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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이광수) ◈

◇ 12. 濟州牧使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1923.12
이광수
1
하루는 아침 일찍이 이방이 제주 목사에게로 들어오더니,
 
2
『사또 큰일났습니다.』
 
3
하고 매우 황황한 모양이외다. 목사도 또 제주 목사가 떨어지지나 않나 하고 깜짝 놀랐지마는 아랫사람한테 놀라는 모양을 보이면 위엄이 서지 아니하는 줄을 앞으로 가장 천연하게 가느단 눈을 더욱 가늘게 하고 꼭 스무남은 올 밖에는 더 되지 아니하는 수염을 싹싹 내려 쓸면서,
 
4
『큰일! 큰일이 무슨 큰일이란 말이냐. 네 어미가 서방을 맞아 갔다 말이냐?』
 
5
한 즉 이방은,
 
6
『제 어미가 서방을 맞아 갔기루 그것이 무슨 큰일겠소니까마는 조천에 홍기단 배 수십척이 들어왔사온데 그 배 주인이 서울 사는 허생원이라 한다 하옵는데, 배에는 명주 비단과 각색 보물을 가뜩가뜩 실었다 하오며, 그 배에 실은 물건이 몇 십만냥어친지 이루 해아릴 수가 없다 하옵고, 또 배에는 웬 여편네도 많이 싣고 왔다 하옵는데, 오늘이나 내일은 짐을 다 푸옵고 허생원이란 자가 제주 성중으로 들어 온다 하오니 사또 안전 이것이 큰 일이 아니고 무엇이오니까? 소인은 평생에 이렇게 크고 좋은 일만 사룁나이다.』
 
7
하고 이방은 능청스럽게 잠깐 고개를 들어 목사를 보고 씽긋 웃습니다.
 
8
『이놈아! 양반을 보고 웃기가 당하단 말이냐.』
 
9
를 발딱 일으켜 이방의 어깨를 툭 치며 눈짓 절반으로,
 
10
『그러면 그 계집애허고 응 또는 지금 허생원인가 하고 응……그 계집애를 오늘 저녁으로 데려올 수는 없니? 응. 그리고 허생원인가 한 자가 성중에 들어오거든 내가 부른다고 일러라. 오늘은 이일 저일에 바쁘니 내일이라도 들어오란다고 일러라.』
 
11
이렇게 목사의 본부하는 말을 듣고 이방은 「웨!」하고 길게 대답을 하고는 허리를 굽힌 채로 살짝살짝 걸어서 삼문으로 나오고 목사는 그 계집애의 일과 허생원의 일을 생각하노라고 뒷짐을 지고, 방안으로 왔다갔다 거니고 있습니다.
 
12
이방은 그 길로 나와서 삼문 밖에 벌벌 떨고 섰는 김 좌수를 보고,
 
13
『오늘 저녁에는 꼭 딸을 들여보내야만 한답시오. 만일 순순히 안 들여보내면 오방 관속을 풀어서 다무기 묶어 오랍시오.』
 
14
하고는 뒤로 돌아보지 아니하고 가버립니다.
 
15
김 좌수라는 노인은 모든 희망이 다 끊어진 듯한 얼굴로 하늘만 우러러보더니 여기 서 있어야 아무 소용이 없다 하는 듯이 지척거리는 걸음으로 향청 앞을 지나서 향굣골 자기 집으로 가는 길에 혼잣말로,
 
16
『저런 괘씸한 놈이 어디 있나. 저놈이 제주 목사도 온려 주고, 인제는 그놈이 내 자식을 버려 주려고 들어.』
 
17
엿듣고 얼른 그 노인의 소매를 잡아 당기며,
 
18
『노인님, 지금 중얼거리시는 말씀은 다 들었습니다. 아무 염려마시오. 나허구 우리 댁 생원님한테로만 가시오. 우리 댁 생원님은 무슨 일이나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단 말씀이야요.』
 
19
하고 소매를 잡아 끄니 노인은 일변 무섭기도 하고, 일변 믿기기도 하여 돌이가 잡아 끄는 대로 끌려 갔습니다.
 
20
어느새에 벌써 이러한 준비를 하였는지 허생은 제주 성중에 그 중 크고 좋은 집을 사서 안팎을 말짱하게 소제하고 과연 백만냥 부자 부끄럽지않게 차려 놓았는데 오직 허생원 제 모양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이 초초한 선비외다.
 
21
돌이는 앞서서 껑충껑충 뛰어 들어가서 허생원을 보고 한 손으로 김 좌수 노인을 가리키면서 무슨 큰 공이나 세운 듯이,
 
22
『생원님 저기 하나 데려왔습니다. 제주 목사가 무어 자기 딸을 빼앗으련다고 중얼거리고 가기에 붙들어 왔읍니다.… 여기도 강경만이나 재미있을 모양인데요.』
 
23
하고 도로 껑충껑충 내려와서 김 좌수를 끌어 올립니다.
 
24
김 좌수는 돌이에게 끌리어 허생의 사랑에 올라왔습니다. 〈대체 이 양반은 어떤 양반이길래 제주 목사보다도 더 높으시단 말인고. 아이구 제발 덕분에 내 딸만 살려줍소사.〉 하고 김좌수가 속으로 축원을 하면서 사랑문을 여니 웬 보기만 해도 고리가 짝이 없는 사람 하나이 않았습니다. 비록 고리게는 생겼으나 아랫목에 앉은 것을 보니 주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25
그러나 늙은 것이 젊은 것에게 절도 할 수 없고, 또 아니 할 수도 없고, 차마 웃목에 앉을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아랫목으로 내려갈 수도 없고, 김 좌수 노인은 어쩔 줄을 몰라 엉거주춤하였습니다. 앉은 것도 아니요, 선 것도 아니요, 상놈이라고 할 수는 없고, 양반이라고 하더라도 더 큰 양반들이 아니 알아주는 이 세상에 김 좌수는 엉거주춤으로 허리만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26
『이리 앉으시오. 그래 영감은 내게 무슨 할 말씀이 계시오?』
 
27
하고 허생이 먼저 분멸을 하여 주는 덕에 김 좌수는 거우 그 앉으라는 자리에 앉아서 하소연을 시작합니다.
 
28
『나는 김성 쓰지요. 본래 경주 김씨로서 입제주(入濟州)한 지가 한 삼십대(三十代)되지요. 』
 
29
『예? 삼십대요?』
 
30
하고 허생이 놀라는 듯이 다시 물은즉, 노인은 놀랄 것이 조금도 없다는 모양으로,
 
31
『삼십대가 잠깐이지요. 우리 삼십대조 되시는 어른이 여조에 통선랑 벼슬을 하시다가 이리로 구향을 오셨으니까 우리 집안은 상놈은 아니지요. 그러나 요새 사람들이 그것을 아나요.』
 
32
어하 하고, 김 좌수의 말소리와 몸 태도는 더욱 점잖고 양반스러워집니다.
 
33
돌이는 저 웃목에 서서 혼자 웃고 있습니다. 허생은 김 좌수의 양반 증명을 시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들고 앉았더니,
 
34
『그래 내게 하실 말씀은 무엇이오니까?』
 
35
하고 한번 다시 물었습니다.
 
36
『네 네 말씀하지요. 나는 본래 그러한 사람이지요. 저저 제주 본토박이로 사는 상놈과는 다르지요. 그런데 제주 목사가 그것을 말라보고, 내 막내딸을 소실로 달라니 어디 그런 법이 있나요. 내 자식을 후실로 달라더라도 내게는 못 그러려든 어디 어디 나같은 사람에게 그런 법이 있나요.』
 
37
하고 더욱 더욱 김 좌수의 호기가 만장이나 올라갑니다.
 
38
『그래 목사를 보고 그런 말씀을 해보셨소이니까?』
 
39
하고 허생이 점잖은 말로 물으니, 김 좌수도 인제야 자기 양반을 알아주는 이를 만난 듯이 만족한 모양으로,
 
40
『허 세상이 말세가 되었소구려. 지금 이 제주 목사란 자가 나이 사십이 가까웠건마는 아직 철이 못난 자여. 알아볼 만한 사람을 알아볼 줄도 모르고, 그저 돈하고 계집 밖에 모른단 말이어.』
 
41
하고 더욱 호기를 내고 소리를 높여,
 
42
『그러하더라도 제가 내…게…는 못 그래야 옳…을…걸.』
 
43
하고 마치 제주 목사를 보고 호령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44
김 좌수가 오래 양반을 못 부려 보다가 삼년 전에 갈려간 술 주정방이 목사와 어떻게 어떻게 친하게 되어 허교까지 하게 되어서 한참 양반을 뽑더니마는 그 주정방이 목사가 갈려 가고, 이번 깍정이 목사가 온 이후로는 김 좌수에게 같은 양반의 대접을 아니할 뿐더러 마침내 다른 사람에게 하는 바와 같이 그 딸을 첩으로 달라는 통혼까지 하였습니다. 그래 오늘 아침에도 그 아니꼬움을 참고 이방놈에게 청을 하였다가 그만 「오늘 저녁에는 오방 관속을 내보내서 다무기 묶어온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김좌수의 양반이 들어갈 만도 하건마는 허생이 마침 자기의 양반 자랑을 받아 줄만한 눈치를 보고는 오래 눌렸던 양반이 터져 나온 것이외다.
 
45
돌이는 참다 못하여 앞으로 쑥 나서,
 
46
『압다 우리 댁 생원님은 어떠한 양반입신데 웬 그리양반 자랑을 하셔요. 제주 목사가 첩 장가들 만한 양반을 가지고 어디다 내세워요. 그까짓거 내 양반만도 못할 걸요.』
 
47
하고 김 좌수의 기운을 푹 찔러 주었습니다.
 
48
『앗어라, 왜 그러느냐. 그 양반은 그 맛으로 사시지 않느냐.』
 
49
하고 허생은 돌이를 꾸짖고 김 좌수를 향하여,
 
50
『어서 하실 말씀을 다 하시오.』
 
51
하고 슬쩍 위로를 합니다.
 
52
노인의 말을 들건대, 제주 목사는 제주온 지 삼년에 날마다 하는 일이 남의 딸자식 빼앗기와 돈 빼앗기라 합니다.
 
53
처음에는 그다지 심하지도 아니하더니 그 판관놈이 온 뒤로 부터는 이방놈하고, 셋이 꼭 짜고 들어 앉아서 돈과 계집 훑어 들이기로 일을 삼습니다.
 
54
『아마 그동안에 버려준 계집애가 서른은 넘을게요. 한 사오일 데리고 자고 내버리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두어달 데리고 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당일에 내어쫓기도 하고…이 모양으로 꼭 남의 집 숫처녀만 골라서 버려 주지요…그런데 내 자식까지 설마 맘을 내랴 했더니.』
 
55
하고 노인은 또 성을 냅니다.
 
56
허생은 웃으면서,
 
57
『그러면 어째 노인께서 한번 제주 목사를 호령을 못하셨던가요?』
 
58
한즉 노인은,
 
59
『허, 그러기에 말이요…내가 만나러 들어가면 살살 피하는구료.』
 
60
합니다. 그 노인이 어디까지든지 자기가 높은 체하는 것이 아니꼽기는 하지마는 어찌하였으나 제주 목사놈은 크게 한번 골려야 하겠다 하는 생각이 허생의 맘에 들어 갔습니다.
 
61
벌써 조천에서 배를 내릴 때부터 제주 목사가 흉악한 못된 짓을 다한다는 말은 들었던 터이므로 이렇게 하여서라도 불쌍한 제주 백성을 호랑이 아가리에서 빼어내이려 한 것입니다.
 
62
허생은 몇 가지 꾀를 말하여 김 좌수를 돌려보내고, 돌이와 다른 부하 사람들을 내보내어 제주 성중으로 돌아다니면서 장정이라는 장정을 모두 한달 삭전을 미리 주고 사게 하였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떡서리와 삼태기를 많이 사들여 제주 성중에 있는 큰 돌 작은 돌을 모조리 집어 성 뒤에 돌산을 쌓게 하고, 그 돌산이 다 끝이 나거든 서문 밖으로 흘러 내리는 개천을 동문으로 끌어들여 남문 안으로 흘려 서문으로 봅아 내도록 한다고 소문이 퍼졌습니다.
 
63
아무려나 보통 삭전의 갑절은 되것다 일은 헐하것다 또 일이 호기심을 끌것다 점심때가 못하여 제주 성중에 특별한 일 없는 장정들은 모두 허생 집으로 모여들어 그 큰 성중이 조용하게 되었습니다.
 
64
오정이 지나자, 점심을 먹은 장정들이 혹은 멱서리를 지고, 혹은 삼태기를 들고, 제주 성중으로 쫙 퍼져서 길바닥 집터 할 것 없이 쓸데 없는 돌이란 돌은 모조리 줍는데 저녁때에는 벌써 북문 밖에 쌓인 돌이 두 길이나 넘게 되었습니다.
 
65
그리고 나서 저녁 후에는 말총 고르는 일을 하고 삭전은 낮일의 갑절을 준다 하고 소문은 내었더니 나도 나도 하고 늙은이 젊은이 모두 모여 드는데 모여 드는 대로 아직 일이야 있는지 없는지 약속한 대로 삭전을 주어서 받아들입니다.
 
66
과연 그날 날이 저물더니 사방으로서 말총짐이 모여드는데 말에 실은 것, 소게게 실은 것, 사내들이 등에 진 것, 여편 네들이 머리에 인 것, 대체 얼만지 한량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총짐을 받아 들여서는 여러 백명 사람들이 진 것은 긴 것대로 짧은 놈은 짧은 놈대로 가는 것은 망건거리 굵은 것은 체불거리, 이도 저도 못할 것은 빨랫줄 짐밧거리 이 모양으로 차국차국 골라 쌓는데, 원래 제주가 예로부터 말총의 소산이지마는 제주서 생장한 본토박이 제주 사람들도,
 
67
『어디서 말총이 이렇게 만은 게 오나? 』
 
68
하고 모두 감탄을 합니다.
 
69
그러다 보니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노인들이나 아이들은 구경하더라도 대개는 허생의 집으로 모여 들어서 그 크나큰 집 그 넓으나 넓은 안마당 밖마당이 뿌듯하게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데 제주 성중이 다 이리로만 모여들고, 다른 데는 비인 것 같습니다.
 
70
이때에 제주 목사는 저녁상을 물리고, 담배 두어 대를 실컷 먹고 나서는 인제는 어디 김 좌수의 딸을 잡아다가 오늘 날도 좋고 하니 운우지락을 이루리라 하고 그 가느다란 눈을 깜짝깜짝하면서 일어나 통인을 불렀습니다.
 
71
『이방 불러라.』
 
72
『예.』
 
73
이방이 들어오더니,
 
74
『사또 안전 큰일났습니다.』
 
75
『이놈아 너는 언필칭 큰일이라니 또 무슨 큰일이란 말이냐? 이번에는 네 할미가 서방을 맞아 놀아났단 말이냐?』
 
76
하고 목사가 삼년대 이방을 보면 하던 모양으로 농담을 합니다.
 
77
『소인놈의 할미만 아니라 증조 할미가 놀아났기로 그것이야 무슨 큰일이겠읍니까마는 이번이야말로 정말 큰일이 났습니다.… 판관께서는 오늘 저녁꺼징 굶으셨습니다. 까딱 잘못하오면 내일부터는 사또께서도 저녁을 굶으시기가 열애 아홉이옵니다. 그러하온데…』
 
78
이방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목사는 가깝해 못견디듯이 무릎 위에 올려 놓은 발을 까불까불 면서,
 
79
『그래 이놈아,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이냐?… 무어 어째여, 판관이 밥을 굶었어? 판관이 밥을 굶기로 내가 왜 밥을 굶는단 말이냐. 이놈아 잔소리를 말고 어서 오방 관속을 풀어서 김 좌수 집으로 보내고, 널랑은 형방 호방놈들과 같이 사초롱에 붙켜 들고, 내 신부 아씨를 곱게 모셔 들이렸다.』
 
80
합니다. 이방은 기가 막힌 듯이 한번 길게 한숨을 쉬고 나서, 목사의 앞에 한 번 더 허리를 굽히며,
 
81
『사또 분부를 어느 영이라고 거스리겠읍니까마는 오방 관속에 한 놈 남아 있는 놈 없습니다.』
 
82
하고 아뢴즉, 목사도 그 말에 놀랐는지,
 
83
『얘 얘,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냐. 오방 관속이 갑자기 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
 
84
하고 황황하는 모양입니다.
 
85
『그러올세, 아까 소인께서 자세한 말씀을 아뢰랴 하올 적에 사또께서 김 좌수 말을 끌어내시와…』
 
86
『그래 어쨌단 말이어? 이놈이 사람의 간을 말리려고 드는구나.』
 
87
하고 목사가 담뱃대로 이방의 대강이를 때리니까 모자에 구멍이 빵 뚫어지고 산호동굿 꽃은 상투가 목사의 담뱃대통에 맞아 동서로 남북으로 흔들립니다. 이방은 잠깐 양미간을 찌푸렸으나, 그것이 하는 솜씨라 얼른 고개를 들고 삵의 웃음을 치며,
 
88
『사또 담뱃대통이 상하지나 아니했습니까? 소인이 대강이야 몇 개를 깨뜨리신들 양반께 어떠하오리까마는 그 담뱃대통이 깨어졌다가는 사또께서 내일부터는 담배도 못 잡수시겠으니 그런 가엾은 일이 있습니까.』
 
89
합니다.
 
90
『글세 요놈아, 아직도 웬 잡소리란 말이냐. 그래 판관이 어찌하여 밥을 굶었으며, 오방 관속이 다 어디로 가고 없단 말이냐. 네가 이방으로 있어서 그것도 모르고 어찌 한단 말이냐.』
 
91
하고 제주 목사의 호령이 추상같습니다.
 
92
『예 그러올세, 소인이 죄가 있사오면, 곤장이든지, 대장이든지 형문이든지, 사또께서 분부하압시는 대로 맞기는 맞겠읍니다마는 곤장 태장 형문을 때릴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올씨다.』
 
93
하고 이방은 더욱 목사의 비위만 살살 긁습니다. 목사는 누구만 못한가, 이방과 한바리에 실으면 꼭 알맞겠지요마는 그래도 약고, 간지럽기로는 이방 편이 다소간 나을 것입니다. 그만이나 하길래 사또와 소인의 엄청나게 충등있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지긋지긋 밀리지를 않고 견디어 오는 것입니다. 둘이 다 돈과 계집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사양치 아니 할 만한 작자들이지마는 그래도 악에도 동치라 삼년 동안이나 쓴 일단 일을 같이 겪고, 저질러 왔으니, 그 중에 일종의 정이 생겼습니다. 한참 안보면 피차에 보고 싶고, 만나면 흔히 아웅다웅 다투지마는 그래도 흩어서서 생각하면 피차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방은 제주 목사의 당한 정경이 퍽 가엾어서 맘에는 다소의 슬픔을 가지고, 어떻게 놀라지 않도록 갑자기 슬퍼하지 않도록 제주 판관이 밥을 굶을 까닭과, 오방 관속이 모두 떨어 나간 까닭을 알려 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덕에 갓모자에 구멍만 뚫어지고, 담뱃불에 망건줄만 태웠습니다. 생각하면 기막힌 일이다. 에라 그까짓 녀석 놀라겠건 놀라고, 울겠건 울어라 하고 이방은 사정없이 오방 관속이 달아난 까닭을 말합니다.
 
94
제주 목사의 오방 관속은 어찌하여 한 사람도 없이 다 없어졌습니까. 이방의 말은 이러합니다.
 
95
『그 허생원이란 자가 오늘 식전에 각처로 사람을 놓아 제주 성중 장정을 모조리 모아들인 끝에 어떤 애꾸눈이 곰보놈이 관속들 틈으로 얼른얼른하더니마는 그 곰보놈이 오방 관속에 무슨 약을 먹였는지 모름니다마는 말도 없이 한 놈 씩 두 놈씩 쾌자 벙거지 다 벗어 놓고, 어디로들 다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그래 소인이 뒤로 따라나가며, 「얘 이놈들 아! 다들 어디로 달아나느냐? 달아나려거든 나도 같이 가자. 인제 사또께서 야단발광을 하압시면 경은 나 혼자만 친단 말이냐.」하은즉 그놈들은, 「돈이요, 돈을 준대요. 이방님도 돈이 가지고 싶거든 우리를 따라오셔요.」하고는 까치걸음으로 향나뭇골 허생원 집으로 달아납니다. 그래 그 중에 소인이 어려서부터 길러내인 놈 한 놈을 붙들고는, 「이놈아! 먹을 통이 있거든 나도 같이 가지, 네 놈만 혼자 간단 말이냐.…대관절 무슨 까닭으로들 퇘자 텅거지 다 벗어 놓고, 향나뭇골로 들 달아난단 말이냐?」한 즉, 그놈의 대답이 장관이옵지요. 이놈이 소인더러 되묻는 말이, 「이방님, 이방이 좋아서 이방 노릇을 하십니까? 먹을 것이 귀해서 이방 노릇을 하십니까?」하옵지요. 그래 여간해 서는 기가 막힐 줄 모르는 소인도 직이 기가 막혀서 「이놈아! 이방 노릇이 좋기도 하고, 먹을 것도 귀해서 이방 노릇을 하지.」하고 큰 소리를 하온 즉, 그놈이 어디서 그런 소리를 얻어 들었든지 히히히 웃으면서, 「벼슬이 하고 싶거들랑 제주 목사라도 하시지요. 그까진 이방을 하고 있어요? 쪼고맹이 목사가 얘 하면, 예하고, 코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꾸부리는 그까진 이방 노릇을 하셔요.」 하옵지요.
96
들고 본 즉, 소인도 대답할 말이 없사옵기로, 「압다 이놈아! 나는 그래도 이방이나 되지 너 같은 놈보다야 낫지 아니하냐.」하고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하지 아니했습니까. 그러하온 즉, 그놈이 한 번 더 히히히 웃으면서, 「그것 봅시오. 이방님, 이방님도 그까진 이방이 좋아서 이방놈아! 하면 예…이…하는 그런 짓을 하셔요? 밥이 중해서 그러시지. 그래 소인은 밥 많은 준다는 데로 가옵니다.」하고 쾌자 벙거지 벗어서 이 발로 차고, 저 발로 밟고, 향나뭇골로만 달아납니다. 생각하온 즉, 그놈이 말이 과연 옳사옵거든 사또 같으신 이는 양반 맛에나 산다 하옵더라도 소인같은 무엇이야 돈맛에나 사옵지요. 귀밑에 센 터럭이 회끗회끗해도 밤낮 애, 이놈아 소리만 들사온 즉, 자라나는 아들 손자 놈들이 들을까봐 부끄럽삽고….』
 
97
목사는 이방이 주위대는 소리를 한참이나 눈을 감고 듣더니 이방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98
『그래 이놈아! 그렇게 달아나는 놈들을 보고도 가만 두었단 말이냐?』
 
99
하고 바락 열을 냅니다.
 
100
그 가느단 목사의 눈이 눈초리에 불록불룩 핏대가 일어납니다.
 
101
『허 사또 안전 소인이 어찌하옵니까. 소인마저 그 놈들을 따라 안 달아난 것만 다행입지요. 소인도 오늘 내일 지내 보아서는…헤헤.』
 
102
하고 이방이 어디로나 가려는 듯이 슬쩍 고개를 돌립니다.
 
103
목사는 황황히 이방의 옷소매를 붙들며,
 
104
『무얼 어찌고 어찌어? 이놈 너도 달아날 뻔했어? 이 모조리 허리를 두 동강에 낼 놈들 같으니』
 
105
하고 이방을 때리기나 할 듯이 벌떡 일어났으나, 사세가 이렇게 되고 보면, 목사에겐들 사람을 때릴 기운이 있습니까. 목사도 생각해 본 즉, 기가 막히든지 잡았던 이방의 소매를 턱 놓으며,
 
106
『그러면 김 좌수 집에 보낼 놈이 하나도 없단 말이지…왜 오방 관속에서 요금을 안주었던가. 어쩌면 그놈들이 오늘따라 달아난단 말인가. 내일은 이놈들을 모조리 정강이 분질러 주어야.』
 
107
하고 고개를 푹 수그립니다.
 
108
『흥, 제 손에 정강이 분질러질 놈 잘 있겠다. 벼룩이 정강이나 분질러 보아라.』
 
109
하고 이방은 목사의 귀에도 들릴 듯한 소리로 중얼거리며 나옵니다.
 
110
목사는 어서 밤만 새면 오방관속을 모조리 잡아다가 주리를 틀어서 어젯밤에 김 좌수의 딸에게 장가들지 못한 분풀이를 하고, 그리고는 오방관속을 떨어내어서 그 아니꼽고, 괘씸한 허생원인가 한 놈을 잡아다가 한번 양반 무서운 양을 보여 주리라 하여 거의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어서어서 이 놈의 닭이 왜 울지를 아니하나, 이놈의 해가 왜 뜨지를 아니하나 하고 천 길이나 만 길이나 끝간 데를 모를 듯이 긴 밤이 어서어서 새어지라고 모으로 눕고, 바로눕고, 돌아눕고, 애를 태울대로 태웠습니다.
 
111
이 모양으로 그 조그마한 속이 보글보글 끓다가 동창이 훤한 듯 만 듯하자 벌떡 일어나, 압다 옷을 언제 갈아입는담, 망건 소제는 언제 하리, 어서어서 통인을 불러라. 토 토 통인을 불러라. 어저께 원수를 갚아야 할 날이다…사또께서 어저께 김 좌수 딸 장가 못 듭신 원한이 여간 아니하신 모양입니다.
 
112
『얘 이놈아! 이방 불러라! 어서어서 불러라. 의복도 안 입어도 좋으니 빨가니 벗고라도 냉큼 들어오랍신다고 일러라. 빨가니 벗고 오기가 춥거든 이불이라도 쓰고 오라신다고 일러라. 이렇게 바쁜 때에 어느 하가에 허리띠, 대님, 저고리 고름, 두루마기 고름, 다 매고 망건갓끈까지 다 매고 다니는 놈이 있단 말이냐. 지금 사또께서 분통이 터져서 돌아가랴고 든다고 일러라. 요놈아! 요놈아! 냉큼 이방을 불러 오너라.』
 
113
하고 목사의 손가락만한 상투 끝이 바르르 떱니다. 통인놈은 그만 혼이 빠졌습니다. 우리 사또께서 미치셨다고나 하며 이방의 집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114
이방이 상투 바람으로 허둥지둥 뛰어 들어오더니,
 
115
『사또 안전 이방 아뢰오!』
 
116
하고 그래도 예부터 하던 버릇으로 문밖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섰노라니 목사의 쌍창이 벼락같이 열리며, 목사의 손가락같은 상투가 간들간들합니다.
 
117
『얘 이놈아! 내가 밤에 한잠도 이루지를 못하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져서 양반이 견딜 수가 없구나. 오늘은 네 오방 관속을 모조리 불러 들여서 그놈들 엉덩이에 선지피가 푹푹 엉키도록 한바탕 곤장으로 두들겨서 다시는 그런 관장을 능면하는 소습이 없게 하렷다. 그리고 그 허생원인가 한 놈을 네 발이 공중에 뜨게 잡아 들여서 양반 무서운 줄을 알려야 할 걸.』
 
118
하고 목사는 또 호령이 추상과 같습니다.
 
119
이방은 기가 막겨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한 손으로는 바지꿈치를 움켜 쥐고, 한 손으로는 저고릿자락을 움켜쥐고,
 
120
『사또 안전 소인도 어떻게나 분하였던지 어젯밤에 한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또께서 부르시옵기로고 이렇게 허리띠도 대님도 아니묶고, 옷고름조차 아니 매고 뛰어 대령은 하였읍니다마는 다 달아난 오방 관속을 불러 오기는 누가 하오며, 설혹 불러는 온다 하온들 곤장은 누가 때리옵니까. 사또와 소인과 번갈아 가며 곤장을 친다 하옵더라도….』
 
121
이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122
『이놈 무엇이 어쩌고 어째어? 나허고 너허고 번갈아 가면서 곤장을 어쩌고 어째어?』
 
123
하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124
『허허 어찌하옵니까. 모두들 돈이 없길래로 돈을 귀해서 사람잡는 박승도 가지고 다니고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의 볼기짝을 땅당 때리기도 하옵지요마는, 허생원이 제주에 들어온 뒤로는 사람마다 돈 없는 이가 없사온즉, 인제 누가 사또의 분풀이 해드릴 양으로, 곤장 사령이 되겠습니까. 소인이 한 계교가 있사오니 그 계교대로 하시는 것이 어띠하겠습니까. 만일 사또 안전께오서, 오냐 그리해라고만 하시오면 소인이 여를 령 시행을 하겠습니다.』
 
125
목사는 자기 신세가 이처럼 되었는가. 세상이 이렇게 하루 동안에 뒤집혔는가. 아무리하여도 꿈만 같지 생시는 같지 아니합니다. 어쨌으나 분풀이는 하고야 볼 일 그것을 못하 고는 가슴이 무두룩해서 아침도 먹을 수 없는 형편인지라,
 
126
『이놈아! 무슨 계교란 말이냐. 덜랑 사람을 간지리지만 말고, 시언시언히 말을 해다고.』
 
127
하고 그만 그 호기도 다 간다바라하고 소금에 절은 배추잎이 되었습니다.
 
128
『예 소인이 계책을 아뢰겠읍니다.』
 
129
하고 이방이 말을 꺼내려 할 때에 목사가,
 
130
『이놈아! 계책을 남이 들어 쓰겠느냐. 이리 들어오너라.』
 
131
하고 불러 들입니다.
 
132
『소인의 계책이 다름이 아니옵고, 두가지온데, 사또께서 분풀이만 하옵시면 그만 아니오니까.』
 
133
『어 그렇지. 나중에 무엇이 되는 위선 분풍이부텀 먼저 하고 보아야해어.』
 
134
『예 그러하오면, 소인이 그 계책을 말하겠습니다. 첫째는 사또와 통인놈과 셋이서 쾌자 벙거지에 왕방울을 떨렁거리면서 오라를 지고 나가서 다만 한 놈이라도 오방 관속놈들을 붙들어 오는 것이 온데 붙들어다 놓은 뒤에는 곤장을 치옵든지, 태장을 치옵든지, 사또 처분대로 하옵실 것 이오며.』
 
135
『이놈아! 무엇이고 어찌고 어찌어? 내가 너하고 오라를 지고 다가서 사람을 붙들어 온단 말이어? 응 이놈이 양반을 욕을 보이는구나. 이리 오너라! 네 이놈을……이리 오라고 부르니 올 놈이 있나…이게 어찌 된 일이냐? 꿈이야 생시냐…그래 이놈아 이방아 내가 체면에 너와 함께 오라를 지고 나가서 사람을 얽어 온단 말이냐?』
 
136
하고 목사가 다시 쭈그러집니다.
 
137
『소인과 함께 나가기 싫사오면 사또께서 혼자 오라를 지고 나가셔도 좋사오나 사또께서 혼자 나가시면 어디가 어딘지 돌아오실 길까지 잃어버릴실 염려가 있사옵기로 소인이 동행을 한다 하온겁지요. 사또께서 말아라 하시오면 소인인들 오랏줄로 사람 얽는 노릇을 무엇이 좋아서 할 것이옵니까.』
 
138
『얘, 그렇지마는 내가 체면에 그것은 못하겠구나. 다른 계책은 없느냐? 그러지 않고도 분풀이의 둘째 계책이란 것을 말해 보아라.』
 
139
하고 목사의 어조는 점점 애걸하는 빛을 됩니다.
 
140
『예, 그러면 둘째 계책을 아뢰겠습니다. 둘째 계책은 어떠한고 하오면 사또께서 관속 중에 몇 놈의 집에 행차를 하셔서 그놈들을 붙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얘 이놈들아! 내가 지금 분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니 잠깐만 들어와서 곤장이나 태장이나 아프지 않게 몇 개라도 맞아다고──이렇게 말씀을 하옵시면 그런들 그놈들이 그것까지야 못한다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둘째 계책이올씨다.』
 
141
목사는 귀를 기울이고 이방의 말을 이윽히 듣고 앉았더니 이번에는 호령할 기운도 다 없어지고 애걸하는 듯한 어조로,
 
142
『얘, 그게야 체면에 어찌 그런단 말이냐. 옆찔러 절받는다는 세음으로 제발 빌어 매를 맞게 하면 무슨 분풀이가 된단 말이냐. 얘 그러지 말고 달리 무슨 계책이 없느냐?』
 
143
하고 목사는 이방의 겉으로 바짝 다가 앉습니다. 상투장이 툴이 눈을 까박거리고 마주앉은 양이 장관입니다.
 
144
『이것도 저것도 다 못하시면 분풀이를 아니하시는 것이 상책이올씨다.』
 
145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이러고 빈 둥헌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란 말이냐?』
 
146
『사또께서도 제주 목사 삼년에 잡수실 것이나 벌으셨으니 인제는 그만하고 서울로 올라가셔서 자핫골이나 모악제 밑에 집이나 한간 사시고, 평안히 여년을 보내시지요. 여기 하루를 더 계시면 무슨 좋은 일을 보실 것 같지도 아니하옵니다. 제주 판관도 벌써 짐 싸 놓고 뱃길만 기다리십니다. 백성들이 모두 돈이 생겨서 먹을 것이 넉넉한 뒤에야 누가 심부름을 해주어야 목사 노릇도 하고, 판관 노릇도 하옵지요. 소인 같은 것이 이방 노릇을 하기에도 먹을 것 없는 놈이 거행을 들어 주어야 하지 아니합니까. 그리하온즉, 사또께서도 어서 바삐 봇짐을 싸시되 허섭쓰레기는 다 버리시고, 적고 가벼웁고 돈길 가는 것으로 사또께서 짊어지실 만하게 쌓아 놓으시고, 그래도 분통이 터지고 싶어서 말을 하니 듣사옵거든 소인이 불러 들이는 대로 오방 관속의 성명 삼자를 발기에 적어서 잔뜩 형틀에 올려 매고는 실컷 한바탕 곤장이든지 태장이든지 맘대로 때려 주십시우.』
 
147
하고 이방은 바지춤을 움키어 쥐고 일어나며,
 
148
『소인 시장하니 밥 먹으로 갑니다.』
 
149
하고 나와 버립니다.
 
150
오늘은 북문 밖으로 흐르던 개천이 제주 성중으로 구경들을 나왔습니다.
 
151
『아이구 어쩌면 열흘도 못되어서 이렇게 큰 개천을 파 놓는거라오?』
 
152
『인제는 빨래하러 북문 밖으로 안 나가도 좋겠는겨라시니.』
 
153
『에그 빨래도 빨래언마는 무 배추 씻어 먹기도 힘이 안들겨라시니 우리 집은 부엌 문만 나서면 개천인겨라시니…어쩌면 허 진사님 덕인겨라시니.』
 
154
이렇게 모두 개천이 성중으로 꿰뚫어 흐르게 되는 것을 백성들이 좋아리 합니다.
 
155
『저기 오시네요. 허생원님께서 오시네요.』
 
156
『허생원님이 아닌겨라오. 허진사님인겨라오.』
 
157
『그런겨라오? 어디 어디? 어느 양반이 허진사님인 겨라오?』
 
158
『저 양반 아닌가 뵈. 저기 저 때묻은 중추막 입으신 이라서 허진사시라니요.』
 
159
『어디? 어디? 저 양반 말인겨요?』
 
160
돌이를 데리고 슬근슬근 개천 구경을 하며 내려오는 허생을 보고, 사내들과 여편네들이,
 
161
『어디? 어디?』
 
162
하고 서로 손가락질을 하고, 고개를 치어들고, 발을 벋디디고 바라들 봅니다. 어떤 젊은 사람은 곁에 섰는 노파들을 보고 제가 잘 아는 것을 자랑하는 듯이,
 
163
『저기 저기 응 저 양반인겨라오. 조천(朝天)에 있는 배가 다 허진사님 배란겨라오. 돈이 한라산만이나 한겨라. 얼만지 수를 모르는지라오. 제주 안에 말총이란 말총은 죄다 허진사님 것인겨라오. 천하에 일등가는 부자라시니오.』
 
164
하고 허를 차며 칭찬을 합니다.
 
165
허생은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는 것을 보고 매우 만족하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166
『허 요만 일에 그렇게들 좋아하는 것을.』
 
167
하고 혼잣말로 한탄을 합니다.
 
168
돌이가 곁에서 씩씩 웃으며,
 
169
『생원님 생원님, 저 사람들이 생원님을 진사라고 합니다. 하 하 하.』
 
170
이때에 사람들 속에서,
 
171
『목사가 나온다!』
 
172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173
『목사 나와라? 어디 어디?』
 
174
하고 모두들 슬슬 뒷걸음츨 치며, 눈만 앞으로 보내어 목사를 찾습니다. 허생도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웬 사람 사오인이 모두 보따리들을 걸머지고 그 고개를 푹 수그리고, 서문 거리로 걸어 나옵니다.
 
175
『맨 앞에 선 게 이방이라야.』
 
176
『그 담에 오는 게 판관이라야.』
 
177
『아이가──목사가 짐을 걸머지고 나오는 거라야. 저 양반들이 어디로 눌러 가는겨라오? 사린교는 누가 훔쳐 갔는거라오?』
 
178
『아이가──저 뒤에 무얼 입고 오는 게 제주 목사님 내행이라야, 집세기를 신었는거라오.』
 
179
처음에는 목사란 말에 모두들 무서워서 슬슬 뒷걸음을 치던 사람들도 벙거지 쓴 나졸들이 영기 들고, 곤장 네고, 「물렀거라, 치었거라, 쉬이.」하는 것도 없이 중놈의 동냥 자루같은 보따리들을 지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가는 양을 보고는 무서운 생각도 없어졌든지 도리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한길로 나오기를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웃고 지껄이면서 목사 일행의 뒤를 따라갑니다.
 
180
『얘 저 걸머진 게 무엔겨라?』
 
181
하고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
 
182
『그게 양식이 아닌겨라?』
 
183
하고 대꾸하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184
『아니라 짐은 쪼고매하거마는 막즉한 게시 돈짐인겨라오.』
 
185
하는 이도 있고,
 
186
『옳지라오. 돈짐인겨라오. 제주 목사가 삼년 동안에 모은 돈이 한라산만 할겨라오.』
 
187
『그럴겨라오. 한라산만한 돈을 다는 못 지고 가고, 힘껏 걸머진 것이 저것인겨라오. 내행까지인 것이 저것인기라오.』
 
188
『압다라 목사또도 돈을 빨아들이는 힘은 크지라만 지고 가는 힘은 적다나.』
 
189
이 모양으로 주고 받고 하며 따라오는 백성 무리를 한번 거들떠 돌아볼 용기도 없이 목사는 허덕거리고 주먹으로 이마에 땀을 씻어 가며 길을 막는 아이들 틈으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길을 골라 나갑니다.
 
190
생각같아서는 이놈의 돈짐도 다 벗어버리고 지붕이라도 활짝 뛰어넘어서 어디 사람 없는 데로 달아나고도 싶건마는 돌려 생각해 본 즉, 내가 이 돈까지 없으면 서울까지 가긴들 어찌하랴. 죽을 때 죽더라도 돈 여든 냥 짐은 꽉 붙들고 있어야겠다. 염라대왕청에를 가더라도 이 보퉁이는 못 놓을테야 하고 그 가느단 눈을 깜박깜박할 때에 그 눈에서도 가느단 눈물이 똑똑 떨어집니다.
 
191
『얘, 목사또더러 그 돈 다 어디 두었나 물어 보아라. 이왕 가는 길이면 돈이나 두고 가라고 그럴겨라나.』
 
192
하고 이때에 웬 사람이 소리를 지릅니다. 저는 그래도 무서워서 직접은 말을 못하고 누구나 대신 말을 해주었으면 하는 꾀외다. 이때에 어떤 험상스런 사람 하나가 껑충 뛰어 나서더니,
 
193
『목사또 내 말 들어 볼겨라오. 삼년 동안이나 빼앗아간 돈을 다 어디다가 감추고 가는겨랴? 우리 제주도라서는 예로부터 들어오는 돈은 있었도 나가는 돈은 없다 하시라. 예로부터 제주 길수로 천리에 배 파선해 죽은 목사는 많은겨라마는 그것이 제주 백성이 다시마 전복 따 모은 돈을 빼앗아 가지고 가다가 그리된 것이라니 목사또도 알아지랴. 제주 삼년에 남은 가시내 버려주기, 백성들 돈 빨아 먹기, 그것 밖에 무엇을 한겨시라? 그리고 팔다리가 성해서 제주 땅을 나설 줄 아는겨라야? 제주 백성이라서 못난 때 못날지라서도 한번 분이 날지면 한라산도 두들겨 바신다니…그 돈짐 이리 벗어 놓지 못할거시니아?』
 
194
하고 팔을 부르걷고 대듭니다.
 
195
목사 내행은 길가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낯이 흙빛이요, 그 좋은 통명수 남치마가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고, 이방은 길가 바윗돌에 돈짐을 벗어 놓고 코를 푸는 듯 오줌을 누는 듯, 고양이 본 쥐 모양으로, 어느 틈으론지 새어 버리고 말고, 키 큰 제주 판관은 얼혼이 다 빠져서 앉을둥 설둥, 뒤로 갈둥 말둥, 앞으로 갈둥 말둥, 무릎 마디 떡떡 마주치고, 커다란 눈이 앉을 자리를 몰라 두리두리 번들번들 돌아가고, 두손만 춤추는 사람 모양으로 멋없이 앞가슴으로 오르락 내리락합니다.
 
196
그래도 목사는 오래 닦은 심담이라, 털끝 하나 까딱하지 아니하고, 그 가느단 눈으로 조는 고양이 모양으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더니, 어깨에 겼던 돈짐을 와락 벗어 땅바닥에 절컥 소리를 내며 내려 놓고, 두 발로 땅바닥을 꽉 디디고, 가슴을 딱 벌리고 뒷짐을 지고 「에헴」큰 기침을 한 번 하더니 가래침을 한입 물고 「퉤」하고 땅바닥에 뱉으며,
 
197
『너희 제주 백성들아 듣거라. 아무리 무지한 섬 것들이기로 관장은 민지부모라니 관장을 몰라 보고 이렇게 관장을 능멸하니 너희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 아니하단 말이냐. 어허 괘씸한지고! 이놈들 내가 서울만 올라가면 주상 천하께 상계를 하여서 이놈들 너희 짐슴같은 놈들을 씨도 없이 육시를 하고 말 것이다. 어 이놈들 괘씸한지고!』
 
198
하고 까만 눈이 반짝하며 조그마한 주먹이 금시에 만백성을 무찔러 버리려는 듯이 발끈 쥐어집니다.
 
199
이 호령이 매우 효력이 있어서 에워싼 백성들은 무서운 것을 본 듯이 몇 걸음 물러나고, 아까 출반주왈로 목사의 죄를 세이던 확살군도 한 걸음 한 걸음 물러나서, 어느덧 사람들 틈에 숨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200
이 광경을 보던 돌이는 주먹이 불끈불끈해서 못 견딜 지경이외다. 허생을 돌아보고 한 손가락으로 백성들을 가리키면서,
 
201
『저런 버러지 같은 것들이 어디 있어요. 그만 저 목사놈의 호령 한마디에 그만 쑥 들어가고 맙니다. 저런 저런 모두…』
 
202
하고 뛰어 나가려는 것을 붙들고 허생이,
 
203
『앗어라.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아라. 저 백성들이 밤낮 매만 얻어맞던 강아지 모양으로 그만 그 호령 한마디에 폈던 기운이 다시 쑥 들어가고 마는구나. 내일까지만 기다려라. 내일은 제주 목사가 몸소 우리 집으로 찾아올 것이다.』
 
204
합니다. 그리고 분을 꿀떡꿀떡 삼키는 돌이를 데리고 허생은 새로 터 놓은 개천가로 슬슬 걸어 올라갑니다.
 
205
백성들이 자기의 호령 한마디에 뒷걸음치는 틈을 타서 목사는 벗어 놓았던 돈짐을 도로 걸머지고 벌벌 떠는 마누라를 앞세우고, 서문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대체 어느구석에 숨었다가 뛰어 나오는지 이방이 바르르 뛰어나와서 돌 위에 벗어 놓았던 돈짐을 걸머지고 깡충깡충 목사를 따라가면서,
 
206
『사또 안전 사또 안전.』
 
207
하고 부릅니다.
 
208
목사는 달아난 줄 알았던 이방의 목소리를 들으니 일변 달아난 것이 밉기도 하고, 일변 다시 따라오는 것이 반갑기도 하여 성 절반 반가움 절반으로,
 
209
『이놈아! 또 무슨 잔소리 말고, 어서어서 조천으로 나가자. 이놈의 제주도에는 하루를 있으면 십년 목숨이 즐겁다. 내가 무슨 전생의 업원으로 이놈의 제주 목사를 왔단 말이냐. 제주 목사를 오는 놈은 개 아들 놈이다.』
 
210
하고 이를 빠득빠득 갑니다.
 
211
이방은 깡충깡충 뛰어서 목사 곁으로 바싹 다가서며, 고개를 갸웃이 들어 생긋 웃는 얼굴로 귀속말을 하듯이,
 
212
『앗읍시오. 안전도 제주 목사로나 왔기에 한참 호강하기나 하겠습니까. 그것도 다 이방놈의 공로인 줄이나 압시란 말씀이야요.』
 
213
하고 두어번 고개를 까딱거리니 목사는 눈이 둥그레지고, 손을 들어 앞서가는 마누라를 가리키면서 얼굴로 아무 말도 말아라, 큰일난다는 모양을 보인다. 이방은 알아들은 듯이 또 한번 고개를 까딱거리며,
 
214
『사또 안전 그 짐이 무겁거든 소인과 바꿔 지시지요.』
 
215
하고 얼른 말을 둘러댑니다.
 
216
목사는 깔깔 웃으며,
 
217
『글세 요놈아, 같은 여든 냥 돈이 어느 것은 더 무겁고, 어느 것은 더 가볍단 말이냐.』
 
218
한즉, 이방은 더욱 소리를 높여,
 
219
『사또 안전 안그렇습니다. 한시에 난 손가락도 크고, 작고가 있는 심으로 땅은 다 같은 땅이언마는 서울은 귀하고, 제주는 천한 모양으로, 같은 계집으로 사또는 내행 계시압고, 소인의 계집이 다른 모양으로,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나이를 먹고, 같이 귀밑이 허여 가더라고 사또는 안전이 시압고, 소인은 이방 놈인 모양으로…』
 
220
『요놈아, 또 무슨 잔소리를 꺼내느냐. 쥐같은 놈이 급한 때를 당하여도 주둥이는 가만 두고 못 견디는구나.』
 
221
『아니올씨다. 소인이 반드시 사또 내행과 소인의 계집을 한데 놓고 비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란 꼭 같아야 할 것에 같지 아니한 것이 있는 모양으로 같은 여든 냥 돈에도 사또께서 지신 것이 혹 소인이 진 것보다 무겁지나 아니할까 해서, 염려가 되어서 여쭙는 말씀이올씨다.』
 
222
이 말을 듣더니 목사는 심히 불쾌한 듯이 양미간을 잠깐 찡기며,
 
223
『옳지! 네놈까지도 나를 놀려먹으려 드는구나. 이놈의 세상이 모두 사개가 빠져서 찌국찌국 다 무너져 버리고,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디고야 말리나 보다.』
 
224
하고 길게 한숨을 쉬입니다. 이방은 얼른 말을 돌려대서,
 
225
『사또 안전 사또 안전, 저기 바다가 보입니다. 조천에 들어와 선 배들이 파리 대강이 모양으로 보입니다. 저놈의 배를 하나 잡아 타시고 순풍에 돛을 다압시고 길라래 비 훨훨 서울 장안으로 쑥 들어가시기만 하면 사또 안전 또 양반 아니십니까.』
 
226
합니다. 그 말을 들은즉, 답답하던 목사의 가슴이 저기보이는 바다와 같이 훤하게 트여지는 듯도 하지마는 어깨는 아프고, 등은 달고, 발바닥은 부를고, 땅바닥에 펄썩 주저 앉고도 싶습니다.
 
227
더구나 목사 내행은 세숫물 하나도 꼭 남이 떠다가 바쳐야 하고 길이라고는 뒷간길 밖에 다녀 보지 못한 사람이라 돈이 귀해서 몇 백냥어치 경보를 머리에 이기는 하였으나 발과 다리가 견디어 날리가 있나. 차차 다리가 무거워지고, 발목이 남의 살이 되기를 시작하여서 마침내 발을 길바닥에 절절 끌게 되었습니다. 입밖에 내어 말은 못하나,
 
228
『이 원수의 제주 목사의 아내가 왜 되었던고.』
 
229
하는 원망이 아니 나올 수가 있습니까.
 
230
가까스로 제주 목사 일행이 조천에 다다르니, 조천 백성들은 목사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다만 어떤 행객인가 하고 눈도 거들떠보지를 아니합니다. 목사의 가슴에는 새삼스러운 설움이 올라옵니다. 어쩌면 세상이 이럴까. 내가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오건마는 동장하나 나오는 놈이 없고, 무지한 백성놈들이 내 앞으로 담뱃대를 가로 물고, 뒷짐을 지고, 다닌단 말인가 하고 일변 분하기도 하고 일변 설기도 하여 곁에서 허덕거리는 이방을 치어다 봅니다. 이방도 목사의 얼굴빛을 보니 가엾은 생각도 나지마는 이렇게 된 처지에 어찌할 도리가 없어 목사의 귀에다 일을 대고 가만히,
 
231
『안전 여기 와서는 성명도 숨기시고, 누구신지 모르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허생이라는 양반이 또 무슨 흉계를 짜 놓았는지 알 수 없으니 애여 목산 체는 맙시고, 소인이 하는 대로만 하셔야 합니다.』
 
232
하고 눈을 끔쩍합니다.
 
233
목사도 생각해 보니 이방의 말이 옳습니다.
 
234
『그러면 얘 네 말대로 할게 어디 불 잘 땐 방이나 하나 잡고, 밥이나 한 술 얻어 먹게 해다고. 몸이 아프고, 시장해서 촌보를 옮겨 놓을 수가 없구나.』
 
235
합니다. 그래 이방은 주막집을 찾아서,
 
236
『방 있소?』
 
237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즉, 주막 주인이 물끄러미 이방의 행색을 훑어보더니,
 
238
『방이 없어요. 우리 집에는 허생원네 뱃사람이 들어서 방이 없어요. 다른 집으로 가 보오.』
 
239
하고 문을 탁 닫고 들어갑니다.
 
240
이방은 다시 목사 내외를 끌고, 몇집을 지나가서 아까 모양으로,
 
241
『방 있소? 좀 점잖은 손님이니 조용한 방을 내어 주오.』
 
242
하였습니다. 그런즉, 그 주막 주인이 또 이방을 물끄러미 보더니,
 
243
『우리 집에는 방이 없어요. 우리 집에는 허생원네 뱃사람이 벌써부터 들어서 식구들 잘 데도 없는 걸요.』
 
244
하고 또 문을 닫고 들어갑니다.
 
245
이방은 또 목사 내외를 끌고, 다른 주막으로 가서 또 그 모양으로 물었으나, 또 그 모양으로 물었으나, 또 그 모양으로 거절을 당했습니다.
 
246
『대관절 이 허생원이란 놈은 어떤 놈인데, 이렇게 사람을 많이 끌고 다니면서 온 조천에 주막이란 주막을 다 잡았담.』
 
247
하고 목사가 이방을 보고 화증을 내니, 이방이 「쉬!」하고 그런 소리 말라는 뜻을 보이면서,
 
248
『제주 땅에서 허생원을 좋지 못하게 말하다가는 큰일 나십니다. 애여 허생원이란 허자도 꿈쩍 입밖에 내지를 맙시오. 괜히 어디 방을 얻어 들었다가도 자다가라도 쫓겨날 판 입니다.』
 
249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목사님 화증이야 얼마나 나겠습니까 활활 붙는 불길이 상투 끝까지 올라가지마는 이 처지에 무슨 별 수가 있습니까. 그만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며 땅이 꺼져라하고 한숨만 쉬일 뿐입니다.
 
250
『얘 내 허생원이란 허자도 입밖에 안내께 어서 밥하고 방하고.』
 
251
그 밖에 더 말도 아니 나옵니다. 어느덧 해는 커다란 불덩 어리 모양으로 서해 바다를 펄펄펄 끓이고 넘어가는데 목사의 창자 속에서는 연해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이방인들 시장하지 아니할 리가 있으랴마는 배고픈 법도 양반과 상놈이 다를 것입니다. 이방도 손으로 허리띠를 한 번 더 졸라매며 가는 목소리로,
 
252
『밥하고 방만 드리면 제주 목사라도 바꾸시겠지요?』
 
253
합니다. 목사는 책망할 기운도 없어서,
 
254
『바꾸구 말구.』
 
255
하고 툭 내솝니다.
 
256
『양반하고도 바꾸시겠어요?』
 
257
하고 이방이 다시 물은 즉, 목사는 고개를 흔들더니,
 
258
『사흘만 이러면 양반 아니라 신줏독.』
 
259
하다가 그래도 차마 말이 안 나와 뚝 끊고 맙니다. 이때에 어디서 비웃인지 고등어인지 모르나 무슨 기름진 생선 굽는 냄새가 나는데 목사 내외와 이방은 일제히 침을 삼키고, 입맛을 짭짭 다시었습니다. 숯불이 우럭우럭하는 청동 화로에 기름이 빠지지 빠지지하고 구워지는 생선과 그 밑에 놓인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이 눈에 보인 까닭이외다.
 
260
『아아 밥하고 방하고!』
 
261
반 남아 물 밑으로 잠긴 햇바퀴의 시뻘건 빛이 허덕거리고 주막을 찾는 세 사람을 비추입니다. 제주 목사 내외는 이방을 따라 해가 다 넘아가도록 주막이란 주막을 다 떨었으 나 모두 허생원네 뱃사람들로 차고 밥 한 상을 사 먹을 집 도 없었습니다. 시장은 하고 다리는 아프고, 참다 못하여 목사 내행은 양반의 체면, 부인네의 체면, 모두 집어치고 길바닥에 펄석 주저앉아 울기를 시작합니다. 그것을 보고는 목사도 땅바닥에 펄썩 앉으며,
 
262
『얘 인제는 한 걸음을 못 옮겨 놓겠다. 어디가서 찬밥이 라도 한 술 얻어다 주어야지 참마로 못 살겠구나.』
 
263
합니다. 이방도 다른 사람들이 털썩털썩 거꾸러지는 것을 보니 자기의 다리도 갑자기 힘이 풀리는 듯하여 역시 길바닥에 주저앉으며,
 
264
『안전 어디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도 조그만 것이라도 좋은 일 한번 해보신 생각이 있나? 일생에 한번이라도 좋은 일을 해보신 일이 있으면 설마 이다지도 명도가 궁하겠습니까!』
 
265
한즉, 목사는 고개륵 푹 수그리고, 무엇을 이윽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낙심하는 듯한 어조로
 
266
『이 사람아!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좋은 일 해 본 생각이 아니 나네그려. 이른 때에는 어느 먼 데 옛조상이라도 좀 좋은 일을 해주었더면 안 좋은가……지금이라도 무슨 좋은 일을 할 것이 있으면 곧 하기는 하겠구먼.』
 
267
하고 또 고개를 수그립니다.
 
268
『그렇습니다. 사또 안전 돈도 좋습지요마는 좋은 일도 더러 해두면 가끔 가다가 더러 쓸데가 있습니다.』
 
269
하고 이방이 한숨 쉬는 것을 보고 목사가,
 
270
『여보게 인제부터는 너라고 말고 여보게라고 함세. 자네도 귀밑이 희끗희끗했네그려.』
 
271
하고 이방의 귀밑을 바라보니 이방도 자기 손으로 귀밑을 만져 보면서
 
272
『네 소인도 귀밑이 희여질 낫살이나 되었읍지요. 옛말에도 백발은 공도라도 백발이야 어디 상놈 양반을 가립니까. 그러하오니 사람의 눈으로 보오면 양반의 백발과 상놈의 백발을 어디 함께 비기기나 할 것이오니까. 하오나 오늘 지내 보온즉, 양반도 상놈이 아니고는 양반 노릇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온즉, 속담 상말과 같이 나룻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고 이렇게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프고 보니 양반도 다 아무 영검이 없는 것 같습니다.』
 
273
하고 목사 내행을 본즉, 아까보다도 더 울고 있습니다. 이방은 다시 목사를 보며,
 
274
『사또 안전 이렇게 모두 배들이 고파서 길바닥에 펄썩 주저앉았으니 이것을 누가 양반이라겠습니까. 양반은 역시 턱 높은 곳에 앉아서 이리 오너라! 하고 호통을 매어야 양반이지 이 꼴이 되오면 사또나 소인이나 비등비등하옵지요…아차, 참 어디 가서 찬밥이라도 한 숟가락 얻어 와야겠습니다. 그러면 사또 여기 돈짐을 벗어 놓고 가니 지키고 앉아 계십시오. 어디 소인이 아는 집이나 하나 만나면 주무실 자리나 하나 얻어 놓고 모시러 오겠습니다.』
 
275
이렇게 말하고 이방이 간 뒤에 목사 내외는 우두커니 앉아서 이방 돌아오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까는 침이라도 삼켰지, 이제는 그것까지도 말라 버리고 입술과 혀바닥이 불타고 남은 것 같습니다.
 
276
저녁들은 다 먹고 난 모양인지 웬 아이놈들이 서넛이 어슬렁 어슬렁 목사 내외 앉은 데로 오더니마는 깜짝 놀라는 듯이 멈칫 서며 그중에 한 놈이,
 
277
『저것들이 왜 길바닥에 앉았는게라야?』
 
278
한즉, 다른 아이놈이 허리를 꾸부리고, 어두운 속으로 목사를 불끄러미 들여다보는 모양을 하더니,
 
279
『아라 기야 건진겨라요.』
 
280
하고 위협하는 듯이 발로 땅바닥을 텅 구릅니다.
 
281
그런즉, 또 다른 아이놈이 잠자리 잡으러 가는 모양으로 가만가만히 걸어서 목사 내행 곁으로 가는 것을 목사가 참다 못하여 「이놈!」하고 소리를 치고, 그놈이 까치걸음으로 달아나면서,
 
282
『이 얘들아! 아닌겨라 미친놈인겨라.』
 
283
하고 노랫가락으로 후렴 모양으로 소리를 맞추어 부릅니다.
 
284
목사 내와가 아이들을 쫓아 버리고, 어두운 길바닥에 마주앉아서 일변 신세를 한탄하며, 일변 도적이나 아니오나 하고 돈짐을 꽉 붙들고, 앉았는 판에 저쪽으로서 웬 시커먼 사람 두셋이 몽둥이를 질질 끌고, 가까이 옵니다. 목사는 불현듯 누가 자기를 때리러 오지나 않나하고 상투 끝까지 쭈뼛하였으나 다행히 그것은 때리러 오는 이가 아니요, 이방이 어떤 사람을 데라고 목사 내외를 맞으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285
목사는 이방을 따라서 조그마한 어부의 집에 들어가 그날 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직 일어나 이방을 시켜 배를 구하였습니다. 이방이 얼마 후에 들어오더니,
 
286
『여보게 배가 하나도 없네그려. 조천에 있는 배는 죄다 허생원네 배라는데 돈 아니라 금을 주어도 얻을 수가 없는걸.』
 
287
합니다. 목사는 그만 기가 막혀,
 
288
『그러면 여보게 어쩌면 좋은가?』
 
289
하고 애걸하는 듯이 목사가 이방을 봅니다. 이방은 목사를 자기의 매부라 하고 목사의 내행을 자기의 누이라 하기로 하여 어제 저녁부터 말을 고쳤습니다. 말을 고치기로 작정한 뒤로는 이방은 아무도 곁에서 듣는 이가 없는 때에라도 또박 목사더러는 「여보게 자네.」라 하고 곁에 누가 있기나 하면 일부러 목사 내행을 보고,
 
290
『얘 어서 세수하고 옷 갈아입어라.』
 
291
하고 오라버니 위풍을 부립니다. 그런 때마다 목사의 아니꼽기야 여간이 아니지마는, 이 처지에 어찌합니까. 며칠전까지는 이방놈의 목숨이 자기 손에 달렸지마는 지금은 자기의 목숨이 이방의 손에 달렸습니다. 더구나 조천에 있는 배가 모두 허생원의 배란 말을 들은 때에는 이방놈을 처남이라는 것은 고사하고 아저씨라고 부르디라도 어떻게 해서 제주 땅을 벗어만 나면 좋겟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이방더러,
 
292
『여보게 길은 급하고 어쩌면 좋은가?』
 
293
하고 또 한번 애걸을 합니다.
 
294
『별수 없네. 인제는 자네하고 나하고 허생원헌테로 가 볼 수 밖에 없네. 가서 길이 급하니 배를 하나 빌려 달라고 청을 할 수밖에 없지그려.』
 
295
합니다. 그래서 내행을 그 집에 맡기고 허생원을 찾아 다시 제주 성중으로 들어가려던 차에 마침 허생원이 오늘 조천으로 나온단 말을 듣고는 조천서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296
과연 점심때나 되어서 조천 백석이 오글오글 끓어 나더니 어떤 땟국이 흐르는 선비 하나가 애꾸눈이 곰보놈 하나를 데리고 들어옵니다.
 
297
『나는 허생원이라길래 굉장히 차리고나 다닌다고.』
 
298
하고 목사가 사람들 틈에 끼어서 허생원 행차를 구경하다가 곁에 선 이방더러 한탄을 한즉, 이방의 말이,
 
299
『그러길래 진짜 양반이지요. 어디를 가면 무엇을 타고 가고, 밤낮 호령이나 하는 양반은 아직 설익은 양반이고요.』
 
300
합니다. 요놈이 또 나를 깎는구나 하고 속으로는 이방놈이 밉건마는 그런 소리는 입 밖에도 내지 못하고 이방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301
『여보게 여보게 처남! 어서 허생원님한테 말씀하게 그려.』
 
302
하고 재촉합니다.
 
303
이방은 사람들을 헤치고 뛰어나가서 허생원 앞에 허리를 서너 번이나 굽히며,
 
304
『허생원님 전에 아뢰오.』
 
305
하고 꼭 예전 목사 앞에서 하던 모양으로 한즉, 허생이 길음을 딤주며,
 
306
『웬 사람인데 무슨 일이요?』
 
307
하고 이방을 봅니다. 곁에 섰던 돌이가 이방을 보고 눈을 흘깁니다. 이방은 한번 더 허리를 굽히고, 손으로 사람들 틈에 끼어 선 목자를 가리키며,
 
308
『저기 저 백성이 소인의 매부놈이 온데 제 계집을 데리고 ──제 계집이면 소인의 누이동생년이 아니오니까──소인의 집을 찾아 왔아옵다가 서울 본집에 있는 저놈의 애비가 병이 들어서 죽어 간다는 기별을 듣사옵고, 곧 가려 하오나 조천에 있는 배가 다 생원님 배라 하오니 그저 오늘 배를 한척만 빌려 주시오면 저 백성이나 소인이나 그 은혜는 백골난망이겠사옵기 생원님 존전에 이뢰오.』
 
309
합니다.
 
310
제주 목사가 허생원의 허락을 얻어 말총 실은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난 뒤로 둘이나 제주 목사가 도임하였으나, 아전도 없고, 나졸도 없고, 심부름꾼까지도 얻을 수가 없어서, 혹은 한 달 혹은 두 달만에 모두 허생원에게 청을 하여 배를 얻어 타고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311
마지막번으로 왔던 목사는 커단 배에 아전과 나졸까지도 싣고 기세가 당당하게 부임하였으나 열흘을 지나니 무슨 일이 있나. 한달을 지나니 무슨 일이 있나. 동헌에 아건 나졸 죽 벌여 놓고, 종일을 앉았어야 누구하나 송사하러 오는 이도 없습니다. 원 노릇하는 재미가 백성들의 송사를 받아 「이놈! 네가.」하고 호령도 하고, 「네 그놈 흠씬 때려라.」 하고 두들기기도 하는 맛에 있는 건데 어찌된 셈인지 제주 백성들은 당초에 삼문 곁에는 그림자도 얼른하지 아니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목사는 오방관속을 데리고 앉아서 윙윙 날아 다니는 파리나 잡고, 낮잠이나 자고, 이야기나 하고, 장기와 고누나 두고, 하품이나 하고, 기지개나 켤 뿐입니다.
 
312
『얘 이게 웬 일이냐. 이놈들이 당초에 송사하는 것을 할 줄을 모르니 이런 어리석은 놈들이 있느냐. 그놈들 더러 송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겠다. 애 이놈들아! 너희가 나가 돌아다니다가 어떤 놈이나 만나거든 트집을 잡아서 좀 욕설도 해주고, 때리기도 해 보아라. 그러면 설마 저 굼벙이같은 놈들인들 송사를 안 들어오겠느냐. 대관절 이거 심심해 못 견디겠구나.』
 
313
하고 그날부터 목사는 관속들을 사복을 시켜 성중으로 내어 보내어서 까닭없는 트집을 잡아 가지고는 성중 사람들을 못 견디게 굽니다. 그러나 좀체로 성중 사람들이 노여워 하지를 아니합니다.
 
314
혹 음식을 먹고 값을 안 내고 일어서면,
 
315
『돈이 없나보은겨라. 후일에 내시겨라오.』
 
316
할 분이요. 당초에 다투려고를 아니하며, 또 혹 지나가는 사람의 따귀를 붙이면 한번 힐끗 돌아다 보고는,
 
317
『압다 그 양반이 아마 도깨비가 들린겨라.』
 
318
하고는 슬슬 피해 가고, 혹 귀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면 잠깐 얼굴을 찡기며,
 
319
『아마 타관에서 온 친군겨라. 말 그렇게 하면 허생원님께서 노여시는겨라.』
 
320
하고 순순히 책망을 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321
며칠동안 이러한 것을 해야 도무지 신통한 일이 없습니다.
 
322
관속들은,
 
323
『사또 안전 제주놈들은 욕을 해도 잠잠, 때려도 잠잠, 당초에 아무리 건드려도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324
하고 머리 들만 끓습니다.
 
325
목사는 와락 화증을 내며,
 
326
『아무려면 양반이 원 노릇을 왔다가 송사 하나 못 받아 보고, 볼기 한 놈 못 때려 보고 간단 말이냐. 아무리 제주놈들 이 굼벙이같이 무지한 상놈들이기로 재물 귀한 줄을 알터이니, 네 오늘은 제주 성중으로 돌아다니면서, 가가에 벌여 놓은 물건이나 곳간에 쌓아 놓은 양식이나 이부자리나 옷가지나 닥치는 대로 집어오너라. 그러면 설마 그놈들이기로 승사하러 들어올 것이 아니냐.』
 
327
하여 관속들은 떨어 내어 보냈습니다. 이놈들이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가진 행패를 다하고 물건을 빼앗습니다. 그러나 성중 사람들은 그놈들이 가져가는 대로 내어 버려두고, 다만 허생원한테로만 뛰어가서 그 연유를 말할 뿐입니다. 관속들은 모두 어깨가 휘도록 물건들을 걸머지고 돌아왔으나, 성중 사람은 하나도 따라와서 송사하는 이가 없습니다.
 
328
그러나 큰일난 일이 있습니다. 그날부터는 양식은 말할 것도 없고, 배추 한 포기 무 한 개를 얻어 살 수가 없습니다.
 
329
관속이 물건을 사러 가면 사람들이 모두
 
330
『아니 안 팔겨라. 당신네들 좋지 못한 사람들인겨라니, 먹을 것 팔 수 없는지라.』
 
331
하고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팔지를 아니합니다.
 
332
『안 팔면 모두 빼앗아 갈테어.』
 
333
하고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위협을 하면 또 일제히,
 
334
『빼앗아 가도 좋은겨라. 우리 제주에는 들어오는 재물 있지라마는 나가는 재물 없는겨라.』
 
335
하고 조금도 겁을 내는 양이 아니 보입니다.
【 】12. 濟州牧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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