한 요양과 그래서 건강이 회복될 일이라면 진주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삼 년이고 오 년, 십 년이고 준호가 돌아오지를 못 하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어떠한 고생이 있더라도 아이들이나 기르면서 참고 견딜 결심이었다. 아닐말로 준호가 한평생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가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이란다면, 진주는 슬픔을 달게 삼키면서 아이들과 나 함께 세상을 살아나갈 각오였다.
 
106
차창을 열고 내어다보는 준호를 작별하면서 진주는 부디 마음 조급히 먹지말라고, 당신을 그저 당신의 병 한가지만 생각하지 처자라는 것은 한동안 잊어버리고서 그런 마음으로 범사를 처결을 하라고 함축 있는 말로써 몇번이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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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준호대로 죽지 아니할 테니 아무 염려 말고 있으라는 말을 거듭 하였다.
 
108
그 말이 차라리 영결인 것같이 여겨지면서 진주는 마음이 더럭 처량하여하마 준호에게 눈물을 보일 뻔하였다.
 
109
사흘이면 먼저 돌아올 윤석이 닷새가 되도록 감감소식이었다. 이왕 데리 고간 길이니 같이 회정을 하느라고 더딘 것인지, 그렇다면이거니와 혹시 내려가기에 무리를 하여 준호가 병이 더해서 혼자만 버려두고 떠나오지를 못 하는 것인지 싶어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110
그러자 이레 만에 전보환으로 돈 오십 원이 왔다. 조금 마음이 놓이는 성하였다.
 
111
열하루째 되는 날 윤석의 이름으로 한 장의 전보가 올라닿았다.
 
112
진주는 준호를 보냄에 있어서 다른 것은 다 생각을 주밀히 하였으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점을 한가지 모르고 지나쳤었다. 그는 준호의 병이 이미소 위 제삼기에 들어 심한 피로가 따르는 그와 같은 먼길의 여행과 그것만 하여도 무리가 과한데 겸하여 모친 박씨부인과의 반드시 있고라야 말 충돌로 인하여 받게 될 격렬한 흥분…… 능히 그것을 이겨낼 기력이 설마 없었다는 사실을 진주는 통히 짐작치 못하였던 것이었었다.
 
113
"준호금조별세윤석."
 
114
그 전보문이었다.
 
115
이에 한 아기를 등에 업고 한 아기를 애밴 스물일곱 살짜리 여인 하나가 세차게 달리는 기차에서 별안간 누가 칵 떠다밀기라도 한 것처럼 인간 행로의 노방에 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의지가지 전혀 없는 노방에 가.
 
116
정히 낙상(落傷)이었다.
【원문】낙상(落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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