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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씨 행장기(行狀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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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2월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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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 행장기(行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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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가 남산 밑 해방촌 판잣집을 팔고 염천교로 옮아앉은 것은 5 ․ 10 선거가 있던 그해 초가을 가로수의 낙엽이 산산하니 날리던 어느 날 오후였다. 5 ․ 10 선거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고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비록 국토의 절반을 공산당한테서 찾지는 못했을망정 세계 자유 국가들의 승인까지 받아 서울 거리는 한결 명랑해졌었지만 우리 ㄷ씨의 행색은 여전히 초라했다. 회색 두루마기에 회색 바지저고리도 여전했고 모자도 언제나 보던 그 모자다. 그래도 전에는 들창코나마 가죽 구두더니만 요새는 소 학생들이 신는 검정 운동화로 전락한 것을 보면 ㄷ씨의 주머니 속은 전만도 또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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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ㄷ 선생, 그 쏟아져 나오는 구호 물자두 한 가지 차지가 못 되셨소? ㄷ씨, 요새 구두다 양복이다 굉장히 들어왔다나봅디다. 우리반은 뭐 생활이 부유하다나? 그래, 겨우 아이들 양복 한 벌 차지가 와서 제비를 뽑는다는 걸 귀찮구 해서 그냥뒀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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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대서소 시대부터 알던 권 노인이 길에서 붙들고 하는 소리였다. ㄷ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듣고만 있었다. 어떻게 보면 몹시 부러워하는 눈치 같기도 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지금까지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ㄷ씨는 밑도 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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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뭐랬지요? 그만뒀지라우? 임자 고향이 어디 전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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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노인의 고향이 담양인 것을 모르는 ㄷ씨는 아니다. 대서소에서 같이 있을 때 귀가 젖도록 들은 담양 이야기였다. 권 노인이 의아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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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갑자기 고향은 물으시오? 내 고향이 담양인 것을 잊었단 말씀 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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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 임자가 담양 사람이면 담양 사람이었지 내게다 그 미국 놈들이 내어버린 헌옷을 주워입으란 건 뭐냐 말야. 그래, 어떻게 보니 내가 꼭 구호 물자를 얻어입어야 할 사람이란 게지요? 코가 그렇게 생겼단 말요, 입이 그렇게 생겼단 말요? 내 발이 어디가 어떻게 생겼기에 꼭 구호 물자로 나오는 구두 켤레를 얻어신어야만 한다는 게요? 응, 말 좀 해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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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노인은 아차 했다. 겪어보아서도 잘 알면서도 쓸데없이 터뜨린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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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그런 뜻도 아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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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이 아니면 무슨 뜻인구? 그런 말은 무슨 사전을 찾아봐야만 본뜻을 알 수 있지요? 또 임자의 말이 우리 나라 말인 줄만 알았더니만 아마 그게 불란서 말이었던 모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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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그만두십시다. 내 잘못했나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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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건 또 어느 나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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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쭉쭉 내리는 모양이었다. 권 노인은 섣불리 말 한마디 내었다가 학질을 떼고 말았었다. 권 노인은 속으로, ' 되잖은 자식 같으니, 쥐뿔도 없으면서 까치 뱃바닥처럼 흰 체는 하지. 입으룬 저러지만 속심은 안 그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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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죽으면 죽었고 발가벗고서 신문지쪽을 뒤집어 쓰고 안방에 누워 살기로니 미국 사람들이 입다가 내어던지 구호 물자 양복에 침을 삼킬 ㄷ씨는 아니다. 교해서도 아니요 끌끌한 체하는 것도 아니다. 생리적으로 ㄷ씨의 성질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ㄷ씨는 뿌리치고 달아나는 권 노인을 향하여 침을 여남은 번이나 퉤퉤 배앝았다. 목 안이 다 근 지 럽 다. 못 먹을 것을 먹은 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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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ㄷ씨는 마음을 돌이켰다. 잊기로 한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놈도 있고 저런 놈도 있지 했다. 잘난 놈도 있지만 잘난 놈만 이 세상에 있어 서야 되겠느냐 했다. 잘난 놈만 있어서 세상이 한꺼번에 다 잘 되어 버린다면 세상은 바로잡을 사람이 필요치 않게 되지 않는가? 이렇게 ㄷ씨는 슬쩍 돌리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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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ㄷ씨는 권 노인으로 해서 정말 불쾌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권 노인도 우리 ㄷ씨를 온종일 불쾌하게만은 만들지 않았었다. 불쾌하게 한 대신 무한한 즐거움―권 노인은 촐촐해하는 우리 ㄷ씨한테 술대접을 해주었던것이다. 마침 그날 ㄷ씨의 주머니 속에는 3만원 돈이 들어 있었다. ' 한림’이라는 고서를 파는 서점의 「백사집」(白沙集) 한 질을 소개해서 팔아 준 일이 있었다. 물론 구문을 먹기 위해서 한 노릇은 아니었다. ㄷ씨의 친구요 ㄷ씨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M이라는 한학자가 「백사집」을 구하지 못해서 애를 쓰던 길이요, 우연히 말끝에 '한림’서점의 주인이 「 백 사 집 」을 사고는 싶으나 구매자가 나설 것 같지 않아서 선뜻 사오지를 못 한다는 말이 났던 것이다. 원매자만 있으면 10만원 하나는 문제없이 떨어진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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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뒤는 다 짜놓고서 한 일이었는데 서점 주인은 돈을 다 받고도 시 치밀 뚝 땄던 것이다. 알고 보니 사기는 싸게 샀고 값도 비싸게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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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집」에서만 15만원이 하루 사이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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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내로 한번 들르십시오. 돈은 받았지만 급전이 몰려서 우선 틀어막느라고 다 썼습니다. 그런 걸 바라신 건 아니시지만 애기들 과자나 사다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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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처음에는 그런 돈을 받을 생각은 털끝만큼도 갖지 않았었다. 그날 돈을 내준대도 받지 않았을 ㄷ씨였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땜쟁이 영감쟁이한테 서 이잣조로 해서 늙은 아내가 욕을 당한 것을 보고는 그래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백사집」이야기를 하고 2,3일만 참으라 한 것이었다. 물론 그 2,3일이 열흘이나 지나서지만 일금 3만원을 받았던 것이다. 그 3만원 이 지금 ㄷ씨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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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기까지는 않았지만, 점심 요기조차 못한 ㄷ씨에게는 역시 촐촐한 회로 였다. 그는 몇 번이나 술집 앞에서 망설이었었다. 그러나 역시 써서는 안될 돈이었다. ㄷ씨는 목 안이 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밥티가 동 실 동 실 뜨는 뽀오얀 동동주를 한사발 쭉 들이킬 때의 흥겨움을 억제한다는 것은 ㄷ 씨에게 있어서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러나 일시 목을 축이고 밤늦도록 늙은 땜쟁이한테 들볶일 생각을 하면 역시 술이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꿀꺽 참고 가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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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고연 놈의 늙은 녀석. 날보구서 구호 물자 구두를 얻어신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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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물자 양복때기를 얻어걸치라구? 추한 놈, 비루한 놈. 그래, 내가 제 놈눈엔 끽 그밖에 안 보이더란 말이지? 구호 물자로 온 헌 양복때기나 구 두 짝에 눈이 어두운 괘씸한 놈! 제 나라 옷 입고 거지노릇하기도 원통한데 미국 거지가 되란 말이지? 그래, 그놈이 날 어떻게 보구서 하는 말일까? 나를! 에잇, 방정맞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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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이렇게 분개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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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불쾌한데 술이나 한잔 하리라. 그 권가놈만 안 만났더면 그대로 가잖는가? 허지만 그런 소릴 듣고서야 어디 비위가 뒤놀아서―에이, 불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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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발을 멈추는데 마침 술집 앞이었다. 술집 앞이 라서 더 분이 터졌었던지도 모르기는 한 일이다. ㄷ씨는 간판을 쳐다보았다. 만생옥이었다. 안주는 없어도 술만은 진국을 주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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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괘씸한 놈. 그놈 권가놈이 기어코 남의 비위를 뒤집어놓구야 말았거든! 에이, 퉤퉤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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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만생옥 베폭을 들치고 쑤욱 들어갔었고, 또 그곳에서 권 노인과 같이 어울리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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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가 염천교로 자리를 옮긴 것도 이 3만원 조건 때문이었다. 그 돈조로 해서 늙은 땜쟁이와 ㄷ씨 아내와의 사이에 대판 싸움이 벌어졌고 그 싸움의 여독이 기어코 ㄷ씨한테 미치고 말았던 것이다. 땜장이와 싸움을 한 지 열흘째나 서로 말도 않고 있을 무렵의 어느 날 새벽에 난데없는 젊은 사람들이 와서 ㄷ씨를 앞뒤로 결박을 지워 어디론지 끌고 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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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젊은 사람들이 형사요 그가 가는 곳이 경찰서라는 것을 안 것도 유치장에 들어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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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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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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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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