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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학 (孔主學 ; 弟[제], 船主[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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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龜主簿 ; 隣島[인도] 漢醫[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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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에 면(面)한 무의도(舞衣島 ; 떼무리라고 부른다)라는 조고만 섬. 섬에 흔히 볼 수 있는 퇴락한 어부의 집. 전면은 가도(街道). 후면은 사장(砂場)을 내려 바다. 우편에 느티나무 고목일주(一株). 울굿불굿한 헝겊이 무수히 달린 사당. 지붕에는 풍어를 빌든 봉죽[盛漁旗]이 낡은 채 펄럭인다. 그물말에 걸린 건어꾸레미와 어촌색을 낼 만한 어구들 상당히. 도민들이 가장 기피하는 황량한 겨울이 접어들려는 10월 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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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만조(滿潮)라 푸른 감벽(紺碧)이 수건을 넣으면 물들듯하다. 단조한 파도 소래와, 이따금 들리는 물새떼의 울음 소래. 나루터 하나 격(隔)한, 인도(隣島) 큰 떼무리의 한방의(漢方醫) 구주부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초조히 누구를 기대리고 있다. 그 뒤에 나들이 옷을 말쑥히 입은 막내딸 희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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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녀 (하품을 길 - 게 하며) 아 - 이, 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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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이 어쩐 일일구? 네 시 배엔 꼭 올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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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녀 아버지, 그만 갑시다. 암만 기대려두 어디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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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위엄을 부리며 소리를 질른다) 이년, 앙알대지 마라. 고샐 못 참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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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 - 리 인천으로 입항하는 기선의 둔중한 기적 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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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발돋음을 하며) 저기 오는 건가 부다. 이번엔 틀림없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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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녀 그게 항구루 들어가는 윤선(輪船)이지, 통운환(通運丸; 인천과 무의도를 定期[정기]로 왕복하는 발동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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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이년아, 내가 늙어서 안력두 없어진 줄 아니? 늙을 낙 멀었다. 나가사끼 중선 옆으루, 연기 뿜구 오는 게 통운조합 똑대기가 아니고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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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머리를 쿡 쥐어박으며) 너 이년, 천명이 앞에서두 그따위루 혓바닥을 쑥쑥 내밀구 못난 짓 할라, 또.
32
희 녀 발동기 고등 소리가 날 쩍마닥, 오나 하구 어떻게 기웃거렸든지 모가지가 다 아퍼 죽겠네.
33
구주부 필경 오다가 도중에 고장이 생긴 거야. 그렇지 않구야 사흘씩 지체할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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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녀 고장 안 나구라두 떼무리서 내리는 손님 없으문, 여울에서 쉬지 않구 덕적(德積)으루 그냥 내려가버려요.
35
구주부 이년아, 천명이, 천명아버지, 노틀할아범 셋이나 탔는데, 내려주지 않구 그냥 간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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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兩人),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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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녀 아이, 추워 죽겠네. 아침밥두 못 먹게 하구 끌구와서, 괜히 남을 못 살게 구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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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돌연 화를 벌걱 내며 소래를 고래고래 질른다) 뭣이 어째 이 년, 아침밥두 못 먹게 하구 끌구 와서 못 살게 군다구? 이년, 애비한테 말하는 소리 좀 들어봐. 장차 네년 신랑될 사람을 마중나온 게, 그래 널 못 살게 군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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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녀 체, 누가 천명이한테 시집 간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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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천명이한테 안 가구, 그럼 누구한테 갈 테냐? (비감[悲感]하여진 듯 콧물을 훔치며) 이년, 죽은 네 에밀 생각해서라두 지금 그 소리가 목구멍으로 나오냐? ‘내가 죽드래두 희녀만은 고이고이 키워서, 용유보통핵교 첫찌루 졸업한 천명이한테 꼭 시집을 보내두룩 하우’ 하구 눈을 감든 네 에밀 생각해봐라, 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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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녀 체, 핵굘 첫찌루 졸업하믄 뭘 해? 쌈판만 타두 뱃속에서 똥물이 겨 올라온다는 것한테, 누가 시집을 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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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저년, 제 신랑 험담하는 것 봐.
43
희 녀 흥, (길 - 게 또 하품을 하며) 아이, 졸려 죽겠네. 동네 기집애들이 나만 보문 ‘천명이 색씨, 천명이 색씨’ 하구 놀려대요. 그럴 쩍마닥 난 부끄러 죽겠어요.
44
구주부 천명이가 싫거든, 너 가구 싶은 대루 가렴. 배님자 다섯째 첩으루 들어가는 건 난 말리지 않을 테야. 하하하. (혼자 통쾌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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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참, 네 따위한텐 과분한 신랑이지. 항구 일본 사람 상점에서 일년이나 있었어. 몸둥이에서 해금내가 쾌쾌히 나는 뱃눔들하구야 바탕이 달르지, 바탕이 달러. 하하하.
47
희 녀 (넘겨잡아 규지[窺知]하려는 듯) 그렇게 잘났는데 웨 가게서 내쫓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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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내쫓기긴 웨 내쫓겨, 이년아. 지가 싫어서 그만뒀지. 몸이 좀 약해서 자꾸 쉬니까, 쥔이 집에 가서 몇 달 동안 조섭해가지구 다시 오라구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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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의 모(母) 공씨, 등성이길로 내려온다. 전신에 풀이 하나도 없다. 말은 늘 깊은 한숨과 푸념에 섞여나온다.
51
구주부 오늘 왔든 김에, 아주 천명아범하구 천명일 보구 갈려구 하네. 내일은 또 우리게 구장 마누라 맹장염을 터틔려야 할 테니까.
53
희 녀 괜찮어요. (부[父]에게) 기대리실랴거든 아버지 혼자 기대리세요. 난 갈 테에요. 나루삯 줘요. 나루삯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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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갈랴거든 가라. 나루삯은 없어. 멀쩡한 년이 다리 가지구 웨 못 걸어가?
55
희 녀 왔다갔다 사십리 길을 사흘이나 걸어 걸어서 장다리가 시퍼렇게 부풀러올랐어요.
58
희녀, 뾰루퉁해서 좌변 가도로 나간다. 도령(島嶺)에서는 고사를 지내는 깽매기 소리, 징 소리, 간간(間間) 대쪽을 짜개는 듯한 무당의 광란된 푸닥거리 소리.
59
구주부 (도령을 쳐다보며) 배님자 마누라두 거 춤을 곧잘 추는데?
60
공 씨 배님자 마누라가, 검정 소바질 미리 해입구 춤을 잘 춰야 서낭님(水神[수신])이 모진 추윌 주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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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자네들이야 동알 잡을 테니까, 하루바삐 추윌 달래지만, 우린 하루라두 늦게 춰지는 게 좋아.
62
공 씨 (성황당 쪽을 가리키며) 저 무당이 아주 귀신이 통한 무당이랍니다. 서울서두 대갓집이서 고사 지낼 땐 꼭 저 무당만 불러간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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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벌써 동앗배 나갈 때가 됐으니, 올 철두 인젠 다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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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옘평[延平] 덕적선, 선창 술집들 벌써 막 걷었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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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 동앗배 기대리구 입때 있겠어요? 조기사리 민어사리에 돈 잡은 사내들, 제각기 채가지구 간지가 언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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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 마당에 널린, 밀물에 쏠려 들어온 뗏목껍질, 지푸락, 파선목편(破船木片) 등을 주서안고 부엌으로 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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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 (부엌에서 나오며) 가새에 성해가 또 구들짱같이 허옇게 끼겠지. 인젠 그나마두 죽치구 들앉었어야 할 테니, 그눔의 긴긴 겨울을 또 뭘 먹구 사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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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올핸 추위가 빨렀으니까, 내년엔 철이 일를 테지. 정이월엔 성해두 풀릴걸. 초순부턴 살[立網] 치게 되구 새우사리 나가게 될 걸세.
71
공 씨 철이 일르믄 뭘 합니까? 동네 사람들 한식(寒食)사리 나가는 것 보믄, 또 울화가 뻗친다구 술만 먹구 댕길텐데. 다 중선있구 그물 가진 사람들한테나 좋지요.
72
구주부 그리게 내 말대루 천명일 우리집으루 보내게. 괴기잡이란 밑천 없이는 못 해먹는데두 그래.
74
구주부 글쎄요 글쎄요 할 게 아니라, 아주 딱 결정을 해버리게. 사람이 하룰 살어두 장랠 바라보구 살어야 할 게 아닌가?
75
공 씨 제 삼춘한테두 한번 의론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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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부 아 - 니, 자네 자식 일을 뭣 때문에 주학이한테 의론할 게 있나?
77
공 씨 그애 공불 시킨 것두 제 삼춘이구, 오늘날까지 멕여살린 것두 제 삼춘이구, 또 항구 상점에다 넣준 것두 제 삼춘이에요. 나하구 그애 아버지야 명색이 부모지 아무 힘이 없어요.
78
구주부 주학인 물론 제 중선에다 태우자구 할 걸세. 보나 안보나 뻔한 노릇이지.
79
발동선이 단조(單調)한 파도 소래를 깨틀고 섬을 향해 질주해 오는 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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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 혼자 가보세요. 난 그녀석 꼴두 뵈기 싫어요.
82
구주부 (주위를 둘러보며) 아 - 니, 이년이 정말 가지 않었나? 희녀야, 희녀야.
84
구주부 그럼 그렇지. 나루삯 없이, 제년이 무슨 재주루 가? 하하하.
85
구주부, 구르는 듯이 선착장 쪽으로 달려간다. 공주학의 중선 사공 성서방, 광주리를 메고 가도로 들어온다.
86
성서방 (마루에다 고추를 끄내놓며) 뒀다 쓰십쇼.
88
성서방 항구서, 밴댕이 나부래기하구 바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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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방 네, 아 방짱까지 쫓아들와서, ‘고추만큼이나 줘야지요? 이건 긴긴 해 땀꼴 빼구 진 거지만, 당신네야 쟁기 한 번만 띄면, 수천 마리씩 잽히는 게 아니요?’ 하구 막 움켜가요. 안 바꿀래야 안 바꿀 수가 있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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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 이러다 배님자 알문, 야단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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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 낼 아침에 배 낸다문서, 별안간 그만두문, 배님자가 낭패하지 않겠나?
99
공 씨 고추 가지구 오는 예편네하구 살기루 했다드니, 그럼 살림을 꾸민 게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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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방 (계면쩍은 듯이) 항구에다 방 한 칸 얻어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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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 허지만, 거 낭팰걸? 별안간 어디 가서 동살 구하겠나? 가뜩 손이 모자라서 쩔쩔들 매는 판인데.
102
성서방 아무튼 난 사공하군 인연 끊기루 맘 먹었어요. 나 아니래두 흔한게 사람인데, 탈 사람 없을라구요?
103
공 씨 이번 동아나 잡아주구, 그만둬두 두지. 항구선 젓이 세가 나서, 한 독에 일환각수씩 올랐다는데?
104
성서방 새우사리 조기사리에, 만여 원 벌어줬어요.
105
공 씨 (애원하듯이) 이번 나갔다 들오문, 또 나가겠나? 이번만 나가 주구가게.
106
성서방 아주머닌, 배님자 형편만 생각하시구 그러시지만, 난 나대루 또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107
공 씨 배님잘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막내눔이 오니까 그러네.
108
성서방 아 - 니, 천명이하구 동앗배하구, 무슨 상관이 있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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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 보나 안 보나 그눔을 자네 대신 태자구 할 걸세. 작년부터 천명일 물에 못 내보내서 늘 씨무룩하구 있으니까, 기어쿠 이번 온 김에 내보내자구 헐 걸세. 자네두 알다시피, 그애 삼춘이 낭구 양식을 대줘서, 우리가 먹구 사는데, 야박하게 안 내보낸다구 헐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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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 그만뒀는지 내쫓겼는지 누가 아나? (넋두리하듯) 바다에 안나가겠다구, 사줄 보니까, 전 천상 뭍[陸]에서 살 팔자드라구, 오죽 비두발괄을 했나? 그래 제 삼춘두 헐 수 없이 얼음배 가지구 조기사러 댕기는 일본사람 중상한테 얘길 해서, 간신히 항구 가마보꼬 맹기는 상점에다 넣주질 않었나, 웨? 그런데 그 망할 녀석이 그 빌어먹을 녀석이, 만 1년을 못 있구 퉈나와서 내 속을 이렇게 푹푹 썩히네그려.
112
성서방 안 내보낸다문 그만이지, 설마 강제루 내보내겠어요?
113
이때 여울에 발동선이 정지한 소래, 땡땡하고 경종. 기적, 연기 뿜는 화통 소래, 나즉이 계속된다.
114
성서방 (소래나는 쪽을 바라보며) 저기 천명이 내리는군요. 난 그만 가보겠어요.
115
공 씨 (우변[右邊] 사장으로 나가며) 지금 떠나겠나?
116
성서방 가서 배님자한테 얘기하구, 새벽배루 가겠어요.
117
성서방, 가도로 나간다. 희녀, 급히 달려온다.
118
희 녀 천명이가 자꾸 안 내릴려구 그래요. 그러니까 천명아버지가 주먹으루 등줄길 막 후려갈기시구 야단났어요. 빨리 가보세요.
119
공 씨 에구 애물에 자식.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어 저런 자식을 났을고?
120
공씨, 앞서 사장으로 내려간다. 희녀, 멈즛거리며 뒤따른다. 양인(兩人)이 미처 나가기 전에, 개[浦]에서 떠들석한 소요와 함께, 천명의 팔을 붙들고, 낙경과 노틀할아범 들어온다. 뒤따라 구주부. 천명은 17세의 선병질(腺病質), 캪을 썼고 맞지 않는 화복(和服)에 게다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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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 (달려가 천명을 붙들고 울며) 에구 이눔아, 그래두 죽지 않구 살았으니 다행이다.
122
낙 경 송도가 망할랴구 불가사리가 났다드니, 집안이 망할랴니까 원 저따위 자식이 다 나왔어.
123
구주부 (천명의 손을 붙들며) 이맘 땐 철이 없어서, 까딱 허문 잘못 저질르기가 쉽다네.
125
낙 경 자식이 그래두 뭘 잘했다구, 삼바시에서 버팅기구 밸 안 타겠다는거야. 항구 선창에 사람들이 벽절치듯 끓어서, 어떻게 무안한지 혼났어.
126
공 씨 (울며) 인제 그만 해두. 해두 내일 하구. (천명의 등을 훔쳐갈기며) 이 꼬락서니가 뭐냐? 이눔아, 에미 애비두 없이, 선창바닥으루 떠돌아댕기는 깍쟁이패 같구나.
127
노틀할아범 우선 옷벳기구, 한바탕 멱을 감기세요.
128
공 씨 몸뚱이에 왼통 소굼 천지군. 이 얼마나 씨라립겠니? 희녀야, 부엌에 가서 그 듸레박 좀 들구 나오느라.
129
구주부 아 - 니, 이 춘데 감기 들면 어떡헐려구, 우물루 갈랴구 이러나?
130
희녀, 듸레박을 들고 나와, 공씨에게 준다.
131
낙 경 가서 벳기구, 정술에서 한번 쭉 껸져줘. 정신 좀 벗쩍나게스리.
132
공 씨 꽥꽥 소리 질르지 말우. 간 떨어지겠수. (아들에게) 밥은 어떡했니?
134
공 씨 눈이 한잔 들어갔구나. 석 달 굶은 거지같이, 그 얼굴이 뭐냐, 이눔아?
135
구주부 물을 좀, 뜨듯이 뎌서 씻기게.
136
공 씨 우선 소굼이나 떨구 씻겨두 씻겨야지요. (희녀에게) 너 어렵지만 가마솥에 불 좀 지펴다구. 뒤꼍에 나무 있으니.
137
희녀, “네” 하고 뒤꼍으로 나간다. 나무를 들고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다음 대사가 계속 되는 동안, 물을 퍼붓고 불을 지핀다.
141
노틀할아범 천명아버진 안 자시겠다구 해서 선창에서 나 혼자 먹었어요.
142
공 씨 그럼 빨리 가보게. 배님자가 눈이 빠지게 기대리구있대.
145
노틀할아범 (낙경에게) 너무 닥다리지 맙쇼.
147
노틀할아범, 가도로 나간다. 도령(島嶺)에서는 여전히 깽매기 소리, 징 소리, 무당 푸닥거리 소리.
148
공 씨 (천명을 붙들고 나가며) 글쎄 이눔아, 그 집 싫여서 나왔으문, 바루 내려오문 되지 않니? 집에 왔다구 에미, 애비가 널 잡아먹겠다든? 임금님두 저 싫으문 안 한다는데, 너 싫으문 그만 아니냐? 경쳤다구, 외상밥은 석달씩 처먹구 선창바닥으루 굴러 댕긴단 말이냐 글쎄? (몇 걸음 나가다가 캪을 벗겨 사장으로 팽개치며) 이 걸레쪽 같은 건 뭣하러 쓰구 댕기니? 아직 얼어 죽지 않는다.
150
구주부 (천명의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낙경에게) 거, 1년 동안에 무척 컸는데? 몰라보게 됐어. 몰라보게 됐어. 자넨, 천명이가 나이가 어리다구 허지만, 저만하문 어데다 내놓아두 번듯한 신랑감이야.
151
구주부 혼자 감심(感心)하며, 공씨와 천명의 뒤를 따라나간다. 이때 개에서 공주학의 동라(銅鑼)를 두들기는 듯한 소래.
152
주학의 소래 세상은 돈만 가지군 못 사네. 사공은 첫째, 의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계집만 끼구 들앉었으믄, 누가 숟갈루 밥 떠넣줄줄 아나? ‘죽네 사네’ 하구 선채해 달랄 땐 언제구, 배낼 임시에 와서 ‘나 그만두겠수’ 할 땐 언젠가? 행길을 막구 물어보게. 쥔은 동사 믿구, 동산 쥔 믿구 서루 버팅겨 나가야, 이 허황한 어업을 해먹지? 고기떼 놓치면 밥두 못 얻어먹는 고기잽일 자네 같아서야 누가 같이 해먹겠나?
153
개, 다시금 조용해진다. 이윽고 공주학, 사장에서 들어온다.
157
주 학 계집이 사공을 그만둬야만, 산다구 했다나요. 사공은 몸동이서 해금내가 나서, 잘 수가 없단 말인지 원.
158
낙 경 그래두 얻어찬 게 용허지. 10년이나 홀애비 살림을 했으니까, 싫증두 날 걸세. 이번 나가문, 적어두 보름은 있을 텐데, 혼자 두구 나갈랴구 하겠나?
159
주 학 계집은 계집이구, 동산 동사지요. 나한테 선채해 쓴 게 얼만 줄 아세요? 200환 돈이 넘어요. 그눔이 그걸 먹구, 그대루 자빠질려는 게 밉쌀스러서 못 견디겠어요.
160
낙 경 그럼, 동살 하나 우선 구해야겠군?
161
주 학 도적질두 손이 맞어야 해먹지요? 어디 가믄 사람이야 없겠어요?
163
주 학 그리게 타방에서 벌이 나온 눔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빼먹을 꽂감만 빼먹구 나선 ‘언제 봤드냐’ 하구 싹 돌아슨단 말이야.
165
주 학 낭구만 남았어요. 동사들 나가기 전에 살두 걷어디릴려구 해요. 그런데 참, 천명이가 왔다지요?
166
낙 경 응, 지금 제 에미가 우물루 소굼 떨러 갔네. 한바탕 씻겨가지구, 곧 자네 집으루 갈 걸세.
167
주 학 그눔이 소굼짐을 날렀다지 않어요?
168
낙 경 무슨 귀신이 썼었나봐. 그 소굼떼미가 좀 높은가? 가구리섬만은 할걸세. 거길, 한자 넓이두 못 되는 발판을 디디구 까맣게 올라가구 있데그려.
170
낙 경 한 바소쿠리에, 쌀 두 가마 무겐 짐짓할걸? 노틀할아범은 쳐다만 보구두, 현기증이 나서 어찔어찔한다구 하대.
172
낙 경 줬네. 참 자네가 내주지 않었드문, 그눔은 꼭 경찰서루 넘어갔을 걸세.
173
주 학 눈 감으믄 코 벼간다는 세상에, 석 달씩 외상밥을 준 사람이 다 있으니……. 하하하. (크게 웃는다)
174
낙 경 아직두 야기(八木[팔목]) 상점에 댕기는 줄 알았다는군. 그눔이 거길 나오구서두, 밥집에 가선, 그저 댕긴다구 했다니까.
175
주 학 그렇다구 아무리 눈칠 못 챘을까요?
176
낙 경 첫달은 몸이 약해 약을 먹는다구 했구, 둘째 달은 수금하다 잊어버린 돈을 찔러놓게 됐다구 했구, 셋째 달은 집에 제 동생이 죽어, 장사지내느라구 월급을 다 썼다구 했다는군. 그때서야, 밥집 쥔두 눈칠 채구 야기 상점으루 가보았든 모양이야.
177
주 학 그눔이, 어디서 그런 응큼한 거짓말을 배웠어?
178
낙 경 그러믄서두 집에단 다달이 10원씩은 또박또박 부쳐왔거든. 그리구, 편지마다 잘 댕긴다구 하니까, 나두 감쪽같이 속았지 뭐.
179
희녀, 불을 지피다 부지깽이를 쥔 채, 꾸벅꾸벅 존다. 불이 아궁지 밖으로 연소(延燒)하는 것을 보고, 공주학, 뛰어가 나무를 아궁지 속으로 틀어놓고, 희녀를 옆으로 비켜 앉힌다. 무척 곤한가 보다. 희녀는 그저 잠을 못 깬다.
180
주 학 (부엌으로 나오며) 하마트문 큰일 날 뻔했군. 저게 구주부 딸 아니에요?
181
낙 경 응, 소대생이가 이살 했는지, 밤낮 졸길 잘해.
182
주 학 그 영감쟁이가 그저 안 간 모양이군요?
183
낙 경 천명이 따라 우물에 갔나 부이. 그분이, 우리 천명일 여간 애껴야지. 날 때두 희녀어머니가 받어주지 않었나, 웨?
184
주 학 그런데 여긴 뭣하러 매일 드나드는 거에요? 막내딸을 새옷까지 말숙히 입혀가지구 왔으니.
187
낙 경 이번에 상점을 나왔단 소릴 듣구, 쇠뿔은 단 김에 빼자구 서두는 거야.
188
주 학 매부, 내 말대루 아예 천명이만은 그리루 보내지 마슈. 틀린말이문, 내가 손톱에 장을 지지리다.
189
낙 경 나두 맘은 땡기지가 않네. 희녀가 애가 좀 덜 돼서…….
190
주 학 그 기집애가 천친 건 고사하구, 그눔의 영감쟁이가 어떤 욕심꾸래기라구? 데릴사위 한답시구 불러다간, 4년씩 5년씩 약이나 쓸게 하구 실컨 부려먹구 나선, 사내눔들이 제풀에 지쳐 나가 자빠지게 해서 내쫓인 게 한두 번이에요?
191
낙 경 그래서 제 에미두 성큼 대답을 않구 있네.
192
주 학 아예, 그리루 장가 보낼 생각은 꿈에두 마슈. 그것두 아들이 넝쿨에 감자같이 줄래줄래 달렸다믄, 하나쯤 줬다구 그리 큰일이야 나겠어요? 허지만, 단지 막내둥이하나 있는 걸 데릴사윌 보낸다니, 될 뻔한 소리에요?
193
낙 경 여기서 붙들구 고생시키느니, 거기 가서 좀 호강이나 시킬까 하구, 딱 거절을 못하구 있는 걸세.
194
주 학 그 영감쟁이가 호강두 시키겠소? 큰년 둘째년을 미끼루, 연달어 갈아디린 얼치기 사위눔들한테서 빨아 몬 돈을 그래 천명이 앞으루 내줄 것 같어요?
195
구주부, 가도에서 들어오다, 이 말을 듣고 기침을 한 번 크게 한다.
196
주 학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는 듯이, 구주부는 돌아보지도 않고) 매부, 기왕 그 애가 가겔 나왔으니, 집에서 번둥번둥 놀릴 것 없이, 배를 태두룩 헙시다.
197
낙 경 지금 막, 집이라구 끌구 온 눔을 어떻게 그렇게……?
198
주 학 하루라두 놀믄, 그만큼 사람꼴이 못 돼요. 항구 있다가 섬구석에 들오믄, 까닥 하단 사람 버려요. 우리 억근이눔처럼, 기집애 호릴 궁리나 하구, 투전판으루 돌아댕기게나 되믄, 그 노릇을 어떡허겠어요?
199
낙 경 다시 취직자릴 골라보두룩 하겠네.
200
주 학 난 인젠 다시 부탁할 곳두 없구 설사 있다구 하드래두, 며칠 있다가 또 퉈나올 테니 겁나서 못 천거하겠어요.
202
주 학 (말을 막으며) 내가 그때부터 뭐랍디까? 그눔은 갯바닥에서 난눔 이구, 장난감 대신 해파리나 궤를 가지구 놀문서 자란 눔이니까, 팔자가 어부라구 안 그랬어요? 사람 못 살 덴 항구요 자식 버릴덴 항구라구, 내가 그렇게 일러두, 굳이 상점에만 넣달라구 하드니, 결국 이렇게 됐지 뭐에요?
203
구주부 (극도로 흥분하야 중앙으로 나온다. 공주학에게 도전적으로) 자넨 된 눔 안 된 눔, 모두 고기만 잡아먹구 살란 말인가? 팔자가 무슨 기급 담벙거질 할 팔잔가?
204
주 학 그럼 골방에다 집어넣구, 약이나 쓸게 했으문 마땅하겠어요?
205
구주부 그렇게 갉아잡아 댕겨서 말 말게. 자넨, 내가 낙경이하구 사둔 맺자는 게, 천명일 데려다가, 부려먹을려구 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자네 속이 좁으이 좁아.
207
구주부 난, 천명이 장랠 생각하구 하는 걸세. 자네두 보다시피, 이눔의 떼무리에 글자 아는 눔이 누가 있나?
208
주 학 용유보통학교 첫찌루 졸업했단 소릴, 또 끌어내실려는군?
209
구주부 (치아 빠진 입을 성이 나서 오물오물하며) 자네 말이 맞었네. 천명인, 적은 떼무리 자랑만이 아니라, 나루 건너 우리 큰 떼 무리 자랑이기두 하네.
210
주 학 (돌연 배를 붙들고 웃는다) 하하하.
211
구주부 (더 한층 상기가 되어) 개천에서두 용이 난다는 말이 있네. 그만한 재둥일 사공으루 썩힌다는 건 내가 몰랐으문 몰를가, 안 이상 그대루 있을 순 없어.
212
주 학 그럼, 침이나 놓구, 약방문이나 뜯어보게 하는 게, 그 앨 출세 시키는 길이란 말이세요?
214
주 학 그렇지 않구야, 뭘루 그애가 출셀합니까?
215
구주부 대부(大阜) 맹주부 아들, 자네 눈이 없어 못 보나? 한약 공부하다, 그걸 기초루 차차 양의학 공불 해서, 작년 총독부 의사 시험에, 쩔그덕 붙었네.
216
낙 경 그애야, 하눌이 낸 신동이지요. 천명이하구 그앨 어떻게 대요?
217
구주부 천명이 머리두, 그애버덤 나문 낫지, 못하진 않어. 그렇지 않구, 여기두 약국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병자 날 쩍마다, 내가 나루 건너 왔다갔다 하기에 하루에두 벗쩍벗쩍 늙는 것 같으이.
218
주 학 (낙경에게) 매부, 나두 천명일 의원을 시켜서, 급할 때 영감님 불르러 댕기지 않게 했으문 하는 생각이 날 적이 있었소.
220
주 학 혹시 임심한 예펜네 사관이라두 잘못 텄다가, 모자 두 사람 다 죽이구 콩밥이라두 먹게 되문 그 노릇을 어떡허겠어요? 난 그게 무서서, 매부한테 권하질 못 해요.
221
구주부 (노기충천[怒氣沖天]하야 펄펄 뛰며) 누, 누굴더러 하는 소린가? 젊은 것이 늙은일 놀려대두 유만부득이지. 에이, 고약한 것. 무식한 뱃눔이란 할 수가 없어.
223
이 통에 희녀가 잠을 깨고, 얼빠진 듯이 부(父)를 쳐다본다.
224
구주부 (부엌으로 달려가, 딸의 팔을 붙잡고 끌고 나오며) 이년, 경쳐서 남의 집 부엌떼기 노릇은 하구 앉었니? 가자. 이눔의 동네에 다신 발 디려놓지 말어라.
225
낙 경 진정하세요. 주학이가, 어듸 영감님 욕을 헌 겁니까?
226
구주부 사관 잘못 트구, 징역한 건 나지 누구야?
228
구주부 (머리를 쥐어박으며) 웨 웃어 이년. (낙경을 보고) 자네하구 나하군, 다신 안 볼 테니 그리 알게.
229
구주부, 망연히 서 있는 딸을 끌고 숨을 걸덕거리며 가도로 나간다.
230
주 학 미친 눔의 영감쟁이. 껄핏하문 출세 소린 하나 잘해.
231
낙 경 허기야 구장님뿐인가? 담임 선생두 섬에서 썩히긴 아깝다구 안했나?
232
주 학 매부, 어업은 그럼 일자무식한 눔들이나 해먹는 거에요?
233
낙 경 백정 ․ 상여 ․ 도가 ․ 괴기잡이란 예전부터 으레 그런 거지 뭔가?
234
주 학 그럼, 어째서 총독부선 돈을 몇 십만 원씩 내서, 어항마다 수산학굘 짓겠어요?
236
주 학 지금 어업은 예전관 달러요. 함경두 전라두선 배님자 그물안들이 제각기 돈을 내서 우정 학굘 짓구 있어요. 말[枕] 박어놓구 파래치는 것 못 보세요?
237
낙 경 괴기만 잘 잡었으믄 그만이지…….
238
주 학 지금은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파는 게 문제에요. 벌에서 어듸 매매를 합디까? 어업조합연합회에다 입찰을 해서 경매들을 하지 않어요? 하루에두 시세가 미두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잡기만 하문 뭘 해요? 한참 새우젓 값이 떨어졌을 땐, 새우를 잡아두 젓을 못 담그구, 거름으루 쓰지 않았어요?
239
낙 경 그리게 수산학교 졸업한 사람들이야, 다들 발동기나 생선공장으루 가지, 중선 탈려구 드나?
240
주 학 매부, 난 천명일 중선에다만 탤랴구 하는 건 아니에요.
242
주 학 나두 이번 동앗배나 내보내구 나선, 배를 팔아가지구, 새루 발동길 하나 장만할 작정이에요.
244
주 학 세상은 자꾸 변해가는데, 중선을 부렸댔자 그눔의 발동길 따라가는 재간이 있습디까?
245
낙 경 그렇게 되문, 황해바다선, 자네가 장치겠네.
246
주 학 발동길 사믄 천명일 일등기관술 시켰다가, 장차 선장을 시킬까 해요.
247
낙 경 (감격하야) 기곌 배우지 않구두, 그눔이 운전을 헐 수 있을까?
248
주 학 타구 댕기는 동안에 차차 배울 거에요.
249
낙 경 그눔이 다른 건 다 못해두, 재준 좀 있나봐……?
250
주 학 내가 걱정되는 건, 그녀석이 배를 타문 멀밀 되게 허는 거에요. 그러니 지금부텀이라두 좀 단련을 해둘 필요가 있어요. 사실은 그래서 이번 내보내자는 거예요.
251
낙 경 그렇게만 된다믄야, 내야 두말 할 게 있겠나만……?
253
낙 경 응. 그저 그눔만은 치마에 싸구, 죽으문 죽었지 물엔 내보내지 않는다구 하니까…….
254
주 학 누님두 늙으시드니, 맘이 약해지셔서 그래요. 들오시거든 천명이 데리구, 우리집으루 오시라구 하세요. 내가 잘 얘기할 테니.
255
공주학, 가도로 나간다. 낙경, 너무두 좋아 뒷짐을 짚은 채 마당을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다. 산에서는 고사가 고조에 달했나보다. 무당의 광란된소리 한층 크게 들려온다. 공씨와 천명, 가도에서 나온다. 천명은 얼골을 씻고 나니, 창백은 하지만 눈에는 어덴지 모르게 영리한 총기가 돈다.
257
공 씨 얘 왔단 소릴 듣구, 즈 아주멈이 우물까지 왔습디다.
258
낙 경 물 더웠을텐데, 한바탕 씻기지?
259
공 씨 즈 아주멈네서 아주 씻구 왔수. 고사떡 찌느라구, 가마솥에 물이 한 솥이나 펄펄끓구 있습디다. (부엌을 보고) 희년 어데 갔수?
261
공 씨 (천명에게) 고단할 텐데, 들어가 다리 쭉 - 뻗구 한잠 푹 자라.
262
천명은 무엇에 늘 억압을 느끼는 듯,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방으로 들어간다.
263
낙 경 아범이 집으루 좀 오라구 허구 갔으니 가보구 와.
267
낙 경 내년 봄에 발동선을 한 척 산다드군.
269
낙 경 또다시 취직할 자리두 없으니까, 이번엔 동아잡이나 내보내구, 내년부턴 발동선을 태자구 허드군.
270
공 씨 (초조하야) 그래, 님잔 뭐라구 했소?
273
낙 경 침 잘못 놓다가 콩밥 먹은 영감한테 어떻게 맘을 놓구 보내? 의원이라는 게 아무나 하는 줄 알어? 약방문 하나 잘못냈다가, 생사람이나 죽여봐?
274
공 씨 칠성판 타구, 사자밥 먹구, 매장포 입구 댕기는 사공보단 그래두 낫지 않우?
275
낙 경 낫긴 뭐가 나? 의원이야말루 살얼음 건느기야.
276
공 씨 그렇구 저렇구간에, 천명이한테 물어보지두 않구, 덮어놓구 대답을 해놓면 어떡허우?
277
낙 경 애비가 자식 일에 일일히 고해 바치구 승낙을 얻어야 한단 말이야?
278
공씨, 절망한 듯, 허정허정 마루로 간다. 늘어진 듯이 끝에 가 털벅 주저 앉는다. 바다를 한참 멀거 - 니 내다보고 있드니, 한마디 한마디 불평에 찬 소래로 푸념을 한다.
279
공 씨 강원두서 숯이나 굽구, 강냉이나 일쿠구 있었으문 아무 일 없는 걸……. 옘평 가서 조기만 잡으문 돈 벌긴 물 묻은 손에 모래줍기 라구 하드니…….
280
낙 경 (벌걱 악을 쓴다) 그 넋두리 고만 해.
281
공 씨 (벌덕 일어스며 쏘아부친다) 집 팔구 땅 팔아가지구 와서 장만한게 뭐야? 큰눔 둘째눔 장가두 못 보내구 물에서 죽이지 않았어? 봉치까지 받어논 다 큰 년을, 돼지새끼 팔아치듯 팔아가지구, 중선 밑천 찔러 넜지? 그래두 다 못 해서, 인제 열일굽 먹은 막내둥이 하나 있는 걸 마저 잡아먹을려구? 못해, 못해, 못해. (미칠 듯이 규환을 치며) 또 송장두 못 찾게? 또 송장두 못 찾게?
282
낙 경 저게 귀신이 썼나? 웨 악을 쓰구 이래?
283
공 씨 또 갱변에 염하다 놓친 년처럼, 우두커니 주저앉어서 송장 떠내려오기만 기대리라구? 못해, 못해.
284
천명, 방문을 제치구 뛰어나와 모(母)에게 매달린다. 공씨, 솔개 본 암탉같이 그를 가슴에다 꼭 끼어안는다.
285
낙 경 자식을 저렇게 가랭이에다 끼구만 있을려구 하니까 점점 그눔이 반팽이가 될 수밖에.
286
공 씨 반팽이라두 좋아. 반팽이라두 좋아.
287
낙 경 그게 그눔을 사랑하는 건 줄 알어? 되레 전정을 망쳐놓는 거야.
288
공 씨 애비라구 당신이 해준 게 뭐야?
289
낙 경 (찔린 듯이 몸을 떨드니) 내가 돈 없어 공분 시킬 수 없구…… 아는 사람 없으니 취직을 시켜달라구 할 데두 없구……난들 어떡해? 누군 자식 사랑할 줄 몰르는 줄아나?
290
공 씨 봉희 청국으루 팔아먹을 때 하든 소릴 또 하는구료? 사랑할 줄 알문, 싫다는 놈을 굳이 내보낼 게 뭐야?
293
낙 경 내가 밑천 없어 중선은 못 부리구, 늙어 수족 지쳐 동사일두 못하지 않어? 구구스럽지만, 처남의 밥을 얻어먹구 있는데, 내 입으루 못 하겠다구 하게 됐어? 더군다나 성서방이 그만두겠다구 해서, 뻔연히 손이 모자라는 줄 알문서?
294
공 씨 천명일 태야만 맛인가? 제 자식두 있는 게 아니야?
295
낙 경 그게 어듸 사람이야? 껄빗하믄 돈을 훔쳐가지구 달아나선, 근방 섬으루 계집하구 노름판만 찾어댕기다가, 돈 떨어지문 그제서야 어슬렁어슬렁 겨들오지 않어? 여북하문 주학이가 돈을 벼개에다 비구 자겠어?
297
낙 경 당신 같으문, 그런 눔한테 만여 원이나 듸려 발동선을 사가지구 맽길려구 하겠어?
298
공 씨 (조카에 비하야 자기 자식의 우월함에 저으기 만족한다) 그야 그렇지만…….
299
낙 경 내 생각 같아선, 아범이 천명일 보구 발동선을 살 맘두 생긴 것 같어.
300
공 씨 (쏠깃하야) 그럼, 그 밸 천명이한테 맽긴답디까?
301
낙 경 인제 열일굽 먹은 것한테, 그런 큰밸 어떻게 첨부터 맽기겠어? 운전하는 것두 가르치구, 키 돌리는 것두 가르쳐서, 장차 선장을 시킬 작정이라나봐.
303
낙 경 아, 조카자식 두구, 딴 사람 시키겠어?
304
공 씨 허지만, 발동선은 여[暗礁]나 풀[淺砂地]엔 되레 위태하다지 않소?
305
낙 경 누가 그래? 기계루 가는 것하구 바람으루 가는 것하구, 어떤게 위태스럽겠어?
306
공 씨 그야 기계가 위태하지 않겠지만.
307
낙 경 몇 번 댕기다, 운전하는 것만 배게 되문 그 배 아니래두 항구 가서 청국이나 저 남양 댕기는 윤선에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308
공 씨 (자기도 모르게) 거긴 하나 앞에 월급이 수백 원씩이랍디다.
309
남 경 월급뿐인가? 백설기 같은 하아얀 이밥에, 소고기만 준다는데? 그렇게 되믄, 저눔두 몸이 좀 부하구 실해질거란 말이야.
310
공 씨 허긴, 장갈 디리드래두, 몸이 먼점 실해야겠습디다.
311
낙 경 (천명을 보고) 넌 어떡헐 테냐?
312
천명, 전신을 부르르 떤다. 기어코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듯이, 고개를 앞으로 툭 떨어트리고 두 팔을 축 늘어트린다.
313
낙 경 네가 안 나간다믄, 네 삼춘두 그저 대줄랴구 하진 않을께다. 오래잖아 성해가 끼믄 민어낚시하든 것두 못 해먹게 될 테니까, 한겨울 굶구 들앉었을 수밖에 없지 뭐.
315
낙 경 (찌르는 듯이) 어떡헐 테야? 말을 해.
317
낙 경 (공씨에게) 저두 나가겠다구 하니, 주학이한테 가서 얘기하구와.
318
공 씨 (다시 풀이 죽으며) 님자가 혼자 갔다 오구료.
319
낙경, 가도(街道)로 나간다. 개에서는 살을 걷는 어부들의 “어 -”, “어-” 하는 소래. 일몰이 가까워오고 약간 모진 해풍이 불기 시작한다. 가슴에 붕대를 처맨 판성, 편지를 읽으며 사장에서 올라온다. 별안간 상처가 쑤시는지, 느티나무를 붙들고 고통을 진정할랴고 애를 쓴다.
320
판 성 (돌연 악을 쓰며) 내가 웨 조기사리 나가서, 죽지 않고 살아들 왔는지?
321
공 씨 (판성에게로 가며 다정히) 상처가 좀 아물어들었냐?
322
판 성 (퉁명스럽게) 무슨 챙견이에요?
323
공 씨 (위로한다) 맘을 좀 눅직이 먹어야, 병이 낫지?
324
판 성 (구토하듯이) 심봉산 딸 팔아먹구 공양미 삼백 석에 눈이나 떴지. 이건 딸 팔어서 집 샀어, 논 샀어?
325
공 씨 그리게, 어듸 우리가 너한테 잘 했다니? (규지[窺知]하는 듯) 지금 그 편지, 천순이한테서 온 거지?
328
판 성 고향 생각이 자꾸 난다구 했어요. 오늘은 눈이 퍽퍽 쏟아졌대. 손님이 없어 혼자 자게 되니까, 집 생각두 나구 해당화 밭에서 나하구 명감 따먹든 생각두 나구해서 앉두서두 못 하겠다구 했어요. (돌연 발작적으로 편지를 발기발기 찢어버린다)
329
공씨, 편지 조각을 줍다가, 설움이 복받쳐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천명, 달려가 모(母)를 붙들고 일으킨다.
330
판 성 내가 배임자한테 얘길 해서, 성서방 대신 나가야겠어. 그래서 삯 받어가지구 천진으루 찾어가보구 죽어두 죽을 테야.
331
판성, 혼자 중얼거리며, 가도로 나간다. 주위는 조용히 어둠이 깊어간다. 이따금 깃 찾어가는 갈매기떼의 울음 소래. 도령(島嶺)에선 고사가 끝났나 보다.
332
천 명 (모[母]에게) 울지 마, 어머니. 내가 인젠 물에 나가서 열심히 벌게.
334
천 명 응, 그래서 다만 얼마씩이라두 뫘다가, 누나 몸값 치러주구 불러오두룩 할 테야.
335
공 씨 (울며) 그래라. 어서어서 네가 벌어서, 네 누나 좀 데려왔으믄, 내가 고대 죽어두 한이 없겠다.
336
천명, 모(母)를 부축하구 들어와, 양인(兩人) 말없이 마루 끝에 걸터앉는다. 멀 - 리 항구에 전등불이 들어온다. 등대불이 이곳저곳에서 명멸(明滅)하기 시작한다. 개에서 살을 걷어가지고 어부들이 떠들며 올라오는 소래. 정적.
340
근방 섬으로 질주해가는 발동선의 소래. 멀 - 리 인천항 만내(灣內)에 개흙을 파올리는 토굴선(土堀船)의 느릿한 치차(齒車) 도는 소래. 자욱이 까라앉은 해무(海霧)를 헡이고 동이 훤히 터온다. 배임자의 생일 잔치를 먹은 동사들 5, 6인, 각기 그물, 마니라 로 - 푸, 어구 등을 메고 가도에서 나온다. 다들 얼근히 취했다. 지난날의 회고담으로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다.
341
노틀할아범 (구각비포[口角飛泡]하며) 아무튼 배에다 15원 각수씩 하는 광목을, 네 필이나 통째 풀어서, 칭칭 감구 푸장을 쳤었으니까……. (딸곡질을 하며) 돼질 다섯 마리 잡었구, 갈볼 열 명을 불렀다문 고만이지. (딸곡질) 옘평서 한바탕 뚜드려부시구, 봉죽[豊漁旗]을 물에다 질질 끌구 풍악 갖춰 떼무리루 들을 땐, 예전 김종서(金宗瑞), 여진(女眞) 치구 들오는것보담 더 장했어. 구경꾼들이 인산 떼같이 들끓었거든. (딸곡질)
342
늙은 어부 참, 중선이란 사내 노름이지.
343
노틀할아범 안될랴문 조상 산솔 팔아넣구두 빈손 싹싹 비비지만, 걸리는 날이믄 몇 만 원 잡긴 상치쌈에 식은 밥이지. (딸곡질)
344
키큰 어부 옘평에 천명아버지가 쓱 내리문 계집이란 계집은 다 몰려왔었어.
345
늙은 어부 주머니에서 돈을 푹푹 집어줬거든.
346
노틀할아범 그때 동사하든 눔들, 나 빼놓군 다 잘됐지, 다 잘됐어. (딸곡질이 자꾸 나오므로 안을 향하야) 계셔요?
348
노틀할아범 (부엌으로 들어가며) 정첨진 싸전을 내구 한쪽으로 돈놀일 하지. 황서방은 강화(江華) 가서 비단전을 냈다지않나? (물을 한 바가지 떠 들고 나와 꿀덕꿀덕 마신다)
349
키큰 어부 칠성할아버진 먼우금다 땅 사지 않었어요, 웨? 이번에 수원 가는 철로가 생기는 바람에, 6전씩 주구 산 게 매 평에 2원 50전씩 올랐대요.
350
노틀할아범 그중 잘된 건 배임자지 배임자야.
352
노틀할아범 천명아버지가 여간 끔찍이 했어야지? 참, 처남이지만 자기 자식보다 더 얼구저렸으니까.
353
늙은 어부 지금 그물 장만하구, 중선 부리게 된 게 다 누구 덕택인데?
354
키큰 어부 배님자두 그 공을 아니까 근 3년 동안, 매불 멕여 살리는 게 아니에요?
356
키큰 어부 그만큼 하기두 수월한 줄 아슈? 부자두 남남이라는 세상에, 출가한 누님 치닥거릴 하구 잇을 사람이 어데 있겠수?
357
공주학의 처, 목반(木盤)을 이고 가도로 들어온다.
361
노틀할아범 어떻게 먹었든지 숨이 차서 그래요. 나 같은 눔에게야, 정월이 있겠어요? 추석이 있겠어요? 부모가 있어 환갑 ․ 진갑이 있겠어요? 아들 딸이 있으니 혼인잔치가 있겠어요?
363
노틀할아범 나한테 명절이라군 배임자 생일날밖엔 없어요.
364
공주학의 처, 목반을 마루에 내려놓는다. 부엌에 들어가 이남박을 들고 나와 고사떡, 국,이밥, 나물 등속을 옮겨담어놓고 다시 가도로 나간다.
365
직지사 그런데 어떡허다, 천명아버지가 실팰 하셨나요?
366
노틀할아범 (담배를 한 대 피어물며) 다, 이 노틀할아범 말을 안 들은 탓이지.
368
노틀할아범 사월에 옘평서 첫둥을 보구, 칠월에 둘째둥을 보러, 우리가 칠산(七山)을 들어가지 않었겠나? 팔도서 ‘내로다’ 하는 그물안 배임잔 다 몰려왔었지만, 그중에서두 새우장군 조기장군 하면 떼무리 정낙경을 첫손으로 쳤지. 아, 썩 우리가 들어가니까, 군산서 왔다는 나가사끼 중선이, 벌써 쟁길 두 줄루 우리 어장에다 떠놨데 그려. 우리가 가만히 물쌀을 보니까, 조기떼가 그 쟁기새루 몰려가구 있단 말이야. 이거 참 난처하드군. 천명아버진, 그 새루 떼를 쫓아가자구 하구, 난 위태하다구 하구, 한참 싱갱일 하다가, 천명아버지 말대루 뚫구 가기루 했었네. 아니나다를까? 그눔들이 물속에다 데구릴(底曳網[저예망]) 쳐놨데그려.
369
직지사 군산 가서 재판했다는 게 그럼 바루 그 얘기군요?
370
노틀할아범 남의 그물을 왼통 망쳐놨으니 물어주는 수밖에.
371
늙은 어부 아 - 니, 그물값 4천 원 물어주구 망했단 말이야? 얘길 똑똑히 해.
372
노틀할아범 이럴테믄 그게 시초였단 말이지, 내 말은 그 후부턴, 서낭님이 우릴 미워하시기 시작했는지, 한 3년 동안 천둥이 연거퍼 치는데, 쇠통 조길 잡을 수가 있어야지? 알 까러 칠산으루 들왔든 조기떼가, 놀라서 모두 도망가버렸어. 나중엔 눈이 뒤집히시는게야, 천명이 누날 팔아가지구, 마지막 한 둥을 봤었는데, 그땐 그물마저 떠내려보내구 빈손 들구 들왔네. 우리하구 늘 경쟁하든, 진남포 오 - 야마란 녀석이, 날만 보믄 ‘노하라상 도- 데스가?’ 하구 약을 올리는데 참 죽겠데. 노틀할아범이 따지구 보문 그때부터 틀자 한 자가 빠진 셈이지.
373
어부들, 배를 붙들고 웃는다. 사장에서 공씨, 굴을 따가지고 들어온다.
375
공 씨 뭘, 그것두 하두 따서, 인젠 붙었을 새가 있어야지? (하늘을 쳐다보며) 눈이 올랴나? 참, 우리 천명이 밥먹든가?
377
천명, 가도에서 나온다. 검정 솜바지 저고리를 입었다. 몹시 침울한 얼골이다.
380
공 씨 안 멕히드래두, 눈 꾹 감구 틀어넣지? 밥을 든든히 먹어야, 골판에서 마파람을 만나드래두 뜨질 않는다.
382
공 씨 괜찮어가 뭐니? 그 똥딴지 판성이두, 돗줄 붙든 채 한 길은 치솟았는데?
383
노틀할아범 허리에다 큼직한 돌멩일 한 개 차구 나가믄 되요.
384
키큰 어부 내가 질 싫은 건, 삼부자 한 배 타는 것하구, 어린애 첨 타는거야. 안짱물 뒤집어썼다 감기나 들어가지구 방짱에서 쿨룩거리구 있어봐? 그 꼴을 어떻게 보나. 에이. (하고 코를 팽 푼다)
385
공 씨 물끝이 범바윌 넘었네. 어서들 나가보게.
386
동사들 일동, 사장으로 내려간다. 천명도 어깨를 축 늘어트린채 뒤따른다. 아들의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는 공씨 얼골에는 암담한 빛이 서린다. 공주학과 낙경, 가도에서 이야기하며 들어온다.
387
주 학 누님, 올두 이번 동앗배만 나갔다 들오믄, 무사히 지낸 것 같소. 조기사리, 새우사리에두 다 재밀 본 셈이에요.
388
공 씨 이번엔, 고살 장하게 지내서, 동아가 많이 잽히겠네.
389
주 학 오늘이 또 내 생일이구 보니까, 금년은 줄래줄래 운수가 터지나 보오.
391
공주학과 낙경, 사장으로 내려간다. 일진(一陣)의 바람이 획 불어오드니, 모래를 회오리 치고 올라간다. 양인(兩人), 가다가 발을 멈춘다.
392
낙 경 (하늘과 펄을 번갈아보며, 귀를 기울인다. 노련한 어부만의 민첩한 직감으로) 하늬바람이 넙새하구 팔미 쪽에서 부딪치는 모양이야.
394
낙 경 몰리구 말구. 동사한테 떼를 만나거든, 칠산까지라두 쫓아가라구 하게.
395
양인(兩人), 다시 사장으로 나간다. 이때 희녀, 가도에서 달려온다.
396
희 녀 천명어머니, 듸레박하구 대애 좀 빌려주세요.
398
희 녀 아버지가 나루털 건너오시다 돌을 잘못 디디시구 갱굴루 빠지셨어요.
399
공 씨 (벽에 걸린 것을 끄내주며) 또 급한 환자가 생긴 게구나?
400
희 녀 (듸레박을 받으며) 아니에요. 주무시다가 벌덕 일어나시드니 ‘내가 낙경이한테 할말이 있어’ 하구, 남 잠두 못 자게 깨가 지구 불이야 불이야 왔어요.
403
희녀, 가도로 나가려 할 때, 구주부, 구르는 듯이 달려온다. 전신에 개흙투생이다.
404
구주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낙경이 어데 갔나?
406
구주부 내가 할 말이 있어. 낙경이한테 꼭 할 말이 있어.
407
공 씨 (미리 말을 막으며) 천명인 벌써, 동아사리 나가기루 작정했어요.
410
구주부 자네가 어젯밤에 무당을 다 찾어갔었다지?
411
공 씨 내보내기룬 했지만, 그래두 걱정이 돼서 좀 물어보느라구.
413
공 씨 아무래두 바다에 나가 벌어먹는 게, 신상에 졸 거라구 해요.
414
구주부 다 그년두, 주학이편 들어서 한 소리야. (격분하야) 천명일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내놀 줄 알어? 어림없지. 어림없어.
415
공 씨 (불안하야) 무슨 일이 있었어요?
416
구주부 있었으니까, 자다 말구, 나룰 건너 이십 리 길을 온 게 아닌가?
417
공 씨 지금 막 그애 삼춘하구 개루 나갔어요.
419
공 씨 배 내느라구 한창 바뿔 텐데 무슨 말씀인지 하십쇼. 이따가 들오거든 제가 일르지요.
420
구주부 (소래를 낮춰) 주학이네 중선이, 부자리가 몹시 헐었대.
421
공 씨 (불안한 빛으로 안색이 변하며 약간 떨리는 소래로) 몇 해나 부렸다구 벌써 헐어요?
422
구주부 그 배 산 지가 언젠가 따져보믄 알 일이지?
424
구주부 첨 살 때, 그게 새 물건이였어야 말이지? 용유 면장이 3년이나 부리든 퇴물이였어. 도합 6년이 넘은 셈이야.
425
공 씨 중선 한 척 장만하믄, 남들은 10년씩두 부리는데?
426
구주부 그럭개 칠산서 여에 얹었을때, 부자리가 철석 한 번 갈라졌든 건 생각지 않나?
427
공 씨 허지만 그 후 항구에 가서 한 달이나걸려 말갛게 고쳐왔어요.
428
구주부 장목 값이 비싸서, 다 고치지 못했어. 조기사린 급하구 하니까, 그때두 그냥 불이야 불이야 나갔드랬어.
430
구주부 과린산으루 선체를 하얗게 닦으구, 대깔루 구멍을 며놨으니까, 겉으루 보긴 말짱하지만, 밑창엔 고태꿀이 아가릴 떡 벌리구 있네. 떡 벌리구 있어.
431
공 씨 전 도무지 곧이 들리질 않어요.
432
구주부 내 말을 못 믿겠거든, 성서방한테 물어보지?
434
구주부 그 배가 위험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별안간 안 나가겠다구 하는 거야.
436
구주부 그렇지 않구야, 아무리 살림을 꾸몄대기루, 3, 4년 동사하다, 마즈막 동아잡일 빳겠다구 하겠어?
437
공 씨 성서방이, 정말 제 입으루 그래요?
438
구주부 그럼 제 입으루 안 그러구? 주학이가 그 밸 팔구, 내년 봄에 발동선을 산댔다지?
440
구주부 인젠 더 부릴래야 부릴 수가 없게 됐으니까, 나무값이래두 받구 팔아칠려는 거야.
442
구주부 살믄 얼마나 더 살겠다구, 늙은 게 실없는 거짓말 하구 댕기겠나? 내가 어저께 같아선, 이눔의 동리에 두번 다시 발 안 디려 놀려구 했네만 천명이 생각을 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 자다 말구 불이나게 뛰여온 걸세.
443
공 씨 그럼, 이 일을 어떡허면 좋아요?
444
구주부 어떡허긴 뭘 어떡해? 빨리 주학이한테 가서, 천명일을 겨울은 집에서 쉬게 하겠다구 해야지, 뭐.
445
공 씨 (망설이며) 그렇지만 지금 와서…….
446
구주부 그건 생각해서 하게. 난 굳이 내보내지 말래는 건 아니니까. 내보내구 싶거든 내보내게. 그대신 막내자식 얼굴이나 잊어버리지 않두룩, 똑똑히 봐두게.
447
공씨, 공포에 싸여, 창황히 사장으로 내려간다.
448
구주부 (쫓아가며) 주학이한텐, 내가 그러드라구 말게.
450
구주부 (공씨 앞으로 다가스며) 난 바빠서 그만 건너가니 내일이래두 천명일 데리구 자네가 우리집으루 한 번 오게.
452
구주부 생각할 거 없대두 그러네. 내가 밤낮 하는 소리지만, 그눔은 의학으루 출셀할 팔자야. 또 연분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아무데나 굴러 있는 건가? 희녀하구 천명인, 하늘이 중매한 가연이야.
454
구주부 (한 걸음 더 다가스며) 자네두 큰 아이, 둘째를 둘이나 물에서 잃었으니, 천명이만은 장갈 보내서, 손줄 보두룩해야 하지 않겠나?
456
희 녀 성서방이 정말 배가 헐어서 안 나간다구 했수?
458
희 녀 배님자한테 혼나문 어떡헐랴구, 그런 얘길 일러주구 댕기셔?
459
구주부 이년아, 넌 굿이나 보구 떡이나 먹어.
461
이때 판성, 쥐어짜는 듯한 상을 해가지고 사장에서 올라온다.
463
판 성 (퉁명스럽게) 오래 살자구 그걸 붙여요?
466
구주부 이눔아, 그렇게 살기 싫거든, 산에 가서 목이래두 매려무나?
467
희 녀 그리게 말이지. 천명어머니가, 판성이만 안 봐두, 천순이 생각을 좀 덜할 텐데, 판성이 때문에 더 난다구 그러셔.
468
구주부 허구 헌 날 천명이 어밀 악담하구 댕길 게 뭐니, 이눔아?
469
판 성 그리게 어젯밤에 아주 죽어버릴려구 하지 않었어요?
471
판 성 새낄 들구 서낭당으루 올라갔었는데 그 옘병할 노틀할아범이 뒤루 쫓아와서 붙들어서 못 죽었어요.
472
구주부 에끼, 이 못난 자식. 죽긴 웨 죽어, 이놈아. 돈 벌어가지구 천순일 찾어가보문 되지 않니?
473
판 성 누군 그 생각 못한 줄 알어요? 내가 성서방 대신 타겠다구 하니까, 천명이가 나가기루 됐다구 그러는 거야. (돌연 저주하는 듯한 소래로) 그 망할 자식이 항구서 오지만 않었어두, 내가 타는 걸.
474
희 녀 천명인 즈 어머니가 안 내보낸다구 한 걸.
478
희 녀 그럼, 지금 막 배루 나가셨다나.
479
판 성 그럼, 내가 가서 다시 한 번 얘기해봐야지.
482
구주부와 희녀, 가도로 나간다. 무대 잠시 공허.
483
이윽고 천명, 공포에 질린 눈으로 사장에서 뛰어들어온다. 가도로 달려가다, 다시 돌아서 들어온다. 마루 끝에 가 앉는다. 다시 일어슨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한다. 돌연 무슨 묘책이 떠오른 듯, 방으로 신발을 신은 채 뛰어들어간다. 옷가지를 챙겨가지고 나온다. 잠간 주춤 섰다가, 주위를 살핀 후 가도로 달려간다. 이때 목반(木盤)을 이고, 한 손에 술병을 든, 공주학의 처가 가도로 들어오다 천명과 쾅 부듲친다. 목반이 떨어지고 그릇이 우루루 깨여진다. 천명, 경악하야 전신을 오므라트린다.
486
주학의 처 (깨여진 그릇을 집어 담으며) 앞을 보구 댕겨야지?
488
주학의 처 개루 나가는데, 웨 그 길루 가니?
491
천 명 어머니가……잘 때……껴 입으라구…….
499
천 명 곧 갈 테니……먼저……내려가세요.
500
주학의 처, 미심하야, 천명을 돌아다보며 사장으로 내려간다. 엇갈려 사장에서 공주학, 공씨, 낙경 3인 떠들며 올라온다. 뒤따라 노틀할아범. 천명, 급히 보퉁이를 담 옆에다 틀어넣는다.
501
공 씨 (풀 죽은 소래로) 아범,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어.
502
주 학 그만두슈. 난 설마하니, 누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소. 여섯 살에 부모 잃구, 동기라군, 누님 하날 믿구 살아온 내가 아니요?
504
낙 경 주책 없이 한 소릴 뭘 그러나? 그것두 남한테 그랬다문 몰를까, 집안끼리 한 소리 아닌가?
505
주 학 아무리 동기간이래두, 할 말이 있구 못 할 말이 있지 않소? 그래, 그 배가 어데가 썩었단 말이요?
506
공 씨 (울음 섞인 소래로) 구주부가 눈을 벌겋게 휩뜨구 달려와서 그러니까, 난 그 말을 또 곧이 들었지 그만.
507
주 학 누님 같아서야, 중선 부릴 사람이 누가 있겠소? 해마닥 새밸 사듸려야 하지 않겠소? 그야 돈 있는 사람들이야 돈지랄루 무슨 짓은 못하겠소만, 우리 같은 처지루야, 누가 4, 5천 원씩 주구 장만해서, 3, 4년 쓰다가 내버리겠소?
508
낙 경 그 배가 헐지만 않었으문 그만이지, 천명어미가 헐었다구 했다구 말쩡한 배가 금새 헐어지겠나? 그만두게.
509
주 학 누님은 입때 보선두 안 겨서 신구, 바가지두 안 겨서 썼소? 바가지 겨 쓰니까 물샙디까? 누님 같아서야 집두 새집에서만 살구, 한 틀에 4, 5백 원씩 주구 산 그물두, 구멍만 나믄 다시 떠서 쓰진 못하겠구료? 그래서야 배목수 누가 해먹겠답디까?
510
공 씨 내가 본 맘에서 그런 소릴 했겠나? 구주부 말을 듣구 그랬대두 그러네.
511
주 학 구주부가, 주학이가 옆집에다 불질렀다구 하믄, 누님은 경찰소에 가서 내가 질렀다구 일러바치겠구료? 그 영감쟁이가 제 아무리 천명일 사랑한대두, 그는 남이요, 난 그래두 명색이 삼춘 아니요?
512
공 씨 아범, 못 들은 심 대구 흘려버리게. 그리구 노엽게 생각 말게.
513
주 학 난 인젠 노엽게 생각할 것두 없소. 누님하구, 오늘부터라두 의절하믄 그만 아니요?
514
낙 경 빈 말이래두 그게 무슨 소린가?
515
주 학 빈 말이 뭐요? 인젠 내가 누님네 발 디려놓지두 않을테니, 매부하구 누님두 내 집에 들르실 필요 없어요.
516
낙 경 그게 무슨 어린애 같은 소린가?
517
공 씨 에이, 내가 미친년이지, 내가 미친년이야.
518
주 학 오늘부턴 아주 남남이요. 내가 매부하구 누님을 몇핼 멕여 살렸소? 근 3년 동안을 금다 쓰단 말 한마디 없이, 양식 낭굴 대디리지 않었소?
519
공 씨 저승엘 간들, 내가 아범 공을 잊겠나?
520
주 학 천명이 공분 누가 시켰소? 항구 팔목상점에 넣준 건 또 누구요? 허다 못해 그눔이 여관집에서 외상밥 먹은 밥값까지 내가 치러주지 않었소?
521
공 씨 아범, 내가 잘못했네. (울며) 입동이 낼 모렌데, 이 긴긴 겨울을 아범이 봐주지 않으믄 어떡허겠나?
522
주 학 나두 할 만쿰 했으니 인젠 모르겠소. 그만하믄 예전에 매부가 중선 밑천 대준 것은 갚었을 꺼요.
524
주 학 매부두 말 마슈. 천명일 사공을 시키자구 할 쩍마다, 매부두 내가 그눔을 부려먹을려구 하는 것처럼, 꽁한 생각을 했지 뭐에요? 그러군 돌아서서, 날더러 심하다구했지요?
527
노틀할아범 배임자, 그만두십쇼. 물참 다 됐쉬다.
528
주 학 내가 천명일 돈 안 주구, 거저 쓰자구 합디까? 먹구 한 달에 10원 씩 주는 게 아니에요? 같은 돈 주구 나가기 싫다는 눔 억찌루 쓸 필요 있겠소? 다른 사람 얻어 쓸 테니 그만두슈.
529
공주학,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도로 나간다. 공씨, “아범”, “아범” 하고 불르며 따라가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530
공 씨 (천명에게) 빨리 쫓아가서, 나가겠다구 그래라. 삼춘이 그래두 네 말은 들을지 몰른다.
532
공 씨 (애가 타서 초조히) 어서 이눔아, 쫓아가봐라. 어머니가 주책없이 그런 소릴 했다구 하구. 어서 빨리.
533
천명, 모(母)의 손을 뿌리치고, 한걸음 뒤로 물러슨다.
534
낙 경 이 망할 자식이, 그래두 속을 못 채리구?
535
돌연 부엌 앞에 가로놓였든 그물말[網枕木]을 집어들고, 천명을 내려갈긴다. 노틀할아범, 낙경의 팔을 붙들고, “놓세요. 놓세요. 말루 하시지, 때리긴 웨 때리십니까” 하고 말린다.
536
공 씨 (불쌍해서) 이눔아, 어서 삼춘네루 가라. 가믄 안 맞지.
537
천 명 (쥐어짜는 듯한 소래로 규환을 친다) 죽으믄 죽었지 그 밴 안 타요. 그 밴 부자리가 헐었어요.
538
낙 경 헐긴 그 배가 웨 헐어? 이눔아, 나가기 싫든 참에 핑계 하나 잘 잡었구나?
539
천 명 성서방이 거짓말했을 리가 없어요. 그 밴 대깔루 구멍을 며놔서, 겨우 물이 안 들오지만, 대깔만 빠지문, 배 밑창으루 고태 꿀이 빌꺼에요. 더군다나 골관에서 노대나 한 번 만나문, 부자리가 철석 갈라질 꺼에요.
540
공 씨 이눔아, 그건 구주부가 널 배에 못 타게 하느라구, 꾸며서 한 소리야.
541
천 명 내가 배에 가서, 대깔을 빼봤어요. 나무가 썩어서, 욱이적 욱이적 해요.
542
낙 경 이눔아, 어데가 썩었든? 응, 나하구 같이 가보자.
543
천 명 (천명, 낙경의 팔을 뿌리친다)
544
공 씨 (다시 천명에게 달려들려는 부[夫]에게 매달리며) 임잔, 어서 아범한테나 가보슈.
545
낙 경 괜히 방정맞은 소릴 해가지구, 일을 이렇게 저즐러 놔?
546
낙경, 중얼거리며 공주학 나간 곳으로 나간다. 주학의 처, 사장에서 들어와 증오에 찬 눈으로 말없이 쏘아보고 있다.
547
천 명 (모[母]의 손을 끄을어 자기 뺌에다 비비며) 어머니, 뭍에서 버나, 물에서 버나, 돈만 벌문 마찬가지 아니에요? 참말이지 참말이지 배타긴 싫여요.
548
공 씨 (천명을 떠다밀며) 그런데 웨 이놈아, 어저껜 타겠다구 했니?
549
천 명 어머니가 하두 불쌍해서 그랬어요.
550
공 씨 에미 불쌍한 줄 아는 눔이, 가마보고집은 웨 나왔니, 웨 나왔어?
551
천 명 공부 해가지구 도락구 운전수 시험 볼려구 나왔드랬어요.
552
공 씨 네깐 눔이 무슨 재주루 운전술 들어가?
553
천 명 웨 못 들어가요. 경인 도락구 운전수가 조수루 넣준다구 했어요. 자리가 나는 대루 넣줄 테니 기초 공부나 열심히 하구 있으라구 했어요.
555
천 명 지금이래두 항구만 가믄, 벌써 작정됐을지 몰라요.
556
공 씨 (악을 쓰며) 사람 치구 콩밥 먹을려구 그 무선 운전수 자릴 들어가? 네눔 꼬락서닐 안 봤스믄, 내가 10년은 더 살겠다. (주학의 처에게) 아들 셋에 딸 하날 났지만, 이렇게 속 썩이는 자식은 보길 첨일세. 다 - 들 순산이였는데, 저눔만 뱃가죽을 쥐어뜯구 지랄을 치문서 나오드니, 이날 입때까지 내 속을 이렇게 폭폭 썩이네그려.
558
주학의 처 형님, 저녀석을 그대루 뒀다간, 또 항구루 도망가서 외상밥 처먹구, 우리 못할 일 할거요. 우리가 그 밥값 장만하느라구 얼마나 앨 쓴 줄 아우? 내년 봄에 팔랴든 새우젓을 모두 미리 팔아서 변통을 했었소.
560
주학의 처 저 담밑에, 보퉁이 보시구료. 어쩐지 하는 짓이 수상합디다만, 설마 그러랴 했었소.
561
공씨, 비로소 보퉁이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562
주학의 처 내가 쌍심지가 나서두, 저녀석을 기어쿠 내보내구 말겠소. 저런 녀석은 댁기에서 안짱물두 뒤집어써보구, 마파람에 돛줄 붙들구 휘날려보기두 해야, 정신을 좀 채릴거요.
563
공 씨 (천명에게) 어서 개루 나가, 이놈아.
564
주학의 처 싫다는 눔을 달래문듣겠소? 그냥 끌구 나갑시다.
565
주학의 처, 목반을 땅에다 내려놓고, 달려가 천명을 잡아끈다.
566
천 명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며) 놔요, 놔요.
567
주학의 처 놓면 또 항구에 가서 사람 디려받구 이번엔 벌금 가조라구 하게?
568
천 명 누나가 천진으루 갈 때, 나한테 한 말이 있어요.
570
천 명 죽어두 항구에 가서 죽지, 떼무리서 사공은 되지 말라구 했어요.
571
주학의 처 사공하구 무슨 대천지 왼수가 졌다든? 지금 세상에 그래두 어수룩한 건 뭐니뭐니 해두, 백정하구 괴기잡이밖엔 없어. 잡아먹는 덴 밑질 게 없거든?
572
천 명 큰성두 작은성두 벌에서 죽었어요. 큰성은 조기사리 나갔다가, 덕적서 황서방이 베 등거리만 찾어왔구, 작은성은 새우사리 나갔다가 댐마다리 밑에 대가릴 처박구 늘어진 걸, 누나하구 어머니가 끌어내왔었어요.
573
주학의 처 그때 노대에 죽은 사람이, 어듸 네 성들뿐이였든? 떼무리서만 엎어진 낙배가 스무 척이 넘었구, 옘평서 깨진 중선이 쉬운 척이 넘지 않었냐?
574
천 명 내가 나가구 나서, 비나 억수같이 퍼붓구, 넙새에 붴 문짝이 덜그덕거리기나 해보세요? 우리 어머닌 또 산으루 개루, 밤새 울구 댕 길 거에요. 난 배타믄 속이 울렁거려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어머니 울구 댕기는 게 진절머리가 나서 그래요.
575
공 씨 너 같은 애물에 자식은, 하루바삐 잡아갑시사구, 내가 서낭님께 축수겠다, 이눔아.
576
공씨, 말은 모질게 하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577
천 명 (다시 모[母]에게 매달리며) 어머니, 뭍에서 하는 일이믄, 뭐든지 할 테에요. 어렸을 때부터 일하믄서 한 번이래두 투정한 쩍 있었어요? 학교 갔다 와선, 물끝 따라 10리나 나가서 밤새 조갤 잡었지요? 행여 조개가 밟힐까하구, 개펄을 일 년 열두달 후비적거리는 발자죽을 뫄보세요? 만줄 가구두 남을 테니. 겨우내 동아젓 ․ 황새기젓을 저리구나믄, 손등이 터진 자리에 호소굼이 들어가 씨라려 죽겠지만, 한 번인가 난 싫다구 안 했어요.
578
주학의 처 아주 청산유수 같구나. 이럴테믄 어머니한테 네가 공치사하는 셈이냐?
579
천 명 (그의 말에는 대답지 않고, 흐느껴 우는 듯한 소래로 말을 계속한다) 야기상점에서두 그렇지. 여섯 시문 어업조합에 가서 생선을 받어오니까, 새벽 세 시부터 쓰루배(詛甁[저병]) 질을 해서 물을 길어요. 고길 혀가지구, 하루 종일 호 - 죠 -(鉋丁[포정])루 펄펄 뛰는 눔을, 대가리 토막을 치구, 창잘 갈르고 있으믄, 나중엔 그눔의 조기 눈깔들이 모두 날 흘겨보는 것 같어, 몸서리가 쳐요. 그렇지만 난 참을 때까진 참어왔어요.
580
공 씨 (울며) 이눔아, 에미 애비하구 살아갈랴는데, 어듸 수월한 게 있는 줄 아니?
581
천 명 없으니까 선창에서 소굼을 날르믄서두, 어듸 내가 고생한다구 편지했어요? 안 했지요?
582
공 씨 이놈아, 네가 지금 뭍에서 버느니, 물에서 버느니 하구 있게 됐니? 긴긴 겨울을 뭘 먹구 살구, 할 때가 아니냐?
583
천 명 그러니까 항구에 가서 벌믄 되지 않어요? 축항에 가서, 마가대(起重機[기중기]) 짐두 지구, 선창에 가서 하시께(浮船[부선]) 날일두 할 테에요.
585
낙 경 (아들의 대사를 받어) 그러구 잠은 곡깐 모퉁이나, 이엉 선창 짚단 속에서 자구, 깍쟁이패들 틈에 섞여, 선창 바닥을 떠돌아 댕기겠단 말이지?
586
주학의 처 아재, 아재가 좀 끌구 가세요. 내 기운으룬 못 끌구 가겠쉬다.
587
낙경, 천명을 붙들려고 한다. 천명, 애걸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자, 돌연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안으로 잠그고 규환을친다.
588
천 명 물에서 죽나 여기서 죽나, 죽긴 마찬가지에요. 날더러 자꾸 나가라믄, 난 여기서 죽어버릴 테니 그리 아세요.
589
낙 경 이눔아, 네가 누굴 위협하는 거니?
590
낙경, 문을 잡아제낀다. 안 열어진다. 노틀할아범의 조력(助力)을 얻어 둘이서 잡아제낀다. 문짝이 반쯤 열린다. 그 사이로 충혈된 눈으로 도마칼을 들고 서 있는 천명이가 보인다.
591
공 씨 (애가 타서) 이눔아, 그 칼 놔라 그 칼 놔. 착하지. 어서 그 칼 놔라. 노틀할아범, 가서 저 칼 좀 뺏게. (주학의 처에게) 어서 가서, 아범 좀 불러오게.
592
노틀할아범 저눔이 살이 뻗친 모양이군요.
593
낙경,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하야 문을 잡아제낀다. 문짝이 떨어진다. 노틀 할아범, 천명의 칼을 뺏을려고 덤빈다.
594
천 명 (위협을 하며) 누구든지 내 몸에 손만 대믄 사정 안 볼 테야.
595
노틀할아범, 질겁을 하야, 뒤로 물러슨다.
596
공 씨 (악을 쓰며) 누구든지 손만 대믄, 사정 안 본다구? 손만 대믄, 찔러 죽인단 말이지? 이 늙은 에미두 손만 대믄 찔러 죽인단 말이지? (부엌으로 들어가 천명 앞에 목을 내밀고) 어데 찔러봐라, 어데 찔러봐.
597
천명, 절망한 듯, 칼을 땅에다 툭 떨어트린다. 두 팔을 축 늘어트리고 부엌문에 엎더져 오열한다. 낙경, 그래도 자식이라 불쌍해서 돌아서서 콧물을 닦는다.
598
공 씨 (주학의 처에게) 자네가 가서, 아범한테 잘 좀 얘기해 주게. 천명이가 나간다구 그러드라구 하구. 애당최 내가 잘못했지, 내가 잘못했어.
599
공주학의 처, 가도로 나간다. 잠시 무거운 침묵. 이윽고 젊은 어부, 개에서 달려온다.
600
젊은 어부 아, 뭣들 하구 있는 거에요? 빨리빨리 개루 나오시지들 않구? 어젯밤 물에 동아떼가 여덟미서 덕적으루 몰려가는 걸, 용유 준필 할아버지가 추수곡 싣구 지나가다 봤대요. 어떻게 떼가 큰지, 바다가 시꺼멓드라구 해요.
601
노틀할아범 곧 갈 테니, 돛이나 올려놓게.
602
젊은 어부 동아떼 이렇게 큰 것 보긴, 10년 만이라구 해요. 갔다 와서 쉬운 독을 저릴랴믄, 어지간히 손등이 또 터질껄요.
603
젊은 어부, 다시 개로 나간다. 공주학, 헌 고무장화를 한 켤레 들고, 가도에서 나온다. 사금 파는 광부들이 신는 볼기짝까지 닿는 신이다. 뒤따라 그의 처.
607
주 학 안짱물이 뱃전을 넘드래두, 발 시렵지 않게 이거 신구 나가라. 내 신든 거다.
608
공씨, 장화를 받어 천명에게 신긴다. 천명, 신을 신고 모(母)를 따라 개로 나간다. 일동, 뒤따르다. 무대 공허.판성, 개에서 떠들며 달려온다.
609
판 성 내가 걸어서 천진은 못 갈 줄 알구? 걸어선 못 갈 줄 알구? 죽어두 내가 한 번 보구 죽을껄. 천순일 꼭 한 번 보구 죽을껄.
610
판성, 가도로 다시 달려간다. 공씨, 잊어버린 거나 있는 듯이 사장에서 창황히 올라온다. 부엌으로 들어가드니, 사발에 정한수를 떠서 소반에 받쳐들고 나와, 사당 앞에 내려놓고, 서낭님께 두 손을 비비며 축수를 한다.
611
개에서는 배를 내는 벅적한 소요. 노틀할아범의 멕이는 가락에 응하야, 서해안 어부들의 청성이 뚝뚝 떠는 출범가가 이어 들려온다. 동리 아해들이 “그물안내 배 나간다”, “장안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없구나” 등등 떠들며 무대를 달려간다.
612
공씨, 기도를 끝마치고, 개로 다시 나간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발을 뚝 멈춘다. 돌연 전신에 설움이 복받치나 보다. 휘청휘청 마당으로 들어오드니, 마루 기둥에 얼골을 묻고 조용히 오열한다. 깜깜한 부엌에 공씨 혼자 우두커니 앉어서 멀거 - 니 바다를 내다보고 있다.
615
나는 이 서글푼 이야기를 고만 쓰기로 하겠다. 그 후 이 배는 동아를 만재(滿載)하고 돌아오다, 10월 하순의 모진 노대를 만나 파선하였다 한다. 해주 수상경찰서의 호출장을 받고, 공주학과 낙경이달려가 천명의 시체를 찾어왔다 한다. 그는 부서진 널쪽에다 허리띠로 몸을 묶으고 해주 항내까지 흘러갔든 모양이다. 노틀할아범 외 여러 동사들은 모두 행방불명이였다고 한다.
616
내가 작년 여름 경성이 너무도 우울하야 수영복 한 벌과 책 몇 권을 싸들고 스물 한 살의 내 꿈과 정열과 감상이 흩어져 있는 이 섬을 찾었을 때, 도민(島民)들은 여전히 고기를 잡으러 나갔고 동리에는 부녀자와 노인들만 있었다. 천명의 집을 찾어가니, 공씨는 얼빠진 사람같이 부엌에서 멀거 -니 바다만 내다보고 있었다. 나를 보드니 달려와 손을 꼭 붙들고 “선생님, 그렇게 나가기 싫다는 눔을, 그렇게 나가기 싫다는 눔을…….” 할 뿐, 말끝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하였었다.
617
천명은 그가 6학년 때 내가 가르치든 아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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