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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전기(女人戰紀) ◈
◇ 혈육(血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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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10.5~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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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人 戰 紀[여인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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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血 肉[혈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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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버틈은 다 참 너두 어리나따나 네 눈으루 보구 겪으구 해서 잘 알다시피, 먹구 입구, 너이 오뉘 공부 맘놓구 허구 허믄서, 세상 살게야 아무 그릴 것이 없었드니라만서두…… 추수가 삼백 석이나 되지. 돈을 또 돈으루퍽 많이 모아 두시구 돌아가섰지. 빚 없지. 무엇허러 큰부자가 부러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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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면 거저 가만히 앉아서 생기는 것만 가지구 써두 넉넉허구. 그러구 두 남아서 해마다 수월찮이씩 밀려나가구. 그래 나두 힘 안 들이구 느이 오뉘 길러가 믄 서 공부허구퍼 허는 대루 시키구. 조옴 몸이 편안해? 삯바느질 논것만 해두 어딘데. 바루 호강이 늘어졌지…… 그랬든 것이 그것두 타구난 팔자를 못 어기기루 마련여 그런지, 편안한 건 겨우 몸 하나뿐이구서 이 날 이 때까지 잠시 한때 맘이 편안할 날이 없구나…… 네 오빠루 해서 내가 애를 태우구 속 썩히구 걱정허구 하든 일을 생각하면…… 휘유…… 전에 그 의지 가지 없이 너이 오뉘 데리구 지질한 가난으루 굶주리구 헐벗구 추어 떨구, 허리가 꼬부라지두룩 앉어서 삯바느질루 밤을 새우구 기진해 쓰러지구. 하든 고생이야 차라리 약과 같은가 보드라. 약과든가 보아…… 늘 몸이 약해 병을 끓이다 열여섯 살 적엔 일년을 누워 앓으믄서 정녕 죽다 살아나지를 아니했니? 그러다 요행 도루 살아나 학교를 다시 댕긴다는 게 그 짓을 또 저지르구는 고만 종적을 땄지 아니했니? 가까스루 딴 학교를 들어가 졸업을 허구, 이내 대학에 들구. 몸두 그때 가서는 많이 실해지구. 그랬길래, 오냐 인전 내가 맘을 놓구 고생 다 면했나 보다 했드니, 웬걸 그 알량한 연애에 미쳐가지구는…… 여자가 그런 사람만 아니라면야 왜 내가 근심을 허며 나서서 간섭을 허니? 날더러 완고허다구, 그 여잔 신분은 암만 여 급이라 두 맘이랑 몸은 다 순결허다구 펄쩍 뛰믄서 고집을 쓰드니, 겨우 두 달 겉이 살구 나서 죄 깨닫군 후회허구 내려와, 어머니 제가 지각이 없어 그랬어요 했지 않었어?…… 돈 좀 버린 거야 대수가 아니요, 천행 저라서 깨우쳤으니 한갓 신통한 노릇이지만서두, 글쎄 공부하는 몸으루, 또 총각놈이 그런 망발이 어딨으며 그런 창피가 있니?…… 내가 저쪽 이십 년 고생엔 벼랑 늙는 줄을 모르겠드니, 이쪽 십 년 맘고생으루 이렇게 영영 아주 늙어 버렸단다!"
 
6
일찌기 젊어서는 진주요 시방은 옥동댁으로 불리는 어머니가 딸 문주를 앞에 앉히고, 한 필의 낡은 모시에서 실마리가 풀리어 나오게 된 회고의 긴 이야기는 마지막 끝이 났다. 이야기를 시작한 어젯밤은 닭이 울었고, 오늘도 낮때부터 계속을 하여 시방은 석양 무렵…… 내일로 임박한 추석 송편을 모녀가 마주 앉아 빚는 자리에서 이야기는 마침내 끝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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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는 어머니의 과거지사를 단편적으로는 더러 안 것이 없던 바는 아니었으나 극히 사소한 면(面)이었으며, 자초지종 전부를 이렇게 자상히 이야기 듣기는 비로소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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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고 난 문주는 마치 호대한 장편을 단숨에 읽어낸 것 같아 머릿속이 멍한 것이, 두르러진 감상을 포착키가 어려웠다. 따라서 비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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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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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아프게 느끼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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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손끝에서 이쁘장스럽게 빚어지는 뽀얀 송편이 깜장 소반으로 관병 식 하는 군대처럼 가지런히 놓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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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은 아직도 싱싱한 팔월 노양이 가득히 내리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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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까 머슴이 져다 마당 가운데 펴 널어 말리는 산풀나무가 따가운 햇볕에 익으면서 물큰한 가을 풀향기를 흥건히 뿜는다. 씨르르르…… 실 매미 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멋들어지게 나부끼며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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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침묵. 그러나 문득 어머니가 벗겨논 풋밤을 한 알 집어 송편 속을 넣으면서 혼잣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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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을, 송편두 밤송편을 퍽두 질겨 허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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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이거 깨소곰 속 넣은 거래야 헌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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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가 밤을 집으려다 깨소금으로 떠가면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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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우에 시언허게 둬두어두 이틀이 못가 착 쉴 텐데, 오빠 손에 가 떨어지자 믄 한 달이 걸릴지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걸, 그동안 썩어버릴 거 아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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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면, 허기야 돌덩이처럼 굳어지구 말걸, 성할 걸루다 보내기루 받아서 먹기나 허니? 구경이나 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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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었으믄 쪄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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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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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잠자코 한참은 앉아서 송편을 빚고 있다가 새삼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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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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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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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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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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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끼버틈 내가 이렇게 연 이틀을 맘이 산란해 못 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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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오빠만 생각만 허니깐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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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무슨…… ""아냐 어머니…… 저어 그런대잖어. 명절 땔 당허믄 부모 생각이 더 난다구. 걸 한문시로 무어라구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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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가절(每逢佳節)에 배사친(倍思親)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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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매봉가절에 배사친. 오빠두 그러니깐 명절은 되구 허니깐 진중에서 어머니 생각을 퍽 헐 거 아니우? 그런데 말이우, 아들이 객질 나가서든지 부모 생각을 골똘히 헌다치면 그것이 곧장 부모헌테루 울려서 부모두 괘니맘이 이상해지구 그런대잖우? 어머니 맘 산란헌 것두 아마 그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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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히 그렇기나 허구 아무 일두 없는 노릇이라면 좋겠다만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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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없잖구, 일이 무슨 일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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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악 그때였다. 밭은기침 소리와 더불어 창수가 졸지에 차면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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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수는 옥동댁 ─ 진주가 병자년 그해 이 집으로 도로 들어와 박씨 부인의 뒤를 이어 안팎을 겸한 주인이 되던 기회에 미두장과 하바꾼으로부터 깨끗이 손을 씻고는 진주에게서 얼마의 자본을 얻어 장사를 시작하였었다. 일체 잡념을 먹지 않고 성근히 잘 하였고, 그 덕에 근년 와서는 웬만큼 생계가 안정이 되었고. 따라서 의표며 신수가 그 옛날 미두장 방퉁이꾼으로 굴러 다닐 때처럼 궁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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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웬일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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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외삼춘 오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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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함께 그러면서 옥동댁은 몸을 일으키고, 문주는 쫓아내려가고 한다. 그러는데 뜻밖에 또 하나의 인물이 창수의 뒤를 따라 차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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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머니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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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옥동댁은 눈이 확 벌어지면서 소스라치게 놀란 음성으로 한소리 그러다 호흡도 말도 딱 막힌다. 사지를 잘게 떤다. 도저히 꿈이 아니고는 있을수 없는 일이 당장 거기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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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軍刀) 차고 누런 장화 신고 금테 안에 별 붙이고 한 장교가 모자만 둥근 모자가 아니요 전투모였지 그 외에는 일찌기 사십 년 전 일로전쟁 때 이 영 삼 고지의 쟁탈전에서 용맹히 싸우고 장렬한 전사를 한 임 중위( 林中尉) 즉 진주의 바로 친정아버지 그냥 그대로가 시방 철그럭거리면서 차면 안으로 서언히 들어서는 것이 아니었던가. 여덟 살 적 그날 밤 마지막으로 보였고, 궂긴 지 이에 사십 년. 그런 아버지가 사십 년 전 생전시의 그 모양대로 여기에 나타나다니. 가사 그동안 살아 계셨다손치더라도 이미 칠순이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그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젊은 모습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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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꿈이었다. 그러나 멀쩡한 생시인 걸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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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댁이 좀더 바투서 좀더 침착히 살펴보았다면 같으면서도 다른 점을 여럿을 발견하였을 것이었다. 우선 키가 임중위처럼 후리후리하지 않고 등이 짤막하였다. 나이도 근 사십을 바라보아 보였다. 그리고 지위도 중위가 아니라 훨씬 중좌(中佐)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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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조도 불의한 나그네에 놀라 토방 아래 가 주춤하고 서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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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세상에 이런 희한스럴 도리가 있어? 온 이런 경사스런 일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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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수는 밑도 끝도 없이 혼자 연방 그러면서 일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면서 분주히 대뜰로 올라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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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여보게! 아, 동생이 생겼어, 동생이! 없는 친동생이 생겼어. 내 지 동생은 내지 동생이라두 친 동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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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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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 댁은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혼란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동시에 어언 영문인 것을 환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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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년 전, 아버지 임중위가 전지로 떠나던 마지막 그날 밤, 식혜를 자시면서 할머니 송심당노인과 사이에 취실 ─ 결혼 문제에 대하여 오고 가고한 이야기를 들은 것을 가지고 그 뒤 나이 들면서부터 상상을 두루 하여, 어떤 내지 사람 여자로 계모가 있으리라는 것과 그 몸에서 사나이의 소생이 있으리라는 것을 늘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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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윽고는 그것을 사실로 믿기까지 하고,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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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보았으면! 왜 찾아오지 않을꼬. 그 새엄마랑 함께…… 몰라서 못 오지나 않는지.' 하면서 무한 그 가공(架空)의 동기를 그리워하기를 마지 아니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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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오랍동생. 꼬옥 아버지를 닮아 이쁘고도 씩씩하게 생긴 사나이, 내 오랍동생. 한 열한 살이나 열두 살박이, 한창 장난꾼이 선머슴 귀여운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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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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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가 쫓기고 하기 전후 시절이었고. 그 뒤로는 쓰라린 고난을 겪어내느라고 그런 공상은 어느덧 다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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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가공의 동기가 땅에서 솟은 것처럼 지금 여기에 현실로 나타난 것 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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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임중위인 줄 착각하고서 꿈이 아닌가 한 진주는 이번에는 현실 이하도 신기하고 의외여서 또 한번 꿈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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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서른아홉 해 전이었다. 동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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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완고하고도 엄격한 어느 사족(士族)의 집 딸이 임중위와 서로 사모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아직 외국 사람이요 한 조선 사람과 상사 ─ 연애를 한다, 결혼을 한다 하는 것을 완고씨는 크게 노하고 절대로 허락 치 아니하려 들었다. 그러나 남녀 사이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저질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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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고씨는 더욱 노하여 무남독녀 외딸을 집으로부터 쫓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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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뱃속에 새로운 생명을 깃들인 몸으로 여관집 한 방에서 울고 지내다 미구에는 출정한 남자의 전사한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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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세상을 나왔다. 그러나 아버지를 모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는 사흘 만에는 다시 어머니를 잃었다. 산후의 실섭으로 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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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고씨는 하릴없이 빼각빼각 우는 핏덩이를 마누라 시켜 안아다 길렀다. 기르는 동안 자연 애정이 솟았다. 퍽 사랑하면서 귀히 길렀다. 이름을 무일( 武一)이라고 짓고 자기 민적에 입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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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은 아무것도 모르고 외조부를 아버지, 외조모를 어머니라 부르면서 호강으로 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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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과 중학을 거쳐 사관학교에 들어 시방은 중좌(中佐)에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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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의 외주부 완고씨는 종시 무일의 출생한 비밀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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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 달 전 지하로 돌아가는 임종의 자리에서야 비로소 모든 것을 설 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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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범의 양자한 유족이 시방도 조선 아무 이러저러한 곳에 살고 있다더구나. 기회를 타서 한번 가 찾아보는 것도 떳떳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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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까지 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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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무일 소좌는 마침 그동안의 후방 근무로부터 지나 방면의 제 일선으로 전출이 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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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지나가는 역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을 그려 성묘도 할 겸, 또 양자일망정 동기도 상면할 겸, 내지에서의 출발을 이삼 일 앞당겨 떠나서 어저께 저물게 창수에게를 당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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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누가 가르쳐 주고 소개라도 하고 하기를 기다릴 여부도 없이 성큼 마루로 올라오더니, 너풋 그대로 절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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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저올시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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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댁은 덤쑥 동생의 팔을 부여잡고 들여다보면서 목이 메어 잠시는 말을못하고 눈물만 흘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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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왔네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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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도 하였고 또 시방도 신문과 잡지를 보고 하기 때문에 옥동댁은 국어로 말을 하기에 불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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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반갑습니다, 누님…… 실상 양자하신 유족이 있다구 들었구, 저 형님만 찾아왔었죠. 그랬드니 글쎄, 누님이 이렇게 기시군요! 같은 우리 아버지의 혈육을 함께 노눈…… ""어쩌믄 이렇게두 아버지만 고대루 탁했어! …… 나인 올에 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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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이올시다. 아버지 돌아가시든 그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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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처음 서로 대면이라는 것, 내지 사람과 조선 여인이라는 것, 당연히 이런 데서 오는 어색스럼이나 생소함이나 조심스러워함이나 그런 것이 전혀 없고서, 둘이는 마치 같이 자라던 남매가 한동안 만에 만난 것처럼, 말씨 하며, 음성, 표정, 모든 하는 양들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친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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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은 할 수 없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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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던 창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절절히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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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44. 10. 5∼1945. 5. 17 〉
【원문】혈육(血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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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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