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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동 외삼촌 댁 대문 앞에서 동정을 엿보느라고 망설이는 상호에게 뜻밖에 와락 달겨든 사람! 분명히 경찰서의 형사에게 잡힌 것이라고, 상호는 가슴이 덜컥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사가 아니고 외삼촌 노인과 한데 잡혀갔을 통역 학생 한기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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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는 반갑고 놀라워서, 크게 소리쳐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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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시다, 갑시다. 여기 있으면 위험하니, 어디로 얼른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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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상호의 손을 잡아끌듯 하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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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가 온통 형사 천지요, 빨리 갑시다. 지금 당신을 잡으려고 발끈 뒤집혔으니, 조심해 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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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자기가 먼저 앞서서 급히 걸었습니다. 학생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거운 쇠방망이로 상호의 가슴을 때리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의 몸은 지금 거미줄에 얽힌 것 같아 까딱하면 독수리의 발톱에 새 새끼가 채이듯이 붙잡힐 것을 생각하니, 한 발 한 걸음을 내어 딛기가 무시무시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점점 저 길로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자기를 노려보는 것 같고, 심지어 여편네 아이들까지 형사의 돈을 먹고 자기의 뒤를 일부러 따라 오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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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상호는 아무 말도 내지 못하고, 학생의 뒤를 따라 잠자코 걸어서, 광화문 앞을 지나, 비각 앞 네거리까지 무사히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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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리까지 나와서 학생이 상호를 돌아다보고, 비로소 입을 열어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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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리 가면 위험하니 진고개로 갑시다. 그리 가야 안전하겠소.”두 사람은 걸어서 진고개로 올라가며, 소근소근 궁금하던 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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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가 들창으로 뛰어 도망한 후 순자와 학생과 외삼촌 노인은 다 같이 경찰서로 붙잡혀 갔던 일, 그 후로 순자는 곡마단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고 노인은 검사국으로 넘어가고 학생은 증거가 없어서 놓여나온 일을 상호는 속이 시원하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모를 일은 순자가 곡마단의 손으로 넘어가서 어찌 되었는지 곡마단 일행은 중국으로 갔는지 안 갔는지 그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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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마단 패들이 어찌 되었는지 그것을 알아볼 도리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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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기도 급하지만 섣불리 하다가는 도리어 잡히게 될 것이니, 우리 저 산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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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의견대로 두 사람은 좌우 옆을 흘낏흘낏 눈치 채어 가면서 좁다란 골목만 골라서 남산을 향하고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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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순자는 중국 땅에 가 있는 줄은 알지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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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마단이 묵던 여관은 곡마단 일행이 떠난 후로 몹시 조용하여졌습니다. 문 옆방에 앉아 있는 주인 내외는 심부름하는 심부름꾼들을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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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선스런 패들이 지금쯤은 중국에 가서 내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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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그 밤낮 두들겨 맞기만 하던 처녀가 불쌍해 못 보겠어요. 어디 가서든지 그렇게 두들겨 맞기만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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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죽하면 도망을 하려니 그랬겠니? 불쌍한 일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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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습니다. 손님들은 각각 볼일 보러나간 사이라, 여관치고는 제법 한가한 때였습니다. 그때 어떤 말쑥한 청년이 한 분 들어서더니, 황급히 모자를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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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을 시작하다가 멈칫거렸습니다. 주인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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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곡마단 단장은 그저께 밤차로 중국으로 간다고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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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 떠난 줄은 압니다. 내가 그 곡마단의 사무원이니까요. 그런데, 단장이 이 여관에 잊어버리고 간 것이 평양까지 갔을 때에 생각이 나서, 그것을 찾아오라 해서, 내가 도로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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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러십니까? 그럼 올라오셔셔 찾아보십시오마는 방을 그날 곧 소제를 하여도 아무 것도 없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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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무슨 문서인데 남의 눈에 안 띄게 다락 구석에 깊이 두었었다니까, 찾아보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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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싹하고 친절하게 안내하였습니다. 젊은 손님은 따라 들어와서 단장 내외가 있던 방의 다락 속을 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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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일까? 분명히 다락에 넣었었다는데……. 없어졌으면 큰일 날 것인데……. 응 큰일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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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딴 데다가 두고 잊어버렸는지도 모르니, 미안하지만 다다미 밑을 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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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 젊은 소님은 방바닥에 깔린 다다미를 일일이 들어내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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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젊은 손님은 방 한 구석 다다미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납작한 봉투를 집어 들고 기뻐하더니, 부리나케 나가서 구두를 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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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입니다마는 기차 시간이 바빠서 치워 드리지 못하고 급히 갑니다. 자, 이것을 그 하인에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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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돈 1원을 내놓고 급급히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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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젊은 손님이 봉투를 들고 여관 문을 나가 여관 판장 옆을 돌아서자, 거기서 기다리고 있든 상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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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그 젊은 손님은, 통역 학생 한기호였습니다. 두 사람은 걸음을 급히하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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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가서 시치미 딱 떼고 곡마단이……. 하고 우물쭈물하니까 주인 마누라가 먼저 곡마단은 그저께 저녁에 중국으로 갔다고 그럽디다. 그래서 우선 중국으로 간 것은 분명히 알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계획 한대로 나는 곡마단 사람인데, 잊어버린 것이 있어서 평양까지 갔다가 도로 왔다고, 그리고 뛰어 들어가서 다다미를 일일이 들고 조사하니까 이 봉투가 있기에 아주 잊어버린 것이나 찾은 것처럼 이것이라고 하고 가지고 나왔지…….” 하고, 한기호는 그 봉투를 꺼내 주었습니다. 상호는 자기가 계획한 대로 들어 맞아 성공한 것을 기뻐하면서 바삐 봉투 편지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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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중국 봉천에 있는 ‘전중여관’ 이라는 일본 여관 주인이 서울 있는 곡마단 단장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속을 빼어 보니, 참말 수상스런 일이 적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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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두 꿰짝을 보내었으니 잘 받아서 처치하고, 어느 때 중국으로 오는지 이번에…… 꼭 15, 16짜리로 적어도 셋은 가지고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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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두 꿰짝은 무엇을 가리켜 한 말이고, 15.16짜리 셋은 무슨 소리인지도 도무지 얼른 짐작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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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쨌든지 이 편지는 잘 가지고 있기로 하고, 오늘밤이라도 곧 중국으로 갑시다. 아까 이야기한 대로, 그럼 내가 가서 내 저금을 찾고 또 다른 것도 준비해 가지고 오리다. 당신은 서대문 밖 그 여관에 가서 기다리고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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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기호가 먼저 벌떡 일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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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중국 봉천을 향하고 경성역을 떠난 길다란 급행열차가 신촌역을 지날 때에, 남의 눈을 피하는 청년 두 사람이 어둡고 조그만 정거장에서 슬쩍 올라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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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4권 11호 (192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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