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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씨 행장기(行狀記) ◈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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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2월
이무영
1
ㄷ씨 행장기(行狀記)
 
2
9
 
 
3
ㄷ씨가 첫 방송을 하던 날은 때아닌 가을비가 쏟아졌다. 바람까지 세차다. 방송국에서는 시간 맞추어 차를 보내고 대기하고 있었다. 방송 시간 5분 전에야 차가 돌아 왔으나 ㄷ씨가 안 계시더라는 것이었다. 방송국이 발칵 뒤집혀졌다. 정각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알아볼 길도 없었다.
 
4
"레코드 한 장 틀어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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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로 했다. 레코드가 끝이 나도 ㄷ씨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잊었을까 싶어서 오늘 아침에도 연락을 해두었던 것이다. 아침에는 윤 군이 직접 ㄷ 씨 집을 찾아가서 전달을 했고 보니 틀림이 있을 리 만무하다.
 
6
그 시각에 ㄷ씨는 역시 술집에 있었다. 한림 서점 주인과 어울린 것 이었다. ㄷ씨가 '한림’을 찾아간 것은 세시가 지나서였다. 잡담을 하고 있노라니 주태배기 시인 유성수가 덜렁덜렁 들어왔었다. 역시 초올초올한 것 이두 어깨가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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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올초올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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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태배기가 말을 꺼내자 모두 회들이 동했다. 비빌 데라고는 역시 ' 한림’밖에 없었다. 사오느니 마느니 하다가 상술집으로 몰려갔다. 상점에 서한두 병 받아다 먹었으면 부비도 덜 나련만 '한림’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파리가 꼬이어 술집보다도 더 비싸게 치일 위험성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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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꼭 석 잔씩만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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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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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잔이면 꼬옥 좋지. 난 오늘 방송국엘 가얄 일이 있어. 석 잔이면 똑차암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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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석 잔은 넉 잔이 되었다. 한 되가 두 되가 되고 석 되가 되었다. 이야기도 벌어졌고 날도 저물어오고 있었다. 정말 이제부터 술을 먹을 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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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만해, 오늘 방송이 있어. 다섯시에는 무슨 일이 있든지 일어나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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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을 먼저 내어미는 것도 ㄷ씨다. 시간 생활을 해본 지도 오랜 ㄷ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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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몇 시나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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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 시간이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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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이 철도국용 회중시계를 꺼내 보며 술을 또 권한다. 한 시간이란 거짓말이다. ㄷ씨도 술을 남기고는 일어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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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늦으면 대순가. 다른 것 먼저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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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ㄷ씨가 그래도 시간 후 5분 만에 방송국에 닿았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국에서는 아니 오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다음 프로까지의 공간을 음악으로 채우겠노라 선언을 한 바로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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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좀더 일찍 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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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군이 땀을 뻘뻘 흘리다가 핀잔을 주었다. 은사도 학자도 없었다. 쥐어박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윤 군은 참을 수 있는 인간이었다. 참지 않을수 없는 계제이었다. 윤 군은 다시 스위치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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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차 관계로 ㄷ씨께서 지금 막 당도하셨습니다. 선생님, 5분 단축시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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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의자에 앉았다. 벌써 20년 전 꼭 한 번 마이크를 앞에 놓고 이야기 해본 일이 있었다. 어색하나 술기운이 잘 보충해주었다. 첫 강좌의 제목은 「 삼국 시대의 역주들」이란 것이었다. 혀가 잘 돌지는 않았으나 20분 간이야 어찌 못 채유랴 한 것은 ㄷ씨뿐이 아니었다. 방송국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또 믿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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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5분 동안을 들어보니 구수하다. 이만하면―하고 윤 군은 가슴을 내리 문지르고 긴급 회의가 열리고 있는 국장실로 들어갔다. 오늘의 회의는 이북 공산군이 남침을 할 위험성이 많으니 그런 때에 대비할 수 있는 시설의 분산을 토의키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국장을 비롯한 각 과장들이 전원 참석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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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토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놈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방송 시설이란 단서가 모처에서 통보되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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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는 일시 퇴각을 하는 때라도 방송 시설을 상실치 않도록 만전의 준비를 갖추어 두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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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였다. 한 사람이 뛰어들어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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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가 코를 코를… "하고 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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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군이 잽싸게 스위치를 넣었다. 코고는 소리가 제법 흥겨웁지 않은가! ㄷ씨가 방송을 하다가 코를 골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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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라!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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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이 발을 동동 구르고, 윤 군은 화살처럼 문을 빠져나갔다. 그동안에 ㄷ 씨는 깜빡 깬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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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가 어디여? 여보게, 아 참,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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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가 뚝 끊어지고, 과장 회의도 수라장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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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경륜된 ㄷ씨의 방송은 이 꼴이 되어버렸고 사전 문제가 똑같은 운명을 밟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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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ㄷ씨는 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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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그래, 그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이야깃거리가 된단 말야? 실없는 친구들. 내가 오막살이를 판 돈을 하룻밤에 카페에 가서 다 날린 얘길 하면 모두 놀라자빠질 것 아냐? 실책은 무슨 실책! 히틀러보다도 더 큰 실책이란 말야? 쓸데없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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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15호, 1953년 2월 〉
【원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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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ㄷ씨 행장기 [제목]
 
  이무영(李無影) [저자]
 
  # 문예(잡지) [출처]
 
  1953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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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2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