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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칠단의 비밀 ◈
◇ 2회 (4장 ~ 5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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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4~
방정환
1
칠칠단의 비밀
 
2
4. 새로운 걱정과 설움
 
 
3
자기 몸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것도 모르고 자란 신세 불쌍한 곡마단의 소년과 소녀! 열여섯 살 되고 열네 살 되는 이 봄에 조선에 왔다가 이상한 조선 노인을 만나,
 
4
“너희가 조선 사람이라.”
 
5
는 것과
 
6
“너희 두 사람이 친오라비 친누이라.”
 
7
는 말과 부모의 소식을 듣게 되자, 원수의 곡마단 임자 내외에게 들키어 다시는 만날 수도 없게 헤어지게 된 것을 생각하면 우리 두 사람의 팔자는 왜 이다지도 불행한가 하여 생각할수록 가슴을 얼음으로 저리는 것 같았습니다.
 
8
어떻게도 몹시 얻어맞았는지 소년의 몸에는 뱀이나 구렁이가 칭칭 감긴 것 같이 채찍 자국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소녀는 휘어잡혀 휘둘린 머리가 칼로 저며 놓은 것 같이 아프고 온몸에 꼬집혀 뜯긴 자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무리 아파도 관계치 않으니 다시 한 번 떠나기 전에 그 외삼촌이라는 노인을 잠깐만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었습니다.
 
9
‘아아, 자기의 근본을 알고 본국을 찾고 부모를 찾고……, 그것이 우리들 평생의 소원이 아니었는가! 오늘 죽는다 하여도 한탄이 없으니 내 부모 내 본국을 알게 된 것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소원이 아니었는가!
 
10
그런데 이제 조선에 와서 뜻밖에 외삼촌을 만나 부모의 소식을 듣다가 못 듣다니……. 아아, 이렇게까지 악착한 팔자이면 차리라 죽여나 주소서, 죽여나 주소서…….’
 
11
입 속으로 부르짖으며 원망스러이 허공을 쳐다볼 때에, 그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샘물같이 흘러 내렸습니다.
 
12
그 노인의 말이 정말이라 하면 분명히 자기들은 조선 사람이오, 친오라비요 친누이요, 이름은 상호와 순자요, 그리고 어머니는 자기네 남매를 찾지 못하여 화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13
‘그러나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찌 되셨을까? 돌아가셨을까? 살아 계실까?’
 
14
노인의 말씀은 마침,
 
15
“너희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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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그치고 말았으니, 노인을 다시 만나기 전에는 아무래도 아는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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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만나야 되겠다! 노인을 만나야 되겠다!’
 
18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나, 그러나 당장은 내일 아침으로라도 이곳을 떠난다고 부랴부랴 포막 집을 허물어서 짐을 싸는 중이니, 무슨 수로 이 넓은 경성 천지에서 그 외삼촌이라는 노인을 밤사이에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해는 벌써 어두워 가는데, 이 밤만 지내면 내일 아침에는 처음 보는 본 고향을 또 떠나서 정처 없이 끌려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바위에 눌리는 것 같이 점점 무거워질 뿐이었습니다.
 
19
“대체, 조선 노인과 이야기 좀 하기로서니, 단장이 무슨 일로 그다지 싫어할까…….”
 
20
“글쎄 말이요. 무슨 큰 변이나 난 것처럼 야단이니 이상한 일이예요.”
 
21
소년과 소녀는 가늘고 힘없는 소리로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22
“그래요. 그까짓 일로 열흘이나 더 할 돈벌이도 중지하고, 오늘로 포막을 헐어서 짐을 싸는 것을 보면 반드시 무슨 큰 까닭이 있는 것이 분명해 …….”
 
23
소녀는 근심스런 소리로,
 
24
“무슨 까닭일까요?”
 
25
하고, 물었습니다.
 
26
“글쎄, 무슨 까닭인지 그건 몰라도 어쨌든지 우리 두 사람과 조선 사람과 만나기만 하면 큰일이 생길 일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으냐? 그러니까 우리들의 몸이 이 곡마단에 끼어 있는 것이 위험한 일일 것 같이 생각되는구나…….”
 
27
“글쎄요. 점점 마음이 무시무시해져요.”
 
28
어쩐지 자기들 어린 몸이 무서운 무서운 비밀을 가진 흉악한 놈들의 손에 쥐여 끌려 다니는 것 같아서, 새로운 불안스런 마음이 아버지 그리는 설움과 함께 그들의 가슴에 가득 찼습니다.
 
29
그리고 지옥 속에 빠진 것같이 무서운 어두운 밤이 차츰차츰 그 집과 그 마음을 덮어 갔습니다.
 
 

 
 
30
5. 어두운 밤에
 
 
31
자기가 조선 사람이라니 자기 고향이 경성이라니 어두운 밤에라도 경성 시가를 나가 보고도 싶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몰래 나가서, 아무 집에나 조선집이면 뛰어 들어가서 살려 달라 하고 실컷 울어보고도 싶었습니다. 아아 그러나, 그러나 이 밤만 자면 경성도 영 이별인데 원수의 밤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32
조선말도 모르는 어린 두 몸이 조선에 떨어져서 죽든지 살든지……. 이 밤에 도망이라도 해나갈까 하였으나. 순자는 단장의 마누라 방에 갇혀 자고 여관 대문 옆방에서는 단장의 부하가 독수리 같은 눈으로 지키고 있으니 아무렇게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전등을 가리고 상호는 자리에 누웠습니다. 눈을 감고 바른 팔목으로 눈 위를 덮었습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고 가슴 속은 방망이질을 치듯 펄떡펄떡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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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만 밝으면 경성도 마지막이요, 부모의 소식도 영영 모르게 되는 판이니, 어쩐들 편안한 잠이 들 수 있었겠습니까. 시계 소리가 들릴수록 밤이 깊어 갈수록 눈은 점점 더 샛별 같아지고, 가슴은 더욱 더욱 뛰었습니다.
 
34
밤! 깊은 밤! 개도 자고 한길도 자고 전등까지 지붕까지 잠자는 깊디 깊은 밤! 세상은 무덤 속같이 고요한데, 여관 집 뒤꼍 변소 옆 오동나무 밑에 무언지 가끔 가끔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35
날이 흐렸는지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우중충한 어둠 속에서 이따금 꾸물거리는 이상한 그림자! 그것은 이 밤에 담을 뛰어 도망하려고 몸을 빠져 나온 용 소년(勇少年) 상호였습니다.
 
36
지금에라도 누군가 쫓아 나오는 듯 나오는 듯하여서 상호의 몸은 바르르 떨리건마는, 웬일인지 담을 얼른 넘어가지도 않고 꾸물꾸물하고만 섰습니다.
 
37
“이 애가 왜 입때 안 나오나? 잠이 들었을 리가 없는데…….”
 
38
상호는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39
“들키기 전에 얼른 나와야 할 터인데…….”
 
40
하도 무섭고 갑갑하여 상호는 또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부지직부지직 여관 마루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렀습니다. 상호는 음칫하여 변소 벽에 바싹 붙어섰습니다.
 
41
‘누구일까? 순자인가? 딴 놈인가?’
 
42
눈치를 채이려 고개를 내어 밀고는 싶고 내어 밀면 들킬까 겁도 나고 상호의 가슴은 폭포물처럼 용솟음쳤습니다. 발소리는 순자인지 누구인지 변소 쪽으로 자꾸 가까이 왔습니다.
 
43
누굴까 누굴까 상호의 가슴은 점점 더 뛰었습니다.
 
44
어둠 속이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으나 변소로 오는 사람은 변소에는 들어가지 않고 변소 옆을 쑥 내다보았습니다. 옳다, 순자다!하고 상호는 얼굴을 쑥 내어 밀었습니다.
 
45
‘여기다! 여기 있다!’
 
46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습니다.
 
47
그러나 언뜻! 상호는 꿀꺽 참았습니다. 순자인지? 누구인지? 그는 다시 태연히 변소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48
“아니구나! 딴 사람이구나!”
 
49
상호는 잠깐 마음을 놓았으나, 그러나 여기 있다가 그 사람에게 들키면 어쩌나 싶어서 가슴이 다시 두근두근 하였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널빤지 하나 격해 있는 변소 안에 들리면 어쩌나 싶어서 상호는 발발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변을 보았는지 대변을 보았는지 변소에서 나왔습니다.
 
50
‘이놈아!’
 
51
하고, 와락 달려들 것 같아서 상호는 전신을 움찔하였으나, 그 사람은 거기 상호가 있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태연히 걸어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52
“휴우!”
 
53
상호는 새로 살아난 듯이 숨을 들여 쉬었습니다. 다시 한동안 고요하였습니다. 변소에 나왔다가 들어간 사람도 지금쯤은 다시 고단한 꿈이 깊이 들었을 때였습니다.
 
54
‘이 애가 어째 안 나오나?’
 
55
상호의 가슴은 조 비비듯 하였습니다. 다시 한동안 고요한 어둠 속에서 가늘게 가늘게 사뿐사뿐 몰래 기어 나오는 듯싶은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56
‘인제 나오는구나!’
 
57
하고, 상호는 미리 옷가슴을 여미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옷소매를 걷고 가뜬히 차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가슴은 여전히 두방망이질을 쳤습니다. 숨이 저절로 헐떡거렸습니다.
 
58
‘무사히 무사히 저 담을 넘어가야 할 터인데…….’
 
59
사뿐사뿐 발소리가 가까워왔습니다. 그는 자리옷을 입은 채로 기어나오는 모양이었습니다.
 
60
변소 옆까지 나왔습니다.
 
61
“여기다! 여기다! 이리 오너라.”
 
62
상호가 속살거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그는 마루에서 사뿐 내려서, 상호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상호의 가슴은 어찌 뛰는지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63
“자, 어서 가자!”
 
64
상호는 와락 달려들어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상호는 그 손을 잡자마자 깜짝 놀라,
 
65
“악!”
 
66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습니다.
 
 
67
─《어린이》 4권 5호 (192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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