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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씨 행장기(行狀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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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2월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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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 행장기(行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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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내 그렇게 깐족거리는 양반―아주 진땀을 쭉 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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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선생은 그날을 회상하고서 늘 이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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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ㄷ씨가 일평생 강습소 선생 노릇만 한 것은 아니다. 두 고등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일이 있다. 이 3년간이 ㄷ씨의 일생을 통해서 가장 황금시대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니, 두 학교에서 받는 월급이 50원은 되었고 동간에 있는 ㄷ야간중학교에서 10원, 그럭저럭 60원 돈이나 되었던지라 부인의 바늘질 품삯 하나에다 일곱 식구의 목을 매고 살던 시절보다는 이웃집 말마따나 용이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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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3년간의 정식 교원생활이란 것도 ㅎ고보의 교장인 ㄱ씨가 우리 한글에 대해서 지조가 깊을뿐더러 ㅂ씨가 그때 한창 한글의 쌍시옷을 쓸 것이 아니라 ㅅ으로 쌍시옷을 쓰는 것이 옳다, 글이란 말의 기호(記號)이니 얼만 찾을 것이 아니라 발음 나는 대로를 그대로 기록하면 그만이라는 궤변을 주장 하면서 '구락부’란 간판을 걸고서 문하생도 모집하고 경제계, 재계 그리고 일본 정치 기관인 총독부의 조선 사람 고관들까지 꼬여가지고 시체 ' 한글 운동’을 일으키어서 총독부 학무과로 하여금 손뼉을 치게 하였었다. 그래서 총독부에서는 막대한 기밀비가 나왔고 ㅂ씨는 그 돈으로 조선어학회의 한글 바로잡기 운동을 조장시키기 위한 기관지까지 내었었다. 기밀 비의 대부분이 ㅂ씨의 술값과 기생 외입비에 충당된 것을 안 것은 그후 이야기 였지만 하여튼 막대한 돈이 뿌려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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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ㅂ씨의 한글 혼란책에 팔을 걷고 일어난 것이 ㅎ고보와 ㅈ고보의 두 교장 이었다. ㄷ씨가 인가 있는 이 두 고보에 강사로 취임한 것도 기실 그 3년 전부터였고, 정말 ㅂ씨의 한글 혼란 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져서 조선어학회의 ㄷ씨와 물맞침을 하게 되었을 때는 학무과에서 '묵인’을 취소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ㅈ,ㅎ 두 고보의 교장이 ㄷ씨의 학설을 지지했기 때문에 ㄷ 씨의 황금시대는 종막을 고한 폭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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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우리 총독 각하가 고마운 어른이셔, 내게 또 자유를 주시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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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무과의 지시로 ㄷ씨를 파면하게 되던 날 교장은 자기 집에다 조그만 술잔치를 베풀어 송별의 뜻을 전했었다. 그 석상에서 ㄷ씨는 이렇게 파안 대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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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은 ㄷ씨의 허세가 아니었다. 고보의 3년간은 경제적으로는 ㄷ 씨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지마는 정신적으로는 또 큰 괴로움을 주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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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ㄷ씨는 다른 선생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이 책임은 대부분을 ㄷ 씨 자신이 져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체수도 그렇거니와 얼굴도 올망졸망 하게 생긴 ㄷ씨는 어떤 편이냐 하면 딴기 적다고 하고 싶을 만큼 안찼다. 같은 말도 팩 쏘아붙였고 조금만 비위에 틀릴라치면 그 사암한 눈을 이등변삼각형으로 모를 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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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뭐라구 그러셨죠?" 하고 따지려 들기 시작하면 누구든지 진땀을 빼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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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말씀해보시죠. 난 잘 듣질 못했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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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년 동안에 ㄷ씨는 학교 안의 그 어떤 선생과도 안 싸운 사람이 별로 없지만 이놈 저놈 소리까지 나게 한 것은 ㄷ씨의 한결같이 꾀죄죄한 두루마기 때문이다. ㄷ씨는 일평생 양복을 입은 일이 없다. 중처럼 회색 두루마기에 회색 바지저고리에다 신발도 친구 집에서 헌 것을 얻어 신으니 자연 코가 벌름 들리고 뒤축이 짜부라진 것일 뿐더러 언제 보나 다 떨어진 것일밖에 없었다. 옷이 그렇거든 좀 깔끔하니 몸단속을 했으면 좋으련만 천 성은 고양이처럼 깔끔한 ㄷ씨이면서도 그놈의 술이 늘 해어진 걸레처럼 ㄷ 씨의 깔끔한 성질을 후줄근하게 만드는 것이다. ㄷ씨는 시학이 온다는 날 이외에는 학교에서도 절대로 술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 정신도 맨송맨송하거니와 말쑥하니 양복을 차린 다른 선생들의 눈에 들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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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저 ㄷ 선생한테 양복 한 벌 사주는 사람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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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않지만 이렇게 바라기는 ㅈ,ㅎ 두 학교의 모든 선생들의 공통된 감정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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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계집이 상 찡그린다는 격으로 이 ㄷ씨는 또 다른 선생들이 업신 여기는 데는 질색이었다. 총독부에 이력서를 제출해서 인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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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본말 할 줄 압니다. 일본글두 쓸 줄 알구요. 어디 그뿐입니까. 일본 가서 일본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시거든 이 졸업 증명서를 보아주시지요―이렇게 썼으렷다?―또 사상이 온건하고 품행이 방정 할 뿐더러 일평생 단 한 번도 감옥엘 간 일이 없사옵고 금치산을 당한 일도 없사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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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취중이라고는 하지마는 이런 비웃음에 좋다 할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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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한복을 입었기로니 그게 당신들께 그리 큰 불명예가 될 게 뭐란 말이오, 응? 우리 이야기나 좀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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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트집만 나오면 선생들은 모두 들구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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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ㄷ씨의 후줄근한 회색 두루마기에도 다른 선생들의 막대한 창피를 느끼는 터였고 보니 ㄷ씨한테도 고보의 분위기가 유리할 리는 만무였다. ㄷ 씨는 시궁에서 발을 뺀 것 같다고 했고 다른 선생들은 또 앓던 이 뺀 것 같다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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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ㄷ씨의 두루마기를 성화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얼마 안 있어 오고야 말았었다. 일본의 식민지 국책상 중학교에서 물론 보통학교에까지 ' 조선어’ 학과를 일체 폐지하고 만 것이다. ㄷ씨는 완전히 이 세상에서는 소용없는 존재가 되어버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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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처럼 자식이나 좀 일찍 둘 것이지 웬놈의 계집애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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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 부인이 이렇게 한탄을 하면 ㄷ씨의 눈은 벌써 모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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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있으면 자식 턱만 쳐다보구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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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참, 기가 막혀서―세상 벙어리가 다 말을 해두 당신일랑 잠자코 있어요. 남편을 하두 잘 얻었으니 자식덕을 안 바라지―사리원 아이가 아들 이었더라면 오죽이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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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원 아이란 출가한 첫딸이다. 그 딸 밑으로 계집애가 하나 죽고 셋째가 아들 태운이었다. 그러나 태운이는 이제 겨우 중학 3년이고 태운이 밑으로도 딸애가 둘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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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이태만 꾹 참으시면 제가 취직해서 고생 않으시게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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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만 들어도 ㄷ씨 부인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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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과목이 없어진 후로 ㄷ씨가 맨 처음 구한 직업은 사법 대서소 서사 였다. 그러나 자신이 얻은 이 직업도 ㄷ씨는 단 하루를 나갔을 뿐이었다. 일본 가나 쓰기가 죽기보다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얻은 직업이 그때 오직 하나밖에 없던 총독부 기관지 신문의 교정이었다. 세 사람이나 칠 념을 넣어서 석 달 만에 겨우 얻은 직업이었고 또 대우도 나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것도 ㄷ씨는 보름 만에 팽개치고 말았다. 천황이나 황국 신민이니 하는 글자를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세번째 얻은 직업이 복덕방집 주인의 서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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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방 취직은 이렇다 할 수입은 없었다. 마침 집이 더러 팔리기는 했으나 몇 푼 안 되는 법정 수수료를 네댓이 나누고 나면 외상 술값도 채 모자라는 형편 이었다. 맨 마지막으로 얻은 지업이 소위 필생(筆生)이란 것이었다. 필생 모집이란 광고만 보고 갔더니만 약방에서 지방으로 보내는 봉투 겉봉을 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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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이 한창 볶아치는 판이어서 약재가 없어 못 파는 터라 대부분은 봉투도 붙이고 약도 썰고 신역이 고된 데 비해서 보수란 시답잖기 짝이 없었다. 간신히 한 달을 채우고서 다시 복덕방으로 기어들었던 것이다. 일거리가 없어 그렇지 그가 가져본 직업 중에서는 그래도 마음만은 가장 편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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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태운이는 중학을 마치었다. 그러나 이 믿었던 아들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기고 전문에를 뛰어들어가고 말았다. 가정 교사를 해서 고학을 하겠다는 아들을 말릴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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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냐, 부디 공부나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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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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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미안합니다. 허지만 지금은 그까짓 중학쯤 나와가지구는 도리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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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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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도 집을 나갔다. 중학에를 못 가서 영옥이와 영희의 월사금은 없어졌다지만 태운이의 용채, 쌀값에, 나무에, 하루도 먹지 않고는 못견디는 남편 ㄷ 씨의 술값이 ㄷ씨 부인의 두 어깨에 내려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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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술이나 좀 끊었으면… "이렇게 바라고 핀잔을 주고 어떤 때는 윽박지르기도 하는 부인이었지만 초 올 초 올하게 앉아서 손만 싸악싸악 비비고 있는 ㄷ씨를 보면 주전자를 들고 일어서는 부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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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줄 잡수시면 그 대신 진질 안 잡수시니까 마찬가지지. 진지 대신이니까 ―"이렇게 스스로 위안을 하는 부인이기도 했었다.
【원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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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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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2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