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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모집(英雄募集) ◈
해설   본문  
1934.8
채만식
1
英雄募集[영웅모집](전1막)
 
2
[인물]
3
피에로 …… 영웅 모집할 사람
4
소년 …… 2인
5
전문학교 학생 …… 2인
6
거리의 여자
7
어떤 남자
8
신사 …… 2인
9
젊은 과부
10
그의 어린 딸과 아들
11
그의 옛친구
12
병든 노동자
13
순사
14
어떤 사람 …… A·B
15
룸펜 …… 3, 4인
16
이주민 가족 …… 늙은 부부와 자식 남매
17
주정꾼 …… 2인
18
소년 …… 다수
 
19
[시대]
20
1930년 이후 한동안
 
21
[무대]
22
파고다공원의 일부를 모사한 것. 풍경은 여름철. 사리탑(舍利塔)을 배경으로 하고 군데군데 정원수가 들어서 있다. 관객석에서 잘 보이도록 세 개의 벤치가 후면에 두 개 전면에 한 개 해서 삼각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밤. 막이 열리면 피에로가 관객석을 등지고 서서 사리탑을 바라본다. 입은 옷은 모닝인데 저고리는 몹시 작고 바지는 굉장하게 크다. 넥타이는 새빨갛고 모자는 헌팅이다. 표정은 줄곧 무섭게 엄숙하다.
 

 
23
소년 A  (의복이랄지 몸매가 깨끗하다. 손에 카스텔라 하나를 쥐고 먹으면서 우수 후면으로 등장)
24
소년 B  (몹시 행색이 초라하다. 좌수 후면에서 마주 등장. A의 카스텔라 먹는 것을 보고 먹고 싶어 침을 삼킨다) 그게 무어니?
25
A   카스테라 (베어먹는다) 냠냠.
26
B   (손을 내어밀면서) 나 좀.
27
A   흥 안 준다나. (베어먹는다) 아이구 맛좋아, 냠냠.
28
B   (근천스럽게) 이애 난 아침도 안 먹었다. 좀 다구 이애.
29
A   누가 아침을 먹지 말랬니? 거지.
30
B   (무렴해서 아무 말도 못한다)
31
피에로  (비로소 두 아이의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32
A   아이구 맛좋아 냠냠…… 좀 주까?
33
B   (반겨) 응. (한 걸음 다가선다)
34
A   (팔을 조금 뻗쳐 카스텔라를 내어민다)
35
B   (받으려고 손을 내어민다)
36
A   (도로 채어서 제 입에 대며) 용용 죽겠지! (베어먹으며) 죽겠지? 냠냠.
37
B   (손을 맥없이 내려뜨리고 바라보기만 한다.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 간다)
38
A   하하! 먹구 싶지? 그래라 자. (두어 볼퉁이쯤 남은 카스텔라를 내어민다)
39
B   (또 손을 벌린다)
40
A   (도로 팔을 오므려뜨린다)
41
B   (날쌔게 덤벼 카스텔라를 채어다가 한입에 쓸어넣고 눈을 헤번득거리며 꺽꺽 씹는다)
42
A   (달려들어 B를 두들기며) 이 자식아, 이 깍정이 이 거지새끼야 잉잉.
43
B   (얻어맞으면서 다 삼키고는 비로소 우수로 달아난다)
44
A   (욕을 하며 쫓아간다)
45
A·B   (퇴장)
46
피에로  (한숨을 푸 내쉬고) 악착스러운 일이다!
47
전문학교 학생 A와 B  (좌수 전면으로 등장. 책가방과 알맹이 노트를 손에 들었다. 이야기를 하며 전면 벤치에 나란히 걸터앉는다)
48
피에로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
49
A   (다리를 쭉 뻗고 하품을 하며) 아이고 오늘도 그렁저렁 해가 저물었나!
50
B   (역시 나른해서) 그런 모양일세. (間[간]) 그런데 그놈의 마작구락부가 수입이 상당한 모양이야!
51
A   그럼. 이 사람아, 어느 날은 하로에 사오십 원이 들어온다네.
52
B   그거 참! (間[간]) 나도 학교인지 막걸린지 집어치고 마작구락부나 낼까부다.
53
A   나두 허너니 그 말일세.
54
B   글쎄 이놈의 공부를 애탄가턴해서 학교를 졸업하면 무얼 하느냐 말이야! (흥분이 된다) 우등으로 졸업한 놈하고 또 우락부락하든 응원단장이나 하고 일류 운동선수나 해서 몇놈이 취직이 되고는 그 나머지는 모다 그대로 늘비하게 처져바리니.
55
A   명색이 좀 배웠대서 눈만 높아지고……
56
B   그래 말이야 글쎄. 요짐은 중학교나 중학 정도의 실업학교를 마친 사람이 되려 취직률이 낫다데그려!
57
A   월급 적고 부리기 편하니까 그렇지.
58
B   그러고 우리는 고등룸펜 면허장 하나를 얻어가지고는 뒤통수를 툭툭 치고 나서고……
59
A   중학교부터 전문학교까지 졸업하느라고 들인 돈이 적어도 삼사 천원은 될 텐데 그놈 가지고 차라리 호떡장수라도 했었으면!
60
B   아하, 우울해. (담배를 꺼내어 A도 주고 자기도 붙여 문다) 그런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래도 그대로 다니고 있으니 우리가 바보지.
61
A   행여 삼사십 원짜리 취직이라도 될까 하는 요행수를 바라고. 그러지. (고소를 한다)
62
B   이 사람아, 우리 집 영감님은 지금 군수 하나는 따놓았으리라고 하눌같이 믿고 곕시다네.
63
A   하하하하 군수, 허허 참!
64
B   (따라서 고소를 하며) 기가 맥히지.
65
A   돈 있는 집 색시한테로 장가를 가는 게 제일이야.
66
B   돈 있는 집 색시도 제한이 있지 그렇게 제마닥 얻어걸리란 법이 있다나!
67
A   그러니까 운수라지.
68
B   럭비선수 슈바리에 놈 보게! 그놈은 그런 운수가 당하잔해도 제 집에 돈이 있으니까 넉넉할 텐데 게다가 부자집 딸하고.
69
A   (고개를 끄덕거리며) 허기야 그런 걸 보면 운수도 밑천이 있어야 걸리는 모양이야.
70
두 사람  (잠시 말이 없이 우울해서 앉아 있다)
71
B   (벌떡 일어서며) 가세.
72
A   (따라 일어선다)
73
B   내일은 경칠 것 아츰부터 사보투한다.
74
A   나두 늦잠이나 실컷 자고 오정때쯤 마작이나 하러 오겠네.
75
두 사람  (이야기하면서 우수 전면으로 퇴장)
76
피에로  (두 사람의 사라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독백) 아하 큰일났어! 장차 민족의 선두가 될 청년들이 마음이 저렇게 타락이 되어서! (천천히 걸어 우수 전면에 이른다)
77
거리의 여자  (좌수 후면으로부터 등장. 여학생 차림으로 차리었으나 어딘지 티가 난다. 사방을 한가로이 둘러보다가 후면의 좌편 벤치에 걸터앉아 속된 유행가를 조용히 부른다)
78
피에로  (이맛살을 찌푸리고 바라본다)
79
어떤 남자  (좌수 전면으로 등장. 거리의 여자를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무대 전면을 서서히 걸어온다)
80
거리의 여자  (남자를 눈여겨보다가 치마를 걷어올리고 스타킹을 치킨다)
81
피에로  (혀를 차며 방백) 저게 원!
82
어떤 남자  (싱긋 웃고 돌아서서 여자의 옆으로 간다) 실례올시다마는 예가 빠꼬다공원인가요?
83
거리의 여자  (은근히) 네 그렇답니다.
84
어떤 남자  (좀 머뭇거리다가) 실례올시다마는 전에 어대서 많이 뵈운 듯 한데요.
85
피에로  (걱정스럽게) 원 저게 원!
86
거리의 여자  (상냥하게) 네에, 글쎄 저도 어대서 많이 뵌 듯한데요.
87
피에로  엥!
88
어떤 남자  (싱긋 웃고 여자의 옆에 앉는다) 일흠이 머요?
89
거리의 여자  쑥이네! 일흠은 알어 무얼 허우?
90
어떤 남자  그래도 초면이니까 그래본 게지. 구지게 알고 싶은 건 아니요. 좌우간 갑시다. (일어선다)
91
거리의 여자  (따라 일어선다) 어대로?
92
어떤 남자  댁이나 정해놓고 다니는 본부(本部)가 있겠지. (間[간]) 그렇지만 도통 (손가락 두 개를 세워보며) 요것밖에 없어.
93
거리의 여자  (눈을 흘기며) 요런 어대서 깍정이가! 그러지 말고 요것만 (손가락 네 개를 세워 보이며) 예산해요. 그래야 둘은 음식값으로 치고 둘은 내가 먹지.
94
어떤 남자  아니야 도통 둘밖에 없어.
95
두 사람  (서로 상지하며 좌수 후면으로 퇴장)
96
피에로  (탄식하며) 아! 하. 말세야 말세! 우리들의 누이가 거리에서 이 원 삼 원에 정조를 흥정하다니!
97
신사 A와 B  (좌수 후면으로 등장. 전면 중앙쯤 와서 사리탑을 바라보고 머물러선다)
98
피에로  (주의한다)
99
신사 A  이 공원을 불하를 맡을까 하는데 어떨까?
100
신사 B  무엇에 쓰게?
101
A   다 헐어내바리고……
102
B   (가로막으며) 고적을 없애바린다고 야단들일걸. 소위 민간측에서.
103
A   글쎄 그게 안된 생각들이란 말이야! 서울같이 땅이 귀하고 부족한 이 복판에다가 그 승거운 탑을 고적이라고 세워놓고 나무를 심으고…… 그래서 게으름뱅이들의 소굴을 만들으니 그런 손복할 일이 어대 있겠나? 나는 이걸 아주 훌륭하게 실질적이요 생산적으로 이용할 테야.
104
피에로  (독백) 저런 죽일 놈이!
105
B   어떻게!
106
A   이 너절한 것을 다 털어바라고 집을 모다 굉장하게 짓거든…… 어떤 집을 짓느냐 하면 한편은 요리집, 한편은 카페, 한편은 딴스홀 그리고 또 한편에는 오락장으로 베비골프 다마쓰끼 마작구락부…… 어때?
107
B   거참 그랬으면 수입은 상당할걸?
108
A   상당만? 대번 부자가 되지. (間[간]) 가만 있게. 지금 자본주를 끄는 중이니까. 자본주만 생기면 위선 운동비를 흠씬 들여서 불하를 맡어가지고 응 한바탕 할 테니……
109
두 사람  (지껄이며 우수 후면으로 퇴장)
110
피에로  (성이 나서 독백) 허! 그거 참! 저놈들을 어떻게 해야 잘 죽이나! (사리탑을 바라보며 감개해서) 그래 저 사리탑의 심오한 예술적 가치와 그리고 우리의 회고적 감정을 짓밟으러들어? 죽일놈들! 저놈들도 조선놈이야! 엥!
111
젊은 과부  (두 어린아이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추렷하여 좌수 후면으로 등장. 삼십이 넘어보이고 신여성 차림을 하였으나 의표가 초라하다)
112
피에로  (주의하여 바라본다)
113
   (어머니의 손을 놓고 후면 좌편 벤치로 달려가 걸터앉으며) 어머니 여기서 놀다 가 응.
114
과부   (맥없이)그래라.(아들을 데리고 벤치에 가서 걸터앉는다)
115
   어머니.
116
과부   뭐야.
117
   나 과자 사주.
118
아들   나두.
119
과부   시방 돈 없으니 후제 사주마.
120
아들   싫여.
121
과부   그렇게 어머니를 졸르면 착한 아이 아니야 응.
122
아들   흥. 싫여.
123
   (갑자기) 어머니 어머니.
124
과부   왜 그래?
125
   그때 저 우리 새아부지가 과자 많이 사주었저?
126
과부   (안색이 좋지 않아진다) 응.
127
   그런데 왜 아니 오우.
128
과부   그런 소리 묻는 것 아니야.
129
옛친구  (조금 전에 좌수 전면으로 등장하여 유심히 과부를 바라보다가 그 앞으로 급히 가서 선다) 아이구 이게 누구요? 언니 아니요?
130
과부   (반겨 놀라 마주 일어선다) 아이구 난 누구라구!
131
두 사람  손을 서로 움켜잡는다.
132
옛친구  글쎄 이게 얼마만이요? 왜 이렇게 늙었어!
133
과부   (적적하게 미소한다) 나이 먹으니 늙을밖에.
134
옛친구  그래두 원! (두 아이를 번갈아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너이들도 많이 자랐구나! 잘들 있었니?
135
두 아이  (다소곳하고 있다)
136
옛친구  그런데 그 새 어떻게 지냈수?
137
과부   그렁저렁.
138
옛친구  (갑자기) 그런데 언니 저 (주저하다가) 나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저 거시키 다시 결혼했다구?
139
과부   (고소) 그게 결혼이요? (남의 일같이 빈정대며) 첩(妾)살이로 들어간 거지!
140
옛친구  (놀라) 어! 그게 웬 소리?
141
과부   웬 소리는 뭘 웬 소리 ? 나이 삼십이 넘고 자식이 둘이나 따렀는데 지금 이 세상에 누가 그리 어수룩해서 정실로 모서가겠소?
142
옛친구  그래두 원! (間[간]) 그렇지만 또 생각하면 뭘 어떻소. 그렇게라도 팔자 편케 잘 살고 어린것들이나 잘 길르면 그만이지.
143
과부   (고소) 그거나마 그렇게 되었드라면 오직이나 좋겠소만 또 파탈이 났다우.
144
옛친구  (발을 구르며) 어쩌면! 그게 웬 소리요. 어떻게 되어서 원팔자가 그렇게 기구하단 말이요.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 좀 해요.
145
과부   (고소 띤 얼굴에 역시 눈물) 남편이 끼쳐준 것 없고 내가 벌어 먹고 살자니 재주가 없고. (한숨을 내쉰다) 그래 할 수 없이 저것들을 데리고 남의 첩으로 들어갔구려! 돈이 넉넉하고 제법 이렇다는 사람이야 기생이니 여학생이니 꽃 같은 여자가 늘비한 세상에 나 같은 새끼 더린 늙은 것을 생각이나 하겠소. 겨우 걸린다는 게 어는 싸전가가의 판무식꾼이지! (한숨) 그래도 수치를 참어가면서 내 한목숨은 죽은셈 치고 자식들이나 그 덕에 길러가자든 것인데 세상에 첩을 오래 더리구 살랴는 사내가 있소? 여섯 달 만에 갈렸지. (한숨)
146
옛친구  저를 어째!
147
과부   지낸 일도 지낸 일이거니와 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아득허우. 내 한목숨만 같으면 죽어라도 바리겠지만 저 불쌍한 어린것들이 있어 죽지도 못허구…… 그대로 살어가자니 거지가 되는 수 밖에는 별 도리가 없고……
148
옛친구  (잠시 생각하다가) 누구 얌전한 사람이나 골라서 한번 더. (말을 못한다)
149
과부   (고소를 하면서) 얌전한 사람이 무엇이 부족해서 나 같은 여편네를 고른답디까? 또 나는 그렇다고 저 어린것들의 짐까지 질려구 한답디까?
150
옛친구  그러니 글쎄 저 일을 어떻게 해!
151
과부   되여가는 대로 되라지! 인제 또 속아서 무지한 놈의 첩살이나 멫 달 하다가는 쫓겨나고 그렁저렁…… (間[간]) 그러니 그게 산 목숨이야? (間[간]) 창피하고 분해!
152
옛친구  (한숨을 쉰다. 間[간]) 아이 참 내가 잊었어!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났으니 우리 집으로 갑시다. (손목을 잡아끈다)
153
과부   가야 폐만 끼치지. (겨우 따라간다)
154
일행   (좌수 후면으로 퇴장)
155
피에로  (울듯이 한숨을 쉬고 일행의 뒤를 바라본다)
156
병든 노동자  (통곡을 하면서 우수 후면으로 등장. 다리를 절뚝거린다. 후면 우편 벤치에 펄씬 주저앉아 머리를 우디고 여전히 운다)
157
피에로  (주의해 본다)
158
순사   (좌수 후면으로 등장. 노동자 앞으로 가서 잡아 흔든다) 여보 여보.
159
노동자  (울음을 그치고 황당하여) 네. (느낀다)
160
순사   왜 그래 왜?
161
노동자  네 그저 설은 사정이 있어 그랬읍니다.
162
순사   아무리 섧더래도 여기는 우는 데가 아니야 어서 가.
163
노동자  네 갑지요. 지금 뚝섬까지 나가야 합니다. (새 설움이 복받쳐 느낀다. 울음 섞인 소리로) 나가면 사흘째 굶은 처자가 가다리고 있읍니다. (다시 운다) 살 수가 없어서 일전에 문안에 들어 와서 가대기를 하고 호구해 가다가 그만 다리를 다쳤답니다. 사흘째 되었어요. (더욱 운다) 그래도 행여 무슨 벌이가 있을까 해서 주린 창자를 졸라매다 못 해서 오늘은 이 병든 다리를 끌고 첫새벽에 문안을 들어왔답니다. 들어와서 왼종일 돌아다니니 더구나 병신을 누가 일을 붙여줍니까. 그러다가 깜박 해 가지고 밤이 들었지요. 집에서는 굶어서 다 죽어가는 처자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고 이 병든 다리를 끌고 뚝섬까지 나갈 일을 생각하니 (더욱 운다) 나가기는 나가야지요. 죽어도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죽어야겠으니 나가야겠는데. (울음만 운다)
164
순사   글쎄 사정은 딱하지만 그렇다만 여기서 울고만 있으면 수가 생기나! 일어서서 나갈 도리를 해야지…… 일어서.
165
노동자  (그대로 울며 일어서서 순사를 따라 좌수 후면으로 퇴장)
166
피에로  (우두커니 한숨)
167
룸펜 3, 4인  (우수 전면으로부터 등장. 모두 땟국이 괴죄죄한 조선옷을 입었다. 주린 빛이 완연하다. 면전 벤치에 죽 걸터앉아 묵묵히 말이 없다)
168
어떤 사람 A와 B  (나란히 서서 좌수 전면으로 등장. 이야기를 하면서 오다가 중앙쯤에서 관객석을 향하여 머물러선다. B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둘이 다 신수가 훤치르르하다)
169
A   글쎄 그렇잖소? 저어들은 나더러 변절(變節)을 했다고 죽일 놈 살릴 놈 하지만 그야말로 깊이 생각하면 오십보로 소백보지. 저이가 더 나을 게 무어냐 말이야.
170
피에로  (두 사람을 비로소 보고 얼굴에 분노가 치밀어올라온다)
171
B   (고개만 끄덕거린다)
172
A   차라리 우리처럼 태도나 표명했으면 가령 죄라고 하더래도 덜 하지.
173
B   그게 도시에 그래요. 민중이니 민족이니를 위해서 자기네들은 일을 한답시고 하지만 그것이 이익을 끼치기는 결국 돈 있는 사람과 그 밑에서 유지니 지사니 해가지고 일한다는 그 사람들에게뿐이지 정말 일반 민중이야 어대 그 혜택을 입소?
174
A   그렇구말구! 좌우간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외인편으로 벗어붙이고 나서지 않으면 솔직하게 선명하게 바른편에 가담해 가지고 자본주의 그 세대(世代)에 알맞은 행세를 하는 게 제일이야.
175
B   그렇구말구! 중국의 장개석이가 중국을 위해서 일한다지만 그것이 중국 전민족의 일이 아니라 토착 뿌르조아를 위한 일이니까…… 자 어서 갑시다. 시간이 거진 다 되었겠소.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버린다)
176
두 사람  (우수 전면으로 유유히 퇴장)
177
피에로  (그 뒤를 흘기며 이를 간다)
178
룸펜 일동  (그동안에 B가 버린 담배토막을 서로 집으려고 야단이 일어난다)
179
피에로  (이 꼴을 보고 더욱 성이 난다)
180
룸펜 일동  (웬만해서 우수 후면으로 퇴장)
181
이주민 가족  (좌수 전면으로 등장. 제가끔 유랑해가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보 꾸러미들을 이고 들고 지고 했다. 전면 중앙에서 관객석을 등지고 머물러선다)
182
   (사리탑을 가리키며) 아버지 저건 무엇이요?
183
피에로  (주의해서 바라본다)
184
아버지  오냐, 저건 사리탑이라는 탑이란다. 예전에는 여기가 절터였더란다. 그런데 불이 나서 절은 없어지고 탑만 남었다가 시방은 공원이 되었느니라. (間[간]) 모다 잘들 보아두어라. 인제 마주막으로 간도로 떠나면 언제 다시 와서 서울 구경들을 하겠니!
185
어머니  (불평스럽게) 영감두 원! 북간도로 떠둥구러가는 팔자에 서울 구경을 해서 무얼 하겠다고 가든 길품을 메이고 예서 하루를 묵는단 말이요!
186
아버지  마누라도 원 딱한 소리 마우. 우리는 늙었으니 그런 것 저런 것 상관없지만 저것들이야 어대 그렇소? 조선서 태어나서 조선서 저만큼씩이나 자라가지고 아무리 살 수가 없어 만리 타국으로 떠나기는 할 망정 그래도 조선 종자들인데 서울 구경 한번 못한대서야 저이도 인제 원이 아니 되겠소!
187
아들   아버지 그런 걱정은 마세요. 인제 잘 되면 돌아와서 보아란 듯이 살 텐데.
188
아버지  아므렴 그래야지. 만리 타국의 호지에 가서 영영 뿌리가 백혀서야 쓰겠니. (間[간]) 다들 보았니? 다행히 다시 돌아오거든 시방 하든 말 일르고 잘들 살어라. (눈물이 눈에 고인다. 목멘 소리로) 가자 인젠.
189
일동   (우수 전면으로 퇴장)
190
피에로  (방금 울듯이 그들의 뒤를 바라본다) 조선을 죽도록 지키잖구!
191
주정꾼 A와 B  (비틀거리며 마주잡고 좌수 후면으로 등장)
192
피에로  (이마를 찌푸린다)
193
A   어, 튀튀.
194
B   아 여보 박상!
195
피에로  (흘겨본다)
196
B   게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서……
197
A   오랜만이구말구 응 긴상!
198
B   아하하하하…… 누 — 따 주우쿠나.
199
A   노들강변 비들기 한쌍.
200
B   허허허허, 이런 제길.
201
두 사람  (여전히 비틀거리며 우수 전면으로 퇴장)
202
피에로  (흘겨보며) 망할 자식들! (고개를 숙이고 뒷짐을 지고 뚜벅뚜벅 무대 전면을 왔다갔다 거닐면서 골똘히 생각한다. 가끔가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큰일났어 큰일났어. 아무래도 큰일났어. (間[간]) 영웅이 영웅이! 위대한 영웅이 나야만 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 영웅이 나야 해, 영웅이 영웅이! (갑자기 좌수 전면으로 뛰어들어간다)
203
── 무대 잠시 빈다.
204
피에로  영웅대모집(英雄大募集)이라고 쓴 아직 먹이 마르지 아니한 선간판을 손에 들고 또 한손에는 조그마한 종을 들고 허둥지둥 뛰어나온다. 휘휘 둘러보다가 전면 벤치에 간판을 기대어 세워 놓고 관객석을 향하여 서서 종을 흔들며 부르짖는다) 자, 영웅이 냐와야 합니다, 영웅. 이태리의 히틀러 같은 영웅 독일의 뭇솔리니 같은 위대한 영웅, 와싱톤같은 거룩한 영웅! 나폴레옹 같은 위대한 영웅. 보시요 와싱톤은 불란서의 오늘날의 영화를 끼치었고 나폴레옹은 미국의 아버지가 되지 아니하였읍니까? 우리에게도 영웅이 있어야 됩니다. 자, 영웅.
205
소년들  (여기저기서, 모여들어 차츰차츰 피에로를 둘러싸고 구경을 한다.
206
피에로  자, 우리 조선에도 영웅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누구나 다 응모하십시요. 자 누구나 다 응모하십시요. 영웅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여 그 일흠이 영원히 남으니 좋고 또 영웅에게는 여러 가지 특전이 있읍니다. 좋은 집에서 살 수가 있고 맘대로 술을 먹을 수가 있고 호색도 할 수가 있읍니다. 약간의 허물은 모다 덮어줍니다. 자, 누구든지 와서 영웅이 되십시요. 시기는 지금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요, 자.
207
소년 갑  여보세요?
208
피에로  왜 그러니?
209
소년 갑  그게 무슨 약이요?
210
피에로  (흥이 깨져서) 약? 예끼놈!
211
소년 을  나는 빈대약 파는 줄 알았지.
212
피에로  (기가 막혀) 이놈아 약이 아니야 조선의 큰 일꾼 영웅을 모집하는 게야.
213
소년 갑  영웅이 무어유?
214
피에로  우리 조선을 위해서 일할 사람이다.
215
소년 갑  (까막까막 생각하다가) 그럼 저 우리 집 옆에 김서방 오라구해요? 일 시키면 품삯 주지요? 전에는 생선장수 했지만 지금은……
216
피에로  (기가 막혀) 예끼 녀석!
217
소년 병  그럼 영웅은 어떤 사람이래야 해요?
218
피에로  위대해야 한다. 큰사람이래야 된다.
219
소년 갑  큰사람요?
220
피에로  아므렴 큰사람이래야지.
221
소년 갑  그러면 저 우리 집 행랑아범이 키가 퍽 큰데.
222
피에로  예끼 녀석! (그리려 한다)
223
소년 갑  (피하며) 괜히 그래요!
224
피에로  (다시 종을 흔들며) 자, 영웅이야 영웅! 어서 바삐 나오십시요.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납니다. 어서 영웅이 나오시오.
225
소년 을  (저희끼리) 이애 그럼 영웅이 무어냐.
226
소년 갑  몰라.
227
소년 병  아마 저 사람이 미친 놈인가부다?
228
소년 정  오라 미친 놈이야. (물러서며) 야 미친 놈 봐라.
229
소년들  (사방으로 헤어지며 일제히) 야, 미친 놈 봐라.
230
피에로  (눈이 둥그랬다가 성이 나서 이리저리 날뛰며) 이놈의 자식들!
231
소년들  야, 미치괭이다.
232
피에로  (눈을 뒤집어쓰고 이리저리 소년들을 쫓는다)
233
소년들  (더우기 소리를 지른다) (급히 막이 내린다)
【원문】영웅모집(英雄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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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웅모집 [제목]
 
  채만식(蔡萬植) [저자]
 
  중앙(中央) [출처]
 
  1934년 [발표]
 
  희곡(戱曲)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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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