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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원(心園)의 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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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2
함세덕
1
心園의 삽화
 
 
2
인물 :
3
우허주 (禹虛住 ; 産金技師)
4
계영 (桂英 ; 처, 여학교 교원)
5
개성언니 (계영의 姉)
6
계익 (桂翼 ; 계영의 동생)
7
일우 (逸兩 ; 허주의 전처 소생)
8
허주의 노모 (老母)
9
서양집 요리부 (料理婦)
10
식모
 
 
11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산수정(山手町)의 문화주택촌.
12
청송(靑松)과 백화(白樺)가 총무(叢茂)한 구릉을 뒤로 하고 미끄러운 경사에 나를 듯이 신축한 우허주의 집 잔디와 꽃밭이 정연히 가꿔진 정원. 청포도 넝쿨이 뻗어올라가는 노대(露臺). 즐비한 화분. 낭하(廊下)의 우변은 서재, 좌변은 온돌방인 안채와 주방. 중앙엔 화려한 실내장식의 응접실. 현관은 무대 밖에 있는 양. 축대 아래로 시가지가 일망(一望)에 보인다.
13
4월.
14
일몰이 가까운 오후의 태양이 온화한 양지를 마루에 던졌다.
15
일우(14세, 창백한 선병질[腺病質]의 우울한 아해), 마루의 등의자에 앉아 가위로 색지를 잘라 무엇인지 완구를 만들고 있다.
16
멀-리 도회의 소음을 뚫고, 곡마단의 손님을 부르는 부스러진 곡조. 안에서 약간 노망한 우허주의 모(母), 나온다.
 
 
17
허주의 노모  어멈 아직 안 들왔냐?
 
18
일 우   응.
 
19
허주의 노모  몇 신데?
 
20
일 우   (무언(無言))
 
21
노 모   (안을 향하야) 식모.
 
 
22
식모 “네-” 대답하며 나온다.
 
 
23
노 모   지금 몇 시야.
 
24
식 모   여섯 시 들어가나 봅니다.
 
25
노 모   그런데 얘 어멈은 뭘 하기에 입때 안 와?
 
26
식 모   개학을 했으니까 일이 바뿌셔서 늦게 파하시는 게죠.
 
27
노 모   바뿌긴 뭐이 바뻐? 또 어느 사내녀석하고 싸질러 댕기나 보지.
 
28
식 모   (어이가 없어) 아이, 마냄도?
 
29
노 모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이) 그게 어떤 건데? 장가가서 아들 낳구 잘 사는, 우리 앨 채갈 땐, 다른 녀석은 안 채겠어? 언젠가두 웬 사내녀석하구 진고개루 가는 걸 본 사람이 있다는데.
 
30
식 모   한학교에 계신 선생님하구 같이 점심 자시러 가셨드랬나 보지요?
 
31
노 모   우리 메누리가 일찍 죽었기에 망정이지, 살았으면 얼마나 애간장을 썩혔을가?
 
32
식 모   아씨께서 돌아가셨으니까 나리께서 결혼을 하셨지 살아계신데두 재혼하셨겠어요?
 
33
노 모   살았어두, 이혼하구 능히 했지, 했구말구. 시집을 왔으면, 살림이나 하구, 자식이나 길러줄 것이지, 경쳐서 선생질은 못 내놓겠다는 거야?
 
34
식 모   선생님이 없으면, 학생들을 누가 가르치게요.
 
35
노 모   홍, 저 아니면, 선생이 동이 났다드라! 그게 다 겉으루 번지르르한 핑계야. 사내들하구 시시덕거리구 싶어서 하는 짓이지. 그 남편이 고깜 따듯 천여 석씩 추수를 하는데 월금받이루 나가지 않으면 어때?
 
36
식 모   (일우를 턱으로 가리키며) 데렛님 듣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37
노 모   그녀석은 속 없는 줄 아남? 제 애미가 저를 사랑해주는지 안 해주는지, 몰를 줄 알어? 흥, 그게 우리 죽은 메누리처럼 한 남편한테 맘을 바쳤어야 말이지. 우리 애하구 혼인하기 전에, 연애하구 돌아댕긴 사내가 몇이라구? 지금두 한 녀석은, 일우아범 죽기만 바란다구 하면서, 설흔이 넘두룩 장가를 안 가구 있단다.
 
38
식 모   저 대학병원 의사 말이에요?
 
39
노 모   그래
 
 
40
이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래. 이어서 복도를 걸어오는 소래.
 
 
41
식 모   아씨 오시나 봅니다.
 
 
42
일우, 돌연 가위와 상자를 치우고 일어나드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43
노 모   (노고초(老枯草)를 씹은 듯한 얼굴로 일우의 거동을 바라 보며 배았는 듯이) 저녀석 이렇게 제 에미를 무서워하구 비슬비슬 피해댕기는 게, 다 (발소래 나는 쪽을 가리키며) 저것 때문이야. 이런 꼴 저런 꼴 안 볼랴면 내가 그저 어서 죽어야 할 텐데 왼수의 목숨이…….
 
 
44
노모, 혼자 중얼거리며 들어간다. 엇갈려 계영, 들어온다. 흔히 여학교 교원에게 볼 수 없는 전아한 기품이 흐른다.
 
 
45
식 모   아씨, 시장하시겠군요.
 
46
계 영   학교서 나오다 먹었어. (늘어진 듯이 등의자에 털벅 주저앉으며) 어머니 안에 계셔?
 
47
식 모   네.
 
48
계 영   일우는?
 
49
식 모   방에 계셔요.
 
50
계 영   약은?
 
51
식 모   지금 막 짤랴든 중입니다.
 
52
계 영   그럼 빨리 갔다 듸려.
 
53
식 모   네.
 
 
54
식모, 주방으로 나간다.
 
 
55
계 영   (방을 향하야) 일우 자냐?
 
56
일 우   (무언)
 
57
계 영   (크게) 일우 자냐?
 
58
일 우   (무언)
 
 
59
계영, 방문을 열어본다. 일우, 깊은 잠에 잠긴 듯, 잠꼬대 비슷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래를 우물거리며, 돌아눕는다. 계영, 문을 닫고 다시 의자에 걸터앉는다. 안면에는 어덴지 모르게 서글푼 표정이 흐른다. 식모, 약을 대려들고 나온다.
 
 
60
계 영   자니까, 일어나거든 듸려.
 
61
식 모   (의아하야) 주무시는 게 뭐에요? 지금까지 여기 계셨드랬는데요.
 
62
계 영   몸이 고달퍼, 잠이 쉬 드신 게지.
 
63
식 모   무슨, 고새에 잠이 드실까요? 밧짝 졸아서, 식으면 또 대릴 수 없을 텐데. (방문을 열고 일우를 흔들며) 데렛님, 데렛님.
 
64
일 우   으-ㅁ…….
 
65
식 모   일어나 약 잡수세요.
 
66
일 우   (딱 잡아떼고 무언)
 
67
식 모   약 잡숫기가 싫으시니까, 자는 척하시면, 누가 속을 줄 알구요?
 
 
68
일우, 그제야 깨인 듯 일어난다. 이때 안에서 흥분된 노모의 소래.
 
 
69
노모의 소래  식모.
 
70
식 모   네.
 
71
노모의 소래  그 약 이리 가지고 와.
 
72
식 모   아이, 마냄도 망령이셔.
 
 
73
노모, 무슨 큰일이나 난 듯 창황히 나온다.
 
 
74
노 모   약 멕일 땐, 으레 나한테 알리라구 그렇게 떡 띠어 멕이듯 알려두 정신을 못 차려?
 
75
식 모   글쎄 마냄, 잡숴보시나 마나지 뭡니까.
 
76
노 모   먹어보지 않구 어떻게 알어?
 
77
식 모   (고연(故然)히 비감하야지며) 글쎄, 설마 하기로니, 아씨께서…….
 
78
노 모   누가, 아나? 세상에 그런 일이 한두 가지 있어야 나두 맘을 놓지.
 
79
계 영   (공손히) 어머니, 그럼 속시원하시게 먼점 잡숴보세요.
 
80
노 모   먹어보라지 않어두 먹어보겠다. (약 그릇을 빼앗어 조금 먹어보고, 일우에게 주며 계영이 들으라는 듯이) 약 먹을 때 정신차려.
 
81
일 우   (무언, 약만 받아마신다.)
 
82
계 영   독(毒)이 들었어요?
 
83
노 모   (태연히) 봐야 알지.
 
84
계 영   너머 하셔요. 너머 하셔요. 제가 아무리 악독한 년이기루, 내 뱃속에서 나오지도 않은 남의 귀한 아들을, 무슨 일로 죽일려고 하겠어요.
 
85
일 우   (노모를 떠다밀며) 할머니, 망령피지 말구 고만, 들어가.
 
86
노 모   이눔아, 공부 잘해. 이를 악물구 공부해야 한다. 아직은 내가 그래두 살았으니까 망정이지, 나 죽구 나봐라. 넌 바가지 들려서 내쫓길 거야.
 
 
87
노모, 계영 힐낏 쳐다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뒤따라 식모도 들어간다.
 
 
88
계 영   아침에 내준, 산술 숙제 다 했냐?
 
89
일 우   (꺼질 듯한 소래로) 했어요.
 
90
계 영   가방 가지고 나와. 어디 보게.
 
 
91
일우,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들고 나온다. 탁자 우에 공책을 펴고, 계영과 마조 의자에 앉는다.
 
 
92
계 영   (숙제를 훑어보드니) 이게 뭐냐? 5학년이나 돼가지구, 가께상 하나를 제대로 못 하니, 어떡한단 말이냐?
 
93
일 우   …….
 
94
계 영   너 경석이 못 보니? 중학굘 두 번이나 떨어지구서, 인젠 할 수 없이 번둥번둥 노는 것 봐. 남들 양복입구 가방미구, 학교 댕기는 게 부럽구 챙피하니까. 요샌 행길에도 잘 못 나가지 않든?
 
95
일 우   …….
 
96
계 영   일백오십 명 뽑는데, 일천사백 명이 지원을 했다니, 한 사람 앞에 아홉 명 꼴이야. 전에는 공립학교 하구 사립학교가, 모두 시험날짜가 달러서 한 군데 떨어져두 또 다른 데 시험을 칠 수가 있었지만, 인제는 전부 시험날짜가 한날이 되서, 한 번 떨어지면, 고만이야.
 
97
일 우   …….
 
98
계 영   그리구 시험보담두 조견표가 더 중하다는데.…… 학교서 성적이 열째 안에 들어두 불을까 말까 하다드라. 그런데 너는 평균 60점이니, 무슨 재간으루 제일고보를 붙니? 네가 이렇게 안 하는 줄은 몰르시고, 할머닌 내가 어미가 돼가지구, 자식 공부를 떠들어봐주지 않기 때문에, 네가 못 한다구만 하시지 않냐? 공불 누가 하라 마라 해서 하냐? 그만큼 컸으면, 제가 생각해서 할 것이지.
 
99
일 우   …….
 
100
계 영   그렇게 뚱 하구 가만히만 있지 말구, 다시 한번 틀린 델 생각해봐.
 
101
일 우   …….
 
102
계 영   나하구 말하기가 그렇게두 싫으냐?
 
103
일 우   …….
 
104
계 영   (돌연 감정이 폭발한 듯 규환(叫喚)을 친다) 아이, 답답해서 어디 살겠냐? 산술이 하기 싫거든, 역사든지 지리든지 네 하구 싶은 걸 해.
 
105
일 우   내일……일기 바치는 날이에요.
 
106
계 영   그럼 빨리 일길 쓰렴.
 
 
107
일우, 일기장을 끄낸다.
 
 
108
계 영   (일기책장을 들치며) 월요일부터 하루두 안 적었구나. 일기라는 건 그날그날 적는 거지, 일주일씩 밀렸다가 바치는 날 한꺼번에 적는 사람이 어데 있냐. 선생님이 보시면, 연필 빛으로 그게 한꺼번에 적은 건지 매일 매일 적은 건지 분간치 못 하실 상싶으냐?
 
 
109
이때 현관문 열리는 소래가 나며, 계영의 친정동생 계익, 정원으로 들어온다. 중학 3학년 정도.
 
 
110
계 익   누나.
 
111
계 영   (반가이 맞으며) 어떻게 왔냐?
 
112
일 우   (절하며) 아저씨 오셨어요?
 
113
계 익   (마루끝에 걸터앉으며) 응. 매부 함경도 가신다드니 가셨수?
 
114
계 영   응.
 
115
계 익   언제 떠나셨는데?
 
116
계 영   아침 차루, 이번엔 내지 삼정광산서 서양 사람이 지금 가지구 있는 금산을 사는데 매장량 조사 좀 해달라구 했다드라.
 
117
계 익   그럼 이번엔 많이 받으시겠군.
 
118
계 영   매매에두 관계를 하시니까 수수료도 나올 거라구 하시드라. 광산 가격이 50만 원이라든가?
 
119
계 익   일년 열두달 산으로만 돌아댕기시구 싫증두 안 나실까?
 
120
계 영   그게 직업이니까 할 수 없으시겠지. 매분들 여관두 없는 산골에서, 이가 득실득실한 이불 덮구 주무시는 게 뭐 좋시겠니? (안을 향하야) 식모, 차 한 그릇 해 와.
 
121
식모의 소래  네.
 
122
계 익   참, 개성서 큰누나가 왔어.
 
123
계 영   언제?
 
124
계 익   지금 차에. 누나 불러오라구 해서 왔어.
 
125
계 영   혼자 왔든?
 
126
계 익   매부하구 애들 데리구. 인천서 금봉이 누나두 왔구.
 
127
계 영   금봉인 어떻게 알구?
 
128
계 익   개성서 올 때 편지하구 왔나봐. 숙명 영어선생두 왔구. 누나가 들오자 모두들 우루루 몰려왔겠지.
 
129
계 영   그래, 지금 집에들 있냐?
 
130
계 익   아까 미쓰고시루 점심 먹으러 간다구들 나갔어. 누나가 편지하지 않었수?
 
131
계 영   응. 좀 의론할 일이 있어서.
 
132
계 익   어쩐지 차에서 내리는 맡에 작은누나 좀 만나겠다구 하드군, 매부하구 애들은 먼점 집으로 가구, 큰누난 동무들이 붙들구 못 가게 해서, 그냥 얼려 나갔어. 갑시다. 집에.
 
133
계 영   그래, 내 옷 갈아입구 나오마.
 
 
134
계영, 안으로 들어간다. 식모, 차[茶]를 갖다 놓구 인사하고 들어간다.
 
 
135
계영의 소래  나 화장 좀 할 동안에, 일우 일기 좀 봐줘라.
 
136
계 익   (차를 마시며) 일길 어떻게 봐줘?
 
137
계영의 소래  내일 바치는 날인데, 하루도 안 써냈단다. 대강 좀 쓰두룩, 가르쳐줘라.
 
138
계 익   일기란, 그날그날 자기가 한 걸 적는 건데, 누가 가르쳐줘 (일우에게) 너, 지난 월요일날 한 일 잊어버리지 않었냐?
 
139
일 우   …….
 
140
계 익   얜, 당최 무슨 애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안 해?
 
141
일 우   …….
 
142
계 익   집에서 이럴 땐 선생님이 얼마나 답답하실까?
 
143
일 우   …….
 
144
계 익   빨리 적어봐. 월요일날 한 일을, 가만히 하나씩 하나씩 생각해서.
 
145
일 우   (적는다)
 
146
계 익   연필두 깎아 쓸 줄 몰르니? 끝이 그렇게 뭉뚝한 걸 그대루 쓰니까, 가뜩 못 쓰는 글씨가 더 못 써지지. 그리구 이게 뭐냐? 고무로 깨끗이 지든지 하지, 손 끝으로 침 칠해서 지워서, 드러서 쓰겠냐?
 
147
계영의 소래  살살 가르쳐줘라
 
148
계 익   (일우에게) 밤낮 건 웨 써? ‘로쿠지니오기테 가오오 아라히 고항오다베마시타‘(六時に起きて顔を洗ってごはんを食べました)는 매일 하는 일 아니야? 요전 월요일날 밤에, 너 사-카쓰 구경 갔다드구나. 어머니 주무시는데, 몰-래 담을 넘어서 들왔었다구 하니 그런 걸 써.
 
149
일 우   선생님이 야단하시면 어떡허게요?
 
150
계 익   선생님한테 야단 들을 짓을 그럼 웨 했어?
 
151
일 우   …….
 
 
152
현관 초인종 눌르는 소래.
 
 
153
계 익   누나, 누가 오셨나 보우.
 
154
계영의 소래  좀 나가봐라.
 
 
155
우허주, 트렁크를 든 채 복도로 들어온다. 풍채가 화안한 중년 신사.
 
 
156
계 익   매부.
 
157
우허주   오래간만이군. 어떻게 왔어?
 
158
계 영   (방에서 나오며) 함경도 가신다드니 안 가셨수?
 
159
우허주   같이 가기루 했든 사람이 급한 볼일이 생겨서, 밤차로 가기루 했어.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운다)
 
160
계 영   저녁은요?
 
161
우허주   먹었어. (뱉는 듯이) 오늘은 또 어데서 파-티가 있는거야?
 
162
계 영   개성서 언니가 왔다우.
 
163
우허주   서재 책상서랍에 봉투에 든 것 끄내.
 
164
계 영   (서재 쪽으로 들어가 봉투를 들고 나오며) 이거 말이요?
 
165
우허주   그 옆에 광석 든 봉투 있지 않어?
 
166
계 영   (다시 나갔다 들어오며) 이거 말이요?
 
167
우허주   (소래를 버럭 질르며) 그거 말구, 금돌 패온 것 들은 봉투 있지 않어?
 
168
계 영   아이 깜짝이야. 간 떨어지겠수. 웨 괜히 소린 꽥꽥 질르구 이러우?
 
169
우허주   (다시 갖다가 주는 봉투를 받어 가방에 넣으며) 오늘 학교 가봤드랬어?
 
170
계 영   일우네 말이요?
 
171
우허주   선생이 뭐래?
 
172
계 영   수학성적 중이상만 과외(課外)공부를 시키기로 돼 있기 때문에 쟨 시킬 수 없으니 집에서 준비하두룩 하랍디다.
 
173
우허주   그 말만 해?
 
174
계 영   6학년 성적을 봐야 알겠지만, 지금 형편으로 봐선 제일고보엔 학교로서 소견표를 쓸 수가 없을 거라구 하드군요.
 
 
175
우허주, 쓴 표정으로 일우를 쏘아본다. 일우,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일기를 적는다. 그러나 늘 가위에 눌린 듯 깜짝깜짝 놀랜다.
 
 
176
계 익   그게 ‘후토이’(フトイ : 太)짜지 ‘이누’(イヌ : 犬)짜야? 6학년이나 된 애가, 글자 하날 제대루 못 써가지구, 눈은 높아서 고보 시험만 치르겠다지.
 
177
우허주   계익이더러, 일우 입학시켜달라구 안 할 테니, 그대루 내버려두게.
 
178
계 익   매부두,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179
우허주   붙거나 못 붙거나, 계익이가 챙견할 필요 없어.
 
180
계 익   일길 못 바치구 벌을 서두, 가만만 두란 말이에요?
 
181
우허주   벌을 써두 일우가 쓰는 거지, 계익이가 쓰는 건 아니니까. 사람이란 글에 재주 있는 눔두 있고, 또 나같이 금패는 재주 가진 눔두 있고, 또 천성으로, 반팽이두 있는 거야. 못난 놈이 있어야 잘난 놈이 있지. 못하는 놈을 못한다 못한다 하면, 그눔이 주눅이 들려서 더할 수밖에.
 
182
계 익   (허주의 말에 굴욕을 느끼고 벌떡 일어나며) 내버려두라면 내버려두지요, 누나, 나 가겠수.
 
183
계 영   얘, 같이 가자.
 
 
184
계익, 붙드는 누나의 손을 뿌리치고 나간다. 이어서 “꽝” 하고 현관문 닫히는 소래.
 
 
185
계 영   내가 미우면 날 욕을 하지, 오래간만에 놀러 온 애를 그렇게 해서 보낼 게 뭐에요?
 
186
우허주   놀러 왔어? 당신 부르러 왔지.
 
187
계 영   그럼 개성서 우정 언니가 왔는데 만나보지도 못 하란 말이에요? 부르러 왔건 놀러 왔건 모르는 애를 알두룩 가르쳐주는데, 당신이 화낼 건 없지 않아요? 그게 일우를 사랑하는 거에요?
 
188
우허주   구두를 신은 채, 마루끝에 걸터앉어서, 가르쳐주는 게 들어가겠어? 밤낮 못한다, 못한다,……자기네들은 얼마나 잘해서…….
 
189
계 영   들자는 웨 놓우?
 
190
우허주   당신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자기들 사위 삼을 자격이 없다구 첨부터 반대하는 결혼을, 내가 억지루 했기 때문에, 계익이도 나를 깔보고 있거든. ‘네가 신퉁치 않은데 네가 난 자식이 오죽하랴?‘하고 하는 소래야. (혼자 격앙하여) 대관절 당신 집에선 무얼 표준으로 인격을 결정하는 거야?
 
191
계 영   당신은 상처한 몸이었구, 더구나 다 자란 아들까지 있지 않었어요?
 
192
우허주   당신은 연애 안 했어?
 
 
193
이때 밖에서 근방 아해들의 “일우야, 놀자”, “우일우, 아소바라(禹逸雨 )“등등의 소래. 일우, 어느 틈에 양인(兩人)의 틈을 빠져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194
우허주   (소래를 버럭 질르며) 또 어델 가니?
 
195
일 우   (전신을 부르르 떨고 저립(佇立)하며) 아무데두 안 가요.
 
 
196
그러나 다음의 대사가 바뀌는 동안 사알짝 빠져나간다.
 
 
197
우허주   저눔두 천치는 아니야. 남 같은 천진하구 쾌활한 성격은, 어느 한구석에 가지구 있을거야. 당신 하기에 따라, 저눔두 얼마든지 쾌활하구 명랑한 애가 될 수 있을거야.
 
198
계 영   또 날더러 어붓자식 학대했다는 소리에요? 밤낮으로 어머니가 하시고 당신이 하고. 내가 일우 때문에, 속으로 얼마나 애를 쓰구 있다는 걸, 당신은 털끝만치도 몰라요.
 
199
우허주   애를 쓰면 그것이 자연 밖에 나타날 게 아니야.
 
200
계 영   '오늘은 일우를 보면 이렇게 해서 웃겨줘야겠다.', ‘저렇게 해서 정이 좀 불두룩 해야겠다' 하구 여러 가지 궁릴 하지만, 탁 대하구 보면, 이때까지 생각했든 것이 쑥 들어가버리구 말어요.
 
201
우허주   대하면 귀염보담, 미움이 앞서 나오니까 그렇겠지.
 
202
계 영   나를 보면 피하는 걸 난들 어떻게 쫓아서 사랑해요? 오늘두 여기서 놀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방문을 닫구 자는 척하니, 나는 신이 아니 담에야, 무슨 힘으로 그 애를 내 품으로 끌 수 있겠어요.
 
203
우허주   그 애가 순직한 마음으로 당신 품으로 뛰어들지 못할 땐, 당신이 당신 마음에 그만큼 담장을 쌓놓으니까 그렇겠지?
 
204
계 영   약에 독을 쳤을까 하구 약보시길 빼앗어서 어머니가 먼점 잡숴보시구 멕이시는데, 그애가 어떻게 나한테 순직한 마음으루 대하겠어요? 그러니 나는 자연 ‘이렇게 하면 어머니나 당신이 이상하게 곡해를 하지 않을까?', '저렇게 하면 일우가 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구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게 되니 그 앨 점점 어려워하게 되구 친자식같이 사랑하질 못 해요.
 
205
우허주   일우가 저렇게 외지게 되구, 당신을 무서무서 하구 피하게 될 줄 알었으면, 난 애최 당신과의 사랑을 단념했을거야..
 
206
계 영   나도 그래요. 난 진실한 사랑을 가질려고 노력하고, 또 사랑할 수만 있으면 모두가 원만히 나갈 줄만 알었었어요.
 
207
우허주   당하고 보니 모두가 공상였단 말이지?
 
208
계 영   공상이였어요. 해산의 고통을 자기가 맛보지 않고는, 아무래두 친자식 같은 애정은 우러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209
우허주   그럼 둘 중에 누가 하나 이집을 나가는 수밖에.
 
210
계 영   (벌떡 일어스며) 내가 나가겠어요.
 
211
우허주   나가.
 
212
계 영   (가늘게 경련하며) 나가래지 않어두 나가요.
 
 
213
계영의 탁자에 얼굴을 묻고 우는 소래가 잠시 계속된 후.
 
 
214
계 영   (다시 얼굴을 들고 조용히 한마디 한마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한테서 장화홍련전을 들으면서 밤새 얼마나 운지 몰라요. 여학교때 도서실에서 그림 동화집의 헨델과 그래텔을 읽으면서 그 흉악한 계모한테서 학대받는 애들이 불쌍해서 혼자서 울었어요. 그때는 벨벨 공상을 다하는 때라, 내가 커서 그런 어붓어미나 어붓 자식이 생기면 어떡허나 하구, 고연한 가슴을 떤 적이 있었어요.
 
215
우허주   (기인 한숨)
 
216
계 영   당신과 결혼할 때 나는 여간 고민하지 않었에요. 뱃 속에서 커가는 생명을 느껴보지도 못 하구 보통학교 3학년 학생한테서 어머니 소릴 들었을 때 모자간의 애정을 느끼기보다 ‘어떤허나’, ‘어떡허나' 하는 무거운 책임감만 느꼈어요.
 
217
우허주   …….
 
218
계 영   간혹 잘못하는 일이 있어 꾸짖으면서도, 작고 모도들 나를 그 장화홍련전 중의 계모같이 보는 것만 같은, 비겁한 생각이 먼점 들어요. 유리그릇을 안고 깨질까 겁이 나서 운신을 못 하는 어린애 같은 생활을, 나는 이제는 이 이상 더 계속할 수가 없어요.
 
219
우허주   내야 당신보담 그애를 사랑해서 역성을 들겠소?
 
220
계 영   (의아하야 남편을 쳐다보며) 그럼?
 
221
우허주   그눔이 밤낮 밖에 나가야 조무래기들 하구만 놀구, 큰 아해들 틈에 끼면 매나 맞구 들오기가 일수구……. 장난을 해두, 어데가 대가리가 터져서 들온다든가, 남을 패주구 그눔 부모한테 매를 맞었다든가 했으면, 속이라두 후련할 텐데, 한다는 게, 고작 남의 집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 꽃나무를 꺽기나 하는 짓뿐이니……. 당신 손을 붙들구, 떡국 한 그릇을 사달라고 졸르거나 곡마단 구경 갔든 얘기라두 한마디 하는 걸 봤다면, 내가 웨 화를 내겠소? 주먹으로 어깰 때려도, 소리도 안내고 울지도 않는 걸 보면, ‘저눔이 나를 속으로 꽁하게 생각하길래 저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서늘해지오. 그러면 난 고연히 당신이 원망스러워집디다.
 
222
계 영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 나두 마찬가지에요.
 
223
우허주   저걸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자나깨나 걱정이지만, 별 신통한 길은 없구…….
 
224
계 영   그앨 사랑하랴면 사랑할수록, 그앨 침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225
우허주   당신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226
계 영   이 집에서, 그앨 자유롭게 놔뒀으면 어떨까 해요.
 
227
우허주   지방에 형제나 일가가 있으면, 그리로 보내서 공부를 시켰으면 하지만, 모두 서울에만 있지 지방에 하나투 없으니, 그럴 수도 없지 않소?
 
228
계 영   개성언니한테 한번 의론해볼까요?
 
229
우허주   미안해서 어떻게?
 
230
계 영   사실은 벌써부터 나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언젠가 언니한테 그런 편질 했드니, 언제든지 좋다구 했어요.
 
231
우허주   들어만 주신다면야 더할 데 있겠소?
 
232
계 영   그렇지만 어머니가, 야단치시지 않을까요?
 
233
우허주   망령나셔서 그러시는 걸 야단을 치시면 어때?
 
 
234
이때 택시가 문전(門前)에 정지한 소래. 이어서 초인종 소래. “계영아” 부르는 소래. 계영, “언니유?” 하고 뛰어나간다. 조금 후, 개성언니와 계영, 손을 붙들고 반가운 목소래로 떠들며 들어온다. 우허주와 내객(來客)과의 적당한 인사가 교환된 후.
 
 
235
계 영   (언니에게서 선물을 받으며) 웬 걸 이렇게 많이 사왔수?
 
236
개성언니  뭘, 난 너 오기만 기대리구 있었지.
 
237
계 영   (안을 향하야) 지금 막 나갈려든 참이야. 식모!
 
238
식모의 소래  네.
 
239
계 영   차 세 곱부만 해와. 과일하구 좀.
 
240
식모의 소래  네.
 
241
계 영   계약이 갔습디까?
 
242
개성언니  응, 네가 무슨 언짢은 소리했냐?
 
243
계 영   아-니, 웨?
 
244
개성언니  들오든 말에, 어머니더러, 다신 작은 누나네 안 간다구 퉁명을 피기에 말이야.
 
245
계 영   에구, 미친 녀석.
 
246
우허주   제가 홧김에, 듣기 싫은 소릴 한마디 했드니 노였나 보군요.
 
247
개성언니  (웃으며) 일우가 그저 그렇게 공불 안 한다지요?
 
248
계 영   평균 60점이야 글쎄, 이번에두 올라갈 걸 올라갔나?
 
249
우허주   때려서 우격으로 가르칠 수도 없구, 그렇다구 제멋대루 내버려둘 수두 없구, 아주 그애 때문에 두통입니다.
 
 
250
식모, 차(茶)와 과실분(果實盆)을 가지고 나온다. 내객에게 인삿말 하고 다시 들어간다. 계영, 언니가 가지고 온 선물상자를 끌러, 과자를 내놓며 과실을 깎는다.
 
 
251
계 영   언니, 요전 내 편지 봤지?
 
252
개성언니  그래.
 
253
계 영   졸업할 때까지 한 1년 데리구 있어 보겠수?
 
254
개성언니  그애가 나를 따를까?
 
255
계 영   안 따르면 어떠우? 언니를 무서워하구, 피하지만 않으면 좋지. 그애가 우리집에서 느끼는 무거운 억압을 안 느끼기만 해두, 얼마나 그애한테는 다행이겠수? 내가 그앨 붙들면 붙들수록, 그애한테는 고통을 줄 것이야. 그러니 무럭무럭 그애 천성을 성장시켜주지 못할 뿐 아니라, 자꾸 위축시켜만 주게 된 게 아니유?
 
256
개성언니  아제한테도 그래요?
 
257
우허주   나한테는 더 한답니다. 요전엔 이런 일두 있었지요. 내가 열두 시쯤 집에 들어오니까, 별안간, 그눔 방에 불이 툭 꺼져요. 그래 내가 마루 앞에 넘어진 척하구 엎드려서 '애구 애구 하구‘ 죽는 시늉을 해봤지요. 이이, 식모, 어머니 모두 나와서 정말인 줄 알구 집안이 벌컥 뒤집히는데, 그둠은 자는 척하구 내다보지두 않어요.
 
258
개성언니  아무튼 데리구 있어 보지요. 그렇지만, 전학을 하든지 해야지, 고뎌서 통학은 할 수 없을걸요?
 
259
계 영   전학하지.
 
260
개성언니  잘들 안 해준다는데?
 
261
우허주   그건 염려 없습니다.
 
262
개성언니  (웃으며) 난 용서없이, 잘못하면 막 때린다.
 
263
계 영   종기는 눈 꾹 감고 짜야 났지, 슬슬 긁기만 하면 자꾸 덧나기만 한다우. 그런 걸 알면서두, 난 원체 맘이 적구 비겁해서, 그럴 용기가 없어서 그래.
 
264
우허주   형님(개성언니의 남편)에겐, 다시 만나뵙구, 부탁하겠습니다.
 
265
개성언니  하시나 마나에요.
 
266
계 영   식빈 다달이 부칠께? 뫼 와
 
267
개성언니  뫄 됬다, 네 단속곳 해줄 테니, 부치구 싶거든 부쳐라.
 
 
268
이때 호외(戶外)에서 “뿡뿡”하고 택시의 승차를 최촉(催促)하는 경적.
 
 
269
개성언니  (석벽(石壁) 너머로) 잠깐만 더 기대리슈. (계영에게) 쇠뿔은 단김에 빼랬다구, 내일 갈 때 아주 데리구 갈까?
 
270
우허주   학교에 수속도 해야 할 테니까, 며칠 후 제가 데리구 가지요.
 
271
개성언니  좋도록 하세요. (계영에게) 참, 안에 어머니 계시냐?
 
272
계 영   응.
 
273
개성언니  (웃으며) 요새두 약 먹을 때, 독 들었나 주의해서 먹으라구 하시냐?
 
274
계 영   원체 늙으셔서…….
 
275
우허주   그래두, 아직 똥싸시구 뭉개시지 않으니 다행이지요.
 
 
276
개성언니, 계영과 안으로 들어간다. 이때, 이웃 서양인집 부인 쿡크, 신발 한 짝을 들고 황급히 들어온다.
 
 
277
서양인집 쿡크  저, 이 신발이 댁의 아이 것 아니에요.
 
278
우허주   글쎄요? 웨 그러세요?
 
279
서양인집 쿡크  지금 댁의 아이가, 우리집 사철나무 울타릴 부시구 들어와서, 사구라 나무를 꺾어갔답니다.
 
 
280
사람 소리가 들리므로 계영, 안에서 나온다.
 
 
281
서양인집 쿡크  마침 목사님께서 그걸 보시구, “이녀석”소릴 치시니까, 꺾은 걸 버리구 놀라서 도망들 갔어요. 도망가다 신발이 벗겨진 모양입디다. 길에서 놀든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댁의 아이 신발이라구 하기에, 가지고 왔어요.
 
282
계 영   (신발을 받으며) 아이, 미안합니다. 나무가 많이 상했어요?
 
283
서양인집 쿡크  사구라는, 가장굴 꺾었으니까 죽지야 않겠지만, 사철나무 울타릴 모두 부셔놔서, 손해가 많어요. 그리구, 화초밭에 씨뿌려 논 걸, 왼통 짓밟어놔서, 싹들이 자랄지 걱정입니다.
 
284
계 영   사구란, 보시다시피 우리집에도 있는데……. 아마 다른 애들한테 끌려서 들어갔었나 보지요?
 
285
서양인집 쿡크  끌려서가 뭐에요? 댂의 아이가 그 중 크고, 다른 애들은 모두 여덟 살 아홉 살 짜린데요.
 
286
계 영   아이, 미안합니다.
 
287
서양인집 쿡크  목사님이, 여간 역정을 내구 계시지 않습니다. 또 한번 그러면 그때 붙들어서 때려주신다구 하십디다. 다신 못 그러게 하십쇼.
 
288
계 영   미안합니다.
 
 
289
서양인집 쿡크, 다시 나간다.
 
 
290
우허주   이눔이, 또 어데루 도망갔을까?
 
291
계 영   길거리 어느 구석에 가, 또 우두커니 섰겠지요. 제가 잘못을 저질른 날은 집엘 안 들어오구, 문간까지 왔다 가두 안을 기웃거리다. 다시 나가버리니까요.
 
292
우허주   (안을 향하야) 식모.
 
293
식모의 소래  네.
 
294
우허주   나가서 일우 찾어와.
 
 
295
식모, 나온다.
 
 
296
식 모   어데 가 있는 줄 알구 찾어요?
 
297
우허주   (소래를 질르며) 알면 내가 찾게.
 
 
298
식모, 밖으로 나간다.
 
 
299
계 영   (신발을 신고 내려오며 울음 섞인 소리로) 그애가 다 저녁때, 어느 길모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을 것을 생각할 쩍마다, 난 당신과의 결혼을 후회해요.
 
300
우허주   ……. (정원으로 내려와 뒷짐을 집고 말없이 이리저리 거닌다.)
 
 
301
안에서 노모, 집이 떠내려갈 듯 규환을 치며 나온다. 뒤따라 개성언니.
 
 
302
노 모   (서리같이) 일우는, 웨 개성으로 보낸다는 거야.
 
303
계 영   집에 있으면 공불 안 하니까, 개성아주머니한테 좀 가르쳐주시라고 할랴구 해요.
 
304
노 모   그만둬, 그 앙큼스런 소린. 아주 멀찌감치 내쫓아버릴려구? 한 번 가면 집도 못 찾어올 데루, 귀양을 보낼려구? 내가 죽구나선 몰를까, 살아 있는 동안에 그렇게 못해, 못해, 못해.
 
305
개성언니  (노모의 귀에다 대고) 며칠 있다가, 다시 데리구 와요.
 
306
노 모   못해, 못해. 그눔, 내쫓구, 느이년눔들만 다리 뻗구 살랴구? (계영에게) 너 이년, 전실 아들 학대하구 죄 안 받는 년 없느니라. 하느님이 가만두실 줄 아냐? 내쫓기만 해봐라. 내가 장안 바닥을 다 돌아댕기며, 광골 안 치나?
 
 
307
식모, 일우를 붙들고 들어온다. 초연한 표정이, 불면 꺼질 듯하다. 우허주, 쫓아가 그의 어깨를 훔쳐 갈긴다.
 
 
308
우허주   다 저녁때, 남의 집 울타린 웨 뚫구 들어가 이눔아.
 
 
309
일우, 꽁한 얼골로 고개를 숙인 채 소래를 안 내고 운다. 계영, 달려가 말린다.
 
 
310
노 모   (더 한층, 열에 띠인 듯 규환을 친다) 잘한다, 잘한다. 둘이더 때려죽여라, 때려죽여. 볶아먹든지 지져먹든지 맘대루 해라.
 
311
계 영   아이, 어머니. 동네 남부끄럽게, 웨 떠들구 이러세요?
 
312
노 모   이년, 썩 물러가라. 선생질 배워서, 다른 집 자식은 잘 가르친다는 년이, 어째서 제 자식 하나 못 가르치는거야.
 
 
313
계영, 노모의 말에 찔린 듯이 전신을 떤다.
 
 
314
노 모   (일우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며) 내쫓아만 봐라, 내가 이눔의 집에다 불을 질러버릴 테니…….
 
 
315
이때 호외(戶外)에서 재차(再次) 택시의 최촉(催促)하는 뿡뿡 소리.
 
 
316
계 영   언니, 그냥 혼자 가우.
 
317
개성언니  어머니가 무서워서?
 
318
계 영   (고개를 흔들며) 일우는 내가 데리구 있을 테야.
 
319
개성언니  웨? 별안간 맘이 변했니?
 
320
계 영   내가 학굘 그만두구 나와야겠어.
 
321
개성언니  학굘?
 
322
계 영   응, 그애 하나의 일생일 침울하게 해주구 내가 여러 학생들을 가르쳐야, 무슨 의의가 있겠어?
 
323
개성언니  …….
 
324
계 영   나하구 이인, 모오든 원인을, 구할 수 없는 그의 성격 때문이라구 생각해온 게 큰 잘못이야. 이인 광산으로 떠돌아댕기구, 집에 한 달에 열흘이나 있을까 말까구 ……. 나는 나대루, 학교에 나가니까 저녁에나 들오게 되구……. 이 텅 비인 집 속에서, 천성이 침울한 애가, 첨점 외져갈 수밖에……. 내가 의식적으로, 그 애한테 가깝게 할랴구 노력할 것 없이 종일 그의 가장자리를 보살펴주고, 늘 같이 있으면 그애두 자연히 순직한 천성을 다시 돌이킬 수 있게 될거야…….
 
325
우허주   학굘 나왔다가 단조한 가정생활을 후회하지 않겠어?
 
326
계 영   후회하게 돼도 할 수 없지요. 그밖에 저 애를 구할 길이 없는데.
 
327
개성언니  잘 생각해서 좋도록 하렴. 난 그럼 간다. 너, 집에 안갈테냐? 모두들 기대리구 있을 텐데,
 
328
계 영   (우허주에게) 기차시간 넉넉해요?
 
329
우허주   (시계를 보며) 한 시간 반 있어.
 
330
계 영   집에 놀러 안 가시겠어요? 일우 데리구 한 번 같이 가시지요.
 
331
우허주   갈까?
 
 
332
계영, 안으로 들어가 일우를 데리고 나온다.
 
 
333
계 영   (다정히) 자동차 타구 우리 외할먼네 놀러 갈까?
 
334
일 우   (기쁨을 감추며) 네.
 
 
335
계영 · 일우 · 우허주 · 개성언니의 일행 밖으로 나간다.
 
 
336
-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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