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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씨 행장기(行狀記) ◈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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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2월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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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 행장기(行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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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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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꺾였을망정 그의 기침은 역시 다구지다. 아니, 날로 더 앙끼가 들어왔다. ㄷ씨는 30년래의 버릇으로 대문간을 나서서는 자기 집을 한 번 쓰 윽 쳐다본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여느 때보다도 그 쳐다보는 시간도 길었거니와 얼굴에 나타난 걱정도 전에 없이 심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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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은 일찍이 없던 일이다. 그러나 ㄷ씨가 자기 집 대문간을 쳐다보고 그렇게 언짢아하는 까닭을 알아차리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을 요하지는 않았다 ― ㄷ 씨는 이번에는 약간 풀이 죽은 세번째의 기침을 하고는 이렇게 중얼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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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어쩌면 오늘은 너하구두 이별이 되구 말려나보다… "집을 팔기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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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가 30년이나 살던 이 집을 팔기로 한 데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 정이 있다. 복잡하대도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성질이고 보니 복잡 운운할 것도 못 되겠지만 ㄷ씨로 본다면 실로 마음 어지러운 경우다. 금융조합의 일 번 저당은 돈값이 떨어지는 통에 겨우 벗겨놓았지만 나무전하는 박 노인한테 5만원, 복덕방 채 영감한테 10만원, 반찬가게 정 과댁한테서 3만원 ― 이렇게 무더기 돈이 세 곳인데다가 아내가 바느질품 단골집에서 만원, 5천원, 천원, 또 천원, 이루 주어 칠 수도 없을 만큼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해놓았으니 이자를 따지기만도 숫자하고는 통 인연이 없이 살아온 ㄷ씨에게는 머릿골 치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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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들은 다 쓰러진 오막살이나마 이 집을 팔고는 어디로 가느냐고 날 이면 날마다 걱정이지만 ㄷ씨한테는 그런 것은 나중 걱정이고 우선 몇 푼안 되는 돈으로 그 많은 빚을 어떻게 찢어발기느냐는 것이요, 또 그보다도 앞서는 걱정이 할부부터 1할, 1할 5부, 보름에 1할이며 한 달에는 2할이 되는 폭인 그 많은 빚의 이자를 따질 일이 한 걱정인 것이다. 그것도 원금 얼마에 한 달에 1할이면 1할, 2할이면 2할, 이렇게 똠방 똠방 따진다면 아무리 산술을 배우지 않은 ㄷ씨라기로니 그만 것쯤 못 따질 것도 없겠지마는 매달의 밀린 이자가 원금으로 가산이 되니 새끼가 또 새끼를 치고 손자가 또 손자를 본 빚들이어서 생각만 해도 정신이 헛갈린다. 그렇다고 내어 버려 둘 수만도 없는 것이 이대로 두었다가는 종손의 몇 대 손이 이자를 물지도 모르니 집을 팔자는 아내를 윽박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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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먼저 집을 팔자고 개구를 한 것은 아내가 아니라 ㄷ씨였다. ㄷ 씨로 본다면 이자가 새끼를 치고 그 새끼가 또 손자를 치고 하는 빚 감당보다도 당장 문간에를 나갈 수가 없이 빚쟁이들이 길에서 붙들고 없는 놈의 돈을 강 파듯이 내어놓으라고 진을 빼는 데 성이 가시어서였다. 아내만 해도 남편이 그렇게 졸리는 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요 ㄷ씨가 나가고 없을 때면 나이 50이 지난 처지라 내외도 없어진 세상이 되어 쓰윽 마루 끝에까지 영감쟁이 들이 들어와서 버티고 있기도 할뿐더러, 자잘구레한 빚들은 모두가 그 자신이 끌어다 댄 것이고 보니 자연 안돈이 될밖에 없고 2천원 머리와 1천 5 백원 짜리 두 머리는 동네 여편네들이 재미삼아 취리를 하는 곗돈이 되어 놓으니 처음에는 계의 회계라는 솜틀집 여편네가 몇 번 드나들더니만 받기 힘들겠다는 눈치를 채인 후로는 여편네들이 셋씩 넷씩 몰려와서는 악 머구리 끓듯 단간방에 들어와서 버티는 것이다. 그래서 ㄷ씨 아내도 몇 번이나 집을 팔아치우고 툭툭 터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을 않은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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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팔고 나서 말만큼씩한 두 계집애들을 끌고 어디로 가느냐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힌다. 그래서 남편의 입에서 집을 팔자는 말만 나오면 펄쩍 뛰어 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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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 분수 좀 그만 떨어요. 이 답답한 양반아, 이 엄동설한에 집을 팔구 어디루 나앉는단 말씀예요. 설마 집에 든 놈 끌어내지야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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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떡헌다? 사람이 배겨날 재간이 있는가, 첫째 창피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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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 이름은 어서 잘 얻어들으셨소. 창피란 다 어디 당한 말이에요. 그래, 나이찬 계집애들을 데리구 길바닥에 나앉는 게 창피요, 집에서 빚 졸리는 게 창피요―창피란 글잔 부잣집 옥편엔 있나봅니다만 난 그게 무슨 뜻 인지두 몰라요. 창피한 줄을 알거든 약줄 조곰만 덜 자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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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놈의 술 소리 또 하거든―뭐 우리가 술 때문에 안 된 것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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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술의 덕본 것두 있는 것 같지 않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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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런 게 아니래두 그러거든… "돈에 몰리면 언제나 늘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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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잔 걸핏하면 내가 술루 패가망신이나 한 것처럼 말하지만, 술을 먹었으면 내 돈으로 먹었소? 세상 놈들이 술은 싫대도 먹으라지만 동전 한푼 둘러주진 않으니까 그렇지. 그놈들 심사가 술 천원어치 살 것 5백원어치만 사구 5백원만 뀌이래두 돈이 없다구 안 주면서도 술은 2,3천원어치씩 사거든. 먹은 술을 토해서 팔아오란 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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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가 영감보고 돈 꾸어들이랍디까? 뭐든지 생활해서 벌어오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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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누가 날 써줘야 말이 되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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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해결도 없고 보람도 없는 말다툼이 수효도 모르게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자는 자꾸 새끼를 치고 빚쟁이들은 솥이라도 떼어갈 듯이 달구치는 통에 ㄷ씨 부인도 견디다 못해서 집을 내어놓기로 한 것이다. 볶이다 볶이다 못해서 복덕방에 들러 상의를 했더니만 잘하면 6십만원은 받겠다는 바람에, 그러면 빚을 벗고도 2십만원은 떨어질 성도 싶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으로 어디 사랑채 같은 데 전세라도 얻어 나가는 것이 약은 수지 뭄짓뭄 짓하다가는 그나마도 이자가 다 집어먹고 말면 그때는 정말 옴치고 펼수도 없으리라 싶었던 것이다. 그래 막상 팔기로 하고 나니까 이번에는 또 ㄷ 씨가 좀더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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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두구 보긴, 분수 적은 양반이 또 이러신다냐? 두구 보면 밥이 금알 낳아준답니까요? 건너다봐야 절턴데 두구 보긴 뭘 두구 봐! 인제 영감은 가만히 앉아서 내 하는 것만 보구 계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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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두 됐구 세상두 뒤집히어 여자두 대신을 하는 세상이 됐으니 여편네 말두 좀 세워봅시다그려. 그까짓 되지두 않은 책 믿구 있다간 게두 구럭두 놓치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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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동권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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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픽 웃고 물러나앉고 말았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해방이 되자 이 제 우리 글도 쓰일 때가 왔느니라 싶어 부랴부랴 만든 「한글 독본」과 「 우리 글과 우리말」이 재판이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두 권만 다재 판이 된다면 한 5십만원은 될 성싶었고 그렇게만 된다면 우선 빚을 벗고서도 쌀가마니나 팔 수 있으리라 싶어 3일에 한 번씩 책사에를 들러보는 것이나 종이값이 뛰었느니 인쇄료가 올랐느니 교과서가 밀려서 째이느니, 말 하느니 어려운 이야기뿐이다. 그러나 이유는 딴데 있는 것을 ㄷ씨는 발견 못 했던 것이다. 물론 출판사에도 그런 애로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재판이 안 되는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종이니 인쇄비니보다 과외 독본으로서의 인정이 잘 안 되는 데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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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선생! 혹 ㅍ씨 모르시나요? 그분이 들면 인정이 될 텐데요. 인정 이안 된 건 지금 참 팔기가 어렵습니다. 그것만 된다면 낼이라두 무슨 돈을 끌 어서든지 시작해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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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종이니 인쇄비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ㅍ씨란 그의 제자 이기는 하지만 ㅍ 자신이 만든 「한글 풀이」가 있었고 ㄷ씨의 책을 인정한다면 ㅍ 씨 자신의 책에 큰 영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단념을 하고 있는데 출판사에서 인세를 7부에만 해 준다면 손이 가더라도 재판을 찍어볼 의향이 있는 듯이 말을 비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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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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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요샌 종이값하며 인쇄비에 또 세금이 있구 그렇게 해두 통 수지가 맞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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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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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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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주인도 양심에 가책이 되는지 외면을 하며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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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시오." 하고 ㄷ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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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생각을 하면야 7부 아니라 단 5부에라도 몇 천부 찍었으면 싶 소만 나 때문에 다른 저자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니까 난 응할 수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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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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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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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출판사를 나와서 칵 가래를 뱉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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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가 1부까지 떨어질 때까지 출판업을 해먹어라! 괘씸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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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출판사에 속은 ㄷ씨는 또 한번 헛물을 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른 출판사에서 지형을 적당한 값에 인계만 해준다면 한 2천 부쯤 찍겠다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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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도 1할 2부는 주겠다고 하니 한 10만원은 되겠고 둘 다라면 2 십만원 돈 이었다. 그러나 이 꿈도 헛꿈이었다. 먼저 출판사에서 기회 보아 자기 가하겠다고 강경히 거절을 할뿐더러 그 시기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판을 하겠다는 출판사에 새로 재판을 하도록 교섭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뉴월 소불알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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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디 팔기루 해봅시다. 집은 볼 게 없지만 터가 40평이나 되니 한 7십만원 받았으면 좋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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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0년이나 살던 집을 팔기로 ㄷ씨 부처는 결정을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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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팔려고 드니까 통 작자가 나서지를 않는다. 뻔질나게 드나들 기는 하나 보고 가서는 그만이다. 나중에 복덩방에 가서 들어보면 집이 다 쓰러져가느니 방이 좁으니 칸살만 컸지 벽이 나자빠졌느니 트집뿐이었다. 사실 그것은 또 다 옳은 이야기였다. 칸살이 큰 것이야 흠이 될 게 없지만 서까래도 중깃을 들었는지 벽은 제멋대로 안고 자빠졌고, 산비탈이라 습하지도 않으련만 아궁이에서는 첫여름부터 물이 났고, 문새가 맞나, 방이 밝은가, 팔고 싶은 ㄷ씨 자신도 집자랑을 할 재료는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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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사자는 사람이 나선 것이다. 처음 사내가 우선 보고 이튿날 부인이 와서 보고 가더니 며칠 뜨음해서 또 흥정이 뻐개지나 했더니만 어제는 내외가 다시 와서 보고서 값만 맞으면 내일이라도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값을 맞추자는 것은 이쪽에서는 매칸 7십만원을 달라 했고 저쪽에서는 6 십 5만원 에 하라는 것이다. 집주름은 5만원을 반씩 갈라붙이어서 2만 5천원 만깎도록 해볼 테니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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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삐뚤어두 말은 바루 하랬다구 따지고 보면 이게 집값에나 갑니까? 집을 얼른 팔아야 나두 돈을 받겠기에 바가질 씌우는 거지요. 그러구 이 사람은 터가 양광스러우니 올봄에 다 헐어치우구 새뜻하니 짓자구 하는 노릇 입니다. 터 보구 사는 게지 집에 들자구 사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 작잔 꼭 작잡니다. 더 버티다간 아주 놓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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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름 말도 제 욕심만 차리는 말로만 들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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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5천원쯤은 깎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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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의 배짱은 벌써 정해져 있는 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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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이 좋건 나쁘건 아궁이에서 건수가 나건 말건 스물여섯 해 동안 우리의 ㄷ씨가 몸을 담아 있던 연화봉의 함석집은 세계 정신의 상징인 유엔 감시하에 역사적인 남한만의 5 ․ 10선거가 거행되던 5월 중순에 날아갔다. 시시각각으로 늘어가는 빚도 빚이었지만 한번 팔기로 마음을 작정하고 난 후부터는 지금까지는 몰랐던 집의 흠이 자꾸 눈에 뜨이었고 몸담아 있을 때는 그렇게 눈에 뜨이지 않던 사소한 주택으로서의 결점도 자꾸 돋보이기만 해서 온 집안이 집을 팔지 못해서 성화를 대었지만 막상 떡 팔리고 나니 장차 집을 내어놓고 어디로 갈 것이냐는, 일찍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집 없는 설움이 괴물처럼 엄습해오는 것이었다. 돈 갖구 집 못 구할까 하던 막연하던 위안도 돈을 막상 손에 쥐고 보니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일평생 생각 해본 일조차 없던 6십7만 5천원이란 천문학적 숫자에서 받던 흐뭇한 감회도 3분지 2 이상이 그 자리에서 없어질 것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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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원 원금에 열한 달이면 1할만이라도 3만 3천이니 6만 3천원하고, 정과 댁의 원금이… "
 
50
딸들을 앞에 앉혀놓고 ㄷ씨가 이렇게 계산을 하려니까 아내가 시름없이 쪼그리고 앉았다가 핀잔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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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그래, 그 사람네가 1할 이자만 쳐 받겠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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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할만 따져보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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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뭣하러 그래요. 언제 주면 안 주나? 따질 건 따져주구 사글셀 구 해보든지 전셀 구해보든지 짐작이 나설 거 아녜요? 문구멍으로 보느니 열어 젖히구 보지, 두구 보면 내것 된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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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인저 그만해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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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 두긴, 얘들아, 비켜라, 내 부를게 놔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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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싸움 끝에 모조리 주어 치고 나니 4십만원이면 될 줄 안 것이 4 십 8만원 각수다. 끽 남아야 2십만원이 채 못 되는 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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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것이나마 남기가 다행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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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이렇게 말하며 속으로는 술 한잔에 5십원 치면 그만해도 4백 잔 값이나 대포로 계산한대도 2백 잔은 되느니라 속셈을 따져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ㄷ씨가 이 집 판 돈으로 술을 먹어치우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숫자와 관련이 없이 살아온 ㄷ씨인지라 술값으로 돈을 계산하는 것이 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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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십만원이면 몇 잔 값이나 되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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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ㄷ씨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이렇게 말을 하는 통에 ㄷ 씨는 얼굴이 붉어지며 머리를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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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자가 들었으니까 아주 큰돈 같은가보구려. 집 한 칸에 문 밖으로 나가서 10만원이에요! 시내선 한 칸에 얼만 줄 아시우? 이불 한 채엔 얼만 줄 알아요? 목으루 해도 10만원이에요―언제 비단 이불 해줘보게!"
 
62
언제나 ㄷ씨 부인의 신세 한탄은 이렇게 딸 치울 걱정에서 시작이 된다. 그러면 그 끝에는 반드시 아들 태운이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상례임을 아는 ㄷ씨는 딸의 시집 타령이 나오자 꽁무니를 뺄 양으로 궁둥이를 들 먹거 린다.
 
63
"공산당이든 무슨 당이든 그것이라두 눈앞에 있었으면!" 하고 시초를 하고서,
 
64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더구면서도 다 늙게 자식을 따라가질 않구서 이 백사지 땅에서 뭘 얻어먹자구 남았는지 모르지. 소두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뭘 믿구서 이 도깨비 다락 같은 데서 살아 보겠다구 ―"
 
65
넋두리가 시작이다. 태운이를 찾아 이북으로 가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는 소리다.
 
66
해방 직후 태운이는 정치운동을 한다고 통 집을 비우고 다니며 아버지 ㄷ 씨와 물맞침도 여러 번 했다. 태운은 제가 좌익에 가담하는 데 그치지만 않고 아버지 ㄷ씨까지 끌어넣으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 형세가 이롭지 못 하자 이북으로 뛰고 말았던 것이다. ㄷ씨 부인은 좌익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다. 그러면서도 남편한테 그래도 늙어 자식을 따라가야지 이 백사지 땅에서 자식도 없이 두 늙은이가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이북 가기를 권했었다.
 
67
그럴 때마다 ㄷ씨는 그 깐깐한 말소리로,
 
68
"아아니, 어딜 가자구? 응, 어디를?"
 
69
"이북으로 걜 따라가잔 말예요!"
 
70
"그래, 이북이란 데가 어디 붙은 나란가? 인도 남쪽이던가 불란서 동쪽이던 가, 어느 쪽이오?"
 
71
이런 식으로 깐족깐족 되뇌일 뿐 나중에는 자식이 들어와도 통 대하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나 기어코 부자는 물맞침을 하고야 말았다. ㄷ씨는 아들을 경찰에 넘기겠다고까지 서둘렀고 아들은 또 아들대로 ㄷ씨를 반동 학자라고까지 나댄 끝에 정말 이북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원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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