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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1920년 5월호 맨 끝에 6호 활자로 동아일보의 창간을 축하하는 글이 늘봄 전영택의 문장으로 실리어 있다. 그 글을 보면 마치 어른이 어린이의 장래를 축복하는 듯한 사랑과 귀염이 가득 든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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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관으로 순전히 민간의 자본과 민간의 기술과 민간의 힘으로 생겨나는 동아일보를 《창조》는 진심으로 어른답게 축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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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서 중간기까지의 조선문인으로서의 동아일보에 한 때(잠깐이라도) 적을 두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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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따로 제 직장을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는 나 한 사람이 아닐까 이렇게 나는 생각한다) 얼른 꼽아 볼지라도 맨 초창기 동아일보에 천원 오천석, 제월 염상섭이 있 었고 춘원 이광수와 주요한이며, 안서 김억이며, 빙허 현진건이며, 춘성이며, 누구누구 枚學(매학)키 힘들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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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또한 동아일보같이 조선문학을 학대하고 박대한 언론기관도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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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인으로 동아일보에게 쓰라린 박대를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춘원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춘원 자신부터가 문인으로서는 학대를 받았으니 더 할말 없을 것이다)이며, 동아일보가 바야흐로 싹트려는 조선문학에 대하여 범한 과오가 또한 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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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아래에 차례로 기회 생길 때마다 쓰겠거니와 그 탄생(발간)을 그렇듯 진심으로 축복하였던 우리는 그 축복을 내심 후회하고 취소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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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문(時代日報(시대일보)며 朝鮮日報(조선일보) 등)이 그래도 좀 양심적인 신문소설을 지상에 연재할 때에 동아일보는 솔선하여 통속소설과 구담으로 대중에게 아첨하여 이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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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소설이란 것은 흥미 중심의 통속소설이 아니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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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세워 놓아서, 지금 자라려는 조선문학에 된서리를 준 죄로 변명할 여지가 없는 동아일보의 과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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