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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여행(修學旅行)의 추억(追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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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8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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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學旅行의 追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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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든 뒤로 지금까지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지 못했다. 늘 가난에 쫓기는 몸이라 그러한 여유가 없었던 때문이다. 지금 역시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누구에게 못지 아니하게 여행이 좋고 유리한 줄 알면서도 못하는 안타까움이란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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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니 여행에서 얻은 로맨스도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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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구태여 찾아내자면 중학 시절에 수학여행을 다니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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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학시절은 사정이 비교적 순조로왔다. 여일하게 대어주는 학비를 써가며 아무런 세상의 파란과 인생의 쓴 경우에 부대낌없이 학과에 만 전심하던 때다. 그런만큼 지금 앉아 생각하면 그때가 그리워지고 그중에도 동무들과 떼지어 미지의 땅을 찾아갔던 일이 반가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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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일반 독자에게는 좀 건조 무미할 듯한 것이나마 이삼(二三)적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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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扶餘)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아마 이년급 때인 듯한데 삼사년 급도 같이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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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 군수 W씨가 친히 고적을 안내 설명해 주는데 마침 평제탑(平 濟塔) 차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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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경성 빠고다공원의 사리탑(舍利塔)을 이찌반메(一番目) 라고 하지만, 나는 이 평제탑이 이찌반멘 줄 아오. 왜 그러냐 하면, 이 평제탑은 가고깡(花崗岩)이 도합이 굳게 잘 가다마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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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섞이 설명을 하고 있노라니까 후열에 섰던 대가리 큰 학생 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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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말이 이찌반메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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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 말씀이 도합이 좋소.”라고 숭내 입내를 내었다. 그러니까 씨는 그만 죽어 끝에 설명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어물어물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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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구경을 마치고 목선(木船)으로 백마강(白馬江)을 내려 강경(江景)으로 올 노정을 세워 강변으로 나왔다. 최두선(崔斗善) 선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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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바우 보피떡이 유명하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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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우리에게 보피떡 한턱을 내시던 것도 생각이 나고 이광종(李光鍾)선생이 대재각(大哉閣)을 감개깊이 설명해 주시던 생각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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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배가 자만대(自慢臺) 밑을 지날 때에 바위에서 자라 물 위로 뻗은 소나무를 이광종 선생이 거문고감으로 마침이라고 탐내시던 것도 그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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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새 학기 개학을 하고 나서 바로이었으니까 아직도 여름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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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부여로부터 강경까지 내려오는 금강(錦江) 상류인 백마강의 한토막은 물이 그다지 깊지 아니하며 사공들이 바닥 닿는 배를 어깨로 밀고 내려가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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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본 우리 장난꾼이 몇 사람⎯⎯신봉근(辛奉根). 곰보피취 등 오륙 인인 듯하다⎯⎯벌거벗고 물에 뛰어들어가 사공과 같이 배도 밀고 또 온몸에다 개흙칠을 새까맣게 해가지고(空地의 黑人 흉내를 내어) 배를 습격하는 장난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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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컨 장난을 하다가 피곤하여 배에 올라 잠을 잔 것이 깨었을 때는 이미 밤이요, 달이 뜨고 물결이 출렁거리는 강경 가까이 당도하게 되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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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강경인 줄이야 알았지만 어쩐지 신비스러운 딴 세상에 간 것 같아 종시 마음이 기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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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중앙학교의 교복도 보통 것으로 변하였지만 그때는 해군복을 본뜬 것이었었다. 단추를 속으로 채우고 선을 두른 검정 저고리에 여름 에는 흰 바지다. 그리고 역시 해군이 치는 흰 각반이다. 거기다가 여행 을 갈 때면 흰 견대를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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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보성학교의 반금테만큼 한가지로 특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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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림을 하고 백여 명 가까운 우리가 곡호수 나팔에 맞추어 평양 거리를 행진할 때는 이상하게 어깻바람이 나는 듯하였다. 이것이 사년 급 때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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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서 낮에 청류벽(淸流壁) 아래로 지나던 일이 어찌도 좋은지 주홍석(朱洪錫) 군과 그 밖에 누구든지 또 한 사람 셋이어 청류벽 을 찾아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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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정경이 어떠하였던지 세밀한 것은 오래 된 지금이라 기억이 나지 아니하나 어쨌건 흥은 단단히 났던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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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유행가를 부르고 하며 거닐다가 담배를 먹었다. 주군은 그때도 노인( ! )이었고 우리도 이십이 가까왔던 터이라 그다지도 엄금하는 담배 였지만 평소에 늘 먹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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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을 떠나면 밤낮으로 선생님들을 모시고 다니느라고 담배를 그리운 때에 못 먹기가 십상이었는데, 마침 조용한 곳에 나왔으니 아니먹고 못 배길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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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 돌아와서도 아무 눈치도 띄지 아니하였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 일 주일 아무런 기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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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루는 수업중에 우리 세 사람에게 교무실로부터 호출이 나왔다. 그것이 평양 가서 담배 먹은 사실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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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솔자의 한 분이던 조철호(趙喆鎬) 선생한테 톡톡히 나무람을 듣고 현상윤(玄相允) 선생의 단분(斷分)에 의하여 변소 소제의 고역을 치르었다. (필경 누가 밀고했다고 우리는 그때 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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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 소제는 열 번을 해도 좋으니 제발 그런 시절이 또 한번 돌아왔 으면 하는 꿈 같은 생각을 지금은 가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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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慶州) 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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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장난감 같은 경편차를 갈아탔는데 키 크고 장난꾼인 이만우(李萬雨) 군이 차의 속력이 느린 것을 깔보고 뛰어내린 데까지는 무사했 지만 다시 올라타려니까 그래도 맹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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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요! 당나귀 같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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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사색이 되어 질질 매달리던 일이 지금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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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학여행을 가면 손총통(孫總統)으로 통용( ! )되는 재미있는 교우 한 분이 늘 따라오곤 한다. 경주 때도 그분이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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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가을인데다가 경주가 감의 산지인지라 우리도 감을 많이 사 먹었는데 하루는 몇이서 음모를 꾸몄다. 그리하여 밤에 손총통의 취한 틈을 타서 씨의 빈약한 포켓을 톨톨 털어 전부 감을 사먹어 버렸다. 술이 깬 이튿날 손씨는 “엥 ! 엥 !” 하며 입맛을 다셨고 지금도 만나면 그 이야 기가 나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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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石窟庵)이 그때 마침 천정 이 새어서 수리를 하는 중이었었다.그래 그 공사감독을 하는 기사가 그때 인솔자인 고 나원필(羅元弼) 선 생과 마주 서서 이야기를 하는데기사씨 장히 도도한 체하고 쓰봉 포켓 속에다 두 손을 끼고는 나오지도 못한 배를 뚱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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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우리는 “그 자식이 거만 무례하다”고 닦아세우려고⎯⎯그러고 테러도 쓰려고⎯⎯벼르는데 이광종 선생이 “이애들아, 석양 사람들은 그것이 되려 예절이란다” 하고 말리어 무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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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고 붓을 놓으려 하니까 마침 어렸을 때 역시 수학여행을 갔다 가 울고 망신하던 일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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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열 살도 못 되었을 때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다닐 때인데, 전 주(全州)에 공진회(共進會)가 굉장하게 열리어 우리 학교에서도 수학여 행 겸 구경을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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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첫날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밤에 여관에 들어서 잠을 자는데 어찌하다가 잠이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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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깨기는 하였으나 정신은 없다. 한데 사방이 캄캄하기는 하고 웬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전주에 와서 여관에 들어 잠을 자고 있었다는 생각은 미처 생각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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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아버지도 계시지 아니하다. 나는 세 살에 아우를 보면서부터줄곧 아버지 옆에서 잤고 그것이 서울로 공부하러 오던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그때도 위에서 말한 대로 전주에 와서 여관잠을 자느니라 하는 생각은 나지 아니했던 판이라 이게 도대체 웬일인가! 그만 기가 막혀 왕 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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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인솔자이던 오영철(吳永喆) 씨⎯⎯이 선생은 지금 어데 가 계신지!⎯⎯가 잠이 깨어 왜 우느냐고 달래며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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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비로소 나는 아차 여기가 전주로구나 하고 울음을 꿀꺽 그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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