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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大河) ◈
◇ 대하(大河) 6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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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김남천
 

1. 6장

 
2
쌍네가 박참봉 댁에 종으로 팔려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그가 아홉 살 났을 때 였다. 그는 이 고을서 30리를 서편으로, 강 둘을 건너가면, 마주 보이는 모래 언덕 위에 있는 서창이라는 작은 부락에서, 가난한 농가의 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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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네 위로 딸 둘은 이미 같은 농가에 팔린 뒤였고, 그의 집에는 쌍네 밑으로 아들 둘이있었다. 그가 팔리던 해에는 장마 뒤에 역병이 돌아서, 그의 모친은 많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 전 해에 가뭄이 들어서 이 지방 전체에 큰 흉년이 들었었는데, 또다시 장마에 역병까지 겹친 터이라, 가을이 되어 역병은 까라졌으나 밭에서 걷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시골마다 농토를 떠나서 유리하는 방랑민이 길을 덮고, 남부여대하여 함경도나 황해도 쪽으로 이주하여 가는 부락민이 초겨울까지 끊기지 않았다. 쌍네의 집 가족도 그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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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은 그릇 자박 바가지짝을 꿰어매어 짐을 꾸려 지고, 네 살 난 놈을 그 위에 올려 앉히고 여섯 살 난 놈과 쌍네의 손목을 이끌면서, 가을도 이미 저물은 시퍼렇게 흐린 날 늦은 아침에 서창을 떠나 고을로 들어왔다. 방선문 안 박성균네 마방에서 하룻밤을 쉬어서, 세월 좋다는 우너산으로 400리 길을 떠나려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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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난 놈은 이럭저럭 짐 위에 올려 앉히고 간다 하여도, 여섯 살난 놈과 쌍네가 연속 하여 400리 길을 가려면 신작로도 나기 전 험한 길을, 열흘이 걸릴지 보름이 걸릴지 종잡을 바가 없다. 하루라도 바뻐 가서 겨울이 닥쳐오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할 판인데, 열흘 동안 노비를 쓸 것조차 주머니 속에는 남아 있지 아니하다. 어디 말이나 당나귀라도 하나 얻어서 아이를 태우고 들어갔으면 싶으나, 물론 그렇게 할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밤이 새 도록 어린 것을 눕히고 생각한 끝이, 드디어 남들이 다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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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덜고 노비를 장만하는 일거양득의 길, 그것은 쌍네를 종으로 파는 길밖엔 없었다. 오십이 가까운 아버지는 집을 떠날 때까지는, 결단코 이런 방도만은 취하지 않으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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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30리 길을 걸어서 첫날밤을 맞아보니, 어린 세 아이를 데리고 먼길을 떠나서 오랫동안 여행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처사인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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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에서 자는 마바리꾼에게 상론했자 별 뾰족한 수가 생길 리 없다. 처음은 속으로 노염도 갔으나, 백이면 백 사람의 입이 한결같이 그 방도밖에를 생각지 못할 때, 그는 드디어 이 길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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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리균에게 부탁하여 종으로 쌍네를 살 사람을 수소문하였으나, 역시 지금 한창 세간을 늘리고 세력을 부리려드는 박참봉 성권네밖에, 이런 흉년에 뭉탱이 돈을 던져 사람을 살 이는 이 고을에 있는 성싶지 않았다. 그래도 박성균이는 박참봉이 종은 무슨 얼어빠질 종을 또 살 게냐고 가보지도 말라고 하였으나 결국은 그 집에서 맡아버리기로 작정이 되었다. 박참 봉네 집에는 벌써 나이 찬 종이, 한 집에 하나씩 있어서 별반 새로운 손이 필요치는 않았 으나 한편으론 헐값으로 살수 있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 심술궂은 박리균네가 뒤에 있다는것을 알고 부쩍 쌍네를 데려다두기로 채비했다. 그때 몸값이 200냥, 아무리 흉년이기로니 300냥은 내라고 졸라보았으나, 이제 겨우 아홉 살 난 것을 200냥에 싫거든 그만두라는 판에, 그만 하는 수 없이 그 값에 흥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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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작은놈을 둘러 업고, 짐과 큰아이를 나귀에 실고서 방선 문 밖으로 내키지 않는 길을 떠났고, 쌍네는 그날부터 박참봉네 집에 매인 재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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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서른 살이 겨우 넘은 젊은 박참봉의 아낙은, 쌍네가 울고 앉았는 것을 처음은 위로 하며 달래다가, 그 다음은 도고하게 음성을 가다듬어 훈계의 말을 한 뒤에, 박참봉은 나릿님, 자기는 마님, 아이들은 도련님이라고 부를 것을 가르치고, 나이 찬 종은 연세에 따라 형에 또는 오마니라 부르라고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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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이 아즉 열이 안 된 어린아이니 대소범절을 가르쳐주거니와, 첫째는 순종, 둘째는 공경, 셋째는 저 맡은 일을 감당할 거, 이걸 잊지 말고 행실머리를 바로 가져야’ 옳다고 다시 당부하였다. 그다음부터는 쌍네는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는 신세로 되었다. 서각( 변소) 이나 자리 속에서 간혹 눈물을 흘리다가도 누구의 인기척이 나면, 불시에 눈물을 털고 일어서서 그린 듯이 낯색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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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칠이가 절게로 오게 된 것은 쌍네가 와서 3년이 지난 뒤, 그러므로 지금부터 만 10년 전의 일이 된다. 그때에 두칠이는 스물 한 살의 나이 찬 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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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봉의 장인 되는 갱고지 전주 최씨네 작인으로 있는 김바우의 셋째 아들로 세상에 났으나, 형제가 많고 집이 가난하여 나이차도록 장가도 들지 못하고, 거듭하는 흉작과 살림에 쪼들려서, 드디어 두칠이는 절게살이를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어엿한 부역 병모가 있고, 형제 동기가 수두룩한 몸으로, 절게살이를 떠난다는 것은 장본인으로서도 섭섭한 일 이었으나, 돌이켜 생각하면 이 밖에 성가할 뾰죽한 딴수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제 하나가 회생이 되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커녕, 열 넘는 가족이 금시에 굶어 뻐드러져야 할 궁박한 형편 이었다. 그래서 김바우는 최초시를 찾아가서 사연을 아뢰고 박참봉 댁에 절게를 살게 해줍시 사고 간청을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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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봉은 작금 2, 3년 동안 계속되는 흉작과 역병에 농토를 던지는 자가 부쩍 늘어서, 그동안 한달갈이를 넘게 헐값으로 사둔 것이 있었으나, 작인의 이동이 심하고 맞차운 작 인을 만나자 기도 힘들고 귀찮아서, 어디 절게를 몇이 더 늘려서 금년부터는 자농이라도 해보려던 참인데, 두칠이 같은 장정이 제 발로 기어 들어오겠다는 것은 마침 십상이긴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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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원, 장인 영감이 그렇도록 부탁한 게니 두어보기는 하겠네마는, 지금 있는 손두 남아돌아 걱정인데, 알다시피 곡가는 비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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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번 늘어져본 뒤에, 담배를 떵떵 떨면서, 무릎을 꿇고 겁신겁신 절을 하고 있는바 우와 두칠이를, 먼발로 보는 둥 마는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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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려나, 자농을 얼마 해서라도, 어데 내 집에 찾아 들어온 사람을 몰아낼 도리야 서 는가 하니 그 폭을 요량해서, 일일랑 부지런히 해준다믄, 뒷날이라도 해롭진 않을 테야. 농가에서 한참 곤궁할 대목이니 좁쌀이나 두어 섬 가져다가 쓰려는가." 하고 뒷마무리를 해버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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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조 두 섬을 미리 받아다 먹고, 그 해 1년은 그대로 살아 주게 마련이 되어 버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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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해부터는 돈 30냥씩을 받기로 되었다. 이 밖에 그가 박참봉댁에서 받는 것이란 세 때의 끼니와, 두루마기 없는 겨우살이 한 벌, 이른 봄에 푸중의적삼, 단오 대목해서 회중 의적 삼 여름에 배등지게(등거리), 가을에 솜바지저고리,---이렇게 옷가지나 얻어 입고 발에 두르는 감발 두감에, 머리에 동여매일 수건 세 채가 고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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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럭저럭 3년을 살아보았으나 별 수가 보이지도 않았고, 스물 두세 살의 한창인 시절을 남의 일로 허송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해먹기 짝이 없어, 절게살이를 그만두고 갱고지로 돌아가서 농사를 도울까고도 생각해보았고, 그의 본집ㅇ서도 그렇게 하기를 은근히 권 해보았으나 막상 4년이 접어드는 봄이 오니 두칠이는 박참봉의 컴컴한 절개방을 떠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아무말 없이 절게살이를 계속하면서 소처럼 되게 일만 하였다. 그에게는 미상불 딴 궁리가 없지 않진 못했던 것이다. 열 여섯을 맞아 지금 한참 피어나려는 쌍네, 그를 은근 히 두칠이는 탐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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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네는 비록 비천한 몸이기는 하나, 피어나는 처녀의 마음이라, 두칠이 따위를 안중에 둘 리가 없다. 그와 나이 동갑세인 도련님으로 형준이가 있고, 그보다는 3년씩 아래지만 형선이와 형걸이가 있다. 종된 몸으로 어디다 꾀를 쓰고 도련님께 마음일망정 두 어보 랴 마는, 뚱그렇게 맑은 그의 두 눈은 싫도록 그들을 보아온 터이다. 이들을 익히 보아온 처녀의 눈이, 여드름이가 툭툭 튀어 올라 벌겋게 괄은 상판때기와, 어느 윤동짓달에 빗어라도 보았던가 싶은, 마구 따은 머리채를 빙빙 둘러 꾹 찌르고, 무명 수건을 휭휭 둘러 감아놓은 저, 어수선한 머리빡과 때와 땀에 절은 무명옷 주제에 마음이 끌린다든가 쏠린다든가 할 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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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하루 세 때 제법 밥상이라도 날라다주던 것이, 나이 차면서는 면바로 그 의 얼굴을 쳐들지도 않으려 들고, 밥상 같은 건나 많은 종에게 내맡기고 두칠이의 옆에 가까이 오는 것조차 모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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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쌍네는 자꾸만 커갔다. 열 여덟으로 접어 드니 고된 노동과 하찮은 의식( 衣食)에 눌려 서도, 꽃은 제 시절을 잊어버리진 않는다. 얼굴을 엎었던 솜털은 새하얀 살결에 몰려서 떨어져 벗어지고, 볼편에는 불그레한 살이 도동하니 올랐다. 쩍지는 일었을망정 입술의 색깔은 유난히 붉어지면서, 가슴은 적삼 속에서 눈에 띄게 부풀어 올랐다. 치마 밑으로 궁둥이의 뼈가, 탄력 있는 근육에 흡신하니 둘러싸였다. 인제는 누구의 눈에도 나이 찬 색시의 것으로서, 부끄러움 없을 발육을 보인 여자이 육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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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칠이의, 자라나서 몸에 겨운 성욕은 마침 스물 일곱의 무서운 고개를 넘고 있었다. 어느 으슥한 여름날 저녁, 두벌 기음(잡초)을 늦게지 조밭에서 매고 온 두칠이는, 제 방에서 저녁상을 받았다. 그날따라 나 많은 종은 심부름을 가고 밥상을 들고 온 것은 쌍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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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맹패치마로 아랫도리를 두르고, 말라 올라붙은 베등지게가 하이얀 살을 그대로 내놓았다. 밥상을 그의앞에 놓으려 할제, 상에는 통히 정신이 없는 두칠이는 눈으로는 푹 수 그린 쌍네의 가리마를, 그리고 두 손으론, 상 언저리를 잡은 쌍네의 활짝 걷어 붙인 두 팔을 덥석 붙들었다. 상은 그런 대로 방바닥 위에 고이 놓였으나, 벌딱 일어서는 두칠이의 무릎이 갓짠지냉국을 밀어 엎었다. 성난 짐승처럼 두 팔이 쌍네의 윗통을 낚아채려 들 때, 쌍네는 발로 문턱을 벗디디고, 찰거머리 같은 사나이의 손을 털어버리려 든다. 냉국물이 쏟아져서 발등을 적시고, 이어서 잎숟가락이 그릇에 부딪쳐서 왜가당거리며 소리를 내었으나, 두 칠 이의 귀에는 돌릴 염도 안 했다. 무서운 힘으로, 버둥거리는 쌍네의 몸을 방안으로 끌어 들이려고 하는데 인기척이 났다. 잡았던 손을 놓는 바람에 쌍네는 토방에 뒤로 나가 자빠지고, 두칠이는 10리 길이나 뛴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컴컴한 방안에 넘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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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쌍네가 왜 이러니." 하는 나직한 목소리가 늙은 종의 말소린 것이 분명할 때에, 두칠이는 다소 안심하였다. 이 러한 사연의 내용을 알아차리고 뜰 안에서도 아무말이 없다. 쌍네는 늙은 종의 옆에서 어깨춤을 훌쩍훌쩍 추면서 어청어청 부엌 쪽으로 걸어가고 있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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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누구의 눈에도 띄리만큼, 두칠이의 앞에 나서기를 쌍네는 꺼렸다. 한 번 그가 밑마당질을 하러 두서넛 일꾼과 방선문께를 갔는데, 쌍네다려 점심 밥 광주리를 여다주라니까, 그는 상전마님의 명령인데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부엌에서 주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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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네를 가엾어하는 늙은 종이, 제가 간다고 나서는 바람에 별일은 없었으나, 박참봉의 아낙은 그때부터 두칠이를 꺼려 하는 쌍네의 태도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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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봉은, 두칠이가 고된 일에 불평도 없이, 6,7년 동안이란 긴 세월을 소처럼 근 직하게 일해 내려온 것이, 자라나는 쌍네에게 맘을 둔 탓이라고 넘겨짚어 오는 데가 퍽이나 오래 였다. 그러므로 마누라 최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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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칠 이란 놈이 쌍네보고 무슨 장난을 쳤는지, 밭에 점심도 안 가지고 갈람네다레." 하고 알려바칠 때, 입에 물었던 담뱃대를 빼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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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칠이 나이 얼마 안해 삼십이 아닌가." 하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다시 입에 담뱃대를 물고, 뻐금뻐금 연기를 뿜는 박참봉의 옆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의 마누라는 지금 말로는 안 하지만 속으론 영감이 '참 그러고 보니 쌍네가 오래지 않어 스물이 되는구만’ 하고 어쩌면 새삼스럽게 활짝 피는 쌍네의 팡 파짐한 궁둥이께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게라고 선뜻 생각해보고 얼굴이 좀 붉어졌다. 그러나 마누라는 아무말도 안하고 안방으로 물러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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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한가지 작은 사건이 마누라의 눈에 띄었다. 맏아들 형준이가 삭명 경주 김씨의 집으로 장가를 들던 날, 쌍네가 아침밥도 안 먹었고, 밤이 으슥해선 뒤뜰 안 벌통 앞에서 시름없이 우는지 한숨을 짚는지 멍해 앉아더라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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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준이가 장가를 들자 곧 색시를 데려왔으니 부부간 의가 나쁜 처지도 아닌 바엔, 쌍네가 아무리 공연한 생각을 품어보았자, 이러니저러니 말썽이 일어날 리도 없었으나 한 해를 넘어 열 아홉이 된 몸짓을, 가만히 눈 붙여보매 쌍네의 얼굴이 점점 남의 눈에 띌 만큼 아름다워지는 것이 사사모사로 일을 저지를 위험성이 없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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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아들은 그대로 아무 일 없다 쳐도, 장차 형선이와 형걸이가 장성해가고, 또 한편으론 돈 모으는 재미에 작은댁 이외에는 딴 염을 못 내었던 영감도, 아니할 말로, 이제부터는 어떻게 몸을 가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뻗치니 한시라도 빨리 묘방을 써야 될것처럼, 그리고 꼭 아들이나 영감이 그런 잘못된 골로 빠지고야 말 것처럼, 갑작스레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래서 두루두루 혼자 궁리한 끝에 얻은 것이 한가지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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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떤 날 오라비 되는 최관술이가 사랑에 온 것을 조용히 안방으로 불러 들였다. 관술이는 그때 동학인가 뭔가를 믿기 시작한다고 처음 서울 출입을 하기 비롯할 무렵인데, 매부 되는 박참봉에게 개화사상과 동학을 깨우쳐드린다고 자주 사랑에 발길을 하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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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칠이를 우리 집 쌍네에게 장가 드리는 게 어떨까 해서 의논하는 말인데, 주사는 어떻게 생각이 감마." 하고 누이가 물으니, 삭발하고 개화경을 낀 관술이는, 그때는 아직 갓을 쓰고 다녔는데, 한번 버릇처럼 갓끈과 수염을 만져 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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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사상은 서학이나 동학이나를 물론하고 모두 비복을 해방하라는 주장이올시다. 그러니 쌍네가 낳은 계집 자식을 일후에 다시 종으로 잡아둘 생각만 없으시다면야, 물론 그렇게 하시는 게 지당한 일이올시다. 그런데 원 형님이 들으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공손히 누이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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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야 임자 형님도, 두칠이가 쌍네에게 말을 두고, 고된 일도 아무 알 없이 10년 가까운 세월을 이 집이서 지내온 걸 알고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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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기는 하였으나 관술이 누이 최씨는 속으론 물론, ' 영감이야 반대하든말든, 어서 두칠이와 쌍네를 부부를 만들어줘야 모든 일이 안심이 된다. 만약에 이 말에 반대를 놓을 지경이면, 그 이면이 아무튼 구린 게 분명하니,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뜻대로 작정을 지어야만 할 게다. 가령 마지막에는, 쌍네가 형준이에게 맘을 두었던 게 이러저러한 걸로 보아 틀림없는 일이니, 지금은 장가 들어 얼마 되지도 않으니 딴 맘을 먹을 새도 없을 게로되, 계집의 맘이란 꼭 두부모를 뜨게 하는 고양이의 도굿과 같아서,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집안에 백 년의 화를 남길는지도 모를 게다든가, 쌍네의 생김새가 계집애로서 영악하고도 간사스러워, 종차론 형선이와 형걸이에게도 어떤 한갓 되지 않은 행실머리질을 할 염려도 없지 않아 있다든가---어떻든간에 영감이 깨우쳐 알 도록은 있는 말 없는 말을 다해서라도, 이 일만은 작정을 보아둬야 한다.’ 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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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도록 주밀스레 갈피갈피 생각하고 궁리해둔 걸 채 털어 놓기도 전에, 박참 봉은 마누라 최씨의 의견을 그대로 단마디에 좇아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영감의 대답이 예상외로 홀가분하니, 최씨는 외려 마음이 께름직했다. 요렇게 반갑게 대답이 나올 리도 만무하고, 다굿통이 센 영감이 많은 돈을 먹여서 사놓은 재산을, 이렇게 대소롭잖이 놓아줄 이치가 없는데, 혹은 속으로 무슨 딴속을 차려볼 생각이 있지는 않은가. 두루두루 되새겨 보아도 그럴 법한 생각이 도무지 머리에 떠오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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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문명이 모두 그렇다고 하니 시세엗 좇을 겸, 아니할 말로 아이들도 나이 차서 장성 해가는데, 종차로 무슨 실수를 저질러놓을는지도 염려가 되고요, 이모저모 그렇게 하는 것이 십상일 것 같애서 권해 본 말 슴이웨다 으레 "하고 최씨는 다시 한번 다져놓은 뒤에 뒷일을 자상하게 상론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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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봉 내외의 생각이 일치하고도 또 얼마를 그대로 지낸 뒤에, 하루는 두칠이가 노는 날을 택하여, 박참봉은 사랑으로 그를 불러다 앉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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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이 내년이면 스물 아홉이니 오래잖아 삼십이야. 네가 내 집에 온지도 8년이 됐으니 인제는 성가를 할 나이 아닌가. 너는 잊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너보고 처음 해둔 말도 있지안 한가, 일만 부지런히 할 지경이면 뒷날 결단코 해롭겐 안 할 테라고. 그래 어떤가, 네 맘만 내킨다고 보면 쌍네도 이왕 나이 차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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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좀 말을 끊고 두칠이의 낮짝을 바라보니, 그의 얼굴엔 기쁜표정이 가득하였으나 그 커다란 입을 벌신하니 웃어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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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릿님 처분에 다시 이를 말씀이 있습너니까." 하고 굽신 머리를 굽혀 절을 할 뿐이다. 두칠이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출 수 없는 즐거움을 넌지시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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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처 될 년으로 말할 지경이면, 아홉 살에 제 애비가 원산으로 가면서 내게다 맽긴 것인데 그때 한참 바른 돈에 적지 않은 금액을 지애비 손에 들려주었더란 말일세. 그러고 보니 오늘날 그 이자를 따진다고 들어도 수천금에 이를 것이야. 하나, 내가 너에게 그렇게 야박 수레 굴 생각은 없어.--- 이 대목에서 약간 긴장했던 두칠이의 얼굴에 안심의 비치이 돌며, 또 한 번 굽신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무릎 위에서 맞비비어본다. --또 하나 너에게 말 해 둘 건, 년에게서 나오는 소생의 만약 딸자식이고 볼 지경이면, 고것이 고대로 내 집에 메우는 것이 되는 건 여태껏 내려오는 관습이로되, 내 생각하는 바가 따로 있어. 종차론 그런 풍속을 없이 할 생각이니, 아들을 낳건 딸을 낳건 그건 너의들 맘대로 기르란 말일세. 금년은 이대로 지내고 내년 추수나 치른 뒤에 머리나 올려주고, 물역 쪽 막간을 맡아서 살아 보게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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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끝난 다음 두칠이는 코가 땅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고 제 방으로 불러 나왔다. 절개 로부터 막서리로 되는 것이 기쁜게 아니다. 인제 누가 뭐래도 그 탐스런 쌍네가 제 것이 될 테니 그것이 기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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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이튿날 쉬 저녀때쯤 해서 사랑에서 물러 나온 쌍네는, 두칠이와는 반대로 두 눈에 눈물이 어리어서 그대로 서각으로 뛰어갔다. 아무도 없는 재통에서 그는 한참 동안을 울어 보았다. 울어보니 무슨 소용이랴. 좋건 글렀건 내년 가을이면 그는 두칠이의 안해가 되고 마는 것이다. 먼데로 도망을 가거나, 목숨을 끊어 강에 던지거나, 비상을 먹고 살을 썩이든 가 해버리기 전에는 울어보나 버둥거려보나, 그는 두칠이의 안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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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에 합당한 남편이라면 종신을 종으로 지낸다고서 무슨 원한이 남으랴. 그 남편이 절게 면 어떻고, 생기는 딸자식이 대를 이어 종살이를 한단들 무슨 유한이 있을 거냐, --- 더구나 종간나 보다 막서리의 처가 얼마나 훌륭한 지원지, 절게보다 막서리가 얼마나 월등한 지 벌이지, 쌍네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막서리가 된다 해도 하는 일, 당하는 일은 매 한가지가 아닐 거냐, 그럴 바엔 마음에나 내키는 사나이와 한세상 살아보고 싶은 것만이 단 한 가지의 소원이었다. 마음에 내키는 사나이 아니면 안 된다고 작정한 사나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 두칠이에게만은, 징그럽고 구질구질하여 마음이 도무지 끌리질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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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세 타령을 한다고 든다면, 아예 당초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종으로 팔았을 때부터, 일은 이렇게 되기로 마련이 된 것이 아니냐. 지금 이 지경이 되어서 이러니저러니 조 밥이다 쌀밥이다 하고 가리려드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쌍네도 그것을 모르는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박참봉이 하는 말에 푹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 대꾸도 못하고 사랑을 물러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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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작정한 대로 가혹하게 실행이 된다. 그리하여 그 이듬해 가을에는, 쌍네는 두 칠 이의 안해가 되어, 박참봉네 큰집 물역 쪽으로 있는 막간방에서, 두칠이의 오랫동안 막혀 쌓였던 정욕의 가엾은 대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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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렷한 달빛이 창에 훤하다. 두칠이 처 쌍네는 비류강 쪽으로 향한 박간방에 혼자 자리 도안 깔고 번 듯이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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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뭇골 댁에 설기떡을 갖다 두고 오던 길에, 형걸이를 길 위에서 만나 뜻하지 않았던 변을 당하고, 한참 동안은 흐르는 눈물을 씻지도 않고 그대로 종종걸음을 쳐서 행길로 나왔다. 물역 쪽으로 난 뒷대문으로 돌아서 저이 방을 옆으로 보며, 그는 안뜰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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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리 늦었느냐’는 말에, 두뭇골서 배 도투마리 감는 걸 잠깐 도와주고 온 탓이라고 거짓말을 할 만치, 그때에는 벌써 가라앉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방안에서 그 말을 듣던 최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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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부럼 간 사람을 잡아놓구 일을 시키문 어쩌자는 겐가.’ 하고 혼자 두뭇골 작은댁을 나무라고 있었다. 말이나 노새나 당나귀나 소의 여물들은 어찌 돼는가고 물었더니, 늙은 종이 전부 갖다주었다고 한다. 그래 쌍네는, 떡 한 그릇과 두 칠이가 오거든 주라고 밥과 오가리 찌개와 김치를 함지에 얻어 이고, 제 방으로 돌아왔다. 좁은 부엌에 함지째 놓아두고 그는 그대로 방안에 들어왔다. 저녁 생각이고 뭐이고 도무지 배가 고픈 것 같지가 않다. 가슴이 금시에 울렁거리다가도 얼마 전에 길 위에서 당한 일이 꿈은 아니었던가, 내가 미쳐서 어느 귀신에게 홀렸던 거나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면, 영락 없이 그리된 일임에 틀림없는 것도 같아서, 가슴은 철싹 물러앉고, 낯에서 피가 쭉 밑으로 훌 러버 려서 가벼운 현기증조차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꿈에도 당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와 동갑 되는 맏도련님 형준이가 삭명으로 장가를 드는 날 밥도 안 먹고 밤에는 뒤뜰에 있는 벌통 앞에서 한숨을 짚었다는 것이, 그 뒤 늙은 종이나 작인의 마누라들간에 한갓 되지도 않은 주둥아리의 군입심감이 되었다고 하나, 그거라고 별로 도련님에게 마음이 달떴던 때문도 아니었다. 다른 집따라 없이 열 여덟이 되도록 도련님들의 혼사를 지내지 않는 이 댁 풍속이, 남들는 이러니저러니 시비질을 하지만,어느 겨를에 시집이고 뭐이고 가마 탈 세월이 올 것 같지도 않은 쌍네에게는, 상전의 도련님이 아직 장가 갈 염도 안 하는데, 하여 적지 않이 위안이 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위안조차 형준이의 혼사로 위해 부서지고 말았으니, 그렇잖아도 마음이 살난스러워 참을 수 없는 낫세에, 한숨이나 눈물이나가 솟구쳐 오르지 않을 리 만무였다. 대체, 저르 이 고장에다 내버려두고 원산 쪽으로 살 길을 찾아 길을 떠나간 지가 10년이 되었건만, 생사의 소식조차 전하지 않는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죽어 뻐드러져, 흙이 되어버렸는지, 귀신이 되어 어느 허공에 실 끊어진 종이연 모양으로 너풀거리고 있는지, 궁금하다기보다 그리웁고, 그리 웁 다기보다 안타깝고, 안타깝다고 가슴을 부여 뜯을 땐, 우선 눈물이 낯을 적셔버린 뒤이었다. 나를 어쩌라고 이 구덩이에 몰아넣고, ---이렇게 원한까지가 뒤섞이면 이런 세상 한평생 살아가느니 오히려 목숨을 끊어 자결을 해버림만 같지 못하다는 욕된 생각까지 들게 되는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겨우 진정하고 마음을 수습하노라니, 아침밥도 굶었던 것이요, 밤이 으 슥 해선 뒤뜰 안에 혼자 앉아 시름없는 세월도 보냈던 것이다. ---도련님의 품에 안긴 꿈이라니, 어느 하늘에 머리를 솟구고 무엄하게도 입밖엔들 낼 수 있을 거이냐. 그렇던 그것이 얼마 전에 꿈도 아닌 생시에, 도련님 중에서도 가장 미츳하고 깨끗한 두뭇골 도련님과, 어엿하니 길 위에서 벌어졌다니, 귀신에 홀렸다는 생각을 가짐도 과시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꿈은 아니었다. 눈을 바로뜨고 창문을 바라본다. 창살 구멍이 저렇게 똑똑히 보이고, 그 틈으로 하늘 중천에 한모가 이스러진 보름 가까운 달이, 물 같은 달빛을 뿌리고 있는 것이 저렇도록 분명히 보이는데, 귀신에 홀렸다는 건 더구나 안 될 말이다. 혀를 내어 입술을 빨아본다. 아직도 쌍긋한 두뭇골 도련님의 침맛이 남아 있다. 불보다 더 따가운 도련님의 입술이, 볼때기와 인등깨를 미칠 듯이 돌아가다, 겨우 제 입술을 찾았을 때에 느꼈던 감격이, 아직도 이 몸에 남아 있다. 꿈은 결코 아니었다. '달이 넘어갈 때’ 하는 도련님의 더운 입김과 함게 배앝은 말이 생각킨다. 그는 불현 듯이 물역 쪽으로 통 한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대문에 이르기 전 저만큼에, 나지막한 가시 울타리가 있고 작은 문이 달려 있다. 필시 도련님이 오신다면, 물역 쪽으로 돌아서 뽕밭 머드리를 지나 이 울타리 문으로 들어올 게다. 아직 두칠이가 나무를 실고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바깥 큰대문이 열려 있으나 그 문을 지나자면 사랑 마당과 외양간을 지나고 서각 뒷목을 돌아와야 이 곳 에이를 것이니, 남몰래 이 방을 밖에서 찾아들자면 무역 쪽, 이 울타리께로 오는 것이 가장 곧 빠르고 틀림이 없다. 안으로 통하는 외짝문이 있으나, 그것은 다시 부엌을 넘어서야 바깥 뜰안으로 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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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버선발로 뛰어나가 걸렸던 울타리문을, 밖에서 밀면 수이 열릴 수 있도록 빗장을 뽑아놓았다. 달을 쳐다보니 십이봉 위에 아직도 두 발만큼이나 떨어져 걸려 있다. 저놈이 진때 라면, 두칠이가 올 때 일 텐데, 하고 무심코 생각하고나니 자기가 과연 도련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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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아랫목에아무것도 깔지 않은 채, 번듯이 드러누웠다. 두 칠이 생각이 난다. 그가 매일처럼 고된 몸도 돌아보지 않고, 달게 구는 것이 그렇도록 이나 싫던 쌍네로서, 도련님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이왕부터 마련되어 있어서든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비천한 몸이기로니, 그리고 두칠에 대한 애정은 있거나 없거나, 자기는 남의 안해된 몸이 아니냐. 생각을 돌이켜보면, 생뚱한 총각에게, 입술을 뺏기고 품에 안겼던것만 해도 죄스럽고 원통할 일인데, 그는 제 스스로 남편 아닌 딴 사나이가 찾아들라고 문을 열어주고 있지는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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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나서 문을 걸려 나가려곤 하지 않았다. 길 도중에서 남편인 두 칠이가 무슨 이변이라도 만나서 새벽녘에나 돌아오면, 아니 그대로 삼밭이 농막에서 밤을 새고 동녘이 훤히 터서야 돌아오면은---이렇게 그의 마음 한 귀퉁이에선 은근한 기원을 올리고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는 부질없고, 거치장스럽고, 찌껍찌근한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 않기로 기를 쓴다. 단 하나 도련님과 길위에서 만나서 헤어지던 대목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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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모르고 덥벅덥벅 좁은 길을 양푼을 들고 걸어오던 것과, 길 가운데서 불쑥 허 이연 것이 솟아오를 때 기겁을 하여 놀랬던 것과, 그것이 뜻하지 아니한 두뭇골 도련님 인대 또 한 번 가슴을 놀래고 거진 소리를 지르려다 그 다음은 어쩐지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던 것과, ---여기에까지는 대충대충 빨리 생각을 채치고, 도련님이 그에게 존댓말을 엉 겁결에 건네던 고비에서부터는, 될수록 느리게 발걸음을 쓸데없는 곳에서 마실을 시키면서 끌어오다가, 입을 맞춘 뒤에 몸을 뽑아, 달이 구름장을 지나가는 우렷한 길 위를, 종종걸음을 치며 까닭 모를 눈물을 흘리던 고팽이까지를 그는 양껏 향락해보는 것이다. 이것을 되풀이 하여 싫증이 나기 전에 도련님의 발자취 소리가 뽕밭 머드리에서 들려오기만 한다면 --- 그 뒤에는 두칠이 따위가 소를 몰고 돌아오던말던, 아무 계관이 없을 게라고까지 생각이 드는것이다. 그는 여태껏 무수하니 두칠이와 잠자리를 같이하였고, 머리 올린 지 반 년만에 유산까지를 치른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도련님의 애무를 상상해보고 있을 때엔, 마친 아무개에게도 몸을 허락한 적이 없고, 고이고이 싸두어서 누구 하나 손끝도 얼씬 못한 처녀인 것처럼 자기가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사실 길을 막고 물어볼 말로, 시집이라고 든 지 달로 쳐서 1년 하고도 반 년 동안, 한 번인들 이러한 감격에 몸을 맡겨본 적이 있었떤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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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들어서 가슴을 눌러본다. 제 가슴을 제 팔로 꽉 껴안아도 본다. 그러나 엉 겁결에 한 손에 든 채 도련님께 껴안겼을 때와 같은, 벅차고도 울렁거리던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좀처럼 솟아나지는 않는다. 그는 푸 한숨을 짚고 몸을 뒤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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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안에 창문 있는 쪽이 어둑어둑해져 갔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누지 못하며 창을 바라보니, 달이 산봉우리 뒤로 거지반 떨어져 간다. 그는 두 팔로 낯을 꽉 가리고, 이 일을 어찌 할 까냐고 고함을 지를 듯 안타까워한다. 그것은 달이 떨어지니 인젠 곧 도련님이 올 게라는 두려움 섞인 심리의 발작인지, 넘어가는 달을 잡아두고 싶은 간지러운 희망의 표시인지, 그로서도 도무지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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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뿔사, 사랑 쪽으로 난 큰 대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가 나며, 확실히 두칠이의 말소리로 이라 쩌쩌 하는 소 모는 소리, 큰 나무 바리가 대문 문설주에 싹 하고 대이는 소리조차 똑똑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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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칠이가 왔다. 도련님은 아니 오고 두칠이가 왔다. ---이 생각이 그의 머리에 뚜렷하니 새겨질 때 쌍네는 머리에서 손을 떼며, 꿈에서 깨인 듯 '잘 됐다’하고 가느다란 한숨을 짚었다. 두칠이는 오락가락 60리 길을 소를ㄹ 모며 다녀오고도, 아무런 불평 없이 사랑 마당에 서 나무만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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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네는 가만히 일어나서 컴컴한 방 가운데 잠시 서보았다. 땡해진 머리를 두 손으로 부둥켜 들고 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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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게 오길 잘했다. 하고 소리가 나도록 중얼대어보았다.
【원문】대하(大河)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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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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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