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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이광수) ◈

◇ 10. 돈과 계집일래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1923.12
이광수
1
허생은 우 달려드는 뱃사람을 손을 들어 만류하며,
 
2
『손을 대지 말아라. 사람에게 손을 대는 것은 언제나 좋지 아니한 일이어.』
 
3
하고 돌이를 돌아보며,
 
4
『네가 무슨 일을 저질러서 이 사람들이 이 모양으로 노했느냐?』
 
5
한즉 돌이는,
 
6
『죽여 줍소사.』
 
7
하는 듯이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8
『소인이 여기 이놈의 집에 가서 술을 먹었소오니까. 강경의 배가 다 우리 댁 배요, 강경의 물건이 다 우리 댁 물건이라고, 소인이 자랑을 하고 거기 앉았던 놈들에게 술을 한 턱 잘 먹였소니까. 그랬더니 소인이 술이 취할 때 쯤 되어 소인을 이놈의 집 아랫목세 누여 놓고는 이놈들은 다 어디로 달아나고 말았소니까. 한참을 자다가 깨어 본 즉, 곁에 아까 술 따르던 계집이 누워 이소오니까요. 그래 소인이 네 서방 있느냐고 물었사옵더니 없다고 합소오니까. 그래서 소인이 에헤……』
 
9
하고 심히 말히기 어려운 듯이 머뭇머뭇하더니,
 
10
『소인이 일생에 계집이 처음이오니까요. 그만 술 취한 김에 거기서 잤습니다. 불을 끄고 자는데 이놈들이 달려들어서 소인을 이렇게 때렸소니까요.』
 
11
하고 부끄러운 김에 죄송한 김에 분한 김에 엉엉 웁니다.
 
12
『흥흥, 돈이로구나! 돈이로구나! 얼마나 돈을 가지고 싶으면 제 계집을 다 팔아 먹겠니.』
 
13
하고 몽둥이 들고 앞서 달려던 놈을 보고,
 
14
『이놈! 그런 짐슴같은 짓을 하고는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나헌테로 와?』
 
15
하고 한번 호령을 하였습니다. 그 조그마한 몸에서 어디서 그렇게 큰 소리가 나오는지 사람들은 모두 깜작 놀랐습니다.
 
16
이 호령을 듣자, 몽둥이 든 놈들은 일제히 땅에 끓어 엎디며,
 
17
『살려줍시오 생원님. 그저 살려만 줍시오.』
 
18
하고 이마를 땅바닥에다가 수없이 부딪습니다. 허생은 물끄러미 그놈들의 꾸부린 허리와 털이 부르르한 대가리들을 내려다 보더니,
 
19
『이놈들아! 네 돈이 얼마나 있으면 일생을 살아갈테어?』
 
20
하고 물었습니다. 그놈들은 고개를 쳐들어 번쩍번쩍하는 눈으로 허생을 쳐다보며,
 
21
『예, 소인들이야 천 냥만 가지면 먹고 삽니다.』
 
22
하고는 또 고개를 숙여 저희끼리 서로 눈짓을 합니다.
 
23
『이놈아! 왜 천냥만 불러?』
 
24
『이놈아! 왜 만냥이라고 못 불러?』
 
25
안달란 것을 원망하던 놈의 어개를 잡아 일으키며,
 
26
『그래 너는 만냥만 있으면 세상에 더 원이 없겠단 말이냐?』
 
27
하고 물었습니다.
 
28
『예, 만냥만 있으면 그저……에헤.』
 
29
하고 한 번 허생을 처다봅니다.
 
30
『그러면 만냥만 주면 네 계집이라도 판단 말이냐?』
 
31
하고 허생이 또 물은즉, 그 놈은 한참이나 머뭇머뭇하다가 겨우,
 
32
『네.』
 
33
하고는 고개를 숙입니다. 나이 사십이나 가까운 녀석이 어쩌면 저럴까 하고 허생은 또 한 번,
 
34
『네 부모의 뼈다귀라도 파 오겠느냐?』
 
35
한즉, 또 그 녀석이 고개를 번적 들며,
 
36
『네, 돈 만냥만 있으면 내 몸뚱이 내놓고는 무엇이나 문 벌 처지가 남만 못한 것도 아니지마는 돈이 없어서 이 꼴이 오니까요. 지금이라도 돈 만 냥만 있으면 내일부터는 망건 쓰고, 갓 쓰고, 에헴하고 큰기침 하오니까요.』
 
37
하고 조금도 겁없이 말합니다. 허생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38
『그러면 이놈, 너는 네 계집을 데리고 오너라, 돈 천냥을 주마, 또 이놈, 너는 네 계집을 데리고 오너라. 돈 오천냥을 주마, 또 저놈, 너는 네 아비 빠다귀하고 네 계집을 데려 오너라 돈 만 냥을 주마.』
 
39
하고 각각 건장한 뱃사람 사오인씩을 안동하여 내어 보내고 다른 놈들에게는 각각 술값이나 주어 내어보냈습니다.
 
40
이튿날 허생은 조수가 차기만 기다리는데 십여 인이나 제 계집을 데리고 와서 돈 천 냥씩을 달라고 합니다. 그 중에 어떤 여편네는 그래도 그 남편이 떨어지기 싫다고 울기도 하고, 어떤 이는,
 
41
『이 개같은 놈아! 제 계집까지 팔아먹는 짐승같은 놈아!』
 
42
하고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43
『예끼 대가리가 묵사발될 놈아! 천 냥 받아 먹고 잘 살아라. 너 같은 서방이야 어디 가면 없겠니?』
 
44
하고 분개합니다.
 
45
강경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허생의 배를 맨 곳에 모여들어 사람들이 천냥 돈에 여편네 파는 광경을 구경하고 서서 혹은,
 
46
『저런 짐승 같은 놈이 있담. 아무리 돈이 좋기로 어쩌면 제 계집을 팔아 먹는담.』
 
47
하는 점잖은 이도 있고, 혹은 안 팔려 간다고 울고 몸부림하는 여편네를 보고,
 
48
『울지 마오. 그까짓 녀석을 백년 따라다니면 매나 얻어맞고 밥이나 땅땅 굶었지 무슨 낙 볼 줄 아오. 어서 지양반을 따라가서 좋은 남편을 얻어 만나시오.』
 
49
하고 위로하는 이도 있습니다.
 
50
그럴 때에 어떤 머리 풀어 헤친 젊은 여편네 하나가 둘러선 사람들 두 팔로 헤치고 허생 앞으로 달려가 마치 미친 사람 모양으로,
 
51
『허생원님, 제발 저놈에게 돈 천냥을 주고 나를 사가지고 가셔요. 아이구 내가 저놈하구 살다가는 오장이 다 썩어 죽을 테야요.』
 
52
하며, 바로 허생의 팔에 메어달린 듯이 바싹 대어듭니다.
 
53
이때에 그 여편네가 가리키던 데로서 어민 얼굴이 시커먼 사람 하나가 아까 그 여편네 모양으로 두 팔로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 들어와 허생의 곁에 숨어선 여편네를 붙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여편네는 이 사내에게 안 붙들릴 양으로 허생을 가운데다 두고 빙빙 돌아가는 것이 마치 형가와 진시황이 기둥을 싸고 도는 것 같습니다.
 
54
여편네는 몇 바퀴를 돌더니 마친매 허생에게 매어 달리면서,
 
55
『나리 나라. 소녀를 살려 줍시오. 소녀는 십년 동안이나 이 녀석의 집에서 밥을 굶었소와요. 돈 천냥만 이 녀석을 주고 소녀을 사다가 나리님 댁 종으로라도 두어 주시고 밥만 먹여 줍시오.』
 
56
하고 말이 끝나자, 허생의 발 밑에 꿇어앉아서 눈물흐르는 얼굴로 허생을 처다보며 두 손을 마주 비벼가며 빕니다.
 
57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그 사내가 또 허생의 앞에 꿇어 앉아서 역시 그 시커먼 얼굴에 번적번쩍하는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우렁찬 소리로,
 
58
『나리마님, 이것이 소인의 계집이오니까요. 소인이 스무살 적에 여덜살된 이것을 데려다가 소인이 길렀소. 오니까요. 이집 저집 다니며 품팔이를 하여서 길렀소와요. 헐벗은 때니 없겠읍니까요. 그래서 낫살이 먹은 뒤로는 가끔 나랑 너하구는 못살겠다, 밥을 굶고 어떻게 사나, 헐벗고 어떻게 사나, 집도 없이 어떻게 사나, 나는 다른 데로 갈테야, 죽어버릴 테야, 그리고 떼를 쓰오니까요. 그리는 것을 소인이 잠깐만 참아라, 그래도 무슨 도리가 안 생기랴. 내가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집이나 한 간하구 옷벌도 해주구 밥도 안 굶기마고 달래었소이까요. 그러다가 이번에 나리님께서 여편네들을 사신다는 소문을 듣고 또 이떻게 지랄을 합소오니까요.』
 
59
여기까지 와서는 그 사내도 목이 메이는 듯이 한참이나 말을 끊고, 다만 눈물어린 눈으로 저쪽에 고개를 돌리고 앉았을 재 아내를 물끄러미 건너다보더니 겨우 다시 고개를 들어 허생을 처어다보고,
 
60
『나리마님, 소인이 내일부터는 도적질을 해서라도 제 계집의 겨울옷 한 벌을 햇솜 포근히 두어서 해주겠사옵고, 또 겨울날 양식도 입쌀로만 큰 독에 하나 잔뜩 장만하겠사오니 저 계집더러 소인과 같이 살라고 분부해 줍시오.』
 
61
하고 꺼이꺼이 소리를 내어 웁니다.
 
62
허생은 이 시커먼 사내가 우는 양을 보고, 긍측한 듯이 잠깐 얼굴을 찌푸리더니 곁에 있는 그 여편네더러,
 
63
『여보, 양식과 입을 것만 있으면 이 남편과 살테요?』
 
64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즉, 그 여편네가 부끄러운 듯이 허생을 잠깐 우러러보고 고개를 옴츠리며,
 
65
『그럼요. 먹을 것만 있으면 무얼하러 그래요.』
 
66
하고 더할 수 없이 부끄러운 듯이 몸을 비비 꼬더니 다시 성을 내며,
 
67
『아니예요. 그게 다 거짓말이예유. 밤낮 양식을 장만한다, 옷을 지어 준다 하지만 제까짓게 무얼 해유? 제까짓 못난이가 무얼 해유?』
 
68
하고 남편을 한 번 노려봅니다.
 
69
남편은 이 말을 듣더니 견딜 수 없이 분한 듯이 금시에 달려들어 여편네를 두들기기나 할 것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더니 그래도 차마 때리지는 못하는 듯이 제 주먹으로 제 가슴을 쿵쿵 소리가 나도록 두들기며,
 
70
『글쎄 이것아, 낸들 너를 굶기고 싶어서 굶기니? 옷을 해 입힐 맘이 없어서 헐벗기니? 십년 동안이나 너를 길러내노라고 내가 얼마나 애를 쓴 줄 아니?』
 
71
하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편네가 몸을 남편에게로 팩 돌리며,
 
72
『그래 누가 널더러 길러내랬어? 그래 누가 널더러 길러내랬어?』
 
73
하고 악을 씁니다.
 
74
『그렇다! 네 말이 다 옳다! 그렇지만 내가 너를 귀애하는 정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란 말이어! 내가 남같이 노름을 하거나 술을 먹어 그런 것도 아니요. 일을 하기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요. 해 뜨기도 전부터 밤까지 뼈다귀가 다 휘도록 일을 하건만두 이놈의 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어서 그런 걸 어쩌란 말이어? 어떤 놈은 늦잠 자고, 뻔뻔히 놀고도 잘 처먹고 잘 처입고, 나 같은 놈은 밤낮 죽도록 일을 해도 그런 걸 어쩌란 말이어?』
 
75
하고 원망스러운 듯이 사람들을 한번 휘 둘러보더니,
 
76
『글세 이것이, 내 이번에는 도적질을 해서라도 겨울 양식하고 옷 한 벌 해주께….』
 
77
하고 그 여편네에게 애걸하는 듯이 눈을 보냅니다.
 
78
허생은 더 말을 말라는 듯이 두 사람을 향하여 손을 내어 두르며,
 
79
『자 돈 천냥을 주께 가지고 가서 먹고 싶은 것 실컷 사먹고, 입고 싶은 옷 실컷 지어 입고, 집도 하나 사고, 싸우지 말고 사시오. 그러다가 만일 원하거든 나를 찾아 오시오. 과연 이 세상이 망하게 생겨 먹었으니 좋은 세상으로 데려다 주리다.』
 
80
하고 돌이를 불러 돈 천냥과 제일 고운 명주와 비단으로 그 여편네의 저고리채 치마채를 몇 벌 끊어 오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허생이 그 시커먼 사내더러 이름을 불은 즉 그 사내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81
『소인을 세상에서는 검둥이라고 부릅소오니까요. 그리고 소인의 계집은 걸뜻하면 소인을 못난이라고 부릅소와요.』
 
82
합니다. 이 사람의 본 성명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지요. 아마 자기도 자기의 본성명을 잊어 버렸을 것이외다. 세상이 자기를 검둥이라 하니 검둥인가 할 뿐이겠지요.
 
83
돌이가 돈 천냥과 비단 옷감을 가져왔습니다. 허생이 비단 옷감을 들어 그 여편네를 준 즉, 그 여편네는 잃어버렸던 어린 자식이나 만난 듯이 그 옷감 뭉텅이를 가슴에 들썩 껴안습니다. 그리고 어쩔 줄을 모르지요.
 
84
검둥이는 섬거적에 싼 돈짐을 이윽히 보더니 둘러 선 사람들을 향하여,
 
85
『열 냥씩 주께 돈짐 질 놈 나오너라.』
 
86
하고 외쳤습니다. 그런즉 머리에 수건 동인 사람들이 뛰어 나와서 저마다 돈짐을 진다고 합니다.
 
87
검둥이는 그 여편네와 함께 허생의 발 아래 엎드려 무수번 이마를 조아리고 돈짐을 앞세우고 의가 양양하여 물러나는데 곁에 섰던 사람들은 모두 갑작부자 검둥이를 부러워 아니할 이 없습니다.
 
88
이때에 저편에서 어떤 커다란 사람 하나이 등에 기름 한궤짝을 지고 한 손으로는 머리 풀어 헤친 여편네를 끌고,
 
89
『잠깐만 기다리오. 배 떠나지 마오!』
 
90
하고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와 허생의 뱃머리 밑에 그 길다란 궤짝을 덜컥 내려 놓습니다.
 
91
그 사람이 기름 한 궤짝을 땅바닥에 텅하고 내려 놓고 숨이 찬 여편네를 앞에 턱 내세우더니,
 
92
『자 이것이 내 계집이구, 이것이 내 애비의 해골이외다. 밤으로 사십리나 되는 데를 달려 가서 아버지의 산소를 파 가지고 이렇게 숨이 턱에 닿게 달려왔오이다. 돈이 좋아서요. 돈 만냥이 좋아서요.』
 
93
하고 허생을 노려봅니다. 허생은 이미 감아 올리던 버릿줄을 다시 잡아매게 하고, 땅에 뛰어 내렸습니다. 사람들 중에서는 비웃는 소리, 욕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94
『원 저런 짐승 같은 놈이 있담.』
 
95
하는 이도 있고 혹은,
 
96
『저놈이 벼락을 아니 맞는담 어쩌면 제 애비 송장을 파다가 팔아 먹는담.』
 
97
하는 이도 있고,
 
98
『저런, 오랄길 놈이 있담. 계집을 팔아 먹는단 말은 옛말에도 있지마는 아무리 돈이 좋기도 제 애비 송장을 팔아 먹는 놈이 있담.』
 
99
하기도 합니다.
 
100
그 사람은 무섭게 커단 눈을 뒤룩뒤룩하며 염병 앓는 사람 모양으로 까맣게 탄 입술을 이리 빨고, 저리 빨아 일변 침도 바르고, 일변 숨도 돌리더니 돌라선 사람들을 한번 휘 둘러보며, 무슨 말을 할듯 할듯하다가 허생이 배에서 내려온 것을 보고, 분을 꿀떡꿀떡 삼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흔들는 상투 끝을 한번 만집니다.
 
101
허생은 이윽히 그 사람을 바라보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102
『성명이 무엇이요?』
 
103
하고 물은즉,
 
104
『내 성명이요? 그것은 아셔서 무엇하셔요?』
 
105
하고 도로 물습니다.
 
106
『성명을 말하기가 싫거든 아니해도 상관없소마는 그저 물어보는 말이요.』
 
107
하고 허생이 휘 한숨을 쉬는 것을 보더니 그 사람이,
 
108
『내 성명은 소도적놈이지요. 여기 모여선 저놈들이 내가 남의 소도 여남은 마리 도적을 했으니까 분명히 소도적놈이 지요.』
 
109
하고 곁에 놓인 흙 묻은 관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110
『왜 도적질을 해가지고는 도적놈 소리를 들으시오?』
 
111
하고 허생이 또 물은 즉,
 
112
『허, 내니 도적질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시오? 돈이 없으니까 그러지요! 돈이 없으니까루 남의 소도 도적하고, 제 계집도 팔아 먹고, 제 애비 송장도 팔아 먹지요. 돈 없는 사람이 돈만 생긴다면 무엇을 못해요? 돈만 생긴다면 당신을 죽이긴들 못하오? 나는 내 계집이 귀한 줄을 몰라서 이렇게 끌어다가 당신께 팔아 먹는 줄아오? 나는 제 애비 중한 줄을 몰라서 해골을 파다가 팔아 먹는 줄 아오? 돈이 없으니께루 그러지요.』
 
113
하고 말을 뚝 끊더니,
 
114
『자, 이제 내 계집이구, 이제 내 아배 송장이니께두루 자 갖다가 회를 쳐 자시든지, 국을 끓여 자시든지 매밥을 주든지, 낚시 미끼를 하든지, 맘대로 하시오. 그러구 어서 돈 만 냥만 내시오! 돈 만냥만 있고 보면 나도 내일부터는 소도적 놈도 아니요, 이 꼴도 아니라니요! 양반질은 못하며 방백 수령은 못하며 여기 모여선 저놈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계하에 꿇리고, 이놈 에헴 하면서 저놈들의 모가지 위로 걸어 다니지는 못해요? 돈만 있으면 무엇을 못해요? 계집을 팔았지마는 저놈들의 딸들을 모조리 사다가 첩을 못해요? 저놈들의 계집과 에민들 모조리 사지 못할 줄 아오?』
 
115
하고 더욱 소리 높여 혹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혹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혹은 허생을 노려보며, 도도하게 말을 합니다.
 
116
『자 다들 보시오. 내가 누구만큼 못 생겼어요. 내가 무엇을 못할 사람인가요. 이 속에 드러누운 내 아버지는 나보다도 잘났었지요. 다만 돈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내 아버지도 비명 황사를 하고 이렇게 송장까지도 팔려 아니지요. 돈만 있어 보아요!』
 
117
하고 무슨 옛일을 생각하는 듯이 아버지의 관을 내려다 봅니다.
 
118
소도적놈이라는 그 사람이 아버지의 관을 내려다보며 심히 비분한 빛이 있는 것을 보고, 허생은 동정하는 어조로,
 
119
『그래 선친께서는 무슨 일로 돌아가셨소?』
 
120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즉, 그 사람은 고개를 번쩍 들어 허생을 보며,
 
121
『내 아버지는 본래 안성 읍내 사셨지요. 장사를 하셨지요.
122
허다가 유 진사라는 자에게 돈 만냥 빛을 졌지라오. 그러다가 아무래도 빛을 갚을 길이 없단 말씀이야요. 한해 이태 기한을을 물려 가다가 한번은 유 진사가 안성 원을 끼고 나졸들을 우리 집으로 내어 보내서, 만일 당장 내돈을 내놓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집과 아이들과 아내를 내놓든지 하라고, 그렇지 아니하면 당장 잡아다가 주리를 한다고 야단을 하여, 빛진 종이라고 돈이 없으니 어찌하오? 이 속에 있는 내 아바지도 할 수 없다고 집을 유 진사에게 내어 주고 당신 한몸만 빠져 나왔지라오. 그때애 내 나이 열 살이요, 내 어머니가 스물 일곱살이오니까요. 그날부터 유 진사놈이 턱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 방을 제 방을 만들고, 우리 어머니는 그놈의 첩이 되었지라오. 그러니 우리 아버지 심사는 어떠했겠어요. 며칠동안을 어디서 술을 자시고는 대문 밖에 와서 한참이나 울다가 유 진사 집 비우놈한테 흠뻑 얻어맞고, 쫒겨갔지라오. 우리 아버지는 그때에 나이 오십이 되셨더라고, 또 우리 어머니를 첩으로 만든 것이 하도 분해서 하룻밤에는 장작 패는 도끼를 들고, 그놈이 자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지요. 이놈! 죽어 보아라 하고 도끼로 그놈이 누웠을 만한 데를 찍었더니 그놈은 찍히지 아니하고 벌떡 일어나서 나를 꼭 붙들고, 불켜라 불켜라 하고 소리를 지르지요.
123
불켠 뒤에 보니께루 내 어머니도 옷을 벗고, 자리 속에 두러누웠지요. 나는 아무 철도 모르지마는 와하고 발버둥을 하고 울었지라오. 그리고는 그놈의 집에서 나와서 아버지를 따라 돈 만냥을 벌러 떠났지라오. 그러나 돈 만냥이 어디서 나요? 얼마나 그리고 돌아다니다가 아버지는 미쳐서, 용돈 만냥을 돈만냥하고 울고 돌아다녔지요. 그래서 만냥 미치광이 영감이라고 이 근방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라오.』
 
124
『아버지가 돌아가실 적에 어떻게 정신이 들었든지 날더러 「얘 문흠아 (내 이름이 문흠이여요. 성음 김가구요), 얘 문흠아, 돈 만냥 벌어서 네 어멈 찾아온.」하셨지라오.』
 
125
하고 목매인 소리로,
 
126
『우우우, 그래서 돈 만냥을 벌 양으로 지금까지 꼭 십년을 돌아다녔지마는 하늘에를 오르면 오르지 돈 만냥이 어디서 나와요? 그래도 아무리해서라도 돈 만냥을 벌어서 아버지 원수를 갚을 양으로 일도 해보고, 도적질도 해보고, 아니해 본 적이 없지라오.』
 
127
하고 기운 없는 듯이 땅바닥에 펄썩 주저 앉습니다. 허생은 그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더니 손으로 그 김문흠의 어깨를 툭툭 치며,
 
128
『염려마시오. 아버지 해골은 다시 명당을 찾아서 안장하고 부인도 데리고 가시오. 그리고 내가 만냥 어음 한장을 써 드릴 터니 안성 유 진사의 집에 가서 찾아서 맘대로 쓰시오. 그리고 볼 일을 다 보거든 나를 찾아 오시오.』
 
129
하고 돌이를 불러 지필묵을 가져다가 그 자리에서 돈 일만냥 어음 한장을 써서 김 문흠에게 주었습니다.
 
130
김문흠은 그 어음쪽을 받아 들더니 알 수 없다 하는 듯이 물끄러미 허생의 얼굴을 이윽히 보다가 펄쩍 땅에 엎더지며,
 
131
『재싱지은이올씨다. 나는 생원님께서도 유 진사와 같이 돈의 힘으로 갖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 볼 일을 다 보거든 생원님을 따라가겠읍니다.』
 
132
합니다.
 
133
허생은 배에 뛰어 올라 사공들을 시켜 일시 돛을 달게 하였습니다. 마침 첫겨울 저녁나절 하늬바람에 수십척 적은 배, 큰 배는 살같은 썰물을 따라 강경을 뒤로 두고 남으로 남으로 달아납니다.
【 】10. 돈과 계집일래
▣ 한줄평 (부가정보나 한줄평을 입력하는 코너입니다.)
전체 의견 1
필아저* (106.240.***.***)   
2021-03-11 13:16:16
허생전을 현대 소설로 각색한 것 중에 최고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채만식의 허생전도 추천합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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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이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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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