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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大河) ◈
◇ 대하(大河) 11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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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김남천
 

1. 11장

 
2
장로교회당은 구룡교에서 강선루 쪽을 향하여 올라가다가 왼편으로 꼬부라져서 임강정 있는 바로 그 맞은 집 전날 김리방네 집 자리였다. 모새기에 부엌을 두고 양쪽 기역 자로 2 칸씩 방을 들였던 것을, 모두 뜯어 고쳐서, 부엌을 메우고 양쪽 바람벽을 친 뒤에 높직하니 마루를 놓아 그곳에 강도상을 만들었다. 행길 쪽으로 있는 기역 자의 한쪽 2칸 방이 부인네 들의 예배석이다. 지붕은 영새대로 두어두고, 대문만 고쳐서 높직하니 돌지붕을 넣고, 그 꼭대기에 맵시나게 나무로 열십 자를 만들어 세웠다. 그 옆에 사다리처럼 다섯 여섯 층계를 만들어서, 노전으로 위를 덮고 그 밑에 종을 매어 달았다. 김리방네가 청간으로 쓰던 방을 고치고 늘려서, 평양서 온 이조사네가 살고, 그 윗방에 새로이 동명학교 교사로 온 문 우성이가 기숙을 하고 있었다. 문교사는 평양 일신학교 출신으로 예수교의 독신자였고, 학교에서는 산술, 역사 등을 가르쳐주는 서른도 안 된 젊은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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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한창이니 오월 당오는 아직도 좀더 있어야 한다. 모란꽃이 져서 떨어지고, 가시울 밑과 논두렁 같은 데 창포가 줄기차게 성하고, 신작로 기슭에 부득꽃이 피고, 마지막으로 함박꽃(작약)이 활짝 피어 오르면, 이곳에 단오절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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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는 아직 보름하고도 얼마가 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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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에 내리던 비가 활짝 개인 화창한 공일날이다. 동명학교 학도 박형선, 박형걸, 손 대봉, 이태석, 김길손 등은 아침 예배를 보고, 찬미책들을 옆구리에 낀 채 우슬렁우슬렁 문교 사의 뒤를 좇아 모란꽃이 핀 살구나무 밑으로 몰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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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의 몇 사람, 손대봉이나, 형걸이나, 형선이는 어렸을 때, 아직 동명학교가 생기 기전 서당을 그만두고 기독학교를 얼마간씩 다닌 적이 있어서, 기독교에 대해선 결코 판 백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한 삼장 십육절이니, 삼장 찬미니, 주기도문이니, 이런 건, 그 참뜻을 알지는 못할 갑시 제법 소리 높이 읊어대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을 지킨다 든가, 예배를 본다든가, 밥먹을 때나 잠자리에 들 때에 기도를 올린다든가, 그런 건 도시 할 염도 안 했고, 찬미책도 성경책도 사지 않았다. 학교가 기독학교니 옛말 듣는 조로 성경 말을 들었고, 창가 배우는 여대로 찬미를 불렀떤 것이다. 무당이 굿할 때 하는 사설이나, 조사나 영수가 올리는 기도나, 때때로 장난삼아 숭내(흉내)를 내고 웃고 떠드는 장난감이 되기는 매일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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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기독학교가 폐지된 뒤에는 예배당엔 갈 염도 안 했고, 성탄일 같은 때에도 구경삼아 가면 가고 안 가면 말고 하는 그런 정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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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문교사가 부임해서 얼마 안 해, 이들은 다시 예수를 믿는다고 예배당에를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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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사가 부임된 뒤부터라고 하여도, 그가 공부 시간마다, 줄창 예수교 선전을 했다 든가 그런 때문은 아니다. 본시 문교사는 강서 태생이라고 하는데, 인물이 깨끗하고 새 지식 이해 박해서, 이 고장에 오자 곧 학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동명학교 교사라야 한문 선생 같은 건 서당 훈장과 다를 게 없었고, 신식 학문을 배워주는 이라야 어느 시골 학교를 한 해나 두 해, 대충대충 건너뛰며 배워갖고 온 나 많은 분들뿐이었고, 그래도 정영근 교사 같은 이는 체육이나 조련을 가르치는 관계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끌었으나, 이 역시 너무 엄하고 세차서, 학도들이 가까이 하긴 힘든 사람이었다. 그러던 판에 대성학교 물도 먹었고, 지난 봄에 일신학교도 졸업했고, 그래서 신학문이나 개화 사상엔 발이 활짝 넓은 데다가, 또 하나 엎쳐서 예수를 믿는 덕에 양인들과도 교제상이 넓어 이즈음은 양서를 이 책 저 책 뒤적 여보는 판이니 학도들이 홀딱 반해버릴 건 정해논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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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상의 소개로 이 고장 학교에 부임이 되었는데, 그는 오는 대로 그의 윗방에 기숙하고 검소한 독신 생활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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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는 처자도 안 거느리고 혼자만 달람하니 찾아와서, 단정한 독신 생활을 하는 것 이 일반의 주목을 끌었다. 그가 강서에서도 명문의 자제라느 걸 안 뒤에는, 일반은 더욱 그 의 생활을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마누라와 의가 나쁘든가 그렇지 않으면야, 청청한 몸에 안타까이 외지에 와서 홀아비 살림을 한다느냐고, 부인네들까지 문선생의 이야기를 입심 거리로 삼았다. 아마 상처를 한 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디 첩이라도 두었다가 이 고장 형편을 보아 종차루 데려오려는 겐지 모른다거나, 이렇게들 소문을 놓다가,이즈음은 예수 믿는 집 부인네 들 입에서 나온 말로, 엄격한 양반 집안의 자손이라, 아들은 개화 사상에 떠서 교사 질을 나다녀도, 자부(子婦)는 타고장에 내보낼 수 없다고, 저렇게 혼자 나와 다니는 게라는 소문이 퍼진 뒤에는, 아마 그 말이 비등할 게라고, 다시 딴 소문을 퍼뜨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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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생들간에는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것이 한 가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학도들 중에는 유학을 세우는 집안에서 자라나서 서학을 싫어하는 이도 있었으므로, 어떻게 되어 저런 점잖은 선생님이 예수를 믿는다드냐고, 수상히 생각하는 이도 있었지만, 고을서 자라나서 기독학교를 치른 학도들에게는 전과는 다른 태도로 예수교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힘 있는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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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도들이 문교사를 좇아 예수교 회당엘 드나들게 된 직접 동기는 모두 제각기 딴 모습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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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형걸이는 문교사와는 다른 학도들보다 유달리 가까워질 까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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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사가 고등과 일년 교실에서 수학을 가르치기 몇 날째만에, 학과를 마치고 하학할 무렵이 되어, 미취자를 조사해본 적이 있었다. 장가 아니 간 학도는 두서넛 되었으나, 선 채도안 싸고 통히 약혼조차 안 한 학도는 스무 명 가까운 한 반 학도 중에 박형걸이 혼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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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도 비범하고, 차림차림이나 몸가지는 품이 결코 가난한 집 아이도 아닌데, 어인 까닭으로 아직 조흔 사상의 회생이 되지 않았는가 하여 퍽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물론 개화 사 상이 들어온 뒤에는, 열 한두 살 나이에 장가를 보내지 않으려는 개화해가는 집안도 드문하였으나, 열 아홉이 되도록 혼사도 정하지 않았다는 건, 그의 집안이 상당히 개명한 신식 잡안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필시 무슨 곡절이 숨어 있을 게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문 교사는 교실을 나오면서, 형걸이를 불러, 밤에 틈이 있거든, 내가 기숙하고 있는 집이 바로 예배당 안에 있는 이조사네 집 윗방이니, 한번 놀러 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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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한 형걸이의 설명과, 그 설명 속에 얽히고 설킨, 형걸이와 형걸이 모친 윤씨의 고민을 낱낱이 듣고, 문교사는 신분의 차별이나, 적서의 구별 관념이나가, 모두 어떤 시대의 찌꺼긴 가를 소상하니 가르치고, 지금 문명하는 시대에는 그런 차별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것을 말하였다. 이어서 그는 비복을 해방할 것과, 미신을 타파할 것과, 조혼 사상을 물리 칠것과, 생활 습속을 개량할 것을 말하고, 이것을 위하여 몸을 바침이 청년 남아의 할 것이라 가르치었다. 형걸이는 문교사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대목도 있고, 터무니 무슨 곡절인지 영 문 인지를 모르고 넘기는 대목도 많았으나, 문교사의 하는 말은 모두 옳은 말이라고 생각 하면서 잠잠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형걸이와 문교사와의 사이는 유별난 교의로써 맺어 져서, 사제의 엄격한 관계는 잊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그것을 넘는 정의를, 피차간 느끼고 있었다. 바로 형걸이가 쌍네와 가까이하기 비롯한 전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형걸이는 쌍네와의 관계에 대해선 절대로 입을 감물고 아무 의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제 다시 혼삿말 같은 덴 귀도 안 기울이리라고, 내심으로 굳이 작정한 것도, 문 교사에게는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얼마 안 해 공일날이나 삼일밤 예배같은 때엔, 회당에 다니는 교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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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선이가 예배당에 다니게 된 건, 또 다른 경로를 밟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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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선이는 그의 갓 데려온 안해, 보부가 예수는 믿지 않노라 하지만, 두지(뒤주) 속에 시집 올 때 성경책과, 찬미책과, 예수가 승천할 때의 그림과, 십자가 앞에서 꿇어앉은 그림 등속을 넣어갖고 온 것을 알고 있었고, 정좌수도 회당에 다니진 않으나, 기독교를 배척치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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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다구 뭐랄까봐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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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보부는 귀신이나 마귀를 존신이라고 섬겨오는 집안에서 예수교 문세를 중 얼대 다가 시집살이도 못하고 쫓겨온 색시를 알고 있었고, 비록 새 신랑 되는 형선이야 rmfjfiask 는, 빈정대는 말에도 틈새기를 보이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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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면 믿는다고 밝히지요. 믿지 않으니까 않는다구 하는 게지요." 하고 새침을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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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성경책은 웬 겐가. 그리구 목수 아들인가, 그 텁석부리 말이야, 그 사람 하눌루 올라가는 그림인가, 그건 다 웬한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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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 때 이야기 책 대신에 보믄 어떤가요. 그림이야 머, 비단필이나 삼성에 붙은, 딱지 를 모아두는 여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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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형선이가 바륵바륵 웃으면, 보부도 그 웃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면서도 그대로 따라서 바륵바륵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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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우성 교사가 온 뒤에, 그가 예수를 독실하게 믿는 걸 알고 얼마를 지나서, 형 선이는 밤에 제 안 해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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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루 온 문교사가 예수를 믿는데. 아주 독실하다는데. 난두 회당에나 갈까." 하고 말해본 적이 있었다. 이때에도 남편이 제 마음을 중떠보는 줄 알고, 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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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찬미책하고, 성경책하고, 좀 꺼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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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야 비로소, 남편의 말이 진정인가 농말인가를 판별해보려는 듯이, 바느질에서 눈을 떼고 남편의 얼굴을 쳐다본다. 별로 농의 말같지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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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뭘 할라구요." 하고 한번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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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뭇골 형걸이두 믿구, 모두 가는데, 난두 가볼까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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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남이 믿으면 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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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믿길래 믿어보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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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말인 줄은 알면서도 보부 발신하니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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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칙해라, 누가 머 믿는답디까."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옷가지 호던 걸 반짇고리 속에 넣고 일어나서, 옷두지를 열고 그 속에서 성경책과 찬매책을 꺼내었다. 어딘가 기뿌드름한 홍조를 띤 빛이 얼굴에 떠올랐다. 형 선이가 그걸 한 손으로 받아 쥐니, 보부는 다시 아래께 문을 열고 서랍에서 성화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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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이 십자가에 못 백혀서 사흘만에 예수 승천하는 그림, 이건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가 기도 드리는 그림, 이건 예수 어렸을 때 그림, 이게 마리아라구 예수 오마닌데, 참 곱게 생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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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가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걸, 덤덤히 바라보고 있다가 형선이는, 얼굴을 비스듬히 쳐 들어서 보부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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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한느 조사 영수 찜쪄 먹겠군." 하고 히죽이 웃었다. 그는 안해의 지식이 넓은 데 만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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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두 기독학교 댕겨서 성경줄이나 들었건만 원. 그래두 찬미는 몇마디 하지. 어데 이번 주일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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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시구려. 아무러나 개화하신 아들이야. 마귀 섬기는 것보담 월뚱 났지요."
 
41
인제는 보부가 정면으로 권하는 판이다. 형선이도 속으로 '짜장 그러렸다.’하고 생각 했으나, 아무말도 안 하고 성경책을 뿌르르 펼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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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가구 싶어 어떡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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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공연히 펄각펄각 뒤치면서 형선이가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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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싶으면 가나요. 내우하는 안악이 그렇지요.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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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용서 맡어줄게 자네도 같이 가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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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편의 이 말이 농말인 건 뻔했다. 그러므로 보부는 씩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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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덜 다 갈 때 차차 가지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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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두 머 남덜이야 안 댕기나, 많이덜 댕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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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난 후댐에 갈래요. 어서 당신이나 열심히 믿우. 나야 애기나 낳거던 장옷 쓰구 댕 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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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선이는 안해의 갑자기 발그레해지는 얼굴을 홀린 듯이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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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밤두 깊었는데 자리 깔구 불 끄지." 하였다. 형선이는 그다음 공일날부터 예배당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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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손대봉이는 형걸이의 권유, 그리고 김길손이나 이태석이는 다시 이 손 대봉이나, 형 걸이의 인도로 예배당에 출입하게 된 것이다. 대봉이는 예수교란 건 어떤 겐데, 그 진리는 뭐이고, 죽으면 천당에 가고, 머, 이러퉁한 말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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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길손아, 이댐 공일에 회당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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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툭 던지면 저쪽에선,
 
55
"겐 뭘 하레." 하고 반문한다. 그러면 곧,
 
56
"너, 색시랑 체니 구경 안 할련? 함께 찬미하구, 기도 올리구, 오라바니, 누님 어쩌구 한다. 재미있다."
 
57
이렇게 꼬여대면 처음엔,
 
58
"망할 자식." 하고 어깨를 툭 치며 웃고 돌아서지만, 공일날 아침엔 일찌감치 조반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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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봉이 있나." 하고 찾아왔다. 대문 밖으로 나가면 기척하고, 경례하고 입나팔 분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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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선생님두 믿는다지." 하고 엄숙하니 딴전을 울린다. 그러면 대봉이는,
 
61
"그럼, 문선생님이 믿길래 가는 게지, 될 말인가." 하는 것이었다.
 
62
이렇게 해서 그들은 각각 예배당에 다니기 비롯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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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끝나면 남자들이 먼저 다 나가버린 뒤에 한참을 더 기다렸다가 부인네들이 장옷을 쓰고 회당에서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마침 남자반 예배석에서는 나 많은 축들이 상론한 게 있다고 빈 자리가 없으므로, 부득이 문교사는 청년들을 데리고 뒤꼍 살구나무 밑으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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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사님 말씀대로 마귀를 불살라버리는 예배가 두세 고장 있는데, 거기 참례 하려거든 저밋ㅁ덜 잡숫고 다시 이리로 모여주시오. 그러나 머, 장년반ㅇ서 참례할 테니까 우리 청년이 전부 몰려갈 필요는 없고, 역시 먼저 주일처럼 미신 타파의 전도대를 두어서 친근한 집이나, 흠없는 집에 가서 각각 성경책과 찬미책을 나누어주면서, 우리 하느님 말씀의 진리를 펼쳐놓는 데 노력하시는 게, 더욱 안식일을 지키는 본정신에 합당할까 합네다. 우리의 생활의 실제를 들어서, 귀신이나 마귀를 섬긴다고 굿과, 푸닥거리와, 토사와, 경과, 점과, 살 푸리와, 치성 같은 데에 피땀을 흘려모은 재산이 얼마나 생뚱하게 홀러버린다는 것을 실지 상의 있는 일을 들어서 설명하고, 개화한 외국인들의 훌륭한 생활을 자세하게 비교 해가면서 깨우치도록 말씀하고, 이 찬미책과 성경책과 그림 등속을 두고 보라고 나누어주시오. 한번 그렇게 해논 집은 그뒤 끊임없이 자주 놀러 다니면서, 무슨 사소한 일을 들어서라도 늘상 하느님의 진리를 들어 말씀하십시오. 동시에 우리가 날마다 말하는 생활 풍습의 개량 같은거나, 비복의 해방 같은 거나, 이런 걸 널리 들어서, 어서 우리 어두운 생활에서 광명한 세계로 나아가자고 권유하십시오. 끝으로 가장 주의할 것은, 무례하게나, 또는 감정이 상 하게하지 말 것. 무엇보다 먼저 친밀해지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가도가 엄격한 집에 무시로 안방을 엿본다든가, 이런 건 우리 청년들이 오해를 받기가 쉬우므로 절대로 주의하고 명 심하여야 하겠습네다."
 
65
이 말을 들으며 형걸이는 모란꽃 포기 옆에서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방을 엿본다 든가, 이런 건 우리 청년들이 명심하여 삼가야겠다는 걸’ 들으니 언뜻 두칠이 처 쌍네 생각이 났다. 형선이가 빤히 형걸이를 쳐다본다.
 
66
'혹시 형선이도 형준이 입에서, 내가 두칠이 처 방에서 나오더란 말을 듣고, 그 일을 알고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형수 되는 정보부나, 온 집안이 알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67
이렇게 생각하니 낯이 후끈하면서 형준이에게 미움이 가고 잠시 동안일지라도 제 얼굴을 뻔히 쳐다보던 형선이에게도 미움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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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뜩 대봉이를 보았던, 그는 지금 칠성이 처의 생각을 했었던지 형걸이를 보고 벌쭉 하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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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 분씩 갈러서, 한 분이 성경과 찬송가를 각각 한 책씩 들고 그림은 큰거 작은 거합 해서 다섯 장씩, 이렇게 나누어 들고 곧 떠나주십시오. 밤 예배에 다시 오실 때에, 전도 한결과를 자세하게 말씀하시도록 해주시오."
 
70
잠깐 부인네들의 예배석을 끼웃하여 바라보더니,
 
71
"부인네 들도 다 갔으니 인제 각각 헤어지시오."
 
72
형걸이와 대봉이는 한패가 되었다. 그들은 임강정 앞으로 나와서 비류강 가장으로 내려왔다. 방수성 위에 서서,
 
73
"뉘 집 뉘 집이 가볼까." 하고 형걸이가 물어본다.
 
74
"네 소견대로 한 집 가구, 내가 앞장 서서 한 집 가구, 이번엔 이렇게 한번 갈라서 해보자."
 
75
대봉이의 대답을 가만히 되새기더니,
 
76
"넌 어데 갈라구 생각한 곳이 있네? 난 한 군데 있다." 하고 형걸이가 말한다.
 
77
"뉘 집이가? 너부텀 말해봐라."
 
78
"왜, 방선문께 나가노라믄, 국숫집이 있지, 막 누구라든가, 그 집 아니믄 그의 아우 마방 하는 집으로 갈란다."
 
79
형걸이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태봉이는 달려들었다.
 
80
"이놈 뭐 어드래?"
 
81
멱살을 받쳐 쥐려고 하니, 형걸이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82
"안 그러마, 안 그러마, 다신 안 그러마." 하고 껄껄 웃어대인다. 형걸이가 가자는 집은 박리균네와 그의 동생 박성균네 집인데, 대봉이가 인제 며칠 안 있다 박성균의 딸 금네한테 장가 드는 걸 놀려대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83
대봉이는 성이 삭았어도, 좀 입맛이 밍밍한지 시푸드름해 있다.
 
84
"왜, 그 말에 노했나." 하고 물으니,
 
85
"망할 자식 노하긴 누가." 하고 씩 웃으며 시원스리 대답은 했으나, 그 싫디싫은 금네한테 장가 들 걸 생각하니, 미상불 속이 상해 기분이 울쩍하지 않진 못했던 것이다.
 
86
한참 동안을 아래쪽으로 덤덤히 걸어가다가,
 
87
"내가 생각한 곳은 강선루 앞인데, 그리루부텀 댕겨갈까. 우리 일갓집 뒤채에 새루 평양서 이사해온 집이 있다." 하고 대봉이가 말한는 것을, 형 걸이는,
 
88
"그럼 그럭하지." 하고 그 말에 따라간다.
 
89
그들은 다시 길을 뒤집어 임강정 골목으로 올라와서 행길로 나섰다. 대봉이는 앞장을 서서 바른쪽으로 올라가다가, 관가 우물께로 꺾어서 돌아간다. 한참을 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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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뒤채다." 하고 대봉이는, 어떤 돌집 앞에 와 선다.
 
91
"이 뒤꼍으로 돌아 들어가면, 따루 떨어진 집이 있다."
 
92
잠깐 더 그대로 서서 설명을 하다가, 가만히 형걸이 귀밑에다 입을 대고,
 
93
"기생 집인데 괜찮을까." 하고 나직이 물어본다.
 
94
"글쎄." 하고 형걸이도 그의 말이 뜻밖이고, 도시 생각조차 안 했던 곳이라, 잠깐 동안 머뭇거리며 새겨보다 가,
 
95
"귀 천의 차별이야 두겠나. 그러니 관계야 없겠지만서두, 글쎄 원 우리 학도 신분에." 하고 망설이는 기색을 보인다.
 
96
"그럼 괜찮다. 차별을 없애는 게 종교의 목표가 아닌가. 어쨌거나 뒷감당은 내 할게 따라만 오게. 난두 이사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지 한 번 본 적은 없다. 뽕두 딸 겸 뭣두 볼겸이지."
 
97
대봉이는 그의 팔을 끌 듯이 하며 앞장을 선다. 형걸이도 싫지는 않다. 들어가는 걸 발뺌 해 줄 건덕지나, 발명할 수 있을 만한 트집만 있으면, 젊은 사람의 마음이라 입맛이 당 기지 않진 못했던 것이다. 모시 다듬은 두루마기를 살랑살랑 휘날리며 한 손으로 책과 그림을 들고 각담을 돌아 뒤꼍으로 갔다.
 
98
"아니 계시우." 하고 문 앞에서 대봉이가 불러본다. 대문 앞은 채미밭이다.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99
"아니 계시우니까." 하고 또 한 번 부르고는 형걸이를 보면서 눈을 하나 찔끔한다.
 
100
"거, 누구요."
 
101
가느다란 젊은 여자의 목소리다.
 
102
"내왜다." 하고 제법 어른처럼 대답하곤 또다시 형걸이를 바라본다.
 
103
"오만, 누구 찾아오신가분데, 좀 나가보시소고레."
 
104
대문 밖에 서서 두 총각은 아름다운 여자 목소리를 흘리듯이 듣고 섰다. 이윽고 회청백이 낡은 걸 끌면서, 오십이 넘었을 부인이, 삼성 치마를 두르고 뜰을 건너 나와서 대문 빗장을 뽑는다.
 
105
"어데서 오신 이들인가요."
 
106
대문 앞에 와서 찾는 손이 시퍼런 학도 청년인 것을 본 여인은 좀 의아해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107
"아랫거리서 온 사람인데, 주인 계신가요." 하고 이번에는 형걸이가 나섰다.
 
108
"예, 안주인만 있습네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109
이렇게 더듬더듬하고 있는데, 안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110
"누구 시든지 들어오시라구레. 으레껏 찾아오신 이들을."
 
111
이 소리를 듣더니 여인네는 급작스리 벌신하니 웃으면서,
 
112
"자, 누추한 방이지만 좀 들어들 오시소고레." 하고 대문 한편에 비켜 선다.
 
113
"예 좋수다, 여기두." 하고 대봉이는 한 번 사양해보는데, 형 걸이는,
 
114
"그럼 잠깐만." 하고 대문 안으로 으쓱하니 들어선다. 그래 대봉이도 따라 들어섰다.
 
115
주렴발을 친 윗방에서 갓 단장한 듯한 기생이 쌩긋하니 웃으면서, 한 손으로 발을 들치고, 반들반들하게 물걸레질을 쳐놓은 마루로 나온다.
 
116
"수구레 누추한 집을 찾아주셔서 죄송합네다." 하고 고요히 한짝 무릎을 꿇고 반절을 하듯 한다. 예사대로 하자면  어지게 반말을 할 것이지만, 형 걸이는,
 
117
"느닷없이 찾어와서 되레 안 됬수다." 하고 어름어름한다.
 
118
"자 이리로들 올러오시지요. 방은 누추하지오만, 이리로 들어오시지요."
 
119
기생은 처음 마루를 권하였다가 다시 방안을 권한다. 대봉이는 형걸이를 슬쩍 보더니,
 
120
"그럼, 좀 들어가서 이야기하세그려." 하고 토방에 갓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선다. 기생의 안내로 그들은 방안에 들어갔다. 기생 어미는 부엌 건너 외간방으로 들어가버린다.
 
121
기생이 안내한 방은 늘레로 2칸 방인데 기직(왕골 껍질을 짚에 싸서 엮은 놋자리)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아랫목에는 보료에 사방침을 놓았다. 뒤꼍으로 두지, 자개 장롱, 의 걸이를 쭈르니 늘어놓고, 아랫목 머리맡에는 문갑이 놓였다. 옷곁에는 화초 평풍을 나직하니 둘렀고, 그 앞에 놋으로 만든 유경(鍮檠)이 놓여 있다. 문갑 앞에는 흰 옥초합과, 놋재떨이 위에 긴 연죽이 하나 얹혀 있다. 평풍 머리에 세운 가야금이, 천장 밑에 선반을 매고 모셔놓은 손 각시 들어 있는 챙지에까지 올라 대이었다.
 
122
"인젠 벌ㅆ 여름이라고 낮이면 더우신걸요." 하고 태극선을 꺼내 권하고, 이어,
 
123
"의관 파탈하시고 앉으시지요." 한다. 두 사람은 들고 온 책과 그림을 놓고 모자를 벗어 보료 뒤로 밀어놓는다.
 
124
보료 위에 두 젊은 손님을 모셔 앉히고 기생은 방 가운데 앉아서, 옥초함을 끌어다 담배를 담는다.
 
125
"평양서 온 지 오래웨까." 하고 형걸이가 말을 걸어본다.
 
126
"한 달포 넘었어요. 일가 사람이 자파에서 사는데, 이 고장이 산수도 좋고 명미하다 하시기에 구경두 할 겸, 그리구 이곳서 옛날 부용(芙蓉)이란 명기가 나지 않았습니까. 제 이름은 바로 부용이라 여쭙길래, 이것저것 그리워서 한 번 찾아온 것이야요. 너무 생소한 고장이라, 여러 나릿님 사랑만을 하늘처럼 믿고온 셈이지요."
 
127
담배가 다 담기었다. 소털 같은 기새미가 노랗게 대통에 들어 담겼다.
 
128
"심심하실 텐데 담배 붙이지요."
 
129
가느다란 옥가락지와 금지환 낀 손으로 긴 연죽을 내대이니, 대봉이가 사양 않고 끌어 받아서 입에다 물으려고 하다가, 문뜩 예수 믿는 사람은 술 담배를 금한다던 말을 생각하고,
 
130
"모처럼 붙인 걸 사양키는 어려우나 미처 담배를 못 배왔소." 하고 점잖게 재떨이 위에 도로 놓는다.
 
131
"이 서방님께서도, 그럼." 하고 형걸이를 쳐다보니, 그는,
 
132
"나도 못 배웠습네다." 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속으론 부용이가 저다려 서방님이란 게 우스웠다---이렇도록 장성 해서 총각일 줄은 누가 보아야 생각지 못할 것이다.
 
133
"참, 얌전들 하시구려. 무엄한 말씀이지만." 하고 부용이는 그리 크지 않은 흰니를 아래쪽만 내보이면서 웃어본다.
 
134
"얌전해 못 배온 게 아니라, 잘 피우든 걸 요즈음 끊어서 못 먹는 게라우." 하고 형걸이도 웃는다.
 
135
"아니 담배를 끊으셨어요."
 
136
갑자기 웃음을 털고 낯색을 정색하면서, 부용이는 형걸이를 쳐다본다.
 
137
"그런 게 아니라요. 인제 제대루, 우리 화장수를 시작해야겠군, 우리 둘이 화장수를 떠난게 라오."
 
138
잠깐 대봉이를 쳐다보고 형걸이는 까치다리 했던 걸 좀 풀었다가 도사리고 앉는다.
 
139
"우리가 댁을 찾아온 까닭이, 바루 우리들이 담배 술을 끊은 까닭과 같으외다. 직발 지름길을 해서 털어놓구 말해보면, 부용이한테 우리가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러 온 게외다."
 
140
얼굴이 닭알같이 개름하고, 눈매가 정기찬 부용이의 얼굴에 잠시 복잡한 표정이 오락가락 한다.
 
141
예수를 믿으라니, 지나가는 농의 말인지, 혹은 비천한 계집이라고 실없이 놀려대는 사설인지, 그렇지 않다면 무슨 깊은 딴뜻을 두고 빗대어 하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혹 자기가 잘못 들은 말일는지도 모르겠다고,---이렇게 부용이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142
"온 농의 말씀을 하셔도."
 
143
이렇게 한마디 나직이 종알거리다 말고, 고 아름다운 눈매로 약간 형걸이를 홀겨보듯 하다가 끝을 새름하니 웃어버린다. 형걸이는 그렇지 않다는 발명의 말을 하려고 입을 날름 거리 다가, 부용이의 입술이 흩어지는 데 질려서, 얼굴을 바로 보지도 못한 채 한참 동안을 더듬는다.
 
144
"그럴 리가 있나요." 하고 앞을 지르고 나선 건 옆에 앉았던 대봉이었다.
 
145
"이걸 보소구려. 이게 찬미책하구 성경책이 아니웨까. 또 이 그림 하며."
 
146
수다스럽게 내놓고 지점버릴 치려고 하는데, 부용이는,
 
147
"저 같은 사람을 그처럼 생각들 해주시니 고맙긴 하외다만, 가령 제가 예수를 믿는다면, 어데 회당에라두 제법 갈 수 있는 모밍ㄴ가요."하고 약간 나무람 섞인 한숨조로 나온다.
 
148
"왜요. 어데 예수교에서 사람 차별 두는 줄 알우."
 
149
대봉이가 대서기는 했으나, 형걸이는 역시 부용이으 하는 말이 근경에 가깝다고 속으로 생각 하였다.
 
150
"제가 괜히 예배당에만 가보셔요. 그날부터 점잖은 집 부인네는 하나도 오들 않을 겝니다."
 
151
"그래두 할 수 없지요. 예수라는 이는 사람에게나 어데 귀천을 가리거나 그렇진 않았으니까 요."
 
152
대봉이는 어찌 되었던 건둥건둥 주어 섬기고 있기는 하나, 형걸이는 이런 데 와서 전도고 뭐이고 하는 게 역시 탈선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왕 왔던 김이니 그대로 갈 수는 없다고, 가라앉는 제 기분을 속으로 느끼면서 이렇게 말해보았다.
 
153
"그렇게 생각하는 건, 부용이의 잘못인줄 압네다. 예수를 믿으라는건, 그저 덮어두고, 회당에나 오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사람 따라서는 위선 오는게 장땅이라고, 회당에 부지런히소 일삼아 댕기는 가우데서, 차츰 예수교의 진리나 본정신을 깨달아가는 이도 있겠지만, 부용이 같은 분이야 그럴 필요도 없겠지요. 회당엘 간다든가 안 간다든가 그런 것보담두, 위선 성경이든가 찬송가를 보구서 그 참 정신을 깨닫고 매일 하는 생활 가운데 그 정신을 배어 들게 하면 그게 더 중 할 줄 압네다. 참 부용이 말마따나, 부용이가 회당엘 온다고 보면, 아직 낡은 습관에 젖은 완고한 분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부인네들 중에는 회당에 안 오게 되는 경우가 생길는지두 모르겠습네다. 한 사람의 진정한 분을 얻기 위해서, 쓸데없는 가짜 신도를 맥만을 잃는대도 가당할는지 모른다면, 그말두 일리는 있지만 아직 이 세상이 그렇게까지 되기야 쉽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들이 부용이 집에 찾아온 진정은 어데 있든간 전도 나왔던 김에 한번 놀려 들린 걸로 셈을 치고 어떻든 우리의 본뜻만 저버리지 말아주면 될게 아니웨까. 이 책일랑 놓구 갈 테니까, 심심 파적으로 보아보소. 우리 생각은 사람은 본대 귀하거나 천하거나 하는 구별이 있을 턱이 없다. 모두 한가지 같은 사람이 팔자를 잘 타구나면 양반이요. 그렇지 못하믄 상놈이요, 이러니까, 이 뜻을 잊지 말구 마귀나 미신이나 이런 데 잡히지 말구서, 새 문명을 받아서 잘 살자는 겝니다. 이거머, 화장수 타령이 너무 길어졌으니, 이건 이젠 이만해둠세."
 
154
형걸이는 벌쭉하니 웃으면서 대봉이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는 동안 부용이는 다소 흥분 된 빛을 낯에 그리며,
 
155
"좋은 말씀을 들려주셔서 감사하와요." 하고 진정으로 감사한 생각을 가슴 깊이 새겨 넣은 듯이 가만히 머리를 수그려 인사를 한다.
 
156
"허, 머 이럴 것까지 없구. 자 그럼 우린 또 딴 곳에 들려볼 곳도 있으니까, 인제 가보아야겠수다."
 
157
모자와 나머지 책자를 들고 일어서니,
 
158
"아니, 원 이렇게 가시다니 될 말슴이웨까. 식혜나 감주래두 한 잔시 올리려구 지금 막……." 하고 따라 일어서서 문께를 막아 서며,
 
159
"오만, 저 화채든가 식혜든가, 얼런 상 좀 차리세요." 하고 일변 또 건넌방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160
"아니올세다. 뒷날 또 놀러오지요. 많이 놀았으니께루. 인제 다른델 또 가보아야지요."
 
161
대봉이는 어느 결에 모자를 쓰고 두루마기의 주름살을 털면서, 주렴을 들치고 마루로 빠져 나간다. 차마 처음 보는 남의 서방님---사실은 총각이지만---의 손을 붙들 수는 없어, 발을 동동 굴러보고 싶게 안타까웠으나 어름거리다가는 또 한 분마저 놓칠까 저어하여, 부 용은 형걸이 앞에 가로서서 피해 나갈 길을 막아버린다. 형걸이는 모자를 집고 다시 그림뭉텅이를 집어 들다가 문뜩 생각되는 듯이,
 
162
"참 그림두 한 장 받아두시오. 이게 예수 어렸을 적에 성모마리아에게 안긴 그림이외다." 하고 그 중에서 1장을 뽑아서 문갑 위에 놓다가, 잠깐 마당 밖을 눈길해보았다. 대봉이는 마당 가운데 서서 형걸이의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다.
 
163
"온 이렇게 여럿을 함께 많이 주셔서 황송하온데. 그런데, 글쎄 저 서방님이 저렇게 나가셨으니 어떻게 합니까. 제가 나가 모시고 올 테니, 잠깐만 이대로 기다려주세요."
 
164
그러나 형걸이는 모자를 쓰고 두루마기 고름만 고쳐 맨다.
 
165
"자 비키시오."
 
166
주렴에 손을 대려는 걸 덥석 두 팔로 잡고, 제가 지금 한 행동이 무엔지도 채 생각지 못 하면서, 동백 기름 냄새가 풍기는 곱게 빗은 머리를 쌀레쌀레 내젓는다. 형걸이가 부용에게 잡힌 제 손을 내려다 볼 제, 비로소 부용이는 물감처럼 낯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손을 놓지 못하고 한참 동안을 그럭하고 서 있었다. 발친 방안은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원문】대하(大河)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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