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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씨 행장기(行狀記) ◈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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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2월
이무영
1
ㄷ씨 행장기(行狀記)
 
2
3
 
 
3
생에 대한 권리까지를 박탈당한 한글학자 ㄷ씨에게는 또 한 재난이 덮치었다.
 
4
일본이 태평양에서 개 몰리듯 하게 되자 조선 동포한테도 군문을 열어 준다는 구실로 전문 대학생을 모조리 잡아가게 된 것이었다. ㄷ씨 부인이 졸업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태운이가 학병이라는 이름으로 빨간 쪽지를 받았던것이다. ㄷ씨 부인은 미쳐서 날뛰었다. 종일 울었다. 울다가 지치면 얼빠진 사람처럼 머엉하니 앉아만 있었다. ㄷ씨는 또 다른 의미로 펄펄 뛰고 있었다. ㄷ씨는 아들을 불러앉히고 다짐을 받았었다.
 
5
"너 죽어도 나가선 안 된다, 죽어도― 만일에 나가면 내 자식이 아니다. 안 나가지?"
 
6
"네."
 
7
"그래야지! 그래야 내 자식이지! 학병이라니? 사내자식으루 태어나서 놈들한테 총은 못 겨눌지언정 놈들을 위해서 총을 메고 쌈터로 나가? 죽음 터로? 이놈들이 지게 되니까 우리 젊은 애들이나 갖다 죽이잔 수작이지! 죽일 놈들! 튀어라! 튀어! 튀어!"
 
8
"튀다니! 튀긴 어디루 튀어요? 바늘이라구 옷깃으루 들어가겠수, 귀뚜라미라 구 벽틈으루 들어가겠수?"
 
9
"튀어! 튀어! 어디루든지 튀어!"
 
10
ㄷ씨는 거품을 부걱대며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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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건 칼을 물구서 엎드려서 죽어라! 사내자식으로 태어났다가 원술 위해서 죽다니!"
 
12
태운이는 튈 요량이었다. ㄷ씨 부인은 벌벌 떨면서도 아들의 탈출 준비를 갖추었다. 입영 이틀을 앞둔 몹시 추운 날 밤이었다. 태운은 노잣돈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위해서는 술 한 병과 어머니를 위해서는 고기 한 근을 어떻게 구해가지고 들어와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권하고 있었다. 왼 종일을 촐촐하니 지낸 ㄷ씨건만 술잔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두 번 세 번 아들이 권하자 ㄷ씨도 잔을 들었다. 마시는데 눈물이 좍좍 흐르고 있었다. 울면서 ㄷ 씨는 또 마시고 또 마시었다.
 
13
"잔 받아라. 아비가 처음 주는 이 술이다. 어쩌면 이 술잔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술이다. 아니, 이 술 한 잔이 네 목숨을 구해줄지도 모르지. 자,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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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운은 느끼며 받아 마시었다. 어머니도 울고 아버지도 울었다. 누이들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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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이 드러난 때 태운이는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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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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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운은 아버지 앞에 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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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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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절을 하는 아들을 끌어안고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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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니, 태운아! 얘야, 태운아!"
 
21
그러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아들이었다.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머니 였다.
 
22
"무슨 짓을 해서든지 목숨만은 살아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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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들은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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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운이가 간 곳은 군문이었다. 피신을 단념하고 웃으며 소집에 응 했던 것이다. ㄷ씨 부처는 태운의 동무가 전해준 편지를 보고서야 처음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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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영을 어긴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이 자식이 못나서는 아니옵니다. 비겁해서도 아니옵니다. 첫째는 저의 실종으로 아버님께 큰 화가 미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옵고, 둘째는 전지에 가면 정말 도망할 기회가 있 음을 알았기 때문이옵나이다. 아버지는 슬퍼하실 줄 아옵니다. 그러나 후에는 아버지께서 반드시 저를 칭찬해주실 줄 믿삽고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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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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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둬라. 저두 생각이 있겠지. ㄷ의 자식이란 생각이야 없을라구. 자, 인저 생각을 다신 말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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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운은 달포 만에 산해관으로 떠났다. 엽서가 석 장,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그리고 바로 뒤미처서 모 방면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서신이 딱 끊기었었다. 헌병대에서 여러 번 수사를 온 것으로써 탈출에 성공한 줄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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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아니, 그 어려움이 날로 심해가고만 있었다. 머슴 애들을 잡아가더니만 이번에는 계집애들을 잡아간다. 정신대란 명목 이었다. 굶주림과 불안과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 겨울이 갔고 봄이 왔고 또 여름이 왔다가 가려고 할 무렵이었다. 1945년 8월 15일과 함께 해방의 종소리는 삼천리 방방곡곡에 우렁차게 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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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31
ㄷ씨는 눈물을 쏟았다.
 
32
"긴 36년이었다. 오늘까지 살기를 잘했다. 인제는 내일 죽어도 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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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의 새로운 생의 설계는 시작되었다. 태운이도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 다섯이 같이 탈출하다가 둘은 불행히 죽고 셋만이 중공군으로 갔다가 만주를 거치어 나왔다는 것이다. 꼭 두 달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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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는 십 년 동안 돌보지도 않았던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그립던 한글을 대하니 첫날은 자꾸만 울어졌다. 두 달 만에 책이 하나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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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독본」이란 것이었다. 일생 처음으로 큰돈이 ㄷ씨의 손에 쥐어졌었다. 그 돈으로 고기를 사고 술을 받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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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ㄷ씨 부인, 오랜동안 고생만 시키었소. 인저야 밥 굶기겠소. 자, 고기 좀 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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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 부인은 눈물을 좌르르 쏟으면서 또 웃고 있었다. 웃으며 먹으며 울고있었다. ㄷ씨도 눈물이 글썽해졌었다. 술 때문만도 아니었다. 영희는 볼을 깨물었다고 법석이었다. 피까지 나온 모양이건만 역시 웃고 있었다. 그러나 ㄷ 씨 가족의 오늘의 웃음이란 통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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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줄로만 알고 보면 언젠가 울고 있었다. 우는 줄 알았는데 울음이 아니다. 꽃송이처럼 웃고 있다. 입은 웃고 눈은 울고 그런 주책없는 얼굴 들이었다.
 
39
그러나 ㄷ씨 가정의 이 기쁨은 그다지 긴 것이 못 되었다. 몇 가지의 불행이 함께 덮치고 말았던 것이다. 첫째의 불행은 사리원으로 출가한 맏딸네네 식구가 그야말로 발간 몸으로 겨울에 들이닥치었던 것이요, 두번째 생긴 불행은 태운이가 어느 사이에 좌익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론상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는 언제나 무기가 떠나지 않았고, 제 방에는 언제나 두셋씩 모 여서 밤을 새워가며 숙덕대었다. 가끔은 등사를 하는 눈치였다. 무슨 위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40
"태운아, 거기 앉거라. 너 이번 굉장한 벼슬을 했다며? 거 벼슬 이름이 뭐라는 거냐?"
 
41
태운은 잠자코만 있었다.
 
42
"말 좀 해봐. 그 벼슬 이름이 뭐라지?"
 
43
"……"
 
44
"거 왜 말을 못하나? 자식이 벼슬을 했는데 아비가 자식의 벼슬 이름두 몰라서야 되겠느냐? 거 뭐라지? 허, 그 자식이란―그래, 아비 친구가 자식의 벼슬 이름을 묻는데 모른다구야 말할 수 있느냐, 그렇잖아? 거 뭐라지? 아비두 좀 알자꾸나."
 
45
"……"
 
46
한 시간 동안 문초가 계속되었었다. 그런 뒤에 마지막 선고가 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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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이 우익 집에 있어서야 되겠느냐. 자, 네 물건을 챙길 시간두 필요할 게니 한 시간 여유는 주마. 지금이 여덟시 반, 아홉시 반 정각까지 내 집 문밖에 나서지 않는다면 난 널 죽일지도 몰라 ―"
 
48
세번째의 불행은 인제는 최소한도의 생명 연장은 되리라고 믿었던 꿈이 정말 한낱 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었다. ㄷ씨는 책 두 권에서 4,5만원 만져 보았을 뿐 다시는 도리가 없어진 것이 웬만한 기관에는 영어 하는 사람으로 채워졌었고 영어 못하는 어학자의 저서는 두 겹 봉투가 다 해지도록 들고 다녀야 거들떠보는 출판사도 없었다. 일생을 어학에 바쳐온 ㄷ씨를 위 해서는 중학 선생 자리가 준비되어 있을 뿐이었다.
 
49
반년 동안 ㄷ씨는 자가품이 나게 쫓아다니다가 벌떡 나가자빠지고 말았다.
 
50
ㄷ씨는 결심을 하고 다시 백묵을 잡았다. 그러나 반년 동안에 물가는 등차급 수로 뛰어올랐다. 1전 하던 성냥이 10전이 되고 1원이 되고 2원이 되었다. 4년 동안에 천배로부터 5만 배까지로 뛰어오른 물가에 ㄷ씨의 하품 하는 입은 미처 다물어질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장차 쓰일 때가 한 번은 있으리라 싶어 30년간 그 즐기는 술을 줄여가며 한 권 한 권 사모았던 책들은 정말 쓰일 날을 당하고서 헐값으로 빠져나갔다. 오늘은 기둥, 내일은 서까래, 모레는 구들장, 이렇게 오막살이집조차 벌써 ㄷ씨의 소유가 아닌 셈이었다.
【원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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