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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칠단의 비밀 ◈
◇ 3회 (6장 ~ 8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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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4~
방정환
1
칠칠단의 비밀
 
2
6. 도망! 도망!
 
 
3
깊은 밤 도망을 해 나가려고, 뒷간 뒤에 숨어 서서 순자의 나오기를 기다리던 상호가 그때 몰래 기어 나온 것이 그인 줄 알고 달려들어 보니 큰일났습니다. 천만 천만 뜻밖에 그는 순자가 아니고 단장의 마누라였습니다. 깜짝 놀란 상호 소년이 저절로,
 
4
“악!”
 
5
하고, 소리칠 때 벌써 그 계집은 놓치지 아니하려고 독사같이 상호의 팔과 몸에 휘감았습니다. 그리고 안쪽을 향하여 잡았다는 소리를 지르려 하였습니다.
 
6
“큰일 났다!”
 
7
생각한 상호는 앞뒷일을 헤아려 볼 사이도 없이 급히 바른손으로 계집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목을 졸라 껴안았습니다. 나이는 어려도 몸 굴린 몸이라 여자 한 사람쯤은 우스웠습니다.
 
8
그 무서운 독사 같은 계집도 상호의 손에 걸리어 숨이 막히고 목이 졸리어 죽을 둥 살 둥 끼룩끼룩하면서 두 다리를 버둥버둥할 때, 그때에 안마루가 쿵쾅거리면서 시커먼 큰 사람이 또 뛰어 나왔습니다.
 
9
“이러다간 안 되겠다!!”
 
10
생각한 상호는
 
11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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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치면서 계집의 몸을 와락 밀어서 쫓아 나오는 놈에게로 던지니, 나오던 놈은 별안간에 계집의 몸을 받아 안고 쓰러지고, 그 틈에 번뜻 상호는 그네에서 건너뛰는 곡마단 솜씨로 제비같이 날려서 휘딱 뒷담을 뛰어넘었습니다.
 
13
쫓아 나오다가 쓰러진 단장이 마누라의 몸을 잡아 일으켜 놓고 뒷담을 넘어서 한길로 나가 휘휘 찾을 때는 벌써 상호는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14
여관 안은 벌컥 뒤집혔습니다. 단장의 명령으로 부하들은 졸린 눈을 비비면서 옷들을 입고 나섰습니다.
 
15
단장 내외는 순자를 두들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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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도망갈 약속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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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것을 대라고 조련질을 하고, 여러 명의 부하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분담해 맡아 가지고, 일제히 상호를 잡으러 나섰습니다.
 
 

 
 
18
7. 거리에서 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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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도 잠자고 순포막 순사도 코를 고는 깊은 밤, 캄캄한 밤 새로 두시-. 홀로 도망해 나왔으나 어디라고 향할 곳이 없는 상호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숨어야 할지 가슴만 울렁거리고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20
뒤에서는 지금 곧 잡으려고 쫓아오는 듯 오는 듯하고 갈 곳은 없고, 발 빠른 걸음으로 뒤를 돌아다보고 돌아다보고 하면서, 명동으로 빠져서 구리개를 건너고 종로 큰길을 지나 북쪽으로 뚫린 길까지 오니까, 마음이 조금 놓이고 울렁거리는 가슴이 진정되는 대신에 서러워서 울고 싶은 생각이 자꾸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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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지 아니하려고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길도 모르는 조선 사람 동네를 찾아 건너오기는 왔으나 내 몸이 조선 사람이라고 알아줄 사람이 누구며, 오늘 밤 한 밤이라도 내 몸을 재워줄 사람이 누구랴 싶어서, 골목 모퉁이에서마다 망설거릴 때 하염없는 눈물만 비 오듯이 흘렀습니다.
 
22
길이야 많지만 갈 곳이 없고 집이야 많지만 잘 곳이 없어서 상호는 눈물을 씻으면서 오던 길을 도록 돌아설 밖에 수가 없었습니다.
 
23
밤은 세시나 되었을까, 이제는 술주정꾼 하나도 보이지 않는 죽은 길을 걸어서 상호는 종로 큰길로 나왔습니다. 하는 수 없으니 탑골공원에라도 가서 돌멩이 위에서라도 이 밤을 지내려는 불쌍하고도 가여운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몹시도 깊은지라 공원의 창살문도 꼭꼭 잠겨 있었습니다. 여기서나 잘까 하고 믿고 온 몸이,
 
24
‘여기도 잠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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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돌아설 때 신세 불쌍한 상호는 그냥 소리쳐 울고 싶었습니다. 음흉한 단장 놈이 벌써 수색 청원을 하여 놓았겠으니 경찰서로 갈 수도 없고, 아무데나 여관으로 가자하니 문 열린 곳이 한 곳도 없고, 에잇! 할 수 없다.
 
26
길거리에서 그냥 밤을 새울 수밖에 없다고 결심을 하니, 이제는 잘 걱정은 없어졌으나 순자의 고생될 염려가 생각이 나서 또 가슴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같이 도망하려고 새벽 두 시에 변소 옆으로 나오마고 약속한 순자가 그 때 나오지 못하고 단장의 마누라가 나온 것을 보면, 순자가 나오려다가 들켜서 붙잡힌 것이 분명하였고 내가 이렇게 혼자 도망해 나와 놓았으니, 그 놈의 마귀 같은 연놈이 온갖 분풀이를 어린 순자에게만 하겠구나……. 더군다나 나를 잡으려고 내가 도망간 곳을 알아내려고, 무지스럽게 두들기겠구나 싶어서 자기가 맞은 것처럼 소름이 쪽쪽 끼쳤습니다.
 
27
가뜩이나 꼬집혀서 전신에 퍼렇게 멍이 들은 순자가 못 견디어 소리쳐 면서 매 맞는 모양이 눈물 고인 눈에 자꾸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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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오늘 밤만 참아라, 어떻게든지 내일은 구해 내마!”
 
29
상호는 혼자 중얼거리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30
8. 뜻밖에 뜻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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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헤매인 눈물의 하룻밤이 어느덧 밝아서 새벽이 되었습니다. 설움과 불안에 떨면서 거리에서 밤을 새인 상호는 그때야 탑골공원 뒤 조선여관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여관이라고 들어는 갔으나, 별루 쉬지도 못하고 세수를 속히 마치고 조반상을 받으니 혀도 깔깔하거니와 마음이 조용치 못하여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32
세 술도 못 뜨고 밥상을 도로 내보내고 방문을 꼭꼭 닫고 상호는 거울 앞에 앉더니 얼굴을 변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3
눈 가장자리에는 푸른 칠을 하고, 코 밑에 조그만 수염을 붙이고(이러한 일은 곡마단에서 날마다 하는 짓이서, 아주 졸업생이었습니다) 모자를 눌러 쓰고, 다시 여관문을 나설 때는, 여관 하인이 보고도 아까 처음 들어오던 손님인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34
상호는 여관에서 나오는 길로 곧 상점을 찾아가서 뿔테 안경을 아무 것이나 손에 집히는 대로 사서 쓰고 또 지팡이 하나를 사서 짚었습니다. 이제는 아무가 보아도 얼른 보고는 상호인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대담스럽게도 구리개 네거리 명치정의 포막집 터 근처로 갔습니다. 포막 집은 물론 다 헐어서 짐짝으로 묶어 놓았으니, 저놈들이 오늘 아침에 서울을 떠나고 안 떠나는 것은 여기서 짐짝을 가져가고 안 가져가는 것을 보면 알리라 생각한 까닭이요, 또 한 가지는 혹시 저들이 떠날 때에 순자를 데리고 이곳을 들러 가기도 쉽거니, 하는 까닭이었습니다.
 
35
아직 8시도 전이건마는 포막집 헐은 터에는 곡마단 밑의 측, 여러 사람이 꾸물꾸물 묶다가 남은 짐을 묶고 있는 모양이 오늘 곧 떠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리 바쁘지 않은 것도 같았습니다.
 
36
상호는 그것들이 모두 아는 사람들이라, 저것은 누구, 저것은 누구, 속으로 부르면서,
 
37
‘저 사람들도 나를 보고 알지 못할 것이다.’
 
38
하고 그 근처로 어슬어슬 돌아다니면서 순자가 그곳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9
거기서 서성거린 지 한 시간쯤이나 지났을까? 너무 지리하여 입맛만 쩝쩝 다시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때, 그때 언뜻 상호는 발을 멈추고 허리를 굽히고 눈을 노려 포막집 터 저편 골목 구석을 쏘아보았습니다.
 
40
‘오오! 그 노인이다. 그 노인이다!’
 
41
입 속으로 부르짖으면서 상호는 급히 골목을 돌아 그리로 갔습니다. 옷은 깨끗지 못하여도 인자하고 다정해 보이는 조선 노인! 오오, 분명히 꿈에라도 만나고저 하던 외삼촌 그 노인이었습니다.
 
42
반가운 김에 와락 달려들어 노인의 팔을 붙잡고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였으나 조선말을 하지 못하는 갑갑한 설움! 아무 말 없이 얼굴만 쳐다볼 때에 눈물만 두 눈에 핑 고였습니다.
 
43
노인은 상호와 순자를 다시 한 번 잠깐이라도 만나려고 여기까지 오기는 왔으나, 그놈의 주인 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이 구석에 숨어 서서 기다리는 판에 누구인지 팔을 붙잡으므로 깜짝 놀라 가슴이 성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상호인 줄은 모르고 누구인지를 몰라 겁만 내었으나,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겁나던 것만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44
그래 노인은 함께 데리고 온 열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학생 한 사람을 불러서 사이에 세웠습니다. 그 학생은 노인이 통역시키려고 데리고 온 노인의 동네집의 학생이었습니다.
 
45
“당신이 누구요?”
 
46
“제가 상호올시다. 수염은 일부러 붙인 것입니다. 저놈들을 속이려고요.”
 
47
“오오, 그럼 여기 섰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하자! 순자는 어디 있니?”
 
48
“아녀요. 멀리 가면 안 됩니다. 순자가 혹시 이 근처에 올런지 모르니 까요. 여기서 이렇게 숨어 서서 이야기를 하지요.”
 
49
하고, 상호는 어저께 들켜서 매 맞은 이야기와 여관방에 갇히게 된 것과 주인 단장이 열흘이나 더 할 돈벌이를 중지하고 오늘 중국으로 가려고 저렇게 짐을 싼 이야기와 어젯밤에 둘이 도망하려다가 들켜서, 저 혼자만 간신히 도망해 나온 이야기를 모조리 하였습니다.
 
50
노인은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51
“아, 그럼 순자를 구할 일이 급하구나! 인제 순자만 구해 내 오면 그만 아니냐? 여기서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여관으로라도 가서 속히 구해 내올 도리를 생각하자.”
 
52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별 꾀가 없습니다. 하도 엄중히 지키고 있으니까요.”
 
53
암만 이야기해도 좋은 의견은 나오지 않고 가슴만 무엇에 쫓기는 것 같이 두근거렸습니다.
 
54
“그럴 것 없이 다른 사람이 손님처럼 꾸미고 우선 그 여관에 들어가서 방을 하나 잡고 있으면서 순자의 동정을 살펴보게 하면 어떻겠느냐? 그러다가 여차하면 얼른 업고 도망해 나오게.”
 
55
이런 말씀을 할 때, 상호는 별안간에 노인의 팔을 꽉 붙잡고,
 
56
“쉬!”
 
57
하고, 말을 막았습니다.
 
58
그리고는 큰일이나 난 듯이,
 
59
“저기, 저기!”
 
60
하고, 가는 소리로 속살거리면서 포막 터 건너 한길을 가리켰습니다. 노인과 학생도 그곳을 바라보고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61
─《어린이》 4권 6호 (192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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