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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씨 행장기(行狀記) ◈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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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2월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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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 행장기(行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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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무능하고 보수적―아니 사상적으로 너무도 무색(無色)한 아버지를 버리고 이북으로 탈출했던 아들 태운이가 집에서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설사 알았다 한대도 지금의 ㄷ씨한테는 몰랐던 것이나 진배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ㄷ씨는 취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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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가 자기 집(아니 이미 남의 집이 되어 있는―)에 다다른 것은 새벽 한시가 훨씬 지나서다. 평시 같으면 십분 내외밖에 걸리지 않을 연화봉 고개를 올라오는 데만 거의 한 시간이 걸렸던 모양이다. 비는 그때까지도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우비도 없으니 노다지로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데다가 오줌까지 절절 싸대었으니 당목 겹바지저고리가 천 근인 양 휘감 길밖에는 없다. 대님이나 풀어졌으면 하련만, 발목에 자국이 나도록 야무지게 매는것이 ㄷ씨의 버릇이다. 버릇이라기보다는 그의 성미다. 그러니 겉에서 배어든 빗물에 팅팅 불은 옷에서 흘러내리는 물에다 오줌까지 싸대었으니 바짓가랑이에 물이 고일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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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빌어먹을―다리는 왜 이리 무겁담! 무슨 놈의 가을비가 장마철처럼 쏟아지는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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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여전히 투덜거리며 연화봉 마루턱까지 올라섰다. 이 군소리 끝에는 반드시 남의 가랑이 속에다 오줌을 싼다고 욕설을 했으련만 그런 말이 없는것을 보면 벌써 오줌사건은 잊어버리고 만 모양이다. 정말 ㄷ씨는 그런 사람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취중이라도 많은 가솔이 우로를 피할 수 있는 오직 한 채의 집을 팔아서 마지막으로 술을 먹어치웠다는 의식이 전혀 없을 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러나 ㄷ씨는 조금도 그것을 뉘우치지도 않았고 생각해보려고도 않았다. 내일부터는 전 가솔이 거리에 나앉지 않으면 안 된다. 가솔뿐이 아니다. ㄷ씨 자신 내일부터는 가마짝을 덮고 남의 집 추녀 끝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ㄷ씨는 오직 유쾌하기만 했다. 어제까지도 자기가 들어가서 살던 집이 오늘부터는 내 뱃속에 들어갔거니 생각하니 통쾌하기만 하다. 지금처럼 막걸리만 먹는다면 아직도 달포는 댈 수 있을 술밑천을 불과 두어 시간에 툭툭 털린 생각을 하면 분하기도 하련만 ㄷ씨는 그런 생각은 해볼 염량도 않는다. 아니, 술이 깨어 정신을 차렸더라도 ㄷ씨는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ㄷ씨는 잃었던 청춘을 다시 찾은 것처럼 기쁜 모양이었다. 집 한 채가 통째 날랐건, 바지 저고리가 물투성이가 되었건, 오줌을 쌌건 말건 그는 오직 기쁘기만 한 모양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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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뭣이 어쩌구 어째? 뭐 집도 없다구? 없으니 어쩌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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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이라고 해서 깐족대는 습관이 없어졌을 리 만무다. ㄷ씨는 걸음을 멈추고 바다의 고기잡이 불처럼 몇 개의 전등만이 껌벅이는 장안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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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 내가 집이 없으면 제놈들이 사줄 테니 걱정인가 말야. 집이 없어두 내가 없구 술을 먹었어두 내가 먹었구, 늙은 놈이 젊은 계집애들 돈푼 좀 주기로니, 아니 어떤 놈이 시비야, 응. 시비할 조건이 안 되잖아? 집을 팔아 술을 먹으면 가솔은 어쩌느냐구? 웬 걱정야, 웬 걱정이냐 말야. 내처가 제놈들 처란 말인가. 남이야 집이 있건 없건 도시 참견할 조건이 안 닿는단 말이거든! 그렇지 않은가,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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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눈병 앓는 사람의 상판처럼 지저분한 서울 장안을 내려다보고는 이런 소리를 투덜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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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아직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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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 ㄷ씨는 집만은 제대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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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이르니 일각문이 꽉 닫혀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30년간 정든 집이었다. 문전에 서니 문득 정신이 든다. 내일부터는 어느 집 문전에 가서 서야 옳으냐는 생각에 ㄷ씨는 잠시 멍청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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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헛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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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어이가 없어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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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공호도 한 개 마련해놓지 않구서 홀딱 마셔버렸단 말이지? 흐흐 흐흐 ―, 격에두 안 맞게시리 카페란 델 다 가구? 아이들은 떡 한 갤 못 얻어먹 어 껄떡하는데 백원짜릴 막 뿌렸단 말야, 흐흐 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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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 대문 고리를 붙들고 ㄷ씨는 허들겁스럽게 웃고 있다. 눈물은 울 때 만나는 것이 아닌가보다. 분명히 통쾌해하고 흥겨워하는 ㄷ씨의 양 볼에는 눈물이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ㄷ씨는 문을 두드리며 딸의 이름을 불렀다. 양철지붕인지라 빗소리가 집어삼킨다. 세번째서야 대문이 열렸다. 물론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말소리는 분명히 아들의 음성이었다. 이북에가 있어야 할 아들 태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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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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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니다. 태운입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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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운이? 어, 네가 돌아왔구나! 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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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팔을 내민다는 것이 몸까지 기울여버렸다. 술기운으로만 버티다가 술이 깨니 되레 기운이 폭 죽는 모양이다. 술로만 일생을 살아온 ㄷ씨다. 취해 있는 동안만이 오히려 몸과 마음의 중심이 잡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ㄷ씨는 아들의 팔이 닿기도 전에 일각문을 짚고서 나동그라졌다. 문짝이 안으로 열리면서 문지방에 허리를 걸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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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중에 우비도 없으 시구서 ―"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일으키며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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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도 없이 사는 인생한테 우비쯤 있단들 뭐 그리 신통할까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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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뱉듯 ㄷ씨의 하는 말이다. ㄷ씨 자신은 휙 해 내던진 말이었지만, 아버지의 일생을 보아온 아들한테는 가슴이 아픈 말이었다. 해방 전의 ㄷ 씨의 생을 치욕의 생이었다고 한다면 해방 후의 그의 생은 굴욕 그것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ㄷ씨는 적치 동안 깨끗이 살겠노라 갖은 애를 써왔었다. 아니, 이렇게 말한다면 오히려 ㄷ씨를 모욕하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ㄷ 씨가 그런 것을 의식하고 살아왔던 것도 기실은 아니다. 생리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왔을 뿐이었다. 일인한테 머리를 숙이지 않고 치욕의 녹을 먹지 않고 산다는 것, 그것은 그의 생리였다. 이 개인의 생리가 민족의 생리와 우연히 합치되었을 따름이었다. 8․15는 민족을 해방시켜주었을 뿐 ㄷ씨를 굴욕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했었다. 아들은 이 고명한 어학자가 해방 후 생활을 지탱할 길이 없어 군밤장사를 할 계획에 몰두했던 일이 있었 음을 잘 알고 있다. 군밤 장사가 불여의하자, 국어 독본이나 만들겠다고 갖은 애를 쓰고 다니는 것도 보았었다. 그러나 둘 다 여의치 않았다. 군밤 장사는 수지를 맞추자면 3,4십리 밖에 가서 밤을 사와야만 하기도 했거니와 그때의 ㄷ씨에게는 힘에 겨운 자본이었다. 교과서는 구식 어학자란 이유인 모양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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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팔팔 뛰는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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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출판사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유는 딴데 있었다. 교과서는 군정 문교부의 허가를 맡아야 한다. 이 허가는 책의 가치가 결정 짓는것이 아니라 '교제’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또 아버지 ㄷ 씨가 군정청에 드나든 것도 알고 있었다. 국장, 과장은 모두가 ㄷ씨의 제자 들이었다. 나이 새파란 젊은 아이들이 회전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고 한 담을 하면서도 한 시간이나 ㄷ씨를 밖에 세워두었다. 만나야 대우는 신 통치 않았다. 일정시대에는 '언문’을 알고 있다는 것조차 치욕으로 여기던 패들이 일조일석에 어학자가 되어 ㄷ씨를 설교하는 것이었다. ㄷ씨의 교과서 원고는 아무데서도 사주지 않았다. 일체의 교과서는 문교부 관리의 지시 밑에서 집필자도 발행자도 결정이 되고 있었다. 해방 전의 치욕은 이민족(異民族)한테 받은 치욕이었고 지금의 굴욕은 같은 민족에게서 받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주는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받는 사람에게는 ' 굴욕’ 이 예외가 '될 수’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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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없는 생―울 없는 국민―울 없는 민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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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의 아들은 밤이 늦도록 이 한 말을 외우고 외우며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잠이 든 것은 비지장수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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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들이 돌아왔다는 것을 ㄷ씨가 깨달은 것은 이튿날 아침이라 할 수 있다. ㄷ씨는 잠이 깨더니만 문턱에 앉아 있는 아들을 보고 새삼스럽게 놀라 보였던 것이다. 취한 동안이란 그 사람의 생애에서 제외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ㄷ씨는 간밤 늦도록 묻고 묻고 한 이야기를 또다시 되풀이 하고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또한 이상했다. 당자는 몰라서나 그렇다지만 대답하는 사람도 그랬고 옆에서 듣는 사람 귀에도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었다. 사실 부자는 전날 밤 주고받은 이야기를 그날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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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자의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ㄷ씨의 노처다. 개인 날의 나막신짝처럼 남편한테 천대를 받아가며 살아오고 있는 어머니한테 는 아들의 출현은 태양과 같은 희망이었다. ㄷ씨가 구박을 주어 입밖에 말은 못 내었지만, 아들이 돌아오기를 비는 마음은 정말 간절했었다. 아들이 있을 때도 별도리는 없었지만 아들만 돌아온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었다. 도저한 학식이 있는 아들도 아니었다. 투철히 인물이 잘난 아들도 못 되었다. 차 치고 포 치고 필요만 있으면 포가 포를 뛰어넘기도 하고 먹기도 하는 그런 주변성있는 아들도 못 되었다. 몸이 실해서 노동 판에라도 벗 어부치고 나가서 땅땅 벌어다 어미 아비를 먹여살릴 체질도 기실은 못 되는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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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들이었건만, 늙은 어머니한테는 빛이요 힘이었다. 무능한 남편과 돌보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바느질품으로만 연명을 해가는 늙은 어머니한테 ' 아들’ 이란 어감만으로도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아들’이란 말그 자체가 행복인 양 싶었다. 아들 소리를 해보는 순간만도 늙은 어머니는 기뻤고 행복스러웠다. 아들 말을 입에 낼 때는 벌써 눈물부터 흐른다. 그 아들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 아들이 어머니 옆에서 살겠노라 돌아온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았을까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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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늙은 어머니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태운이는 분명히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아들이 아니었다. 자기 아들이 아닌 또 하나의 태운이었다.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바라던 아들은 아니었다. 어머니를 위해줄 아들도 아니었다. 어머니를 찾아서 돌아온 아들도 아니었다.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어도 이 아들은, 제게 필요하다면 언제나 어머니를 배반할 아들임을 무식한 어머니였지만 눈치챌 수 있는 그런 내 용의 이야기 뿐이었다. 아들 이야기에 어머니는 놀랐고 아버지는 노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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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버지가 무슨 미련으로 이 추잡한 땅에 남아 계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북에서는 모든 학자가 최대의 우대를 받고 있습니다. 국가는 학자를 우대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학자는 정부의 우대를 받을 권리를 보유 하고있습니다. 북에서는 무한대한 권력이 학자한테 부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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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듣고만 있던 ㄷ씨는, 아들이 이 말에 정색을 하고 반문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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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내게는 무슨 권한을 줄 수 있는 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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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요구하시는 서재와 연구 자료를 무제한으로 드릴 수 있을 겝니다. 필요한 생활은 정부가 보장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정부 최고의 의학 기술자의 치료를 받을 것입니다. 동생들은 또 한푼의 학비도 내지 않고 지망 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겝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필요하시다고만 하신다면 이 이외에도 무엇이나 드릴 수 있을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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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이 말에 ㄷ씨는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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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아니 교화소랬지? 거기 들어갈 권리두 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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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소리는 그지없이 은근하였다. 그러나 그 은근한 맛은 맨 끝엣말에서 홱 뒤집히었다. '주겠구나’의 주자부터 시작된 ㄷ씨 특유의 앙칼진 음성은 맨 끝자 '나’에서 노골하게 나타났다. 쇠갈고리로 긁어 잡아채는 듯 싶은 살기띤 음향이 고요한 방안에 쩌르렁 울리었다. ㄷ씨 특유의 금속성인 음성은 긴 여음을 남기었다. 방안―아니 온 집안의 공기를 두고두고 이 여음이 지배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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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태운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린 그 어떤 목적이 있는 눈치였다. 아침에 나가면 통금시간이 일쑤요, 저녁거리가 없는 것을 보고 나간 사람이 4, 5일 씩 얼굴도 안 비친다. 분명히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를 돌보아주러 오지 않았다는 것을 늙은 어머니는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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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복이 있어야 자식 덕도 보는 법이야. 즈 아버지 닮지 않은 자식이 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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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네의 마지막 무기인 체념이다. 이제는 마지막 희망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남은 길이란 남편도 믿지 말고 아들에게 기대도 말고 오직 자기힘으로써 다섯 가족의 목숨을 이어가야만 한다는 것뿐이었다. ㄷ씨의 아내는 자기 몸뚱어리 그 어느 부분이 이 무거운 부담을 감당하는 데 이용이 되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술만 먹는 남편과 공산당에 미친 아들과 중학교도 다니다 만 딸과 체면도 없이 먹어지라고만 하는 상태, 그리고 걸핏하면 다리가 쑤시는 병객인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는 데는, 자기 육신의 그 어느 부분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여인은 자기의 학식을 생각 해보는것이다. 겨우 국문만을 아는 학문이었다. 학식이 없다면 배운 기능을 활용 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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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능이 무엇인가, 또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바느질과 빨래, 밥짓기와 서름질이 그가 배운 기능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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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 똥눌 줄 아는 사람이면 다 가진 재주가 아닌가? 이것으로 어찌이 식구를 먹여살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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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이번에는 자기의 육신이 감당할 수 있는 노동을 궁리해보는 것이다. 날만 궂어도 쑤시는 다리였다. 힘찬 노동에는 엄두도 나지 낳는다. 두 붓집 생각이 퍼뜩 머리에 떠오른다. 두붓집은 지금의 ㄷ씨 가족에게는 군정청보다도 고마운 존재였다. 찢어진 백원짜리 두 장만 가져가도 비지를 한 냄비 주는 고마운 집이어서 ㄷ씨 부인은 매일 한두 번은 꼭 들르는 집이다. 그 집에서 맷돌질할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이웃집 삼돌이 어머니한테 세탁소의 빨래를 갈라 맡는 것이다. 이밖에 ㄷ 씨 부인이 아는 돈벌이란 봉투를 붙이는 일이었다. 부인은―아니 ㄷ 씨까지를 포함한 온 가족이 이 봉투 풀칠로 입에 풀칠을 한 경험이 한동안 있었던 것이다. 해방 전에도 있었지만, 해방 후에도 보름 동안은 이 방법을 연명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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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의 방법은 딸년의 취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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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어느 한 가지만으로서는 도저히 다섯 식구가 연명할 도리가 없다. 결국은 부인이 지능을 짜낸 모든 방법이 활용되었다. 맷돌질이 주무 였지만, 빨래도 했고 삯바느질도 했고 틈이 나면 봉투도 붙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집주인한테 볶이는 판이었다. ㄷ씨한테 대한 불평은 잘 시간을 갈라서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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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이 양반이 사람인가?"
 
49
ㄷ씨 부인은 저녁을 굶고서도 코만 드르렁드르렁 골아대는 남편을 바라다보면서 생각이었다. 온 식구가 저녁을 굶고 시름이 없어하는데 한다는 소리가 막걸리 타령뿐이었다. 카페 계집들한테 집 판 돈을 툭툭 털어주고 난 뒤로는 어쩌자고 두문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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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나갔다가는 물 한 모금 못 얻어먹고는 돌아와서 냉수만 들이키는 생각을 하면 나갈까 겁도 나지만 죽치고 들어앉아서 궁상만 떠는 꼴을 볼라 치면 참자면서도 눈에 쌍심지가 돋는 것이다. 핀잔을 주어도 응대도 없다. 구박을 해도 거들떠보는 법조차 없다. 어쩔 작정이냐고 오금을 박아야 들은 체도 않는다. 그러다가 매가 좀 눅지면 끽 한다는 소리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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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한잔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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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은커녕 반잔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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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그러지 마오. 임자두 남의 아내로 태어났으면 남편이 죽은 담에야 막걸리 한잔쯤은 떠놓지 않겠소? 나 죽은 담엔 싫소. 내 죽은 뒤엔 바라지두 않을 테니 죽은 셈치구 한잔만 사오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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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어요!"
 
55
"글쎄, 그러지 말래두 그러거든. 아무리 비지국이라두 내 모가치가 하루에 백원이야 안 치이겠소? 끼니 대신 먹겠다는데 머리를 싸매고 안 주겠다는 건 무슨 억하심정이야. 백원만 내라구. 어서 ―"
 
56
말을 내기가 무섭다. 사뭇 어린애다. 짝 달라붙어서는 진을 쪽쪽 나리 운다. 나이 50에 돈 백원만 달라고 콧물을 훌쩍이며 졸라대는 남편을 놓고 보는 아내의 마음은 아프다 못하여 쓰리었다.
 
57
그러나 백원이면 비지가 두 덩이다. 두 덩이면 네 식구가 한 때 끼니는 에 우지 않는가. 아내는 또 타산을 하는 것이다.
 
58
그러나 매양 지는 것은 아내였다. 아내란 지기만 하게 마련된 직업 인지도 모른다.
【원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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