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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冬眠期(동면기) ◇

해설목차  서문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1948.3~
김동인
1
《백조》가 언제 창간되었다가 언제 폐간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2
《폐허》의 동인인 霽月(제월)(염상섭)이며 樹州(수주)(변영로)며 황석우 등 은 《폐허》가 창간되기 전에도 한 개 문학청년으로 《창조》에 투고 등을 하여 그 이름은 기억하는 바였지만 《백조》의 동인들은 모두 갓 중학 출신의 소년들로서 그다지 관심치 않는 동안에 창간되었다가 폐간되었다. 그 《백조》의 동인으로 나빈(도향), 현진건(빙허), 홍사용(노작) 등이 《개벽》이며 더 뒤에 《조선문단》 등을 무대삼아 成家(성가)를 하였기에 말이지 《백조》가 간행되는 당년에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3
기생집에 갈지라도 기생에게 ‘금향 씨’‘명화 씨’하여 ‘씨’의 존호로 부르고 기생에게 창가를 가르치며 전연 난봉 학생 같은 행세를 하며 다니던 《백조》 동인들이었다.
 
4
나도향은 그의 자랑하는 美聲(미성)으로 ‘김산월’인가 하는 기생에게 창가 춘원 작가 金永煥(김영환) 작곡 ‘백마강’을 가르쳐서 그 창가가 한때 童妓(동기) 새에 유행한 일까지 있었다.
 
5
그러나 우리 ‘조선 신문학 건설’의 주춧돌을 놓으라고 애쓰는 젊은이들 에게 한결같이 외롭고 쓰린 일은 우리의 이 사업에 대한 일반 사회의 몰이해 및 무시였다.
 
6
우리는 우리의 전인인 춘원(이광수)의 밟은 문학 발자국을 옳다 보지 않았다. 춘원은 문학을 일종의 사회 개혁의 무기로 썼다. 이상 건설의 선전기관으로 썼다.
 
7
그 태도 내지 주의를 우리는 옳다 보지 않은 것이다(그런 관계로 춘원이 《창조》 동인으로 있는 2년나마 《창조》에서는 춘원에게 소설을 부탁하지 않 았다).
 
8
권선징악을 목적으로 한 소설을 용납할 관대성을 못 가진 것과 같은 의미로 사회개혁을 목표로 한 소설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문학은 오직 문학을 위한 문학이 존재할 뿐이지, 다른 목적을 가진 것은 문학으로 인정하지 못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었다.
 
9
그리고 또 리얼이라는 것이 소설 구성의 최대 요소로 여기었다.
 
10
독자에게 아첨하기 위하여 흥미 본위의 소설을 쓰는 것은 문학자로서 부끄럽게 여길 일이라 보았다.
 
11
그런지라, 우리가 그때 산출한 소설이라는 것은 대중적 흥미는 아주 무시한 생경하고 까다롭고 싱거운 것뿐이었다.
 
12
우리는 이 생경한 ‘이야기’를 소위 ‘문학’이라 하여 대중에게 ‘맛있게 먹기’를 강요한 것이었다.
 
13
3․1 후 반항기분과 신흥기분으로 일부의 젊은이들은 이 생경한 문학의 맛 는 체하고 억지로 받아 먹었지만, 일반 대중은 우리의 노력의 결정인 신문학을 아주 무시하여 버렸다.
 
14
새 문학이 없는 이 땅에 새 문학을 건설해 보겠다고 나선 우리들에게 일반 사회의 이 냉대는 과연 적적하고 가슴 아팠다.
 
15
《폐허》의 폐간도 이 냉대에 정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16
《창조》도 (무어니 무어니 하여도) 대중의 열렬한 지지와 후원만 있으면 폐간 안했을 것이다.
 
17
이리하여 《창조》 폐간되고, 《폐허》 폐간되고, 《백조》도 없어지고, 조선 사 회에는 문학운동이 한때 冬眠(동면)상태에 빠졌다.
 
18
‘문학’을 냉대하는 사회에 무슨 문학이랴― 이런 심리로 모두 폐간하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제각기 제멋대로 놀아났다.
 
19
《창조》의 동인들은 오입장이로 돌아서고 《폐허》의 동인들은 방랑과 표랑으 로 돌아섰다.
 
20
위에도 쓴 일이 있거니와 ‘주식회사 창조사’의 불입한 불입금을 ‘안금 향’이라는 기생에게 통 부어 넣고, 그 때문에 김환은 면목이 없어 말을 더듬는 떼, 떼, 떼 하는 눌변으로써 연해 시골(진남포였다) 자기 집 논을 팔아서 변상하겠노라고 쫓아다니며 변명하였지만, 나도 그때 바람이 나서 몇 천원의 돈을 김환에게 먹히운 것쯤은 생각도 안하던 때라 아주 개의치 않고 나 놀대로 놀아났다.
 
21
안서는 그때 漢城圖書株式會社(한성도서주식회사)에 「위인 링컨전」이라 「위인 와싱톤전」이라 위인 누구 누구전을 연속적으로 팔아서 술값 수입이 좋던 시절이라, 매일 康明花(당명화)라는 기생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시절이었다.
 
22
늘봄 전영택은 평양에, 東園(동원) 이일은 서울에 각각 신혼한 애처의 보금자리에 묻혀 있었다. 천원 오천석은 아직 총각으로 몸을 아버지(목사)의 품에 쉬고 있었다.
 
23
이광수, 주요한은 상해에 있었다.
 
24
염상섭은 《폐허》 폐간 전후하여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에 교원으로 두석달 가 있다가, 다시 제 집으로 돌아와서 숨어 있었다.
 
25
이리하여 모두 붓을 내어던지고 제멋대로 놀아나서 조선문학은 탄생 2년 뒤에 동면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26
이때의 언론기관으로 민간과 총독부 기관지를 합한 네 개의 신문과 《개벽》 잡지뿐이었는데, 신문은 문예를 다루지 않고 《개벽》 역시 초창기로서 천도교의 인내천만을 주장하는 얘기 잡지로서, 아직 문예와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은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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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金東仁) [저자]
 
194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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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