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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동어(冷凍魚) ◈
◇ 5 ◇
카탈로그   목차 (총 : 6권)     이전 5권 다음
1940.4~5
채만식
1
冷 凍 魚[냉동어]
 
2
5
 
 
3
새벽 바람에 잔뜩 웅숭크리고 집 문앞으로 들어서다가 마침 빗자루를 들고 나오는 장모와 딱 마주쳤다.
 
4
“건 무슨 개짓이가 얘!……”
 
5
장모는, 반은 성이 나고 반은 웃으면서 단박 몰아세우던 것이다.
 
6
대영도 히죽 웃다 말고……
 
7
“첫국밥이나 잘 먹나요?”
 
8
“여니때두 아니구…… 내가 던활 열 번두 더 했구나 얘!”
 
9
“순산했다면서 내가 없으면 좀 어떤가요?”
 
10
“데거? 하는 소리하구! …… 에미네서껀 에미나이서껀 둘터 업구서 고만에 피양으루 갈래다 말았시요! 하두 밸이 나서……”
 
11
“제발 좀 그럭허시덜랑 않구! ……”
 
12
“데거! 내가 건 업어다간 멜 하누? 헌 에미네하구, 삐약삐약 우는 놈에 핏뎅이하구……”
 
13
대영은 속으로, 저 생억지와 천하 떡심에 만일 남자로만 태어났었다면 시방쯤, 요샛날 그 소위 ‘사회 브로커’ 한몫 툽툽히 잘 해먹었으련 싶으면서, 다시금 장모 노파의 천생 뻔질한 얼굴이 물끄러미 치어다보였다.
 
14
병풍으로 머리맡을 가린 산요의 아랫목에서 안해는 위아래 분간도 못 할 만큼 잔뜩 뭉뚱그린 어린것을 한옆에다가 위해 뉘고는, 산모답게 흐트러지고 지친 자세로 일어나 앉아, 마악 국밥상을 받고 있었다.
 
15
대영은 어쩐지 서먹서먹하여, 들여다보듯 다뿍 고개를 내밀고 들어서고, 그 하고 들어서는 양이 하도 딱하던지, 발자국 소리에 미리서 앞문을 올려다보고 있던 안해는 그만 실소를 해버린다.
 
16
그러고는 남편의 시선을 따라 어린것한테로 눈이 가다가, 또 한번 빙긋 하면서 고개를 떨어뜨린다.
 
17
겸손한 본능이랄까, 계집아이를 난 여자의 마음은 부질없이 남편에게 민망함이 섬뻑 앞을 서지 앉지 못하던 것이다.
 
18
“괜찮우?”
 
19
“산파한테 되려 미안해서……”
 
20
“쯧! 다행히 걱정될 건 없겠지…… 너무 일찍 바람이나 쐬지 말구려!”
 
21
“국허구 진지가 뜨듯해 존데…… 좀 지무세요? 한술 드시구 나가세요?”
 
22
안해는 남편의 까칠하니 창백한 얼굴을 걱정스럽게 양미간을 찡그린다.
 
23
“글쎄……”
 
24
대영은 망설이면서, 품에서 시계를 꺼내 본다. 여덟시가 지났고…….
 
25
간밤에 네시가 다 되어서야 편안찮은 소파에서 두어 시간 눈을 붙였을 뿐, 그래 가뜩이나 골치가 무겁고 몸이 찌뿌드드한 깐으로 해서는 푹신 한잠 잤으면 하겠는데, 일변 사의 일이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다.
 
26
하나도 정성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늘 보다 더 잘 하고 싶은, 보다 좋게 하고 싶은 욕심과 애착으로 부절히 거기에 주의가 끌리고 애가 쓰이고 함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었다.
 
27
“……나가 보아야겠어!……”
 
28
대영은 거처인 건넌방으로 건너가려고 돌아서서 미닫이를 연다.
 
29
“좀 누셨다가 나가서예지, 어떡허시우?”
 
30
“괜찮아!”
 
31
“약주 잡섰수?”
 
32
“응…… 아니……”
 
33
“어머니더러 무어 얼큰한 국물을 좀 만들어 주시라구 한다는 게, 깜박 고만 잊어버려서!”
 
34
대영은 안방을 나와 마루를 건너가면서
 
35
‘선량한 안해!’
 
36
하고 생각했다.
 
37
그러나 그 끝에는
 
38
‘너무 선량한 안해!’
 
39
하고 고개를 흔든다.
 
40
그러다가 마지막,
 
41
‘나한테는 차라리 짐스러운 안해의 선량! …… 순산을 해서 산파에게 미안하듯이, 다행이 도리어 걱정이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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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쓰디쓰게 혼자 웃는다.
 
43
지난밤 스미꼬에게 약속한 소치의 모란 족자를 잊지 않고서 신문지에 뚤뚤 말아 옆에 끼고 나온 것이, 사엘 당도하니 그럭저럭 열시가 훨씬 지났고, 교정은 기가 딱 질리게 쌓여 있었다.
 
44
흥분제를 한꺼번에 두어 봉 털어 넘기고는 부지런히 준을 한참 보고 있는데, 전화를 돌려주어서, 혹시 스미꼰가 하고 받자니까, 전달부터 졸리던 ××사의 소설 재촉이었었다.
 
45
못 썼노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쓸 가망이 없노라고 지지리 졸리며 승강을 하며 하다가, 피차간 끝장은 못 낸 채 전화를 끊는데, 김이 말긋말긋 돌려다보고 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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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생, 인전 소설 영 안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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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졸연찮이 이야기를 하잔다.
 
48
“좀처럼!……”
 
49
“왜 그러세요? 무슨 이유루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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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두 없는 이유……”
 
51
“내, 온! …… 그럭허시믄 어떡허세요!”
 
52
“밥벌일 한다는 게 소설을 쓰는 이유의 구십 프로를 더 차지한 적이 많았는데…… 아 우선 당분간 월급 수입이 있으니 양식 걱정은 없겠다…… 소설 쓸 내력 도저히 없지!”
 
53
“큰일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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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55
“우선 문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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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중 하나 없다구 재 못 지내나?…… 항차, 염불두 염불답게 못하는 중, 없어두 고만인 중……”
 
57
“하나씩 둘씩 자꾸만 그래가믄 나중엔 어떡허나요?”
 
58
“죄다가 그럴 이치두 절대루 없구…… 허긴 중 다아 없어져서 차라리 재안 올리는 게 좋지! …… 펄프가, 문학 아니래두 쓰일 곳이 긴한 이 판국에 말야……”
 
59
“정말 큰일날 소리 하시네!”
 
60
“아니, 문선생 대체 무슨 이유오?”
 
61
듣고만 있던 박이, 답답하다고 저도 거들고 나서던 것이다.
 
62
“이유 없는 이유래두!”
 
63
“하아! 그리 말고오! …… 좀, 그 심경 좀 듣습시다!”
 
64
“단 한마디루, 응?…… 내가 어디루 가버리구 없는데, 누가 문학은 하나?”
 
65
“건 궤변이오! 어데 그기 이론이 성립이 되오?”
 
66
“박군?”
 
67
“예?”
 
68
“짐은 즉 법이니라구 고함친 루이 14세의 말따나, 사실 즉 이론일 수는 없을까?”
 
69
“사실하고 이론하고는 다르지 않소?”
 
70
“거! 지당한 말야!……”
 
71
대영은 왼손으로 턱을 괴고, 펜대를 거꾸로 테이블 복판을 또옥똑 치면서……
 
72
“……그러면 사실에서 이론을 발견할 수는 있겠다?”
 
73
“그기야 물론!”
 
74
하나가 하품을 내면 온 방안이 죄다 하품을 한다는 푼수로, 박은 그리고 김도 어느덧 다 같이 대영의 자세처럼 청승맞게 얼굴을 되들어 턱을 치받치고는 오도카니들 이편을 바라다보고 앉았다.
 
75
사동은 그래서 혼자서 히죽히죽 웃으며 구경을 하고 있고.
 
76
“난 그래요……”
 
77
대영은 차근히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여,
 
78
“……박군 말짝으루, 그게 궤변이라구 해두 좋아요! 내가 어디루 가구없닷 소리가, 말이지…… 또오, 아니라구 변명을 하구 싶지두 않구…… 그런데 말이지, 그 궤변을 갖다가 한 개의 사실루 볼 수는 있을 테었다? 그렇잖아?”
 
79
둘이는 못 알아듣고서 눈만 깜작깜작 생각을 해쌓는다.
 
80
“……그 뜻 몰라?…… 문대영이라구 하는 사람의, 그와 같이 궤변적인 인식태도…… 태도 그것만은 한 실재가 아냐?…… 물론 불건강이야 하지…… 그렇지만, 저 뭣이냐, 절름발이가 병신은 병신이래두 병신인 것 그것이 버젓이 독립한 한 개의 가치, 즉 사실이듯이……”
 
81
둘이는 그제야 알았노라고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고, 대영은 다음을 다시……
 
82
“……그러니깐 말이지…… 그걸 갖다가 한 개의 사실루 일단 승인을 하구서, 응?…… 승인을 한 이상, 거기서 이론을 발견을 해야 않소?…… 구태라 내 설명을 요구하자구 들 것이 아니라, 또오 설명을 들었자 노형네들의 생리엔 맞덜 않는, 역시 궤변적인 결론일 테니깐…… 그러니깐 노형네들 스스로가 노형네들 독자의 결론을, 응?…… 궤변적인 것, 불건강한 것 그것을 놓구서 말야…… 뭣이냐, 노형네들은 오늘날의 사실적인 현실의 담당자인만치 벌써, 이 문대영이의 인식태도를 병적이요 궤변이라구 보질 않소? 그것까지는 좋아! …… 그렇지만 사실을 갖다가 사실대루만 보구, 사실대루만 받아들여선 못쓰는 법이거든! 그건 학문적으루는 상식의 노예요, 생활적으루는 천박한 모리배(謀利輩)의 짓이지 적어두 세대의 소위 담당자루 앉아서 감히 취할 길은 아니어든!……”
 
83
대영은 퍼뜩, 말이 너무 박절하게 된 것 같아, 또 탈선도 되었고 해서 짐짓 중단을 하고는 담배를 천천히 피워 문다.
 
84
그리고는 훨씬 신경을 가라앉혀 가지고 나서 다시……
 
85
“……이야기가 고만 탈선이 돼서…… 그런데 저 뭣이냐, 내지 사람들 중세기의 사무라이네가 셉부꾸하는 거 있잖소? 그 셉부꾸가 그런데, 약간 그저 배나 가르구 자살이나 하는 단지 생리적 수단만인 줄 알아두 실상 그게 큰 정신의 힘이야! 큰…… 그리구 그 정신이 그대루 흘러내려와서, 지금 오늘날 일본 민족의 장한 민족정신을 갖다가 형성한 게어든…… 아, 저 거시키 우리 일본 군인으루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루 잽히는 일이라군 별반 없잖소?…… 이번 지나사변만 보더래두, 가령 적진으루 공폭을 가다가던지 혹은 돌아오는 길이던지, 만약 비행기에 고장 같은 것이 생겨서 불시착륙을 해야 할 경운다치면 고만 자폭을 해버리구 만다! 응?…… 그게 무어냐 하면, 중난한 무기와 더불어 적병한테 구차스럽게, 구차스럽게 말야, 포로가 되질 않겠다는 용기요, 즉 일본 군인의 정신이 아니겠소?…… 그리구 그 배후를 더 캐구 보기루 하면, 비행기에 고장이 생겼다는 건 곧 전투력을 잃어버린 것인데, 군인으루 전쟁에 나왔다가 전투력을 잃어버린 이상 그는 전장에 임한 군인으루서의 생명과 의의를 따라서 잃어버린 게 아니겠소? 그리구는 남은 거라군, 군인 된 생명두 의의두 없는 단지 육체와 포로의 치욕! …… 그러니까 구차스럽게, 생명두 의의두 없는 고깃뎅일 위해 구차스럽게, 포로의 치욕을 받지 않으려구 자폭을 해버리구…… 그러나 그것은 단지 구차한 치욕을 면하는 데만 근치는 게 아니라, 그와 같이 자폭을 함으로써 전장에 임한 군인의 생명과 의의를, 그러니깐 절개랄 수두 있는데…… 그걸 일단 더 강조하는 게어든……”
 
86
대영은 불 꺼져가는 담배를 뻐억뻑 한참이나 맛있게 빨고 있다가, 나직이 음성을 고쳐……
 
87
“……구차할 며린 없어! 구차할 며린 없어! …… 규각(規角)이라구 않나? 각(角)에다가 원(圓)을 씨우자구 드는 건, 저 스스로는 어리석은 짓이요, 세상에 대해선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는 거야…… 그 세댈랑 그 세대의 담당자한테 맽기구서 가만히 그대루 죽은 듯기 앉었으면 구차스럽지 않구, 세상에 사폐 끼치지 않구, 두루 좋잖아?…… 그런 걸 왜? 무슨 망령으루?…… 뭣이냐, 비유가 꼬옥 적절하던 않애두 마침 생각이 난 길에 이야긴데, 아따 저 ×××씨!……”
 
88
대영은 빙그레 웃고, 김·박 둘이도 벌써 알아채고서 같이서 웃는다.
 
89
“그 양반이 한때, 신문에다가 명색 소설이랍시구 천하 괴상망칙한 물건을 몇번 연재한 일이 있잖소?”
 
90
“××?”
 
91
“○○?”
 
92
김과 박은 ×××씨의 소설 이름을 하나씩 제각기 외운다.
 
93
“그러니 글쎄, 그게 무슨 주접이요 망신이냔 말야! …… 허긴 그 뒤에 듣자니깐 생활이 궁해서 한 노릇이라는 가십이 있길래, 한 숟갈의 동정을 애끼지 않었소마는…… 뿐만 아니라, 요새는 가만히 생각을 하자니깐, 그게 도저히 남의 일 같지가 않단 말야! 도저히…… 허허!……”
 
94
대영은 마지막 서글픈 웃음을 한번 웃고 나더니
 
95
“……자아, 인전 쉬! …… 막설하구서, 교정! 교정!”
 
96
하면서 제가 먼저 일을 바싹 차고 앉는다.
 
97
마침 그럴 즈음 문이 펄쩍 열리더니 김종호가 커다란 덕집을 쑥 들이민다.
 
98
옆에다가는 핸드백을 끼고, 대단히 바빴던 모양, 숨을 허얼헐, 얼굴엔 그득하니 웃음을 헤뜨리면서, 문을 뒤로 탕 닫으면서, 모자를 벗으면서, 꾸뻑
 
99
“문선생, 굿모닝!”
 
100
하고 외치면서, 연달아 김과 박더러도 한번씩 꾸뻑, 안녕헙쇼! 꾸뻑 안녕헙쇼!……
 
101
대영은 뜨윽해서 내키잖게
 
102
“안녕하슈?”
 
103
할 뿐 앉은 채 일이 바쁜 시늉을 하는데, 그런 건 다 거리껴 할 며리도 없이
 
104
“문선생, 스미꼬 만나셨어요?”
 
105
하면서 쭈르르 옆으로 쫓아온다.
 
106
“네, 어제…… 찾아왔드군요……”
 
107
“거, 잘했군요!……”
 
108
김종호는 거진 테이블 모서리에 걸터앉을 만큼(키가 커놔서) 남 답답하라고 그들먹하니 옆을 가로막고 서서는 수작이 나오기 시작한다.
 
109
“……거 좀, 자알 지도두 하구 그래 주세요!”
 
110
“글쎄……”
 
111
“아, 우릴 바라구, 또 우릴 위해설랑 멀리 찾아온 사람인데…… 거 고마운 일 아녜요?…… 그러니깐 우리가 다아 참, 진심으루 환영을 하구 대접에 유감이 없어야만…… 그리구 그러자면 문선생 같은 분이 솔선해서 다아
 
112
……”
 
113
솔직이, 이편을 믿거라고 하는 소리거니 하면 대영은 금세 어깨가 옴츠라 들고, 수그린 뒤통수가 간지러워 못하겠었다.
 
114
미상불 드러내 놓고 말하기로 하면 김종호란 이 사람을, 항상 떠들고 인찌끼하고 쌍스럽고 하대서 경멸을 한다지만, 그가(분명) 어떤 야심과 더불어 또는 영화 제작이며 그 선전에 여자를 이용까지 해먹고 하려고 들세나…….
 
115
일껏 믿는 마음에 지도를 해달라고 데리고 와 맡기다시피 한 노릇쯤 된 그 여자를 갖다가, 어느새 뒷줄로 정복을 하며 있는 대영 저 자신일세나…….
 
116
어쩐지 일이 좀 떳떳하지가, 점잖지가 못한 것 같아 은연중 한팔이 결리고 민망한 생각이 듦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제자와 배가 맞아 연애 도망을 빼는, 여학교의 남선생다운 몰염치한 짓인 것도 같아서…….
 
117
“그러니깐 말씀이지……”
 
118
김종호는 연해(속없이) 흠선을 피우면서, 건사를 피우면서……
 
119
“……그러니깐 너무 범연히 구지 마시구, 네?…… 잘 좀 지도두 하시구…… 네? 문선생……”
 
120
“지도를 날 같은 사람이 어떻게……”
 
121
“천만에 겸사의 말씀을! …… 그리구 내가 통 바뻐서 도무지 그럴 새가 없는데, 거 문선생이래두 우선, 응? 박물관 같은 데랑, 또오 명승고적이랑, 틈 나시는 대루 구경을 시켜 주세요.”
 
122
“글쎄…… 그 사람이 관광단이 아니구, 또 내가 튜리스트 뷰로가 아닌 바에야, 머어……”
 
123
“그건 그렇잖죠! 그 사람은 무엇보다두 우선 조선의 고적과 그리구 자연을 만끽할 필요가 있으니깐……”
 
124
“………”
 
125
“건, 그렇구우…… 그런데, 문선생?”
 
126
“네에.”
 
127
“저어……”
 
128
“말씀하세요!”
 
129
“저어, 문선생한테 꼬옥 한 가지 소청이 있어엉!”
 
130
“눈깔사탕 사 달래는 애기 소리 같구료?”
 
131
대영은 그제야 고개를 쳐들고, 방 안에는 재그르르 웃음이 터진다. 그 중에서도 김종호의 너털웃음이, 맨 크고 맨 오래 간 것은 물론이고.
 
132
“다른 게 아니라, 문선생?”
 
133
“말씀하시래두!”
 
134
“춘추(春秋) 이번 신년호에다가, 응?…… 요전날 말씀하던 씨나리오를 좀 실려 주시라구……”
 
135
“씨나리오?”
 
136
“네에…… 내가 이번에 만들 작품인데, 요전에두 말씀했지? 「청춘아 왜 우느냐!」라구…… 스미꼬두 찬조출연을 하구…… 아, 요새 그걸 쓰느라구, 꼬바기 매달려선 오늘야 겨우……”
 
137
“글쎄…… 우리 잡지엔 그 씨나리오라구 하는 문명한 물건이, 좀……”
 
138
“불가해요?”
 
139
“불가하달까, 외람하달까……”
 
140
“그래두 각본은 가끔 실리잖어요?”
 
141
“희곡은, 극문학으루 이미 완성된 문학의 한 장르니깐 그야……”
 
142
“그럼? 씨나리오 문학은 문학이 아닌가요?”
 
143
“당장 가치를 인정할 만한 예외의 특출품이 있다면 임시루 가승인을 해두 좋지만…… 조선의 씨나리오는 원고지에서 아직 좀더 자라야지! …… 그렇잖소? 이 김주사……”
 
144
대영은 걸상 얼러 몸을 뒤로 버얼떡 젖히면서, 시무룩해 섰는 나그네를 빙긋이 올려다보다가……
 
145
“……씨나리오가 문명은 했는지 몰라두, 문명만 가지군 좀…… 양반이 되자면 훨씬 문학적 세련과 훈도를 받아야……”
 
146
“난 그런 까다라운 이론보담두, 아 선전을 좀 해예죠? 선전을……”
 
147
“삐라를 박아 돌리지!”
 
148
“내, 온!……”
 
149
“신문에 광고루 연잴 하던지?”
 
150
“놀리려구만 드셔!……”
 
151
“토키 하나에 일만이천 원이니 일만오천 원이니 딜이면서, 그 비용쯤……”
 
152
“어떡허실래요?”
 
153
“요새, 영화 전문잡지두 하나 생겼나 보던데? 또오, 취미잡지에서두 환영을 할 테구……”
 
154
“권위가 있어예죠!”
 
155
“하는 소리가! …… 괜히, 그 사람네한테 몽둥이 맞일 양으루…… 독자가 그리구 얼마나 더 많다구!”
 
156
“수만 많으믄 무얼 해요? 너줄한 저급독자!”
 
157
“옳아! ……춘추(春秋) 독자는 고급이구?”
 
158
“날더러 왜 물으슈?”
 
159
“그래, 춘추(春秋)독자는 고급이라구 하구…… 그래, 그 고급독자들이 조선의 시방, 씨나리오니 또 영화 그 자체를 문제시라두 하는 줄 아시오?”
 
160
“그러니깐들 잘못이라는 거예요! …… 아, 문선생부터두 왜 영활 갖다가 적극적으루 지질 안해 주세요? 다 같은 예술운동에……”
 
161
“여보 김주사?”
 
162
“주산!”
 
163
“저기, 추월색이니 강상미인이니, 그런 걸 만들어 파는 책장사가, 왜 이것두 예술인데 문단이나 사회에서 통히 지지를 안해 준다구 두덜거린다면, 거 어떻겠소?”
 
164
“아무려면 그래, 조선 영화가 추월색이나 강상미인 그따위밖엔 안된단 말씀이슈?”
 
165
“저렇게 디리 아니라구 우기면서, 저급한 줄을 모르기 때문에, 백년을 가야 그 이상엣 것은 못 만들어요…… 브레인이 그렇게 가난해 놔서, 조선 영화의 향상 향상 하지만 결국은 기술이나 능란해질 뿐이지, 갈 곳이라군 아메리카의 쌍놈영화가 되는 것밖엔 없어요!”
 
166
“관중은 있거나 없거나?…… 판판 밑져 가믄서?…… 그런 장사에 누가 돈을 대요?”
 
167
“나운규의 「오몽녀」가 「강건너 마을」보다두 더 밑졌단 소릴 못 들은 걸?…… 간밤에 「뿔그극장」을 보러 갔더니 조선 사람이 3분지 2는 되나 봅디다? 초만원인데…… 영화 「무정」이 원작이 나뻐서 실패했나? 원작을 잘 살려 가지구 연극은 하니까 만원이데?”
 
168
“고만두슈! 다아……”
 
169
“듣기 싫여두 가만 좀 있어! 이 김주사…… 백성들에게 마음의 양식을 주는 데 영화만침 좋은 것이 다신 더 없어요! 문학이니 연극이니쯤 어림없지! …… 그렇건만서두 시방까지의 조선 영화는 너무 불초했어! …… 기술이 아직 유치했으니까 충분히 그게 노현은 못 된다구 하더래두, 적어두 그리고자 하는 즉 백성에게 마음의 양식을 주고자 하는 의욕…… 지향…… 그것이 전혀 없거든! …… 팔이 짧어서 주던 못할값에 내밀긴 했어야 할 건데, 내밀 생각두 안했다! …… 그러니깐 조선 영화는 백성들한테 배임을 한 셈이구, 배임의 형벌 대신 이렇게 악담을 좀 들어야 해! …… 알겠소?”
 
170
“몰라요! …… 갑니다아, 안녕히 기슈우……”
 
171
풀이 죽어, 돌아서서 흐느적흐느적 나가고 있는 양이 우습기도 하려니와 어쩐지 측은하기도 했다.
 
172
그 끝에 머리를 짚고 생각했다.
 
173
사람이란 사귈 나름 보기 나름이지, 저 김종호만 하더라도 천하 무도한 악당인 바 아니요, 차라리 심약하고 호인다운 한 구석이 없지 못한 것을, 부질없이 경멸을 하고 미워를 하고 함은 오로지 나의 비뚤어진 심성의 탓이 아니든가…….
 
174
이렇듯 곰곰이 자성을 하는, 일종 회오의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175
오후가 되어 하마 세시.
 
176
스미꼬한테서는 꼭이 시간을 정했던 것은 아니지만, 여태 웬일인지 전화도 없고 아직 찾아오지도 않았고, 그래 저으기 궁금했고……
 
177
그러자 공굘시, 신년호거리로 인터뷰를 온 신문사의 학예부 친구에게 근처의 다방으로 붙잡혀 나가 그럭저럭 한 시간 가까이 한담서껀 이야기가 장황했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그 동안 여자는 마침 다녀갔었다. 한 삼십 분 혼자서 앉아 기다리더라고.
 
178
또 오든지 전화를 걸든지 하겠거니 했으나, 훨씬 다섯시가 지나서 퇴사를 하도록 종시 소식이 없었다.
 
179
소치의 모란 족자를 아침에 들어올 때처럼 해서 끼고 바람만바람만 아파트까지 가본 것이, 십상 그러련 했었지만 역시 방문은 잠겼었다.
 
180
명함을 한 장 문 밑 틈사구니로 들이밀고는 족자는 손이 주체스럽겠어서 아파트의 관리인더러 ×호실에 전해 달라고 맡겨 둔 후, 일단 그곳을 나와 본정통으로 향했다.
 
181
헌책점을 주욱 더듬어 마루젱까지 갔다가, 그 길에 명과의 쌉싸름한 커피를 한잔 천천히 마신 다음, 재차 여자의 아파트엘 들러보았다.
 
182
방문은 그러나 여전히 잠겼고.
 
183
거진 여덟시가 되었고.
 
184
다시 다방이라도 가서 기다리다가 한번 더 오든지, 메신저를 보내든지 했으면 하는 생각이 일변 없잖아 있었으나, 그래 잠깐 서서 망설여 보았으나, 당장 몸이 많이 피곤했고, 만나면 자연 또 밤을 밝히다시피 하겠으니 무리가 과할 것 같기도 하고 하여, 마침내 두어 자 글발을 적은 명함만 새로이 아까처럼 밀어 넣고는 좀 섭섭한 대로 발길을 돌려놓았다.
 
185
이튿날은 일찌감치 열시가 조금 지나선데…….
 
186
사동이, 내지인 하라상이란다면서 받아 넘겨주는 전화를, 그래 미리 국어로, 그러나 옆이 조심이 되어
 
187
“스미꼬상이신가요? 나 문이올시다.”
 
188
하고 정중히 대답을 하노라니까, 저편에서는 그만 급해
 
189
“〈마아! 야토 스까마에타와, 분상오……〉(어마! 겨우 통했군요, 분상……)”
 
190
하면서 좋아하는 양이 선연히 보이게 반기던 것이다.
 
191
그러고는 연달아 응석을……
 
192
“〈……데모 히도이와, 분상따라!〉(……그렇지만 너무해, 분상)!”
 
193
“미안했습니다, 어젠 참……”
 
194
“왜, 말씀이 쩨가 좀 별나!”
 
195
“으응, 머어…… 시방 전화 어디서 하시나요?”
 
196
“바루 그 앞 공중전화…… 오오, 참! 인제 알았어! …… 그렇지만 전 이 공중전화니깐 좀 까불어두 괜찮죠?”
 
197
“찡기리구 있느니보담은! …… 그런데, 어떻게? 지금 일러루 오시겠어요?”
 
198
“가두 괜찮아요?”
 
199
“그야! …… 그렇지만 내가 틈이 나자면 아무래두 오후 네시 다섯시 이후래야겠는데, 그러니깐 제아무리 조선 기모찌를 배우는 것두 좋지만, 어디 온종일 남의 입허구 눈치허구만 치어다보구 앉었는 수야 있다구요?”
 
200
“그러게!”
 
201
“그러니까 인제루부터 한 댓 시간 영화 구경이라두 하든지, 바루 그 옆이니 덕수궁에 들러서 그림을 보던지……”
 
202
“그럼, 지가 좋두룩 하구서, 이따가 오후에 갈까요?…… 몇 시쯤?”
 
203
“네시나 다섯시……”
 
204
“그럼 그럭허기루 하구…… 그렇지만, 야단났어요!”
 
205
“왜?”
 
206
“시간 보내기가! …… 어제 하룻낮 하룻밤에 벌써 고만 넌덜머리가 났어요! 지리하구 답답해 곧 죽을 것 같은걸! …… 그러니 그게 어제뿐이며, 또 오늘뿐일세 말이죠!”
 
207
“거, 정말 야단 아닌가!……”
 
208
대영은 일이 자못 딱하기는 했으나, 전들 당장(당장이나마나) 어떻게 하잘 도리는 없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하루 이틀이 아니고……
 
209
그런데 실상은 그것이, 즉 혼자서 시간 지우는 고통을 여자가 능히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는 그 사실이, 앞으로 장차에는 다른 어떤 중대한 사태를 갖다가 빚어낼 태반인 것이었었다.
 
210
하나, 당자 스미꼬도 그러했지만, 대영은 물론 일 그 자체가 딱한 것으로 곤란을 느끼는 데 그쳤을 따름이지, 이상 발전될 사태에까지는 생각이 미칠 겨를은 미처 없었다.
 
211
“아, 어제두 말씀예요!……”
 
212
여자는 비로소 어저께의 소경사를 이야기하느라고……
 
213
“……아, 잠이 다시 깨보니깐 오정이길래, 이내 나가서 점심 조반 얼러요길 좀 하구는……”
 
214
“전화라두 미리서 거시들랑 않구서!”
 
215
“곧 갈 양으루 그랬죠! …… 그래, 나온 길에 아푸터 누운을 한벌 맞출까 하구서 가네보오엘 들렀다가…… 아이 참! 어제 거기서 천을 몇 가지 봐놨으니깐, 이따가 함끠 가시서 분상이 골라 주세예지 해요?”
 
216
“쯧! 아무리나…… 그렇지만 내가 그 방면엔 눈이 도무지 무식해서 ……”
 
217
“좋아요, 그리서두…… 아, 그리군 세시가 다아 됐길래 부랴부랴 전찰 타구 쫓아갔더니 금방 나가섰다는군!……”
 
218
그 다음 이야기를 들으면, 여자는 어제 그 길로 거리엘 나갔다가 마침 김종호를 만나, 다방으로 같이 들어가서는 여섯시까지, 그 이번에 제작한다는 영화의 대본 내용을 이야기 들었더라는 것이다.
 
219
그러고는 가까스로 놓여나와 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나오지를 않고, 일곱시쯤 아파트에 돌아가 보았더니 명함이 있고, 그래 진득이 앉아 기다리지를 못하고서 도로 나와서는 행방도 없이 찾아다니다가, 또 가보았더니 또 명함만 있고 한데 그제는 잘 자란 말이 적혔고, 고만 안타까워서 가뜩이나 밤새껏 한잠도 못 잤다는 것이다.
 
220
족자는 그리고 조금 아까 잘 받았노라고.
 
221
대영은 아뭏든지 미안했으니 그 대신 이따가 오면 눈물이 나도록 맛있는 고지소오를 하마고 이르고서 전화를 끊었다.
 
 
222
약속한 시간대로 네시반 가량 해서 스미꼬는 찾아왔었고, 얼마 동안 기다리게 앉혀 두었다가, 김과 박 두 사람까지 같이 데리고 사를 나섰다.
 
223
무얼 대접하려면서 여자만 따가지고 나오기도 민망했거니와, 또 서로 주축을 하도록 가까이할 기회를 주고도 싶었던 것이다.
 
224
데리고는 나섰으나, 막상 생각하니 발길을 두르고 갈 곳이 막연했다.
 
225
아까 전화로는 눈물이 나도록 맛있는 고지소오라고 했고, 시방은 와서 무어냐고 자꾸만 물어싸서, 입으로 조선 기모찌를 배우게 해주마고 했고, 그러니 조선 음식을 대접해야 할 판인데, 그게 도무지 어중떴다.
 
226
설렁탕이나 비빔밥이나 또 상밥집이며 목로집은 그 조선 기모찌가 너무 독하니 (아직) 이르고.
 
227
요리집은 너무 크고, 또 크기나 할 따름이지 특별 맞춤상은 혹시 몰라도, 진소위 논메강경이는 은진미륵으로 꾸려가고 과부집 종놈은 왕방울로 한몫 본다듯이, 요즈막 조선 요릿집의 음식이란 게 명색 신선로 하나가(그것도 알고 보면 내용보다 외관 ── 그릇이 더) 조선 음식이랍시고 잔명을 지탱할 뿐, 그 밖엔 흡사 만국 요리의 빈약한 성관을 발휘하는 괴물인걸, 하니 본의도 아닌 터에 돈 낭비하면서 애꿎은 미각의 노스탈자를 탐하잘 며리는 없고.
 
228
집에는 동치미가 마악 맛이 들고 배추김치 또한 으수했으나, 여자들을 그토록까지 노둔하게 모욕할 수는 없고.
 
229
그러고는 겨우 화신의 조선정식이라고 하는 것이 남는데, 촌 쟁퉁이처럼 그 야단스런 걸 그들먹하니 차고 앉아 먹어대기란, 약한 비위론 못할 짓이지만, 그저 초학 방예하는 셈 잡고서, 그놈 신세를 지는 게 유일한 방책일 것 같았다.
 
230
네거리를 향해 걸어가면서 곰곰 생각하자니, 무슨 그리 푸달진 재산이라고 구태여 자랑을 한다거나 생색을 낼 염량은 추호도 없는 것이지만, 막부득이한 경우에 타방의 손을 위하여 제 맛을 지닌 음식 한 끼 변변히 대접할 주제도 못 되는가 하면, 한심하기는새로 몰골들이 오히려 고소했다.
 
231
약속이, 눈물이 나도록 맛있는 고지소오이던 고로, 속는 줄을 모르고서 시키는 대로 우선 맨입에다가 그 지독한 깍두기를 냄새조차 참아 가며 한 저깔 덥석 물었고…….
 
232
뻐언한 노릇이지, 단박 눈물이 핑.──
 
233
“〈히도이와! 히도이와〉(너무해! 너무해)!”
 
234
하고 원망을 해싸면서, 그렇다고 체모에 얼른 도로 뱉지도 못하고 그대로 먹잔즉은 입 안이 시베리아 같고, 그래 꼼짝수 없이 한동안 고생을 하여 좌석은 덕분에 한 흥을 얻었고.
 
235
저녁을 마친 후 다시 일행은 훨씬 돌아다니며 혹은 음악 좋은 집의 차도 마시며 심심찮이 놀았고, 마지막 두 친구에게는 바래다준다는 명목으로 혼자서 여자와 더불어 아파트로 돌아왔다.
 
236
방안에는 소치의 모란 족자가 자못 어색히 걸려 있고, 경대는 뻬삐, 과실이 큰 접시에 소담했고, 그리고 포도주가 조금도 굻지 않고서 반 병 고대로 있는 게 어쩐지 여자가 무던한 것 같아 마음 믿음직스러웠다.
 
237
전번처럼은 이야기가 많진 못했으나 그래도 세시 그 무렵에야 제각기 제자리에서 조금씩 잠이라고 자는 시늉을 했고.
 
238
새벽에 헤어지면서는 미리서, 이따가 석양때 만날 시간과 장소가 잘 서로 언약이 되었었다.
 
239
한 것을 대영이 그만 실없어버렸다.
 
240
집으로 나가 일껏 정신이 들라고 말끔히 소쇄를 마치고는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마악 조반을 한술 뜨노라니까, 아니나다를까 차차로 사족이 맥이 풀려오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이 피로가 쏟아지면서 밥이고 무엇이고 필경 수저 하나 들었다 놓았다 하기조차 대견했다.
 
241
게다가 일변 감기 기운인지 몸살이 나려는지 등골이 오싹오싹 아예 좋지가 않고…….
 
242
안해의 걱정과 권이 아니라도, 영 또 배겨날 것 같지가 않아, 한 두어 시간 요량을 하고서 자리에 드러누웠다. 한 것이 온종일 날이 저물어 전기불이 켜질 때까지 내처 그대로 일지를 못했다. 그러면서 자다가 이뭉자뭉하다가 열이 있어서 절로 앓는 소리가 제법 나와지곤 했고…….
 
243
어두워서야 조금 정신이 들기는 했지만, 한번 눕기가망정이지, 몸은 눌어붙은 듯 무거운데 그 모양을 하고서, 가뜩이나 이 밤중에 찬바람을 씌어가며 기동을 할 강단은 도저히 날 수가 없었다.
 
244
전보가 되었거나 속달이 되었거나 무어라고 기별이라도 좀 해는 주어야 하겠는데, 그것 역시 장모 마나님밖엔 손대가 없는 걸, 우편소는 초원하겠다 어둔 밤길에 그 심부름을 시키자니 막상 못할 노릇이었었다.
 
245
이튿날도 몸이 별양 가볍지가 않았으나, 그래 무리인 줄은 알면서도 두루 궁금하여 오정 후 한시쯤 해서 사에로 나와보았다.
 
246
전화가 여러 차례 왔다는 전갈이고, 우선 안심이나 하도록 메신저에게 몇 자 사연을 적어보냈더니 방문이 잠겼더라면서 되 가지고 왔고.
 
247
마침 병수가 부우옇게 달려들더니, 거 보라고, 혼자만 다니면서 술을 먹으니깐 그 벌로다가 주독이 나설랑 그렇게 욕을 보는 법이니라고, 그리고 어제 저녁에 꼭 망년회를 하쟀던 것이 형님이 안 나와서 못 했는데, 오늘은 천하 없어도 해야 한다고, 바싹 서둘러대고…….
 
248
대영이 찔끔하여 제발 오늘만 살려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을, 그러면 하루만 더 용서를 하지야고, 그러고는 다시 꼼짝달싹 못하게 해놔야 한다면서 당장 선 자리에서 저어 멀리 시외에 있는 요정에다가 전화를 걸어, 말끔 다 분별을 시키는 것이었었다. 밤 늦게 놀자면 시외라야 하고, 또 설경이 좋지 않으냐면서…….
 
249
대영은 제 말따나 많이는 못 해도 쑬쑬히 애주를 하는 터라, 언제고 술 그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었다.
 
250
겸하여 병수랄지, 김이나 박이랄지, 나이들은 어려도 술자리에 임하는 법도하며 술 뒤끝이 쌍스럽지가 않아 종종들 한 집안식구끼리서 얼려가지고는 조용한 처소를 골라 가무 좋은 기녀나 택해서 은근히 한밤씩을 놀곤 한다치면,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었다.
 
251
하던 것이 여자 스미꼬가 머릿속에 들앉아 있어 가지고 줄곧 그리로 정신이 쓰인다, 시간을 대부분 떼어 바쳐야 한다, 여승 바가지 몹시 긁는 마누라한테 늘 부대껴 지내는 남편처럼 압박을 느끼고 술이 조심이 되고 하는 것이었었다.
 
 
252
막상 나와 앉아서 기다리는 데는 또 까마득하니 소식이 없고, 기위 사엔 나온 길이라 한참 바쁘기도 하겠다, 열이 오르며 찌뿌드한 것을 참아 가면서 그럭저럭 저물게까지 일을 거들고 하는 시늉을 했고.
 
253
그러고 나서 아파트로 찾아가 보았으나 방문은 종시 잠겨 있었다.
 
254
몸이 좋지 않은 깐으로 하면 이내 돌아가서 눕든지 조리를 하든지했어야 할 것이었었다.
 
255
그러나, 한번 드러누운 게 불찰이요 용이히 나와지질 않던 것과 마찬가지로, 늘 밖에 나돌아다니던 사람이겠다, 일단 나오기가(잘못이라면) 잘못이지, 나온 이상에야 웬만한 감기나 몸살이 조심이 되어 냉큼 발길을 돌이키도록은 어려운 계제이었었다.
 
256
고의는 아니었을값에, 그새 꼬바기 이틀 동안이나 모른 체 내던져 두었으니, 단 한 시간도 부지를 못해 하는 판인걸, 무던히 구박을 한 셈쯤 되었고, 또 그 소위 보고도 싶었고…….
 
257
명함에다가 다시 곧 올께시니 나가지 말고서 기다리고 있으란 글발을 적어 들이민 뒤에, 요 전날처럼 본정통으로 가서는 역시 요 전날처럼 책점을 뒤지고 차를 마시고 했다.
 
258
그러나 되돌아나오다가는 무어나 강렬한 놈으로 서너 잔 했으면 몸과 기분이 다 같이 피어날 것만 같아, 혼자서 몰풍치한 대로 취인소 근처의, 가끔 더러 다니던 한 집을 들른 것이 고만 수야니 모야니 문단 방면의 평소 임의로운 일당을 만나고 말았다.
 
259
싫지 않은 친구들을, 겸하여 술자리에서 쭈뻑 만났으니, 계집이 기다리는 경황은 아무려나 한옆으로 젖혀놓아도 무방했고……
 
260
다같이 심술깨나 있는 패들인데, 술이란 만만한 물건이겠다, 조옴들 했나, 상제 귀를 가리며 시끄럽구나! 할 지경이었고, 자연 자리는 짧지가 않아 자정이 가까워서야 파하고 헤어졌고……
 
261
대영은 술이(꾀를 했기 때문에) 취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약간 거나하여 혼자 비어져서 겨우 아파트로 여자를 찾아갔다.
 
262
노크는 미처, 몇 번 잠겼던 가늠만 여겨 무심코 먼저 손잡이를 쥐고 당겨본 것이 힘없이 절로 돌면서 여세엔 문까지 펄쩍 열려졌다.
 
263
그대로 밀치고 불쑥, 문턱 안으로 들어설밖에……
 
264
여자는 그러자 외투야 모자야 구두야 모두 외출을 했던 채, 눈꺼풀이 또 완구히 보삭보삭해, 오도카니(기다리고) 앉았던 소파 귀퉁이에서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서다가 일순간 맥이 타악 죄다 풀리는지, 펄씬 도로 주저앉으면서 금세 눈물이 글썽글썽한다.
 
265
하고는, 그러면서도 눈은 남자의 조용히 앞으로 걸어와 바투서 허리를 꾸부리고(깨꾸우는 아니라도) 어르듯 들여다보아 주는 얼굴을, 이내 빠꼼 마주 올려다보며 놓치지 않다가, 이윽고 무령하디무령하게 한마디……
 
266
“〈시라나이와, 아다시〉(몰라요, 난……)”
 
267
암상이거나 푸념을 하던 것이 아니라, 시름없이 흘러져 나오는 탄식이었었다.
 
268
그러하되 그것은, 하도 그 농압더라니 안타깝더라니, 일변 그새 이틀 동안 혼자서 이미 향하는 남자에게의 정열은 고일 대로 잘 고려 있겠다, 지금은 바야흐로 그 격정을 와락 터뜨려, 몸과 더불어 다 그의 품에다가 내맡기고서 마음 막힘 없이 편안히 원정을 하며 하소연을 하며, 그러면서 갖추 애무를 받으며 해야지만 들이 못견디겠는 것을, 그러나 문득 어떤 뜻 안한 장벽에 부딪뜨려, 또한 어찌하지 못하는 자저이었었다.
 
269
이편에 대한 남자의 향의도 진작 눈치를 챘었고, 또 사람 그 자체에 대하여 마음 서먹거리는 무엇이 있던 것도 아니고, 단지 피의 낯가림에서 오는 한 여자다운 조심이요 부질없은(일시의) 자벽(自僻)이었었다.
 
270
만일 그러므로, 이때에 남자가 조금만 더, 가령 손을 들어서 머리를 쓸어 준다든지 가만히 등을 다독거려 준다든지 하기만 했어도, 여자는 바로 그 팔에 가 그대로 안겨버리고 말도록 그와 같은 장벽에 대하여는 족히 대담했을 것이었었다.
 
271
대영은 미상불, 여자의(푸죽어 하기는 하면서도) 눈에서는 가득히 넘치는 정열을 능히 알아볼 수가 있었고, 입술에 어린 곡진한 원념을 또한 몰라보지 않았었다.
 
272
정당한 기회요, 어심에 흡족했었다.
 
273
밉지 않고, 마음에 안긴 여자요, 번번이 제라서 입술을 뺏고 싶어하던 터인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여자마저 저렇듯 그러하고, 하니 이상 다시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한다는 것조차 괜한, 한 절대의 경우이었었다.
 
274
그러므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또 손쉽게 천하 공통의 어떤 형식 하나를 통하여 둘이의 그 정열과 욕망은, 애정이라고 하는 한 새로운 계단으로 전화가 되면 고만일 것이었었다.
 
275
대영은 그러나 정반대로, 느닷없이 허리를 불끈 펴고는 휘익 돌아서서 어정어정 방 안을 거닌다.
 
276
아닌게아니라, 마음을 턱 놓고 마악 그 어떤 형식을 가지려고까지 했었고, 하던 참인데 별안간 빙충맞은 생각이 불쑥 들어, 일시에 그만 흥이고 긴장이고 죄다 풀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277
‘……시방, 가슴이 약간 두근두근하고…… 여자를 끌어다가 서로 껴안고…… 입술을 조청 빨듯 마주 빨고! …… 핏!’
 
278
그 멀쩡한 저 자신의 모양새가 차마 낯이 간지럽고, 저어 귀때기 새파란 어린애들의 장난을 흉내내는 것만 같아, 도저히 쑥스러워서 못하겠었다.
 
279
무슨 일이고, 일에 외곬으로 파고들지를 못하고서 으례껏 한옆으론 그것을 갖다가 객관하여 비양하려 들고, 그만큼 그는 부질없음이랄까가 대단했었다.
 
280
스미꼬는 남자가 졸지에 그렇듯 기수가 심상치 않은 데 걱정이 되어, 제 경황은 어언간 어디로 가고, 말긋말긋 앉아서 눈치만 보아쌓는다.
 
281
대영은 이내 방안을 거닐면서 다시금 생각을 하잔즉, 이번에는 저라는 사람이 도무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282
미흡한 정열……
 
283
하기야 시방도 그대로 여자가 밉지 않고 마음에 안기고, 따라서 포옹과 접문을 즐기고 싶고, 그리함으로써 애정을 누리고 싶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84
그리고 인제라도 또는 이따가라도, 그렇게 하면 그만이고 할 수가 있고 할 생각이고 하다.
 
285
그러나, 그러는 하면서도 일변 거기에 대하여 자조와 치기를 종시 느끼지 않질 못하겠고, 하니 그것은 결국 정열이 어느 미지근한 정도에 가 멈추고서, 이상 더 치열하게는 타지를 않는 탓일 것이다.
 
286
미지근한 정열, 그것은 차라리 없느니만도 못하고 오히려 주접인 것이다.
 
287
어디, 여든을 먹어 흰 터럭이 허얘가지고, 입 삐뚤어진 곰보딱지와 가사연애를 하기로서니, 불붙는 심장이 있기만 하다면야 이대도록이 힝기레밍기레할 법은 결단코 없는 것이다.
 
288
모든 것에 열을 가지지 못하는 터이매, 그보다도 나라는 것이 어디로 가버렸으매, 즉 혼백을 잃은 인간인 셈이고 보매 그도 용혹무괴라 하겠지만, 그렇기론들 서른셋 이 나이에 연애조차 고지식하게 열중을 할 수가 없단다면 진정코 생명의 고갈이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289
대영은 생각을 하면서 오락가락(여자와는 눈을 피하여 한데를 보면서) 몇번이나 방 안을 거닐다가, 마지막엔 푸우 한숨을 몰아 내쉬며 한번 더 저리로 돌아선다.
 
290
스미꼬는 마침내 더 참지 못하여, 발딱 일어서더니 남자의 뒤를 따라가 옷소매를 잡고 앞을 막아서면서, 말끗이 얼굴을 올려다본다.
 
291
눈이 애처롭고, 조금 만에야
 
292
“분상?”
 
293
하면서 다뿍 성화겹게 부른다.
 
294
대영은 괜한, 시방 중뿔난 짓을 했거니, 제야 속으로 점직해 강잉하여 빙긋이나마 웃어 주자고 해도 안면 근육이 얼른 말을 듣지를 않고, 입도 곧은 떨어지질 않았다.
 
295
“네? 분상!”
 
296
“………”
 
297
“노여우셨어요?…… 편찮으셨더라는 걸 미처 그런 인사도 안 이쭛구서…… 깜빡 고만, 제 암상만……”
 
298
그러자 대영은 그때 느닷없이 여자를 거진 볼품 사나울 만큼 함부로, 여자를 와락 품안으로 끌어당기면서 아스라지도록 안는다.
 
299
자포적인 발작이요 그 완력이지, 난데없는 정열의 더 높은 연소는 그러나 아니었었다.
 
300
다만 그 맹렬하고 빈틈이 없는 깐으로 하면, 포옹하곤 자못 극치라 할 것이었고, 그러므로 여자는 누르고 누르던 격정을 필경 누르지 못해 그렇듯 우악스럽게 폭발이 된 줄 여기기에 족했다.
 
301
허깨비같이 끌려들어 차악 저도 바지직바지직 마주 껴안으면서 잠깐 동안 숨소리만 가빴고.
 
302
그러다가 이윽고 고개를 조금 젖히면서 얼굴을 든다.
 
303
더 중요한 순서가 막상 하나가 빠졌던 것이고, 그래서 입술은 유난히 윤기 있이 발그레 붉었다.
 
304
대영은 그렇듯 발작적인 기회이었을망정 아뭏든 그 포옹이며 등속을 일단 치르잔즉은, 그리고 치르고 난즉은, 생각더니보다는 훨씬 피가 우꾼거리고, 새 채비로 여자가 사랑스럽고 한 것 같고 하여 자못 만족을 느낄 수가 있었다.
 
305
대영은 여자를 소파로 데려다 앉혀 주고, 웃옷도 손수 벗겨다가 제 해까지 옷장 안에 걸고, 그러고는 와서 같이 앉는다.
 
306
여자는 한편 팔로 등을 안으면서 이마를 짚어본다.
 
307
“열이 있어! 어떡허시나!”
 
308
“괜찮아! …… 고만 거야, 머……”
 
309
“그래두우! …… 좀 누우시까?”
 
310
“아니……”
 
311
“그러나저러나, 이렇게 무릴 하시구 해서 어떡허세요? 저 때문에……”
 
312
“때문이라니, 이 노릇이 부역인가?”
 
313
스미꼬는 그 말이 재밌어라고, 배시기 웃으면서 남자의 젖가슴에다가 머리를 뉜다.
 
314
“그렇지만서두, 네에? 분상……”
 
315
“응?”
 
316
“가만히 보믄, 별루 건강하지두 못하신데 어떡허세요?”
 
317
“돼가는 대루…… 쯧!……”
 
318
“그래두우! …… 앞으루두 줄곧 그새처럼 이렇게 밤을 샌다, 늘 무릴 하셔야겠으니, 몸은 차차루 더 축져 가시구…… 그러니 필경은 지탱을 못하게 될 거 아녜요?”
 
319
“할 수 없지!”
 
320
“그렇잖구선 우리 둘이 생활이 전연 무의미해지구…… 무의미가 아니라, 아주 없어지구 말지! …… 혹시 분상께서 그새까지의 일이나 생활을 죄다 버리시구서, 저허구만 기서 주신다믄, 그땐 우리 둘이 생활두 훨씬 아늑할 수가 있을 테지만, 그야 어디……”
 
321
“낼을 걱정하기루 들면, 난 벌써 사약이라두 집어먹었게!”
 
322
“어이구 참! …… 분상은 그러셔두, 전 오늘부텀은 안 그런걸?…… 그리구 그게 어디 낼 일인가? 오늘 일이지!”
 
323
연애는 겨우 어떻게 얽어매졌어도, 그러고 나니 걱정이라, 둘이는 거기에 자지러져 한동안 생각만 두루 깊는다.
 
324
그러하던 끝에 스미꼬가 별안간 무릎이라도 탁 칠 듯이
 
325
“아, 참!……”
 
326
하면서 고개를 들고 눈이 빛난다.
 
327
“……우리, 함끠 저어 어디 가요!”
 
328
“저어 어디?……”
 
329
대영은 섬뻑 못 알아들었다가, 이내 그것이 아주 가자는 뜻임을 깨닫고는 쾌히……
 
330
“가지!”
 
331
“가? 정말?”
 
332
여자는 제가 도리어 놀라면서, 파고들듯 묻는 것을, 대영은 여전히 시원스럽게……
 
333
“정말 가!”
 
334
“꼭?”
 
335
“꼭!”
 
336
“언제?”
 
337
“아무때구……”
 
338
“아무때구? 꼭?”
 
339
“꼭!”
 
340
“어디루?”
 
341
“스미꼬상 가구 싶은 데면 아무데라두……”
 
342
“정말?”
 
343
“정말!”
 
344
“〈마아 요카타〉(아이, 좋아!……)”
 
345
숨이 차서 들이 캐다가 마지막 소담하게 한숨을 그 마아 요카따라면서 감격에 겨워 눈물이 핑, 남자의 목을 얼싸안고 볼비빔을 해쌓는다.
 
346
“……고마워라! 우리 착한 분상! …… 네? 분상……”
 
347
“응!”
 
348
“같이 가줘요오, 응?”
 
349
“걱정 말래두!”
 
350
“전, 정말 하루두 이 조선엔 더 못 있겠어요! 인전…… 어떻게두 그 표정이 으설푸구 심란스런지, 없는 시름두 되려 자아내게 하는걸요! …… 그런데다가 또 분상은 자꾸만 절 혼자 오도카니 둬주시구…… 네? 분상……”
 
351
“응!”
 
352
“동경으루 가요, 응?”
 
353
“동경?…… 좋겠지…… 아편을 띠러 왔다가 되려 아편쟁일 하나 업구 간다?”
 
354
“괜찮아요! 머…… 아버진 영 더 노하시겠지만, 고만 각오야…… 건데, 언제 떠나꾸?”
 
355
“내일이라두……”
 
356
“정말?”
 
357
“정말!”
 
358
“정마알! ……”
 
359
여자는 갑자기 풀기가 없으면서 물러나 앉는다.
 
360
“……그래두 인제 생각하니깐, 분상 못 가!”
 
361
“왜?”
 
362
“가정은 어떡허시구? 부인을……”
 
363
“난 또 무얼 그런다구…… 가정이나 안해를 생각해서 나 하구 싶은 노릇을 못 할 내면, 제법 되려 괜찮게?”
 
364
“그래두 당장, 분상이 떠나시믄 부인께선 어떡허세요? 분상이야 괜찮다시지만……”
 
365
“저의 집으루 가든지, 우리 아버지한테루나 가던지!”
 
366
“그러니 그게 못할 노릇 시키는 게 아녜요? 저 때문에……”
 
367
“쯧 그걸 거리껴서, 스미꼬상이 고만두겠다면 할 수 없는 것이구……”
 
368
“아니! 가요! 같이……”
 
369
여자는 질끔을 하여 그결에 와락 와서 안기면서……
 
370
“……같이 가요! …… 그렇지만서두, 애맨 그이한테 죄스럽잖아요?”
 
371
“그 뜻 내가 대신 맡아 뒀다가 후일에 만일 기회가 있다면 당자한테 전해 주지!”
 
 
372
마침내, 차시간표를 꺼내놓고 앉아서 떠날 배비에 대한 상의를 했다.
 
373
차는 이튿날 정밤중, 3시 46분 부산행 히까리……
 
374
대영은 실상 낮차도 좋다고 했으나, 여자가 들어서 아무리 뒷수습거리가 없다기로서니, 사와 집안이 있는데 어디 그렇게 촉박히야 떠나지느냐고 밤차를 주장했었다.
 
375
여자는 그리고, 내일 하루는 떠나는 그 시각까지 대영을 그의 아낙에게 돌려보내 주겠노라고, 그러니까 이따가 아침에 갈리고 나서는 아주 제 시간에 정거장에서나 다시 만나기로 또한 약속이 되었다.
 
376
대영은, 집과 사에야 차중에서 편지나 한 장씩 띄우면 고만일 생각이었지만, 마침 내일 밤에 망년회를 하기로 되었은즉 마지막삼아 식구끼리 하룻밤 놀고 떠나는 것도 무방하련 싶었다.
 
377
여자의 세간은, 그대로 내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파네 어쩌네 하자니 치사하기도 하거니와 또한 번폐스런 노릇이고, 두루 궁리를 하던 끝에 차라리 대영의 집으로 떠실어 보내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378
종차에는 게서도 성가셔 하게 될 날이 있겠거니 하면 가뜩이나 미안한 일이었지만, 역시 딴 도리가 없었다.
 
379
그러고서 내일 저녁에 여자가 운송부나 메신저를 불러 발송을 시키기로 하고, 대영은 아주 회기정의 저의 집 주소까지 적어놓았다.
 
 
380
길 떠날 준비에 대한 상의가 끝이 난 뒤에도 둘이는 훨씬 과실을 벗긴다, 차를 마신다, 또 여태 그대로 남아서 있는 포도주를 죄다 기울여 노나 먹는다 하면서, 늦도록 놀았고……
 
381
마지막, 자려면서는 여자는 많이 망설이는 눈치더니, 우선 대영에게(앓는대서) 침대를 사양하고 소파에다가 제 자리를 보았다.
 
382
제 의사보다는, 또 저로서는 판단을 할 길이 없어 남자의 뜻을 기다렸음일 것이다.
 
383
대영은(천연스럽게) 아뭇 소리 없이, 여자를 도로 침대로 데려다가 뉘어 주었다.
 
384
여자는 순순히 좇으며, 그제서야 좁아도 그러면 예서 같이 자자고 했다.
 
385
대영은, 인제 동경으로 가서 더블 베드를 장만해 놓고…… 라면서 물러났다.
 
386
여자는 간지러운지 바특바특
 
387
“〈젠료네!……〉(선량하군!……)”
 
388
하면서 침대전으로 나와 걸터앉아 옆을 가리킨다.
 
389
“……잠깐 여기 앉으세요!……”
 
390
대영은 혼자 속으로, 결단코 선량이 아니라 소심이요 비겁이요 그리고 허영이라고 부인을 했다.
 
391
사실 그는, 아무것도 그 이상, 이 밤에 스미꼬와 더불어 한 베드에 들지않을 이유와 조건이라곤 가지질 않았었다.
 
392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네?……”
 
393
여자는 와서 앉는 대영에게 자기 전의 인사로 입술을 주면서,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394
“……그리구, 동경 가선 분상 착한 아낙 돼 드리께, 응?”
 
395
“고마우이! …… 그렇지만 머, 요술을 하나? 착한, 아낙이, 돼, 주구, 하게!”
 
396
“아니라우! …… 그런 게 아니구, 분상이 하두 얌전하시니깐 스미꼬 고만 기뻐서어…… 그러니깐 인제 우리 둘이 더블 베드 가질 때꺼정은 연애루다가 둬두구, 그리구 그 다음부터서 분상은 새서방님…… 스미꼬는 색시, 응?”
 
397
“결국, 무어니 무어니 해두 허영이요 습관적인 위선이라! …… 하, 그런데 그 위선을 뿌리치잔즉은 그 다음 것은 위악이니! …… 인간이란 성가신 물건야!”
 
398
“그렇게두 선량하시믄서, 반면엔 또 아주 박절한 구석이 있으셔! …… 차갑구!”
 
399
이런 지천을(제법 인제는 다) 하면서 여자는 한번 더 입술을 나누고 어깨의 팔을 풀어준다.
 
400
대영은 소파로 돌아와 담배를 붙여 물고 앉아서 곰곰 생각이다.
 
401
‘내일은 저걸 데리고, 데리고가 아니라 따라서 동경으로 간다?……’
 
402
‘간다…… 동경으로…… 저걸 따라서…… 내일……’
 
403
‘쯧! 가는 거지!’
 
404
대단히 쉬웠다.
 
405
내일, 여자와 같이서, 동경으로, 가는 것, 이것이 있을 뿐, 말하자면 절대이었었다.
 
406
사면을 다 돌아보아야 저 여자와 더불어 내일 동경으로 떠나가지말 아무런 구애도 주저도 할 일이 없었다.
 
407
‘그러면, 막상 간다고 하고…… 대체 무엇하러 가노?’
 
408
‘하기는 무얼 해? 계집 따라가는 거지…… 위지 왈, 바람맞아서……’
 
409
‘으음, 바람맞아서! …… 싱거운데?’
 
410
‘좀 싱겁지……’
 
411
‘고만둬?’
 
412
‘쯧! 고만두지!’
 
413
또한 쉬웠다.
 
414
아무리 생각해야, 내일 저 여자를 데리고 구태여 동경으로 꼭 가잘 필요와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415
‘그러면, 고만두나?’
 
416
‘쯧! 고만둬도 좋지만, 또 고만두면 무얼 하나?’
 
417
‘그러면 가는 거지!’
 
418
‘고만둬도 고만이고……’
 
419
‘안 고만둬도 또 고만이고……’
 
420
꼭 같았다.
 
421
가지 말 조건과 내력이 없으니 가는 것이었었다.
 
422
마찬가지로, 갈 필요와 이유가 없으니 안 가는 것이었었다.
 
423
그러므로 결국은, 가면 가는 것이 선(善)이요, 반대로 안 가면 안 가는 것이 선이었었다.
 
424
따라서 결론은, 내일 여자와 더불어 동경으로 간다는 것이었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내일 여자를 데리고 동경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었다.
 
425
‘잘못하다가 놓치느니라!’
 
426
‘놓치면 대순가?’
 
427
‘구태여 놓칠 며리야 있나? 저 묘한 걸……’
 
428
‘그렇다고 한평생 갈 텐가!’
 
429
‘쯧! 놓쳐도 고만, 안 놓쳐도 고만……’
 
430
‘내일 가도 고만, 모레 가도 고만……’
 
431
‘글피 가도 고만, 내일 아주 가도 고만……’
 
432
‘가도 고만, 안 가도 고만……’
 
433
‘돼가는 대로……’
 
434
‘쯧! 돼가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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