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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채(山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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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9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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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菜[산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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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전야(前夜)의 철야한 피로에 오수를 탐하고 있느라니까 아랫동네의 이군이 찾아왔다. 요 전날 만났을 제 뒷산으로 도라지를 캐러 가쟀던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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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글매고 손에는 소형 스코프로 된 원예용의 이식기(移植器)를 들고…… 이군은 이렇게 무장(武裝)을(기실 경장(輕裝)을) 한 맵시로 앞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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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 하나를 끌고 그 뒤를 따르던 나는 채비가 너무 허술함을 깨닫고 마침 근처에서 병정잡기를 하고 노는 팔세동(八歲童) 조카를 시켜 바구니와 호미를 가져오게 했다. 했더니 도령이 또 하나 제 동무를 데리고 참가를 해서 일행은 도통 네 명이요, 동자들은 병정잡기를 하던 무장(武裝) 그대로라 허리에는 목도(木刀)가 위엄스럽고 산도라지를 캐러 간다기보다도 정히 산도야지나 사냥하러 가지 않나 싶은 진용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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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으로 여름으로 매일같이 산책을 하러 가던 율림(栗林)은 그새 두어 주일 일에 몰려 못 본 동안에 풀들이 벌써 가을풀답게 향그럽고, 밤송이도 제법 많이 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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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드세게 울던 매미소리도 그쳐 조용하고, 원두밭은 참외 넌출을 말끔 뽑아 새로 갈아논 고랑엔 콩포기만 띄엄띄엄 남았는데, 밭두덩에서는 빈 원두막이 하마 쓰러져가고……누가 시킨 바 아니건만 철은 바야흐로 가을다운 한가닥의 폐허가 깃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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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라지는 다른 사람네가 아마 나보다도 미각이 더 날쌔고 예민했던지 여름에는 그리 많던 것이 죄다 어디로 가고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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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은 그러나‘게륵이’라는 대용품(!)을 발견해서 우리는 실망을 하지 말아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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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륵이’는 꽃만 산도라지보다 약간 다르지 잎사귀랄지 대랄지 그리고 캐서 볼라치면 그 뿌리랄지는 언뜻 산도라지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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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다가 이군의 설명을 들으면 맛은 산도라지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진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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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보니 대용품 치고는 도야지 가죽으로 만든 구두보다도‘스프’가 섞인 광목보다도 착실히 어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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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간 것이‘느랑꼴’까지 넘어갔다가 골짜구니의 맑은 샘물에 때마침 심했던 갈증을 씻고 나니 몸의 피로가 더럭 더 전신에 쏟아지는 것 같아 캔 산채는 바구니의 밑바닥도 겨우 가리지 못했는데 웬만큼 발길을 돌이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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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에 몽실몽실 이쁘게 생긴 대추가 많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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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대추가 볼이 볼긋볼긋 붉는 추석의 고향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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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한 필의 선산 밑에는 감나무가 여덟 주씩 두 줄로 섰고, 솔밭 사이 사이로 밤나무가 흔하고 그리고 대추나무가 있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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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면 감과 대추가 서로 겨루듯 볼이 붉고 밤은 송이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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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에는 추석에 성묘를 다닌다. 칠팔 세 그 무렵, 시방 내 앞을 서서 가고 있는 팔세동 저놈만해서부터 나는 추석날이면 곱게 새옷을 갈아 입고 그때는 아직도 기운이 좋으시던 가친 사형들을 따라서 이 선산으로 성묘를 다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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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도 잊히지 않는 그때의 감 밤 대추 등속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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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이군이 웃으면서 이번에 참 효석(孝石)의「향수(鄕愁)」를 읽었더니 그 비슷한 이야기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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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밥상엔 벌써 내가 캐온(실상은 이군이 캐준) 산채가 한 접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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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달다더니 산도라지가 얼마큼 섞였음인지 역시 쌉싸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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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은 산채에 맛들이니 세미(世味)를 잊을노라 했는데, 산채를 먹으면서도 세미를 잊지 못하는 내 생활은 이 산채의 맛처럼 쓴 것이니…… 하면서 마침 양이 찬 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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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報[매일신보] 1939. 9. 9>
【원문】산채(山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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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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