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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씨 행장기(行狀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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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2월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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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 행장기(行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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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지나간 삼동 ㄷ씨가 겪은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또 몇 마디로써 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삼동은 우리 ㄷ 씨에게 있어서 여전히 배고픈 삼동이었고 또 술고픈 삼동이었다. 그밖의 변화 란 돌아온 줄로 알았던 아들이 온다간다 말도 없이 어디로인지 또 휙 나 가버린것과 30년 동안 살던 연화봉 집을 쫓겨난 것뿐이다. 배고프고 술고프고 춥고 했던 이야기는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겠기에 작자는 ㄷ 씨가 연화봉 집을 쫓겨난 후 어디서 어떻게 삼동을 났는가만 여기에 기록 해 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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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가 연화봉 집을 쫓겨난 것은 그 해 11월 그믐께다. 전날 저녁과 아침을 뛴 때문만 아니라 철보다는 몹시 추운 아침이었다. 난데없이 미군 두 사람이 달려들었다. 새벽이랄 것은 없었지만 겨울의 9시였다. 아침거리가 없었고 보니 늦잠을 잘밖에 없었다. ㄷ씨는 아직도 자리 속에 있었다. 열 일곱난 딸년이 파랗게 질려가지고는 미군 둘이 와서 집을 비우라고 한다는 것이다. ㄷ씨는 물론 짐작이 갔다. 집을 산 사람이 미군을 끌어다댔을 것이다. 집을 팔고도 두 달이나 끌었으니 산 사람을 나무랄 수도 없는 터수였다. 그렇다고 해서 짐짝을 메고 거리에 나앉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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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에 미군 입에서는 가아뗌 소리가 연발한다. ㄷ씨는 당분간 방 하나만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통역은 그대로 전했다. 그러나 미군은 노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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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집주인이 왔다. 앙상한 어깨를 너무 으쓱대어놓으니 흡사 꼽추다. ㄷ 씨는 어렸을 적 일이 생각키었다. 35,6년 전이다. ㄷ씨의 동리에 이시까 와란 일인이 들어와서 박칠성이란 사람을 하인으로 썼었다. 이 박칠성이는 이 시 까와의 고리대금 앞잡이 노릇을 했다. 빚도 얻어주고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슬금슬금 자기 빚놀이도 했다. ㄷ씨의 사촌이 이자의 빚을 썼었다. 그 빚을 받으러 올 때 이시까와를 앞장세우고서는 지금 집주인이 하듯 어깨를 으쓱 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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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오늘처럼 설왕설래가 있었다. 박칠성이는 ㄷ씨의 사촌을 마구 때리었었다. "빠가" "고라" "칙소"하며 치고 차고 했건만, ㄷ씨의 사촌은 대꾸도 못했다. 빚진 죄인이 되어서기도 했겠지만 왜놈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 '왜놈’은 나중에 '일인’이 되었고 '일인’은 다시 '일본 내지인’ 이 되었다가 끝판에는 일본도 떼어버리고 그냥 '내지인’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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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뗌!’과 '빠가’'고라’는 어딘지 통하는 것 같다. ㄷ씨는 완전히 착각을 일으키었다. 40년이란 세월이 완전히 단축된 느낌이었다. 집주인 의상 판도 그대로 박칠성이로 변해 보인다. 집주인도 착각을 일으켰는지 모른다. 그는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고는, 40년 전의 박칠성이와 똑같은 행투로 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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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망할 놈의 늙은이 새끼! 어디 한번 견디어보라지!" 하더니만 멱살을 움켜쥐고 바람벽에다 뒤통수를 짓찧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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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보겠노라고 버둥대었다. 그럴수록에 놈은 더 목을 졸라댄다. 숨이 콱콱 막히며 눈알이 튀어나왔다. 아내는 발을 동동 굴러가며 앙탈을 하고 있었다. 이 땅에는 사람도 없느냐고 게정을 피웠다. 사람이 20여 명이나 모여 있었건만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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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사람 주 ―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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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뚝 그치며 킥킥대기만 한다. 그래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도 40년 전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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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한 젊은 사나이가 나타났다. 뜻밖에 그것은 ㄷ씨를 찾아왔던 출판사 사람이었다. '학습사’라는 교과서 전문인 출판사다. 긴 이야기는 여기에 필요치 않을지도 몰라 약하거니와 어쨌든 '학습사’가 뜻밖에도 ㄷ 씨를 구해주었던 것이다. 학습사 사장은 ㄷ씨를 철자법 교열 최고 고문으로 모시려고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을 보고서는 훨씬 헐값으로 ㄷ 씨를 살 수 있다는 단정을 내리고 말았다. 교정부원이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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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ㄷ씨는 직업이 생기었고 집이 생기었다. 책사 창고 한 귀퉁이에 붙은 헛간이었지만 길바닥은 아니다. 이사 비용도 선대를 해주었다. 무슨 돈이든 손에 쥐어졌고 보니 선술집을 그대로 지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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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잔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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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종로 뒷골목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저녁쌀도 팔아야겠고 시멘트 바닥이니 요도 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쌀 살 돈이라고 술을 안 줄 리도 만무다. 쌀 살 돈이라고 술을 못 먹을 ㄷ씨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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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만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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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잔으로 드릴깝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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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 뭣해, 대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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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뻑뻑 얽은 주모한테서 잔을 빼앗듯이 하여 입에다 들이붓는다. 넘어간 다기보다 사뭇 뱃속에서 빨아들인다. 바다처럼 넓은 ㄷ씨의 주량이다. 한잔 술은 어디로 들어갔는지 알 길이 없다. 술을 먹은 기억조차도 흐리 멍텅 할 지경이었다. ㄷ씨는 잔을 놓았다. 차마 한잔 더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주모는 묻지도 않고 또 한잔을 그득히 따라서 썩 내어밀고 있다. 물론 ㄷ씨는 주모가 둘쨋잔 따르는 것을 보았었다. 그러나 막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날 주자는 것은 아니겠지―이렇게 생각 했다. 그렇다고 주모가 따른 술이 자기 줄 술이라는 것을 물론 ㄷ씨도 알고있다. 두 잔째 마시고 나니 인제 정말 술맛이 난다. 석 잔째도 주모가 임의로 따른 잔이었다. 술집에 와서 석 잔 술도 안 먹는다는 것은 예의에 벗어진 일이다. 석 잔도 않고 나가면 술맛 트집으로 오해받기 쉬우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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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잔째부터는 물론 먹는 이의 자유 의사였다. ㄷ씨는 이 자유 의사를 발휘 했을 따름이었다. ㄷ씨는 기어코 열 잔을 넘기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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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일요일이었지만 ㄷ씨는 여덟시에 끌리어나가서 새파랗게 젊은 아이들 틈에 끼여서 깨알 같은 사전의 교정을 보았다. 이것이 ㄷ씨가 50 평생을 통하여 세번째의 취직이었다. 넉 달이나 다니었으니 가장 긴 취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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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만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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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순 어느 날이다. ㄷ씨는 거나하여 들어오면서 풀쑥 아내 앞에다 내어 던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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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만두단요? 회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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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술을 그만둔 줄 알았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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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아무 마련두 없이 그만두면 어쩌실 작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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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언제 그까짓 것 받아가지구 살았던가? 쌀 닷 말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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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없느니보다 얼마나 났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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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쓸데없는 소리 말아. 옛말 그른 데 없느니. 산 입에 거미줄 칠까?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친 것 나이 50 평생 본 일이 없소. 당신두 못 봤겠지? 뭐내 취직했다구 지난 넉 달 동안 더 잘산 것 있나? 해방 전이나 해방 후나, 취직을 했을 때나 안했을 때나 그저 그 식이 장식이었지 뭔가. 임잔 지난 넉 달을 내가 취직을 해서 월급으루 살았느니라 싶지만, 그럼 취직 않았을 땐 뭘루 살았는지 설명할 수 있던가? 월급 한푼 없이 임자하구 산 것두 30년 이나 되지 않소. 30년을 뭘루서 살아왔던지 암만 생각해두 모르리다.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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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어이가 없어 말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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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 그런 말을 듣고 나니 그렇기도 했다. 30년을 그 주 태백이를 데리고 물려받은 유산 한푼 없이 무엇을 먹고 입고 살아왔던지 생각 할 수록에 희한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남편이나 자기가 나쁜 짓을 한 적이 있었던가 하면 그런 일도 없었다. 남의 돈을 떼어먹은 일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야 그런 적도 없는 것이 ㄷ씨를 보고서 빚을 줄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비리비리하게 남의 앞에 가서 손을 내어민 일은 있었는가 해야 그런 적도 없다. 체수는 작아도 꼬장꼬장한 것이 서서 똥을 눈다. 까치 뱃바닥처럼 흰 체만 하고 살아온 남편 ㄷ씨였던 것이다. 30년 간부부생활을 하는 동안 꼭 두 번 처가에를 간 일이 있다. 그럴 때마다 ㄷ 씨는 꼭 여관을 잡았었다. 이틀 묵는 동안에 꼭 한 끼 처갓집 밥을 먹고는 막무가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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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성미가지군 일생 배랄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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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가 이런 말을 하더라는 소리를 듣고 ㄷ씨는 이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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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주둥이에 쌀밥이 들어가니 하느님 인심이 후한 줄 가히 알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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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날부터 ㄷ씨는 다시 룸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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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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