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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씨 행장기(行狀記) ◈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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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2월
이무영
1
ㄷ씨 행장기(行狀記)
 
2
8
 
 
3
"선생님, 사실대로 이야기하십시오. 우리는 선생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도 잘 압니다. 저는 안 배웠지만 제 형두 선생님한테 한글을 배운 제자 입니다. 선생님을 어떻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선생님 아드님만 찾아주시면 노인께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아드님이 지금 어디 있나요?"
 
4
취조관은 극진한 대우를 ㄷ씨에게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극진히 해도 모르는 것은 역시 모를 일이었다.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서 이북으로 달아나 버린 자식의 주소가 알아질 것도 아니었다. ㄷ씨는 아들과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5
"노형, 내 말을 믿겠소?"
 
6
ㄷ씨는 우선 이렇게 말을 건넸다.
 
7
"믿게 해주시면 믿겠습니다."
 
8
"아니오, 믿지 않으려는 사람을 어떻게 믿게 할 수가 있소. 믿고자 해야 믿어지는 것이오. 어떻소? 믿겠다면 이야기하겠고 그렇지 않다면 나도 이야기 않겠소."
 
9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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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야기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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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긴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사실 그대로였다. 월북을 하자고 왔던 이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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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떳떳치는 못하오. 남의 자식과 달라 조국에 화살을 겨누는 그런 자식을 둔 것은 정녕 아비의 죄이겠지요. 그러나 품에서 벗어난 자식이라 이제는 손이 안 닿는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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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지금도 연락이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바로 요 달 포전에도 하룻밤 자고 간 일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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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일 말이오?" 하고 ㄷ씨는 그제서야 이것이 모두 땜장이의 무고인 것을 깨달았었다. ㄷ 씨집에서는 싸고 싸고 해왔었지만 땜장이네 할머니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말은 그렇지만 사이가 좋았었으니 늙은 할멈들끼리 주고받고 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땜장이네가 ㄷ씨한테 월북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왔다 갔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아들이 왔다 간 것이 아니라 아들의 동지라는 젊은 아이가 하룻밤 찾아와서 아들의 전갈이라 면서 기어코 찾아뵙고 오래서 들렀다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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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를 따라서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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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권해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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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 생선이 민물에서도 살던가 말이야. 제놈이나 좋은 데서 잘살라고 그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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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박 뭣이라는 청년이 한 시간 가량 들러 간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땜장이 영감이 이렇게 무고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밝혀지기까지에는 만 2주일이나 걸렸었다.
 
19
ㄷ씨는 그날 새벽 석방이 되어 남산 밑 해방촌 판잣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구리개 어귀에서 권 노인을 만났었다. 구호 물자 사건 이후로 처음 만나는 권 노인이었다. 원래 깊은 감정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사람을 그 리우다 나온 터라 ㄷ씨도 마음으로 반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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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슨 볼일이 있기에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하고 ㄷ씨가 말도 마치기 전에 덮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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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시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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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급한 일이나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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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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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됐소이다. 오늘 아침이 내 아우 진갑인데 영감 꼭 뫼시구 오라고 그럽 디다만 어디 댁을 알아야지. 참 발은 기시오, 마침 이렇게 공교롭게 마난 다니."
 
25
집에서 궁금해할 것을 생각하면 곧장 뿌리치고 가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뭐 좋은 이야기라고 하랴도 싶었고 주객이 끄는데 뿌리치며 곧 구호 물자 이야기를 계집처럼 속에 넣고 있느니 오해를 살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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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까? 계씨도 오랫만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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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싫지도 않다.
 
28
"가십시다. 내 아운 요새 괜치않아요, 미군 부대의 쓰레기를 도맡아서 하지 라우요. 쓰레기 속에서 별것이 다 나온답디다. 수지 톡톡히 맞는 모양이에요.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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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역시 가보아야 되겠소. 기실 나 아들 조건으로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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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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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오, 또 만납시다."
 
32
ㄷ씨는 벌써 저만큼 걷고 있었다. 두부 비지쯤으로 때우면 때웠지 미국 사람들 쓰레기속에서 나오는 술이야 체면상 먹을 수 있을까보냐 하는 심사에 서다.
 
33
ㄷ씨가 집에 돌아와보니 이삿짐을 꾸리느라고 법석들이다. 빨갱이 아들을 둔 집이라고 하도 뒷공론이 많기도 하려니와 누구보다도 반장이 우리 반의 명예 손상을 시킨다고 술이 취해 와서는 등쌀을 피는 통에 배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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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디로 간다는 게요?"
 
35
ㄷ씨는 어이가 없었다. 유치장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주먹밥일망정 제 끼니는 찾아주었고 좁고 빈대는 있을 값에 어엿한 방도 있었다. 때가 되니 끼니 걱정이 있을까, 누가 자기보고 쌀, 나무 걱정을 하나, ㄷ씨는 유치장 안에서 차라리 온 집안이 빨갱이가 되어서 다 들어와버렸더라면 집걱정도 없을 것이요, 먹고 입을 걱정을 않아도 좋을 것이라고 문득문득 생각킨 일이 있었지만 지금 또 그런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이다. 빨갱이는 일조일석에 되어 볼 길도 없으니 차라리 온 집이 도적질을 하고서 보따리를 싸들고 감옥으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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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두 걱정은 좀 되시나보구려." 하고 늙은 아내가 되레 어이없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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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되지 않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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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우, 말씀만 들어두 감사하우. 뭐 집 속에 살라고 마련인데 이까짓 집 아니면 집 없겠소. 어서 벗으시고 세수나 하세요. 내 저 아래 좀 내려갔다 올 게니."
 
39
세수를 하고 있으려니 아내가 술 한 병을 사들고 들어온다. 아내는 늙어도 역시 고마운 존재다 싶었다.
 
40
ㄷ씨는 반주를 해서 늦조반을 마치고 짐 싸는 것을 거들어 구루마 뒤를 밀고 나섰다. 아내와 딸년은 남이 본다고 주장질을 한다.
 
41
"보겠으며 보라지. 왜 대순가?"
 
42
ㄷ씨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43
이사할 집이라고 당도해 보니 이것은 사뭇 난가게다. 밤 우동을 파는 구 루마보다 크대야 얼마 커보이지 않는 판자때기를 얽은 집이다. 다다미 서너 쪽이나 깔릴까말까 한 방 한 칸이 있고 조그만 토방에 긴 책상 한 개와 역시 긴 걸상 한 틀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형편이다. 판자에 빈대떡이라고 붙은 품이 음식을 팔던 집인 모양이다.
 
44
"아니―뭐 장사할 예정이오?"
 
45
"그럼 어떻게 해요. 빈대떡이라도 구워 팔아 식구와 연명이나 해야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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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한 계집애는 어쩐다오?"
 
47
"걘 노량으로 보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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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이라면 외육촌 집이었다. ㄷ씨는 발 근접도 않은 채 10년을 살아왔건만 같은 나이 또래가 있어 딸년과는 왕래가 잦기도 했었다. 이사도 그렇고 빈대떡 장사도 그렇고 계집애를 내어보낸다는 것도 ㄷ씨한테는 어느 것 한가지 달가운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흰 체만 할 수도 없었다.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들어주지 않는 아내다.
 
49
이사를 끝마치고 나도 아직 해가 있었다. 아내는 구공탄을 피운다, 맷돌을 씻는다 법석이다.
 
50
"아니, 지금 그걸 갈아가지고 언제 뭘한다구 그러우?"
 
51
"걱정 마시구 가서 돼지 기름하고 고기가 한 근 사다 주어요. 새벽부터 갈아 논 것도 있고. 옳지, 참 치자도 몇 개 사다 주시고."
 
52
ㄷ씨는 신세가 따분해졌느니라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아내한테서 돈을 받 아들고 남문 안으로 들어섰다. 남대문 안 로터리를 건너서 장안으로 들어서려 할 즈음이다. 깍듯이 인사를 하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이라기보다 장년에 든 나이였다.
 
53
"노형이 뉘시지?"
 
54
"저, 선생님께 배운 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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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뭐 술 먹는 법 배웠나?"
 
56
"원, 천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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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옳지, 언문을 배웠겠군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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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누구든 장소가 어떻든 한번 꼬집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ㄷ 씨이기도 하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 나고 말은 해야 맛이라 하지만 ㄷ씨는 말도 씹지 않으면 맛이 안 나는 모양이다.
 
59
"그래, 노형이 내게 무엇을 배웠기로서니 지나치면 그만이겠지. 5 ․ 10 선거도 끝났것다, 뭔가?"
 
60
"네?"
 
61
"5․10선거는 끝나지 않았는가?"
 
62
"아, 끝나기만 합니까, 벌써 ―""아 글쎄, 그렇기에 말야."
 
63
난데없는 5․10선거 이야기가 이 청년한테 통할 리가 만무한 일이다.
 
64
"뭐 내게 할 이야기가 있소? 없으면 가겠고 ―"
 
65
ㄷ씨가 한 발자국 옮기는데 청년은 가로막듯이 ㄷ씨를 붙들어,
 
66
"지금 뵈었대서가 아니라 선생님이 계신 곳을 무척 찾았습니다 ― 학교로 물어보아도 모른다 하고 신문사로 수소문을 해보아도 모르겠다는군요. 그래, 단념을 하고 있던 길입니다."
 
67
"단념이란 게, 뭘?"
 
68
"아 참, 저 방송국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잊으셨겠지만, 저 윤화 수 올 시다. 보성을 나왔습니다."
 
69
"그래?"
 
70
"길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고 어디 여기 찻집 같은 것이 없나, 원 ―"
 
71
"없겠군, 여긴."
 
72
윤 청년은 망설이다가 ㄷ씨를 남일옥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청년 시대부터는 교수 시간에 약이라면서 소주나 배갈를 물 대신 따라 마시던 ㄷ씨다. 듣기 좋게 꾸미어댄 말이 아니라 윤 제자는 정말 스승의 행방을 찾았던 모양이다. 뜻밖에 용건이란 두 가지나 된다. 두 가지가 다 ㄷ씨한테는 바라던 일 이었다. 용건의 하나는 윤 군이 맡아보고 있는 취미 방송이었고 다른 한가지는 중학생을 표준한 어려운 우리말을 풀어서 국어 사전을 만들어 달라는 것 ― 방송 이야기는 공적인 부탁이요, 사전은 자기의 장인이 출판사를 하고있어 그런 계획을 세우고 필자를 구하던 중이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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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난 않겠소. 그러나 둘째 것은 맡아도 좋겠지."
 
74
"공무상 제겐 첫째가 더 중요합니다만 ―"
 
75
"그럼 둘 다 그만두기로 합시다. 술밖에 모르는 사람이 무슨 취미 강좌를 하겠소? 술주정한 이야기나 하라면 모르되 ―"
 
76
"취미가 아닙니다. 학술 강좌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너무나 몰라놓으니까 그것을 강의식이 아니라 통속적으로 알려주자는 착안점입니다. 그래 서전 과원이 모여서 인선을 한 결과 선생님께서 최적임자라는 결정을 보았습니다. 그래, 벌써 달포째나 각 방면으로 연락중에 있었습니다. 여기 연락 편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77
윤 청년은 편지를 내어보인다. 사실이었다. 술기도 있었지만 한 번이 아니고 1주일에 한 번씩 십회를 연다는 것이다. 보수도 생각더니보다는 많았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ㄷ씨도 승낙을 하고 말았다.
 
78
"윤 군 덕분에 해방 후 처음으로 내가 가장 노릇을 해보나보이. 기실은 오늘 빈대떡이나 구워 팔까 하고 치자를 사러 나온 길이야, 치자를 ― 허… "
 
79
그날은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만취가 되게 술을 마시고 돼기 고기 값으로 ㄷ씨는 윤 군한테 술 한 병을 내기도 했다.
 
80
집에 돌아오니 열한시다. 아내는 앉은 채 자고 있었다.
【원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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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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