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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文壇) 30년의 자취 ◈

◇ 辱設(욕설) ◇

해설목차  서문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8권  19권  20권  21권  22권  23권  24권  25권  26권  27권  28권  29권  30권 31권  32권  33권  34권  35권  36권  37권  38권  39권  1948.3~
김동인
1
이 1932년경을 전후하여 문단 한편 귀통이에는 욕설 비평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2
이 땅이 일본에게 합병된 지 20여 년 그 새 펴보지 못하여 압축된 감정을 펴보기 위하여 하는 욕이라 누구에게든 다닥치는 대로 욕이었다.
 
3
《批判(비판)》이란 잡지는 이 욕으로 판매정책을 세웠다. 좌익잡지라는 구호였지만 당시의 조선총독부 검열정책이 좌익사상을 약간이라도 선전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던 시절이라, 비록 자칭 ‘좌익계동’의 잡지라 하나 《비판》은 총독부 검열에 파스하는 잡지였다.
 
4
《비판》 잡지의 선동의 덕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욕을 꽤 얻어 먹은 축이었다.
 
5
누구누구에게 욕을 먹었는지 지금 기억할 수 없으나 必承(필승) 安懷南(안회남)이며 水原(수원) 朴承極(박승극) 등의 욕은 지금도 기억한다.
 
6
회남이 나를 욕한 것을 내가 밉다든가 하여서가 아니라 회남 자신이 출세 욕에 초조한 나머지, 왜 좀 후진에게 글을 비켜주지 않느냐는 나무람에서 나온 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할 욕이 아니고 잡지(혹은 신문) 간행자에게 할 욕이었다. 신문이나 잡지의 간행자도 자기네의 신문(혹은 잡지)를 많이 팔자니 자연 지명인에게 글을 청구할밖에 없을 것이다.
 
7
나 또한 원고료로써 생활을 해 나아가는 사람이매 잡지(혹은 신문)의 요구에 거절하지 않고 승낙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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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회남의 초조한 생각으로는 김의 글 부탁을 좀 거절해 주면 그것이 자기 몫에 돌아올는지도 알 수 없으리라는 기대로서 내가 무슨 글을 쓰기만 하면 달려드는 것이었다.
 
9
사실 나는 그때 글을 좀 많이 썼다. 寡作(과작)을 자랑하던 예전과 달라서 글을 써서 그것으로 생활을 유지해야 할 입장에 서 있더니만치 부탁받는 글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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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문단이라는 것이 형성된 지 우금 39년, 오직 붓대만으로(딴 직업은 가져보지 않고) 생활을 경영한 사람이 나 단 한 사람밖에 없다면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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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나에게는 남의 출세에 방해되고 어쩌고 그런 문제는 고려할 여가조차 없었다. 다만 사람이 살아 나아가는 막대한 비용을 오직 붓끝만으로 변통해 나아가는 일만이 신기하고 기특하여, 어디서 글 부탁하는 사람이 걸려 들기만 하여라고 기다리는 판이니, 어찌 남을 고려할 수가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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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뒷날 회남이 출세를 하여 문단의 일원이 되어 있는 오늘, 나는 회남에게 대하여는 전날의 욕설을 아주 잊어버리고 그의 대성만 고요히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박승극이 내게 욕설을 퍼부은 것은 그 의도가 더럽다 보아서 아직 내게 불쾌한 일이다.
 
13
내가 조선일보(方應謨(방응모) 조선일보다)에서 학예부의 일을 40일간 맡아본 일이 있다. 그 어떤날 수원 박승극이라는 사람에게서 꽤 방대한 ‘農民文學論(농민문학론)’이라는 원고 뭉텅이가 우편으로 배달이 되었다. 그래서 그냥 서랍에 집어넣어 두었다.
 
14
2, 3일 뒤 편집국장 주요한에게서 ‘농민문학론’을 왜 지상에 싣지 않느냐는 채근이 있었지만, 아직 보지도 않은 것이라 그저 그냥 버려두었더니 그 뒤 또 2, 3일 지나서 수원서 장거리 전화가 왔는데 가로되,
 
15
‘자기는 박승극이라는 농민문학론의 저자인데 왜 자기 원고를 신문지상에 발표하지 않느냐?’
 
16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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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무엇이라 대답했는지는 기억치 못하려니와 좌우간 내겠다고 승락은 안 했던 모양이다.
 
18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나서 웬 젊은 사람이 조선일보로 찾아와서 박승극의 편지를 내밀며 그 원고의 반환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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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그 박씨와 나와는 원수지간이 되어서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언론기관을 이용해 나를 욕하기 여념이 없었다.
 
20
박씨는 그 뒤 몇 해를 두고 나를 욕하고 욕하다가 그만 기진했는지 그 욕을 중지한 것은 여러 해 뒤였다.
 
21
짐작컨대 박씨에게 있어서는 그 ‘농민문학론’이 꽤 애쓴 글이었던 모양인데 그것을 그냥 도로 반환한 데서 그의 노염을 그렇듯 돋우었던 모양이 다.
 
22
조선의 문사치고 가장 욕많이 먹는 사람은 춘원이었고 내가 그 다음으로는 가는 모양이다. 가끔 뜻하지 않은 사람에게,
 
23
“이전 선생을 좀 욕한 일이 있지만….”
 
24
이라는 변명 비슷한 말을 듣는데, 나는 당년 그 욕에는 아주 무관심하여 누구누구가 무슨 욕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지냈다.
 
25
내가 방응모 조선일보에 40일간 봉직할 그 어떤날 같은 사의 촉탁으로 있던 故(고) 文一平(문일평)이 은근히 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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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미안한 청탁이 하나 있는데요. 내 어떤 친구가 이즈음 생활이 아주 곤란한 모양인데, 그 친구가 소설을 하난 썼노라고 그것을 조선일보사 에 사주면 해서 그러는데요….”
 
27
이런 청탁이었다.
 
28
“좌우간 그 원고를 한번 보여주시지요.”
 
29
“아니, 그 친구가 언젠가 김 선생을 어느 잡지에서 욕을 했대요. 그래서….”
 
30
“난 그런 건 일일이 기억도 못합니다. 원고를 좌우간 보여주세요.”
 
31
이리하여 문일평은 한 뭉텅이의 원고를 내어놓았다. 그 원고란 民村(민촌) 李箕永(이기영)의 「쥐불(鼠火)」이었다.
 
32
민촌이 언제 어디서 나를 욕하였는지 나는 모른다. 좌우간 민촌 자신이 기억하느니만치 헐한 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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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민촌이란 이름은 ‘살인 방화’식의 좌익작가로 기억하고 있더니만치 또 여전히 ‘살인 방화’식 소설이려니 하여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을 문일평에게 대한 대접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34
좌익계통에 살인 방화가 아닌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구나 하여 곧 전표를 떼어 약소한 원고료나마 문일평에게 내어주고 그 「쥐불」은 약간한 가필을 할뿐 조선일보 지상에 싣기 시작하였다.
 
35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서 민촌은 그 뒤이어 조선일보에 연재 장편을 쓰게 되고 그게 문단 한편 구석에서 욕과 살인 방화 소설 따위로 겨우 존재를 알리었던 민촌이 당당한 중앙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이다. 민촌더러 말하라면 이것은 자기 작품이 우수했던 탓이라고 호언할는지도 모른다.
 
36
그러나 당시에 있어서 동아일보는 전연 단편 창작은 취급하지 않고 우익잡지들은 좌익계의 작품은 읽지도 않고 몰서하는 형편 아래서 「쥐불」이 다른 신문이나 잡지에서 용납되었을 까닭이 없고 조선일보 곧 아니더면 민촌의 출세는 몇 해를 뒤지든가 혹은 아직껏 「쥐불」의 원고를 부여안고 방황하는 중일는지 알 수 없다.
 
37
나는 그 뒤 다시 「쥐불」을 읽을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책으로까지 났다는 그 표지는 보았지만.
 
38
그러나 좌익작가가 고수하여 오던 바의‘살인 방화’식의 소설에서 벗어나려는 그 첫 작품으로 특필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 】辱設(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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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金東仁) [저자]
 
194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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